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 인생에 '지금' 이라는 상황. '지금' 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here and now 지금 여기가 나의 인생에 최고의 기회인 것을 모르고 사는 거예요.
'아뇨, 저는 제 인생의 세팅을 조금만 바꿔 줘 보세요.' 그래서 바꿔졌다고 칩시다.
'아니요. 그것도 아니고, 이렇게 바꿔보세요. 저렇게 바꿔보세요.' 아무리 바꿔도 하나도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냥 '나'라는 인생이 지금 굉장히 힘들다.. 그걸 그냥 솔직하게 인정을 하세요.
'하나님, 나의 인생이 이 상황을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할렐루야,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애굽에 있든/ 광야에 있든/ 약속의 땅에 들어가든 아무 상관없어요. 어디에 있든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자 사실 우리의 인생을 좁게 보면 지금은 팬데믹 기간이라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그러나 거시적인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은혜, 그리고 성령강림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죠.
이제 봄이 오고 벚꽃을 피고 있는 시즌입니다. 벚꽃도 그 절정, 완전히 만개하는 딱 그 타이밍이 있잖아요. 며칠 가장 아름다운 때! 그걸 놓치면 못 보는 거죠.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은, 그냥 흘러가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에 허무한 것입니다.
까르페 디엠 이라고 하죠. 그 시간을 붙잡아라! 그 시간을 붙잡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Seize the time, seize the day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매 순간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가장 복된 순간으로 살아가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고후6: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자 사도 바울이 이 좋은 은혜시기에 그러면 본인은 어떻게 사는가? 살펴봅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표현을 썼어요. 이것을 만약에 현대인들이 읽으면 '나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는 인생이 되고 싶지 않다.' 이런 뜻일까요?
우리 중에 성격이 좀 깔끔한 사람들 있잖아요. 약간 개인주의적이고, 관계의 거리를 항상 두는 그런 유형, 남에게 누를 끼치기 싫아하죠.
바울은 물론 그런 유형이 아니었죠. 그럼 왜 이런 말을 했는가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내가 걸림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뜻이에요.
걸림돌 그래서 성경에서는 스텀블링 블록 stumbling block 사람이 길을 가다가 돌에 걸려서 쿵하고 넘어지게 하는 그런 돌멩이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한다거나 아니면 교회들이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비난을 당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데 있어서 큰 장애를 일으키게 되는 거죠.
사도 바울이 일관되게 복음사역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게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 고린도전서 9장입니다.
고전9:19~20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분 사도 바울이 거의 반평생을 유대주의 바리새파의 최고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했던 사람이에요.
근데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방인의 사도'가 됐잖아요. 이방인들에게 '율법지키지 않아도 당신은 구원받는다' 이거 얘기했잖아요. 이게 될 법한 얘기인가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은 반평생을 율법으로 철저하게 훈련받은 사람인데 그걸 내려놓은 거예요. 이게 복음을 증거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나는 과감하게 버리겠다. 복음의 본질을 전하는 데 있어서 자기를 변신하는 것, 자기를 내려놓는 것, 자기를 희생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선교역사에서도 자주 이런 반대적인 잘못들이 일어났었어요. 오직 복음의 진리를 전해야 되는데, 복음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함께 전해지는 거죠.
그래서 어떤 교회는 주일날 예배순서가 있잖아요. 그 예배 순서 하나를 바꾸는데 당회에서 몇 달을 논의를 하다가 결국에는 못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보통 주일날 지키는 전통적인 교회 주일 예배순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예배규범에서 나온 거거든요. 그것은 17세기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문화적인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의 문화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의 문화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죠.
△제가 파파뉴기니에 오래전에 한 40여일 가서 선교사님들하고 원주민들하고 같이 지낸 적이 있었어요. 근데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굉장히 감동을 받은 게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은 것도 없는데 너무나 이 소리가 하모니를 잘 이루는 거예요.
기계음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서로의 소리에 민감하잖아요. 그러니까 서로의 소리에 화음을 내는 법을, 그냥 내추럴하게 배운 거예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화음을 내는데 와~ 천상의 소리를 듣는 것 같은 그런 찬양이었어요.
