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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바쳐진 아간 수7장 1~26 2010.01.20. 여러 설교 정리
*설교 요지 : 1) 여리고 성의 전리품, 즉 바쳐진 것에 대하여 손을 댄다는 것은
그 전쟁에 자기의 공로를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 전투는 여호와의 구원전쟁이요, 가나안의 진멸전쟁입니다.
거기에 인간이, 자기 공로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전리품을 일부라도 취하는 것은, 자기가 그 전쟁에서 이겨서
당연히 전리품을 가졌다는 뜻이니까요!
2) 그리고 아간의 가정이 불사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바쳐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여리고 성은 가나안의 '첫 성'으로서, 마치 첫 열매처럼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그래서 모두 불살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치 번제물처럼요.
그런데 아간이 그 소유물(여호와께 바쳐진 물건)을 얼마 감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 바쳐진 물건'을 얼마 가지고 있다가, 그의 장막 전체가 여호와께 바쳐져 버린 것이죠
그래서 '그들(아간 가정)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바쳐진 제물들이 불살라 졌던 처럼, 아간 가정도 불살라졌던 거죠.
.......................
◑도입 / 부르짖는 기도라도 원망, 불평으로 일과하면 안 됩니다.
지난주에 여호와께 부르짖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부르짖는 것이 기도의 형태이든, 원망의 형태이든 간에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인데
대부분의 부르짖음이란 원망과 불순종의 부르짖음임을 보았습니다.
10가지의 재앙을 보고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모세를 원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
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민14:1~5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1절에서 온 회중이 밤새도록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한 것이 기도입니까?
원망입니까?
2절에 보시면 원망입니다. 출애굽 자체를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수많은 기도회가 그것도 철야와 금식 기도회가
하나님께 원망하는 농성데모장과 별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이 없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기도라는 형식으로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창세기로부터 여호수아서에 이르기까지 기도하고 부르짖는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이런 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다수가 부르짖는 내용이란,
왜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살게 하지 않고 고생시키느냐는
원망과 불평의 부르짖음인 것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 마을 수련회 강의를 책으로 묶은 ‘욥 안의 그리스도’라는 책의 부제에
‘왜 하나님은 별것 아닌 인간을 이토록 괴롭히나?’ 하는 글을
제 딸이 차 안에서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면 그렇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알고, 그 고난에 참여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세상에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진멸당해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사람입니다.
끝까지 자기 죄를 모르고 자기가 인생 살기에 괴롭다고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은.. 구원에 이르는 자들이 아닌 것입니다.
기생 라합처럼, 여리고 성이 진멸 당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러 온 자들을 숨겨주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소식입니다.
복음이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다는 소식을 먼저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회개를 외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삶의 방식과 그 삶의 목표를 180도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땅에서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들의
기존의 생각을 고수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환영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을 죽이기 위하여
여리고 성의 군인들이 혈안이 되어 찾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아간 가정이 덩달아 바쳐진 이유
이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리고성을 완벽하게 정복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침묵으로 성을 돌고
마지막 날에 함성을 지르자 성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복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보다 훨씬 작은 아이 성을 공격했다가 뜻밖의 패배를 당합니다.
여러분! 혹시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 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주1) 강추
▲그런데 이 성을 공격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성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진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나안 정복 때 첫 성이라서
수6:17~19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17절의 '바친 물건'은 히브리어로 '헤렘'인데, 이는 곧 하나님께 '저주받은 물건'으로서
결코 인간이 소유할 수 없었고, 온전히 죽이거나 불태워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했죠. (레27:28)
그런데 은금동철 기구들은 예외적으로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도록 했습니다. 아마 불을 지났겠죠. 민31:23
또한 바쳐진 것에 대하여 손을 된다는 것은
그 전쟁에 자기의 공로를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 전투는 여호와의 진멸전쟁입니다.
