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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2장24 그저 나만 아는 버려진 신앙

LNCK 2022. 2. 5. 10:09

◈그저 나만 아는 버려진 신앙      시50:22, 마20:28, 요12:24     2021.03.07.출처, 일부녹취

◑오늘날 교회를 좀 먹는 이기주의 신앙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망친 이유에 대해서 논할 때 
대부분 어떤 이유를 꼽느냐면, 기복주의 신앙을 뽑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버금가는 신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자 기복주의 신앙이, 기성교회 내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기복주의 신앙이 이기적인 신앙과 만났을 때부터였습니다. 

자 예전에는 가난과 질병에 젖어 있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혜택을 주고 
생계의 어려움을 해소시켜주는 것이 교회의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사람들이 먹고 살만하게 되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살만한 그런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만하니까, 고개를 쳐들면서 올라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탐심이었습니다. 

더 갖고 싶어지고, 더 누리고 싶어지고 
이런 어떤 것에 만족을 하게 되면서 
하나님이 없는, 나만을 위한 신앙으로 살면서 
더 돈돈 하고, 더 복복 하는 그런 신앙으로 나가게 된거죠. 

나밖에 모르는 신앙이니, 여러분 그 신앙이 어디로 나가겠습니까? 나밖에 모르니! 
당연히 돈과 물질에 마음이 끌리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기복주의적 신앙과 이기적인 신앙은 
한국교회에서 버려져야 할, 없어져야 할 
못된 신앙의 양대산맥으로서 
한국교회 안에 여전히 녹아들어와 있고 

그 영향을 받은 무리들이 
주님의 교회를 욕되게하고 
교회가 참 신앙으로, 영적으로 나가는데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오늘 이기적인 신앙에 대해서 좀 살펴보기 하는데요.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신앙"
여러분 이거 신앙입니까, 아닙니까? 

이건 사실 신앙도 아닙니다. 구태여 표현하자면 
이거는 '이기적인 신앙'이라고 말한 것뿐이지, 이기적인 믿음이 무슨 믿음이겠습니까?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신앙'은 
신앙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건 신앙이 아닌 겁니다. 

자 이기적인 신앙이 왜 위험한 것이냐면 
이와 같이 이기심의 본질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의 문제는, 여러분 사람의 어떤 감정적인, 기질적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본질상 우상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우상이요? '나, 자아'라는 우상입니다. 
그러면 '이기심'은 자아를 숭배하는 자아숭배자들의 감정이죠. 

그래서 여러분, 이 이기적인 신앙이 
아직도 신앙이란 이름으로 살아남아있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십자가 복음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기급을 하고 떠나버리는 이유가 뭡니까? 

교회 왔는데 온통 '나, 나, 나' 하고 있는 거예요. 
세상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기겁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집 근처에 시장을 갔을 때 
아내와 함께 한 정육점에 들렀는데 
이내는 이제 고기를 사느라 바빴지만 저는 매장 내부를 둘러보는데,

그 정육점 벽에 한 팻말이 있었어요. 
거기엔 '네 덕 내 탓' 이라는 넉 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잘 된 것은 모두 고객들 덕이요, 잘못된 것은 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가만히 그 팻말을 보면서 생각에 좀 빠졌습니다. 
'아니 교회에 걸어놓야 될 그러한 문구가 정육점에 걸려있구나' 
'혹시 교회가 정육정보다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참 서글펐어요. 

교회 안에 잘 되는 일이 있으면, 당신 덕이고 
잘 안 되면 내 탓입니다.. 하는 게 있어요? 

온통 잘 되면 내 덕이고, 
안 되면 남 탓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너무 지금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이 그걸 보고 기겁하고 나가버리는 것이죠. 
'야 우리 집하고 똑같네, 우리 회사랑 똑같네!'

자 이런 분위기에 젖어 버리고 길들여진 교인들은 
오늘도 내일도 성령충만이 아니라, 자아 충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아충만으로 인해 
교회 안에 참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나밖에 몰라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잠시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첫번째 왜 사람들이 나밖에 모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잊은 탓입니다.  

여러 분, 인간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나만 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없으셔야 되요. 

우리가 흔히 죄 짓고, 어느 날 깨달아서, 참회하면서 고백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아 내가 하나님보다 내 자녀를 더 사랑했구나,
내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했구나, 
내가 하나님보다 사업을 더 사랑했구나, 학위를 더 사랑했구나!' 
이런 고백들을 하시는데 

저는 이런 고백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안드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더'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사랑했다'고 고백하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표현입니다. 

사실은 하나님보다 그걸 더 사랑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야 돼요. 

