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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4장 1~24 믿음의 기념비를 세우며 살자

LNCK 2022. 1. 31. 21:26

https://www.youtube.com/watch?v=E-MV24XsRko

◈믿음의 기념비를 세우며 살자         수4:1~24         2021.04.11.출처

제가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인교회 집회를 갔을 때 
그때 유대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신앙을 
자녀 세대, 다음 세대에게 성실하게 전해주는지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한인교회는 유대인 회당을 구입해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더 크고 좋은 회당을 짓고 이사를 간 거죠. 

그런데 해마다 한인교회에 팔았던 그 옛날 회당 건물에 
유대인들이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부모와 선생님들이 와서 한 3일 정도를 수련회를 거기서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과거 회당이 지어질 때의 일들, 
그리고 그 회당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제가 마음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부모 세대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미국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또 하나님의 도우심, 역사하심을 
하나하나 자녀들에게 다 가르치고 전해주는 일! 
그 일을 그렇게 성실하게 하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그냥 유대인이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본문에서 하고 계신 거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을 물이 끊어지게 하시고 
그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요단강을 건너게만 하신 게 아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시하기를, 열두 지파가 한 사람씩 택하여 
그 요단강 안에 있는 돌, 
아직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가운데 서 있기 때문에 
물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 돌, 큰 돌을 하나씩 메고 나와서 
요단강 동쪽 편에 기념비를 세우라는 겁니다. 

우리가 요단강을, 믿음과 순종으로 건넜다 하는 기념비를 세우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순종합니다. 

요단강 안에, 그 제사장들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우선 12돌을 세워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리고 강 바깥 길갈에 또 세움, 기념비 2개를 세움)

수4: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그러나 그건 누구도 볼 수가 없는 거죠. 
이제 요단강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수장되어 버리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요단강 건너편에 길갈에, 요단강을 건넌 기념비를 세웁니다. 
똑같이 요단강에서 돌 12개를 어깨에 메고 와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수4: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리고 순종함으로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요단 강물이 끊어지고, 그 강을 건넜음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들이 이제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요단강을 건넌 것만 아니고 
우리가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기억, 믿음이었어요. 

하나님이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요단강을 건너는 실제적인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이제부터 태어날 후손들, 
그들에게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기억을 
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6~7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그들은 정말 놀라고 충격이었을 겁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냐 말입니다. 

그 넘실대는 요단강 물이 그날 다 끊어져 버리고 
그 요단강을 2백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냥 걸어 건너간 겁니다. 

그들은 그 순간에는, 이제 가나안 땅 정복은 그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신 하나님이신데, 
아무리 가나안 족속이 강하고, 성벽이 굳건해도 
얼마든지 그들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은 생각 했을 거예요. 

그러나 문제는, 은혜도 잘 받지만 잊어버리기도 잘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념비를 세운 거죠.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이 요단강을 건넜지만, 출애굽할 때 홍해를 건넌 사람들입니다. 

홍해를 건넌 것과 요단강을 건넌 것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규모예요. 
홍해는 바다입니다. 근데 그 바다가 물이 끊겨진 게 아니고 
그들의 눈앞에서 한 순간에 쫙 갈라져 버렸어요. 

그리고 그들이 그 홍해 바다의 밑 바닥을 걸어 지나갔습니다. 
애굽군대가 뒤쫓아 들어오는데, 그들이 홍해 바다 한가운데 들어왔을 때 
물이 합쳐져서, 그들이 다 물속에 수장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이스라엘이 생생히 보았어요. 

그때 충격과 놀람은, 요단강 건너 갈 때 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일이었죠. 
춤을 추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논란과 충격과 감동이 삼 일밖에 안 갔다는 거죠.
삼일 동안 물 없는 광야를 지나가면서 목이 말라서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기념비가 없어서 그랬을까요? 어쨌든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잊어버린게 문제였습니다)

'우리를 광야로 나오게 해서 다 죽게 만드냐?'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실상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요단강을 건너고 난 다음에는 
요단강을 건넌 기념비를 세우게 한 겁니다. (홍해 때 실패-잊어버림-를 반복해선 안 되니까요)

'우리가 요단강을 믿음과 순종으로 건넜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우리가 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거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족속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단강만 건넜다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게 아니에요. 

그들은 이제 가나안의 7족속과 그 성읍을 무너뜨리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홍해나 요단강을 지낼 때처럼 
그렇게 기적을 행하여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이제는 칼과 칼을 부딪쳐 싸워야 되고, 창과 창을 부딪쳐 싸워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우리는 요단강도 건넜다' 하는 그 믿음이에요.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반드시 우리에게 주신다.' 그 믿음이에요. 
그 믿음으로 그들이 이제 싸워 정복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돌무더기가 '믿음의 기념비'가 되는 거죠. 

