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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2:35~40 어둠 속에 빛으로 사는 사람들

LNCK 2022. 3. 26. 22:01

◈어둠 속에 빛으로 사는 사람들      마22:35~40, 눅23:39~43       2022.03.20.출처 


많이 말씀을 드렸지만 어떤 경우에는 성경에 꽂혀서 수도 없이 성경을 읽다가 
로마서에 가서는 그냥 뒹굴며 울고, 너무 좋아서 울고.. 

'그래 이제는 구원받은 믿음의 종으로 이렇게 살아갈 거야!' 하며 
성경을 읽고 또 읽는 가운데 
그렇게 많은 좋은 말씀들을 노트에 잔뜩 써놨는데.. 
제가 이걸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제 마음속에 꽉 붙잡은 게 하나가 있는데 
'성경 전체는 이거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거야! 

하나님, 이것이 제게서 떠나가지 않게 해주시고 
성경 전체의 말씀 가운데 이것 붙들고 평생 목회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면 그렇게 가슴 설레고 
이렇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요. 그런데 아직도 제 마음에는 그런 부분들,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물론 못 도울 때도 있었지만, 
 
찾아가서 보면, 그분이 얘기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뭐 물도 펑펑 나오고.. 좋은 집도 있고.. 교회도 괜찮으니까 
거기는 우리가 (도움 사역을) 하지 말자! 이렇게 한 적도 있지만 

정말 어려운 곳은, 늘 우리가 부산이라도, 충청도, 전라도 어디든 가서 
'아 여기는 도와야 겠다!' 생각이 들면 
늘 그렇게 최선을 다하여 돕고 했습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왜냐면 그 도울 기회를 놓칠까봐! 


◑선한 기회를 붙잡고, 놓치지 마십시오!

몇 번 말씀을 드렸지만, 기회라고 하는 것은 
앞에는 머리가 수북하고, 얼굴은 보이지 않고, 뒤에는 대머리이고 
발에는 날개가 달렸대요. 

기회가 내 앞으로 올 때는, 그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으니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이게 기회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겁니다. 

기회다.. 생각하면, 앞머리를 꽉 잡으면 그것은 내 것이 된다는 거죠. 

 

그러나 이미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지나가면서부터 '저게 기회였구나!' 하고 붙잡으려고 하면 

대머리이기 때문에, 뒤에는 머리가 없기 때문에 
잡을 수 없는 게 '기회'라고 하는.. 그런 말이 있는데 
이거는 정말 맞는 말이라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신앙의 기회, 또 인생의 기회들이 여러 번 지나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기회를
그래 그것을 붙들고 나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때로는 그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때로는 딱 붙잡기도 했습니다. 

▲제가 안성에서 사역할 때는 참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내 몸도 건강이 안 좋아졌고, 
'나 이제 어떻게 하지?' 
믿음이 있지만 왜 그런 경우가 없겠습니까? 

'왜 나를 부르셨을까? 
이렇게 해서 내 인생이 끝난다면 도대체 왜 나를 부르셨을까?' 
'내 인생도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그럴 때는 이 생각, 저 생각과, 초조한 생각이 왜 안 들겠습니까? 
그래서 병든 몸으로 뛰쳐나가 열심히 전도한 적도 있고요. 
하여튼 바로 그럴 때였습니다. 

방주교회에 목사님이 소천을 하셨대요. 저(박보영 목사)를 담임목사로 부르기로 했대요. 
그래서 그 교회 장로님 몇 명이, 제 의사를 타진하러 안성으로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가난하니 당연하게 얼른 털어버리고 갈거야!'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생각했겠죠.
그런데 저는 '안 가겠다'고 말했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그 마음을 주시고, 내 마음에 말씀을 해주시고.. 
그래야지 나는 움직일 거야!' 

'내가 떠나면, 길거리에 있는 노숙자들, 깡패들, 약물 중독이 되어 있는 애들, 
알코올 중독자들을 누가 돌봐 줄까? 
주님은 나를 통해서 돌보시잖아!' 

