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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에2:21~23 출처 ☞ 에스더서 설교모음
에2:21~23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본문의 주인공은 모르드개입니다.
에스더서에서 모르드개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에스더보다 더 메인 캐릭터(중심 인물)입니다.
사실은 모르드개가 에스더서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요.
그리고 앞부분에 보면, 에스더보다 모르드개를 먼저 소개합니다. 2:5
에스더보다 모르드개의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다.
에스더서 마지막 10장에 끝마무리도, 모르드개 이야기로 끝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가 사실은 모르드개 이야기 입니다.
이 책의 구성을 사실은 모르드개의 리더십 하에서 모든 게 이루어집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나가는 것도 그렇고, 에스더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모르드개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르드개가 좀 소극적으로 따라가는 것 같지만,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관계에 있어서
에스더는 절대적인 순종을 하는 모습이고, 모든 것을 리드하는 것은 모르드개였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리더십을 연구하는 사람은, 모르드개의 리더십을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굉장히 지혜롭게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지혜로운데 머리가 너무 좋으면
머리를 한 바퀴 더 돌리는 게 문제잖아요. 그러면 간교해집니다.
근데 모르드개는 그러지 않아요. 굉장히 순수하게 지혜를 발휘해서 일합니다.
그는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십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개인적인 야망은 전혀 보이지 않고, 막후에서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늘 뒤에 있습니다.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려고 하지 않아요.
에스더를 늘 내세우죠. 그리고 그가 일하도록 뒤에서 돕고 희생하는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에스더서의 모든 극적인 반전에는 모르드개가 있습니다.
자 모르드개로 인하여 어두운 전조가 깔리기도 하고
또 그로 인해서 승리의 반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민족의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정점에
모르드개가 있습니다.
2:19절에 보면,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대궐문'은 주로 재판과 같이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곳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지기가 아니고, 행정관 같은 직입니다.
이곳에서는 재판이 벌어지고, 또 상업적 거래들도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왕궁의 행정적인 일들을 하기도 하고
물품이 오가는 일을 살피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고
또 내시들도 자주 드나드는 곳이고
왕의 집무실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이 대궐 문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대궐문에 앉았다'는 말은
왕실의 어떤 행정 업무를 맡았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실이나, 왕의 신변에 관한 정보를 얻기에 아주 좋은 자리에 있었던 거죠.
◑일상의 성실함, 모르드개
21절 '(모르드개가) 대궐문에 앉았을 때에'
이 말의 표현 속에는 '모르드개는 자신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일상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켰을 때, 그곳에서 일이 시작되고 있다는 거죠.
에스더서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계속 이제 보고 있습니다.
▲자 모르드개가 업무 중에 고급 정보를 하나 얻게 되는데
왕에 관련된 정보입니다. 그것이 뭐죠?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왕을 암살하려는 정보였습니다.
내시는 왕의 최측근에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왕을 암살하려고 모의했다는 거죠.
왜 암살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본문에는 '원한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21
사극을 보면, 왕의 신변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 있죠.
고대국가에서도 자주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래서 음식에 독극물을 넣기도 하기 때문에
술 관원장, 떡 관원장이 필요한 이유는, 그 음식을 면밀히 감시감독하는 거죠. 먼저 시식도 하고요.
그러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나 떡맡은 관원장은 굉장히 왕의 신뢰를 받는 사람입니다.
왜 왕을 암살하려고 했는지, 그 비밀을 모르드개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 사건은 앞으로 이야기의 전개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됩니다.
사건 하나하나만 보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오늘 일어난 사건하나만 보면 몰라요.
마치 퍼즐처럼, 완전한 그림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에스더서는 사건과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끊기는 듯 끊기지 않는 이야기들..
▲2장과 3장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오묘한 배치예요.
본문 2장 마지막은 모르드개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3장에 딱 넘어가면 하만이 나옵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게 됩니다.
