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아주 짧은 기간이 되겠습니다만 새로운 시리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공보다 더 승리를 구하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고 역사할 수 있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으면 좋겠는데, 특별히 이번 시리즈 설교에는 참고서적 한 권을 여러분에게 추천하려고 합니다.
<가나안에 거하다> 라는 책입니다. 저자 이진희 목사님은 제게는 아주 친한 친구 목사님이기도 한데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지난번 "광야 시리즈" 책도 참 좋은 책이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전의 책들 <광야를 읽다>, <광야를 살다>도, 혹시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도대체 광야는 뭔지, 가나안은 뭔지.. 도대체 광야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곳인지.. 가나안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곳인지.. 이번 기회에 한번 명확하게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신11:12~15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신11:12~15
R A 토레이 목사님이 무디 성경학교에서 가르치실 때 신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신학생들에게 '자네들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으로 승리한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렇게 질문을 하셨다고 그래요.
뭐 여러 가지 대답이 있었지만 어느 신학생이 토레이 목사님의 마음에 딱 드는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레이 목사님이 대단히 기뻤어요. 정말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거든요.
그러면서 목사님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네 대답이 옳지만, 그러나 자네가 말씀을 붙잡는 것은 한계가 있다네. 말씀이 자네를 붙잡아야 하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실제로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면.. 항상 좌절이 있습니다. '안 된다. 힘들다. 어렵다.' 이렇게 돼요.
근데 말씀이 나를 사로잡아 버리면 그러면 말씀대로 살아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성령의 충만한 역사'라고 하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였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말씀이 나를 사로잡는 거죠.
저는 이번 시리즈 설교 중에, 말씀이 여러분을 사로잡는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고 말씀대로 살고 싶고, 말씀대로 살 수 있다고 믿어지고 말씀이 너무 달게 느껴지고, 계속 그 말씀이 생각나고...
이 성령집회 시간만 아니고,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도, 내일 아침에도 계속 그 말씀이 기억나는.. 이게 말씀이 나를 사로잡은 거죠. 그래서 이런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갈급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요즘에 여러분 중에는 광야를 살아가는 심정이신 분들이 꽤 많으실 겁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겹쳐있기 때문에 '아~ 나는 지금 광야 길을 가는 것 같아!' 그런 마음이신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그런 분들은 자연히, '빨리 광야기간이 끝나고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나도 들어갔으면..' 그런 마음을 가지시게 되죠..
그런데 한 가지 여러분에게 꼭 부탁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나안 땅에 오해가 있으면
그러면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데도 계속 광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나안이, 왜곡된 가나안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미 가나안 땅의 삶을 주셨는데도 계속 방황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예요.
어떤 경우냐면 '가나안은 문제도 없는 곳, 이런 고통스러운 어려움도 없는 곳, 거기는 아주 풍족한 곳,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곳' ... 그걸 가나안 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야는 어려움이 많은 곳,
가나안은 문제가 아니라 다 사라진 곳, 아주 풍요한 곳 ..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은 가나안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광야에서도 제대로 이겨나가지 못하고, 가나안에서도 계속 실족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행복하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 가나안 땅' 하면서 하나님 약속하신 땅에 그들이 들어갔는데도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지는 못했어요. 사사기를 보십시오. 가나안에 들어가서 오히려 엉망이 되었어요.
그 문제를 한번쯤 정확하게 짚어봐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신자들이 주님을 영접하고나면 주1) 그러면 이제 고생 끝! 뭐 이제는 어려움도 없고, 모든 게 편안하고 모든 일이 잘 되고, 잘 풀리리라고.. 왜냐면 가나안에 들어왔으니까..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어려운 일은 많았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때 그 가나안 땅은, 광야보다도 훨씬 더 어려움이 많은 곳이었어요.
광야생활이 어려울까요, 가나안 땅에서의 삶이 어려울까요? 따지고 보면 가나안 땅에서의 삶이 더 어렵습니다.
광야에서는, 자기 땅, 자기 집이 없었을 뿐이지 아침에 만나가 내리지요. 그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하나님이 정확히 길을 인도하시죠.
사실 지나는 곳이 광야고, 어디에도 내 집은 아니니까 그런 점이 좀 늘 피곤한 느낌이지만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사는데 있어서는 명확한 곳이에요.