그러기에 단호하게 '방주교회로 안 간다'고 했습니다. 

그때 20만원을 거기에 헌금함에다 장로님이 넣고 가셨어요. 
얼른 열어보니, 봉투에 집어넣지 않은 헌금이었더라고요. 

우린 그 헌금을 가지고 밥을 먹어야 했어요. 
이것만 가지면, 우리 안성의 공동체가 며칠 동안 우리는 굶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헌금을 돌려줘야만 했어요. 
이것을 의지하기가 싫었습니다. 

방주교회 장로님에게 '빨리 온라인 번호를 알려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오늘 그 교회로 가져가서 반납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고, 
그저 또 어려움은 계속됐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또 어려움이 있었고 
세월이 흐른 후에 주님께서 제게 말씀을 하셨어요. 
마음으로, 내면적으로 '이제 준비를 해야 돼! 너는 곧 이 곳을 떠날 거야' 

이제 안정이 되고, 몸도 이제 좀 괜찮아졌는데 
주님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제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날을 기억해요. 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안성천이 흐르는.. 해가 뜨는 그쪽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주님, 앞으로 저를 어떻게 쓰실 거예요?' 
기대도 되고... 
'내 인생은 이제 어떻게 펼쳐지나?' 
그런 생각을 하며 떠오르는 해를 보고 기뻐했던 그런 날도 있었어요. 

왜 그것밖에 없겠습니까? 여러 가지 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한 번은 정말 중요한 자리에, 제가 남의 설교를 다 베껴가지고 
철학적인 것도 다 집어넣고 
목사님들 잔뜩 오는 자리에, 제가 말도 안 되게 첫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설교를 하다가 한 사람만 와도 가슴이 뛰고요. 
내 정신이 아니고, 떨며 설교하던 제가 

그 설교원고를 다 외우고 나갔는데 
내 마음속에 '너는 남의 것을 가지고 올라가지 않았니? 
너는 이것을 고백해야 되지 않겠니?' 

제 설교 차례가 됐어요. 무섭고 떨렸어요. 
이분들은 전부 감리교회 목사님들이에요. 

'하나님, 제가 이 원고로 설교 안 할게요. 잘못했어요.' 
그리고 원고를 내려놓았어요. 

이 분들이 앉아 있는데, 제 눈에 하나도 안 보여요. 입에 침이 말라요.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감리교회에서 내 인생은 끝났구나!' 
그래도 그 베낀 원고를 내려놨어요. 

주님은 제게 김동을 주셨어요.
'아니야 그렇게 하지마! 그냥 네가 살아왔던 얘기, 
네가 나를 만났잖아,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 얘기를 그냥 해봐!' 

그래서 어리석게 제 간증을 이어갔습니다.
'저는요, 의사 하다가 몸이 아파서 그렇게 하다가 
저는 마가의 다락방(기도원)에서 주님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하다가 보니까 
다음 얘기를 하고, 
버려진 애들 공부시키다가 
그렇게 하며 달려 나온 얘기들... 
오늘도 굶은 얘기들.. 
이런 얘기들을 해나가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그렇게들 우는지요. 
기회를 탁 잡았어요.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방주교회에서 오라고 할 때 
그때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회를) 딱 잡은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는 '그래 이제 지금 가야 해!' 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방주교회 와서도 5년 동안에 새 신자가 두 명 들어온 게 다였어요. 
그 가운데 교회는 나눔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교회에다가 다 나눠줬어요. 다 나누어 주었어요. 

그러다가 보니까 이것도 또 (기회를) 잡은 거더라고요

'여러분, 십일조나 감사헌금은 가난한 교회에 가서 하세요!' (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한 주일에 새신자가, 그 작은 교회에, 백 명이 넘게 들어왔어요. 
예배실 통로 길도 다 없어지고 (사람이 꽉 차고 많아서)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예배가 진행되지 않아 문을 다 잠궈버려야만 했습니다. 
성가대 석도 없애버리고요. 거기에 다 성도들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10주에 한번은 교회 문을 닫아버렸어요. 
(다른 연약한 교회로 성도들을 가라고 내보냈어요.)

