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이 그 계획을 말씀하셔서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처음에 한 5백명 들어가는 예배당을 지었어요. 중3층으로. 그랬는데 금방 차더라구요.
그러니까 뭐 하나님이 그냥 어디서 보내주시는지 그냥 뭐 내가 애쓸 필요도 없고, 금방 교인이 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한순간에 좀 교만해져 가지고 '내가 설교를 잘 하는 모양이지..? 내가 목회를 잘 하는 모양이지?' 한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귀가 주는 생각이었죠. 한순간이에요. 제가 누구한테 얘기도 안 했고.. 그저 제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거죠.
그랬는데 그 주간 수요일 날 보니까, 교인이 안 나왔어요. 어른은 우리 집사람하고, 피아노 반주자 뿐이고 교인들은 거의 다 안 나왔어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큰 일났죠. 개척교회에 갑자기 교인이 안 나오니까요. 그래서 그냥 막 결사적으로 기도하고, 그다음 날도 집에 안 가고 기도했어요.
'내 죄를 좀 가르쳐 주세요. 왜 교인이 안 나오는지요?'
그런데 그냥 오랜 시간을 그냥 집중해서 기도하다가 주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네가 해? 내가 하지!' (네가 목회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인 내가 이 교회를 목회 한다) 그냥 책망하시는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니, 제가 이 교회를 개척했고, 목회를 내가 하지 누가 해요? 주님은 그저 축복하시는 것뿐이지요..'
그때는 처음에 제가 이해를 못 했잖아요. 주석책이나 설교집에.. 거기에 대한 얘기가 일절 없잖아요.
목회를 내가 하는거 아니에요? 열심히 개척하고, 열심히 설교하고, 부지런히 심방하고.. 하는 거니까요.
어 그런데 주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아이고 주님, 저는 몰랐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이 목회 하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고 막 울면서 제가 회개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수영로교회는 네가 세운게 아니라, 내가 세웠느니라' 이런 음성을 주셨어요.
'네가 잘 나서, 네가 설교 잘 해서, 네가 훌륭해서 부흥하는게 아니고 내가 내 양을 모아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많이 모아주시면 큰 교회가 되고 조금 모아주시면 작은 교회가 되고, 주님이 그 양떼를 흩어버리시면 교회가 문 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그걸 알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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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나님은, 아주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없이 자라났기 때문에 이제 친구들의 아버지를 볼 때 부러워했어요.
너무 부러워가지고, '나는 아버지가 없어서 애들을 때리는 아버지를 봐도 아이고 나도 저렇게 날 때려주는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나 자신이 아버지가 된 다음에 생각을 해보니까 '야~ 나는 진짜 최고의 아버지를 놓치고 살았구나'
하나님은 나에게 아주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대담 방송 시작
사회자) 오늘 초대손님은 하나님을 '좋으신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분이십니다. 네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원로 목사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목사님) 그렇죠. 하나님은 너무너무 좋으신 아버지가 되십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제게 더 좋으신 아버지가 되십니다. 생각만 해도 좋으신 아버지.. 그래서 저는 너무 행복해요.
사회자) 사람들은 그 엄마의 사랑을 되게 좋아하지만 정목사님은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느끼신다고 하는데, 그 고백이 목사님의 표정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정목사님) 어머님은 참 저를 사랑하셨는데, 제가 그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그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한테 그 사람을 베푸시는 게 너무 커가지고
목사님들 앞에서도, '하나님이 늘 여러분 목사님들을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여러분보다) 열 배 이상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목사님들이 막 화가 나가지고 '하나님이 당신만 사랑하시나요?' 이렇게 반응하는데, 그만큰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하하!
사회자) 1975년도에 부산 수영로 교회를 개척하신 거잖아요. 그러면 지금까지 거의 38년 됐는데, 그럼 거의 정목사님의 일생을 투신하셨는데, 어떤 의미로 다가오세요? *2013년 방송
정목사님) 제가 당시 35세, 만으로 33세 때, 개척을 시작해서 지금은 이제 72세가 되었으니까 *소천 10년 전 그냥 제 일생을 다 바친 거죠. 그런데 너무 행복했어요.