그런데 가나안 땅은, 거기서 정착을 해서 농사를 짓게 되지만 그때부터 거기 가나안 족속과 싸워야 돼요.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사람이에요. 그때 당시에 가장 지구상에서 문명이 발달된 곳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서울이죠. 모든 문화 혜택이 다 있고, 경제적인 모든 부가 다 집중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가장 첨단 문화와 문명이 있는 곳이 갈대아 우르였어요.
근데 하나님이 그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곳에 인도해 가셨는데, 거기가 가나안 땅이에요.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데려다가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게 하셨다 그러면 가나안 땅이, 갈대아 우르보다 훨씬 좋은 곳이어야 되잖아요. 그래야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더니 복을 받았다' 이런 간증이 나오는 거죠.
그런데 갈대아 우르에서 너무 풍요하고, 그리고 당대 최고의 문명세계에서 살던 아브라함을 이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서 정착하게 한 곳이 어디냐면 헤브론이에요.
헤브론은 해발 8백 미터쯤 되는 아주 높은 산악지대입니다. 거기는 나무 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는 돌산이에요. 그런 곳에다가 아브라함을 옮겨놓고 '여기가 내가 너에게 줄 땅이다' 참 아브라함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런데다가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기근이 일어났어요. 그것도 아주 심한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기근을 피해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갔는데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여기가 내 땅이라고 했는데 애굽으로 갔던 게 아니고..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도무지 가나안에서는 살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기근이 들면 먹을게 없는데, 돈이 있어도 양식을 살 수가 없어요.
워낙 양식 자체가 그 땅에 적으니까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이, 자기 가족들, 동족들도 제대로 먹을 게 없는데 아브라함은 나그네입니다. 그 나그네한테 식량을 줄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그 가나안 땅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요. 살아보려고, 버텨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애굽으로 피난을 갑니다.
창12: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거류라는 말은, 일정 기간 머무는 것을 뜻합니다. 영구 이민은 아니고요. *구르, sojourn
그래서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날 때, 아브라함은
'내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잘못된 음성을 들었나봐'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좋은 곳에 데려가는 줄 알았더니 와 보니까 세상에! 살 수 없는 곳이네!'
그러고 보니까 그 옆에 애굽이, 거기가 굉장히 좋은 땅이 있는 곳이라서 '차라리 애굽에 가서 살아야되겠다..' 그리고 애굽으로 갔다는 겁니다. 일정기간 이라도요.
△애굽이라고 하는 곳이 어떤 곳이냐 하면 여러분이 쉽게 생각하는 그 가나안(축복의 땅이란 의미)과 같은 곳이에요.
아브라함이 그 애굽으로 이사를 가요. 가나안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그 기근때문에 애굽으로 피난 내려가서 잠깐 거기 머물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괜찮은데 아브라함이 너무 오래 거기에 머물렀는지 바로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십니다.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고 까지 하죠. 이런 당황스러운 사건을 만나고야 아브라함이 기겁을 해서 결국 바로에게 거의 쫓겨나다시피해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아브라함은 아마 그냥 애굽에서 계속 눌러 살았을 겁니다. 그 정도로 솔직히 가나안은 별로 가서 살고 싶은 곳이 아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바로 왕의 무자비한 핍박, 심지어 아들을 낳으면 바로 죽임을 당해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요? 노예 취급을 당하고, 아들은 낳으면 바로 죽임을 당하니
그들이 출애굽을 하긴 했는데, 만약에 그 정도가 아니었다면 처음에는 바로 왕이 회개하고 마음을 바꾸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자기들이 애굽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미 그 땅에서 여러 대를 이어 내려가면서 정착해서 살았어요. 재산도 그들이 거기서 축적했고, 그리고 삶의 기반도 마련하고 무엇보다도 살기가 좋은 땅이었어요.
애굽의 나일 강 하구 삼각주의 비옥한 곳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곳입니다. *고센
근데 도무지 거기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 바로 왕이 자기들에게 너무 중노동을 시키고, 아들을 낳으면 그 즉시로 죽여 버리니 그러니 결국 모세가 '우리는 애굽을 떠나야 된다' 말할 때 정말 눈물로 그 땅을 떠났던 거죠.. 좋아서 떠났던 게 아닙니다. 가나안이 애굽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떠난 게 아니에요.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떠난 거죠.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거죠? 물론 성경에,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런 땅도 일부 있어요. 가나안 지역에.