거기에 자기 공로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앞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먼저 앞장서 가신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성은 다시 재건하지 못하도록 진멸당한 흔적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여리고성에서 승리한 후에 두 번째 공격한 성은 작은 아이성입니다.
정탐하고 온 사람들의 보고에 의하면 백성이 다 올라갈 것도 없고
2~3천 명만 올라가면 되겠다고 하여, 3천 명을 보냈는데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36명이나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왜 이런 패배가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녹아서 물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 크고 견고한 여리고 성을 손도 대지 않고 무너졌는데
아이성의 패배를 받아 들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 성에서 패했다는 소문이 가나안 온 땅에 퍼지면,
나머지 성읍들을 정복해 나가는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은 불보듯 뻔했습니다.
수7:6~9절을 봅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습니다. 극한 슬픔을 표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자기 죄로 인하여 탄식하는 슬픔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지게 하였는가 하는 원망을 슬픔으로 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기를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여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고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 쪽(동편)을 만족하여 여겨 거기 살았다면 좋을 뻔 하였다’고 합니다.
여호수아마저 하나님의 언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분히 기도에 ‘원망’이 좀 섞여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계속 간구하기를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우리 이름, 우리 존재를 세상에서 없애 버릴 텐데)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9
여기서는 그래도 주의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간구를 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고 하시면서 어찌하여 엎드렸냐고 합니다. :10
여호수아가 기도한다고 엎드렸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께 ‘어찌하여 이렇게 하셨느냐?’고 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어찌하여 엎드렸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오늘 기도회로 모였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하여 모인 것입니까?
아니면 내 뜻대로 이루어달라고 모인 것입니까?
아니면 인생이 답답하여 이런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
여호수아처럼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느냐?’고 항의, 원망하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 가운데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진 물건을 취한 자가 있기에
그것을 취한 자는, 그도 바쳐진 자가 되었기에 멸하지 아니하면
결코 적들과 맞서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12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12
여리고 성의 사람이나 물건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바친 것이 됨이라’ .. 무슨 뜻인가요?
여기서 '그들'은 전체 이스라엘이 아니라, 아간 가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도둑이 훔친 물건(장물)을 사는 사람도, 같은 도둑으로 간주되는 법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쳐진 물건’을 가지는 사람도, ‘여호와께 바쳐진 것’이 되는 것입니다. *히, 헤렘
간혹 공항에서 남의 가방을 운반해 주었는데, 마약이 발견되면, 같은 마약범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리고 아간 혼자 범죄했는데, 그의 가정까지 함께 죽임을 당한 것은,
아간이 그 훔친 물건을 자기 장막 안 땅 속에 파 묻어서 감추었는데,
아간의 집안 식구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던 것입니다. 다같이 공범이 된 것이죠.
그래서 아간의 가정이, 나중에 돌로 침과 불사름을 받았습니다. :5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이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간이 억울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처럼,
아간의 가정이 불살라지고 진멸되었던 것입니다. 여리고성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입니다.
왜냐면 진멸될 물건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마약 운반하다가 마약범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간의 연고로,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전체가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갈5:9참조
하나님은, 그 다음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 적은 누룩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제하기 원하셨습니다.
실제로 그 누룩은 제하여 졌고, 이스라엘 회중은 다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고대 전쟁이란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 전리품을 챙기는 대가로 전쟁에 나가는 것입니다.
별다른 산업 수단이 없었던 당시는, 전쟁이 재화 획득의 큰 도구였습니다.
노예를 붙잡아와서 팔아도 큰 돈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여리고 성에서는 단 하나도 물건을 챙기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진멸전쟁이며 또한 이 전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동원이 되지만
그들의 힘과 지략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 때문에 승리하는 것임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은 생명을 건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아간이 이실직고를 합니다. 노략한 물건을 자기 장막 땅속에 감추었다고 합니다.
그 물건들과 아간과 그 가족을 함께 아골 골짜기로 가서 돌로 쳐 죽이고 불사르고 난 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습니다. 그래서 아골 골짜기 즉 괴로움의 골짜기라고 하였습니다.