그런데도 절대로 그런 거 안 하는 성도들이 있었어요. 
자기만 위해서 살아가는 성도들, 낯선 교회에 찾아가는 불편한 것을 싫어하는 성도들이 있었어요. 

이분들을 위해서요. '여러분들은 반드시 그렇게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방주교회 교인입니다! (연약한 교회로 가서 도우십시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들은 다 같이 나갔어요. 
그때도 (기회를) 딱 잡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 주에 백 명 넘게 새신자들이 들어왔으니까요. 

그 새신자들을 제가 관리를 다 했어요. 
이렇게 기회를 잡는다는 건, 내가 펄펄 살아있고,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잡는다고 하면 
(좋은 기회를) 하나도 못 잡아요. 다. 놓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어버릴 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때 
그러니 내 마음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십자가 붙들고 그저 죽어야 되는 죄인,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때에 
그 때에는 지나가는 모든 기회들을 다 잡을 수가 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좋은 기회들을) 다 놓쳐버리더라고요. 

이런 거 다 놓쳐도 돼요. 
그러나 구원이라는 것은 절대로 놓치면 안 돼요. 


◑주님이 주신 기회를 붙잡으려면, 먼저 자아가 죽어야 됩니다.

이 가운데도 누구나 다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고 행복하겠습니까마는
정말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핏방울로 정결케 되고 
좁은 문을 열고.. 
이제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건, 구원이라고 하는 건..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것, 거듭 태어나는 것 아닙니까! 

왜요? 나, 펄펄 살아있는 나로는 안 됩니다.

좁은 문을 열고, 주님의 말씀대로 원수도 사랑하고 
뭐 이웃도 사랑하고 하며, 좁은 길을 순종하며 걸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살아서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정말 주님을 만난, 회개하고 거듭난 자녀들은 
그 좁은 문을 열고, 그 좁은 길을 걸어가다가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거죠. 
맨 마지막에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다고 하는 거에요. 

구원의 문제만큼은 철저하게 여러분, 주님 밑으로 가서 회개해야 됩니다. 
그게 뭐예요? 
모르겠으면 제가 천천히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나는 나를 뒤를 돌아보면 악하기가 짝이 없는 자예요. 
'아~ 나는 악하지 않아요. 나는 선해요!'
그럼 그렇게 일단 그냥 가시고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나를 비춰보면 
나는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 자녀라는 거예요. 
이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분, 
잘 안 되면 마태복음 5~7장을 읽으세요.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라 
겉옷을 갖고자 하면 속옷까지 다 줘버려라 
너희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해라 
너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요!'

이거 다 행했느냐는 거에요. 
그 말씀에 기준으로 나를 지켜보면 
나는 더럽기가 짝이 없는 죄인이라고 하는 거죠.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가서 회개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고, 은혜가 있을 때 보면 
'나는 죽일 놈'인 거예요. 

사도 바울도, 그렇게 귀한 믿음의 용사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에 뭐라고 해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니까 '나는 죽일 놈'인 거예요. 
'나는 악하기가 짝이 없는 쪽, 괴수중에 괴수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자기가 괴수라고 하면, 우리는 뭐가 되는 겁니까? 
왜 그런 줄 아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또 주님의 은혜를.. 
십자가를 만나고 그 길을 걸어가다 보니 
내가 몹쓸 죄인인 것을 깨닫는 거에요. 
이게 은혜라는 거죠.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 
난 죄가 없어! .. 이런 사람들은 정말 위험하기가 짝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내 모든 죄들, 입술로 남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리고는 여러 사람들과 있을 때, 예배드릴 때는 거룩하기가 짝이 없는 모습이 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하시겠냐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 이렇게 살면 안 돼!' 하고 깨닫게 되면 
십자가 밑에 가서 주님을 붙잡고 '나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이 돼야 돼요!'

