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둘이 하는 것이지만, 공적으로 결혼식을 통하여 공적인 선포를 해야 돼요. 서약하는 시간이 중요하고, 공적인 선포를 하는 거예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이제 두 사람이 이제 하나가 되었음을 공포합니다!' 이 공포가 반드시 있어야 돼요. 언약체결인 셈이죠!
세례식도 그렇잖아요. 세례식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 공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수 믿으신 분은, 교회에 못 나오시니까 할 수 없이 집에서 세례식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공개적으로 하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어떤 공적인 체결, 약속이 있는 거죠.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도 서약을 하잖아요.
결혼도 세례도, 공적선포와 함께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는 출발을 해야 된다는 거죠.
▲출19장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이제 그렇게 된 거라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입니까?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입니다.
정말 별볼일 없는, 떠돌던 유랑민족이었고 애굽에서 학대를 받고, 고된 노동을 하며, 노예생활하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이 백성들이 하나님과 정식으로 언약을 체결하게 돼요. 이건 특별한 사건이에요. 놀라운 사건이에요.
모든 민족 중에서, 한민족을 특별히 골라서 자기 백성으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이 언약 체결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로운 신분, 그의 소유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실을 신약에서 다시 확인시켜주죠.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렇게 된 거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다.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어요. 하나님의 특별한 신분으로 우리를 불러주셨어요.
그래서 이제 신약시대는,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언약관계 안에 들어온 거예요. 피의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제 그 분과 우리와의 관계가 새로운 관계가 된 거예요. 그래서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이 언약 안에 들어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결혼식 할 때 종이 한 장이 별 건가?' 아니에요. 여러분, 결혼증서 자체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증서가 있을 때 법적인 보장을 받아요. 결혼에 대한 합법적 절차를 거치고 증서를 가지고 있으면 서로가 책임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가면서 서로가 책임 관계가 되는거에요.
그러면 누가 덕을 보는 거죠? 백성들이죠.
하나님은 언약을 체결하나 / 안하나 하나님께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그 백성과 언약을 체결함으로써 하나님이 스스로 법적인 책임을 지시고 매이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건 놀라운 거예요.
자 합법적인 절차를 가지고, 언약 증서를 가지고 서로가 책임 관계 안에 들어가면 이제 책임을 진다는 게 어떤 것이냐? 좋은 예가 하나 있어요.
얼마 전에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라는 사람이 있잖아요. 세계 최고의 갑부입니다. 그가 얼마 전에 이혼을 했잖아요.
그의 아내 로렌 산체스와 재산을 반으로 딱 분할했어요. 그의 재산은 한화로 153조입니다. 그걸 반으로 분할해서 76조를 받았어요. 언약 관계가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예로 설명드린 겁니다.
언약을 체결하는 것과 / 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비로소 느끼게 되지요. 그 상대가 특별히 하나님이십니다. 베이조스와 상관이 안 되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그렇다는 거죠.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언약을 맺자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특별한 관계 안으로 불러 들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부요,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비밀이 그 언약 안에 있는 거죠.
우리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시겠다는 선포에요. 공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상속권은 뭘까요? 여러분.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영원한 소유가 됐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하나님의 참 상속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언약관계 안에 들어갔는데 이 언약관계는 영원한 언약관계입니다.
우리가 그냥 부름 받은 게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말은 이제 한번 맺어진 관계는 끊어질 수 없다는 거죠.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 이것 자체가 우리에게 축복이요, 영원한 보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보증'이라는 말은 '인침'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성도는 신령한 복을 받았고, 성령으로 인 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우리의 최고의 특권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원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그런 프로포즈를 받을 만한 자격과 수준을 가지고 있어서 맺은 게 아니라 우리는 자격과 수준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가 전혀 하나님 앞에 자격이 없는, 정말 죄밖에 짓지 않는 그런 우리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분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보증을 하사 (성령의 인을 치사) 하나님의 언약을 그리스도의 피로 체결하셔서 이제 그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얘기가 그거잖아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 이거보다 더 큰 축복이 없어요.