아간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자기 공로를 챙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아간과 같은 모습이 없습니까?
아주 작은 일이라도, 여호와의 전쟁에, 우리는 자기가 한 것이 대하여
반드시 관심을 가지고, 몫을 챙기려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기도하고 부르짖는 내용은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을 행하시느냐?'는 원망의 부르짖음인 것입니다.
이런 부르짖음에는 하나님은 '네 속에 아간이 있다'고 하실 것입니다.
아간이란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그런 쪽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고 무엇이고 간에 내 욕심을 채워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자들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골짜기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2:14~23절을 찾아서 읽어보세요.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 아닌 자로 긍휼을 베풀며 백성을 삼으신다고 합니다.
아골 골짜기의 자리가 우리의 마땅한 자리인데
이 저주를 대신 담당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긍휼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골 골짜기도 소망의 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아골 골짜기에서도 범사에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아간을 향한 제비뽑기는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제비뽑기는 4번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첫번에 유다가 뽑혔습니다.
이 때 아간이 회개하였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결코 아간은 처벌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일1:9-10)
두번째로 세라 족속이 뽑힐 때만 회개하였어도 하나님의 마음은 풀어지셨을 것입니다.
아간의 영성이 무디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혹시나..’ 하였던 모양입니다.
세번째는 정말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네번째 끝까지 자기에게 제비가 돌아오기까지 악착같이 기다리는 아간은
정말 무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제비를 통하여 회개를 기다리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아간을 지명할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당장 저주할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간을 찾아내는데 장시간의 여유를 두신 것은
아간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붙잡은 사람에게는 축복이 있었지만
회개의 기회를 놓친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저주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아간이 훔친 금은 50세겔, 1세겔은 대략 11.4g 이니, 570그람입니다.
은은 200세겔, 2,280그람 입니다.
금값은 현 시세로 4천7백만원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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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으실 분 / 온전히 바친 물건 -이 단락 출처-
7장 전체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표현 중에 하나는 ‘온전히 바친 물건’이다(총8회).
성경에서 반복은 강조라고 했다.
그러므로 ‘온전히 바친 물건’은 상당히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절 말씀에 따르면 ‘아간’이라는 사람이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지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온전히 바친 물건’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개인이 가지는 것이 왜 그렇게 큰 죄인지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
6장을 보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 전 후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셨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6:17)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6:21)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6:19)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것’에 대해서 크게 3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에서 나온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한다(6:17).
-‘온전히 바친다’는 말 속에는 여리고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멸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6:22).
-여리고에 있는 것들 중 생명이 없는 은금동철 기구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구별해서 드려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은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어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소유물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레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레27:28)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리고 성 안에 있는 생명체를 살려 둔다거나,
은금동철 기구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누군가가 가로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수6:18)
그렇다. 이 명령을 어기는 자,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리는 자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아간이 이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것을 가로채고
그것을 자신의 장막 아래에 숨기고 말았다(21-23절).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으셨고(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들(아이성 사람들)과 능히 맞서지 못하도록 하셨다(13절).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었고, 백성의 마음은 녹아 물같이 되고(5절),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다(25절).
한마디로 아간의 범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간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모르고 온전히 바친 물건을 훔쳤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분명히 모든 백성들에게
‘온전한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아간만 이 명령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나중에 범죄 사실이 발각 되었을 때,
아간은 “그런 명령이 있었는지 몰랐다. 이게 죄가 되는지 몰랐다”고 변명하지 않는다.
자신도 그게 죄였음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수7:20
다른 걸 다 떠나서 그 물건을 숨겼다는 것 자체가,
그런 행동이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아간은 그것이 죄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대로 행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바로 탐심 때문이다.
그리고 아간의 이런 탐심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행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백 세겔과
그 무게가 50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7:21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세 개의 동사가 있다. 그것은 ‘보고’, ‘탐내어’, ‘가졌다’는 말이다.