그건 하나님을 잊어먹어서, 하나님을 사랑한 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입으로 '제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보다 그걸 더 사랑했네요..' 라고 얘기하면 안 됩니다. 
아직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것에  푹 빠져 살았으면서도 
단지 조금 부족하고, 조금 모자라지만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하긴 했다고 하는 말.. 이런 착각을 하지 마세요. 
그런 망상에서 빠져나오라는 말입니다. 

▲가령 한국남자들이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놀다가 
아내에게 딱 걸렸을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여보, 나는 저 여자를 사랑하지는 않아, 당신을 사랑하지!'

이런 말들 많이 하지 않습니까?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말입니다. 

자 다른 여자랑 실컷 놀아 놓고 
'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게 과연 맞는 말일까요?

우리가 정확히 정리해야 합니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다면, 다른 여자와 놀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남자라면 어떻게 얘기할까요?
그저 용서해 달라고 빌 뿐입니다. 

예를 든 것인데, 하나님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내가 하나님 아닌 것에 빠져 살아놓고 
교회와서 '아 내 사랑은 하나님 당신 뿐입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을 받아주세요.' 

이렇게 아무 의미 없는 말을, 익숙한 찬송가 부르듯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말도 안되는 사랑을 고백하기 이전에, 우리는 기억하셔야 돼요. 

내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했다면 
내 삶에는, 하나님과 견주는 경쟁자가 없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육적인 삶만 혹시 여러분의 삶에 남아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한 게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것에 푹 빠져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잊고 떠난 상태이며, (교회에 다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영이 가만 있지 않아요. 세상의 영이 여러분을 사로 잡습니다. 
여러분 안에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미 여러분의 영적인 부분은 다 무너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갈까요?
당연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죠!

△사탄의 경전 1장 1절이 뭔지 아세요?
'네 자신을 위해서 살아라!' 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에게 '사단을 위해서 살아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너 자신을 위해서 살아라'고 그래요. 그게 사단의 수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탄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나는 내 꿈이 있고, 내 생각이 있고, 내가 계획대로 살아갈거야!'

그런데 바로 이것이, 사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 사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사단은 바로,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게 
바로 사단에 꿈이란 말이에요. 사단의 그토록 원하는 꿈!

여러분 사탄의 꿈을 지금 이루어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이, 지금 사탄을 영화롭게 하고 있지 않냐는 거예요. 

여러분이 믿고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탄을 즐겁게 하는 삶을 살지 않느냐? 이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기 자아라는 우상을 위해 살 때 그렇습니다.

시50:16~20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자 보세요.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삶은 죄악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근데 이 시 50편을 보면, 문맥상 이 대상자들이 누구냐?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에요. 

자 이렇게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종교인들의 죄를 쭉 나열하면서

이들을 악인이라고 성경에서 규정하고 계시는데요.

 

이들이 왜 이렇게 죄악이 그들의 삶에 창궐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정확히 명시해 주고 있습니다.

 

시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망각되고 잊혀지잖아요.

그러면 아주 적극적으로 악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해서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심판의 대상자인 '악인'이라고 말씀하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이방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조상 대대로 누려왔던 선민들이

하나님 면전에서 이 악(하나님을 잊어버림의 결과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신32: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자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이 친히 산고의 고통을 겪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낳아주셨대요. 그렇지 않습니까?  :18

 

바로의 군대를 바다에 쳐넣으시고

그 대단했던 이집트의 신들을 다 꼼짝 못하게 하시고 (뭐 있지도 않았죠)

이 땅에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을, 만 천하에 드러내시면서

 

당신의 백성들을 불가마니 같은 애굽에서 건져내셨는데

그 큰 사랑을 받았어요. '너를 낳으신 하나님을 근데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이런 일은, 인간사에서도 흔히 발견되는데 황당스럽게도

늘 사랑받고, 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꼭 말이 많아요.

고마운지 몰라 해요.

 

늘 사랑을 받고, 늘 혜택을 누리다 보니까

고마운 줄 모르고, 은혜를 모르고,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요.

 

그 사랑도 처음에는 감사하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받다 보면 익숙해지거든요.

사람은 그래서 자고를 좀 엄격한 게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장 은혜를 많이 받고, 가장 많이 사랑받은 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오래 기억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그들이

가장 쉽게, 빠르게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부단이 자기 자신을 살펴야 됩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든지, 그 근본 바탕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죄'가 근본적으로 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은, 얘배를 여전히 드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배신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인 것입니다.

(결국 징계를 당하고 돌이키게 되겠죠.)