주님은 여러분들이 나오면, 정말 이제 회개가 됐다면.. 

회개가 된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이제 그 죄를 다시는 안 짓는 거예요. 그렇게 회개의 열매가 보여지는 거죠.

제가 옛날에 살았던 그 방식대로 지금도 살아간다면 
여러분이 저를 목사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설교를 잘 한다고 하면, 여러분이 여기 남아있겠습니까? 
아무도 남지 않을 거에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회개하지 않은 것이고, 
그 마지막은 뭐겠습니까? 지옥 아니겠습니까. 

 

◑구원의 기회는 무한정 열려 있지 않습니다. 문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넓은 길을 가면서 '나는 천국갈 거야!' 생각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구원은 누구나 다, 내가 원하는 때에 받을 수 없어요. 
지금 이어야 해요. 구원도 기회가 있습니다. 

'아 그래 맞어! 나는 뒤를 돌아보면 나는 죽일 놈 이야 
그러면서 내가 뭘 잘났다고, 뭘 그렇게 큰 소리치며 살아오고.. 
나는 이게 옳은 줄 알고, 이 삶을 계속 유지를 하며 살아갈까?' 

'십 년 후에 나는 어떨까, 오 년 후에는 어떻게 살아갈까?' 
지금과 동일하게 죄 가운데 살 것입니다.

진정 주님을 만나 내가 거듭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십 년 후에도 숨을 헐떡거리며 
이제 이 땅의 삶을 마지막 마무리할 때에도 
여러분은 동일한 생각과 동일한 마음과 인격으로,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요. 
그래요. 누구나 구원은 받고 싶다고 하여 '나 지금 받을래!'하면 되는 게 아니에요. 
때가 있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아야 하는데 
그때가 여러분들에게 오늘이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됐어요. 
그런데 양쪽에는 강도들이 동일하게 십자가에서 정죄를 받고 있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냐, 네가 구원자냐? 
그러면 너 스스로도 구원해 보고, 나도 구원해 봐라! 
우리들도 한번 이 십자가 형을 면하게 해봐라!' 
그리고 입에 거품들을 물으며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어요. 

그들에게 구원의 시간은 여섯시간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죠.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지금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그것은 
제 스스로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옵소서!' 

그러자 한편의 강도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로 이 강도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지금이었던 거예요. 

지금 십자가에 달려 이제 죽어가는 그 시간은 많지가 않은 거예요. 

우리들도 동일하게, 강도에게 주어진 6 시간이 
그저 우리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거죠. 

여러분, 스스로가 십자가 밑에 내려가서 자기 죄들을 해결하고 
이제 그 삶을, 더러운 죄들을 버리고 돌아서세요.

힘들어요.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그것을 바꿔버리긴 어려워요. 
나도 모르게 툭 툭 툭 나와버리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바꾸려고, 거듭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회개와 구원을) 다 만들어 주시는 게 아니라 

내가 싸워야 할 부분들을 깨닫게 하여 주시는 대로 
이제는 내 삶을 바꿔야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내 힘으로 해야 돼요. 
공짜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에게도 시간이 얼마나 남은 지 알지 못하나 
이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인격대로, 이 신앙대로 
우리가 살아온 삶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섯 시간만에 운명을 하셨어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불이 나서, 산불이 나서 
거기서 죽을 수밖에 없는 노루가 
이 산불을 죽어라고 벗어나려고, 강을 건너고 산을 건너고 냇물을 건너고 하여 
제 목숨을 구원한 것과 같이 

불이 타고 있는 건물, 이제 곧 무너질 건물에서 
마지막으로 이제 구원받은.. 그런 기가 막힌 일들이 이 강도에게 일어났어요. 

예수님은 저렇게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저들을 바라보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 같으니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하는 주님을 보고, 강도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강도는 평소에 늘 '죽여버려요. 저것들 다 죽여버려야 해!' 하거든요. 
그런데 강도는 깨달았어요. 마지막에 기가 막힌 찬스를 잡은 겁니다. 

