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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21장 2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LNCK 2022. 1. 16. 18:50

https://www.youtube.com/watch?v=cR0aunZHD7Y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잠21:2                       출처

[날마다 기막힌 새벽 #716]

 

오늘 주신 말씀은 잠언 21장 2절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아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우리는 언제나 대개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를 봅니다.

주인공과 자기를 이렇게 연계시켜서

그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죠.

 

악당이나 또 조연이나 이런 사람들은 나하고 관계없는

그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서 영화를 봅니다.

 

성경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다윗과 사울, 바울과 가롯 유다.. 이렇게 나올 때

우리는 다 바울, 다윗, 모세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지

 

가롯 유다 입장에서 자기를 대입해서 성경 보기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늘 주인공이고

우리는 늘 정의 편에 서 있고

우리는 언제나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과 같은 입장의 사람이다..

하는 면에서 성경을 보기가 참 쉽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에게 대해선 좀 관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좀 비판적이고

철저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관대하고 너그럽기 때문에

또 합리화기 때문에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깨닫는 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뭐, 나 이만하면 괜찮지

나정도면 예수 잘 믿는 거 아닌가'

 

'나 이만하면 흠 없고

하나님 앞에 별로 부끄러움이 없는데..'

 

이런 얘기 말로는 못해도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속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 부인하기 어려울 겁니다.

 

▲저는 40대 초반에

<생사를 건 교회 개혁>이라는 책을 썼어요.

그 책이 교회에 제법

작은 파장을 일으킨 책 중에 하나인데

 

그 책의 내용은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인데

자꾸 사람이 목사가, 장로가, 돈 많은 사람이

오래 교회 다닌 터줏대감들이 주인 노릇 하는 것 때문에

교회가 교회다워지지 못하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사람은 주인 노릇하면 안 된다.

하나님만 주인 노릇 하는 교회가 돼야 된다..고 하는

교회개혁을 부르짖고

 

또 실제로 그렇게 교회를 개척해서

그런 교회를 해보려고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개혁을 부르짖고

남들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한 대로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라고 생각해서

그 <생사를 건 교회 개혁>에서

제가 제안하고 주창한

 

'교회 정년을 65세 정도로 5년 당기자

너무 오래하면서

기득권층이 더 굳어진다.

 

세상에 70세까지 정년 하는 직업이 별로 많지 않은데

꼭 목회자라고 장로라고 70세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그래서 저도 65세에 은퇴했습니다.

 

원로목사 제도도 장점이 많이 있겠지만

그것도 목사에게 유리한 제도이지

교회나 하나님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생각이, 저는 안 들어서

 

우리 교회는, 높은 뜻 교회는

원로 제도를 폐지하자

그래서 저도 원로목사 하지 않았습니다.

 

위임목사 제도도 어떻게 보면 폐지하고

6년마다 한 번씩 재신임 투표를 받자!

그런 제도들도 만들었고요.

 

은퇴할 때 정해진 퇴직금 외에

다른 거 요구하지 말자

 

뭐 그런 얘기들을 해서

하여간 제가 책에서 주장하고

이렇게 해야 교회가 건강해진다..고 하는 일들을

저도 따르려고 좀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거 따르려고 노력해서

아슬아슬하게 그렇게 은퇴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요.

자꾸 제가 자랑스러운 거예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는 65세에 은퇴했는데

원로목사 그런 거 안 했는데

다 포기했는데

 

은퇴한 후에 교회에 영향력 행사하지 않고

정말 뒷방 늙은이 되었는데.. 라고 하는

'자기 의'가 자꾸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난 이런 사람이야!'

'난 이렇게 한 사람이야!'

 

그리고 스스로 '나는 훌륭해!' 라는 생각에

점점 점점 갇혀지는 것을

뭐 솔직히 제가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이

사람의 생각에 모두 다 자기가 정직해 보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잠21:2

 

이 말씀은 제 뼈를 찌르는 말씀이에요.

 

제 마음속을 다 들여다보시고

'너 그래 정직하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살피면

하나님 앞에 네가 어떻게 의인일 수 있겠느냐?'

라고 하는 말씀이에요.

 

제가 좀 힘들어하던

교회 장로님 한 분이 계셨어요.

 

목회하다 보면 서로 잘 안 맞고 그래서 다투고

이제 사이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기잖아요.

 

저 나름대로 많이 힘들어서

'하나님이 저런 사람도 사랑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금방 '그럼' 그러시더라고요.

많이 섭섭했어요.

 

'아니다. 나도 저런 사람 싫다.

나는 네 편이다. 난 네가 좋다.'

 

이렇게 제 편 들어 주실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그분을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그때 번뜩 생각난 게 십자가였어요.

'사람이 죄인이니까 십자가를 지셨지

죄인인데도 사랑하시니까 십자가를 지셨지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나?'

 

하는 생각에 십자가를 보니까

'아, 하나님이 저 장로님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거

제가 인정하게 되었어요.

 

여러분 더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 십자가를 통해서 저 자신을 보니까

도긴개긴이더라고요.

 

하나님 앞에서 제가 어떻게 의로울 수가 있겠어요?

 

인간적으로 하나님 이렇게 제쳐놓고 보면

'글쎄, 내가 저 장로님보단 좀 낮지 않을까?'