이 사진은 '인도 캘커다에서 집회를 할 때' 입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처음으로 '성시화 운동'을 시작했어요. 인도 목회자들이,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무릎으로 교회가 세워진다>는 제 책 영어번역본을 1만권을 자기들이 인쇄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인도 목사들이 읽고 막 감동을 받고, 세미나에도 그냥 초교파적으로 다 모여서 사흘동안 하고 그 다음에 성시화 대회를 하겠다고 해서 *도시를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운동 한 5천명 정도 모였어요.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사회자) 근데 지금 이렇게 이제 목사님이시잖아요. 근데 어렸을 때 별명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정목사님)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별명이 '정목사'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신앙생활 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목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태어나서 창신초등학교를 다녔는데 6학년 때 친구에게 전도를 받고, 교회에 가가지고 은혜를 받았어요.
그래서 이제 '내가 장차 예수님을 만나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뭘 하다가 가면, 예수님이 날 만날 때 제일 기뻐하실까?'
그 생각을 해보니까 '전도 많이 하면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영혼 구원하는 일, 전도하는 것 보다 더 좋아하실 게 없다.' 그래서 제가 우리 반 아이들을 그냥 다 전도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제가 그냥 기도도 많이 하죠, 그냥 학생들 앞에서 막 그냥 찬송도 부르죠. 그러니까 아예 그때부터 '정목사, 정목사' 저를 그렇게 불렀죠.
그래서 그때 저는 전교생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어요. 그것도 1절에서 4절까지 다 불렀어요.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런 찬송을 불렀어요. '그러니 너희들도 다 예수 믿어라'고 했죠.
그때 학년마다 대표로 나가서 노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 학년에는 나보고 대표로 나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가서 피리도 불고, 그 다음에 꼭 찬송을 불렀죠. 제가 (그 어린 나이에) 성령의 불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회자) 그 당시에 40세에 끝내겠다는 비전을 품은 적이 혹시 있으셨나요?
정목사님) 그때 제가 전도를 열심히 하다가 보니까 아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전도 해본 사람이 아니면 그 기쁨을 모르죠.
주일날마다 아이들을 전도해서 교회에 데려갔으니까요. 그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아~ 우리나라 백성을 몽땅 구원해야 되겠다' 그런 소원이 생기고 꿈이 생겨가지고 (믿음이 생긴 거죠) '아 그럴려면 훌륭한 목사님이 되야 되겠다. 그럴려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학교를 다녀서 그래서 훌륭한 목사가 돼서, 이 나라를 복음화 하면... 아마 내 나이 40대 때는 끝나겠구나' 그때 어릴 때 제 생각에 그랬죠.
그래서 이제 그런 꿈을 가졌는데 집에 너무 가난해가지고, 중학교에 갈 형편도 안 됐거든요.
그런데 이제 담임선생님이 '그래도 입학시험은 쳐봐라' 그래서 시험을 쳤는데 합격이 되었고, (좋은 성적 때문에) 장학생이 되었어요.
매년 입학할 때마다 1명을 뽑아서,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주는데, 제가 거기에 뽑힌 거예요.
그래 가지고 대학교에 갈 때도 합격하기 전에 장학금을 미리 받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너무 기뻐하셔가지고.. 저는 '어떻게 하면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주님을 만날까?'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냥 그대로 다 이루어지게 하시는데
그것도 아주 멋지게 그냥 그렇게 하나님께서 장학금을 받게 하시고 정말 내 소원대로 제일 좋은 학교를 다니게 하시고 *서울대 평생 목회도 아주 과분한 축복을 제가 받았어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이제 생활 감당을 못하셔서 빚을 많이 지셨어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때 빚이 더 많아지고 제가 고등학교 때는 더 많아지고 대학교에 가서는, 그냥 제가 우리집 생활비까지 다 벌어야 되는 형편이었어요.