 

여러분 우리도 통일합니다. 
우리에게도 요단강을 건넌 기념비가 있습니다. 

요단강은 죽음을 상징해요. 
우리가 장례식을 치를 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그렇게 찬송을 부르는 것처럼 
요단강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죽음을 지나서 다시 태어난 민족이에요. 
요단강을 지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난 거죠. 
그게 요단강을 지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기념비를 세운거예요. 

우리도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통과해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자아의 죽음, 십자가에서 내가 죽음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게 예수를 믿는 거예요.

 

우리도 똑같이 요단강을 건넌 사람들입니다.

그 기념비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세례예요. 

세례식을 했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제 나는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가 되시고, 나는 가지가 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나는 죽었고, 이제는 부활의 생명으로 살고 있다.'

그 고백이 세례를 받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요단강을 걷는 기념비를 다 가지고 있는 거예요.

 

세례받은 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주 님 오실 때까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주님과 나는 한 몸이라는 것을 계속 확증하는 기념비로 주신 것이 성찬이에요.

 

여러분 성찬 받으셨습니까?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셨어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 필요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와 저주에서, 영원히 지옥갈 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에요.

 

그러나 실제로 우리 믿음의 삶 속에는 계속된 연단과 시험이 있습니다.

마귀는 여전히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임금 노릇을 하고 있어요.

 

예수 제대로 믿어보려고 하면, 이런 저런 모양의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과 싸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적인 싸움이 있어요.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절대로 마귀의 역사를 무서워하지 말라, 연단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요? 우리는 요단강도 건넌 사람이에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자에요.

 

우리는 주님과 늘 하나가 되어 있는 자에요. 세례 받은 자에요. 성찬 받은 자에요.

그 믿음으로 모든 문제를 다시 보라는 겁니다.

 

때때로는 죽을 것 같은 문제의 어려움 속에 부딪칠 때도 있어요.

'이렇게 끝인가?' 이런 순간이 올 때도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미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짐 받은 자에요.

죄에 종노릇 하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세요.

예수님은 이미 여러분 안에 계세요. 그 점을 항상 확인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에 기념비가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의 삶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기념비가 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돼요.

예수 믿고 사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믿음의 기념비에요.

 

교회 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저희 교회는 2월달에 "교회 사랑 주일"를 지킵니다.

"교회 사랑 주일"은 우리 교회의 '믿음의 기념비'에요.

 

우리 교회도 요단강을 건너는 것과 같은 사건이 있었어요.

교회가 다 무너지고.. 이제 끝장나는 것 같은 상황이 과거에 있었어요.

이 예배당을 짓는 과정에서.. 다 끝난 줄 알았어요. 

다들 모두 '못 헤어난다'고들 말했어요.

너무 어려워서 당시 교회를 떠난 사람들도 많았어요.

남은 사람들은 눈물밖에 없었어요.

 

그때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살릴 분은 주님'이신 것을 믿고 기도 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기가 막힌 수렁에서 건져내셨어요. 우리를 구원하셨어요.

 

우리에게는 실제로 요단강을 건넌 분명한 체험이 있어요.

그것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아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교세가 크고 예배당이 큰 것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진짜 우리가 기념해야 될 것은, 정말 죽을 것 같았던 그때, 망할 것 같았던 그때,

그때 오직 하나님만 믿고 기도 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했던 그때를 기념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계속해서 당신의 일을 이루실 것이에요.

 

여러분이 매일 쓰시는 영성일기가, 사실은 중요한 믿음의 기념비에요.

'예수님과 동행일기' 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할 자에서 건짐을 받았어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됐어요.

그 기록이 '예수동행 일기' 에요.

 

저는 정말 믿음의 사람들의 일기를 통하여, 큰 은혜를, 그리고 엄청난 믿음의 도전을 받았어요.

-웨슬리 목사님의 일기

-조지 뮬러 목사님의 일기

-이용도 목사님의 일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런 삶을 사는 거구나!'

'그들의 삶 속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그 일기들은, 제 자신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프랭크 루박 선교사님의 일기를 통해서

'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면, 실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거구나'

그 강력한 도전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살고, 우리 교우들에게도

주님과 동행하는 일기를 쓰며 살도록 권고해 드린 거죠.

성도의 삶은, 그 자체가 믿음의 기념비에요.

 

저희 할아버님께서는 625전쟁 때 순교하셨어요.

저희 할아버님의 순교이야기가 감리교신학대학교 출판부에 나온

<625와 한국 감리교회 순교자>라는 책에 3페이지 정도 실려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저희 할아버님의 순교기록은

중요한 '믿음의 기념비'가 되는 거죠.

 

그러나 저는 저희 할아버님이 순교했던 것보다

성도들의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순교해야 될 때가 오면 그러면 순교해야죠.

