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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3장 23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LNCK 2022. 3. 31. 19:09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요일3:23, 렘4:23           2022.03.27.출처

우리가 타락한 나그네 인생길을 가면서, 천국을 향해서 가는 중인데 
그 가는 길에 우리에게는 많은 고통과 아픔과 시련이 있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주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제자들의 마음은 '주님의 나라가 빨리 임해야죠.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죠. 
이 아픔과, 이 억압과, 이 고난과, 이 문제들을 빨리 해결해야죠...'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에 <이미> 하늘 나라가 임했다'고 하셨어요.
'이미 already' 천국이 우리 가운데 임해 있는 것입니다.

눅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어두움과 혼돈과 공허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 

마치 겨울이 다 끝나가는 즈음에 그 메마른 가지 끝에 
봄에 새 싹이 돋아나듯.. 지금 3월말인데, 새 싹이 돋는 시기죠.

그 새싹을 '이미' 보면서 '그래도 삶은 아름다워요!' 라고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인줄 믿습니다.

등산하시는 분한테 물어봤더니 
'높은 곳을 갈 때는 목적지를 생각하면 힘들어서 못 간다고... 
가는 길을 즐겨야 한다고...' 그럽디다.

그렇죠.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벧전2:9절에,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택하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셔서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중보하는 왕 같은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는데..' 

그 목적이 뭐냐면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선을) 선포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고백해야 하는데요. 
"그래도 삶은 아름답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것이 평탄하고 
모든 것이 만사형통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우리 안에 새싹이 움돋고 있고요. 
천국의 그 본질이 우리 안에 임하고 있고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그래도 우리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주도에 갔더니, 저는 몰랐었는데, 농장에 갔더니 
감귤나무를 그냥 심는 게 아니라, 탱자나무에다 접목을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감귤나무를 그냥 땅에다 심지
왜 그 못생기고, 딱딱하고, 가시투성이인 탱자나무에 접목을 시키냐?' 물었더니, 

제주도에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그냥 외부에서 온 감귤나무를 심으면 그냥 쓰러진다고... 
그래서 탱자나무에다가 이렇게 접목을 시킨다는 거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우리에게 아픔이 없어질까요. 우리에게 고난이 이젠 더 이상 없을까요?

그게 아니라 바울사도가 '내 몸에 가시를 좀 빼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더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우리의 가시 같은 삶에, 그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접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접목된 것이죠. 
그래서 가시같은 우리의 삶도 아름답다.. 라는 거예요. 

그러면 '아름다운 삶'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세 가지의 삶을 산다 그래요. 

1) 공적인 삶
SNS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에 자기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올려놓고요. 
오늘도 우리가 공예배를 드리면서 저도 이렇게 좀 깨끗하게 머리도 잘 빗고 나왔는데
공적인 삶은, 대부분 사람들이 항상 아름다워 보여요.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면, 거기에 슬픔이 없는 것 같아요. 

2) 두번째는 개인적인 삶
개인적인 삶은, 어느 정도 돈이 있고, 건강이 있고, 명예가 있고, 쾌락이 있고 그러면 아름다울 수 있어요. 

3) 근데 세 번째 삶이 있는데 secret life 비밀의 삶이 있어요. 
가장 내적인 삶이죠. 성경에는 그것을 '회칠한 무덤'이라 그래요. 

우리 깊은 타락한 이 실존, 이 세상 현실 속 깊은 곳에 들어가면 
세상은, 예를 들어서 
렘4:23절은 이스라엘의 타락한 모습을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빚이 없더라'고 했어요. 

이 세상의 해 아래 모든 것이 혼돈스러워요. 창1:2
뭔가 논리적인 것 같고 합리적인 것 같은데, 사실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요. 카오스에요. 

또 세상은 공허하다. 
지금 우리 한국이 625때와 비교하면 GDP 국민총생산이 140배가 늘었다고 해요.
GNP는 3만4천불이죠. 
옛날보다 풍요로워졌는데, 삶은 점점 공허함을 느낍니다. 

미국도 그 부자 나라이지만, 다운타운에 가 보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숫자의 노숙자들이 있는데 
대게 마약 때문에 그렇게 되어있어요. 좀비처럼 살고 있죠.

뭔가 세상 것을 채우고 채우고 채워도..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 
그것을 마약으로 채우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또 빛이 없다.. 즉 어둡다고 해요.  렘4:23
세상은 굉장히 환한 것 같은데. 
우리가 아무리 플래시라이트를 비춰봐도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없는, 내일을 알 수 없는 
아주 밝음과 정반대의 세상 임을 볼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 
청지기로서 일상을 살아갈 것인가요? 

그 답은 <아름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요?

뭐 돈이 있고, 또 건강도 있고, 쾌락도 있고, 권력도 있으면 
어느 정도 아름다울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을 다 가진 자들도, 그 삶이 아름답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어요. 

성경에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일까요, 
즉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여기 보니까 먼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래요. 
그리고 "그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여기 순서가 있는데요. 
먼저는, 예수님을 믿고

그 다음은, 그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베드로에게 찾아가셨어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양떼를 먹여라!' 

