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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8장 1~8 진실된 내면의 삶을 구하라 P3 / 잭 푸닌

LNCK 2022. 4. 18. 13:41

잭 푸닌 진실된 내면의 삶을 구하라(Seek For Reality In Your Inner Life)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1dZBt4chpng

◈진실된 내면의 삶을 구하라 P3         눅18:1~8, 롬8:3              출처

Seek For Reality In Your Inner Life                     *출처 동영상의 40분~끝

잭 푸닌

 

예수님이 새언약, 신약복음으로 가져오신 (은혜와) ‘진리’는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진실함’을 뜻합니다.

신앙생활을,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진실함으로 해야 된다는 거죠.

 

바꾸어 말하면, 외면적으로 사람들이 내 신앙에 대해 가지는 인상이

나의 내면의 삶과 신앙과 일치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테면 주일 아침마다 여러분이 나를 보면서

어떤 인상을 받든지

그것이 정확히 나의 내면적 신앙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외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날 교회에서 행동하는 방식과

내가 주중에 집에서 행동하는 방식이 정확히 같은 것을 말합니다.

 

사무실에서나, 자동차 안에서나

심지어는 내 생각 속에서도..

내 생각의 영역은 각자 모두 자유입니다. 내 생각은 아무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 내 생각 속에서도, 주일날 아침에 보여주는 내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한 신앙입니다. 요1:17

 

이것이 다윗이 말한 ‘마음의 중심 속 진실함’입니다. 시51:6

신약 복음에는 이것이 보편화 되었는데, 구약시대 다윗은 약간 맛을 본 것이죠.

 

▲그런데 저는 하나님에 대해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오직 그것을 간절히 원할 때만, 그것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설명한 신앙생활을 모습, 즉 은혜와 진리의 삶을

여러분이 아직 얻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그 삶을 지금껏 갈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외적으로 이 교회에서 여러분을 아주 좋게 봅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각자 이 교회에서 평판이 아주 좋습니다.

어떻게 그런 좋은 평판을 여러분은 얻게 되었지요?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얻으려고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것(좋은 평판)을 얻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상당히 높이 평가합니다.

‘그는 믿음이 좋은 형제지요, 자매이지요..’ 라고 말들을 합니다.

 

여러분이 외면적으로 그렇게 애를 쓴 만큼

여러분이 내면적 신앙을 ‘은혜와 진리로’ 가꾸어 나가면

여러분은 내면적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그런 진실된 신앙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관해 말씀하신 두 개의 비유가 있습니다. 단 두 개 뿐입니다.

이 두 개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모두 하나의 교훈을 강조하십니다.

누가복음 11장과 18장인데요.

 

눅18장은 재판장에게 갔던 한 과부에 관한 비유입니다.

‘내 원수가 나를 괴롭힙니다.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나는 저 사람의 소유지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재판장님, 제가 요구하는 것은 저 사람이 빼앗아간 내 소유지를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당한 요구이지요.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의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하나님, 예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 주신 나의 소유지 안에

마귀가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나의 생각과 삶, 그 소유지 안으로 마귀가 잠식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이웃 사람이

여러분의 소유지인 땅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여러분의 생각과 삶속으로 잠식해 들어와도

여러분은 ‘음~ 그건 괜찮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좀 더 잠식해 들어옵니다.

‘음~ 그래도 괜찮아!’

 

그게 진짜 여러분의 부동산 소유지라면,

여러분은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웃이 경계의 표지석을 점점 더 조금씩 움직여서 잠식해 들어온다면

그냥 ‘좋아, 냅둬도 괜찮아!’ 하실 분이 있습니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땅이나 돈을 무척 사랑하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부동산 소유지는 엄청나게 아끼고 지키면서

우리의 생각속에 영역은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들어와서 야금야금 잠식해도.. 그냥 내버려 둡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값을 치르시고 우리에게 사 주신 것(우리 생각과 마음의 땅)을

마귀가 점거해 들어오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누더기를 입고

극빈한 상태에서 시작해서

수 십 년의 세월을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서

여러분에게 집이나 땅을 사 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그 부동산을 소중하게 간직하지 못하고

사기로 이웃에게 빼앗기든지, 헐값에 팔아먹었다면

그 자녀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부모의 은혜를 전혀 무시해 버렸으니까요!

 

이것은 비유인데,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십자가 위에서 고귀한 희생의 피를 흘리셔서

우리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주시고, 이제 우리가 구원 받고

‘은혜와 진리’ 아래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마음 중심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순결한 생각과, 정결한 삶과, 깨끗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 피로 값주고 사 주신 땅들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여러분은,

마귀가 여러분의 땅을 점점 잠식해 들어와서

그것을 빼앗고, 또 빼앗는데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겁니까?