이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의 모든 것은 이제 하나님의 간섭 안에 있게 됐다는 거죠. 하나님의 간섭 안에요!
왜요? 우리가 그분의 소유이기 때문에요!
여러분 어떤 것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내 소유라면 이거를 그냥 함부로 막 내팽겨지지 않겠죠.
이걸 누가 막 함부로 깨뜨리려고 하면 내가 보호해야 되겠죠. 이게 내 가장 소중한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분이 목적을 두고서 제사장의 나라로,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을 가지고 부르신 그분의 소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가운데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뭘까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인하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그 소유된 백성이라는 거죠.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거죠. 이 사실을 놓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과 나와의 특별한 관계를 놓치지 말라는 거에요. 그 관계만 붙잡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이 언약 관계는 누구도 깨뜨릴 수 없다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이 특별한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이제 어떤 것으로도 깨어지지 않아요.
어떤 외부적인 힘이, 혹은 나의 부족으로 인해 그 관계가 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그 소유된 백성은 영원한 보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체결하기 전에 너희는 준비하라
그런데 이 법적인 언약을 맺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 하신 일이 있어요.
출19:11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만나기 위해서 강림하신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만남'이 중요합니다!
언약 체결을 위해서 함께 만나야 되는 거잖아요. 만나야 가능한 거예요. 계약자와 피계약자의 관계가 성립하려면 만나야 됩니다.
여러분 이 강림하신다는 게 하나님의 은혜죠.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올라가서 만날 수 없어요. 하나님이 내려오셔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 아무리 우리가 도를 닦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하나님께로 갈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만나주셔야 됩니다.
이 '강림하신다'는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주제 중 하나죠. 그래서 우리가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셨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우리가 노력해서 인간의 열심으로 하나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열심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우리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에요. 우리가 만날 수 있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 우리에게 다가오셔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거죠.
여러분, 오늘도 우리 인생가운데, 우리의 신앙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은 뭘까요? 하나님이 나에게 다가 오셨다는 것을 경험하는 거죠.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오셨구나! 성령이 오셨구나! 하나님의 나를 만나주셨구나! Encounter 라고 그러죠. 대면해서 만나는 거죠.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는 거죠.
C S 루이스가 그 얘기를 했어요. '내가 그토록 만나지 않으려는 분의 지칠 줄 모르는 다가오심'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C S 루이스는 기독교적인 문화 속에서 살았지만, 미션 스쿨도 다니고 했는데 그냥 거부감을 가지고 계속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분은 지칠 줄 모르고 자기에게 다가오시는 거예요.
그는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려고 도망을 쳤는데 하나님이 끊임없이 그의 인생에 밀고들어오신 거예요. 하나님의 찾아오심 앞에 그는 마침내 무릎을 꿇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에서 가장 묵직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뭐냐?
병 낫는 그런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시는 사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잖아요. 그렇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야곱도 막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기 열심에 치우쳐서 자기 머리를 믿고 살아가던 그가 어느날 얍복나루에서 딱 코너에 몰렸을 때 하나님이 그를 일방적으로 찾아오셨어요.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심, 이게 그들의 인생의 분기점이었어요. 여러분께도 이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임마누엘, 성육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인간의 몸을 직접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그 이후로 영원토록 우리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시는 그 은혜, 이 강림하심 은혜가, 본문 출1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나주시는가요? 19: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
자 하나님께서 백성들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임하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임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빽빽한 구름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지가 않아요.
다만 어떡해요? 빽빽한 그룹은 상징이죠.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많은 것들이 있어요. 천둥, 번개, 구름, 불, 시내 산이 연기로 덮혀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그 임재를 나타내신 거죠.
여러분 죄인이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자꾸 보려고 하지 마세요.