그런 생각 혹시라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솔직히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나와 그분이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그때 이 찬송가가 이렇게 마음에 자꾸 새겨지더라고요.

'주가 죄를 살피면 누가 능히 서리오'  시130:3

 

하나님 앞에, 코람데오 앞에

내가 잘난 게 없더라고요.

 

정직한 거? 쪼금 정직한 거?

조금 의로운 거 있을 수 있지만

 

그거 내세울 거 못되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인인 것!

숨겨놨던 것, 나도 잊어버렸던 것들이 생각나게 되었어요.

 

그날 이후로

제가 사람에 대한 판단과 비난을 삼가기 시작했어요.

 

옳고 그른 일에 대해서는 뭐

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또 항의도 하고 그랬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버렸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는 모두 다 죄인이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눅18장에,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올라갔어요.

바리새인은 '나는 저 세리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나는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합니다. 나는 금식도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도 드립니다.'

그거 다 거짓말 아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바리새인은 세리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자기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다 하나님께 토로하는 거예요.

'나는 저 세리 같지 않아요. 난 저렇게 안 살아요.

저 세리는 이런 사람이에요.'

하는 판단이 있고 그랬어요.

 

그럴 때 세리는 머리를 땅에 대고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어요.

 

그때 예수님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셔요.

'그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저 세리였다.' 눅18:14

 

여러분 실제로 삶을 달아보면

바리새인이 훨씬 바르게 살았어요.

바르게 살려고 애썼어요. 십일조 했어요.

하루 세 번씩 기도했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금식도 했어요.

이렇게 철저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살피신 바에 의하면 달라요.

하나님은 오히려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더 의롭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 배웠던 산수 시간에 배웠던 기본 공식이에요.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 = 플러스

마이너스 곱하기 플러스 = 마이너스

 

사람 앞에서는

나의 플러스적인 면을 얘기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는 다 마이너스적인 존재예요.

 

도긴개긴이라고 제가 그랬잖아요.

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죄인이지요.

 

바리새인도 죄인이고

세리도 죄인이에요.

 

그런데 이 마이너스적인 존재가 자기 인식을

마이너스로 하느냐

플러스로 하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지더라고요.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인데

인간적으로 교만해져가지고 오만해져가지고

저 세리보다 낫다 자기를 생각해서 

플러스로 인식했어요.

 

나는 정직해

나는 개혁했어

나는 65세에도 은퇴하고

원로목사도 하지 않았어

나는 퇴직금 외에 안 받았어!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는 거예요.

그렇게 자꾸 곱하면 답이 뭐가 나오냐?

 

본래 하나님 앞에 죄인인데

자기 잘난 것을 생각하고

자기 의를 자꾸 주장하면

답은 마이너스가 나오는 거예요.     -x + = -

 

세리는 죄인이었어요.

도둑질도 하고

부정한 돈도 탐하고 뭐 그랬겠죠.

 

그런데 그것을 인정했어요.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부끄럽습니다..

하고 얼굴도 들지 못하고

마이너스라고 고백하니까

마이너스에다 마이너스를 곱하니까

플러스가 되지 않았냐?

 

저는 이 설교 참 많이 했어요.

 

그런데 나를 마이너스로 인식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쉽지 않아요.

 

예, 날기새하면서 설교하면서

은근히 자랑할 때도 있고

은근히 자기를 과시할 때도 있고

그런 것 부인할 수가 없어요.

 

그런 저를 향하여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셔요.

'사람이 자기 생각에는 모두 정직하다고 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시느니라!'

 

'네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의인이겠냐

네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지 않겠나?' 하는

귀한 말씀을 우리에게 오늘 주시는데

 

이게 오늘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또 여러분 우리 날기새 가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보면은요.

하나님이 크게 쓰셨던 정말 믿음의 위인들은요.

이 인식이 다르더라고요.

 

바울은 뭐라 그랬어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면서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고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니라'

 

그냥 바울이 말로 입으로, 문학적인 표현으로

그렇게 위선적으로 쓴 말씀이 아니고

자기의 실존적인 고백이었어요.

 

아니 바울은 자기를 괴수라고 고백하는데

'누가 나를 건져내겠냐

하나님 밖에는 이 죄를 용서하고 구할 자가 없다'고

하나님을 딱 붙잡는데

 

나는 잘났다고.. 뭘 좀 개혁했다고..

남하고 조금 다르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을 붙잡아야 살지, 자기 의를 붙잡으면 살 수 없어요.

근데 우리는 자꾸 십자가를 붙잡지 못하고

자기 의를 붙잡아요.

 

내가 죄인인 줄을 깨달아야 십자가를 잡지 않겠어요?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 잡을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까닭이

자기 의에 사로잡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근데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바리새인은 나하고 상관없어요.. 합니다.

 

그런데 사실 따져보면

우리 속에 바리새적인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이렇게 탄식하면서

자기 죄인 됨을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쪼그마한 의를 과대포장해서

자기가 그런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이게 사탄이 하는 고수의 전략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빠지지 말고

자기가 스스로 정직하다.. 의롭다.. 하는 생각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세리처럼

무릎 꿇고 십자가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 저와 여러분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