지중해 연안에 있는 평지, 그리고 요단 강변이죠. 그렇지만 지중해 연안은 블레셋이 장악해서 이미 터를 닦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자리 잡은 곳은 산악지역이에요. 그 산악 지역은 그대로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오는 동안에 그들이 거쳐왔던 그 땅들만큼 거친 곳, 광야, 거기가 가나안 땅이에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험한 곳인데도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까닭이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줄 땅을 정하셨고,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그 땅을 정하신 거에요. 그리고 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들인 겁니다.
신명기 9: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두 가지 약속을 주셨는데 -하나는 후손에 대한 약속 후손은 '네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너희의 자녀들이 앞으로 큰 민족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땅에 대한 약속이에요. '너에게 영원한 기업인 땅을 줄 것이다'
근데 애굽에서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룹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는 벌써 이루어졌죠. 큰 민족이 이루어진 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땅으로 그들을 이끌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출애굽을 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약속하신 것을 지키려고 택하신 땅이라면,
이왕이면 갈대아 우르보다, 또는 애굽보다 더 좋은 땅을 정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정하신 그 가나안 땅은 너무 평범한 땅이에요. 평범하다 못해서 오히려 거의 광야같은 느낌이 드는 척박한 땅입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이스라엘의 유대 광야를 지나가게 되면 다 아마 느낌상, 우리 한국에서는 그렇게 거친 땅을 거의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런 곳을 주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데는 굉장히 중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왜 택하셨을까요?
그 이스라엘 백성이 잘나서, 뛰어나서, 강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선민으로 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으니까' 택하셨을까요?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난 다음에 믿음이 자랍니다. 그가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 못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냥 은혜로 택하신 거예요. 아무 이유 없이, 너무 평범한 사람을!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은, 아주 작은 민족이기에 택하셨다고 하셨어요. 신7:7 그러니까 하나님이 고르고 고르다가, 아주 작고 약한 민족 하나를 택하신 게 이스라엘이에요.
똑같이 땅도 그렇게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전세계에 여러 좋은 땅들을 많이 보실 텐데 근데 하나님이 '가나안 땅이다!' 이렇게 택하신 그 땅은 지극히 평범한 땅,
위로 메소포타미아, 아래로 애굽 땅에 비하면 누구도 탐내지 않는 그런 땅, 그 땅을 하나님은 '이 땅이다!' 이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쭉 이끌어 오셔가지고 '너에게 줄 땅은 여기야!' 이렇게 정하셨다는 거에요.
▲여러분, 잘 이해가 안 될 만한 내용이긴 합니다만,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이, 내가 특별히 잘나서, 뛰어나서, 강해서가 아니고 그냥 나를 아무 조건도 없이 나를 택하셔서, 나를 사랑해 주시는구나!' 그게 어떻게 믿어져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 뭔가 조건이 있으니까 택하는 거거든요. 뭐가 잘났으니까 택하는 거거든요.
못난 사람을 일부러 택하고, 평범한 사람이 일부러 택함 받는 게 우리 삶 속에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택하여 주신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세상 사람들은 나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귀하게 여기실까?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땅을 보면 '와 그렇게 하시겠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잘나서 택한 게 아니고, 오히려 약해서 택하셨죠. 신7:7
'가나안 땅이 좋은 땅이라서 택하신 게 아니고 너무 평범하고 거친 땅이니까 오히려 그 땅을 택하신 것을 보니까, 나도 그렇게 택하셨겠구나...'
물론 여러분 중에 좀 잘나신 분들은, 오히려 더 거꾸로 시험이 될 수도 있겠죠.. '아이 하나님, 그래도 뭔가 좀 비교적으로 잘난 사람을 좀 택해 주셔야 나 같은 사람을 좀 택해 주셔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자신을 가만히 따지고 보면 다 자기 자신에 대한 좌절감과 실망이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나는 진짜 못됐어, 나는 의지도 약해, 믿음도 없는 것 같아! 하나님 앞에 뭐가 제대로 내가 쓰임 받을 존재가 못돼, 늘 하나님께 실망만 시켜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