'예수여, 당신이 나라가 곧 임할 텐데, 그때 나를 기억하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도 정말 이 구원의 기회를 붙잡는 데에, 여러분이 최선을 다하고 
이게 잘 안 될 때는, 눈을 뜨면 기도 하고, 밥 먹으면서 기도 하고요. 
여러분 모든 인생을 걸고, 밤에 자면서도 기도하는 그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 이 설교말씀이 내 마음의 꽉 박히게 해주세요!'
라고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비록 별 볼일 없는 용서받은 죄인의 입술에서 나가지만 
'하나님 이 설교가 제 심령에 꽉 박히게 하소서.
제가 믿음의 길을, 좁은 길을 향하여 걸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구원받는 믿음의 자녀들, 정말 모양뿐만 아니라 속 사람이 구원받는 
은혜의 자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제 구원의 기회는 항상 있는 게 아니에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도다.' 

'아~ 너희가 이런 저런 계획을 해도, 그렇지 않아! 
너희 생명은 그저 요만큼밖에는 되지 않아! 
잠깐 왔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야!' 

이런 짧은 인생에서, 구원받은 믿음의 자녀들의 
가장 중요하게 해야 될 게 뭘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이에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그렇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레위기에도요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런 말씀들이 신약에도 있고, 구약에도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아주 중요한 말씀이니까요) 
너희는 거룩하라 왜냐하면 이는 나 여호와는 거룩하기 때문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이 정녕 나의 백성이고 나의 자녀라면 너희들은 거룩해야 한다!' 
그럼 거룩이라고 하는 게 뭘까요? 어떻게 하는게 거룩해지는 걸까요?  *주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여러가지  
거룩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얘기하세요. 

'너희가 땅에서 이제 곡식을 거둘 때에 
곡식들이 땅에 떨어질거다. 떨어진 것을 줍지 말아라.' 
왜냐하면 배고픈 자들이 이삭을 주워 먹어야 하니까요. 하나님은 이러하신 하나님이세요.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비방하지 않는 것) 이게 거룩하다고 하시는 거에요. 

'너희들은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아라. 
가난한 자의 편도 들지 말아라. 또 세력있는 자라고 하여 두둔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공의로운 판단만 해라, 재판을 해라' 
그렇죠. 거룩이란 이런 거예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저는 이 말씀이 좀 황당하기도 하잖아요. 
거룩하라고 하시며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라' 
'거룩해야 하는 삶이 있다. 그 삶은 사십일 금식기도해라! 
너희들이 거룩하려면, 성경은 최소한도 일 년에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 

너희들 큐티를 해라 마태복음 5~7장으로 큐티를 해야 된다. 
기도는 너희들이 하루에 세 차례는 해라.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낮 열두시에 하고, 저녁 6시에 해라! 

이게 거룩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해서 거룩해진다고 말씀하신게 아니라 

(너희가 거룩하려면) '추수할 때, 이삭을 다 거두지마! 가난한 자의 몫을 남겨라!
너희들은 재판할 때 굽게 하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해서 뭐 더 도와주지도 말고 
힘 있는 자라고 해서 두둔하지 마라! 

그리고 남을 비방하거나, 그저 불평하거나, 남의 일들을 얘기하지 말라.
남의 단점들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얘기하지 말라' 이게 거룩이라는 겁니다.

저는 제일 싫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 얘기를 여기 저기에다가 옮기는 거에요. 

그러면 그 얘기가, 내가 이 사람에게 좋은 얘기를 했는데 
이 사람은 저 사람에게 나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나쁜 얘기를 들은 사람이 나중에 섭섭했던 걸 저에게 얘기할 때, 
황당하기가 짝이 없어요. 

여러분 그러지 마세요. 혹시나 부정적인 얘기를 들었어도 좋게 옮겨야죠.
그래서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 화합하게 해야죠. 