두 번째, 세 번째도 같은 질문을 또 물어보세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떼를 먹여라!'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씀하셨어야죠. 
'베드로야, 네가 양 떼를 사랑하느냐?' 
'네' 
'그럼 양 떼를 잘 먹여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떼를 잘 먹여라!' 
이렇게 말씀하시죠. 왜 그랬을까요? 

베드로에게는요. 또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고
그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속성이 우리에게 없어요.

우리는 스스로 누구를 사랑할 수 없어요. 주님의 양떼를 먹일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고자 할 때, 사랑을 구현하고 실현해 나갈 때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실망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배신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 안에는 사랑할 만한 것들이 없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나하고의 관계를 네가 맺어야지!' 
그 사랑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눅16:5절, 레19:1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밖에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와 여러분들이 경험하고 받아야하지만 
또한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사랑하면 그래도 삶이 아름답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설교의 주제
'사랑하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는 겁니다. 


◑사랑의 5가지 언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지금 그 얘기를 나누려고 해요. 

우리는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을까요?  

게리 채프만이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라는 책을 쓰셨는데 
사실 그 내용은 부부의 사랑이에요. 

남편과 어내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그런데 거기에 그 기초와 원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을 얘기하고 있어요. 

제가 그 다섯 가지의 사랑의 언어를 기반으로 해서 
오늘 저녁에 그래도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원리에 대해서 
한번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다섯 가지 인데요. 
말씀(말), 섬김, 시간, 교감, 선물 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말씀>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사실 이 언어라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어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저와 여러분들에게 언어를 주셨어요.

옛날 어른들 말씀이 맞아요. 말이 씨가 됩니다.

에덴동산 한 가운데 생명나무선악과가 있었어요. 
즉 생명과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진리가 하나님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이에요.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세요. 

그러나 사탄은 정반대예요. 
요8장에, 유대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선민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있네, 너희들은 마귀의 자식들이다.' 
그러면서 '그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요. 살인하는 자라!'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데 
사탄이 하는 건, 우리에게 거짓말을 통해서 우리를 죽이는 거예요. 

자 이 세상에 문화를 보면, 이게 다 거짓과 죽음의 문화예요. 
철학도 거짓이고요. 과학에도 들어가 보면 또 거짓이 있고요. 
핸드폰 하나를 사도 거짓말이 있고요. 우리의 언어가 타락했어요. 

요즘 청소년들보면 욕을 안 하면.. 욕이 마치 접속사처럼 
욕을 하지 않으면 문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그래서 우리의 언어를 타락시켜 버렸습니다. 

성경에 보면은, 언어에 능력이 있어요. 
우리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에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언어가 회복되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먼저는 <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는, 우리도 <말>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 세상은 온통 이 언어를 가지고 
거짓말, 불만, 불평.. 저주, 무시, 이간질..

사람이 칼에 찔리면 어느 정도 수술해서 살 수 있는데 
말로 찌르면요, 그 상처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제일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것은..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거예요.

이 성경은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 러브레터 예요. 말이죠.
우리도 사랑을 "말로 구현하고 실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화) 제게 딸이 하나 있는데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당시 저는 병원에서 의사로서 포스닥 하고 있다가 주님의 콜링을 받아서 
신대원을 다니고 있었고, 
아내는 제가 신대원에 다닐 때, 미국에서 의과 대학원을 다녔어요. 

그래서 둘이 너무나도 바쁘고, 공부하고, 또 밤에 아르바이트 하고.. 
그러니까 애를 할머니한테 맡겨놓고, 주말에 데리러 가는 거예요. 

딸이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영어를 못해요. 할머니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다보니까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죠.

할머니는 아침부터 하루종일 비디오로 한국 사극만 보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우리 딸은 영어는 못 배우고, 사극 언어를 배웠어요. 
제가 주말에 딸을 데리러 가면 '아빠, 성은이 망극 하나이다' 이러더라고요. 

그러다가 좀 커서 유치원에 넣고, 
이제 우리 부부는 워낙 바쁘니까... 
그런데 딸이 유치원 마치고 초등학교 1학년 올라갈 때 쯤 
유치원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했어요. 

좀 보자고 해서 제가 갔더니 
'딸이 참 착하고 다 좋은데 
아이들하고 잘 섞이지 못하고.. 

 

우리 딸이 잘 섞이지 못하는 게, 영어를 못하니까.. 또 유일한 동양인이었어요. 
다 백인 아이들인데.. 그러니까 왕따 당하는 거예요.  

또 선생님이 이렇게 수학을 가르쳐 줘도, 영어가 안 되어서 그런지 (*수학을 영어로 설명해 주니까)
수학을 가르쳐줘도 모른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으니 얼마나 속상한지요.. 

아빠인 저나 엄마인 아내는 둘 다 수학을 잘 했어요.
아내는 결혼 전에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 경력도 있고요, 
저도 의대생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그리고 대학교 1~2학년 때까지
수학을 다 이수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딸은 당연히 수학을 잘 하겠지.. 생각했는데, 
근데 선생님은 딸이 너무 심각하다는 거예요. 

