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9 말씀사경회 둘째시간 / 엘리야의 승천 / 왕하 2장 1~11절 / YouTube
◈언약2강, 엘리야의 승천 왕하2:1~11 언약1강 2022.01.09.출처
지금 이 시간에는 구약 시내산 이후에 1400년의 역사를 우리가 다 공부할 거예요.
이 강의에 잘 집중하시면, 구약성경을 읽을 때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야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그런 유익을 얻은 내용을 이제 여러분과 나누는 겁니다.
구약의 어느 부분을 공부해도, 사실 구약을 관통해 가는 광맥(언약)을 우리가 만날 수 있는데
특히 좀 흥미로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좀 풀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2강은 "엘리야의 승천"을 살피겠습니다. *언약1강은 시내산 언약 -클릭-
본문 엘리야 이야기를 한 두 번씩은 우리가 읽고 배웠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멋있게 끝날 수도 있구나!'
'야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있는 채로 들림을 받았구나!'
우리가 엘리야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어도
엘리야 승천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저도 신학교 와서 배웠어요.
신학교 와서 엘리야의 승천의 의미를 구약신학적으로 분석을 하고 배워보니까
정말 너무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깊이 있는 내용이 있었던 겁니다.
질문 드리겠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사건은 과연 좋은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비극적인 일이겠습니까?' (일단 비극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러나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금송아지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배도 하는 모습 앞에서
모세가 들고 있던, 하나님이 직접 계시해주신 십계명 돌판을 던져서 깨뜨렸잖아요.
그 사건 자체는 굉장히 비극적인 사건을 표시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야의 승천사건도, 구속역사적인 전체의 시각에서 조명해보면
굉장히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저도 놀랬던 거에요.
왜냐면 이것은 지금 방금 말한 것처럼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깨뜨린 것과 같은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깨어졌다.. 결혼한 관계가 이혼을 하게 됐다.
이러한 것을 표시하는 것이 엘리야의 승천이 갖는 구속사적인 의미에요.
굉장히 충격적이죠.
그래서 오늘 엘리야 승천의 의미를 깊이 조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미리 말씀드리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먼저 <엘리야 승천의 비극적인 측면 3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일단 엘리야 승천 사건이 그렇게 좋은 일이었다면, 성경의 전체 흐름상 맥락이 해석이 안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1. 그 엘리야의 승천을 곁에서 목격했던 엘리사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물론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계속 엘리사는 졸졸 따라다니면서 반대했어요.
'떠나지 마시고 우리와 함께 계세요.' 그렇게 옆을 졸졸 따라다녔는데
막상 엘리야가 승천한 게 좋은 일이라면, 마지막 단계에서는 박수쳐 주면서 보내야죠.
'선생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은퇴를 축하드립니다.' 이래야 되는거 아니에요.
근데 엘리야가 승천하자마자 성경에 기록된 첫번째 반응은 이렇습니다.
'엘리사가 보고 소리를 지르며 자기의 옷을 잡아서 둘로 찢었어요.' 왕하2:12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옷을 둘로 잡아서 찢는다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요.
웬만한 슬픈 상황 앞에서는 옷을 찢지 않습니다. 정말 민족적인 비극앞에서 옷을 찢어요.
그리고 곧이어서 엘리사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14
요단 강변에서 통곡을 하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부재상황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약속의 땅, 자기의 백성과 신부 삼으신
하나님의 백성을 떠나셨다..는 것을 정확히 반영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일단 엘리사의 반응을 보면
이 승천 사건이 심상치 않은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2. 두 번째. 엘리야 승천 이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느냐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렘31:32
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언약이 깨졌다고 선언합니다.
이 깨진 언약이 결국은 어떠한 비극을 낳았느냐?
어떻게 결론지어졌느냐를 보여주는 표적적인 사건이 엘리야의 승천사건인데
마치 모세가 십계명을 던져서 깨뜨린것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파경에 이르렀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1강에서, 시내산 언약을 맺고
그 두 번째 세대가 이제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에
40년에 걸친 신혼여행을 마치고 모세가 설교를 합니다.
모세의 긴 설교고, 고별 설교죠.
모세의 그 세 편의 긴 고별 설교를 기록한 것이 신명기에요.
그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제 너희에게 밝은 미래가 펼쳐진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두 가지 선택의 길을 제시하셨다.
너희가 언약백성으로서 순종해서 잘 살면
이러한 이러한 축복을 받을 것이고
너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또 다시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섬긴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또 배도하면
너희에게 이러한 저주가 내릴 것이다...' 그거를 지금 모세가 설교를 하고 있어요.
그게 신명기28장과 레위기26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자 신명기28장의 전반부는 축복의 길인데요.
너희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와도 복을 받고, 너희의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너희가 전쟁을 하면 백전백승을 할 것이고, 너희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거고
너희 나라를 하나님이 세계 최고의 부강한 국가로 만들어주셔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축복의 선언을 14절에 걸쳐서 하셨어요.
그리고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그러나 너희가 범죄하면 하나님이 이러 이러한 벌을 너희에게 내리실 거야.
너희가 들어가도 저주를 받고 나와도 저주를 받고
너희가 농사지으면 다 망하게 되고
전쟁하면 다 패하게 되고..' 이렇게 여러가지 저주를 말씀하셨는데
비슷한 내용이 레위기 26장에도 나옵니다.
여러분, 신명기28장과 레위기26장 전체를 한번 비교하면서 읽어보세요. (거의 비슷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부여주시는 '저주'에 대해
크게 몇 가지 단계로 구분했어요. 레26장에. 갈수록 강도가 점점 더 세지는 거죠.
첫번째는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면 자연재해를 당할 거야.
근데 자연재해도 그 단계가 있어요.
하나님이 처음엔 좀 약하게 가뭄을 주셨다가
그래도 회개 안 하면 더 세게,
그래도 회개 안 하면 전쟁,
그래도 회개 안 하면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어떠한 저주가 있냐면
적군이 너희를 포위해서 너희가 먹을 것이 없어서 '너희 자녀를 서로 잡아 먹을 것이다' 신28:57 레26:29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린 결과로 말미암아
이렇게 언약적인 저주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레위기 26장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의 하위법입니다.
가장 상위법은 출20장의 십계명 법이죠.
언약에는, 언약(약속)을 맺은 조항이 꼭 구성되어 있죠. 요즘 말로 '계약 약관'
만약에 언약 맺은 조항이 없으면, 그건 빈깡통이고, 언약이 아니게 되죠.
즉 신28장, 레26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은 언약 조항으로서
계명을 지키면.. 언약 조항에 명시된 대로 축복을 받고
계명을 어기면.. 언약 조항에 명시된 대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에도 전화나 인터넷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면,
거기에 따르는 불이익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근데 그 언약 불이행의 결과가, 신28장, 레26장에는 끔찍하리만큼 크죠.
레위기 26장에 보면, 먼저 7배의 저주가 나와요. 레26:18
그 다음에는 7배에 7배 저주가 나와요. :21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점점 강도를 세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 단계가 되면 어떻게 할까요? 다 멸절해야 되겠죠.
근데 하나님이 진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래서 진멸은 하실 수 없어요.