이표현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을 때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여자가 나무를 ‘본즉’(보고), ‘탐스러웠고’(탐이 났고),
그래서 따서 먹고 남편에게도 ‘주었다’ 주었다는 말이다. 창3:6
그러므로 아간의 범죄는 단순히 옷 한 벌, 귀금속 몇 개를 슬쩍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행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경고하신 심판을
노골적으로 기만하고 무시하는 태도였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리는 범죄였다.
이처럼 아간은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탐심과 교만, 우상숭배의 죄를 저질렀다(골3:5).
하나님은 아간의 이런 범죄에 대해 ‘망령된 짓’이라고 정죄하신다.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7:15
여기서 '망령되다'는 표현은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 즉 간음을 뜻한다.
아간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봄으로써 영적인 간음을 저질렀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물건을 손으로 집어 듦으로써 영적인 간음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물건을 자기 장막에 깊숙이 숨기면서 아무도 모르고,
심지어는 하나님도 모를 것이라는 묘한 쾌감을 느끼며 영적 간음을 저질렀다.
한마디로 아간은, 남편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탐심을 정부로 삼아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영적인 간음을 저질렀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간을 찾아내시는 과정을 한 번 보라.
하나님께서는 제비뽑기를 사용하셔서 아간을 지목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제비뽑기에 대해서는 16-18절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비를 뽑을 때마다 지파에서 족속으로, 족속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개인(아간)으로
서서히 용의자가 좁혀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제비뽑기 과정을 통해서 아간의 집안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아간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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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여러분 혹시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 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sophomore’란 원래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2학년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2년생 때 흔히 나타나는 징크스를 말하는데 이런 겁니다.
정말 대단한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등단한 작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되도록 후속 작품을 전혀 못 내 놓는 겁니다.
또 심사위원들까지 깜짝 놀랄 만큼 걸출한 실력으로 콩쿨에 우승했는데,
그 뒤로 어쩐 일인지 더 이상 노래가 늘지 않는 성악가가 있지요?
그런가 하면, 프로야구나 프로골퍼로 화려하게 데뷔해서 신인상을 받았던 선수들이
2년차에는 그 성적이 형편없이 추락하는 겁니다.
모두 다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우리 생활 속에서도 많이 있지요?
한 마디로 ‘큰 성공 뒤에 오는 뜻하지 않은 실패’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소포모어 징크스’는 왜 일어날까요?
우선 지나친 부담감 때문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든 처음에 큰 성공을 거두면 사람들이 굉장히 기대하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차기작은 데뷔작보다 더 나아야 합니다.
운동선수들 같으면 성적이 전년도보다는 훨씬 더 좋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당연히 죽을 쑤게 되지요.
둘째로는, 약점이 노출되어서 그렇습니다.
차기 작은 데뷔작과 비슷해서는 안됩니다.
즐겨 써 먹던 방식을 다시 써 먹을 수는 없습니다.
운동선수들 같으면 그 선수의 장 단점을 잘 모르던 상대방 선수들이
이듬해에는 철저히 분석해서 약점을 찾아냅니다
당연히 성적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이유는, 자만심과 방심 때문입니다.
첫 해 너무 잘 나가니까 천하를 얻은 듯이 마음이 높아지고, 촬영이다 광고다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게을러진다는 겁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이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실력이 줄고 슬럼프가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2년생 징크스는 꼭 매스컴을 타는 유명인들에게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잘 모르고 지나쳐서 그렇지 우리도 생활 중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물론 모두 성장과 성숙의 한 과정이긴 하지만 그 후유증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가능하면 이런 소포모어 징크스, 즉 성공 뒤에 찾아오는 뜻밖의 실패는 없어야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학교를 들어가 놓고는, 일단 입학해 놓으니까 연습을 확 줄이는 사람들 있지요?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이런 징크스에 빠졌다가 회복되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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