하만이 등장하기 전에, 모르드개의 위치를 재 배열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자 에스더서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행간이라고 했습니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를 놓치지 않고 읽어가야 합니다.
무심하게 벌어진 듯 한데, 무심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자 모르드개가 자신이 일하던 자리에서
왕에 대한 암살 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을 모르드개가 알게 됩니다.
자 모르드개가 그 비밀을 알게 된 것이 우연처럼 보이죠. 그러나 우연이 아니에요.
왕을 암살하려는 일이라면 특급 비밀입니다.
얼마나 기밀이 철저히 유지되었겠습니까!
밀실에서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된 일을, 우연히 모르드개가 알게 됩니다.
여기에 분명히 무엇인가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22절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참 모르드개는 지혜롭게 처신을 합니다.
그가 마땅히 해야할 충성스러운 모습이죠.
이방의 왕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부정적 이었다면, 암살에 가담했을지도 모릅니다.
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사실을 먼저 알립니다.
왜 에스더에게 직접 이 사실을 알렸을까요?
일반적으로는 모르드개의 직속상관에게 보고하는 게 맞을 거에요.
그런데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전달합니다.
여기서 에스더와 얼마나 밀착관계에 있는가도 알려주고 있는 대목이죠.
왕후가 된 에스더를, 모르드개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많은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죠.
에스더가 아니었다면,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는 비밀을 알았더라도
그의 위치에서 왕에게 직접 전달하는 일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비밀은 잘못 다루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비밀을 안 것 자체가 위험합니다. 잘못하면 뒤집어쓸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모함을 뒤집어쓰고, 무고 죄로 모르드개가 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왕후가 된 에스더를 통해서, 왕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자 여기에서 우리는 이야기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짜여져 가고 있는 걸 알게됩니다.
이 일로 인해서 모르드개는 물론 에스더도, 왕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에스더는 왕후가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습니다.
왕으로부터 이 사건을 통하여, 에스더가 왕에게 큰 신뢰를 얻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보고합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중대한 일이에요.
에스더는 그냥 무심코 한 행동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도 우연처럼 보이지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왕에게, 모르드개의 이름이 각인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르드개의 위치에서 왕과 연결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에스더, 그리고 모르드개 모두가 신뢰를 받게 되죠.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공조입니다.
두 사람의 공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혼자서는 안 돼요.
에스더 만으로도 안되고, 모르드개만으로도 안 돼죠.
앞으로 거사들을 치러내려면 둘이 긴밀해야 합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모르드개의 제보로, 결국 조사가 들어갔고, 물증은 확보됩니다.
그리고 암살범들은 처벌을 받습니다.
▲23절,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의 전조라는 것입니다.
왕을 암살하는 사건을 제보한 모르드개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냥 잡범 하나 신고해서 잡은 정도가 아닙니다.
바사 제국의 왕의 생명을 살려낸 일입니다.
그 정도면 어떻게 해요? 보상이 주어져야 됩니다.
상도 작은 상으로는 안 되죠.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모르드개의 공적은, 상을 받지 않고 넘어갑니다.
역사가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은 물론이고 바사 제국의 통치자들은
공적을 세운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아주 후하게 준 것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지위를 승진시켜주거나, 혹은 세금을 감해주는 등의 보상을 해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에게는 어떤 보상도 없이 그냥 넘어갑니다.
왕이 몰랐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일을 왕 앞에서 공중일기에 기록하니라' :23
왕이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르드개에게 상이 베풀어 지지 않았습니다.
3장에 넘어가면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왕이 하만이라는 사람의 지위를 한없이 높여줍니다.
불공평해 보입니다. 보상을 해야 할 사람은 그대로 두고
하만은 뚜렷한 공적이 보이지 않는데 높이 세워줍니다.
이제 곧 펼쳐지겠지만, 하만은 모르드개의 강력한 라이벌이 됩니다.
이런 미묘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긴장감은 더 고조되고 있죠.