사회자) 근데 어머니께서 그렇게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아들, 믿지 않는 분이셨는데, 괜찮으셨어요? 뭐라 안 하셨어요?
정목사님) 그때 어머니는 뭐 장사하시고 이러는데 바쁘니까 아시는데도 뭐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으셨죠.
그러니까 내가 나가서 자든지, 산에 가서 기도하든지 뭐 밤을 새우든지, 우리 아들은 항상 공부도 자원에서 하니까 한번도 공부해라는 소리를 한 적 없어요. 오히려 '좀 그만해라' 그러셨죠.
그리고 제가 집에 안 들어오면, '교회에서 철야기도 하든지, 산에서 기도하든지 그럴 거니까' 걱정은 안 하셨죠. 반대는 조금 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중3때, 어머니를 전도해서 교회로 모시고 가려고 했더니 어머니는 맨낮 무당을 이제 가까이 하고.. 매달 무당이 집에 와요.
그런데 무당이 하는 얘기가 '이 아들이 예수 믿어서 집이 망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보고 '주일날 교회가자' 그러니까 막 저를 야단 치시면서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하니까, 집을 나가라!'고 막 야단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막 울면서 '아니 나 같은 효자가 어딨느냐고.. 공부도 알아서 하고 언제 내가 어머니 속 썩인 적이 있나고.. 어머니가 내 속을 썩였지...' 하하하
'아니 어머니가 예수 믿는 게 아들의 소원인데, 그 소원 하나 못 들어주느냐고, 죽은 자식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그러면서 제가 막 울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얘기를 했어요.
어~ 그랬더니 어머니가 '교회에 가면 되잖아!' 그때부터 교회에 따라오시게 되었어요. 어머니는 그때부터 예수를 믿은 거죠.
사회자) 형제가 많으셨어요?
정목사님) 안 많았어요. 형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은 가정은 조금도 책임은 안 지고...
이제 저하고 동생이 주로 이제 가정을 돌보았는데 (요즘 말로 '소년 가장'이라 그러죠)
그때 어머니는 젊으셨는데, 생활까지도 제가 그렇게 했죠.
그래서 제가 대학생 때는, 입시생들 다섯 명을 밤 열두시까지 과외로 가르치고, 또 새벽 5시~ 7시까지 가르치고,
학교에 갔다가 오면 또 밤 12시까지 과외하고... 항상 그런 생활을 했는데 내 공부할 시간이 없었는데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데모를 많이 했다고요.
데모하는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했어요. 그거 밖에는 제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 가지고 이제 졸업을 하게 됐는데 졸업식 날 끝나고 돌아와서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생각해 보니까 기가 차더라고요.
대학 4년 동안 그냥 뭐 잠도 제대로 못 잤지.. 너무 고생했지... 그 다음에 미팅도 한 번 못해 봤지...
그러니까 '왜 나는 대학 4년을 이렇게 보냈어야 됐습니까?' 하나님한테 막 울면서 하소연하는 그런 기도를 하니까 주님이 말씀 하시더라구요.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놓지 않았다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 그러시는 거예요.
아~ 아주 그냥 그 대학 생활이라는 게 얼마나 잘 놀고, 그냥 얼마나 그냥 기회가 많습니까?
그러나 제게는 돈도, 시간도 없고 완전히 묶어 놓으셨어요. 딴짓 못하도록!
그래서 지나고 보니까 너무 감사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그렇게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살게 하심으로써 우선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었고
기도하다가 보면, 성령의 체험도 많이 하고, 주님이 저를 찾아오신 적도 있고 주님이 (가끔은 친히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하고
그런 아주 그냥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록과 같은 그런 체험을 하면서 성장을 했어요.
그 대학교까지의 고생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 '아~ 하나님이 더 좀 세게 연단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을.. 더 기도 많이 했을 거고.. 더 큰 은혜를 받았을 텐데..' (그 고생이) 너무 감사더라고요.
사회자) 그래도 그 때도, 죽을 각오로 죽을 생각하면서 금식기도 하신 적이 있었잖아요.
