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 - 정복하는 신앙 - YouTube
◈정복하는 신앙 수6:12~21 2018.07.13.출처
◑여호수아서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구원은 ‘안식(resting)’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우리의 삶에 안식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의 세력으로 인해 죄의 종 노릇 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 노릇 하며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는 안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에 묶여 끌려 다닐 뿐입니다. 우리를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의 삶에 안식이 없습니다. 이런 삶을 ‘종 된 삶’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벽돌을 찍으며,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배를 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은 안식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정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복해야 하는 목적은
더 이상 지배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참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의 완성이 무엇입니까? 천국입니다.
천국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영원한 안식입니다.
우리는 7일마다 안식합니다. 주일은 안식의 개념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놓이는 참된 자유를 누립니다.
본문에 보면, 양각 나팔 일곱, 일곱째 날, 일곱 번 등 일곱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안식의 개념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하게 만드셨습니다.
에덴에서 축제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염려와 근심이 없이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사람들은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노예 된 삶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게 하시려고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가나안의 목전에 여리고 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분기점, 전환점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넘어가느냐, 넘어가지 못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리고 성을 넘어가지 못하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과거로 돌아가야 합니다.
노예 된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루도 안식할 수 없습니다. 종에게 안식이 있겠습니까.
여호수아서는 우리의 구원의 삶을 구체화시키는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 1:3~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발로 밟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발로 밟고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광야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넜지만, 그들은 여전히 광야에 40년 동안 머물러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 가나안을 누린 사람은
1세대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믿음생활을 하고 구원 받았지만, 구원 받은 삶을 누린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지만, 교회를 다니지만, 신앙생활을 하지만,
구원이 무엇인지 제대로 누리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만 맹숭맹숭합니다. 무미건조합니다. 신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나은 것 같습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풍성한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나안의 입구에 여리고 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굉장한 성입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입니다.
여리고 성을 통과해야 합니다.
여리고 성은 첫 번째 통과해야 하는 성입니다. 첫 싸움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됩니다.
첫 번째에서 밀리면, 계속 밀리게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첫 번째 싸움에서 접고 들어가면, 계속해서 접고 들어가야 합니다.
어디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싸움에서 지면, 계속해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첫 번째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타협하게 하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은 견고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지만,
구원 이후에 우리가 누리는 삶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가 아닙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여리고 성은 견고합니다. 허접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조직화된 군사들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은 보호벽이 강합니다. 정복은 고사하고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비정규군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은 겉으로 보면 열세입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마음껏 신앙생활하도록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가나안 정복은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수여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분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작정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발로 밟는 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발로 밟는 것은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적 관점으로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적극적으로 돌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성은 정복 프로젝트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승리는 또 다른 승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승리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처음에는 겁을 먹습니다.
믿음의 길은 낯설고 험난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노예적 삶은 패배주의로 점철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가 무엇인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존감이 바닥나있었습니다.
승리했을 때에 맛보는 성취감이 무엇인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몰랐습니다.
승리를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벽을 넘어야 합니다. 불가능의 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기게 하시려고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입니다.
믿음이 무엇일까요? 믿음은 용기입니다. 믿음은 자신감입니다.
여리고 성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주눅들 수밖에 없습니다. 압도하는 것 같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삶에 두려움을 줍니다.
여호수아 6장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허락하다는 의미입니다. 보상, 선물, 축복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 손에 넘겨 주었다는 것은 네 손에 들린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을 안겨주시려고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취하면 됩니다.
포장지를 뜯고 가지면 됩니다.
▲여리고 성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작전 명령은 특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수 6:2~5)”,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수 6:1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딱 하나입니다.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이성적 판단입니다.
그냥 도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돈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믿음은 이성을 무시하지 않지만, 믿음은 이성에 갇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성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석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계속 훈련해야 합니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믿음생활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자신의 생각을 극대화시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은 작아지고, 하나님의 생각이 점점 커져야 합니다.
전쟁하려면 실제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전쟁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여리고 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성벽을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성에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유인해야 합니다. 여리고 성의 왕을 체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의 생각과 차이가 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3만 2천 명의 자원자를 다 돌려보내시고,
기드온과 3백 명만 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미디안과 싸우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이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힘을 쓰고 싶을 때,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작전을 세우셨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에게서 힘을 빼게 하셨습니다.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돌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열심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빼야 이기는 싸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혈과 육을 동원하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과 육을 동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고함을 지릅니다.
힘을 동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의 위용이나 전력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여리고 성이 얼마나 큰가는 주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여리고 성이 아니고 이스라엘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다루어야 할 주제입니다.
상대로 인해 걱정하지 마세요. 상황을 걱정하지 마세요. 적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문제입니다. 내 발에 내가 넘어집니다.
문제가 얼마나 큰가,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상이나 목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불신앙, 의심, 두려움, 패배주의, 열등감, 상처 등이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벽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눅 들어 벌벌 떨게 하시려고
우리를 여리고 성 앞에 데려다놓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리고 성 앞에 데려다놓으시고, 우리에게
“큰 여리고 성은 너희의 밥이다.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자는 대범해져야 합니다.
