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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2장 14~15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난 증거

LNCK 2022. 4. 21. 10:31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난 증거      골2:14~15        2022.04.15.스크랩, 정리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도대체 뭔가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기독교의 정수, 복음의 핵심,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것이죠. 
그렇죠. 만약에 우리가 1년 365일 주님과 동행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멘 이죠.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거니와, 365일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잖아요. 
소원은 있어도 그렇게 안 될 때가 많죠. 

어느덧 나는, 육신으로 충만한 내 자신을 보면서 한탄하죠. 괴로워하죠. 
또 주님 앞에 나와서 또 회개하고 돌이키고 
그래서 다시 정말 주님과 함께,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게 우리의 소원입니다. 아멘. 

▲그런데 1년 365일 가운데, 만약 여러분이 일주일을 하나님께 따로 떼서 구별해드리고 싶다,
정말 일주일 만큼은 내 삶의 모든 것을 다 중단하고 
정말 주님과 함께 그 일주일을 보내고 싶다.. 그런다면 
그 일주일에 이번 일주일(고난주간)입니다. 

근데 '그 일주일도 나는 못 내겠다. 그 일주일도 주님 앞에 못 내겠다.'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한번 돌아봐야 돼요. 
'내가 정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맞나?' 꼭 자신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자녀이든지요.

만약 그가 십자가와 같은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여러분이 평소처럼 두 다리 쭈욱 뻗고 편히 쉬며,

또한 TV나 보면서 소일하면서, 그의 고통에 전혀 동참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채 지낸다면..

그건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저 머리로만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 성도님들은 
고난주간에는 휴가라도 내서 주님 앞에 나올 줄 알았어요. *고난주간 특별새벽집회
죄송하지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정말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면.. 
이게 진짜 및 믿어지고, 그것이 나의 믿음이라면 
어떻게 고난주간에, 주님 앞에 낯짝도 안 보일 수가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나름대로 다 사연이 있고, 제가 모르는 그런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만난 주님은 365일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은 분이죠. 

'그 중에 일주일도 주님께 구별해드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거죠. 
그냥 관념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죠.

여러분, 여행은 일주일을 구별해서 가잖아요. 
여러분 인생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일주일 시간 내잖아요. 

우리 주님이 고난 당하신 이 한 주간을, 주님 앞에 구별해드릴 수 없다면... 
죄송하지만 여러분의 믿음이 진짜인지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 
저는 이번 고난 주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이것을 가지고 월요일부터 오늘 금요일까지 

정말 이 말씀 붙들고, 
정말 이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능력의 말씀이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도하고 준비해서 여러분과 나누었고,
오늘은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난 증거, 
내가 진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요? 

오늘 이 말씀을, 한 말씀 한 말씀 들어보시면 
여러분들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입니다. 최고의 율법학자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정말 대단한.. 그때 당시 유대교회 거인 중에 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학식이 많고, 배운 게 많고, 배운 것을 자랑하자면 끝없이 자랑할 수밖에 없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학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학식을 가지고 있었죠.

근데 그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나는 이제 내 남은 인생 동안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관심도 없다. 
그런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알고 싶으면 이거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계신 것!' 

그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정말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엇이었길래 
그렇게 얘기했을까요? 

사도바울처럼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은 성경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영적인 세계를 깊이 경험한 사람이 성경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삼층천에 가서 주님을 만났는데 
주님이 이런 얘기하시고, 이런 영적인 체험이 있었고, 내게 이런 신비한 경험이 있었고.. 
이런걸 한 마디도 성경에 쓰지 않았어요. 단 한마디도! 

그런 걸 자랑하는 사람들 다 가짜이에요. 

사도 바울은 자기가 경험한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기록하지 않았어요. 
왜요? 그게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럼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가치 있고, 가장 탁월하고, 가장 놀랍고, 가장 신비로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 전체를 망라해서, 이거보다 더 중요한 주제는 없어요. 
이게 구속사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투자해도 결코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에 깊은 영역이 
바로 구원과, 그 구원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구원에 관한 것을 정말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다 적었습니다. 
로마서는 정말 주옥같은 책이죠. 그죠. 

제가 그래서 로마서를 너무 좋아하고 또 많이 여러분들에게 나눴어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기가 막힌 계시를 경험하고 난 다음에 
그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감탄사가 뭐 였어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

Oh, the depth of the riches of the wisdom and knowledge of God!
How unsearchable his judgments, and his paths beyoud tracing out!