출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9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화하는 것을 백성들로 듣게 하라는 거예요. 백성들은 하나님을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게 한다는 거죠. 말씀을 들어라는 거죠.
여러분 직접 보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중요해요. 하나님은 말씀을 들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들었다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의 초점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믿음도 들음에서 나는 거고,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요1:1
▲그러므로 '보는 신앙'보다 '듣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보고자 하는 신앙보다 듣는 신앙이 수준이 높은 거예요.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꾸 무엇을 보여달라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 유치원에 가면 보여주는 게 많아요. 다 시각적으로 보여줘요. 보는 것을 강조하는 신앙은, 엉뚱한 것을 볼 위험성이 있어요.
우상을 왜 만들죠? 우상은 보여주는 신인 거죠.
사람들은 자꾸 보는 것을 구하는 거니까요.
그러다 보면 결국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게 되는 거죠.
물론 보는 것도 중요해요. 보는 것 자체를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시각적으로도 뭔가를 보여주실 때가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연약성이에요. 우리는 자꾸 눈에 화끈하게 보여 달라고 해요.
그러면 그들이 다 우상숭배로 빠지는 거예요.
여러분, 체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체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 체험도, 자기가 체험한 것을 객관화시킬 수는 없어요.
자기 개인적으로 체험한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객관화 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간증도 조심해야 되는 이유가 그런거에요.
그 간증이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그게 객관화될 수가 없어요. 본인이 경험한 거예요.
본인이 경험한 게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어요. 다른 사람은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우리 개인이 체험한 것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크신 분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체험한 그 세계 안에서만, 하나님을 설명해 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고 체험하는 것에 너무 매이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신앙이 유치해진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본 것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믿는 신앙이어야 됩니다.
도마에게 그랬잖아요. 예수님이 '네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도다!'
그래서 여러분, 서방 기독교와 동방 기독교가 이게 나눠졌잖아요.
동방 쪽은 도마의 영성이에요. 보는 것을 강조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화들이 많이 만들어진 거죠.
동방 정교회에 가면 그런 성화들이 많이 있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데, 자꾸 보여달라고 그러면 곤란해요.
우리가 눈으로 보았다고 그걸 전부 라고 여길 수도 없어요.
보고도 딴 소리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보기는 했는데,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익숙하지 않으면, 신앙의 늘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요즘은 특별히 뭐 비주얼 시대죠. 보는 것을 강조해요.
그래서 요즘 굉장히 현대 상업주의는 전부다 보여주는 전쟁입니다.
시각적인 부분이 발달되고 영상시대죠.
요즘 아이들은, 어린 아이들도 두 살도 안 된 것 같은데
식탁 앞에 의자에 앉았는데 너무 얌전해요. 보니까 뭘 보고 있어요.
핸드폰을 막 넘겨가면서 영상을 보고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뇌 구조가 바뀐다고 그래요. 보는 쪽으로 발달되는 거예요. 듣는 게 약해지는 거예요.
이 굉장히 변화하는 시점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 세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오늘날 여러분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봄으로, 듣는 거예요.
성경을 보는 이유는, 말씀을 들으려고 보는 거에요.
성경을 읽는 가운데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죠.
그 가운데서 점점 믿음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계속 들을 때,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이라고 할 때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말씀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말씀이 나에게 들려지고, 말씀이 깨달아지고,
말씀을 들을때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라는 거죠.
그래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가슴이 뜨거워지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확신이 생기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결단이 일어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신 증거요,
나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거죠.
'말씀이 임했다'.. 그게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말이에요.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가 참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는 이 시간, 설교를 듣는 시간도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말씀이 내 영혼에 들려지고 있는가요?
그 말씀이 내 영혼안에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역사를 하고 있는가요?
그러면 그것이 말씀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셨다는 증거요,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만남을 위해 성결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실 때, 먼저 준비하도록 하셨어요.
백성들이 하나님을 그냥 만날 수는 없는 거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잖아요.
특별한 만남은 특별한 준비가 있어야 돼요.