우리 부부는 아주 깜짝 놀라가지고 
여러 가지 논의를 하다가 '우리 딸을 1년 유치원을 재수시키자, 
딸이 동양인이고, 거기에는 다 백인들만 있고, 키도 작고 언어도 잘 안 되는데 
무조건 1학년에 올라가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다...' 

그래서 제 딸이 유치원 때부터 재수를 했어요. 
그래서 일 년 늦게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어요. 

1학년, 2학년 지나가는데, 항상 밝고, 열심히 학교 다니고, 참 착해요. 
근데 수학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점수가 나오거든요. 
제가 하루는 우리 딸을 불러다가 
'야~ 엄마 아빠는 이렇게 공부 잘하고 그랬는데, 너는 왜 이래?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이렇게 얘기하려다가.. 

사랑의 5가지 표현 중에 첫 번째는 <말>이 잖아요.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얘야, 너 이제 학교 들어가면 선생님이 점수를 주는데 
A B C D 이렇게 줘. 

A는 비타민 A이고,
B는 비타민 B, 
C는 비타민 C,
D는 비타민 D야.
비타민은 골고루 먹어야 좋은 거지...

네가 두 가지만 아빠랑 약속하자.
하나는, 어떤 아이들은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학교도 못 가잖아. 
몸 건강하게 지내고, 엄마 아빠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공부 열심히 할 것! 

두 번째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정직해야 돼! 
그러니까 치팅(컨닝)하면 안돼, 남의 거 보고 시험 보면 안 돼, 약속해!' 

그러니까 우리 딸이 오케이 하고 약속을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표를 가져오면서
'아빠, 비타민 C!' 하면서 성적표를 제게 보여줬어요. 

근데 한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성적표를 보여주더라고요.
보니까 수학이 F가 나왔어요. 

제가 얼마나 화가 나는 지요. '이 바보야!' 말하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었어요. 
너무 속상해가지고.. 아니 자식은 딸 하나 뿐인데, 
유치원 때부터 재수하고, 초등 4학년 때 수학이라 해봤자 어렵지도 않을 건데 F를 맞다니...

그래서 막 야단을 치려다가...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요. 

제가 우리 딸을 안고서 '한나야, 난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그랬더니 딸이 깜짝 놀라가지고, 놀란 눈초리로 저를 쳐다봤어요.

'딸아, 네가 컨닝을 했으면 D는 맞았을 텐데, 너는 정말 컨닝을 안하는 구나' 
그랬더니 '아빠, 나는 컨닝 한 번도 안 해요.' 이러면서 막 자랑하는거예요. 
그러더니 '아빠 F가 뭔지 알아요? 판타스틱 (환상적인) 한거에요.' 

지금 제 머리가 빠져서 머리 숱이 많지 않은 것이, 그때 많이 빠진 거예요. 하하하

그러더니 고등학교 1 학년이 됐어요. 

자기가 좋은 대학에 대학 입시 지원서를 내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속으로 '야 돈(전형료)이 아깝겠다. 네 점수 갖고는 그런 대학교에 안 돼!' 

근데 만약 제가 말로 '야, 너는 그 점수갖고 안 돼! 원서 넣지마!'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데.. 안 그랬죠. 말로 상처를 주기 싫었던 거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했더니 
자기가 막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고요.

수학을 막 밤을 새면서 공부하는데
제가 옆에서 보면 안타까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거예요. 아주 노력형이에요. 

중간고사 시험을 봤는데 또 한번 F가 나온 거예요. 
70점이 넘어야 되는데 C가 나오는데, 69점을 받은 것 같아요. 

우리 딸이 너무 속상해가지고요. '아빠, 나는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 같아!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 아빠, 난 머리가 나쁜가봐.. 
아빠, 내가 옛날에 의자에서 떨어졌지? 그때 내 머리가 망가진 거 아니야?' 

제가 얼마나 속상한 지요. 
그날 얘가 교회를 안가고, 자기 방 안에서 안 나오는 거예요.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우리 아내가 눈물을 뚝뚝 흘려요. 
그래서 '왜 눈물을 흘리냐?' 그랬더니 

'아빠 나 오늘 회개했어요!' 
'무슨 회개?'

'우리가 한나(딸) 한테 그랬잖아요. 
너는 정직하게 살면 되고, 너는 하나님의 딸이고,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그러니 너는 F를 맞아도 괜찮고, C를 맞아도 좋다...
 
근데 그게 다 사실 우리의 거짓말이잖아요. 
우리가 속으로는, 너는 다 A만 맞아야 되고, 좋은 학교에 가야 되고.. 
우리가 딸에게 말한 것은 다 거짓말이었잖아요...' 

그래서 우리 부부가, 안 간다는 딸을 억지로 끌고가서, 식당에 데려갔어요. 
'딸아, 아빠가 오늘 여기에 왜 왔냐면 
너를 펠러브레이트 해주려고 왔어!'

그러니까 '아빠, 펠러브레이트가 뭐에요?'

'네가 C를 맞았으면 Celebrate (축하) 해 주었을 텐데,
네가 F를 받았으니 Felebrate 해 주려고 해!'

