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로교회 사랑의 목자이셨고 한국 교회의 큰 어른이신 정필도 목사님의 소천을 함께 애도하며 주의 특별하신 위로와 평화가 공동체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은 물론 천국의 영광을 향해서 아름답게 출발하셨습니다. 하지만 작별은 여전히 우리에게 슬픔이고 아픔입니다.
저(이동원 목사)도 한 1년 반 전에, 42살이었던 제 둘째 아들, 미국에서 국제 변호사를 하고 있던 아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아픔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동료 목회자 가운데 한 분이 세계적 영향을 끼치던 신학자의 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자기 마음속에서 묵상했던 글을 하나 제게 보내줬어요.
바로 그 글이, 고전13:12~13절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말씀을 천천히 묵상하면서, 저는 마음의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한번은 반드시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시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로부터 이 땅에서는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나보낸 우리 조상들은 그 고통을 가리켜서 천붕지통 天崩之痛,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다.. 라고 했고
자식들을 앞세우는 아픔을 겪었을 때는 참척지변 慘慽之變, 참혹한 슬픔의 변, 혹은 땅이 무너지는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지나간 며칠 간의 애도 기간과 조문, 그리고 천국환송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정필도 목사님이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영광스럽게 세상을 살다가 떠나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우리 곁에 머무시면서 우리를 지도해 주셨으면..' 하는 그 아쉬움은 여전히 깊이 우리 마음에 남습니다.
더욱 최근에 우리는 우리 사회에, 그리고 한국교회에 어른이 없다는.. 지도자가 없다는..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남습니다.
◑특별히 정필도 목사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정 목사님은 특별히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던 분이다' 이런 생각을 여러번 했습니다.
목사님은 믿음의 삶을 다 사신 후에 우리 후배들에게 그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저는 주로 정필도 목사님을, <목회자 세미나> 그리고 국내 외에서 열리는 <선교 세미나>에서 자주 뵈올 수 있었어요.
거의 한 20번 가까이 뵙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공동 강사로 이렇게 부름을 받았으니까 제가 정목사님의 간증도 듣고 설교도 듣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또 마찬가지로 정목사님도 아마 제 설교를 듣는 기회가 적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까워졌습니다.
정목사님을 가까이 교제할수록 나와 공통점도 있고 '또 이런 것은 정말 나와는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저와 같은 점은 '교회와 선교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던 것'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쉽게 정목사님과 마음이 통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와 다른 점이 있었는데 내가 그 두 가지는 도저히 정목사님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그분의 아주 특별한 믿음이었고 -두 번째는 그분의 무릎 꿇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정목사님에게 늘
'무릎 관절이 아파서 저는 그렇게 목사님처럼 오래 무릎 꿇고 있을 수가 없어요.' 이런 얘기를 같이 나누곤 했습니다.
과거 기독교 역사에 보면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어요. 조지 뮬러 같은 분! 저는 그런 분의 믿음은 평범한 믿음이 아니라, '은사로서의 믿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목사님께도 '그런 믿음을 하나님이 주셨구나!' 라는 생각을 과거에 적지 않게 했습니다.
정목사님의 간증을 가만히 들어보면 어려서부터 아주 확고한 믿음을 가지셨던 분으로 생각됩니다.
천국을 확실히 믿게 되자 정 목사님은 '이 세상에 살아봤자 죄만 자꾸 짓는데 오래 살 필요가 있나? 그래서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 문자 그대로 천국을 믿은거죠.
그래서 (굶어 죽으려고) 금식까지 하셨다고... *아주 어릴 적에 집이 너무 가난해서 근데 다행히 사셨다고... 그런 간증들을 하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만큼 천국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또 초기에 수영로교회를 개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교회가 부흥될 때 얼마나 좋았는지...
'정말 내가 교회를 잘 부흥시켰구나..' 근데 다음 순간 교회가 좀 위축되면, 그분의 마음도 위축되면서 마음 아파서 기도하던 순간, 그분이 하나님의 친 음성을 들었다고...
'목회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라고
그래서 교회의 주인, 목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 라고 간증하시던 정목사님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목사님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신뢰, 성령님께 대한 신뢰.. 그 믿음으로 평생을 사신 줄로 믿습니다.