 

내면적 신앙을 이루어나가지 않고

그저 남들 눈에 보이기에 허물이 없을만한 외면적 신앙을 이루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슬픈 것은, 마귀가 잠식해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언제나 자기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잠식에 대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재판관에게 가서

자기 소유지를 되찾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재판관이 아무 일도 하지 않자, 그녀는 그를 계속 성가시게 하려고

새벽 2시에 그의 집으로 가서 그를 깨우고 계속 괴롭게 합니다.

 

그러자 마침내 재판장은

‘알겠다,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18:6~7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여러분 중에 몇 명이나, 이런 문제를 두고서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셨나요?

 

자기의 순결한 생각이나, 자기 순결한 말을 하기 위해서요!

 

이 과부는 무력했습니다.

우리도 마귀에게 대항하기에는 무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분께 밤낮 부르짖는다면

우리를 지원해주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릴 거라고요?

그들에게 오래 지체하실 거라고요?

 

이런 영역에서 패배하고 있는 많은 신자들에게

왜 하나님이 오래 지체하고 게실까요?

 

그들이 밤낮 부르짖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눅18:8

이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저는 성경의 이런 구절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아쉽게도 어린 시절에 제게는, 이런 성경구절들을 보여주며

저를 지도해줄 영적인 아버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19살에 제가 회심했을 때, 누군가 나를 붙들고

이런 말씀을 가르쳐 주었더라면, 저는 얼마나 좋았을까요!

 

‘잭 푸닌, 은혜 아래 거하거라.

그래서 죄가 너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라’ 롬6:14

유감스럽게 제게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온갖 종류의 이론들과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기는 했습니다만, 피상적인 성경 지식들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 후 16년 동안, 패배하고, 패배하고

계속 패배하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제 삶에 너무 진저리가 날 때까지요.

 

저는 기도했습니다. 그때 저는 설교자였는데요.

‘주님, 제가 설교사역을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진 않겠지만, 사역은 제가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는 설교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제 내면의 삶과

제 외면의 삶이 일치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실제 내 내면의 제 자신보다

더 나은 인상을 사람들에게 외형적으로 주고 있었습니다.

그건 외식인 거죠.

 

‘주님, 제게 오직 한 가지, 한 가지만 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저의 내면의 삶을, 제 외면의 삶과 동일하게,

정확하게 동일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것만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절대로 다시는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그렇게 해 주셨고,

여러분도, 간절히 하나님께 구할 때, 그렇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핵심은, 여러분이 밤낮 필사적으로 그것을 원해야 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소유한 금이나 은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겨야 합니다.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여러분께 나타나신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만약 이렇게 말씀하신다면요

‘내 아들아, 내 딸라, 내가 네게 순결한 내면의 생각과

순결한 말을 네게 줄 것이다..

거기에 대해 너는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겠니?’

 

이때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부자 젊은 관원처럼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주님, 제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시네요.

순결한 생각의 삶은, 그 정도로 가치 있지 않습니다..

순결한 말도, 그 정도 대가를 치를 만큼 가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실 겁니다.

‘그래 알겠다. 그만 잠자리에 들거라, 너를 방해하지 않겠다.

나는 네 남은 인생 동인에, 이 문제로 너를 방해하지 않겠다.

그냥 교회를 왔다갔다 하는 정도로만,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신앙생활 하거라’

이렇게 주님이 그에게 기회를 더 이상 안 주시는 거죠.

 

‘그렇게 너는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계속 해서 살아라.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결코 신앙을 강요하지 않으시니까요.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네가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마시리라’

 

문제는 내 마음의 문은 내가 열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 문을 쾅 부수고 안으로 들어오시지는 않습니다.

 

▲기도에 관한 또 다른 예수님의 교훈은 눅11장에 나오는데

밤 중에 찾아온 벗을 위해, 이웃 집에 떡을 꾸러온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며

음식을 달라고, 달라고,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이웃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나는 침실에 누웠으니..

문을 시끄럽게 두드리지 말라’

 

여러분 중에 몇 명이나

이웃이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나는 침실에 누웠고 음식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데도, 계속 문을 쾅쾅 두드리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그렇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 사람은 계속 이웃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 비유는, 찾아온 벗에 대한

그 사람의 엄청난 사랑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11:33

‘너희가 성령을 위해 이같이 기도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리라’

 

성령을 받기 위해

이같이 부지런히 열심히 기도하는 크리스천들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그들은 성령을 이미 가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떤 신학을 믿는데 ‘나는 그리스도를 영접했어요. 그러니 성령을 받았어요’

그들은 성령으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삶에서 전혀 성령의 나타남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가졌어요!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능력은,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이론과 지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이 성령을 받지 못하면, 그저 이론적으로만 예수를 믿고

그러면 딱딱한 율법주의자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신 은혜와 진리에 지배되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요1:17

‘은혜와 진리에 지배되는 삶’은,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이끌림 받는 삶입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한다면

여러분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진실함 truth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왔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아무도

열 번째 계명을 지키리라고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했습니다.