'아빠, 나 지금 뭐 그런 유머할 무드가 아니에요..' 
'아니야, 아빠가 너한테 회개할 게 하나 있어! 
아빠가 너한테 그랬지, 네가 정직하게 살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내가 거짓말이었어, 그렇지만 이제 아빠가 다시 생각을 고쳐 먹고
괜찮아, 네가 최선을 다했으니까.. 점수는 뭘 받아도 괜찮아!'

'아빠 너무 감사해요!'

'아빠 사실은 이번에도 또 이게 너무 중요한 시험이라 
답안지가 이렇게 돌았는데, 나는 안 봤어! 
아빠, 나는 한번도 컨닝을 안 했어!' 

'그래 그래, 그러면 됐어!' 

그 다음부터 우리 애가 점점 성적이 오르고, 기말고사도 잘 보고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딸이 대학 입학 지원서를 냈는데, 영어로 문장을 잘 썼어요. 
수학은 조금 모자라지만, 영어는 아주 문학적으로 작문을 잘 해요.

딸은 모자란 점수를 가지고, 어느 학교에다가 입학지원서를 내는 거예요. 
'입학지원비도 아까우니까 거기는 원서를 넣지 말라!'는 말이 
제 목구멍까지 꽉 찼지만, 제가 꾸욱 참았어요. 

미국 대학 입시는, 지원서에 에세이를 써서 보내는데, *이 학교에 진학하려는 이유
딸은 그 에세이 제목을 "Felebration" 이라고 잡았어요.  *고1때, 수학 F 받았지만, 격려받은 것, 신조어

그리고 이런 얘기를 다 쓴 거예요. 
내가 어려서부터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컨닝 안 하고,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데 
내가 영어는 제법 하지만, 수학이 좀 약했어요..  

이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다보면 
그렇다고 다 잘되는 게 아니라, 어려움이 찾아오고, Fail 할 수도 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그것을 야단을 안 치고 나를 축하 Felebration 해 주셨다. 

나를 이 학교에 붙여주시면,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나같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내가 돕고 살겠다...' 이렇게 에세이를 써서 보낸 거예요. 

그래서 그 학교에서 붙었을까요/ 떨어졌을까요? 
붙었죠! 입학허가서가 왔는데요. 거기에 누가 친필로 이렇게 썼어요. 
'네 에세이가 너무 아름다워!' 

졸업할 때 탑 텐, 열 명 뽑는데서 뽑혀서 졸업을 하고 
지금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어요. 

딸 자랑하려고 이렇게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 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돈을 가지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뭔가 쾌락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정치인들은 이렇게 야단들인데요. 
그 끝에는 혼돈과 공허함과 어두움 밖에 없어요.  렘4:23

우리가 부족하고, 약하고, 연약하고, 우리 삶 속에 가시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그리고 만약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과 이웃을 진심을 담아서 <말로, 언어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삶이 바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사랑을 만드는 5가지 언어 중) 두 번째는 <섬김 service>이에요.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섬김을 통해서 사랑이 생기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오시기 8세기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비전을 보죠. 환상을 보는데 
메시아가 도래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는데, 그 그리스도의 모습이 뭐냐면 <종의 모습>이에요. 
왕이나 슈퍼맨의 모습이 아니고, 종의 모습! 

근데 우리가 여기서 '종'이라는 단어를 잘 문화적으로 해석해야 되는데 *히 '에베드'
우리는 성경에서 '종' 하면 노예를 생각하시는데, 노예가 아닙니다. 

구약에서 '종'이라는 것은 
가족 안에서, 그 족속안에서 
빚을 갚지 못했을 때, 빚을 탕감해주는 하나의 방법이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종과 동업하는 개념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예화를 주실 때,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맡깁니다'  *마25장에 달란트의 비유  
노예한테는 맡길 수 없죠.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종이 가서 결정하는 겁니다. 이때 종은 노예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종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예개념이 아니에요. 
구약이나 신약에서 종이라는 개념은 '섬기는 자, stewardship'의 개념이에요. 

그러면 이사야서에, 메시아가 어떤 모습으로 오시느냐? 
권력으로 군림하는 자로 오시는 게 아니라 
우리를 섬김으로 다스리는 자, 
우리를 다스리시는데 섬김으로 다스리는 자! 

그러므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 

여러분들 왜 이렇게 세상이, 우리의 삶이 아름답지 못할까요? 
모두 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래요.

아내는 남편한테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남편은 아내한테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요.. 

부모는 자식한테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요. 
자식은 부모로부터 섬김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우리의 원래 속성이, 우리의 본성이, 섬김을 받는 본성이 아니고 
섬기는 본성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요, 언제 우리의 삶이 아름다울까요? 
섬김받을 때가 아니라, 섬길 때 행복하고 아름다운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면서 
우리는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가예요. 

여러분, 성도는 섬길 때 행복한 거예요. 
우리는 성김받는 것을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원래 섬김 받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회복하는 거예요. 
섬기는 원래 자아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는 거죠.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길 때.. 인생이 아름다운 거에요. 