예수님 오실 때까지 역사가 계속 지속돼야 되잖아요.
신28장, 레26장 저주의 가장 마지막 단계가 뭐냐면 디아스포라 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거예요.
'언약의 땅에서부터 다 쫓아내서 전 세계를 흩어버릴 거야'
그게 언약적 저주입니다.
예를 들면, 처음 보험 계약을 맺을 때, 그 약관에 있는 거에요.
시내산 언약을 맺고 하나님이 축복의 내용과 저주의 내용을 이렇게 적시하셨어요.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뭘까요?
적에게 포위되고, 전쟁에서 지고, 기근으로 죽는 그 다음 단계,
그래도 회개를 안 하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 그 다음 단계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의 1천년 역사에, 그래도 언제 그나마 언약대로 태평성대를 누렸나 봤더니
통일왕국시대인 사울 40년, 다윗 40년, 솔로몬 40년 때였어요.
그때 까지는 그래도 대체로 하나님의 복을 누린 단계에요.
그러다가 주전 931년에 북왕국과 남유다가 분열됩니다. 그게 저주에요.
왜 그러냐면 솔로몬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북한과 남한이 이렇게 갈라진 것처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이제 갈라졌어요. 그때부터는 그렇게 국운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 시기가, 이스라엘이 바람피우기 시작한 시기에요.
이거는 고고학적으로도 지금 다 증거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섬겼던 유적지 터에 바알과 아세라 신상이 같이 발견이 되요.
그래서 학자들이 어떻게 추정하냐면,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다리를 걸친 거예요.
낮에는 여호와를 섬기고, 또 밤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이방 신상을 섬기고...
이렇게 배도하는, 외도하는 긴 세월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그 상황이 더 악화되어 이제 본격적인 저주로 진입하는 단계입니다.
그때가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주전9세기.
이때 북이스라엘에는 아합왕이 있었어요.
아합이 그때 어떤 일을 행하냐면, 공식적으로 북이스라엘의 국가종교를 바꿉니다.
원래 그래도 양다리를 걸쳤어도, 이스라엘의 국교는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였어요.
근데 아합 때 이세벨과 결혼하면서
바알과 아세라 신을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 삼고, 그것만 해도 큰 배도죠.
여호와신을 섬기는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다 잡아 죽입니다.
엘리야가 피부로 느낀 것은 '다 잡아 죽이고 자기만 살았다' 그랬어요. 왕상19:14
그러니 이거는 배도의 끝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국가 종교를 공식적으로 바꾼 거예요.
그때 나라가 전체적으로 '언약적 저주상태'에 진입을 하게 돼요.
그래도 회개하지 않죠. 회개하지 않죠...
그러다가 결국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단계로 (레26장에 의거)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로 흩어버리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든지 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저주를 향해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주 단계로 진입해 갈 때, 정말 하나님의 강한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냅니다.
마치 음악의 어머니 아버지가 바하와 헨델이라고 그러잖아요.
그처럼 모든 선지자의 어머니 아버지가 엘리야와 엘리사에요.
그리고 성경이 기록된 가장 많은 선지자가 활동한 때는 BC 8세기 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떼로 보내요. 이 시기에 제일 많이 보내셨어요.
그래서 많은 기적들을 행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이거든요.
이렇게 포로로 잡혀가는 벌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보내세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BC722 년에 망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가 주전 8세기 잖아요.
그때 북이스라엘에 많은 선지자들이 활동했고 (아모스, 호세야 등)
남유다가 조금 더 오래 버텼죠. 그러다가 BC586년에 바벨론으로 다 팔려갔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시내산 언약으로) 언약하신 대로 역사가 성취됐고요.
그때 많은 선지자들의 북이스라엘이든, 남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든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어요. '너희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그러면 다 쫓겨나리라!'
그 당시에 각 선지자들이 물론 하나님 으로부터 받은 계시가 있지만, 그 외에도
정말 많은 그 당시에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똑같은 메시지를 전했다고 봅니다.
이미 경고 된대로 역사가 흘러가기 때문에, 이 똑같은 공통된 메시지를 외쳤던 겁니다.
그러나 한번 돌아간 바람난 신부의 시선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아요.
그 마음이 한번 변절되면, 그거 돌아오는 게 정말 힘든 겁니다.
▲그래서 엘리야시대를 한번 우리가 지금 살펴보려고 해요.
그래서 엘리야의 승천사건이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겁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얘기하냐면요.
왕상21: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성경 자체가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배도했다, 악한 길을 갔다, 여로보암의 길을 갔다' 이렇게 기록하잖아요.
그러다가 주전 9세기 아합 때 이르면, 아예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가 뭐라고 기록하냐면
'아합 같이 악한 자는 전무무하다.' 이게 아합에 대한 성경의 평가에요. 왕상21:25
그래서 그 이세벨이 무슨 일을 했냐하면
여호와의 선지자를 멸하고,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다.' 엘리야가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왕상18:4, 19:14
그래서 그 유명한 갈멜산 대결이라는 게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겁니다.
그럼 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살았던 엘리야 선지자,
그의 소명은 무엇일까요?
돌아간 신부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 이게 엘리야의 지상 소명입니다. *가장 중요한 소명
그래서 어떻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릴까?
이거를 얼마나 엘리야가 고민했을까요. 그러다가 해답을 찾았어요.
'왜 우리의 조상들은 그래도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았는데 (출애굽 당시에 보면)
왜 우리는 이렇게 배도한 이러한 비극이 연출됐을까?
우리의 조상과 우리의 차이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느냐/ 안 했느냐에 있다.'
라고 엘리야가 결론을 내립니다.
자 우리의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눈 앞에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봤어요.
'그리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메추라기를 하나님이 내려 주셨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왔고... 이러한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계신 것을 지금 만천하에 현현해 주시냐?
안 하지 않느냐?
결국 누구 탓이냐? 하나님 탓이다!'
이게 엘리야 선지자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엘리야는 하나님께 조르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린 적은, 시내산에서(출19장), 기드온 때, 솔로몬 제사 때 등
과거에 몇 차례 있었죠.
왕상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만천하에, 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앞에서 나타내소서!
그러면 바알에게 돌아간 신부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겠나이다.' 엘리야가 그걸 갖고 막 간구했어요.
우리도 그런 기도를 하죠. '하나님, 이 인간은 여간 해서는 예수 안 믿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좀, 기적을 체험하게 해주세요.
다리 몽댕이를 좀 부러뜨리든지 해서라도 주님께 돌아오게 해 주세요!'
엘리야도 그런 심정으로, (기적을 보여달라고) 간구했어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갈멜산 대결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등
나라의 최고의 종교인들 850명이 집결했습니다. 850:1 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불로 제단을 태우시는 그 유명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이후에 정말, 갈멜산에 내린 여호와의 불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바꿔 놓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돌이켜 놓았습니까? 이거 여러분 정말 정직하게 한번 생각해 봐야 돼요.
갈멜산 전투가 해피엔딩이에요?
물론 그때는 '와 살아계신 하나님이 진짜다!' 그러고
거기에 있었던 바알의 선지자들을 다 죽였어요.