문제가 커도 피하지 말고 정면 승부해야 합니다.
피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거부하지 말고 돌진해야 합니다.
문제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문제를 보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으로 들어온 후,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문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문제를 돌파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문제를 다루시기 원하십니다.
◑적용
우리가 가진 자신감과 담대함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있으면 아이들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 당당합니다.
우리가 믿는 구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하나님께 함께하는 인생입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아야 합니다.
눈치 보는 삶을 청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꿀릴 것이 없습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땅 밟기를 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적당히 살라고 우리를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믿음으로 취하라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그 땅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돌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호수아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 1:3~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주위를 돌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곳이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을 믿고 땅 밟기를 시작해보세요.
두려워 떨며 돌아갔던 곳이 있습니까. “이제 내가 너를 취하겠다.”라고 선포하세요. 그 땅을 정복하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생이 펼쳐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계산과 방법에 따라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리고 성 주위를 도는 것은 전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군사학에는 없는 방식입니다.
그냥 돌라는 것은 그냥 죽으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은 내가 무너뜨린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계략, 술수와 지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머리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정과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세상의 방식으로 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상식이 걸림돌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지성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지성이 오히려 함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아는 것이 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식을 넘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십니다.
사람의 노력과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십니다.
이것은 영적 방정식입니다.
돌고 돌면서 힘을 빼게 하십니다. 힘을 주면 오히려 패배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신앙의 묘미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목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목격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목격하려면,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온전히 순종하고,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즉각적 순종으로 인해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6장 15절에 보면,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라는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전적으로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1세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1세대의 삶의 특징은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시작했다면, 계속해서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완전한 순종의 결과는 엄청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략은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종보다 좋은 무기는 없습니다. 순종보다 탁월한 전략은 없습니다.
순종은 최고의 무기입니다. 순종으로 나아가면, 여리고 성은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순종의 능력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문제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거대한 성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 앞에서 끙끙거립니다. 문제에 깔려 질식할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거창해보일 뿐, 사실은 별 것 아닙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한순간에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졌습니다.
사람의 눈에 크게 보일 뿐 자세히 보면 별 것 아닙니다.
골리앗은 덩치가 컸지만, 다윗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쓰러질 정도로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겁을 줄뿐입니다. 사탄은 힘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할 때, 우리 안에 염려가 줄어듭니다. 이전에 염려했던 것이 더 이상 염려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걸려 넘어졌던 것들을 넉넉히 통과합니다.
이전에는 염려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에 들어온 후에는 더 이상 염려거리가 아닙니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한 방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극적 반전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모든 상황은 끝입니다.
하나님께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암이나 감기가 똑같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음생활은 내 실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수준으로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의 수준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된다는 것을 확신하며 일상 속에서 경험하면,
우리가 가진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돌며 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전쟁은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닙니다.
여리고 성을 도는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영적인 말이 아닌 것은 우리의 기를 빼버립니다.
말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는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입니다. 일을 그르칩니다.
말이 족쇄가 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말로 인해 자신이 넘어집니다. 말에는 위력이 있습니다.
말로 인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침묵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작전지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성의 잣대로 성경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돌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말씀에 토를 달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에 토를 달려 한다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입을 통해 육신의 생각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이 입을 통해 흘러나오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삶에서 실패는 말을 통해 일어납니다. 힘들 때 조심해야 합니다. 힘들면 말이 험악해집니다.
힘들수록 악담을 합니다. 힘든데 곱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로 싸웁니다.
말로 서로의 감정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에서는 침묵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각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려면 잠잠해야 합니다. 말을 절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침묵하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순간에 잠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의 전략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작전 지시를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작전 지시를 들으려면 침묵해야 합니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말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은 필요 없습니다.
믿음은 절대 순종을 낳습니다. 절대 순종하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믿음생활은 아이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땅이 많다는 것을 여호수아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양 머물러있지는 않습니까.
여리고 초입에서 허둥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귀로부터 풀려난 것만이 구원은 아닙니다. 여리고 성을 통과하고, 아이 성을 통과하고,
수많은 성을 정복하며 믿음으로 적극적으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마음껏 취하여 누려야 합니다. 참된 안식과 평안,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리고 성은 여러분의 삶의 바깥에 있을 수도 있고, 안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의 상황이 여리고 성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수많은 상처들, 두려움, 불안, 불신앙, 열등감 등이
여리고 성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여리고 성을 통과해야 새로운 땅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무한한 것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여리고 성을 해결해야 합니다. 여리고 성은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망가지 말아야 합니다.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의기소침해서는 안 됩니다. 용기를 가지고 맞부딪쳐야 합니다. 정면 승부해야 합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두려워 떨고 고통스러워하는 문제 안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약속의 비밀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망가지 마세요. 여리고 성을 뛰어넘으시기 바랍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기 바랍니다.
그때 가나안이 열릴 것입니다. 가나안이 열려야 합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가 있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세요. 기도 응답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마세요.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과 가나안에 들어간 후는 매우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믿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세요. 작전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말을 줄이세요.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세요.
그리할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우리의 믿음의 지평이 넓어지고,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