근데 또 한 가지는, 어떻게 보면 작은 거지만,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어요.
아주 덥고 습한 곳이거든요. 그런데 주일날 안내위원하고 헌금위원으로 섬기는 마을 청년들을 보니까 정장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난 거예요.
엄청 덥거든요. 평상시에 반바지 하나 입고 웃통도 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여러분 그것은 서양 문화에서 어떤 경건을 표현할 때의 문화적 양식일 뿐인 거지 기독교 복음의 본질이 아닌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문화적으로 전수했다는 거죠. 그게 아니라 그들 나름의 전통복장을 입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자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전해야 됩니다. 목회자들이나 사역자들도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목회자들도 어떤 분들은 설교를 잘하고, 단 위에서 기도인도도 잘하고, 찬양인도도 잘하는데 별명이 '내려오지마' 입니다. 단에서 내려오지마 입니다. 단 위에서는 은혜로운데, 내려오면 사람들을 너무 시험들게 하는 거예요.
제가 밴쿠버에서 5년 목회사역했는데 교회연합회에서 일년에 한번씩 큰 연합집회를 했어요. 그러면 외부에서 강사목사님을 초빙하는데 늘 고민이 그 양단간에 있었어요.
말씀을 예리하게 강력하게 전하시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내려오지마'이신 분들이 꽤 계셨고,
또 반대로 강사로 오셔서 참 이민교회 목회가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목회자들을 많이 격려해주시고.. 이런 분들은 그냥 편안한 성격이신 만큼, 메시지도 그냥 편안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늘 그 갈등이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왜 우리는 복음이 온전하게 전달되는데 있어서 삶의 통로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세상과 똑같이 교회에도 결과주의에 빠져 있고, 업적주의에 빠져 있다 보니까 그냥 퍼포먼스만 잘하면 되는 거예요. 삶에서 그 복음을 어떻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느냐? 이건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청년들도 마찬가지죠. *청년 대학부 설교 '내가 공부 잘해서, 내가 직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승진해서 지위가 높아지고 그렇게 해서 내가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 이런 단순 논리에 빠지잖아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짓밟고,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고.. 합니다.
'근데 그런 과정과 삶에 있어서 내가 거리낌이 되거나 비난 받을 만한 일이 있으면 안되겠다..' 라는 이 사도 바울의 본문 3절의 고백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요?
그런데 그거를요 다 페어플레이하면서, 반칙 안 하면서, 나쁜 짓을 안 하면서 그렇게 올라가고 승진하는 게 훨씬 더 어렵거든요. 두 배 세 배 어렵거든요.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 길을 갔고, 그리스도께서 당연히 그 길을 가셨고 우리도 그 길을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절을 정리를 하자면, 성도들에게는 은혜를 누리라고 말을 하고 그러나 바울자신은 은혜를 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 스스로 절제의 삶을 살겠다' 이런 고백이에요.
이게 목회자의 심정이고, 선교사의 심정이고, 부모의 심정같은 것이죠.
바울자신은, 이 좋은 은혜를 체험하자마자, 이걸 나누기를 원했어요. 복음이 전달되는 통로가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은혜란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은혜의 걸림돌이 아니라, 은혜에 디딤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복음의 하이웨이를 만들기 원했어요.
과연 나는 은혜의 디딤돌로 인생을 사는가 아니면 걸림돌로 인생을 사는가?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복음을 일 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 단 한 사람에게도 전하지 않은 복음의 꽉 막힌 막다른 골목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가? 고인 물로 살고 있는가?
여러분, 은혜가 흘러가야지, 흘러가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요. '예배되는데 요즘 왜 이렇게 감격이 없지? 찬양팀이 은혜롭게 찬양을 안 하나?'