 

▲2. 자 두 번째 나밖에 모르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신앙의 개념이 정립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제가 이 질문을 여러분께 오늘 꼭 하고 싶었어요.

내가 신앙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이거 반드시 정립을 하셔야 돼요.

내가 예수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멘이 나오셔야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십니까?

그게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목적이신가요? (이래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앙을 통한 개인 영달을 위하고 *기복주의

자기 실현을 하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고, 야망과 자기 개인의 목적 달성을 추구하는 신앙은

'오늘날 교회를 좀 먹는 이기주의 신앙'입니다.  *설교 주제

 

기독교 신앙을, 내 마음 속 깊은 소원을 이루고 싶은 일환으로서

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혹시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을 처음 믿기 시작한 초신자들에게는 그럴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어요.

 

그런데 복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20~30년 교회 생활을 해 봤자

하나님 보시기에 그 사람은 여전히 영적인 아기 수준인 신자들이 많습니다.

물론 신앙이 장성한 분들은, 그런 분은 기다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제게 기독교 신앙이 뭐냐? 물으신다면, 찬송가 가사 그대로더라고요.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이 찬송가에 기독교 신앙과 복음이 다 들어있어요.

신앙은, 땅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찬송시를 작사한 패니 크로스비도 평생 가난하게 살았어요. 그렇지만 하늘의 영광을 누렸어요)

 

그런데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를 거절하고

땅의 영광을 추구하는 분들이 혹시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번에 전라남도 순천에 사시는 성도님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심방예배를 잘 드리고, 이 분의 신앙 고민으로 상담해 드리는데

이 분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으시더라고요. 이 분의 딸이 세 명입니다.

 

첫 달은 결혼해서 벌교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고

문제는 둘째 딸, 셋째 딸인데, 얘들이 순천을 떠나서 서울로 갔다는 겁니다.

 

그리고 셋째 따님이 정말 예쁘대요. 굉장히 미인이래요.

그래서 어떤 의류 회사 모델로 지금 뛰고 있대요.

 

근데 이제 그 셋째 딸이, 엄마가 그렇게 열심을 다해서 기도원 다니고

금식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셨는데

가정 살림이 그렇게 확 늘지 않는다는 거예요.

 

좋은 아파트로 이사간 적도 없고, 그러니까 그 딸이

'엄마가 저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가정 생계 사정은 나아진 게 없으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교회를 안 다닌다'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버렸대요.

 

그래서 이 어머니의 소원은, 셋째 딸이 구원받는 것,

그리고 믿음 좋은 형제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 이게 아주 간절하다는 거예요.

 

그 셋째 딸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실망을 했을까요?

신앙의 개념이 정립이 안 된 거예요.

 

하나님 믿는 게, 내가 세상 복 받고, 세상에서 잘 되는 거다.. 라고 생각한 거죠. *기복주의

이건 아예 신앙이 없는 겁니다. 신자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걸 그렇게 세상 것으로 착각하시면 안되죠.

예수님 믿는 것은, 그런 냄새나는 땅의 차원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늘의 차원입니다.

 

왜 신앙을 자꾸, 인간 수준에서 논하냐? 이 말이에요.

와서 신앙상담을 해도, 왜 자꾸 인간 차원에 얘기만 합니까?

 

하나님 수준에서, 하나님 차원의 얘기를 해야죠.

이런 신앙의 개념만 정리가 잘 되면, 교회를 왜 떠나겠어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래서 맡고 있는 성도님들, 청년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한 명도 빠져나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신앙의 정립을 잘 하세요. 
예수 믿는 것은, 이 땅의 영광과 금은보화 얻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고,

청년들 대단한 스펙 얻는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스펙 다 따놓고, 죽어서 지옥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왜 여전히 눈이 안 떠져서, 예수님을 제대로 못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진정 영생의 감격이 있습니까?

제가 정말 진지하게 여쭤보고 싶은 것이 뭐냐면

내가 구원받은 것이,

내가 예수 믿고 성공하고 세상 출세하는 것보다 더 감격적입니까, 더 만족함이 있으십니까?

 

그 구원의 은혜를 이 땅에서 누리고 살고,

멸망 길로 가던 영혼들이 건져질 때, 그 하늘의 기쁨을 가지고 이 땅을 걸어가는 사람!

여러분, 그 사람을 여러분의 롤 모델로 잡으셨습니까?

이것이 신앙인이고, 이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없고, 교회 다닌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여전히 "나를 위한 신앙"을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건 엄밀히 말해서, 구원 받는 신앙이 아니라, 

'나'라는 우상숭배로 인해, 결국에는 멸망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출애굽한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해서, 모세가 산에 올라간 사이에,

그 아래서 금송아지를 섬기고 말았습니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자기 사랑'입니다.