이것은 완전히 감탄문 이에요.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을 예정하시고, 준비하시고, 그리고 이것을 펼쳐나가시고 
결국 어떻게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그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깨닫고 나서, 사도 바울이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이 감탄사가 이거에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이건 구원에 관한 거에요.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더 깊고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근데 그 내용이 너무나 주옥 같고,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이게 한 책에 모아져 있지 않고, 바울 서신서에 이렇게 나눠져 있죠. 

◑그래서 그걸 제가 정리해서 여러분들에게 요약해 드립니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를 이기는 십자가요. 
2) 세상을 이기는 십자가요. 
3)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이기는 십자가요. 
4) 원수 마귀를 이기는 십자가요. 
5) 저주를 이기는 십자가요. 

그 결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를 믿는 그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십자가입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기간 동안에 
제가 바로 이 주제를 나눴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1. 첫째, 죄를 이기는 십자가
롬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과거시제입니다. 끝난 것이다.. 라는 거죠.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사도 바울은 옛 사람에 대해서 말하죠. 
거듭나기 전 옛 사람, 옛 자아
다른 말로 죄의 몸, 

이 죄의 몸이 죽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죄의 몸이 죽어야 의롭게 될 수 있다.. 라고 말하죠. 

다른 말로 하면, 옛 사람이 펄펄 살아있는 한, 죄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없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고, 죄에게 종노릇 하면서 질질 끌려 다니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딱 한 가지, 
옛 사람, 죄의 몸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그거밖에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십자가에서 거듭난 사람은 
바로 그 십자가에서 
옛 사람, 즉 죄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죠. 

 

이걸 믿고, 입술로 주장하며, 그렇게 여기며, 인정하며 사는 것이죠.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를 ‘내가 죽은 십자가’로 여기고
예수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과 연합해야
내 심령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온전히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의 유혹에 굴복하고, 죄를 짓는 것은,
결국 자기 자아가 살아있고,
자기 감정, 자기 의지, 자기 육체의 힘이 남아 있기 때문에
육신이 원하는 쪽으로, 자기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책임이지요.

그런데 ‘죽었다’고 고백하는 사람,
감정도 없고, 의지도 없고, 힘도 없는 겁니다.
죽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어떤 젊은 목사 사모가, 정말 말썽꾸러기 자녀를 한 명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선배 목사가 심방을 왔는데, 보통 말썽쟁이 아이들은
손님이 오면 ‘이때다!’ 하고, 더 말썽을 피우지 않습니까.

선배 목사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그 날, 아이가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 젊은 목사 사모(아이의 엄마)는,
결코 화를 내거나, 자기 언성을 높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자기 입으로 어떤 주문 같은 것을 외었습니다.
‘나는 죽었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몸이야!’

 

2. 둘째 세상을 이기는 십자가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세상이 나를 대하여 못 박혔고.. 그 말은 죽었고 말이죠. 
나도 세상을 대하여 못 박혔다.. 나도 죽었다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세상과 나는 끝장이 났다.. 결별을 선언했다.. 
나는 더이상 세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다.. 그 말이죠. 

아멘이 잘 안 나오실 거예요. 세상에 너무 좋지 않습니까? 
세상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세상은 정말 우리를 그냥 한꺼번에 삼킬 만큼 위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쾌락, 세상이 주는 즐거움, 세상이 가진 그 모든 것, 얼마나 좋습니까! 
그 세상을 이기는 길은 십자가밖에 없다..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아마 대부분 한국인은 노르웨이나 핀란드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노르웨이, 핀란드란 나라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 나라들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노르웨이, 핀란드에 대해 ‘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나라들, 나미비아, 부룬디도 마찬가지죠.
그 나라들은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세상에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이죠.
그러나 그 나라에 관해.. 적어도 나의 욕심은 없는 것입니다.

그 세상에 대해 내가 죽었기 때문이죠.

 

내 관심을 끄는 것이 ‘문제의 세상’입니다.
갈6:14절,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해 못 박혀 죽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또는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내 시선과 관심을 지나치게 끄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 대상에 대해 살아있는 것’이죠.
그래서 내 관심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아 갑니다.