그러나 순교의 축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순교하고 싶다고 순교하는 게 아닙니다. 

순교하는 일도, 은혜받은 사람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죽음으로써 순교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살아있는 순교자가 있어요.

우리는 다 순교신앙으로 사는 (순교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믿음생활이에요. 이 믿음이 순교신앙이에요.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이 그렇습니다. 예수로 인하여 구원받은 우리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거예요.  *자아의 죽음

여러분이 그 삶을 실제로 매일 살아가는 기쁨이 있어야 돼요.

그걸 실제로 여러분들이 기록해야 합니다.

 

'목사님, 제 삶에는 그런 기가 막힌 일들, 요단강 이 갈라지는 것 같은

기적같은 일들이 제 삶에는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일들 밖에 없어요..'

 

잘 몰라서 하시는 이야기에요.

여러분이 정말 기록해야 될 '믿음의 기념비'가 되는 것은, 기적을 (일기에) 쓰는 게 아닙니다.

어떤 놀라운 성공을 거기에 기록하라는 게 아니에요.

 

진짜 기적중의 기적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거에요.

여러분의 진짜 초점은 예수님에게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어도, 누구를 만나도

혹시 그날 길을 걸어가도..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거예요. 이것이 기적중의 기적이에요. 

예수를 믿고 우리가 누리는 가장 놀라운 일이에요. 그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길갈에 세운 요단강을 건넌 기념비의 그 12돌은.

요단간 한복판에 있었던 돌이에요. 멋있는 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요단강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있었어 믿음의 기념비는

힘들고 어렵고 답답한 그 현실 속에서 주님과 동행했다는 것.. 그게 핵심인 거예요.

그러면 아주 훌륭한 거예요.

 

2005년 우리 교회 예배당 공사가 끝났습니다.

2006년 봄에 예배당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가 되는데

2005년 추수감사절이 왔을 때예요.

 

제가 교회 목사로서 성도들에게 '올해 추수감사절을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렇게 말할 용기가 안 생기더라고요. 왜요?

 

그때 정말 어렵게 예배당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었어요.

성도들은 이 마무리 공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헌금도 했습니다.

 

자 그런데 추수감사주일이 온 거예요. 무슨 감사주일헌금을 할 여력이 또 있겠어요?

올해는 그저 그냥 절기의 하나로 지나지, 성도들에게

'추수감사주일을 힘있게 지키자고 말하기가 어렵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네가 예배당 공사를 다 마무리하느라고 고생하고, 교인들도 애를 쓰고 있지만

한 가지 놓친 게 있다'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랐어요.

 

'뭘 놓쳤나요?'

'감사를 놓쳤다!'

그제서야 제가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정말, 정말 힘에 버거운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부채는 엄청나게 많이 생겼어요. 이 부채는 어떻게 갚아요?

 

또 예배당은 이렇게 크게 지었는데, 실제로 그때 당시에 모인 교인은 이 예배당의 1/3도 못 차요.

그러면 이 큰 예배당은 도대체 어떻게 다 채워요?

 

앞으로 그러니까 해결해야 될 일들이 산처럼 많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뒤를 돌아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나온 뒤를 돌아보니까 깜짝 놀랐어요.

 

앞으로 해결해야될 일만 많은 줄 알았더니

뒤에 돌아보니까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왔던 거예요.

 

-이 예배당 공사를 마무리하기까지, 그때 성도들이 건축헌금을 약정한 것,

-도무지 불가능한 은행의 융자, 대출이 나오게 된 일,

-도무지 이 예배당 공사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던 원 건축회사와의 협의,

 그래서 그 회사에서 이 예배당 공사를 끝까지 마무리해 주겠다고 결정한 일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기적의 연속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공사가 끝나게 된 거죠.

 

그보다도 더 제가 마음에 놀라운 것은

온 교우들이 '나는 죽고 예수를 산다.' 하는 십자가 복음을 분명하게 붙잡은 거예요.

 

제가 그 동안 목회하던 교회에서 '십자가의 복음은 나는 죽고 예수를 사는 겁니다.'

그렇게 설교를 해도, 그렇게 간절함으로 받아들여주는 교회는 그렇게 없었어요.

 

그런데 이 교회는 아멘 으로 받았어요. 우리 상황이 그만큼 어려우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진짜 믿어야 되는 거구나!

십자가 복음을 알아도 정말 제대로 알아야 된다는 절박감이 있었어요.

 

성경을 보니까, 예수 믿는 것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거구나..

저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문제가 많지만,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제대로만 믿기만 하면

나머지는 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고...

 

그래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드렸어요.
2005년 추수 감사주일에, 우리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에 지나칠 정도로

우리가 올 한해 교회를 위해서 헌신했지만

2005년 추수 감사주일도 마음을 다하여, 우리가 감사주일을 지킵시다.