아니에요. 예배에 감격이 없는 이유는, 은혜가 여러분 안에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에요. 은혜가 고여있기 때문이에요. 막혀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에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고 복이 주어졌는데 이게 흘러가지 않잖아요. 내 속에서 적체되잖아요. 그럼 영적인 동맥경화현상이 나타나는 거에요. 이거 터지잖아요. 큰일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날 현대 크리스천들이 많은 복을 누리고 엄청난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은혜가 외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영혼이 속에서 침체에 빠지고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거예요.
△창39장을 보면, 요셉이 종살이 옥살이를 13년 가량했는데 '그가 형통했다'고 성경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보통 상식적으로 종살이를 하는데, 감옥에 갇혀있는데 그의 인생이 형통하다고 이야기하냐고요. 아니죠. 꽉 막힌 인생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럼 하나님이 이야기하시는 형통함 이라는 게 뭔가요?
요셉이 손대는 일마다 잘 되고,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고 요셉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잘 되고.. 요셉을 통해서 그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흘러가는거에요. 할렐루야!
그러므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의 기준과 관점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내가 사회에서 지위가 이렇게 밖에 안 되는데.. 직장도 변변하지 않은데.. 내가 직장에서 이제 말단 인데.. 아니 내가 실적이 이거밖에 안 되는데.. 내가 무슨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겠는가?' 아니에요.
그것은 여러분의 사회적인 지위나 배경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의 복이 나를 통해서 흘러가는가? 하나님의 생명이 나를 통해서 흘러가고 있는가?
그런데 여러분이 스스로 그것을 꿀꺽삼키고 자제하고 '나는 은혜의 통로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야, 위치가 아니야' 라고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지고, 영적으로 자기를 낙인찍어 버리면 통로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막혀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내 속으로 안 들어오는 거예요. 왜요? 막혀있으니까!
'내 인생'이라는 영역에 공간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우리는 절대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고요. 우리의 내면세계도, 우리의 인생이라는 공간도 한정적인 공간인데
하나님이 이미 부여주신 은혜가 있는데 이게 흘러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원망하는 거죠. '왜 나를 계속 은혜를 안 부어주느냐?' '흘러나가지 않지 않느냐?'
여러분 수도꼭지가 상수원에서 물이 흘러들어올 때 물을 공급받아서 내가 50%는 따로 챙겨 두고 50%만 흘려보내야지.. 이렇게 하나요? 아뇨. 다 쏟아 붓는 거잖아요.
하나님 주시는 대로 다 쏟아부으세요. 아끼지 마세요. 아낌없이 다 쏟아 부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100%를 부어주실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한 삶의 관점과 태도와 결단을 갖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진 은혜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복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은혜를 끊임없이 소통하고 유통하는 것입니다.
안 되면 카톡으로라도 유통하는 것입니다.
◑2.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고후6:4~5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꾼들로 지냅니다.)
네 '하나님의 일꾼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본문이에요. 근데 승리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 '축복의 통로'라는 찬양을 많이 부르잖아요. 그래서 축복의 통로를 굉장히 좋아하잖아요.
그럼 우리가 축복때문에 좋아할까요, 통로때문에 좋아할까요? 축복때문에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통로가 되어야 축복의 계속 들어오는 것이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구절을 다들 좋아하는데, 뒷부분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내 삶의 우선순위 가치관 목록에, 최상위에 둘때 그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이야기죠.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 반드시 승리를 보장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께서 기도할 때 이 포인트를 아셔야 돼요. '하나님, 지금 급한데 제 일을좀 도와주세요.' '내가 네 일을 왜 도와줘야 되니?'
'하나님 그래도 제가 '하나님의 사람'이잖아요?' 이렇게 기도하기가 양심이 꺼려지죠. 본인이 이렇게 기도하기에는, 스스로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게 돼 있어요. 자기가 평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하나님, 제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이 일은 정말 하나님의 일로 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그렇게 자기를 헌신가운데로 던지잖아요. 자신의 삶을 드리면
그 일이 내 비즈니스가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 되는 순간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시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기도하는 관점자체를 바꾸셔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할 때 '하나님, 제 인생을 하나님께 헌신하겠습니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저 세상 끝에 선교지로 보낼까봐..' 염려하는 분이 있는데,
아무나 거기로 보내주는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 정도 영적 성장이 되고, 감당할 만한 수준에 올라가야 보내는 거지.. 대부분 사람들은 안 보내십니다. 자기가 가고 싶어해도!
