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성품을 확인하는 기도 시5:1~12 여러 설교 정리
시편 5편 표제어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5편은 시편 3, 4편과 마찬가지로
원수에 의해 압박받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시5편의 배경 시기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은 시편 3편, 4편과 동일하게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기울이사', '헤아려 주소서'는 모두 명령형입니다.
다윗은 명령형을 거듭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자기의 요청을 들어주실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한편 '심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기그'는 *동사 ‘하가(시1:2)’의 명사형
'속으로 중얼거림'인데, '신음소리, 끙끙 앓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소리 내어 기도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시름 소리 정도밖에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다윗은 (때로는 큰 소리로) 때로는 조용히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선 속삭이며 조용히 기도했고, 2절에선 부르짖어 기도했죠.
어떤 형식이든지,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다윗의 기도는 처절한 외침과 절규로 자신을 간절히 하나님께 드렸음을 알게 됩니다.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왕권의 대리자였죠.
따라서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바로 다윗 자신을 위해 존재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이같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여기서 '기도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이라크'인데
이 용어는 '희생 제사를 준비하다', '제물을 배열해 놓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간혹 이 용어는 '할 말을 준비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죠. (욥32:14)
즉, 다윗이 매일 아침 정기적으로 드리는 희생 제사 때에
적어도 그는 준비한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기도는 ’준비된‘ 희생 제사와도 같은 정성된 것이었어요.
'바라리이다'라는 말은
그가 기도 후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응답해 주시는지 그는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는 뜻입니다. 미7:7, 합2:1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3~6절까지는 주의 집에 들어갈수 없는 자들의 영적 특성을 묘사합니다.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시1:1의 ‘오만한 자들(히. 루츠)’은, ‘비웃는, 조롱하는’의 뜻이고
5:5의 ‘오만한 자들(히. 할랄)’은 ‘자랑하는, (스스로) 찬양하는’이란 뜻입니다.(73:3, 75:4)
‘모든 행악자’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다윗을 대적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싫어하시나이다’
싫어하다의 강조형(피엘)으로서
그래서 다른 성경은 ‘몹시도 싫어하십니다, 역겨워하십니다, abhor(혐오)’등으로 번역했습니다.
요즘 쓰는 말로 ‘극혐하십니다’가 되겠습니다.
6절을 병행대구법으로 보면,
‘멸망시키시리이다’ 와 ‘싫어하시나이다’가 같은 의미의 말은 반복해서 달리 쓴 것입니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여기서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당신의 신실한 언약에 따라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불변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여기서 자신이 앞으로 주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 언약적 사랑의 효력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지금은 도피신세이지만, 곧 다시 성전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인자 hesed 때문에!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나의 원수들로 인하여”
성경 하단의 각주를 보시면 “엎드려 나를 기다리는 자들을 인하여”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당면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엎드려 숨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파멸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에서 가장 극악한 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가장 놀라운 구원의 길을 열도록 섭리하셨다.. 는 말이 있는데,
비슷하게 다윗은, 놀라운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전화위복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비록 원수들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달라는 것이죠.
성령이 주신 지혜와 통찰력이 아니고는, 이런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시인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주의 의’를 따라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하는 동시에
‘나의 길’이 아니라 ‘주의 길’을 곧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기도의 요점입니다.
우리가 호소할 근거는 나의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입니다.
나의 의는 불완전하지만 주님의 의는 완벽합니다.
의의 근본이신 주님의 뜻을 수용하는 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시인은 또한 ‘나의 길’ 대신에 ‘주의 길’을 곧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뜻을 관철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뜻을 포기하는 것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소원하는 사람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주님이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이 구절을 바울이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롬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전적으로 타락한 아담의 후손의 실체, 회개하기 이전의 사람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잘 보여줍니다.
▲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허물'의 히브리어 '페솨'는 ‘반역 행위'를 의미한다.
저들이 무모한 의인들을 중상 모략하여 해치려한 행동은
직접적으로 다윗에 대한 반역이고, 결국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던 것입니다. (출16:8)
‘배역함이니이다’
배역의 히브리어 '마라'는 '완고한 배반'을 뜻합니다. (시78:8, 애1:20, 3:42, 호13:16)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간절히 구하는 다윗의 결론적인 기도의 내용입니다.