▲정목사님은 믿음의 사람이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소망의 사람>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천국의 시민이 된 순간부터 천국의 영원한 소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그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소망이 아니라 살아있는 소망! 복된 소망! 그리고 그것은 확실한 소망이라고 증거합니다.
믿음이 우리에게 이런 소망을 안겨다 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완전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 하늘의 소망으로 모든 혼란,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도착하는 그 순간, 소망이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C S 루이스는 천국을 가리켜서 '꿈꾸는 곳'이라고 했어요. 끊임없이 꿈꾸는 곳, 거기서 우리가 아직도 계속 꾸어야 할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천국과 지옥을 비교하면서, 지옥의 뭐냐? 지옥은 더 이상의 꿈이 없어지는 곳,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는 곳.. 그곳이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정 목사님을 보면, 이 땅에 계실 때도 항상 꿈을 꾸셨어요. 위대한 교회의 꿈, 그리고 한 도시와 민족이 변화되는 꿈... 그런 꿈을 꾸셨습니다.
목사님의 꿈(소망)은 천국에서도 계속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천국 소망이 확신하면 두 가지가 확실해져요. 1)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어요. 그 소망이 확실할수록,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2) 두 번째로 그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그 소망의 천국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목사님이 선교를 외치고, 전도를 외쳤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확실한 천국, 어떻게 전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은 이름도 바꾸셨다고... 필도로! 필히 복음의 도를 전하겠다고!
그래서 전설 같은 전도자의 삶, 선교에 한평생을 사셨던 목사님은 진정 소망의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 소망의 사람, 한 걸음 더 나아가 정필도 목사님은 <사랑의 사람>이셨습니다. 바울사도는 오늘 본문 13절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 상상이 되십니까? 사랑이 없는 곳에서 믿음이 자랄 수가 있을까요?
이 땅에 가정에서 경험하는 모든 상처, 그 상처가 왜 생겼을까요? 믿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믿지 못하는 까닭은, 결국은 사랑의 결핍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사랑이 없는 소망을 상상해 보십시오. 더 이상 사랑이 기다리지 않는 곳에, 무엇을 소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랑이 없는 곳에 우리가 기다릴 소망이 뭐가 있겠어요?
이 땅에서 소망을 포기하고 접어버린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왜 소망을 포기했느냐고? 그것은 그들의 소망을 키워주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5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아멘! 그렇습니다. 사랑이 소망을 지키고, 소망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 정필도 목사님은 바로 그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나누어주셨고, 그 사랑을 보여주셨고, 그 사랑으로 여러분을 지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천국은 믿음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소망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천국은 사랑의 나라인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그 중에 제일인 사랑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아직은 온전해지지 못한 상태 속에서, 지금 여기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믿음도 불완전하고, 지금 우리의 소망도 불완전하고, 지금 우리의 사랑도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의 거룩함이 완성되는 그때, 우리가 영화로운 천국에 들어가는 그때, 비로소 우리는 완벽한 사랑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정목사님이 저와 같이 이렇게 다니면서 세미나를 인도하실 때 우리 다른 목사님들에게 자주 강조했던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이 생각나요.
'제발 설교할 때, 교인들 상처 내는 설교하지 말라고.. 교인들이 상처 받을 소리 하지 말라고...
여러분들이 교인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섭섭하고 미운 그 마음을 설교로 풀지 말고, 그들을 위해 입 닫고 기도하라고...'
그 말이 가장 인상적으로 제 마음에 남아 있어요.
정목사님의 사랑의 방식, 그것은 아마 그분의 무릎 꿇는 기도가 아니었을까? 수영로교회를 사랑하는 방식이 여러분을 가슴에 품고 무릎 꿇고 기도하심으로써 그분은 평생 그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주의 은혜가 완벽하게 통치하는 곳입니다. 천국은 완벽한 주의 사랑이 통치하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그 종이 그곳에 간 것을 기뻐하십시다. 그리고 거기에서 머지않아 우리가 함께 만날 것을 기대하십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정목사님과 함께 천국에서 예배드리는 그날을 기대하십시다.
▲제가 1년 반 전에, 제 둘째 아들을 천국에 보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4~5개월 전 2020년 봄이었어요. 갑자기 제 아들에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다'고 소식이 왔습니다.