그리고 '제가 인생의 어떤 것도 감당하겠습니다.' 그러면 욥처럼 고난받을까봐 그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인생의 어떤 것도 감당하겠습니다.' 이런 기도도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아무나 시켜주지 않아요. 상당한 수준에 올라간 사람만 욥처럼 시험하시는 거죠. 여러분 대부분은 아마 욥처럼 시험받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과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구별하면 그 다음에는, 내 인생이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소속이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책임지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많더라는거죠. 4~5절에 9가지가 나오는데, 한 마디로 통칭하면 '인내, 참음'인 것이죠. 사도바울은 세 가지씩 얘기했어요.
고후6:4~5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1) 환란과, 궁핍과, 곤란이 첫번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반드시 영적인 역풍이 있게 돼 있고 환란을 겪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내가 해결할 만한 신앙적 자원(내공)이 궁핍한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이 곤란해지는 거죠. 그래서 외적으로 주어지는 일반적인 어려움세 가지를 처음에 이야기를 했고요.
2) 그 두 번째는 5절에, 매 맞음과, 감옥에 갇히는 것과, 난동입니다.
첫 번째는 영적인 어려움이고 상황적인 어려움이었다면, 두 번째는 당신 하이나님의 일꾼으로 결단하는 순간 반드시 대적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모함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나타날 거라는 거예요.
3) 세 번째는 수고와, 불면과, 허기짐입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는, 누가 시켜서 당하는 어려움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주의 일꾼으로 결단하고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려움이에요.
사도 바울이 그러니까 굉장히 스스로 수고를 많이 했던 사람이잖아요. 누가 그에게 밤새 집회하라고 얘기 안 했잖아요. 근데 밤새 강론하다가 얼마나 늦게까지 강론을 했는지, 한 청년이 3층 난간에 앉아 있다가 난간에서 떨어지잖아요.. 그 정도면 각성하고 그만하셔야 되는데, 또 끝까지 날이 새는 새벽까지 집회를 하셨어요. 행20:11
또 텐트메이커로 장막만드는 일을 해서 스스로 사역비를 충당하면서 고생을 했어요.
△제가 이번에 <보라 통독>이라는 책을 집필하느라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니까 제 마음 가운데 '사람들이 성경을 정말 쉽고, 깊이 있게 이해했으면 좋겠는데.. 이 좋은 말씀을 사람들이 잘 깨달을 수 있는 가이드 북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이게 포기가 안 되니까요.
책을 다 써놓고, 혹시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될까봐다. 문장을 서술문으로 다 바꿨어요. 문장을 다 바꿨습니다. 두 번째 쓴 셈이죠.
그런데 서술문으로 다 바꿔놓고 보니까 백과사전 같은 거예요.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또다시 또 주제별 영역별로 박스로 만들어서 다 다시 정리를 했어요. 세 번째 썼습니다.
누가 시켜서 당하는 어려움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주의 일꾼으로 결단하고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려움이 우리 삶에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드리는 거에요.
제가 새벽에 나와서 맨날 밤 열두시에 들어가면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도대체 시내산에서 언제 내려올 거냐고?' '모세는 사십일, 사십일 해서 80일 만에 내려왔는데 도대체 당신은 시내산에서 언제 내려올거냐?'
저처럼 이렇게 일에 매달리는 사람은, 기질 때문일까요? 아니면 일중독에 빠진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최고의 가치에 나를 투신하다 보면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수고와, 불면과, 허기짐'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고후6:5
△말이 나온 김에 잠시 제 기질 한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굉장히 심한 우울질이었어요. 자살 충동이 아주 심했고요. 그래서 우울증, 우울질인 사람들은 제가 충분히 그 마음을 공감합니다.