▲제가 결혼해가지고요. 애를 낳고 
아내는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의과대학원을 다니죠. 
저도 아침부터 밤까지 신대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가서 또 아르바이트 하고.. 
또 일주일에 서너 번은 교회가서 봉사하고...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뭐 빨래도 하고, 밤에 또 아기를 데리고 잘 때는 
뭐 아내가 너무 피곤해하면, 밤중에도 일어나 기저귀 갈고, 음식도 만들어야 했어요. 

저는 원래 딸만 있는 집에서 태어나 가지고, 부엌에 들어간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하나님한테 좀 불평했어요.

'하나님, 하와를, 여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다는데 
나의 돕는 배필은 어디 있습니까?' 

그랬더니 제가 기도 하는데요. 하루는 하나님께서 제게 참 신기한 마음을 주셨어요. 
제가 구약학 전공이고, 신학교(아신대)에서 구약을 가르치는데 

창세기를 읽으면서 '돕는 배필'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돕는 자'라는 것이
종이 왕을 돕는 게 아니고

성경에 보면은 '돕는 자'라는 똑같은 단어가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 자, 도우신다' 라고 할 때, 그 단어와 똑같아요. 

그러니까 '돕는 자'가 더 높아요. 
이렇게 볼 때 '돕는 베필'은, 더 높은 사람으로서 돕는다는 개념이에요. 창2:18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 내가, 네 아내를 돕는 자로 줬으니까 
네가 다 하고 아내는 (나머지를) 돕는 거야! 

네가 빨래하면 아내가 (나머지를) 돕고 
네가 음식하면 아내가 돕고 
네가 청소하면 아내가 돕고...' 이런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돕는 베필'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그래 돕는데 기쁨이 있구나, 한번 음식을 만들어 봐야지!'
그래서 20권으로 된 요리책을 샀어요.
저는 뭐든지 좀 공부를 해야 돼요. 

그래서 2년 동안 연구하면서, 그 책에 나오는 요리를 다 해봤어요. 
그래서 지금은 저는 굉장히 요리를 잘해요. 

여러분들이 전혀 뭐 놀라지 않는 표정이신데 
제가 TV에서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냉장고를 부탁해요" 입니다. *요리 프로그램
그래서 냉장고를 딱 열어서 보면, 무슨 요리를 만들어야 될지 그림이 머리에 딱 그려집니다.

그래가지고 열심히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서, 아내와 딸을 먹였어요.
그랬더니요, 저희 집은 제가 '외식하러 가자' 그러면,
아내나 딸이  별로 안 좋아해요. 제 아내나 딸은 '아빠가 요리해 주면 좋겠어!' 그래요. 

그러면 제가 그렇게 막 요리해서 섬기면, 죄송한 말이지만 우리 아내가 그래요. 
'아빠, 나는 자기가 제일 존경스러워요!' 그래요. 

남자가 제일 듣기 좋은 말이 뭐에요? 존경스럽다는 거죠. 
여러분들, 섬기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존경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져요! 

하나님은 우리를 섬기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으로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섬김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그런 섬김의 청지기 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청지기 세미나 시간

▲3. (사랑을 만드는) 세 번째는, 사랑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에요. 
그렇죠. 시간이 금이다 그러잖아요. 그 귀한 것을 나누는 거에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과 시간을 하루에 얼마만큼 보내실까요? 
24시간, 평생, 영원히 우리들과 함께, 하나님은 우리와 시간을 보내세요. 

시간에는 정량적인 quantity 요소가 있고 정성적인 quality 요소가 있어요. 

제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SRT 기차를 타고 왔는데, 보통 2시간 정도 걸려요.
그런데 제 바로 옆자리에 아주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앉아 있으면.. 그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지고요, 
제 옆자리에 아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앉으면.. 그 시간은 아주 짧게 느껴지죠.

이렇게 시간에는 정량적인 면이 있고, 정성적인 면이 있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기도하는 시간이 밤새도록 기도해도 금방 짧게 지나가고요...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같이 있으면 그냥 긴 시간들도 금방 짧게 지나가 버리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왜냐면 저와 여러분들은 타락한 존재라서 
예수를 믿고 나서도, 이 세상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옆에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까지는 괜찮은데 
아내도 24시간 같이 붙어 있으면, 힘들어요. 

그런데 이민교회에 보면, 이민자들이 부부사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두 분 다 좋은 분들인데 
이민 가서 한 가게 안에서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하시잖아요. 그러면 관계가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사랑은 무례히 행하면 안 되는데, 
사랑은 같이 있어야 되거든요.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거거든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가 한번 생각해봤어요.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 나 같이 변덕스러운 사람하고 
24시간 성령님께서 같이 계시느라고 굉장히 힘드시겠다...' 

즉 시간을 나누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 "인내"입니다. 
여러분들 시간을 같이 보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인내"가 있어야 해요. 

고전13장에 보면은 사랑을 이렇게 저렇게.. 여러 설명들이 나오는데
이렇게 시작해요. '사랑은 오래 참고...' 

그 다음에 어떻게 끝났니까?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느니라

우리 인생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시간을 같이 보내야 되는데요. 
그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려면, 인내해야 돼요. 참아야 돼요. 