그래서 '잘 받고 오라'고 그랬습니다. 얼마 후에 소식이 들려오기를 '암으로 판정이 났다고.. 대장암 4기 라고..'
이럴 경우에 모든 부모는, 기적을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 염려말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수술을 받았어요. 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때 제 아내가, 아들 곁에 가서 몇 달을 또 돕고 오기도 했습니다.
저희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큰 차도는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제 아들이 기적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제가 전 세계에 다니면서 간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한 다섯 달이 지난 팔월 초였어요. 아침에 일어나 한국에서 제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생각 하나가 뇌리에 스치고 지나갔어요.
'혹시 하나님이 우리 아들을 부르시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내가 아들과 전화해서 확인을 해야 겠다.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지?'
아빠로서 하기 힘든 얘기였지만, 기도하고 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기적의 하나님을 믿고 그 기적의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할 줄로 분명히 믿는다.
하지만 말이야, 사람은 결국은 다 떠나는 법이고, 언젠가는 나도 가고 너도 갈 거야. 아들아 혹시 주님이 부르신다면, 주님 앞에 설 준비가 됐니?'
한동안 조용해요. 그러더니 갑자기 전화기에서 웃는 소리가 나와요. '에이 아빠, 걱정하지마!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나는 날마다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 날마다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
그 다음에 하는 소리가 '아빠, 한 가지 좋은 게 뭐냐면, 병을 앓고 있으니까 다 내려놓고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거야!'
그때 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아멘, 됐어, 그러면 됐어!' 가 터져나왔습니다.
이 때가 8월인데, 그해 2020년 10월 9일 날, 주님의 부름을 받고 떠났습니다. 이틀 전에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저는 아내와 함께 비행기 표를 끊어서 LA 공항에 도착했을 때 소식이 왔어요. 바로 방금 전에 떠났다고!
부리나케 집으로 갔더니 친구들이 와 있었고 또 우리 아이가 나가던 교회의 목사님이 와 계셨어요.
그 목사님이 제 손을 잡고 그래요. "목사님, 우리 이범 집사가 (제 아들) 제가 찾아갈 때마다, 제가 전화할 때마다, 제가 병원으로 갈 때마다 한결같은 말을 했어요.
'저는 주님만 바라보거든요. 주님께 집중하니까 너무너무 좋아요. 주님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범 집사가 그 주님을 바라보다가, 그 주님의 품에 안긴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제 마음이 슬프고 아팠지만, 제 마음에 세상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어떤 평화가 있었어요.."
사람이 아픔과 더불어 싸우다가 어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이런 말을 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이제 그만 가고 싶어요. 주님 보고 싶어요.'
우리 사랑하는 정목사님도 바로 그 주님의 얼굴을 사모하며 영광의 주님 앞에 가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존경하는 정목사님이 여러분과 우리 공동체에 남긴 선물,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분은 믿음의 삶을 다 사셨습니다. 믿음의 인생을 이제 마무리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열조들의 아름다운 믿음을 증언한 히브리서 11장이 있잖아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은.. 믿음으로 야곱은..'
저는 여기에 단어 하나가 더 쓰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믿음으로 정필도 목사는..'
언젠가 우리도 믿음의 책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할 그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소망으로 살고,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을 남기신 바로 그분,
지금은 상실의 슬픔을 넘어서서, 그때 부활의 소망을 붙잡아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십자가의 고통을 넘어선, 그때 부활의 소망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시간 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주일은 원래 부활의 날이잖아요. 예수님이 주일에 부활하셨으니까요. 그래서 정교회에 속한 교인들은, 주일날 만나면 전통적으로 이런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아멘 참으로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시 받아 말하기를 '그러면 다음 부활의 아침에 만납시다!'
여러분 주님 부활한 거 믿으십니까, 참으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렇게 인사할 시간이죠. '다음 부활의 아침에 만납시다!'
다음 부활의 아침에 우리는 정목사님을 만날 것입니다. 함께 춤추며 찬양할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이렇게 복음만을 가슴에 안고 일생을 살았고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정필도 목사님이야 말로, 사도바울처럼, 우리 시대에 전도자로 사신 분이십니다.
공군 군목으로 전역하신 후에 1975년도에 부산으로 오셨고, 1975.06.01. 수영로교회를 개척하셔서 그 후 47년간 목회하셨고, 2011년 70세에 은퇴하신 이후에도 전국과 세계로 다니시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오직 전도자의 길만을 일평생 가신 것입니다.