그렇게 우울한 인생을 살다가, 제가 성경을 통독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거든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내 안에 정말 저 영혼의 밑바닥에 있는 그 구정물들이 다 쏟아져 나오고, 토해내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됐어요. 할렐루야!
그래서 저는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해서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야 된다는 평생의 책임감이 있거든요. 그 사명감때문이에요. 그래서 아내에게 핀잔을 들으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면 불굴의 의지가 생기게 되어 있어요.
어떤 분들이 이렇게 반문할지 몰라요. '목사님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니어도 세상의 물질, 세상의 명예, 권력.. 이런 거를 위해서도 불굴의 의지로 사람들이 투신하던데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허무해지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인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허무해지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영혼은, 세상 모든 것을 합쳐도 더 가치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온 세상을 다 주어도, 살 수 없는 한 영혼 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이게 성경적 표현이에요.
한 영혼때문에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러니까 나보다 열등한 가치를 위해서 내 영혼을 팔고, 내 인생을 쏟아부으면 반드시 그 인생은 허무해지게 되어 있어요.
상대적 가치를 위해서, *세상 가치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내 영혼을 바치잖아요? 그러면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영적인 에너지가 연료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는.. 멈춰설 수밖에 없는 시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 복음으로 한 영혼을 살리는 것! 그것이 인생에 가장 가치있는 일인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얼마나 거짓말이 심각합니까? 인본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 퇴폐주의, 허무주의, 물질만능주의.. 얼마나 많은 거짓말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여서 그 사람들에게 온전한 해방을 주는 것!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자유해야만 다른 사람을 자유케 해주는 거예요. 내 안의 은혜가 넘쳐야, 그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거예요. 내가 복음으로 행복해야, 옆에 사람도 행복하게 해주는 거예요.
저는 우울질로 태어났고, 성경에 관심이 없었지만 어느 날 하나님이 성경에 제 눈을 열어주셨고 그리고 이걸 (성경 연구 및 티칭) 하는게, 저의 평생의 소명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 목숨을 걸고 낮이나 밤이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사명을 발견하셨습니까?
▲고후6:6~7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자 4~5절에서 9가지 어려움을 열거했어요. 그리고 나서 6~7절에, 그 반대편의 9가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바울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건
4~5절과 6~7절 한가운데 지금 바울이 서있잖아요.
여러분이 어느 자리에서든지, 어떤 직종에서든지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 딱 결단하고
'내가 뭘 하든지 하나님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이 비전과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는 순간, 우리도 이렇게 살게 되어 있어요.
왼편에는 4~5절의 삶이 있고, 오른편에는 6~7절의 삶이 있는 거죠.
그 중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쉽게 표현한다면, 세상의 공격(4~5절)과 하나님의 공급(6~7절)입니다.
공격과 공급, 이 두 가지가 여러분의 삶에 명확한 현실이 된다고요.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나는 그렇게 영적인 공격도 안 받는 것 같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이 그냥 포로수용소에 갇혀서, 원수가 주는 배식 받아 먹으면서 살기 때문에 그래요.
원수가 굳이 그를 공격할 필요가 없어요. 가만히 나눠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아요.
근데 여러분이 딱 결단하고 바위처럼 일어나서 적진에 도전하며 싸우잖아요.
그러면 원수가 그를 가만 두면 안 되거든요.
그러면 4~5절이 왼편에, 6~7절이 오른편에 둘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결단하고 목숨 걸고 사역하잖아요. 그를 가만 두면 안 되거든요.
이제 마귀의 집중 타겟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공급도, 분명하게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사역으로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기름 부으심을 주십니다. 언노인팅을 경험하게 되어 있어요.
그분이 그분의 프로젝트에 나를 부르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분이 어노인팅을 공급해주시는 거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명확하게 살겠다.. 그러면 영적으로 양쪽으로 쫙 갈라집니다.
한편으로 영적 공격이 아주 분명해지고요.
한편으로 하나님의 공급이 아주 분명해집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도 바울이 극단적인 양극단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된 거예요.