바울은, 그 정과 욕심을 못 박으라고 말합니다. 그런 세상에 대해 죽으라고 가르칩니다.
세상을 싸잡아 다 등한시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자녀/돈/명예/정욕 등 특정 분야에 대해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특정 분야는, 그 사람에게는 ‘못 박아 죽어야 될 세상’입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해.. 내가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게 ‘옛날 도자기, 무슨 미술작품’ 등은 아무 관심 없습니다.
그런 것은 ‘못 박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자기 의지적 결단, 윤리적 결심을 뜻하는 게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내가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고 여길 때

즉 마음에 되뇌이고, 나즈막히 선포하면서, 내 변화된 신분을 내 스스로 확인할 때,

정말 세상에 대해 죽을 수 있는, '십자가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셋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이기는 십자가

(크게 보면, 1~3번이 같은 맥락입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누굽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사람, 
십자가에서 거듭난 사람,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사람, 
그리스도의 것인 사람, 그리스도가 주인인 사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여러분, 우리는 이 육신에 대해서 충분히 배웠어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아니 굴복이 불가능하다. 

죄로 철저하게 오염된 이 육신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빨아도 빨아도 걸레일 뿐입니다. 

이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거죠. 

 

일례로, 짐 캐리가 나오는 <마스크> 영화처럼  (짐캐리가 쓴 마스크가 강력본드처럼 밀착이 됩니다)
세상과 세속이 우리 살하고 완전히 밀착이 되어서
웬만큼 그것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천국에 데려가시려고.. 

욥 같은 고난을 줘서.. 나를 회개로 인도하십니다.

조금 더 일찍 패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조금 더 일찍 쓰셔야 하니까,
그가 밀착된 죄와 세상과 물질욕, 정욕을 다 청산하게 하시고
자기가 가진 모든 세상 것들을 다,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믿고, 생명 걸고 의지하고 따르는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주님께서 욥에게만 그러한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사명자들은 그러한 고난을 받게 되어있으며

    믿음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은, 작은 고난을 당하고
   그러한 자기 '마스크'를 떼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이제 끈질긴 사람들은, 완전히 뭐 엄청난 고난을 겪은 이후에, 회개하고, 
   자기 얼굴에 본드처럼 밀착된, 그 세상과 세속의 마스크를 벗어던져버릴 것입니다.


4. 넷째 원수마귀의 세력, 곧 어둠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기는 십자가 
(크게 보면, 4~5번이 같은 얘기입니다)

 

골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 
'우리 죄의 문서를 제해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아멘! 

근데 그 뿐만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 .. 영적인 존재들, 마귀들입니다.
그들을 무력화시켰다는 겁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드러내서 구경거리로 삼으셨다' 
그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에요. 

십자가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로 이기셨어요. 
그래서 사도바울도 십자가로 이긴거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외에는 이기는 방법이 없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합니다. 십자가로만 승리합니다. 

히2:14 '그(예수님)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로 마귀를 이기셨나요? 
'사망으로 사망의 권세잡은 자를 이기신' 거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망의 권세 잡은 자를 깨뜨리시고 이기신 거죠.

 

여러분, 오랜 정신적 상처가운데 수 년을 헤매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처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아는 것보다 정말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치유하고 이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상처는 죄의 경향이고,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의 삶을 파괴하려는 세력이 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그것과 마주 싸우는 것이 치유의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로, 마귀와 영적 권세에게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모신 자들은, 더 이상 마귀와 영적 권세 아래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고,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승리를 주장하고, 내 마음에 확실히 믿을 때

상처를 주는 마귀가, 나를 컨트롤할 법적 권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 상처와, 그 상처를 주는 마귀에게서 놓임을 받고 자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승리는,

미래에 최후의 심판 때, 종말 때의 승리도 보장해 주지만

오늘날 나를 괴롭히고 종 삼으려는 마귀의 권세에 대해서도, 승리를 보장해 줍니다.

5 저주를 이기는 십자가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제가 이런 말씀 드려서 송구하지만, 우리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님을 믿었으니까 
57 년째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교인들을 봤어요. 
그 중에 제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의 삶에는 저주가 끊임없이 따라다녀요. 
예수를 믿는데 저주가 따라다녀요.

나중에 제가 깨닫게 됐어요. 
'저 사람들은 십자가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이 아니겠구나..' 

왜냐하면 십자가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저주가 끝나거든요. 

어떤 분이 그래요. '그건 (저주가 아니라) 고난이겠지요..'

제가 고난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십자가를 제대로 만나는 사람들도 고난은 있어요. 
정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고난이 있어요. 
사도 바울도 있는데, 고난이 없다면 그건 가짜죠. 

진짜는 고난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면 반드시 고난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고난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 저주, 저주의 고리, 저주의 악순환, 
끊임없이 그 사람의 삶에는 저주가 쫓아다녀요.