길어야 70, 80, 90년만 참으면 돼요. 참으세요. 
가정생활도 잘 참아야 돼요. 회사생활도 잘 참아야 돼요. 
신앙생활도 교회생활도 어휴 힘들어! 하고 그만두면 끝이죠. 잘 참아야 돼요.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저를 굉장히 사랑해주셨던 교수님이 계셨어요. 
제가 박사학위를 공부하러 갈 때, 제가 그분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어요.

그랬더니 그 교수님이 귀한 조언을 해 주셨어요. 
'한영, 너 이제 박사 학위를 하게 되는데 
네가 똑똑하면 석사까지 할 거고, 
네가 인내하면 박사까지 할 거야!'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제가 정말 박사과정을 이수하는데, 공부가 얼마나 힘든지
3개월 4개월 밤을 새서 20~30 페이지 proposal 써가지고  *박사논문 개요
교수님한테 제출하면 

제 교수님은 네덜란드 분이셨는데 얼마나 차가운지 몰라요. 
제가 그렇게 애 써서 만들어 가지고 갔는데 
이렇게 척 보고는 '이게 뭐야?' 하면서, 옆으로 던져놔 버려요. 

그러면 제가 속상해가지고,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무슨 생각이 났어요? 
'똑똑하면 석사까지, 인내하면 박사까지!' 
그 교수님의 조언이 생각났어요.

제 기억에 한 여섯번 일곱번 떨어진 것 같아요. 
사년, 오년, 육 년째 되니까요. 제가 교수님을 찾아가면 
저는 편한데 교수님이 불안해하세요. 
결국 인내해서 하나님 은혜로 제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1)

그래서 제가 우리 신학교에 박사과정 학생들이 들어오면, 제가 항상 얘기해요. 
'똑똑하면 석사까지 할 거고, 인내하면 박사까지 할 거예요!' 

여러분의 삶의 아름다우려면 인내해야 돼요. 
하나님은 우리를 참으셨어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느냐? 보니까 
'십자가를 참으사..' 히12:2  

여러분들 잘 참으십시오. 그러면 삶이 아름답습니다. 

▲4. (사랑을 만드는) 네 번째는 <교감>이에요. 

여기는 스킨십도 있는데, 우리가 어린 아이들을 키울 때
많이 안아주고 껴안아주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굉장히 안정감을 느끼는데요. 
그러면 사춘기 때 성적으로 많이 삐둘어 나가지 않는데요. 
그래서 스킨십을 하는게 아주 중요해요. 교감의 능력이죠. 

근데 사랑은 <교감>을 넘어서 <공감>을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저 높은 보좌 위에서 '너희들이 스스로 잘 알아서 살아라' 가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에요. 
우리 안에 오신 거에요. 우리와 공감하시는 거예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 몸이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거는 교감, 공감, 성육신 incarnation 이에요. 그죠? 

▲부모가 자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공부하기 힘들어요!'
'뭐라고, 아빠가 네 나이 때는, 배달하면서 공부했는데...' 
그러면 자녀와 공감이 안 되는 거예요. 그죠. 

이 교감이라는 것은, 깊은 곳으로  
내 이웃이나 타인의 자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저희 어머님은 지금은 93세이신데 미국에 계세요. 
저희 어머니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한국에 있으니까 
한국에 나오셨어요.

그러면 제가 어머니 잘 해 드리느라고
운전해서 이렇게 여행을 하다가 
어느 식당 앞에 차가 많잖아요. 
그럼 어머니는 '나 거기 안 들어간다'고 그래요. 

'저기 가자!' 그래요. 
거기는  차 한 대도 없는 텅 빈 식당이에요. 

제 기억에 우리 어머님은, '맛있는 집에 가자..' 이렇게 얘기해보신 적이 없어요. 
어머니는 항상 어려운 곳, 장사 안 되는 집... 
그 집에 어떻게 해서든지 사 주려고 애쓰셨어요.

제가 제 자신이 부끄럽더라고요. 
'나는 목사고 신학교 교수를 하는데, 맛있는 집만 찾고.. 
나도 한번 장사 안 되는 집을 찾아가 보자' 

그래서 저도 혼자 식당에 갈 때는
되도록 장사 안 되는 가게를 찾아갑니다. 
근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한번은 동네에서 삼십 분을 해맸어요. 
'어느 집이 장사가 안 되나?' 그거 체크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이제 성금요일이 가까워오는데, 사순절에 금식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 교인들 많으시니까 전부 다, 장사 안 되는 식당들에 찾아 가세요. 
'그게 참된 금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죠.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낮고 낮은 이곳으로 오시는 그 공감, 예수님의 교감 
우리도 그 발자취를 따르면, 그러면 우리 인생은 아름답고, 삶이 아름다워지는 거에요. 

▲우리 제가 아는 어떤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에서 한 19년을 사역하셨어요. 
근데 아주 시골에 5교회를 목회 하시니까
성만찬식을 하는데 몇 달에 한 번씩 순서가 돌아가는 거에요. 

그런데 이제 어느 시골 교회에 성만찬식 날짜를 잡았는데 
마침 그 즈음에 트럭이 고장나서, 못 가시게 된 거예요.