정목사님) 네, 왜냐면 너무 괴로우니까 죽고 싶은 적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자살을 할 수가 없으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구원 받았으니까 빨리 죽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왜냐하면 너무 죄 많은 세상이고, 고생 많은 세상이니까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빨리 죽으면 좋을 것이다... 왜? 천국에 가니까!
그러니까 당시에 제가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고생하는 세상, 죄 많은 세상... 그러니까 그때는 비전 같은 것을 모르던 아주 어린 시절이었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기도할 때 '나는 24시간 주의 일만 하고 싶으니까 나에게 주의 일을 하게 해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날 좀 불러가 주세요!' 라고 기도한 거죠.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하도 죽고 싶어가지고 죽을 길을 찾았더니 길이 있었어요. 금식기도 하다가 죽으면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금식기도를 시작했어요. 죽기 위해서!
아 그런데 하루 지나도 안 죽고, 이틀 지나도 안 죽고, 사흘 째가 됐는데 얼마나 배가 고픈지요...
그런데 예수님이나 모세를 생각해 보니까 40일을 금식해도 안 죽으셨잖아요. '방학은 30일인데 어쩌지?' 금식을 너무 길게 끌면, 죽지도 못하고 괜히 고생만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흘째 되는 날은, 제가 죽는 날로 정했어요. 그래가지고 사흘 째 되는 날 밤에, 제가 아주 전심전력을 다해서 기도했어요. *고2때 제가 죽게 해 달라고요!
그 날 주님이 제가 기도하는 그 방에 찾아오셨어요. 이렇게 가까이 오셔가지고 '너는 죽었느니라. 네가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 네가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 네가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
아주 그냥 애원하시듯이 세 번이나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성경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저한테 실제적으로 벌어지니까 주님이 제게 찾아서 말씀하시니까 정말 인격적으로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면서
아~ 도저히 주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금식을 중단했죠.
그런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된다든지, 결정해야 될 때 그럴 때마다 저는 소원이
이게 되느냐/ 안 되느냐 .. 그걸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뜻이 무엇이냐, 주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이냐?
그걸 알고, 그걸 따라서 하고 싶은 게 제 평생 소원이에요. 주님 뜻대로 사는 것!
그래서 '주님의 뜻을 좀 가르쳐 주세요!' 그걸 놓고 금식기도 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목숨 걸고 기도하는 거예요. (*과거에 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그러면 반드시 말씀을 해 주세요. 그러면 저는 그대로 순종해요. 그렇게 저는 목회를 쭉 해왔거든요.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순종하는 게 최고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완전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제일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제일 좋은 길로 인도 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평생 모든 문제를, 그렇게 기도 하면서, 그렇게 응답 받으면서.. 이제까지 살아왔는데
네 지금도 그렇게 살지만 아~ 너무너무 좋아서 다른 분에게도 이걸 좀 얘기하고 싶어요.
우리 생각대로 잘 되면, 잘 되는 줄 아는데.. 일이 잘 돼서 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회자) 네 맞습니다. 서울 창신동 분이 부산가서 개척을 하셨어요.
정목사님) 왜냐하면 공군 군목을 3년했는데 이년을 부산에서 하다가 제대했어요.
그래 가지고 제대할 때쯤 되니까 다섯 교회에서 저를 오라는 거예요. 한 교회에서 오라고 그러면 쉽잖아요.
근데 다섯 교회에서 오라고 그러니까 내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디인지요? 이제 말씀해 주세요!' 그거 하나 갖고 기도하는 거예요.