 

제가 그때 깨달은 것이, 2005년 추수 감사주일은, 어느 해도 대신할 수 없었던 감사절이에요.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때, 이제는 우리의 한계를 벗어난 것 같은 이런 상황 속에 몰렸을 때

그때도 하나님께 드렸던 감사! 그것은 2006 년에는 (그 후로는) 못하는 일이에요.

 

예배당 공사가 마침내 다 끝났어요. 2007년에는 더 못해요.

여러분 어려울 때 감사는, 그때만 할 수 있는 거예요.

 

(2005년 추수감사절을 그저 그렇게 지내버릴 뻔 했으니) 큰일날 뻔 했던 거죠.

2005년 추수 감사주일은 제게 있어서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감사절이었어요.

그리고 그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기억하시고 계실 것이다.. 그렇게 저는 믿었어요.

 

요단강을 건널 때, 그때만 그 요단강 속에 있는 돌을 가져다가

기념비를 쌓을 수 있는 거예요.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만, 그때 드릴 수 있는 감사가 있어요.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 있을 때, 그때만 드릴 수 있는 감사가 있는 거예요.

 

지나고 나면, 그때 그 감사를 드릴 수가 없어요.

제가 2005년 추수감사절에 했던 설교를 찾았어요.

 

'도대체 그때 그 추수 감사주일에 나는 무슨 설교를 했나?'

그 설교 맨 마지막에 이렇게 제가 설교를 했더라고요.

 

'올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은 상상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 확신이 생기니 더욱 감사합니다.

이제는 도와주십사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 뿐입니다.

 

올해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고 우리가 망하더라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이미 충분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참 비장했었어요, 그때는. 추수 감사절을 한번 더 드리고 그냥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느껴졌었어요.

그래도 감사하죠. 왜요? 너무 감사할 일이 많으니까.

 

그 설교문을 읽고, 갑자기 제 마음속에, 건축 중에 있는 교육관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교육관 공사가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5월 첫 주면 봉헌예배 드립니다.

교육관 공사 현장으로 가서, 5층부터 지하 일 층까지 내려오면서

그냥 계속해서 제 마음속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고백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16년이에요. 2005년 추수감사주일이 지난지가..   *2021년 설교

'그 기가 막힌 어려움 중에, 그래도 하나님이 역사 하신게 있으니까 감사하자 힘을 다하여 감사하자.'

그리고 16년이 지나서 저 교육관이 완공이 되는 거예요.

 

만약에 2005년 그때 추수감사가 없었다면, 지금 이 교육관에 감격이 아마 없을 거예요.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여러분 그때가 '믿음의 기념비'가 세워지는 때예요.   *설교 제목

 

코로나19로 인해서 어려움이 많지요. 앞으로도 걱정이 많습니다.

코로나19와 상관없이 건강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겪는 분도 있을 거예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는 분도 있을 거예요. 가정의 어려움이 있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근데 여러분 아십니까? 지금이 여러분이 요단강을 건너는 체험을 하고 있는 때예요.

그러면 이 상황을 놓치면 안 됩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는 거기서만 기념비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걸 놓쳐버리면, 나중에 가서는 '믿음의 기념비'가 하나도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고 하용조 목사님은 23살 때, 그때가 1968년 8월 입니다. 1년 동안 패결핵 요양소에서 살았어요.

죽음이 일보 직전이었죠. 그는 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그런 중에 그가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일기로 쓰는 거예요.

 

그게 책으로 나왔어요. <나의 하루> 라는 제목으로.

고 하용조 목사님의 23살 청년 시절의 일기 책.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죠?

 

홍정길 목사님이 그 책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이 후에 온누리교회의 목회 설계도다.'

그 책 속에 다 들어 있더라고요.

23살 폐결핵에 걸린 그 청년의 일기 속에, 장래의 온누리교회 목회 계획이 다 나와 했어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그리고 쓴 일기 속에

그 이후에 주님이 이루실 내용이 다 들어있는 거에요. '믿음의 기념비'이니까요.

그게 책으로 출간되어 나온 거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의 10년 뒤, 20년 뒤를 주님은 아십니다.

지금은 죽을 것 같아도, 지금은 요단강 물에 완전히 빠져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는 그런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여러분을 이끌고 계세요.

 

그리고 지금 주님을 바라보면, 그 속에서 놀라운 믿음의 고백들이 다 나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기적이에요.

밥을 먹어도 주님과 함께 먹고, 사람을 만나도 주님과 함께 만나고,

기가 막힌 어려움을 겪어도 주님과 함께 겪으면 돼요.

 

그리고 그것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겁니다.

보세요. 그 일기 책이 여러분 자신에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기가 막힌 '믿음의 기념비'가 될 것입니다.

믿음의 기념비를 기록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