마치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이,
신랑되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뭔가 그 기다림의 시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19:11절에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고 하셨어요.
준비하면서 삼일을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준비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띄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그냥 바로 날잡고 결혼하면 안 되죠.
결혼식 하는 날을 기다리는 절차가 있어야 돼요.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혼날짜를 잡고, 그 기다리는 시간은 준비하는 시간이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도 기다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들도 보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던 거에요.
기다림을 통하여 갈망하게 되고, 영혼의 목마름을 경험하면서
그분에 대한 갈망이 깊어지는 것이죠.
자 그것이 첫번째입니다, 준비해라!
그런데 그 다음에 해야 될 일은,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19: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준비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옷을 빨라'고 했는데, 지금 여기가 광야잖아요.
무슨 세탁시설이 있는 게 아니고, 코인 런더리가 있는 곳도 아니고
물이 흔한 곳도 아니잖아요. 샤워도 쉽게 못 하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여유분의 옷을 보관하고 있었다면, 구태여 옷을 빨아입을 이유가 없어요. 새 옷을 입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새 옷이 없었어요. 광야에서!
노예생활하다가 황급하게 광야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빨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선결 조건이 있는데, 옷을 빨아입는다는 것은 외적인 청결을 말하죠.
그러나 내적 청결의 상징적인 명령입니다. (내적 청결을 하라는 뜻)
14, 15절에서도 '옷을 빨라'
또 남자들에게는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
이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정결하라는 거죠.
아무렇게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언약의 관계를 맺는 이 예식이 너무도 거룩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죠.
우리도 결혼식에 더러운 옷을 입고 나갈 신부는 아무도 없어요.
만날 신랑을 생각하고, 최고로 좋은 옷을 입고 나가죠.
특별히 드레스는 다 흰 색깔이죠. 흰 색깔이에요.
아직 저는 한 번도 까만 웨딩 드레스를 본 적이 없어요.
왜 하얀색일까요? 여러분, 아마도 거룩하고 순결함을 의미할 거예요.
순결함 .. 이게 결혼의 계약 관계 안에서 가장 선결되는 게 순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결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처녀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이 종종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해야 함을 의마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만나 주시는 조건이 있는거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은혜를 주시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백성이 되려면
먼저 우리가 지켜야 할 명령인데, 성결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걸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뭐 대단한 어떤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정결함을 원하세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결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실은 모세오경 전체에서 얘기하는 거죠.
하나님을 만나는 백성들의 성결함이 요구되고, 깨끗해야 합니다.
▲요즘은 여러분 우리가 이 부분(성결)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어두워졌어요.
많이 기준이 무너지고 '이게 죄인가, 아닌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따지지 않는 거예요.
최근에 보니까 유명한 크리스천 탤런트로 알려져 곧 결혼한데요.
그런데 이미 임신을 했다고 보도되더라고요. 그렇게 안 봤는데...
뭐 알려져 있는 크리스천 이거든요. 근데 마음이 안타까웠어요.
결혼에 있어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순결이잖아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준비 중의 준비는 거룩이에요.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딱 하나만 요구하세요! - 성결!
그럼 오늘 우리는 성결할 수 있겠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완벽한 성결이 안 돼요.
우리가 거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염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 공로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피로만 우리는 정결하게 될 수가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거죠. 그것이 뭘까요?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나가는 거죠. 여러분 예수의 피로만 충분해요.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는 게 아니고
우리가 성결할 때, 우리가 깨끗한 신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무서운 말씀이 나오죠.
'주위의 경계를 정하고'.. 그 경계를 지켜라고 얘기하는 거죠.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마라,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여기서 산은, 시내산을 뜻합니다.
이 산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에 함부로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거에요.
그 경계를 하나님께서 설정해 놓으신 거죠.