그 분이 남기신 말씀처럼 '오직 기도, 오직 말씀, 오직 전도'에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수영로교회는 부산과 경남지역을 복음화하는데 언제나 중심이요, 큰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서울에서 영락교회가 최초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가 되었다면 부산에서는 수영로교회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수영로교회는, 부산에서, 주일날 복수 예배를 드리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복수 예배'란, 주일날 2부 예배, 3부 예배.. 이렇게 드리는 것인데, 부산에서 그 최초가 수영로교회였습니다. 모여드는 성도가 넘쳐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의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이름도 수영로.. 길 로路 자를 쓰고 있습니다만 *수영: 지역이름, 과거에 바다를 지키던 진지 수영로교회가 생기기 이전에, 한국에서 교회 이름에 '로路'자가 들어간 곳이 없었습니다. (외국에서는 교회 이름에 '스트릿, 로드'를 넣어 썼지만, 그때까지 한국에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영로교회가 세워진 후로는, 신평로교회, 세계로교회, 감천로교회 등 교회 이름에 '로路'자가 들어간 교회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수영로교회는 부산경남지역 교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945년 해방 당시 부산에 교회는 약 40개였습니다. 1950년 625동란이 일어나던 당시는 부산에 교회가 약 50곳에 불과했습니다.
1965년 당시 부산에는, 약 3백개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1975년 당시 수영로교회가 설립되던 때, 부산의 기독교 인구는 22만명에 불과했습니다.
1985년에는 부산의 기독교 인구가 34만이 되는데, 이것은 부산의 기독교 인구가,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10%를 상회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부산 기독교 인구가, 부산 전체 인구의 약 40%라고 합니다.
이같은 부산지역 기독교 인구의 성장에는 수영로교회의 성장과 비례하는 역사를 걸어왔고, (1975년~)
또한 개교회의 성장에도 훌륭한 모델이 되어 주었고, 교회성장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귀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사람이 전도자로 나서고, 전도자로 자기 일생을 바쳐 헌신할 때 그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한 가지 큰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의 복음화였고, 로마 제국의 복음화였습니다. 롬1:13~15
어떻게 보면 사도바울의 그 복음 전파의 열정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이 2천년 교회 역사에 많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 또 한 사람이 정필도 목사님 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 복음화였고 정 목사님 가슴 속에 있었던 끊을 수 없는 한 가지 큰 열망도 바로 부산의 복음화, 부산의 성시화, 민족의 복음화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바탕에서 세계의 복음화를 꿈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2007년도에 부산전도대회, 부산성시화 운동 같은 시 전체의 복음전도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가 있었기에 부산교계 연합 사업이 가능했고 그가 있었기에 부산에서 복음화 대회가 가능했고 2014년에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회개운동을 전개하는 위대한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전도자 라는 확신,
그리고 세계복음화, 그리고 부산 성시화 라는 거룩한 열망 때문에 2011년에 은퇴한 이후에도 중국과 일본, 러시아,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하셨습니다.
앞서 우리가 영상을 봤습니다만 가는 곳곳마다 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회개역사가 일어나고 교역자들과 사역자들을 변화시키고, 지역교회들에 영적인 생명을 부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충직한 말씀의 종이었고 지칠 줄 모르는 전도자였고 부산복음화, 민족복음화,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한 거룩한 열망을 가졌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무릎으로 사셨던 기도의 사람이셨고 늘 회개하는 맑은 영혼으로 사셨고 자신의 삶으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시는 바처럼 그의 삶의 주변에서는 잡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영적인 지도자로, 존경받는 목회자로서 달려갈 길을 다 마치게 되신 것입니다.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리는 정목사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리고 정목사님이 남기신 신앙유산을 잘 계승하는 그런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남겨주신, 그리고 정목사님이 남겨주신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남은 생애를 살아가시는 축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상규 목사
참 안타까운 것은 정말 부산 교계 뿐만 아니라 전국의 교계 목사님들이 그렇게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제 최홍준 목사가 부산에 온지 35년이 되었습니다. 1987년도에 제가 부산에 와서 곧장 부산성시화 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시작해서 저는 저희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입니다만 부산성시화 운동본부에 오면 부교역자였습니다. 정필도 목사님을 모시고 부산성시화 운동을 섬겼던 것입니다.