그런데 하필 그 주간에 현지인 교구장이 목사님을 찾아온 거에요. 
'목사님 우리 온 교인들이 성찬식을 몇 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은 차가 망가져서 못 간다는 얘기를 못 하는 거예요.
'알았다고...'

그래서 선교사님 내외는 기도를 하고는..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서
할 수 없이 편도 세시간 반 걸리는 왕복 길을 
사모님하고 새벽부터 그 교회로 걸어가신 거예요. 

그래서 걸어가셔서 설교를 하셨는데, 사람들이 막 할렐루야 하고 
은혜받고 난리가 났어요. 

'내가 특별한 설교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끝난 다음에 교구장한테 물어봤대요. 
'오늘 다들 왜 이렇게 은혜를 받았느냐?' 그랬더니 

'목사님의 설교보다, 오늘 목사님이 우리가 하는 대로 하셨어요. You do as we do!
그 성도들은 평소에 다 걸어다니거든요. 이게 공감의 능력이죠!

근데 목사님과 사모님이 걸어오신 것에 대해서 
성도들이 그 자체로 은혜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그 목사님은 할 수 없이, 차를 고쳤는데도 계속해서
2년 반을 걸어 다니셨대요. 

교회가 부흥하는데요. 
가고 오는 길에 또 집들이 이렇게 있잖아요. 
   
그러면 오래 걸어다니다 보면, 대소변을 해결해야 되니까 
가다가 어느 집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저도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거의 6년을 살았지만 (박사과정) 
아프리카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안 가는 게 차라리 나아요. 

오히려 거기에 이렇게 분뇨가 쌓여있어 가지고 
그런데 그래도 거기 들어가시는 거죠. 

그러면 그 도상에서 만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니 왜 이렇게 길을 걸어다니시냐고?' 
그러면 또 대화하게 되고, 전도하게 되고...

지금 <공감>이란 소 주제를 살피는 중인데요,
선교사님이 걸어다니니까, 현지인들과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겁니다.

그렇게 2년 반을 걸어 다니시면서, 그 길에 있는 분들이 그렇게 다 교회에 나오시게 되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교감이 되면, 전도가 저절로 됩니다.' 그래요. 

말로 되는 게 아니에요. 

왜 인생이 이렇게 혼돈스럽고, 공허하고, 어두울까요? 
돈이 없어서? 건강이 없어서? 아니에요.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사랑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가 서로 나누는) 사랑은, 우리의 아픔보다 항상 큰 거예요. 
그래서 삶은 아름다운 거에요. 
사랑을 서로 교감할 때, 인생은 아름다운 거예요.

▲5. 마지막 다섯 번째로 <선물>이에요.

사람도 그래요. 아무리 말로 하는 것보다, 선물을 주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분은 스킨십도 별로 안 좋아하고, 시간 같이 보내주는 것도 별로 라고 생각해요.

5가지 중에 '선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이 있어요.

 

이건 뇌물이 아니에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는 뇌물을 증오한다.' 
뇌물이 뭐예요? 주고 받고 하는 거죠. 
뭔가를 투자해서 받는 거죠. give and take

그렇다면 선물은 뭐예요? 
선물에는 감사가 있어요. 사랑이 있어요. 
그것을 표시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요? 
요3:1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한테 선물을 주셨는데 독생자를 주셨어요. 

그럼 독생자를 주셨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용서'보다 더 큰 선물은 없어요. 
용서보다 더 큰 사랑은 없어요. 

사람이 제일 하기 힘든 게 뭐냐면요. 용서하는 거예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용서하지 못하는 상처들이 있어요. 

부모님에 대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대한, 자식에 대한, 
이웃에 대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우리 사람들은 적을 만들고 창조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해요. 

타락한 인간들은요, 적이 없으면 적을 일부러 만들어요.

상담학 교수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타인의 허점을 찾는 것은, 찾을 필요가 없대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쌓인데요. 
우리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타인의 장점을 찾으려면, 심리학자들이 연구해 봤더니 
5~6배 이상 노력을 해야 된대요. 단점을 찾는 노력의 5~6배!

또 우리 인간의 타락한 심성은, 계속 적을 만들고 용서하지 못하는 요소들을 만들어 가는 거예요. 
충분히 용서할 수 있고, 충분히 남의 좋은 장점들이 볼 수 있는데도,

적이 없을 때는, 적을 창조해서.. 나의 타락한 존재감을 확인시킨다.. 라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거예요. 타락한 인간의 심리이에요.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쳐들어가서 적을 만드는 거예요. 
이게 인간의 타락상이에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용서하셨어요. 

▲제가 어떤 법적인 문제로, 어떤 사람과 싸운 적이 있어요. 
그래서 소송이 삼 년을 갔는데 굉장히 괴로웠어요. 결국 제가 승소했어요. 

그런데 그분은 거기서 제가 승소해 가지고 직업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제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너무 괴롭게 하시는 거예요. 

'네가 예수 믿는 사람이 승소해서 기쁘냐?' 
그래서 제가 '하나님 제가 다 용서했어요.' 

'용서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진짜로 해야 돼! 
빨리 지금 그가 1년 동안 직장을 못 잡고 있으니까 직장을 찾아줘!' 