왜 모르드개는 자기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보상을 받지 못하고 통과했을까요, 담당자의 실수였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어떤 것이든,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마음으로 짐작을 하게 되죠.
아니, 인간의 실수까지도 결코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는 거죠.
에스더서를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은 소리 소문 없이 일 하신다.. 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에스더서에서 우리가 들을 수 없어요.
에스더서 어디에서도 '하나님'이라는 이름도 나온 적도 없고
하나님이 목소리를 내신 적도 없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것들은 밝힐 수 없어요. *바사 제국 치하에서
근데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조용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심히 들여다봐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됩니다.
에스더서에는, 설명하지 않는 수 없는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요.
오늘 우리 일상에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의 수 없는 터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는 모습! 조용히 일하시는 모습!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유심히 들여다봐야 되고 묵상이 필요해요.
하나님이 조용히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조용하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어요.
우리의 일상에 작은 행동, 작은 결정들, 작은 섬김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자 모르드개의 큰 공헌은 그냥 묻히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들이 있어요.
내가 보상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섭섭하고 시험에 들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늘 이 문제가 따라다닙니다.
사람들은 헌신을 하기도 하지만, 불평도 합니다.
헌신할 때는 정말 순수하게 했어요. 그런데 영적으로 상태가 떨어지면
섭섭한 마음이 밀려오는 거죠.
여러분, 사람에게는 보상심리 라는 게 있어요.
뭔가 보상을 받고 싶은 심리가 있으십니까?
적절한 보상을 해주면, 신이 나서 계속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내가 원하는 만큼 보상을 받을 수가 없을 때 입니다.
답은,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의로우심을 따라서, 정확히 보상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이 땅에서도 보상, 저 천국에서도 보상!
그러니 보상심리 때문에 시험드는 일은 믿음이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섬기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은밀하게,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도
그 자리에서 꾸준히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10년, 20년, 30년을 계속 섬기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르드개는, 자신의 공적을 알아달라고 호소하지 않아요.
이게 잘한 일입니다. 지혜로운 겁니다.
왜 그것이 잘한 일인지 나중에 알게 되요.
연결되는 사건이 6장에 나오잖아요.
잊혀진 작은 공적이, 나중에 어떻게 기가 막히게 쓰여지는가를 우리는 압니다.
사람들은 잊어버릴 수 있어요.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 일일이 보상을 받으려고 하면, 시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잊지 않으시는 그것이 중요하죠.
하나님은 모든 걸 다 알고 계십니다. 이걸 우리가 믿어야 돼요.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요즘 블랙박스 CCTV가 많습니다. 모든 정보들이 다 담겨있습니다.
요즘 이 CCTV가 무섭습니다. 모든 정보가 축적이 되고 있어요.
우리의 모든 행동은 CCTV가 알고 있어요. 자동차 블랙박스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하나님은 초정밀 블랙박스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이 다 들어 있어요.
우리가 알고/ 모르고 행한 모든 게 다 들어 있어요.
하나님의 블랙박스에 담긴 게 어떤 것일까요?
내가 수고하고 땀을 흘렸지만,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들..
내가 수고하고 땀을 흘렸지만, 보상 없이 순수하게 섬겼던 것들이
하나님의 블랙박스에 다 담겨있어요.
여러분 그게 결정적인 순간에 오픈이 되는 거죠.
세상에서 우리가 보상받지 못하고, 충분히 대우 받지 못한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만약 내가 보상을 받았으면, 블랙박스 안에 못 들어가요.
이미 그거는 해결된 거니까, 처리된 것이니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선한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하시는 분입니다.
그 보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옵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놀랍게 옵니다.
하나님은 눈을 감고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보십니다.
여러분, 내가 수고하고 있었고 뭔가 공로를 세웠는데
잊혀졌다고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지금 잊혀진 것이 잘된 것입니다.
잊혀짐으로 나중에 더 놀라운 보상이 주어집니다.
사실 이 사건은요, 나중에 어마어마한 사건이 돼요.
