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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뜻을 굴복함으로 성령 안에서 살기 P1 / 잭 푸닌

LNCK 2022. 3. 4. 09:04

잭 푸닌 Zac Poonen 우리의 뜻을 드림으로 성령 안에서 살기 Youtube  

우리의 뜻을 굴복함으로 성령 안에서 살기 P1 / 잭푸닌 - YouTube

◈우리의 뜻을 굴복함으로 성령 안에서 살기   P1       고전2:9, 마13:12      출처의 1~20분 정리

Yielding Our Will To Live In The Spirit        *P2       *P3  

 

시각장애인이 아침에 일어나 자기 흰색 지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것처럼

여러분도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주님을 향해 손을 뻗으셨나요?

아니면 그게 핸드폰이었나요, 혹은 다른 무엇이었나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는 들은 말씀을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지

그리고 우리 인생 행로를 바꿀 어떤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가 그걸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 사탄은 얼마나 열심인지 말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 삶의 모든 날들이 반드시 이래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첫날 부터, 마지막 여섯째 날까지

항상 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셨고, 그 다음에 '그대로 되니라'로 날이 마쳤습니다.

 

우리의 일주일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 '그대로 되니라'로 하루를 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셨다면, 성경의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를 이해하신 겁니다.

우리도 새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인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것이 무엇일까요?

이 시간에 몇 가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는,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 중에, 가장 멋진 삶은 예수님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평안하고, 침착하게 하셨고,

염려가 전혀 없었고,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빌라도가 '나에게는 너를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이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라며 위협했을 때조차도

빌라도는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앞에서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네게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요19:11

 

이 말씀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종교적인 사람들이 저를 법정에 데려갔을 때 인데요.

그들은 판사가 제게 불리하게 판정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때 저는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나를 해할 권한이 당신에게는 없어요. 나의 아버지께서 그걸 당신에게 주셨으면 그리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아무도 하나님의 자녀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를 건드린다면, 하나님이 그런 권한을 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것은 요한일서 2:6절입니다.

'그의 안에서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여러분, 이건 절대 짐이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자는, 이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입니다.

'맙소사! 내가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요?'

 

원문에는 '걷는다 walk'으로 되어있는데, 그 의미는 '산다, 행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그 분이 사셨던 그 표준 그대로 사는 것을' 엄청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여러분, 이것은 마치 누군가가 여러분이 싫어하는 것을 강제로 먹게 하는 것처럼,

혹은 하기 싫은 일을 강제로 시키는 듯한, 그런 말씀으로 이해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이 구절을 잘못된 방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위 구절은 이런 뜻입니다.

'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나도 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신나는 일이 다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천국의 삶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행할 때 주어지는 것이지,

그냥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는다고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죠.

그건 우리가 다 경험해 봐서 압니다.

 

여러분은 요일2:6절, 이 구절을 두 가지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른 성경 구절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요.

 

하나는, 구약의 율법처럼, 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짐처럼, 무겁게 여기고 또 지키려고 애쓰고 또 애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죠.

마11:28

 

어떤 사람은 성경말씀을, 그들에게 부과된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말씀을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또 남들에게 그렇게 무거운 짐처럼 부과했죠.

 

오늘날에도, 같은 말씀이지만,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방식의 설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 저것을 꼭 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짐을 지고 괴로워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괴로워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지 못해서 정죄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주님께서 앞서 우리를 앞서 인도하시며 보여주시는 가능성입니다. "너희들은 이렇게 행할 수 있어!"

 

우리도 예수님께서 걸으신 대로 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심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입니다. 요일2:6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놀라운 특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짐이 아니라요.

 

그게 정말일까요? 그렇습니다.

어떤 선한 아버지가, 자녀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떤 것을 하라고 억지로 시키겠습니까?

 

'6미터 되는 벽을 기어올라라!' 아이가 그것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런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합니다.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합니다.

'하나님, 이 말씀은 지키기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불평이 없이 하라!'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

영어로 murmurings 군시렁거림 and complaining 불평 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원명과 불평이 없이 주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받아들이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놀라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처럼 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요!

 

저는 이 말씀이 제 삶에서 성취 된 것으로 봅니다.

그 말씀은 제 삶 속에서 실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완벽주의를 뜻하지 않고, '장성하고 성숙한' 삶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취됩니다.)

 

저는, 제가 아는 한, 모든 주의 일을 투덜거리거나 불평하지 않고 행합니다.

위 말씀을 포함해서 신약의 모든 계명들은, 모두 다 지킬 수 있는 말씀입니다.

저도 원망과 불평이 나올만한 시험과 유혹들이 있지만, 저는 그것들을 거절합니다.