여러분, 지켜야 될 선을 대표적인 대표적인 인물이 아담과 하와 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지 말라'
그게 경계선이었습니다. '너는 피조물이고, 나는 하나님이야!'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거대한 경계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그냥 인간이에요. 그 차이를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죄인의 차이를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비교할 수 없는 간격인데 말이죠.
여러분, 누가 참된 예배를 드립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누구신가를 알면 알면 알수록 예배는 더 깊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겸손은 무조건 마음을 낮추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누무엇인가를 바로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겸손이에요.
그때 인간의 경계선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거죠.
성도가 하나님의 그으신 경계선을 지켜갈 때,
그 경계선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날 세상에서 활개치는 무신론적인 문화들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보편적으로 '개인주의' 이게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개인주의는 그냥 개인주의가 아니에요.
우리가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있는 거거든요.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거에요. 이게 개인주의 입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조금만 간섭해도, 그를 죽이려고 그래요.
내가 하나님이 되어 있는 거죠.
그리고 자존심! 누가 내 자존심을 조금만 건드려도, 그를 죽이려고 그래요.
그냥 살기가 등등하고...
만약 지금 누가 여러분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여러분은 거의 대부분 다 여기를 박차고 나가실 거에요.
남아 있는 분이 별로 안 계실 걸요. 저도 예외가 아닐 거예요.
자존심을 건드리면..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사람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현대인들은 내가 왕이 되어 있어요. 내가 하나님이에요. 내가 최고에요.
내 좋은대로 살도록 나를 내버려 두라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이란 뭘까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내가 왕되는 것을 내려놓고.. 집에서도 누가 왕입니까?
오늘 우리가 누리는 축복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축복을 받을 만해서 입니까? 전혀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 택함을 받을 만한 어떤 특별한 조건을 가졌습니까?
아니에요. 아무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이 그냥 은혜로 그렇게 택해주신 거예요.
우리는 어떤 자격도 없어요. 어떤 공로도 없어요.
하나님 앞에 택함을 받을 만한 어떤 조건을 갖고 있지 않아요.
오직 자격 없는 우리를, 당신이 일방적으로 택해주시고,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소유되게 하신 거예요.
왜요? 답이 없어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나를 예수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까? 알 수가 없어요. 그분의 그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사랑이요, 은혜인 거죠.
▲마치는 말
그래서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우리가 붙들어 하는 것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뭐냐 하면
"하나님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특별한 관계로 불러 주셨던 것처럼
언약을 체결해주셨던 것처럼
오늘 신약시대에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예수의 이름으로
그분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특별한 언약관계가 된 거예요.
결혼관계, 부부관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셔야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존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를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예요.
그 믿음이 내게 왜 왔어요, 어떻게 왔어요? 알 수가 없어요.
오직 그분의 은혜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시고
그분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고,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 되어서
그의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은, 이제 그 분의 통치 아래, 그분의 다스림 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우리 인생의 결론은 그분의 손에 달려 있고
그분의 주관과 그 분의 통치 가운데 일어나는 거죠.
물론 이 관계는, 100% 순종하는 로봇이나 천사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으로서,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신부된 우리 삶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실패나 망함이 없다는 거죠.
물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간에 잘못하고, 범죄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 언약 관계가 멀어지고, 힘을 잃는 듯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혼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시내산 언약 체결 이후 약 1천년이 지난 후에는,
바벨론에게 송두리째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이 불에 타고, 나라가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 징계였지, 영원한 멸망과 파멸은 아니었습니다.
70년의 회개의 기간을 거친 후,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내산 언약을, 계속 지켜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출19장에서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을, 이스라엘과 체결하셨는데,
그 언약의 내용, 그 계약 내용은 구체적으로 출20장에 나오는 십계명입니다.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언약관계가 계속 지속되는 것이며,
그럴 경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이게 다 언약 조약의 내용이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죠. 십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런데 그 조약(언약, 계약)에는 '위반시 징벌 사항'도 반드시 뒤따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호의 손길을 자기 백성에게서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언약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언약에 체결된 대로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