이 사건이 잊혀지고, 보상이 되지 않은 것으로 인하여
나중에 유대 민족 전체가 사는 계기가 됩니다.
모르드개 자기 생명이 보존될 뿐만 아니라
유대 민족이 구원받는 일에 까지로 연결됩니다.
엄청난 사건이 돼요.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아하수에로 왕이 망각하도록 하신 거죠.
왜 망각했을까요?
모르드개는 자신의 공적을 알아달라고 몸부림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왕이 알게 됐을 때, 더 큰 신뢰를 주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야 이 모르드개 괜찮은 사람이네?'
▲그런데 본문에서 흥미로운 것은 뭘까요?
모르드개의 공로는 그냥 잊혀지고 지나가버렸지만
그게 궁중일기에 기록됐다는 거예요.
왕이 보는 앞에서 기록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궁중역사실록에요!
아마도 당시의 문화에서 기록은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조선왕조실록이 있고, 다 기록으로 남깁니다.
모르드개에 관한 기록, 이 사건은, 왕이 분명히 인지한 내용이 되었다는 겁니다.
또 모르드개의 공적이 궁중일기에 기록할만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기록이 중요합니다. 기록은 선명한 기억보다 낫죠.
'선명한 기억력보다 희미한 잉크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쇠퇴하는 겁니다. 여러분 기억은 다 믿을 수 없어요.
기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말로 구전되는 것보다 훨씬 나와요.
기록을 남긴 곳에서, 역사가 비로소 씌어지는 거죠. 그 이전을 선사시대라고 합니다.
역사의 문명이 발달한 곳은 기록이 있어요. 비문명국에는 기록이 없어요.
그러면 발전이 될 수가 없어요.
기록은 나중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기록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전혀 달라지는 것이죠.
말은 사라져요. 같이 들어도 시간이 흐르면 각자가 다른 말한다는 거죠.
그러나 기록은 달라요. 중요하고도 충분한 입증자료가 됩니다.
신기하게도 모르드개의 행적이 왕실 기록에 남습니다.
왕실 기록에 남아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모르드개의 행동을 하나님이 기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이라도 결단코 상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셨어요.
나는 그냥 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하고 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통해서도 일을 이루시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의 작은 일들 속에서도, 큰 일을 이루십니다.
모르드개는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일을 충성스럽게 하다 보니까 얻게 된 정보예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의 작은 일상은 사용됩니다.
모르드개의 작은 행동이, 나중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죠.
그래서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모르드개의 공적을 소환해 내십니다.
여러분, 드러나지 않은 선행, 숨겨진 봉사,
나만 아는 구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섬김, 하나님이 그걸 사용하시죠.
그러므로 일상에서의 선행의 축적, 이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만한 건덕지가 있어야죠. 그죠?
우리의 일상에 태도죠. 매 순간 충성하는 것!
▲요셉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평소에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살았어요. 종살이 할 때도 그렇고
감옥살이 할 때도 그렇고..
여러분 요셉은 언제나 총무예요. 총무!
여러분, 회장 좋아하지 말고 총무를 맡으세요. 그게 성경적이에요.
요셉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이었지만, 자기 일처럼 했어요.
그래서 가정 총무가 되잖아요. 주인이 말할 일이 없었어요.
억울한 일을 당해 감옥에 들어갔어요.
또 동일하게 그는 성실하고 충성을 다 했죠.
간수장이 옥중 제반 사무를 요셉에게 다 맡겨서 요셉이 다 처리했어요.
감옥에서도 총무였어요.
나중에는 나라의 총무가 됩니다. 총리대신!
요셉은 감옥에 들어온 왕의 신하들의 꿈까지 해석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 어쩌면 요셉도 그 일을 잊어버렸을지도 몰라요.
모르드개의 선행이 잊혀진 것처럼, 요셉의 선행(꿈 해몽)도 잊혀지는가 했어요.