네 그런데 친음성으로 말씀을 안 하세요. 그래서 급하니까 '그럼 다섯 개 교회 중에서, 한 교회라도 제게 먼저 찾아오는 곳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 무조건 가겠습니다. 그러니 알아서 하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저를 정말 제일 먼저 찾아오신 분들이 있었어요. 근데 저 멀리, 부산에서 제일 먼저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그것도 저보고 같이 개척을 하자는 거예요. 교회는 나중에 지으면 된다는 거죠. (교회 건물이 있는 기존 교회보다는, 얼핏 보면 나쁜 조건이었죠)
사실 개척은 선뜻 원하기 어려운데.. 그것도 부산에서... 저는 서울 사람이니까! (1975년 당시에는 서울~부산이 먼 길이었습니다. KTX도 없었고)
그래서 제가 이제 한 주간을 특별히 기도했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
그래서 기도하는데 월, 화,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이 되니까 기도하려고 눈만 감으면, 환상이 나타나는데 그냥 (흑백도 아니고) 칼라로, 그냥 수 천 명이 새카맣게 앉아 있었어요.
그 환상이 나타나면서 '이 양떼들을 버리고 네가 어디로 가겠니?' 하는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희한했어요. 기도도 할 수 없고요. 눈 감으면 보이니까! 그러면서 '이 양떼들을 버리고 네가 어디로 가겠느냐?' 이 음성을 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토요일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이러면서 이제 개척을 시작한 게 부산으로 내려가서 수영로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주님이 언제나 말씀하신 거는,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주님은 거짓말 하지 않으세요.
사회자) 기도를 참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목사님) 기도를 이제 얼마나 길게,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첫째로는, 그 기도 생활을 통해서 본인이 얼마나 은혜를 받고, 은혜 가운데 살면서, 그 은혜로온 기도 생활이 얼마나 계속 유지되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 은혜가 빠지면, 그건 아주 종교 행위이고, 형식적이고, 완전히 위장된 기도예요.
그 상태로는 40일 금식기도를 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기도는 그냥 굶느라고 고생하는 기도에 불과하죠.
두번째로는, 언제나 기도는 초점이 무슨 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돼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 가지고 '주님의 뜻을 좀 알려주십시오!'
그래서 알게 된 작은 일을, 주님의 뜻을 알게 돼서 그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면 그게 성공하는 신앙생활 이에요.
그러니까 기도 많이 하시는 분들이, 다른 생각(자기 뜻대로 기도)하면 좀 곤란해요.
사회자) 부산 그러면 이제 수용로 교회가 대표 교회가 됐잖아요. 그 부흥에 특별한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우선 저에게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이 그 계획을 말씀하셔서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처음에 한 5백명 들어가는 예배당을 지었어요. 중3층으로. 그랬는데 금방 차더라구요.
그러니까 뭐 하나님이 그냥 어디서 보내주시는지 그냥 뭐 내가 애쓸 필요도 없고, 금방 교인이 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한순간에 좀 교만해져 가지고 '내가 설교를 잘 하는 모양이지..? 내가 목회를 잘 하는 모양이지?' 한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귀가 주는 생각이었죠. 한순간이에요. 제가 누구한테 자랑하는 얘기도 안 했고.. 그저 제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거죠.
그랬는데 그 주간 수요일 날 보니까, 교인이 안 나왔어요. 어른은 우리 집사람하고, 피아노 반주자 뿐이고 교인들은 거의 다 안 나왔어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큰 일났죠. 개척교회에 갑자기 교인이 안 나오니까요. 그래서 그냥 막 결사적으로 기도하고, 그다음 날도 집에 안 가고 기도했어요.
'내 죄를 좀 가르쳐 주세요. 왜 교인이 안 나오는지요?'
그런데 그냥 오랜 시간을 그냥 집중해서 기도하다가 주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네가 해? 내가 하지!' (네가 목회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인 내가 이 교회를 목회 한다) 그냥 책망하시는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니, 제가 이 교회를 개척했고, 목회를 내가 하지 누가 해요? 주님은 그저 축복하시는 것뿐이지요..'
그때는 처음에 제가 이해를 못 했잖아요. 주석책이나 설교집에.. 이런 문제에 대한 얘기가 없잖아요.
목회를 내가 하는거 아니에요? 열심히 개척하고, 열심히 설교하고, 부지런히 심방하고.. 하는 거니까요.
어 그런데 주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아이고 주님, 저는 몰랐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이 목회 하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고 막 울면서 제가 회개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수영로교회는 네가 세운게 아니라, 내가 세웠느니라' 이런 음성을 잊지 않게 되었어요.