본절과 12절은 앞절(9, 10절)과는 대조적인 내용으로,
앞절에서는 악인에게 저주가 임할 것을 간구한 반면
여기서는 의인에게 복이 임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의인'은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되게 사는 자를 뜻합니다. (시1:2).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로다.'
본문에 나오는 방패는 조그만 손방패가 아니라, 신체를 모두 보호할 수 있는 큰 방패를 의미합니다.
신약성도인 우리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있습니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싸워보십시오.
진리의 허리띠를 띠십시오. 의의 흉배를 하시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으십시오.
믿음의 방패를 가지시고, 구원의 투구를 쓰십시오. 그리고 손에는 말씀의 검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이 땅에 있는 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허락하셨습니다.
◑적용 : 주님의 성품을 확인하는 기도
▲1. 다윗의 신음하는 기도
1절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한편 '심정'에 해당하는 말은 *히, 하기그
'속으로 중얼거림'인데, '신음소리, 끙끙 앓는 소리, groaning’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의 신음소리를 헤아려 주소서'라는 뜻이 더 정확합니다.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소리 내어 기도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신음소리만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하면, 그저 기도도 제대로 못 하고 '주여, 주여' 외마디 소리만
계속 반복하면서.. 끙끙거리며 신음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신음소리 내는 상황에 처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때로는 나의 죄와 허물 때문에,
때로는 주님이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
우리가 신음소리 내는 기도를 허락하십니다.
아주 과거의 일입니다. 옛날에는 화투를 즐겨 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그냥 화투치기를 하다가, 구역헌금 모아둔 것을 몽땅 잃었다고 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자기 주변의 집사님들은 왜 하투를 안 치는지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갑 집사님은 아이가 장애로 아파서.. 늘 초비상 가운데 사느라, 화투칠 여유가 없었고
을 집사님도 남편이 사업으로 고전하고 있어서.. 화투칠 시간이나 정신적 여유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럼 객관적으로 누가 더 복된 사람일까요?
화투칠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되어서, 화투치기로 소중한 세월을 탕징하는 사람과,
아이가 아프든지 기타 여러 문제로 늘 긴장가운데 살면서.. 새벽마다 신음하며 기도해야 되는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이고, 영생에 영원히 복을 받겠습니까?
본문에 다윗이 압살롬 일당에게 쫓겨서, 괴로운 가운데 신음하며 끙끙대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압살롬이 더 큰 죄인입니다.
그러면 압살롬이 반란을 주도했어도, 하나님이 빨리 진압시켜 주셨으면.. 이 사태까진 오지 않았을 겁니다.
내용인즉, 하나님이 다윗을 신음소리 내도록.. 섭리, 주관, 인도하셨다는 것이죠.
구약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신음소리는, 출애굽기에 바로의 학정아래 고통받던 히브리 민족의 신음입니다.
출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럼 신음소리 없이는, 출애굽이 안 되는 겁니까?
왜 꼭 신음소리를 먼저 들으시고, 그 다음에 비로소 액션을 취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은!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기도와 함께 일하십니다. 동역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신음소리를 내면서 기도하도록.. 인도하시고, 섭리하시고, 코너로 몰아가십니다.
종종 교회사에 획을 그은 큰 인물이 나옵니다. 성경속의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신음소리 (극심한 고난) 내지 않고, 큰 그릇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신음소리, 곡소리 내면서.. 십자가의 길을 힘겹게 어렵사리 버티고 걸어가면서..
시대적 사명이, 그의 삶과 사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꽃길만 걸었다..'는 사람은,
그걸로 끝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애창하는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지라"에 이런 가사가 나오지요.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그런데 좀 더 높은 수준의 신음소리도 있습니다.
남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자들이 종종 이런 체험을 한다고 합니다.