처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그 신앙의 정립이, 애당초 잘못된 거예요.

 

이건 뭘 말해주냐면, 이미 애굽에서부터 하나님을 믿었던 그 믿음이 좀 잘못됐다는 거예요.

신앙의 정립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물론 신앙이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만)

 

그들이 애굽에서 부르짖은 것은, 자기네들의 노예 생활이 너무 힘드니까

거기서 빠져나가고 싶어서 아우성 쳤던 것뿐입니다.

사람이 절박하고 고난가운데 처하면, 하나님을 붙드는 거죠.

 

근데 그 하나님을 붙드는 게, 정말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내 힘든 삶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서, 잠시 부르짖은 것 뿐이었어요.

 

그저 자신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급하니까 잠시 하나니을 붙잡았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죠.

 

그들이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지고 홍해가 갈라지는 그런 수많은 기적들을 목도하고도

모세가 시내 산에 기도하러 올라간 사십일을 못 참고, 금송아지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춤추고 놀았어요. 금송아지가 뭐에요? 애굽의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벡성들이 만든 송아지 형상은 애굽의 우상 아피스(Apis)본뜬 것이었죠.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금송아지)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32:4

 

'이는 그들이 너Moses를 버림이 아니요 나God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God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Moses게도 그리하는도다'  삼상8:7~8

 

벌써 애굽에서부터, 올바른 신앙이 아니었다는 거죠.

홍해도 건넜고, 요단강도 건넜고, 가나안에 들어왔는데도 말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항상 섞여 있는 거죠.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신앙이 자기에게 이득이 될 것 같지 않고

자기 소원에 반하면, 지금까지 어떤 은혜를 받았던지 관계없이, 돌아서버린다는 거예요.

 

제가 산에 기도하러 갈 때마다

그곳에 사시는 95세된 여전도사님과 잠시라도 대화를 나눠요.

그 어른이 제게 늘 말씀하시는 게 있어요.

 

'목사님, 사람을 절대 믿지 말아요. 목사님한테 잘 한다고 해서 믿지 말아요.

다 자기 이익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 이익을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다 떠나요!'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

사실은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이죠.

이런 실용주의적 기독교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내 이익에 맞지 않으면, 나를 지금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사람은,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섬겼던 사람과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럼 '이기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1. 첫번째 '남을 위해 섬기며 사는 신앙인'이 되도록, 끊임없이 지향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한 마디로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인데, 보세요.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적어도 예수님을 믿으시는 분이라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야 될까요?

내 삶을 제물로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한 삶, 이웃을 위한 삶으로 전환되셔야 돼요.

 

이미 지금까지 여러분 나를 위한 삶으로 충분히 도배하시면서 살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살아온 삶, 이제 지나간 때로 족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참 만족이 있었습니까? 그것이 정말 복음의 삶, 하나님 나라의 삶이었나요? No!

 

이제 언제까지 '나를 위한 삶'을 사는, 자기 만족을 누리려고 하세요?

만족은 커녕, '나'라는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이 나를 멀리 떠나심만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아무 응답을 안 하시죠. 사울 왕에게 하나님이 그러하셨어요.

하나님이 내 가까이 계심을 못 느낍니다.

하나님이 멀리 나를 떠나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기도를 점점 안 하게 되죠...

  

이제 앞으로는, 내가 좀 남을 위해 살며

성경적인 기쁨을 누려야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예수님이 앞서 가신 길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걸어가야 될 길인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인생의 참 만족과 행복은, 섬김과 희생과 자기 손해 감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우리 교회에, 동인천역 앞에서 노숙인들을 섬기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분들을 섬겨요.

어제는 한 형제가 거기 노숙자들의 옷을 걷어서,

근처 빨래방(코인 런더리)에 가서, 빨래를 해서 다시 나눠줬다 그러더라고요.

 

여러분 노숙인들의 그 옷은, 정말 냄새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옷들을 모아서 본인 차에 싣고 근처 빨래방에 가서 세탁통에 집어 넣는데,

그러면 그 냄새(악취) 때문에, 빨래방에서 빨래하던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를 쳐다보며 찡그린대요.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늘 그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형제는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동인천 역에서 노숙인들을 수년 간 묵묵히 섬기는 여러 자원봉사자 성도님들이 계시며

그 중에는 또한 우리 교회 청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들을 보면서, 자기는 더 은혜를 깨닫는다고 해요.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는 성경을 여러 번 읽으시고,

그렇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섬기시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망각하고 살아가는 수준인 분들이 있습니다.  *이기주의 신앙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능력을 베풀고 다니시고, 권능을 행하셔서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 이런 사역만 목회자들이 가르쳐서,

오늘날 예수님을 본받는 신자들, 그래서 이웃과 사회를 섬기려는 신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가, 본능적으로 자기를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데,

그 인생에 참 만족과, 복음이 주는 행복과 감격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죠.