남의 말을 부정적으로 옮기는 사람은,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에요. 
그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려서부터 상처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모든 게 다 부정적이에요. 우린 그렇게 살아서는 안 돼요. 

오늘 말씀처럼, 이웃을, 성도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그러시는 거죠. 
우리는 거룩이라고 하는 것을 

어떤 교회가 거룩하냐? 여기 막 강대상에 꽃도 갖다 놓고요. 
화려하기가 짝이 없고, 엄청난 성가대가 하늘에서 울리는 것 같은 찬양을 하고 
또 기가 막힌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해서 음악이 웅장하기가 짝이 없고 
또 종탑도 엄청나게 높이 세우고, 교회도 겉모습이 그저 들어가기 주눅될 정도로 그렇게 만들고 

목사님들, 뭐 감독들은 보라색 가운을 입고, 
하여튼 뭐 검은 박사가운 같은 것들 입고.. 뭐 그게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거룩의 본질은 아니라는 거죠.

속이 아름다우면 다 아름다운 거에요. 
속 내용이 거룩하면 다 거룩한거에요. 어떻게 어떻든 간에.. 
그러나 우리는 겉이 거룩하면, 거룩한 걸로 생각을 해요... 

거룩한 성도라는 게 뭘까요? 
금식 자주 하는 사람,  
성경을 수도 없이 많이 외워 정말 모든 성경구절이 툭툭 툭툭 나오는 사람, 
기도를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는 사람... 그게 정말 거룩한 걸까요? 

'사랑하라'는 한 말씀 가지고도, 평생을 살아도 못 살아요. 
여기저기 인터넷 돌아다니며 이 설교, 저 설교 들어가지고 
여러분들 잘못된 지식까지 습득해서 그냥 머리만 높아지는 일이 이제는 그만해야 돼요. 

이 말씀가지고 여러분들이 살아나간다고 하면 
이렇게 주일날 한 번만 예배를 드려도 충분하고도 남아요. 

이 '이웃을 사랑하라, 거룩하라'는 말씀 하나 가지고도 살기가 어려운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뭐 그냥 이것저것 듣고 그러지 마세요. 
그건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에요. 

▲저는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터 테레사! 
과거에 그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었어요. 제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요. 

성 프란시스.. 이런 사람들의 책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이분들의 공통점은,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고아들, 
쓰레기통 뒤지는 이 고아들을 데려다가 고아원을 만들더라고요. 

저는 가슴이 뛰어요. 이제 또 아프리카 가면 고아원을 또 하나 만들거예요.
그래서 장님 아이들, 장애인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 

서로를 죽이고 죽고 하는 바로 그런 부족 싸움들이 엄청나서 
이제는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거의 매일 그렇게 서로 죽이고 하여 
애들이 고아가 되고, 그것들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 마음 속이 완악하기가 짝이 없는 이 아이들!

'내가 이번에 가서는 거기에 아름다운 고아원 하나 만들거야! 
그래서 여자아이든 남자이이든 참으로 이 아이들 잘 양육해서
건강한 아이들, 눈먼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서로 생명을 걸고 서로 사랑해주는, 우정이 있는.. 

주님안에 하나 되는 나는 그 고아원을 반드시 만들거야, 이번에 가면 꼭 만들어야지...'

다음 달에는 아마 아프리카로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그래요. 그 영향을 제가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테레사 수녀는 길거리에 버림 받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이 고아들을 거두어다가 
고아의 집을 만들었어요. 

또 인도에서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요. 집에서 죽어가는 게 아니라 길거리에서 죽어가요. 
임종의 집, 죽어가는 사람들이 그 집으로 들어와 비어있는 침대에 가서 눕는 거예요. 
그러면 테레사 수녀는 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자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잘 죽게.. 주님을 붙들고 죽게 만드는 그 일들을 했어요. 

또 나환자들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분들을 잘 섬겼어요. 
'평화의 마을'을 만들고, 그분들에게 최선을 다해 섬겼어요. 