그래가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듯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데는 실패합니다.
'너희가 언제까지 머뭇머뭇 하려느냐?' 엘리야가 이렇게 책망하는데도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엘리야 편에 섰다고 기록이 안 나와요.
오히려 이세벨이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엘리야) 생명으로 저 사람들 (엘리야에게 죽은 바알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왕상19:2
그때 이스라엘이 엘리야 편에 안 섰어요. 섰다면 엘리야가 도망 안 갔겠죠.
엘리야가 그래서 도망가죠. 그 위대한 선지자가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도망가요.
그래서 로뎀나무 아래서 엘리야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자기는 마지막 승부수를 건 거예요.
이거면 되겠다 해서 거기에 올인 했는데, 그 기도대로 하나님이 불로 응답도 해주셨는데
자기가 기대했던 결과가 안 나온 거에요. 이제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어요.
그래서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서 광야로 도주합니다.
그래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왕상19:4 주1)
이게 지금 엘리야 시대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먹고 재우고, 또 먹고 재우고 한 다음에
사십 주야(밤낮)를 걸어서 먼 장소로 데려갑니다. 그 장소가 어디냐면 호렙산 이에요.
그 산이 어떤 산인지 아시죠? 오래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결혼했던 장소에요. 출19장
결혼했던 장소로 엘리야를 데려가셔서
거기서 정말 엘리야에게 이상한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1~13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내용을 보여주세요.
하나님이 크고 강한 바람, 그 다음에 지진, 그 다음에 불
이렇게 자기를 현현 하세요.
이렇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십니다.
근데 이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순다고 그랬어요. 주2)
우리나라에는 없는 토네이도가 있어요.
그게 바람이 한번 불면, 이게 집이 통째로 날아가고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토네이도처럼 강한 바람도 산을 가르지는 못해요.
아무리 강력한 바람이라도 설악산을 두 쪽 내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 지상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바람이에요.
아마 이 바람에 가장 근접한 게, 홍해를 갈랐던 바람일 겁니다.
엘리야가 보기를 원했던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지나가신 거죠.
그런데 그런 어마어마한 바람 가운데도 하나님은 안 계셨고,
그 다음에 지진, 마치 미국 서부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그런 엄청난 지진에도
여호와께서 안 계신다 그랬어요.
왕상19:11~12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가장 강력한 자연재앙을 엘리야에게 보여주셨죠.
그런데 다 공통점이 뭐냐면, 거기에 여호와께서 안 계셨다는 거에요.
이 '여호와께서 안 계셨다'는 의미가 뭘까요?
그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지금 재미있는 주문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 내가 네 기도대로 응답해줬지? 앞으로도 더 응답해 줄 수도 있어'
사실 엘리야는 악에 받쳐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망가지기까지 하나님 뭐하고 계셨습니까?
이 시대에, 홍해 사건 몇 번만 더 펼쳐 보여주시면, 상황 정리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막 따졌을 거 아니에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go out and stand 하시더니' 왕상19:11
하나님께서 이렇게 얘기신 거죠.
영어로 stand 가 그냥 단순히 서는 게 아니라 '견디다. 버티다' 이런 뜻이 있는 거 아시죠?
사실 엘리야가 혼자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엘리야 혼자 산 속에 서 있는데
그러한 무서운 토네이도 바람, 그 다음에 불, 그 다음에 지진.. 얼마나 무서웠겠냐고요?
그런데 '내가 너 원대로 이러한 강력한 자연 재앙 안에서 현현 할 테니까, 너는 나를 찾아봐!'
엘리야가 눈을 부라리고 하나님 어디에 계신가 찾은 거죠.
'여기도 안 계시네요. 저기도 안 계시네요'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뒤통수를 치십니다.
'너를 봐라, 너는 이 어마어마한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이러한 홍해를 가르는
그러한 강력한 바람 앞에 무릎 꿇었느냐? 안 꿇었지?
이러한 무서운 지진 앞에, 불 앞에 네가 무릎 꿇었냐? 안 꿇었지?
그런데 왜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기적을 보고 무릎을 꿇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인간을 만들어서 내가 잘 알어. 인간은 배도 하고 반항하고 내가 하나님께 저항하겠다 마음먹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무섭게 위협해도, 목을 곧추 세우고 나를 죽여보세요! 이럴 수 있는 게 인간이야.
인간은 완력을 써서 마음을 정복하는 존재가 아니야!'
이게 사실은요. 요나의 박넝쿨 교훈과 맞닿아 있는 맥락이에요.
요나를 박 넝쿨가지고 교훈하셨잖아요.
그것처럼 지금 엘리야에게 레슨을 주시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리시냐?
물로도 안 하고, 불로 도 안하고, 지진으로도 안 하고..
이 모든 것에 안 계시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소리 gentle whisper'
말로 하시겠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정복하시느냐?
어떤 기적이나 완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 말로써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 가운데도요, 위협적인 말들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윽박지르지 않고 gentle whisper 부드럽게 인격적으로 속삭이듯 말하시겠다는 거예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도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설교가 오늘날의 '세미한 음성, 젠틀 위스퍼' 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선포되는데, 그 방식은 너무 부드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그 말씀 듣고 있으면 졸릴 정도예요.
그래서 설교시간에 여러분이 그렇게 자는 거에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겠다는 거에요.
근데 우리는 너무나 끊임없이 엘리야의 불평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시다면서요? 하나님이 살아있는 것 좀 보여 주세요.
저 원수의 다리를 좀 부러뜨려 주세요...'
그러면 그 순간은, 원수가 하나님 앞에 '아이고 무서워!' 그러고 무릎 꿇겠죠.
겉으로 무릎 꿇어도 마음이 항복 안 합니다. 마음이 항복을 해야 그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 거죠.
사람은 겉으로 위협하고 겁박해 가지고, 그렇게 해서 엎드려 절 받기..
그거 하나님은 질리셨습니다. 그거 안 하시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도 혹시 여러분 새벽마다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좀 기도를 수정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그렇게 선지자들을 보내서
가난하고, 능력 없고, 정말 질그릇 같고.. 그러나 말을 잘 해요.
목사님들이 어디 가서도 말은 안 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꿋꿋이 대언하죠.
그런데 '세미한 음성으로' 하기 때문에, 또 그거 답답해하는 성도들도 있어요.
그러나 그게 하나님이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 방식인 겁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동화 다들 아시죠?
나그네에게 겉옷을 벗긴 게 바람이었습니까, 태양이었습니까?
바람이 아무리 강하게 불어도, 나그네는 절대로 겉옷을 안 벗었죠.
오히려 태양이 따스하게 녹여서 스스로 벗게 만든 거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러한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래서 자녀들이에게 소리 버럭 지르면, 그 순간은 말을 들을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자녀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인격적으로 대우하셔야 됩니다.
오늘부터 겁박하지 말고, 소리 지르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걸 다 해보셨어요. 우리보다 수만 년 더 사신 하나님이
'그렇게 해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게 아니야!' 하십니다.
인격적으로 세미한 음성으로, 잰틀 위스퍼로 그렇게 대하시길 바래요.
인격적으로 내가 대우를 받을 때, 우리가 마음을 엽니다!