'네가 잘 나서, 네가 설교 잘 해서, 네가 훌륭해서 부흥하는게 아니고 내가 내 양을 모아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많이 모아주시면 큰 교회가 되고 조금 모아주시면 작은 교회가 되고, 주님이 그 양떼를 흩어버리시면 교회가 문 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그걸 알아야 돼요. 내노력으로, 내 힘으로, 내가 잘 나서 교회가 잘 된다고 착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교회를 세운 것도 주님이 세우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주님을 당회장으로 모시고 나는 교육전도사다.. 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는 그저 전도사 같은 마음으로 충성했어요.
그리고 뭐든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항상 주님께 '주님이 맡으십시오!' '주님이 당회장이시고, 주님이 이 교회를 세우셨으니까, 주님이 책임지셔야지요! 이게 잘못 되면 주님 이름에 망신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그다음에 주일날 저녁에 교인이 조금밖에 안 나왔어요. 그래서 속으로 기도하기를 '주님, 나 같은 목사 설교 들으러 누가 오겠습니까? 이 부근에 훌륭한 목사님이 너무 많고, 교회도 많은데 누가 우리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주님이 보내주지 않으면, 우리 교회에 올 사람 없습니다.'
속으로 이제 기도하면서 예배 인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대표기도가 끝나고, 뒷문이 열리면서 지각생들이 들어오는데 그냥 교회가 꽉 차는 거예요.
그래서 '아휴 주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기도를 지금까지도 해요.
왜냐면 교회가 5천석이나 되니까, 이걸 항상 채우는게 보통 힘든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빈자리만 보이면 기도 해요. '주님 심방 좀 해 주세요. 빨리 좀 보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또 자리가 꽉 차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목회를 했어요.
사회자) 목사님은 그렇게 36년 간을 정말 계속 목회를 하시다가 이제 은퇴를 하시게 되었으니
*2011년 70세에 은퇴 후임 목회자를 세우셔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이 기도를 하셨겠어요?
정목사님) 그러니까 수영로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고, 주님이 목회하신 교회이고 저는 그저 교육전도사라서 주님께 충성한 것뿐이니까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세우시는 것이 가장 좋으니까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등 중에서 기도 많이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을 제가 골라가지고 청빙위원회를 구성했어요. 그래서 계속 기도했어요. 어떤 분들은 금식하면서 기도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후임을 구했죠.
교인들은 어떻게 됐는지도 자세히 몰라요. 그렇게 해서 순탄하게 후임 이규현 목사님에게 담임목사직을 이양하게 됐죠.
저보다 더 훌륭한 후임 목사님이 와서, 저보다 목회를 더 잘 하고, 설교를 참 잘 해요. 주일 날에 새벽예배부터, 6부 예배가 있고, 또 저녁예배가 있는데, 그 8번 중에 7번을 후임 목사님이 설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몸도 사리지 않고 대단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호주 시드니 새순교회, 한 5천명 모이는 교회인데, 거기서 20년을 목회하신 분입니다. 호주에 가시기 전에는, 저희 교회에서 5년 동안 부교역자로 섬겼었죠.
그때 5년 계실 동안, 성도들이, 너무 좋은 목사님으로 기억에 남겨져 있었죠. 그런데 실제로 밖으로 나가서도, 목회를 너무 잘 하니까 그리고 중간중간에도 우리 교회로 와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할 때,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었어요.
그러니까 검증도 이미 됐고, 은혜도 받고 하니까 후임을 청빙할 때, 후보자를 놓고 순서를 1, 2, 3번 이렇게 정했는데 첫번째 후보가 이규현 목사였어요.
그런데 그 분도 기도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아주 모든 일이 순순이 잘 이양되었죠.
사회자) 이규현 목사님이 후임으로 교회를 맡으시고 나서, 정필도 목사님이 보시기에 교회가 변한 게 눈에 보이는 게 있나요?