그래서 제가 매일 아침 기도 했어요. 
'하나님, 그 친구에게 좋은 잡 job을 허락해 주세요.' 

하나님은 '기도만 하면 안 돼, 네가 뛰어야 돼!'

근데 어느 날 어떤 분을 만나는데, 그 친구가 갈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나온 거예요. 
제가 찾아가서 그분에게 다 이야기를 하고 
저랑 이렇게 문제가 있었던 분인데.. 이렇게 얘길 했더니 

'아니 교수님하고 문제 있던 사람을 왜 나한테 갖다 붙여요?'

'아니에요. 싸우다 보면 좋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저도 장단점이 있고, 그 분도 장단점이 있고.. 
참 좋은 분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제발 부탁하는데 비밀로 하시고, 그 친구를 꼭 취직 좀 시켜달라고...' 

그래서 그 친구의 전화번호를 드렸더니 
그분은 '제가 교수님 믿고 그렇게 할게요.' 

그래서 그분이 이제 잡 job을 얻게 됐어요. 1년 만에. 
그리고 일 년이 지났어요. 
연초가 됐는데 전화가 왔어요. '교수님, 교수님이 제 잡을 찾아 주셨다면서요?'

제가 '아니요. 너무 미안했어요. 내가 나이도 많고...' 

그 친구는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서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요. 제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여러분들, 용서받는 게 기쁠까요/ 용서하는 게 기쁠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저 같은 죄인을 용서하셨다고.. 제가 그것을 경험했을 때 
한 삼개월은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새벽기도에 그냥 가서, 막 밤에 가서 울고, 아침에 가서 울고, 
찬양하며 학교를 뛰어다니고 그랬어요. 얼마나 기쁜지... 

근데 제가 또 하나 깨달은 게 있어요. 
'용서하는 것이, 용서받는 것보다 훨씬 기뻐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구나!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구나!' 

▲제가 인도네시아에 가서 교역자 세미나를 인도했는데 
앞에 사십대 후반되시는 분이 하루도 안 빠지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3일을 왔어요. 

'용서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그가 중간에 탁 일어나더니 나가 버렸어요. 

제가 속으로 '저 분이 상처를 입었나?'
강의가 다 끝났는데 그가 들어왔어요. 

마치는 날 점심시간에, 누가 점심을 꼭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나가보니
그가 자기 가족을 다 대동해서, 식당에 와 있었어요.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아주 이름 난 사업가래요. 
그런데 이분이 얼마 전에 예수님을 믿은 거에요. 
정말 거듭난 거에요. 

근데 자기가 사업을 하면서, 정말 죽이고 싶은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대요. 
근데 세미나를 들으면서 '내가 지금 저 사람을 용서 안 하면 평생 못 하겠다고...' 
그래서 강의를 듣다가 뛰어나갔대요. 

그래서 그 원수에게 전화를 해가지고 용서한다고 하고, 내일 만나자고 그랬대요.
'교수님, 너무 기뻐요. 너무 자유함을 느꼈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요8:32
그러니까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거예요.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예수 믿는 것, 
뭐 순교하고 밤을 새워 기도하고.. 그것도 다 필요해요.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이고요. 

그런데 그보다 더 기본적인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예수를 믿으면  "삶이 아름다워져요." 

우리는 엄청난 목적을 향해서 가기 때문에 
그 가는 길에, 목적만 보고 뛰어가는 게 아니고요, 
좀 꽃도 보고, 좀 쉬면서 시냇물에서 음식도 한번 먹어보고 
이렇게 가는 길을 즐겨야 되는데 

그 즐기는 방법을, 성경은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랑하면 그래도 삶이 아름다워요.

▲마치는 말
여러분들 오늘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사실은 다음에 한번 오면 우리 누나 간증도 한번 하겠어요. ☞ 고난의 공감 

청지기라는 말이 있죠. 
청지기라는 말은 창세기에서 시작된 것이죠.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거기 세우시고요. 
소유자로 만드신 게 아니라, 청지기로 창조하셨어요.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청지기에요. 
그러면 누가 가장 행복한 청지기일까요? 
하나님은 어떤 청지기를 찾으실까요?

사랑하는 청지기에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청지기!
서기관들이 와서 율법의 강령이 뭡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즉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리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러면 삶이 아름답게 됩니다. 
그런 아름다운 삶이 여러분들 삶 속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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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한영 목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어린 시절부터 브라질에서 자라 Universidade de Brasilia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뉴욕암센터 유전면역학과에서 포스트닥터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암과 씨름하던 누나의 고통을 통해

복음에 대한 소명을 확인하고 미국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M.Div, Th.M.)에서 공부한 후

남아공 North-West University, Potchefstroom Campus(Ph.D.)에서

“역사비평에서 내러티브까지의 인식론적 해석학”을 연구했다.

현재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서 오경해석학과 구약신학을, 최근에는 구약설교학과 구약윤리를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구약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 『구약텍스트에서 윤리까지』(CLC),

『역사와 서술에서의 오경 메시지』(크리스챤출판사),

『광야에서의 실패와 소망: 설교를 위한 민수기 연구』(한국성서학연구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