(펀 글)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나는 밤새 거의 잠을 못 잤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꼼짝없이 붙들려 나는 무릎 꿇고
계속 “나를 살려주세요!” 이 한 마디로만 기도하며, 밤새 진통했다.
강하게 성령에 이끌림 받아서 계속 기도로 붙들려 있으면서도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러나?’ 이유를 찾고 묻는데도
그저 하염없이 제 입에서는 성령의 눌림에 끌려서
“나를 살려주세요!” 하며 무릎 꿇고 계속 기도드렸다.
나를 살려달라는 외마디 기도를 하면서 밤새 진통했다.
새벽녘에 그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네가 밤새 나를 살려달라고 머리를 땅에 대고 진통하며 기도한 것처럼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살려야 된다.
너 잘난 것 설교하지 말고,
너 실력 있는 것 설교하지 말고,
네 교회 자랑하지 말고,
이 땅에서 조금 더 부귀영화 누리려고 하는 그런 세상적 생각하지 말고,
네 주변에 신음을 들어라!
살려달라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아파하며,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고통소리를 들으며,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격려하고 축복하고 위로하고 선포하고
생명으로써 그들을 살려라.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목사까지 유명해지겠느냐!
목사까지 돈에 미쳐 있겠느냐!
그래도 목사는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느냐!
그날 하루 종일 마음에 감동이 많이 있었지만
한쪽으로 마음이 아프고, 한쪽으로 기쁘고
이런 상태가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왜냐하면 신음이 들리기 시작하니까 그랬다.
고통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신음 소리가 들리니 나도 예수님 닮아간다 생각하니 기쁜데,
그러나 그 소리는 들리는데 나는 도와줄 능력이 크게 없으니 마음이 슬프다..' (펀 글 끝)
▲2. 주님의 성품을 깨닫는(확인하는, 배우는) 기도
다윗은 기도 중에, 공의와 사랑의 주님의 두 모순적 성품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아마 성령님이 깨우쳐 주신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4~6절은, 주님의 공의적 속성이고
7절은 주님의 사랑의 속성입니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한 쪽만 주장하며 기도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사랑' 한 쪽만 강조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니 자기와 자기 자녀가 잘못을 용서하시고, 빨리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주님의 공의'만 계속 강조하며 기도합니다.
'나를 해코지 하는 저 대적을, 빨리 하나님이 징계해 달라고..'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합니다.
사실 우리가 기도할 때,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그럽게 적용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위 4~6절은, 다윗이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는 기도를 선포했지만,
자신이 거기에 면제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신도 그 '공의의 속성, 그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가.. 기도를 마친 후에도, 전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내가 올바른 기도를 드렸는지?' 한 번 심각하게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앞서 시1~4장에 계속 반복해서 나왔던 단어가 '의, 공의' 였습니다.
앞으로도 다윗의 시편에 계속 '의, 공의 righteous, justice' 가 반복적으로 나올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기도의 모범'이 되는 이유는,
'사랑과 공의'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만족시켜 드리는 기도였다.. 는 점입니다.
오늘날 나의 기도는 '사랑과 공의'의 성품을 충족시켜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유치원생처럼, 그저 사랑과 복만 부어주십사고 아직도 떼를 쓰고 있지는 않는지요?
▲3. 기도 중에 주의 의, 주의 길을 따르기로 결심하다
시5: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다윗은 평소에 자신의 힘으로 적들을 심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고, 심판을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
시므이에 대해서, 압살롬에 대해서, 요압에 대해서..
다윗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나? 그가 힘이 없어서인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다윗은 절대 권력자였습니다.
나라 안에서도 그를 대적할 사람이 없었고, 나라 밖에서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그는 자신의 정적들을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심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처럼, 하나님께 피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 '주의 길'을 원했고,
'자신의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를 원했던 것입니다. 시5:8
자신이 심판하고 원수 갚는 것은.. ‘자신의 길’이지만,
주님의 손에 맡기면.. 그것은 ‘주님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원수를 갚으면.. ‘자신의 의’가 드러나지만,
주님의 손에 맡기면.. 그때 ‘주님의 의’와 위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바로 '의인'이며, 이런 의인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롬12:17-21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