우리도 하여튼 이런 곳이 있다고 하면 어디든지 달려갔습니다. 
중국도 가고, 인도도 가고, 뭐 필리핀도, 아프리카도 다니며 열심히 나름대로 일들을 했어요. 

아프리카는 애들이 장애인으로 태어나면 바로 죽여버려요.
거기에서 고아들은 이미 인생이 끝난 애들이에요. 
거기서 장님은, 살아난 게 용할 정도이에요. 그런 아이들이에요. 

그 앞을 못 보는 아이들이, (생계로) 십자가도 만들게 하고,
이 아이들에게 환상을 보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눈이 열리면, 우리 주님과 만나서 같이 얘기를 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도 볼 수 있는 아이들이 되면.. 그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해요. 

테레사 수녀가 금식을 사십 일간 하는 것, 
막 불같이 설교를 하는 것, 
성경연구를 하여 깊은 성경의 경지에 도달하여 성경을 잘 가르치고 하는
그런 모습은 한 군데도 없었어요. 
신학적인 지식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키가 작은 깡마른 그 할머니는, 열심히 버려진 사람들을 찾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에는 인도 국가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했어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 말씀대로 살았던 신앙인이 되었죠!

▲저는 꽃에 신경을 쓸까봐 그것도 다 없애버렸어요. 강대상의 꽃도 없애버렸어요. 
무슨 추수감사주일에 잔뜩 사과, 배를 장식하는 것도 못하게 했어요. 

'그냥 우리는 예배에만 집중하자' 
꽃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이 꽃을 해놓으면 막 소리 지르고 싸움들을 하더라고요. 
'이거는 내가 하는 건데, 왜 니가 하느냐?' 그래서 방주교회에는 꽃 봉사를 없애버렸어요. 

그런데도 누가 꽃을 해 오면, 바로 예배 전에 노숙하는 사람들 밥 먹는 곳에 다 꽂아놔버렸어요. 
그분들에게 꽃 꽂아주는 게, 훨씬 더 귀한 일입니다.

꽃을 장식하는 분들은, 꽃을 강대상에 놔야 그게 거룩한 줄 아는 거에요. 
우린 그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돼요. 

▲성경에는 수도 없는 많은 예화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거의 죽어갔어요. 

제사장이 걸어가다가 옆을 보니, 그가 죽어가니, 난 바쁘다며 그냥 갑니다. 
레위인이 지나가다가 그냥 갔어요. 

천한 사마리아인이 가서 그를 구해줬습니다.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누가 내 이웃입니까?'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고 질문하자
그러자 예수님은 도리어 그들에게 질문하셨어요. 
'이 세 명 중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냐?'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냐?' 라고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렇다면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해라! 그게 이웃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요. 이제 예배가 끝나면, 저는 필그림 선교교회가서 또 말씀을 전해야 돼요. 
참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중학생 애가 집을 나와, 어느 집에 풀장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내가 수영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그 집에 가서 뛰어서 다이빙을 했는데 
마침 그 날은 물이 없었어요. 아이는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날부터 목 이상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다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이제는 그도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 불쌍한 분이 있더군요. 

그분의 지혜가 심방을 가게 됐습니다. 
심방을 갔는데 놀라웠어요. 겨우 눈동자만 움직이는데 
눈동자가 움직일 수 있는 곳에 본인이 중보기도해야 할 사람들, 아픈 사람들 명단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제 이름도 있었어요. 

그걸 놓고 그 기도하는 거예요. 눈동자를 돌려가며... 
그런데 중학교 때 이미 아무것도 못 쓰고 대소변을 다 받아내야 하는 그분에게 
아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분과 결혼을 합니다. 평생을 대소변을 받아냈어요. 
제가 그 교회에 설교하러 가면, 예배당에 그 침대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를 메고와 침대에 누워서 예배를 드리게 했어요. 맨 앞자리에서. 
예배가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예배가 끝나면 늘 안수기도를 해줬어요. 