 

주님은 뭐라고 그러세요? '그게 나에 대한 본질이 아니다.

그게 내가 이 땅에 온 주 목적이 아니다!'

'그게 내가 했던 주된 사역이 아니다. 내 사역의 본질은 십자가다!' 자기 희생을 뜻합니다.

 

그리고 한 알의 밀알로 사는 삶을, 우리에게 도전하신 거예요.

요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오늘날 십자가를 빼버린 기복주의 신앙, 이기적인 신앙 때문에

지금 우리의 교회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만약 코로나가 끝나고, 교세가 줄어들었다고 한다면,

그 십자가 신앙이 아예 애당초 없었던, 가라지 신자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목회자들이  다 말해요.

그런데 과연 대안을 찾고 있습니까? 대안을 찾고 있지 않다면, 죄송한 얘기지만

입으로는 '문제다, 문제다' 하지만, 속으로는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나에게는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면 왜 요즘 이렇게 십자가를 붙들며,

십자가 신앙으로 제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왜 혼자 그렇게 '자아의 우상'을 섬기며, '자아의 노예'에 꽉 붙잡혀서

 

기회만 되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살고, 

진탕 놀고 싶으면 놀고,

주일 전날에도 밤늦게까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주일날에는 피곤하다고 못 일어나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또 믿는답니다. '자기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여러분, 왜 자기만을 위해서 살다가.. 영영 멸망당하고자 합니까?

왜 자기밖에 모르는 신앙생활하다가, 망하려고 하십니까?

 

▲2. 두 번째, 이기적인 신앙을 이기는 길은

"십자가 신앙으로 사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셔야 돼요.     *십자가 신앙, 십자가 설교 

(위 세모 1번과 세모 2번이 사실은 하나입니다.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것이 사실은 십자가 신앙)

 

십자가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전혀 타협하지 마세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한국 교회에는 다양한 신앙칼라, 다양한 신학적 입장, 다양한 영성들이 많아요.

 

여러분 그런 다양한 신앙 형태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서 있어야 됩니다.

십자가가 중심되지 않은 신앙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다 가짜입니다.

 

여러분,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신앙도, 십자가 신앙입니다.

우리들이 입으로는 나는 죽었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고

세상을 버렸다고 하면서도, 현실에는 하나도 버리지 않고

주님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고,
십자가 신앙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십자가의 희생, 십자가의 사랑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완전히 모순인 것이죠.

 

여러분, 십자가 신앙으로 살지 않으면, 십자가에서 내가 죽지 않으면

우리의 이기심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나밖에 모르는 신앙인들로 변질됨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만났다고 하는 표현은 무슨 말입니까?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갈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경의 진리, 기독교의 진리는 꽁꽁 감춰놓으신 게 아니에요. 바로 이겁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마치 무슨 암호 풀듯이, 어려운 비밀문서 해독하듯이

성경을 비비꼬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희한한 성경해석(소위 영해)을 가지고 나와요.

그러면 이게 진리인 줄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소수만 아는 어려운 문제풀이 식의 성경 해석,

그런 것에 너무 귀기울이지 마세요.

 

주님의 진리는,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는 방법은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 있어요.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는 것밖에 없습니다.

마16:24~25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십자가 신앙이란, 이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큐티를 강조하는 신앙은 좋았는데,

큐티하고 그저 주저앉아만 있는 거에요.  그런 큐티는 그만해야 돼요.

제발 그런 묵상은 그만해야 돼요. 따르지도 못하는, 발걸음이 없는 큐티를 뭐하러 합니까?

 

대신에 한 구절이라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한 구절이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됩니다.

언제까지 자기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지성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 가겠습니다?

 

이제 그만 묵상하셔도 돼요. 대신에 사랑하시면 돼요.

그만 공부하셔도 돼요. 대신에 기도하시면 돼요. 용서하시면 돼요. 순종하시면 돼요.

여러분, 그거 말고 뭐가 중요합니까? 뭐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어놨어요?

십자가의 진리를 자주 접하는 것만이, 이 지독한 자아숭배자들을 회심 시킬 수 있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