지금 이 강의의 흐름이 "엘리야의 승천은 비극이다"라는 맥락으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세모1번, 승천 후 남겨진 엘리사가 자기 옷을 찢었다는 것은, 그게 비극이라는 증거이고,
세모2번, 엘리야가 '선지자는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했는데, 그마저 하늘로 떠나버린 거예요.
그래서 시내산 언약에 적시된 대로, 나중에 이스라엘은 포로로 다 잡혀가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승천이 비극이었고요,
▲3. 엘리야의 승천이 비극인 이유, 마지막 세 번째는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데,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이혼하고
하늘로 돌아가버리심을, 그의 승천이 상징합니다. 그래서 그의 승천이 비극인 거죠.
*'놀라운 기적'이라는 통념이 아니라
엘리야의 승천 경로와,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한 일을 우리가 이해하고 나면,
정말 소름이 돋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십 주야를 걷게 해서
결국 엘리야를, 과거에 모세 때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결혼했던 호렙산으로 데려가셨어요. *출19장
그런데 히브리어를 보면 아주 독특한 단어가 쓰여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메아라'가 동굴이라는 말인데, 거기 앞에 정관사 '하'가 붙어 있어요.
영어로 the cave죠. a cave가 아니에요. 그냥 아무 동굴 하나에 하나님이 엘리야를 두신 게 아니에요.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왕상19:9
엘리야도 알고, 하나님도 아시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이 동굴을,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서
하나님이 모세를 바위 틈에 숨기셨죠. *출33:22
그때 그 바위 틈이라는게, 지금 엘리야가 찾아간 그 동굴이에요.
학자들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자기를 현현 하셨던 바로 그 역사적인 장소였다고 해석합니다.
저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정말 정확히 결혼식을 올리고
역사적으로 언약을 맺었던 그 장소로 데려가서
엘리야가 한 일이 뭐냐 하면 '법적인 용어'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송사합니다.
송사하면서 뭐라 그러냐면
'하나님,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저만 남았습니다!'
그건 뭐냐면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셔도 좋습니다.' 라는 말이에요.
이게 모세의 태도랑 사뭇 대조를 이뤄요.
모세는 똑같이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금송아지를 섬겼을 때
'하나님, 이 사람들을 용서해주세요. 차라리 생명책에서 제 이름을 지우시고..'
이렇게 모세는 중보자, 변호사의 역할을 했다면
지금 엘리야의 역할을 뭐냐면,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고발하는 거예요.
로마서는 법적인 용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거는 검사가 하는 역할이에요.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을 고발한 사람이에요. 무서운 사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게 구속사적으로 모세의 역할이 있고, 엘리야의 역할이 있는거에요.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의 대조를 한 번 보세요.
모세는 '저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원컨대 주께서 기록한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소서' 출33:32
그런데 엘리야는, 같은 그 장소(동굴)에서 이렇게 합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롬11:2~3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셔도 좋습니다.' 이러한 맥락인 거에요.
이게 모세와 엘리야의 역할이 각각 구분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필요, 엘리야도 필요)
△이걸 이해하고 나면, 신약성경의 변화산 사건이 이해가 돼요.
변화산에서 예수께서 변화하시고 엘리야와 모세를 만나셨잖아요.
자 예수님께서 왜 별세하시기 전에, 십자가를 지러 가시기 전에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을까요?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을 중재한 선지자요.
엘리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렀음을.. 이혼을 중재한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결혼하고 이혼했어요.
그 다음에는 뭐 할까요?
돌싱이 아니라, 재혼입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의 성격을 드러내는 거예요.
지금 이혼했고, 이혼한 상태고, 이 상태에서 예언된 게 뭐에요?
'돌아간 신부의 마음을 신랑에게 이 마음을 돌이키는 사역' 말4:6
그 사역을 누가 이어받았습니까?
또 세례요한(오리라한 엘리야)이 이어받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엘리야가 다시 올 거다..
세례요한과 엘리야를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취급하셨거든요.
왜냐하면 사역의 성격이 같아요.
그래서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면서, 돌아갔던 이스라엘의 마음을
두 분 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사역에 헌신한 거죠.
그것이 성취되는 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입니다.
그래서 재밌잖아요. 결혼, 이혼, 재혼! *결혼은 모세, 이혼은 엘리야, 재혼은 예수님
'그런 의미를 가졌구나' 하고 우리가 이제 살펴볼 수 있어요.
자 이 엘리야의 행적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고 했습니다.
합신에 들어가서 구약총론 시간에 이 내용을 다 배웠습니다. 물론 어렵게 배웠어요.
그걸 지금 제가 주일학교 버전으로 쉽게 요리를 해서 설명 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엘리야의 승천사건을 성경이 기록하면서
이상하게 성령께서 엘리야를 여러 역사적인 장소로 보냅니다.
왕하2: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길갈 - 벧엘 - 여리고 - 요단으로 감 (왕하2:1~6)
①처음에 길갈에서 출발했어요. 길갈은 어떤 장소냐면, 호렙산과 매치가 되요.
자 출애굽 1세대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결혼언약을 맺었죠.
그 자녀 세대(2세대)가 정복전쟁 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길갈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서 할례를 행합니다. 40년 세월이 지난 후였죠. 그래서 호렙산과 매치.
할례라는게 사실은 세례, 그리스도와 연합, 즉 결혼을 의미하거든요.
그래서 길갈은, 제2세대의 호렙산인 거죠.
②자 그 역사적인 길갈 그래서 <벧엘>로 보냅니다.
벧엘은 어떤 장소냐면 아이 성 전투가 있었던 장소에요.
아이 성 전투 때, 이스라엘이 매복했던 장소가 베델 부근입니다. *아이와 벧엘 사이
그리고 유명한 여리고 전투가 있었죠.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 서편에서 요단강을 도강 합니다. *벧엘이 요단강 서편
요단강 도강할 때, 여호수아 때의 기적을 재현했어요.
엘리야와 엘리사가 건널 때 요단강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거기 도하해서 요단강 동편에서 승천해요.
이게 정확히 어느 장소냐 하면,
여호수아가 출애굽해서 요단강을 건너갔던 그 장소가 정확히 갈라졌던 그 장소이에요.
그러니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가르고, 가나안에 들어갔던 장소들을
지금 엘리야가 역순으로 가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역순으로 가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아이) 성 전투 무효야!
-여리고 전투도, 이 세상에 없었던 거야!
-요단강이 갈라진 기적도 없었던 거야!
이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역사를 하나씩 다 지워가고 있어요.
(왕하 19장의 호렙산에 가서 엘리야가 이혼했으니까)
그래서 요단강 동편까지, 엘리야는 엘리사와 동행하며
그 모든 하나님과의 동행을 상징했던 기억들을 다 지운 후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데려가십니다. 승천하신 겁니다.
지금 엘리야는 하나님을 (그 분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은, 바이바이! 하나님이 하늘로 돌아가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과 파혼하시고, 하나님이 이 땅을 떠나버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의미를 깨달았던 엘리사가 자기 겉옷을 찢었던 겁니다.