정목사님) 많이 변했죠. 저는 일찍이 교육전도사 때부터 지금까지 48년 동안 목회할 적에 20여년 전부터 빨리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우리 세대는 옛 새대 이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경험한 교회, 경험한 목회, 내가 본 받은 목회자들.. 그것들은 다 지나간 세대이에요.
지금은 그 세대가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빨리 포기했어요. 그래서 부교욕자들을 다 모아놓고 '내 방법으로 해 나가면, 우리 교회는 희망이 없다. 지금은 여러분의 시대니까, 여러분이 다 당회장이라고 생각을 해라! 이제 나는, 교역자 여러분에게서 좀 배워야겠다.'
그렇게 하면서 '죄만 짓지 않으면 된다. 실수 하는 것은 내가 다 봐 주겠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봐라! 소신껏 다 해 봐라!' 이렇게 자유를 줬어요. (이렇게 낡은 방법을 버리고, 자유롭게 사역하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별의별 일을 다 해요.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동남아로 선교여행도 가고... 미국, 남미까지도 가고... 땅굴도 가고, 독립기념관도 가고... 선교사 묘역도 순례하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는 거예요.
교구별로도, 한 교구만 해도 천 명이 넘으니까 교회 전체는 못 하니까 자기들끼리 체육대회도 하고... 자유에요 자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활성화 되는데, 교회가 기쁨이 충만하고 교역자들이 행복해하고, 그러니까 성장이 빨라요.
교역자들의 성장이 빠르고 그리고 교역자들이 열심히 하니까 교회가 전체적으로 성장하는데 그냥 매년 성장해 나가는 거예요.
1년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을 때는 약 1만명씩 들어와요.
사회자) 어떻게 보면, 정목사님은 부교역자들에게도 육신의 아버지처럼, 큰 형님처럼 대하시겠어요.
정목사님) 네, 과거에 제가 젊었을 때는 형님 뻘이었죠. 개척 초기에, 제가 보이게 교역자들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연말에 다 내보려고 그랬어요. 그래도 기도하고 결정해야 되잖아요.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강단에서 기도하면서 '아버지, 저는 이 사람들 하고 일하기 싫습니다. 저랑 같이 순교할 사람 좀 보내주세요. 다 내보내고 싶어요'
그런 기도를 하니까, 주님이 금방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네가 그들에게 평생에 제일 좋은 형님 목사님 밑에 있었다는 그런 추억이 될 만한 '형님 목사'가 될 수는 없겠니?'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말씀하시니까 제가 어안이 벙벙해가지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들을 탓하시는게 아니라, '네가 그들에게 좋은 형님 목사 노릇을 할 수 없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은 저를 탓하셨어요.
하나님은 참으로 너무너무 자비로운 분이세요. 그래서 제가 '네,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에 제가 교역자들을 모아서 제가 기도응답 받은 얘기를 했어요. '이제는 나를 당회장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친형이라고 생각하세요! 마음대로 일하십시오.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다 봐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교역자들이 얼굴이 환해 지더라고요. 다들 자유함으로 행복하게 사역하는 교역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 교역자들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몰라요.
사회자) 목사님은 은퇴하시고 더 바빠지시면서 '엘레브 선교회'를 만드셨어요?
정목사님) '엘레브'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선교를 하자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회자)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이 있으시면 좀 나눠주시겠어요? *2013년 녹화 방송
정목사님) 제 기도제목은 간단해요. 주님 오실 때까지 끝까지 복음 전하게 해 달라는 것, 혹시 내가 죽는다면, 병들어 죽지 말고, 순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그게 아주 저의 결정적인 기도제목입니다. 그리고 제 꿈은 이 나라를 복음화하고,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곳곳마다 어디든지 갈 마음이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 다니고 있죠.
사회자) 네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 은퇴 하면,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는 것을 뜻하는데 하나님 나라에서 은퇴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아 가는 날까지 계속 헌신하다가, 떠나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그 날이, 바로 은퇴하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그날까지, 정목사님 말씀대로, 주님 뜻을 늘 묻고, 그 뜻에 순종하는 현역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목사님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