마치 그 사람은 저주의 사슬에 매여 있는 사람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려고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셨다.. 이 저주를 해결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저주는 끝장이 난 것입니다. 
물론 저주의 원인이 되는 죄는 철저하게 회개해야 되겠죠. 

결국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정말 믿는 사람을 
성경은 뭐라고 말했냐면 '그 사람을 하나님은 살리실 것이다' 
'그 사람에게 영생을 주신다' 

성경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21:22~23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 우리에게 뭣도 주신다고요?
이거를 안 믿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그 사람은 성경을,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거예요. 

성경에 여러분, 신명기에 보시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보다, 하나님 주시는 저주가 3배나 많이 기록돼 있어요. 

하나님은 복을 주실 뿐 아니라, 저주도 내리십니다. 
이게 성경이에요. 이걸 믿어야죠. 

근데 성경이 뭐라고 말합니까?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다.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달려 죽는다.. 그 말이에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다시 인용하죠.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불순종해서 오는 저주를 말해요.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대신 받으사
내가 받을 저주를 속량(값을 대신 치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저주만 해결한 게 아니에요. 
동시에 그분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사망의 권세잡은 자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뱀의 머리를 밟아버렸습니다. 
창3:15절이 성취된 거죠.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상하게 한다'는 말은 번역이 좀 약해요. 
'깨버릴 것이요' 예수님께서 사탄의 머리통을 박살내 버릴거예요.. 라는 뜻입니다. 

근데 머리가 박살난 너도 꿈틀거릴 것이다.
그래서 그(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게 십자가에서 성취가 됐죠. 

골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러분 정말 이게 진짜라고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정말 할렐루를 외치셔야 됩니다. 

'통치자들과 관세자들을 무력화시켰다'.. 그 권세를 깨버렸다, 그 뜻 입니다.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습니다. 아멘!

여러분 이걸 믿으십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짜 만난 사람들의 삶에는, 이게 나타나는 거예요.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영적인 세계에서는 감출 수가 없어요. 귀신들이 다 알아요. 
김집사가 진짜 십자가를 만난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귀신은 귀신같이 알아요.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그는 정말 평소에 믿음이 좋아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 형제가 진짜 거듭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형제가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수련회에 갔다가 
고등학생들 가운데 귀신이 드러나서 내쫓으려 했더니 
귀신이 그러더래요. 

'내가 예수도 알아, 그런데 너는 누구야? 내가 네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랬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진짜가 되어야 합니다. 
진짜는 귀신도 알아봐요. 진짜가 돼야 돼요. 

그런데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어요.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정말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은, 예수가 주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정말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그렇게 선포할 수밖에 없어요. 

이건 가르쳐 줘서가 아니라, 그냥 알아지는 거예요. 
십자가를 만난 사람은, 예수님이 자기 삶에 주가 되시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그분을 주로 모시고 살게 됩니다. 

그분이 자기 삶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정말 구원자인 걸 확실히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주간에 우리가 정말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게 있다면 
내가 진짜 이 십자가를 만났는가? 

아니면 내가 상식으로 잘못 알고 있는 십자가, 
내가 교회 다니면서 대충 들은 십자가, 
귀동냥으로 들은 십자가를 내가 만난 것인가? 

아니면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이 엄청난 진리,
이 엄청난 위대한 능력이 역사하는 그 십자가를 내가 만났는가? 

오늘 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떻게 만납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고는, 내 죄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피가 아니고는 
그 더럽고 추악한 죄를 깨끗이 씻을수 있는 게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는, 다시 살길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그곳에서 예수님을 진짜로 만나는 것입니다. 

바울서신서를 쭉 읽어보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키포인트가 한 곳으로 귀결됩니다. 

그게 뭐냐면 
'내가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그래서 십자가밖에 없다!' 그것입니다. 

평생을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그렇게 살아왔던 인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알기 원합니다. 
왜냐면요, 다른 그 어떤 것도, 자기를 끝까지 승리할 수 있도록 
붙들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어요. 

제가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끝까지 승리하는 비결, 마지막 주님이 부르시는 순간까지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길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습니다. 
이 십자가에서 그리스의 생명으로 내가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 지금까지 내가 내 믿음을 지켰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싸워 이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이죠. *성금요일
우리는 십자가에서 거듭납니다. 
그리고 십자가로만 죄와 이 세상과 내 육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망과 저주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새 생명을 얻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괜찮아요.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정말 우리 마음판에 새겨졌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의 십자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정말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님, 제가 거듭나게 해주세요. 십자가에서 거듭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짜 제대로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 생명으로 살아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