그게 너무 소름 돋잖아요. 두 남녀가 너무 사랑해서 결혼까지 해서 좀 같이 살았어요.
근데 뭐가 틀어져가지고, 양집안이 대판 싸우고, 결혼 무효야! 하고 갈라선 것과 마찬가지죠.
여러분, 서울에 석촌호수가 있는데, 거기서 그렇게 많은 남녀들이 프로포즈 하고 반지를 주고 받는데요.
그런데 또 커플이 깨지면, 석촌호수에 와서 그 반지를 호수에 던져버린데요.
그래서 석촌 호수에 물을 빼면, 거기에 커플링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뭐 그런 얘기가 있는데,
지금 하나님이 그러시는 거잖아요. 야 너무 속상하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대변하는 대언자 엘리야가, 호렙산에 가서 (과거 결혼식 장소에 가서)
그때 결혼 한 거 다 정리하고,
또 여호수아 시대 때, 요단 - 여리고 - 아이 (벧엘) - .. 이런 옛 기억도 다 지우고,
신랑 하나님이 하늘로 돌아가 버리십니다. 그게 엘리야 승천의 의미입니다.
그 의미가 정말 이런 의미라면, 이러한 비극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엘리사가 자기 옷을 찢고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하고 그렇게 울부짖었던 겁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설교를 마치면, 여러분은 오늘 우울증 걸리십니다. ㅎㅎㅎ
성도가 설교를 들으면, 은혜 받고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우울하게 설교를 마치면 안 돼죠.
그럼 이제부터, 좋은 측면 세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엘리야 승천의 긍정적 측면 세 가지
▲1. 첫번째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죽이지 않고 산 채로 데려가셨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좋은 포인트에요.
왜냐하면 여러분, 사람은 반드시 이 땅에서 죽게 돼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죽이지 않고, 엘리야를 산 채로 데려가셨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소망을 줬냐면
'그 엘리야가 다시 온다' 하는 엘리야 재림사상 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도 그렇게 예언이 됐어요. 말4:5
그래서 이스라엘이 너무 민족적으로 힘들 때, 우리는 일제 치하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너무 큰 상처를 받았잖아요.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몇 배에요.
뭐 헬라제국의 알렉산더에 의해서, 또 로마 제국에 의해서
그 앞서 바벨론에, 페르시아에.. 이렇게 강대국들의 식민 통치를 많이 받았어요.
민족이 말살될 위기에 처한 적이 연속이었어요.
그런데도 민족적 정통성을 어떻게 유지했느냐?
하나님이 산 채로 데려간 엘리야가 다시 온다.. 하는 믿음이 저들에게 있었어요.
앞으로 반드시 좋은 시대가 온다. 엘리야가 온다.. 그 토속 신앙화된
'엘리야 재림사상'을 예수님께서도 야단치지 않았어요.
'오리라 한 엘리야가 왔다. 그게 세례요한이다.'
그래서 엘리야의 승천은 민족의 소망이 됐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는 이스라엘에게
엘리야를 하나님이 산 채로 데려가셔서, 반드시 산 채로 엘리야가 다시 온다.. 라는
그러한 민족적 소망을 품게 해주셨어요.
▲2. 두 번째는 뭐냐하면 기가 막혀요.
'나라에서 쫓겨났다고 해서 역사가 끝난 게 아니다' 라는 것을, 쫓겨난 상황에서 알게 됐어요.
보험을 가입할 때 약관을 잘 봐야 된다.. 그러잖아요.
아까 신명기28장 말씀도 그렇고, 레위기 26장에서
저주의 끝판이 '너희가 전 세계로 포로로 다 흩어질 거야!' 그리고 딱 끝난 게 아니에요.
또 이어지는 회복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30:1~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신30:1~3
그래서 너희가 집에서 쫓겨났을 때,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쫓겨간 나라에서 너희가 깨닫게 된다는 거죠.
'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이러한 비극을 당했을까?'
'아 이게 우발적인 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려서
이러한 언약적 저주를 받은 거구나. 우리가 회개를 안 해서 그랬구나!'
이러한 것을 깨닫거든, 바로 깨달은 그 자리에서
그게 미국이든, 일본이든, 러시아든 어디든
거기서 너희가 회개하면 소망이 있는 거에요.
'너희가 하늘 끝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너희를 다 다시 복원시켜 줄 거야, 회복시켜 줄 거야!'
이렇게 회복에 대한 약관이 있다고요. 그거에 대한 약속이 있는 거에요. 신30:1~10
하나님께서 어찌 보면 그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회복에 대해 다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얼마나 회개하면 받은 은총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약속하셨냐면
'너희가 그렇게 해서 돌아왔을 경우, 너희가 이 땅에서 누리게 되는 복은
정말 너희가 범죄하지 않고 누렸을 모든 복에 못지않은 복이 될 거야!'
'지금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가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누렸으면 모든 축복을 다 누린다는데..'
야 그것만큼 정말 회개의 동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약관에 이렇게 나온다니까요.
신30:1~10절을 각자 찾아서 읽어보십시오. 주3)
거기에 이런 약속도 나옵니다.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30: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30:9~10
아 이게 있었던 거에요. 회복의 약속입니다.
비록 파혼이 되었더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이전처럼, 이전보다 더 잘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방에 쫓겨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운동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결국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정말 하나님께서 귀환시켜 주시죠.
그런데요. 우리가 '결혼언약'의 관점에서 1강에서 시내산 언약을 받잖아요.
결혼언약의 관점에서 보면 '회개하고 돌이킨다'는 의미가 뭐냐면, 이렇게 비유할 수가 있겠어요.
지금 여러분 결혼반지 보시죠. 하나님이 막 윽박지르시는 거예요.
'나 이제 너희를 포기하고 정말 떠날 거야! 이 약속의 땅을 버릴 거야.
그래서 엘리야를 상징적으로 하늘로 데려갑니다.
엘리야를 데려가면서 엘리야가 이렇게 봤더니
그런데 하나님의 손에 결혼반지가 아직 껴있는거에요.
'말로만 그렇게 하시는 거지.. 하나님이 우리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구나..'
△이게 '남은 자 신학사상'의 핵심입니다.
사실 이사야서, 로마서 또 오늘 본문 엘리야의 승천 사건에서
이 '남은 자의 사상'은 좀 다른 포인트를 가져요.
로마서에서는 행위의 길로 가지 않고, 믿음의 길로 간 것을 '남은 자'라고 사도 바울이 지적했어요.
그리고 여러 선지서에서는 포로 귀환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신걸 갖고 '남은 자 사상'으로 이제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30장의 결혼언약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결혼을 파경으로 몰고 가지는 사실 않으셨다' 라는 의미를 갖게 돼요.
이게 엘리야 승천사건의 두 번째 긍정적인 포인트 입니다.
그래서 정말 바벨론 포로 귀환으로써, 이 두 번째 포인트, 즉 회복의 언약이 성취되었습니다.
▲3. 엘리야 승천 사건의 세 번째 긍정적인 면은,
'엘리사에게 임한 성령'이에요.
엘리사가 엘리야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엘리야가 '따라오지 말라' 그랬거든요.