그런데 그만 바로 며칠 전에 코로나에 걸렸어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요. 
그래서 바로 하루만에 소천을 하시더라고요. 
오늘 그 교회에 가면 그 앞자리가 비어있으면, 제 마음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그분들은 그저 나라에서 나오는 장애연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제 장애연금이 안 나오니까, 
제가 특별히 말했어요. '나라에서 나오는 만큼 늘 그분들에게 매달 도와줘라, 
집 월세도 늘 내줘야 한다. 그분이 좋은 직장을 갖기까지!
그리고 그 직장에서 월급을 덜 받게 되면 교회에서 다 채워주시라.' 

왜냐면 아름다운 삶을 살았잖아요. 
얼마나 우리에게 눈물 나게 고마운 성도입니까. 

또 소천한 우리 성도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이웃을 돕는 일입니다. 
교회들이 당연하게 그렇게 해야 하는 일들 아니겠나요? 

교회는 교회만 살찌면 안 돼요.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분들도 잘 들으셔야 돼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믿음들을 잘 만들어가지 않으면 
어쩌면 병든 신앙으로, 겉만 화려한 거룩함을 가지고 
이것이 진짜 거룩함인 줄 알고, 그것만을 따라가다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그게 아닐 경우가 얼마나 많겠냐고 하는 거예요. 

▲이제 말씀을 좀 정리하겠습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런데 요즘 제게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그걸 붙들고 기도 해요. 
용산 저쪽으로 가보면,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노숙하는 분들이 계세요. 

왜냐하면 박스로 이렇게 만들어가지고, 그 안에 박스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데 들어가서 잠을 자니 
추울 때 어떻게 하라고요? 우리는 그래서 텐트를 만들어 줬어요. 

텐트를 만들어 주고 거기에 도시락을 늘 갖다 줬어요. 
용산역 쪽방도 마찬가지고요. 

용산역에서 노숙하는 분들에게, 매일, 
많을 때는 7백개의 도시락, 그거 만드는데 얼마나 힘듭니까. 
여기에 최선을 다해주는 귀한 성도들이 있어요.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 앞에 갔을 때는 그것이 해같이 빛나리라고 저는 믿어요. 

그런데요.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곳에 대통령이 아마 용산 쪽에 이제 들어가 살게 되는 모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일대를 싹 다 철거를 해야 돼요.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요. 

이분들은 어디로 가요? 그 연락을 받고 난 다음에 제 기도의 제목이 됐어요. 
'그럼 이 분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이제 뭐 나가라고 하면 다른 곳으로 가야죠. 그동안은 행복하게 거기서 
도시락과 텐트를 가지고, 그나마 힘든 삶들을 이어갔거든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짜증이 날 때도 있어요. 
건물 하나 있으면, 거기에 다들 모여서 
행복하게 믿음의 용사들로 살다가, 믿음이 용사들로 만들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또한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게 뭘까요? 
'너희들은 그 마음을 가져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의 삶을 이끌어 줄게! 
너희들이 거듭났다면, 당연하게 그 길을 걸어가라!' 

우리 성도님들은요. 이제는 그 길, 이웃을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꼭 주님의 마음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그 길을 향하여 우리 함께 걸어가십시다. 

제가 앞서 갈 테니, 여러분들은 같은 동력자들로서 
이 귀한 길, 순종의 길, 힘들고 어려워도 늘 결단하며 
그곳으로 여러분들의 발걸음으로 옮기는 믿음의 귀한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길로 저희를 인도하소서. 
우리들의 마음이 세상에 뺏기지 않게 하시고 
내 아버지여, 비뚤어진 잘못된 인격으로 우리들의 신앙을 가장하여 
그 외식된 길을 걸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터넷 성도들로부터 전부, 자던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주소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에 꽃히게 하여주셔서 
나도 모르게 더러운 죄들을 버리고 

주님, 작은 것으로부터 순종하며 
작은 것으로부터 내가 거듭나는 귀한 은혜의 삶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축복으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