그러나 결국은 승리입니다. 놀라운 승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국대)로 살아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멘!
◑승리하는 성도가 겪게 되는 양극단
▲8~10절,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대표주자가 되는 순간
영광과 욕됨 (비난과 칭찬) 이 양극단을 항상 경험할 것입니다.
대충 살지 않고, 타협하면서 살지 않고
분명하게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 그러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게 돼 있어요.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고..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욥이 하나님 나라의 대표주자로 사단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삶을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욥의 인생이 하나님 나라에 대표선수가 되는 순간, 국대가 되는 순간,
(여러분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게 모든 운동 선수들의 간절한 소망이요, 큰 명예입니다.
우리도 그런 국대의 소망을 가져야 되요!)
그런데 이런 국대(국가대표) 선수들이
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 정말 엄청난 칭찬을 받지만,
반대로 한 경기에서 지면, 엄청난 비난 세례가 쏟아지는 거죠. 고작 한 경기인데도요!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사도 바울처럼, 다윗처럼, 에스더처럼, 드보라처럼
하나님 나라의 국대로, 대표주자를 살겠다.. 결단하시면
여러분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일 준비를 하셔야 돼요.
박수를 받아도 들뜨지 않고, 욕을 먹어도 낙심하지 않는..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사신다!'
그러니 내가 칭찬을 받든지, 내가 손가락질을 당하든지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대표가 되는 순간, 영광과 모욕이 함께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는 반전의 승리를 체험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무명한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모순이 많죠.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늘 느끼는 게 그거잖아요.
'나는 소중한 사람인데, 하나님, 왜 이렇게 저한테 이렇게 혹독하게...'
'하나님 저한테 약속해주신 게 있는데, 상황은 전혀 안 따라주네요..'
그런 인생의 모순을, 반전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뭔가요?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결단하시는 거예요.
언제까지 여러분이 '하나님 저 아시잖아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제 일이 좀 잘되게 해주세요. 제 인생 좀 열어주세요..' 이걸로 어떻게 하나님 감동시키겠어요?
그런 사람에게는, 위 8~10절에서 말한 사도바울의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거죠.
그러나 사도바울처럼 결단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면,
8~10절의 반전 드라마가, 내게도 쓰여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쉬운 일과 어려운 일 사이에 선택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과 가치 없는 일 사이에 선택이에요.
뭘 두려워 하십니까? 한번 사는 거잖아요. 한번의 인생이잖아요.
여러분, 혹시 과거로 되돌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늙어도 좋고, 머리가 희어져도 좋고, 떠날 날이 가까워도 좋다.
난 계속 달려갈 것이다!' 이렇게 오늘을 후회 없이 사시게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단 한번뿐인 인생을, 뭘 그렇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싶어 하세요?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을 나도 한번 가져봐야지..' 합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다 비슷한 기도제목을 갖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가진 그것을 나도 많이 가져서,
그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 하는데,
오히려 가져서 믿음이 더 떨어지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허락지 않으시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 청년들 가운데, 목숨을 건 다윗같은 사람들, 바울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되고
에스터 같은 사람들, 드보라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되는 겁니다.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나와야 되는 거에요.
그냥 어설프게 헌신하는 거 말고요. 결단하세요.
팬데믹 기간에 오히려 전도를 더 많이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만나자 그러고 교회 가자 그러면 늘 시간 없다고 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다 집에 갇혀 있잖아요. 순순히 전화도 받아서 30분~1시간을 얘기하고
'힘든데 나를 위해 기도해줘!' 이렇게 더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더라고요.
이 팬데이 기간에 기도모임을 결성해서,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모임을 하는 하시는 분들도 있고
다 집에 앉아 있으니까 성경통독 모임도 하고.. 팬데믹이라서 오히려 되는 사람은 더 잘 됩니다.
△이 시간 기도 합니다. 기도할 때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으시겠어요?
나는 도대체 하나님께 어떤 가치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가요?
나는 한번뿐인 내 인생,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 20대, 30대, 40대의 내 인생의 타임을 살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