근데 엘리사가 계속 불순종하면서 스승을 따라갑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엘리사, 너의 기도제목이 뭐냐?'
엘리사가 말하길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영어로는 갑절을 double portion 이라고 번역했어요.
※갑절은 장자의 몫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경사회를 시작하면서
아들이 4명이면, 장자가 두 몫을 받습니다. 그러면 5명이 나누는 것과 같고,
그 중에 아들이 두 몫을 받는 거죠.
삼상1:5에 엘가나는 한나에게 갑절을 주었습니다. 한나의 아들을 통해 장자권을 상속시키겠다는 거죠.
그래서 엘리사가 '당신의 능력의 갑절을 달라'고 스승에게 요구한 것은,
엘리야 선지자의 계승자, 상속자가 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엘리사의 갑절을 달라는 요구는 또 어떤 의미냐?
예를 들면, 이혼하기 직전에 '당신 마지막 소원이 뭐야?'
이러면 '재혼!' 이렇게 얘기하는 거랑 비슷해요. 너무 상황이 우스운 상황이에요.
지금 엘리야의 승천은 '이혼'의 뜻을 함의하고 있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엘리사가 지금 '재혼'의 뜻을 청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도, 결혼반지를 아직 벗어버리지 않으신 상태이고요.
원래 우리의 성령님을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제일 기뻐합니다.
근데 지금 엘리사가 성령을 구하고 있어요. 다시금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거죠.
그래서 엘리야가 이렇게 반응한 겁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 도다.' 왕하2:10
엘리야가 지금 가정법원 가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이혼도장 찍었는데
엘리사가, 자기 마지막 소원으로 '재혼하게 해주세요(갑절의 능력으로 다시 임재해 주세요)' 그거거든요.
'아무리 하나님이 사랑과 용서가 많아도
지금 막 이혼 도장 찍고 나오는데, 바로 재혼이 되겠냐?' 엘리야가 이렇게 생각하는거죠.
'그래도 만약에 하나님이 나를 승천하게 하는 걸, 아무도 안 보여주신다고 생각을 했는데
엘리사 너로 하여금 만약 내 승천을 보게 하시면
아마 너의 당대에 하나님이 회복을 일으키실것이다, 회복의 역사를 주실 거야!' 이런 식의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실제 그렇게 엘리야의 승천을 보게 되죠.
그러니까 엘리사의 소원이 응답된 거에요.
그런데 '그 기도가 언제 응답되느냐?' 그게 문제죠.
백 년 후일까, 5백년 후일까? 예수님 오시고 나서 일까?
정말 가늠할 수는 없죠. 언제 있었을까요?
엘리야가 드디어 승천했어요. 엘리사가 가슴을 치며 옷을 찢고 통곡합니다.
그리고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한 다음에 아마 허탈한 표정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엘리사의 그때 그 심정이
이육사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와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자기의 선지자의 소명에 충성했던 엘리사에요.
그런데 세상에 우리가 농담처럼 그런 말 하면 안 됩니다. '성령님도 포기한 교회!'
근데 실제 역사 가운데 그게 일어난 거에요. '하나님도 포기한 교회!'
그리고 자기가 그렇게 존경하는 담임목사님도 갔어요.(승천했어요)
여러분이 엘리사라면 다시 고향으로 갈 까요/ 말까요?
지금 엘리사는 요단 동편에 있어요. 저 같으면 안 돌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엘리야는 수배령이 내려져 있잖아요. 엘리야 목에 현상금이 걸려있다고요.
현정권이 지명수배하고 있어요. 엘리야를 죽이는데, 엘리사를 살려두겠습니까?
저 같으면 '에이 잘 됐다. 하나님도 포기하시고, 우리 담임목사님도 포기하고 (하늘로) 떠났는데
내가 부교육자인데 뭐 여기에 소망이 있나? 나도 간다!' 그리고 저 같으면 잠적하러 갈 것 같아요.
△근데 엘리사는 무슨 생각인지, 그 요단강 강변에 지금 서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 엘리야의 그 겉옷을 가지고 강물을 이리치고 저리치며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렇게 통곡하고 있는데 기적이 일어나요.
요단강이 척 갈라지는 거예요. 이게 엘리사가 경험한 기적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낭비를 합니까?
이스라엘 대군을 이렇게 요단강 으로 인도할 때는 이해가 되죠.
그 기적을 일으켜가지고 2백만의 사람들이 경험한 거에요.
근데 지금 엘리야를 데려가는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
한 두 사람을 위해서 그 요단강을 다시 가르셨거든요. (승천 전)
지금은 엘리사 한 사람을 위해서 요단강물을 가르세요. 그 의미가 뭘까요?
재 정복이에요. (여호수아의 정복에 이어)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다시 정복하겠다!' 하나님은 포기 안 하신 거에요.
더 중요한 건 뭐에요? 엘리사의 기도가 응답됐어요.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신 거죠. 벌써 더블 포우션으로 임재하신 겁니다.
엘리사 한 사람을 위해 임재 했잖아요.
맞은편에 선지생도들은, 하나님이 엘리야를 승천시킨 것을 알았어요.
그래가지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승천하다가 떨어졌나 그래서 시체찾으러 다녔잖아요.
그런데 지금 엘리사가 다시 요단강을 가르고 올 때, '그 앞에 나가서 경배했다' 그랬어요.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왕하2:15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을 제외한 '사람 앞에 경비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누구에게 경비한 거예요? 엘리사에게서 임재한 성령님, 즉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거에요.
그리고 경배했어요.
자 보세요. 하나님이 '나도 너희를 버릴 거야 이혼해, 도장 찍어!' 그리고 퍼포먼스를 멋지게 합니다.
엘리야를 데리고 가셨는데, 얼마 만에 다시 돌아 오셨을까요?
사실 이 날 하루만에 다 일어났던 일이거든요.
길갈 갔다가, 벧엘 가셨다가, 여리고 가셨다가, 요단 가신 길...
하루 만에 돌아오셨습니다. 한 나절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너희 꼴보기 싫어서 집을 나갔어요.' 근데 두 시간 있다가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나갔는데, 신부에 대한 사랑으로, 곧바로 다시 돌아오신 거예요.
간도 쓸개도 없으신 하나님!
너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포기할 수 없어서.. 그날 바로
그걸 못 참아서 다시 임재하신 겁니다. 이게 바로 엘리사가 요단 강을 갈라치며 건넌 의미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시작한다'
다시 시작하는데 뭘로 다시 시작하세요?
홍해를 가르고 물과 불의 능력만이 아니에요.
'말로 하겠다!' 그래서 엘리사는 계속 말씀으로 하는 사역을 합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이게 하나님의 주된 사역 방식입니다. 기적보다!
◑그 후 엘리사의 행적
그 이후에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낼 때마다
항상 두 가지 요소가 있어요.
모든 그 선지자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또한 치유와 회복을 선언하고 있어요.
이 두 가지, 율법과 복음의 요소가 다 들어있어요.
자 엘리사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셔서
요단강 가르는 가나안 재정복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역사를 시작하니까 어디로 갔겠어요? 여리고로 갑니다. 여호수아 때 여리고 전투 있었죠.
