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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밀턴 쇼 이야기

LNCK 2022. 1. 24. 18:16

William Hamilton Shaw 안승병해설 - YouTube

◈윌리엄 해밀턴 쇼 이야기

William Hamilton Shaw (1922~1950)

 

625 전쟁 참전군인중 윌리엄 해밀턴 쇼 William Hamilton Shaw 라는

미 해군 대위가 있었습니다.

한국 이름은 서위렴徐煒廉 이라는 분입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에 온 선교사 윌리엄 얼 쇼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납니다.

평양 외국인 학교를 다녔고, 그래서 한국 선교사로 온 부모님 덕분에

한국어도 잘하게 되었고,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미 해군에 입대하게 되고, 2차세계대전 때는 노르망디 상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47년에 전역한 해,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해양경비대 사관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어

생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교관으로 근무한 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게 되고

이제 졸업을 8개월 앞둔 때 625 전쟁이 한국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윌리엄 해밀턴 쇼는 한국 파병을 자원합니다.

그리고 미 해군에 다시 재입대합니다.

 

조금만 있으면 이제 박사과정을 졸업하게 되고, 또 결혼도 한 상태인데

한국 파병을 자원한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의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내가 어떻게 공부만 할 수 있겠나요?

지금 한국인들이 전쟁 속에서 자유를 지키려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내가 지금 도우러 가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린 후에

선교사로 가려는 것은 제 양심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자라나서 한국 지리에 능통했기 때문에

해군 정보장교로 임명되었고,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해군 정보 장교로서

인천상륙작전에서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어쩌면 이름은 맥아더장군이 더 알려져 있지만

윌리엄 해밍턴 쇼의 헌신이 없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이후에, 그는 계속해서 전쟁터에 남아서

서울탈환작전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1950년 9월 22일 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녹번리 전투에서

매복 중인 인민군들의 공격을 받고 전사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28 세였습니다.

 

쇼 대위는 선교사 부모님과 함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묻혀 있습니다.

2010도에 은평감리교회의 헌신으로, 은평구 평화공원에

이 분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그는 선교사 아들로서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뿐인데

한국을 '나의 조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헌신을 했습니다.

 

그는 625 전쟁의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중보기도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직접 파병을 자원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헌신을 하게 만들었을까요?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는, 이런 헌신은 불가능한 것이죠.

 

부모님이 한국 선교사로 헌신한 것이

자신의 인생과, 이 한국과 어떤 언약으로 맺어진 '한 공동체'라는 의식이 없었다면

이런 헌신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냥 빈말로 '한국이 나의 조국'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겠죠.

 

저는 인천상륙작전의 승리의 기적은, 이런 윌리엄 해밀턴 쇼와 같은 분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결과라고 믿습니다.

 

이분의 부인 Juanita Robinson Shaw 은, 후에 서울로 돌아와 이화여대 교수로 섬겼고

또 아들은 서울 법대 교수로 섬겼고

손자는 오산에서 공군 장교로서 대를 이어 한국을 섬겼습니다.

 

귀한 윌리엄 해밀턴 쇼와 같은 분의 헌신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나라 민족의 기적같은 역사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헌신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재훈 목사 설교에서 2019.03.10.

 

◑잊지 말아야 할 사람 윌리엄 해밀턴 쇼

 

숭고한 한국 사랑과 거룩한 희생!

한국 해군과 해병대 창설에 공헌한 미 해군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 한국명 서위렴(徐煒廉) 2세.

 

6.25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었음에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미 해군에 자원 입대하여 서울 탈환 작전 중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29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하였습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로 나가면 '은평평화공원'이 있습니다.

아담한 녹지 공간에 울창한 숲과 장대한 소나무, 푸른 하늘이 싱그럽습니다.

이곳에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의 동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월리엄 헤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서 일생을 보낸 윌리엄 얼 쇼 선교사의 외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양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웨슬리언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미 해군에 입대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한 후

1947년 한국 근무를 자원하여,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초창기 한국 해군 지휘관 양성에 기여했습니다.

 

전역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에 있던 중

한국에 6.25 전쟁이 일어나자 장교로 재입대하여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며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서울 탈환작전의 선봉으로 진입하여 김포반도, 행주산성, 신촌 노고산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녹번리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안타깝게도 전사하였습니다.

1950년 9월 22일, 그의 나이 28세였습니다.

 

6.25 전쟁 참전시 먼저 공부를 끝내라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참전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나도 한국 사람입니다.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2010.6.22일, 서울 은평구에서는

한국전쟁 60주년과 윌리엄 해밀턴 쇼 사망 60주년 추모식을 맞아

그의 거룩한 희생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후세에 널리 알리고,

​역사적 참배 현장이 될 수 있도록

 

은평구 녹번동에 '은평평화공원'을 조성하고,

​고인의 동상 제막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윌리엄 해밀턴 쇼의 부인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이화여대 교수와 세브란스병원 봉사자로 헌신하였습니다.

 

아들과 며느리 또한 하버드대에서 한국사 박사학위를 받고 내한하여

장학 사업과 한·미 학술 교류에 힘썼습니다.

동상의 좌대 한 면에는 윌리엄 해밀턴의 가계도가 아래와 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부친] William Earl Shaw(1890.8.22~1967.10.5)

•한국, 필리핀에서 다년간 선교사 활동

•1967. 10. 5 스탠포드병원에서 별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

 

[모친] Adeline Hamilton Shaw(1895~1971)

•남편과 선교사 활동, 숭덕여고 교사

•1971.5.8 캘리포니아에서 별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

 

[본인] William hamilton Shaw ㅡ

•한국 해군사관학교 교육 체계 정립에 기여

•6.25 자원입대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작전 참가

•1950.9.22 녹번리 전투에서 전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

 

[처] Juanita Robinson Shaw

•1963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의료사회봉사학과 신설

•1968. 한국을 떠나 미국 Ohio에서 살고 있음(2010.6.16. 당시)

 

[장남 William Robinson Shaw(1944-1993)

​ •하버드 동아시아역사와 언어학박사

•서울대 법대교수(1981~1982)

 

[차남] Sephen Richard Shaw

•1949 ~1967년까지 한국에서 성장

•​미국 Ohio주 법원판사 ​

 

[자부] Carole Cameron Shaw

•저명한 미국 작가

•주미한국대사관 기록보관소 연구원

 

*출처: https://rbrockett2000.wixsite.com/gaskillfamily

 

1956년 월리엄 해밀턴 쇼 대위에게 한국 정부는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는 은성훈장을 추서를 했습니다.

월리엄 해밀턴 쇼 대위와 부모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역에 안장이 되어 있습니다.

 

​월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흉상은

해군사관학교 통해관 학술정보원에도 제막되었습니다(2014.9.29)

 

아버지 윌리엄 얼 쇼 박사는 아들이 전사한 이후에도 계속 한국에 남아

교수로 활동하며 인재 양성에 힘썼고, 이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아버지와 아들, 윌리엄 얼 쇼와 윌리엄 해밀턴 쇼 부자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묘지 ‘제2묘역 라-6’에 나란히 안장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