그래서 모두 지나간 일들로 여겼는데, 잊지 않으신 분이 계세요.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왕이 어느 날 꿈을 꾸고, 온갖 애굽의 술사들이 풀려고 해도 안 풀려요.
술맡은 관원장이 갑자기 어느날 요셉이 생각납니다.
왕에게 보고하죠. 마침내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게 됩니다.
요셉은 감옥 안에서 그냥 섬겼을 뿐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을 도왔던 거죠.
근데 잊혀졌어요. 근데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았어요.
하나님은 그 요셉의 작은 행적을, 때가 되자 사용하셨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마침내 애굽의 총리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 안에서 행한 요셉의 일상들은 감춰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의 선행이 잊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블랙박스가 열리는 날이 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냥 살아서는 안 돼요.
내가 있는 일상의 자리에서, 내가 행한 작은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연처럼 가장하고 있지만
결코 우연히 아닌 것들이, 우리의 삶속에 채워져 있다는 것을 믿고
우리의 일상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그저 묵묵히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충성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최적의 순간에 그 일을 기억하신다는 거죠. 끄집어내시는 거죠.
뭐 이런 간증은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너무 많이 있죠.
여러분, 최적의 순간에 하나님이 그 일을 끄집어내신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보상해주지 않아도
지금 보상이 안 됐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가 일을 하고 꼭 보상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돼요.
그냥 섬기시면 돼요.
▲마치는 말
모르드개는 보상을 바라고, 왕의 암살계획을 알려준 게 아니잖아요.
그냥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을 한 겁니다.
어느 순간에 이 사건이 그렇게 놀랍도록 빛을 발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어요?
모르드개의 섬김 하나가, 자신의 목숨을 건지고
민족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작은 일들을 사용하셔서, 위대한 일을 이르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삶은 하나의 떨어진 조각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의 삶은 다 연결되어 있어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내가 행한 어떤 일이, 미래의 어떤 일과 놀랍게 연결된다는 거죠.
전혀 연결이 안 될 것 같은데, 연결이 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떤 일과 맞물려
새로운 하나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우리를 미래를 모르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삶을 길게 봐야 해요.
삶을 보는 시각이 짧으면, 우리의 삶이 부실해져요. 허접해져요.
그리고 눈치껏 살게 되고, 머리를 굴리면서 살게 되고요. 적당하게 살려고 하는 거죠.
그러면 성실함이나 충성이 나오질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이 순전해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노리고 하는 하면, 순수한 충성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냥 순수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최선을 다하면
우리의 일상에 작은 동작들이 축적이 될 때
하나님이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시는 지점이라는 겁니다.
지금은 모르드게일이 그냥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묻힌 게 아니에요.
더 놀랍게 숙성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서있는 곳이 참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맡고, 하고 있는 그 역할이 너무 좋요합니다.
거대한 일을 계획하지 않아도, 그것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라도
내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때 그 일들이 롬8:28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이 말씀이, 에스더서 속에서 너무도 놀랍게 이루어져가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 저 일, 크고 작은
수 없는 일상의 평범한 일들 하나하나가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열심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
이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에스더서는 하나의 큰 퍼즐판과 갔습니다. *jigsaw 퍼즐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거죠.
한 조각만 보면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그냥 퍼즐 수백 조각 중의 하나처럼
정말 혼란스럽고, 도무지 해석이 안 될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게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깨어진 수많은 파편(퍼즐)조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 삶의 조각조각들을
오늘도 부지런히 하나님은 엮어가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은 놓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해석이 안 될 뿐이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의미가 없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죠.
오늘도 우리가 이 자리에서, 오늘도 우리 교회 안에서
또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가정과 직장에 모든 영역속에서
그 한조각만 붙들고 너무 원망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지 마시고
그 조각들을 엮어서, 완성된 이야기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시고
믿음으로 달음박질 하시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그 어떤 것도 묻히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어떤 비밀이 있어야 돼요..
그게 어느 날 천국의 블랙박스가 열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드러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