그 다음 어디로 가요? 아이 성으로 갑니다. 정말 성경을 읽어보세요.
엘리사가 정확히 그렇게 가요.
여리고 성에서 엘리사가 뭐 했는지 아세요?
먹을 수 없게 된 물을, 치료해서 먹을 수 있는 생명수로 바꿔요. 복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을 고치겠다, 생수를 주겠다..
먹을 수 없는 사망의 물을 생명의 물로 바꿔요.
벧엘에서 무슨 일을 하셨어요? 암콤 두 마리를 보내서
옛날 성경에 어린이로 번역했어요. 어린이 사십 여명을 찢어죽였어요. 왜 그랬을까요?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여 올라가라 올라가라' 그랬거든요.
몇 가지 오해가 있어요. 이 어린이는 아주 어린이가 아니에요.
지금으로 얘기하면 '청년들'이라고 번역하는 게 사실은 맞아요.
제가 주일학교 때는 '엘리사가 대머리라고 놀려가지고, 너무 열받아서 저주해서 죽였구나!' 오해했는데,
'대머리'에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니라, '올라가라 올라가라' 예요.
'야 네 선생이 승천했다며? 너도 따라 가야지!
거기 안 따라가고 여기로 왔냐? 여기는 바알과 아세라의 땅이야. 너 죽을래?'
아마 죽음의 위협이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그 청년들을 심판하셨어요.
그러니까 역시 엘리사를 통해서 '심판과 회복'의 두 가지 표적적인 사건을 일으킨 겁니다.
여리고와 벧엘에서!
▲그리고 왕하4장에 보면 정말 이상한 일을 하나 행하십니다.
수넴 여인의 아이를 살리신 사건이 기록돼있어요.
자 시국사범이에요. 엘리사를 누가 숨겨주겠습니까?
근데 성경에 보면 아주 귀부인이 있었어요. 재산이 많아요. 그런데 신앙도 좋았던 것 같아요.
자기 집을 내어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숙식을 제공합니다. 위험할 수 있어요.
엘리사가 잡혀갈 때 잡혀갈 수도 있겠죠. 얼마나 귀해요.
그래서 엘리사가 게하시 자기 종을 통해서 '이 집안에 기도 제목이 뭐냐?' 물어요.
집이 거부예요. 땅도 많고 농사도 크게 짓는데 자녀가 없어요. 그리고 남편은 늙었다고 그랬어요.
그 당시에 농경사회에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미래의 소망이 없다는 뜻이에요.
엘리사가 그 수넴 여인을 부릅니다. '내년 이맘 때에 네가 아들을 안을 것이다.'
근데 정말 하나님께서 애기를 주셨어요. 소망이 없던 가정에 소망이 생긴 거예요.
얼마나 활력이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귀한 아들로 키웠겠어요.
그 아이가 자랐어요. 한 4살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라고 말을 한 거 보면.
이 귀한 아들이 아빠가 추수하러 밭에 나갔는데
일사병에 걸렸는지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머리야!'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이고 귀한 아들, 얼른 집에 들어가!' 하고 엄마에게 보냈는데
시름시름만 앓다가 엄마 무릎위에서 죽어요. 너무 기가 막히잖아요.
수넴 여인이 너무 기가 막혀 가지고 남편한테 애기가 죽었단 말을 안 하고
'내가 지금 길갈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님 좀 만나고 올게' 이러고 찾아갑니다.
엘리사가 멀리서 보니까 수넴 여인이 막 달려오는데
하나님이 웬만하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보통은 설명해 주시는데
지금은 묵묵부답 이었어요. 그래서 엘리사도 왜 그런지 몰라요.
그런데 그 여인이 엘리사에게 와서 엘리사 무릎을 그냥 끌어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아마 문화 코드상 아마 적절하지 않은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게하시가 이렇게 떨구어내려고 그러니까 엘리사가 그만하라 그러죠.
그때 수넴여인이 기가 막힌 얘기를 해요. '언제 내가 아이를 구했나이까?'
그게 박윤선 목사님 주석에 보면 '왜 소망이 없던 나에게 쓸데없이 소망을 주셨습니까?'
'차라리 그냥 소망이 없이 살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왜 괜히 소망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주셔가지고,
그걸 줬다가 그걸 뺏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청년들 교제할 때도, 필요 이상의 쓸데없는 소망을 주는 것, 그건 나쁜 일이에요.
마음을 정리하게 할 때는, 빨리 빨리 단호하게 해서, 상처 안 받게 하는 게 낫죠.
'괜히 구하지도 않은 미래의 소망을 주시고 지금 뺏어가는 건 뭡니까?'
그래서 엘리사가 막 달려갑니다.
게하시를 통해서 자기 먼저 지팡이를 보냈는데 아무 기적이 안 일어나요.
엘리사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자기도 잘 모릅니다. 결국 갔더니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다 사람들 물러나가게 합니다. 엘리사가 이런 일을 해요.
아기가 싸늘하게 죽어있는 아이에게, 자기 눈에 눈을 맞추고, 입에 입을 맞추고, 손에 손을 잡고
그 위에 엎어져누웠다 그랬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그리고 성경이 굉장히 재밌어요. 그리고 일어나서 집안을 막 왔다 갔다 왔다 했다.. 그랬어요.
그리고 다시 엎어졌어요. 여러분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의 시체는 차갑습니다. 엘리사가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이미 싸늘하게 시체가 되어 있어요. 그 간절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 시체 위에 자기 몸을 엎은 거에요.
그리고 자기의 온기를 전달하려고 했겠죠.
그리고 왔다 갔다 한 것은,
자기를 그거 한다고 죽은 시체가 살아나지 않는 거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그렇게 간절히 매달린 거죠.
제가 2017년 전에는 이 본문을 제대로 이해를 못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2017년에 돌아가셨는데, 정말 너무 은혜 가운데 담도암으로 말기 투병하시다가
정말 찬양가운데 돌아가셨어요. 슬프죠. 제가 아들로서 저희 아버지를 부둥켜 안았어요. 시신을.
그리고 얼굴도 이렇게 쓰다듬었어요. 그런데 입에 입은 못 맞추겠더라고요.
여러분 사람이 죽으며 입에서부터 무슨 액체같은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염할 때 입에 솜으로 다 틀어막잖아요.
지금 엘리사가 입에 입을 맞췄다고 했어요.
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뭐냐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죽은 시체를 만지는 것은 부정한 거예요.
하면 안 돼요. 근데 지금 (급하니까) 되고/ 안 되고가 어디 있어요?
사람들은 다 나가게 하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결사적으로 매달리는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아이를 살렸어요. 왕하4:34
그래서 아이를 수넴 여인에게 돌려줍니다.
그냥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상징적이며 표적적인 사건이에요.
이 아이의 상태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사망상태와 갔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스라엘 교회가 죽은 거예요.
하나님도 떠나시고, 배도 하고, 소망이 없는 거예요. 그 누가 봐도 소망이 없는 교회에요.
그런데 엘리사가 성령님 의지하면서.. 이렇게 아이에게, 즉 교회에 생기가 돌아왔잖아요.