 

저는 우리가 사는 동안, 전혀 시험이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싶은 유혹은, 우리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망과 불평 없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저는 그 삶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차츰 고학년으로, 중등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것처럼

단계를 거치면서 천천히, 꾸준히 올라가는 것입니다.

 

구약의 계명들보다 신약의 새 계명은 그 기준이 훨씬 높습니다.

일례로 구약은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9계명

 

그렇지만 신약의 새계명은 그것을 포함하여, 모든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산상수훈과 같은 계명들을 구약에서는 주시지 않았을까요?

왜냐면 그들은 그것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았으니까요!

 

구약의 그들은 하나님이 '자애로운 아버지'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계명은, 짐이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의 계명들을 여전히 짐으로 여기고 있다면,

여러분은 아직 구약의 율법 아래 신앙생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신약의 계명들을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특권이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사는 특권!

 

마13장에도,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이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놀라운 진리들을 말씀하셨는데요.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13:10

 

저도 자주 예를 들어서 설교하는 편인데요.

예를 들어서 말하면, 사람들이 보통은 항상 좋아합니다.

제 설교의 주제가 더 분명해지고, 이해가 더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위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보십시오.

마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사람들의 질문에 '내가 하는 말을 그들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 예수님은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도록,

그런 목적으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너희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나니' :11

그러면  왜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나요?

 

천국의 비밀은 머리 mind 로 이해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허락되어야 granted 합니다.

그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성경을 읽고 읽어도,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것은 공산주의와 반대입니다. 그들은 가진 자들에게서 빼앗아서 못 가진 자들에게 주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그 반대로, 있는 자는 더 넉넉하게 가지게 되는데,

여기서 '있는 자'란, 하나님께서 어떤 진리를 보여주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면 그는 더 받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더 많이 깨닫고, 더 많이 받아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말씀이 들려졌는데, 거기에 순종 하면, 그 말씀은 여러분의 소유가 됩니다.

 

사람들이 제게 물어봅니다. '잭 목사님, 당신의 설교를 가지고 제가 그대로 설교해도 될까요?'

제가 말합니다. '예, 당신이 먼저 그 말씀에 순종 한다면, 얼마든지 설교해도 괜찮습니다.'

 

왜냐면 제가 설교하는 말씀을 듣고,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 하면

그 말씀은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말씀이)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13:12

그러면 여러분은 그 말씀을, 자신의 설교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니까요!

 

먼저 그 말씀을 제게서 들었겠지만, 여러분은 그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그 진리는 이제 여러분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있는 자'의 의미입니다. :12

 

그러니까 순종 할 때까지는, 그 말씀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아직 여러분이 가진 게 아니고, 그냥 귀로 듣기만 한 것입니다.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면 '있는 자'는, 더 많은 말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도 순종 하면, 또 더 많이 받게 됩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은 더욱 더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처럼 행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요일2:6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에게 은혜로, 능력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들은 말씀에 순종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로 성경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13:13

 

여기서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에서 '없는 자'는,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지만

순종 하지 않아서, 그 말씀이 자기 것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겠지요. 사람은 점점 잊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그들이 말씀을 듣기는 들어요. 그러나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결국은 자기 속에 있는 것까지 빼앗기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 mystery 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여기 '비밀'이라고 했는데, 비슷하게 예수님은 '계시 revelation'라는 말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 것은, 그저 사람의 말로 그들의 귀에 들렸기 때문이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은, 그 말씀이 '계시'로 그들 귀에 들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계시 revelation 는 신약적 어휘이고,

같은 말의 구약적 어휘는 명철 understanding 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라고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은

'이를 네게 알게 revealed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16:17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본 것은, 하나님이 허락해 grant 주신 것인데,

여기서는 '알게 해 주셨다, 계시해 주셨다 revealed'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고.. 순종해서 자기 삶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명철 또는 계시로 그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전혀 깨달음이 없고, 따라서 순종도 없고

삶의 변화도 없습니다. 말씀이 계시로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간단한 예를 들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눅16:13

 

어떤 분은 저희 교회에서 이 말씀을 43년간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돈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말씀이 계시가 될 때, 계시로 임할 때

그 사람은 돈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게 됩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돈을 사랑하지 않고, 돈에서 자유합니다.

 

여러분은 이번 컨퍼런스 내내 여기 앉아서 많은 것을 듣고, 그저 지식으로 이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삶에서 실제가 되지 못하고, 내년 컨퍼런스 때에도 똑같은 수준일 것입니다.

 

제가 50년 동안 이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쳤는데, 

계속 듣기만 하고, 깨닫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들의 삶을 보면 됩니다.

그들 중에는 말씀 사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역의 결과를 보면 얄팍하고 텅 비어 있습니다. 성취 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그저 교회에 모이는 숫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제자를 만드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없으면, 무리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은 흑암의 왕국을 전복시키지 못합니다.

대형 건물을 지을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