부산성시화 운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초교파적으로 부산 교계를 하나로 만드셨는데 그래서 과거에 불교 도시의 색채가 짙었던 부산을 기독교 도시로 만든 분도 역시 정필도 목사님이셨습니다.
부산에 문화가 말이죠, 거리에 나가보면 과거에 거의 보살 옷이나 법복을 사람들이 평상복처럼 입고 다녔어요. 그 정도로 불교도시였습니다.
부산에 기관장들이 오게 되면, 반드시 스님들을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상당히 오래동안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성시화를 통해서 부산이 소위 기독교 도시로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기관장이 부임하게 되면, 기독교 지도자를 찾게 돼요.
정목사님을 찾아뵈었고, 또한 부족하지만 저를 찾아와서 인사를 했어요. 정필도 목사님은 부산 성시화 운동의 초기부터 본부장이 되셔서 8년 동안 이끄셨어요.
그래서 8년 동안 하시면서 기반을 딱 잡았습니다. 완전히 기반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물려받아 가지고 6년을 했어요.
그러면서 부산성시화 운동은, 한국의 어떤 도시의 성시화보다도 기초가 튼튼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시스템이 부산을 성시화하고, 거룩한 도시로 만드는 역사에 제대로 기여를 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도 서울성시화 보다도 더 지금 견고하게 서 있는 게 부산성시화 입니다. 그래서 부산의 정서가 달라졌죠.
불교 도시가 기독교 도시로.. 숫자는 아직 더 늘어나야 되지만 그러나 모든 분위기와 상황은 기독교 도시로 되지 않았느냐.. 그렇게 저희들은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위스의 제네바를 통해서 성시화를 이루었던 칼빈과 같이 정목사님은 부산을 성시화 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도시로 만들어 가게 된 것입니다.
1975년, 하나님께서는 서울 태생인 정필도 목사님을 부산으로 오게 하셨어요. 부산에 있을 때도 서울에서 많이 (큰 교회 담임으로) 초청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 분인지, 꼼짝하지 않고, 여기서 계속 개척을 이어가게 된 것도 하나님이 부산을 사랑해서,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하신 줄 믿습니다.
제가 정목사님과 함께 사역한 지가 거의 35년에 가까워요. 늘 부산성시화를 위해서 함께 동역했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정목사님을 통해서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의... 또한 세계적으로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셨는가를 우리는 영상을 보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정목사님은 오직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십니다. 무릎으로 목회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모든 후배들에게 '아~ 그렇게 하는 거구나, 그렇게 하는 거구나..' 그래서 많은 후배들이,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무릎으로, 기도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딤후4:6~8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주님께서는 정목사님을 바울과 같이 사용하신 것 같아요. 선한 싸움을 싸우셨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신 분입니다.
귀하신 목사님을 세상에서는 우리가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바울이 받은 의의 면류관 받으시고 행복해하실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여기 모인 모든 심령들이 위로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목사님을 생각하면서 또 이 말씀이생각이 났습니다.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정목사님은 부산에 내려오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부산에서 계셨습니다.
정목사님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그때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치료를 해야겠다고 할 때 정목사님께서 인공호흡기에 대한 것을 자세히 설명을 들으시고는 주치의한테 말해서 인공호흡기 부착을 거부하신 거예요.
지금 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그와 같은 연명 치료를 단호하게 거부하신 것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름이 가까웠다는 것을 인지하셨던 것 같아요. 인공호흡기를 떼시고 호흡이 안 되니까.. 그러시고는 곧장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다가 연장하다가 그렇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순리적으로 때가 차매 하나님이 부르시는 줄 믿습니다. 정목사님 다운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정필도 목사님은 복음을 위해서 한평생을 목회하시면서 보내셨고 그리고 국내외 세계로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선교사들을 변화시키고, 목사들을 변화시키는 이와 같은 사역을 하셨던 우리 정목사님!
지금 이 시간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만 정목사님은 그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바울이 받았던 의의 면류관 그 면류관을 받으면서 천국에서 주님과 더불어 참으로 행복한, 평안한 삶을 사시는 그 정목사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모두가 위로받고, 모두가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을 갖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홍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