객기로 목회할 수는 없습니다. 의리로, 또는 뭐 그냥 옛정을 생각해서
그렇게 해서 죽은 영혼이 살아나진 않아요.
엘리사가 하나님 앞에서 그래도 사역자로 목숨 내놓고 쓰임 받기 위해서 (도망 안 가고) 왔을 때
그의 열심때문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게 아니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시신 앞에 간절히 엎드리는 것뿐이었어요.
이 아이를 누가 살렸어요? 성령님께서 살리신 거예요.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이 이 땅을 고치고 회복하겠다..' 라는 상징적인 사건이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아무리 강한 바람과 지진과 그러한 완력으로, 정치적인 권력으로
사람의 영혼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개인의 목사의 능력으로 살아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기도할 뿐이죠.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하는 기도의 자세는 있습니다.
△언제 한번 이렇게 여러분이 기도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정말 시체 위에 여러분이 엎드리는 심정으로
그렇게 간절히 매달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한국교회를 비판하고, 한국 교회의 희망이 없다. 미래가 없다.. 이렇게 비판은 잘 하면서도
그 한국교회를 가슴에 품고 이렇게 기도해보신 적이 있냐고요?
그러한 체험이 없이, 기도의 능력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을,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복음의 사역자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게 희망이에요.
△마치는 말
우리가 구약의 역사를 볼때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정말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지막 막장 드라마의 진짜 끝을 봤죠.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우리가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일이 있으니,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지하여
세미한 음성 gentle whisper 의 사역을 이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기 안 하시고
엘리야가 죽으면 엘리사를 들어쓰시고,
엘리사가 죽으면, 이사야 예레미야 등 그래서 계속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셨어요.
'아이~ 능력이 많으신 분이, 홍해 한 번 가르시지?'
아니요.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세요.
그렇게 해도 별 소용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택하신 방식은 계속 말씀하시는 방식이에요.
선지자들을 보내서, 계속 말씀을 gentle whisper 하게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잰틀 위스퍼로 다가오실 때 '나를 그만큼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구나!'
생가하시면 돼요.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에게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고, 프로포즈 하셨던 그 하나님이
똑같이 지금도 나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즉 말씀으로 다가오시는구나!'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이 말씀에 항복하고 돌아와야지...
여러분 왜 꼭 매를 더 맞고 돌아오려고 하십니까?
그냥 말로 하실 때, 돌아오는 것이 좋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죠.
△중국의 극동지방에 자라는 아주 특정한 대나무가 있는데
원래 대나무가 이렇게 쑥쑥 잘 크잖아요. 그런 대나무 가운데서도 특별한 종이라고 해요.
이 대나무는요. 비료주고 물주고, 비료주고 물주고 해도.. 사 년 동안 아무 변화가 없대요.
그러다가 5년째 되는 해에는, 1년 만에 정말 고층 빌딩 높이까지 그렇게 자란대요.
4년 동안 삼센티씩 자라고, 5년 째때는 하루에 30센티씩 자란대요. 어마무시하죠.
그래서 6주 만에 15미터를 자라는 엄청난 성장 패턴을 가진 대나무에요.
그럼 4년 동안 아무 일도 안 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4년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그렇게 깊이깊이 뿌리를 내린 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 정말 엘리야 선지자가 보고 싶어 했죠.
근데 그게 언제 성취될까요? 내일 3강에서 성취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때, 정말 이스라엘이 가슴을 찢고 회개 다운 회개를 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앞으로 돌아옵니다. 한순간이 일어난 일이에요.
그러나 그 오랜 세월을 그럼 구약의 선지자들은 기다리기만 했을까요?
하나님은 아무 일도 안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그 준비작업을 (대나무가 뿌리내리듯)
정말 착실하게 진행하셔서, 어느 한 순간에
우상에게 돌아갔던 신부의 마음이, 신랑에게로 오는 그 역사가 내일 3강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 바람/지진/불 가운데 계시지 않는데
세미한 음성으로, 잰틀 위스퍼로 임재하셨다고 그랬잖아요.
그 세미한 음성은 사실 말씀입니다.
그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대면한 하나님이
말씀이신 하나님, 성육신 하기 전에 성자 그리스도 이세요.
나중에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다음시간 3강에서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엘리사의 기도'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시대의 한국 교회를 바라볼 때
정말 엘리사의 시대 못지 않은, 또한 엘리야의 시대 못지 않게 어두운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해 악평하거나 한탄하는 목소리들을 우리가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마치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이 마른 뼈들이 살아나겠느냐?'고 물으시고
그 마른 뼈들을 불성령으로 살게 하셔서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신 것처럼
또 오늘 수님 여인의 아이를, 죽은 영적인 사망상태와 같은 교회를
주님께서 성령님께서 살려주시리라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는 사역에 우리를 사용하시리라 믿고
우리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목회자들에 대해서, 또 한국교회에 대해서 비판하는 대신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그 생각 이상으로
우리가 간절히 합심해서 한국교회를 내 가슴에 품고 입에 입을 맞추고 눈에 눈을 맞추고
손을 붙잡고 싸늘한 시체와 같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차라리 내 목숨을 취하시고 이 교회를 살려주옵소서.. 부르짖었던
모세의 심정, 엘리사의 심정이 되어서
우리가 교회를 붙잡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가깝게는 우리 가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또 우리 교회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 약점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으로 품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게 그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그 사역에 우리가 부름 받았습니다. 이 시간 다같이 하나님 앞에 '주여!' 부르짖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
주1)
만약에 제가 감독이면, 이 내용을 가지고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때면
로뎀나무에다가 줄을 매달아 놓은 장면을 제가 연출할 것 같아요.
그래서 로뎀나무를 우리가 '쉬는 나무'라고 좋은 이미지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엘리야가 죽기를 간구했던, 정말 우울증 최악의 단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그런 장소에요.
카페 이름으로 '로뎀'이 많은데, 좋은 의미만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주2)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센 태풍을 경험해도요. 이런 태풍은 경험못합니다.
제가 1993년에 미국에서 공대가 유명한 일리노이 대학이라고
얼바나 샴페인 도시에 있는 거기에 교환 학생을 갔어요.
우리나라 남한 만한 땅의 일리노이 주가 다 옥수수밭입니다. 상상이 되세요?
지평선 끝까지 다 옥수수밭이에요. 그걸 어떻게 농사짓냐면, 다 집집마다 헬리콥터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헬리콥터로 이렇게 농약 뿌리고, 그 다음에 큰 기계 차로 이렇게 옥수수 수확하는데요.
야 이 옥수수면 정말 미국 국민 전체가 먹겠다 싶어요.
이 많은 옥수수를 누가 먹어요? 동물 사료로 쓴데요.
그 동물도 사람이 잡아 먹잖아요.
그래서 제가 교환학생으로 그 대학교에 갔는데, 오리엔테이션 할 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토네이도가 불면 우리나라 민방위 사이렌 울리듯이 사이렌이 울려요.
그러면 각 건물마다 지하대피소가 있어요. 그럼 거기 철문 아래로 내려가서 숨어야 돼요.
이거 제가 교육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 민방위 교육이 있는데, 거기엔 토네이도 대피 교육이 있었어요.
주3) 신30:1~10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