 

십계명 중에 1~9번째 계명은 외면적인 것이고

사람들은, 남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그것들을 모두 지킬 수 있었지만

 

열 번째 계명에 이르면, 아무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딸이나

그의 집이나, 다른 사람에게 속한 어떤 것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완벽하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지키려면,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 가장 깊은 곳의 내면적, 진실함이 필요했는데요..

율법은 그것을 지키도록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롬8:3절에 이르기를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내가 외적으로, 법만을 지키고만 살면

나는 그 복음, 새언약의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성령으로 내면이 채워지고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

진실함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생기면서

내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적인 욕구들을

성령의 영적인 갈망으로 대체합니다.

 

예수님은 마5~7장의 산상수훈에서

유대인들이 지켜오던 율법의 전체를 바꾸셔서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셨습니다.

 

구약시대엔 ‘외적으로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마음속에서조차 분노하지 말라’

 

구약율법엔 ‘외적으로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이르노니 ‘마음으로 음욕을 품지 말아라’

 

구약율법에는 법정에서 맹세할 때 ‘거짓증언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르노니 ‘법정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항상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하지 말라’

 

구약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르노니 ‘너희는 원수도 사랑하라’

 

예수님은 이와 같이, 구약의 율법 아래서 외면적이었던 모든 것들을

‘은혜 아래에서’ 내면적인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롬8:3

이것이 새언약입니다.

 

옛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가락으로

계명들을 돌판에 쓰신 것입니다.

 

새언약에서는 히8:10절에 이르기를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새기리라’

 

우리의 마음에, 즉 내면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신 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또한 지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아직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백년 전에 시작된 오순절파 교회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성령세례에 관해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오순절파와 은사주의파들은

성령 운동이 좀 식어진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성령운동이 번영신학과 접목되면서

원래 성령운동의 다이나믹한 면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예전에 1세기 성령운동파들은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는 진리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게는 이런 능력이 부족해서

하나님께 구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저는 디엘 무디나 찰스 피니 같은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크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졌을 때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부르짖었죠. ‘주님,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제가 성령충만을 받지 못한다면

저는 이 땅에서 살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여러분, 결론으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밤낮으로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어쩌면 여러분은 수년 전에

이미 진정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 불이 지금 꺼져버렸다면

여러분은 다시 그 불을 붙여야 합니다.

 

제 삶을 위한 제 열망은

그 불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르기를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젊은 자에게는 열정이 있다’ 욥12:12

 

저는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지혜와 열정을 둘 다 갖기를 원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커지는 열정의 불을 갖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을 결코 낮추지 않도록..

티끌만큼도 돈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며...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공급하실 테니까요.

 

사람들이 저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고 뭐라고 말하든지 간에

제가 그런 사람의 명성에 대해 눈꼽만큼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저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데 방해받지 않도록..

저를 저주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할 수 있도록

제게 성령의 성령을 주십시오, 주님!’

 

‘그리고 제 삶의 모든 날들을

티끌 속에 제 얼굴을 파묻고 애3:29

낮은 자세로 행할 수 있게 하소서’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쩌면 지금의 여러분의 상태가

단지 종교적인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실지 모릅니다.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요.

 

여러분은 자신이 매우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많은 집회에 참석하니까요.

 

바리새인들은 여러분보다 더 많이 그렇게 했습니다.

경건의 훈련, 여러분의 생각의 정결함, 말의 깨끗함,

돈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 이런 것들이

영성, 참된 믿음의 시금석입니다.

 

그저 교회의 모든 모임에 빠짐없이 나온다고

그가 결코 참된 신앙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평소 자기 매일의 삶에서 ‘내면적 신앙’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외적인 신앙으로는, 여러분보다 바리새인이 훨씬 능가할 것입니다.

이 세상 신이 여러분의 마음 가정 깊은 곳의 진실함을

보지 못하도록 훼방하지 말게 하십시오. 고후4:4

 

바로 이런 점들, 새언약의 복음의 특징(즉 내면적 신앙)들을

저희 교회가 지난 수 십년간 강조해 왔던 것들이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조할 것입니다.

 

귀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는 저희가 미혹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우리가 결코 미혹되지 않게 하소서.

 

흑암 가운데 있는 저희에게

이 놀라운 빛을 비춰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 각 사람을 도우셔서,

주님의 말씀을 더욱 존귀히 여기게 하시고

말씀을 사랑하고, 연구하고, 묵상하여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십시오.

 

왜냐면 주님의 말씀은 저희 발에 등이요, 저희 길에 빛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저희에게 비춰주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의 영광의 복음에 우리가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