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코로나같은, 이스라엘의 광야 40년과 같은 위기의 시간에는 하나님께, 그 말씀 철저히 순종하는 길 외에는 생존할 길이 없다.. 는 주제의 메시지!
오늘 하루도 말씀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은 신명기 8장, 광야학교와 약속의 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겸손과 순종을 가르치시고자 한다고 말씀합니다.
▲신8:1 '삼가 내가 오늘 너희에게 주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러면 너희가 살고 수가 많아지고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로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1절에 첫번째 명령이자 선언은, "모든 명령을 지키라" 어제 말씀을 준비하면서 1절을 읽다가 목이 콱 메어서, 더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 명령을 지켜야 된다. 그래야만 생존이 가능하고, 번성이 가능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1
다시 말하면, 순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입니다.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도 오늘날 신앙생활에 큰 오해가 있는데,
그건 '말씀에 내가 전적으로 순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입니다.
성경말씀 중에 내게 유익해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은.. 내가 선택하려고 하죠. 근데 나머지 말씀에 대해서는... 순종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근데 말씀에 순종하는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제가 8:1절을 읽자마자 마음에 딱 걸린 것은 신약적 관점으로 놓고 봤을 때 '이게 도저히 가능한 것이냐?'라는 것이죠.
모든 율법을 사람이 다 지킨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요? 그래서 로마서에서, 율법과 복음의 긴장관계에 대해서 설명했던 사도 바울이 롬3: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육체가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을 뿐입니다.'
율법이 존재하므로 죄의 각성효과는 있지만 모든 율법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라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모든 명령을 지키라'고 하셨거든요. 8:1
자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이 다 지킬 수 없는 이 모든 명령을 왜 다 지키라고 하셨는가요?
다시 8:1절에 돌아가보면 '말씀은 생명이다' 라는 이 명제는, 절대적으로 옳은 명제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무엇으로 창조하셨나요? 말씀으로 창조하셨죠.
그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요1장에서도 선언하는 것이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요1:1~3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신 이 천체, 그리고 자연, 인간의 신체조차도 딱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서 규정해주신 궤도를 벗어나면 별 하나 라도 궤도를 벗어나면, 그 다음에는 우주적인 재앙이 오는 것입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드신 법칙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고 탈선하면 그러면 큰 자연재해가 오는 것이고요.
인간의 공동체도 그렇고, 개인의 삶과 개인의 신체도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이 어긋나면.. 망가지는 거에요. 죽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지켜야 돼요. 말씀 안에 담겨있는, 온 세상에 하나님이 펼쳐 놓으신 그분의 질서를 지켜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킬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 모든 명령을 지켜야만 산다' 라고 말씀하셨는가요? 8:1 그것에 대한 부연 설명이 2절에 나오는 것이죠.
▲8:2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를 어떻게 이끄셨는지, 어떻게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셨음을 기억하라.
40년 광야학교.. 성경에 '학교'라는 단어가 직점 나오지는 않는데 간접적으로 관련된 한 단어가 나오죠. 2절에 시험 test 이라는 단어입니다. 테스트를 어디서 봅니까? 학교에서 보는 거죠.
광야의 40년 훈련과, 그 훈련을 통한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가르치시려고 하시는 것이냐? 두 가지입니다.
1) 첫 번째는 우리를 낮추시는 것, 겸손이죠. 인간 스스로 자급자족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인간 스스로 생존할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인간 스스로는 저 죄악의 애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애굽만 벗어나면 자유할 것 같았는데 인간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이 죄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죠.
2)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살 수 있구나, 내가 스스로 아무런 살 길이 없구나, 정말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구나!'
유월절 어린 양 그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넘어갈 것이다.. 그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해야만 사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그거 바르지 않으면 죽는 것이고요. 이방인이라도 그것을 신뢰한다면, 그것을 그대로 순종하면 사는 것이죠.
결국에는 '순종이 생명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시는 거예요.
여러분 순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라는 것을 - 이들에게 끊임없이.. 유월절을 통해서도, 홍해 도강을 통해서도, 광야의 매일매일 여정을 통해서도 알려주시는 거였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야만 광야 한 가운데서 살아날 남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절 하반절에 보니까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근데 마음으로!
행동으로 보통 지킨다/ 안 지킨다고 표현하지 마음 안에서 지킨다/ 안 지킨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약간만 의역을 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어요. '너희 마음에 지키려는지/ 안 지키려는지'
여러분 실생활에서 내가 실천해서 말씀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는 이미 마음에서 결정된다는 거에요.
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하나님이 보시려는 것이다.. 라고 2절에서 말씀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광야 길을 인도했던 모세나 다윗을 보십시오. 완벽하게 계명을 지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요.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그 말씀을 지켜 살려고 하는.. 그런 의도나 동기가 내게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 그냥 대충대충 살려고 하는 것이냐..? - 그걸 하나님은 시험해 보시고, 알기 원하신다는 거죠.
근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두 가지가 계속 세트로 나오는 것이 '겸손하여서 순종하는가?'
'겸비케 하시고 (낮추시고)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테스트하셨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고요.
그리고 3절 말씀에도 우리를 일단 낮추시고 그리고 나서 만나를 통한 교훈을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면 왜 낮추시고 나서 일까요? 사람이 고난이 닥치면, 마치 이 고난이 나를 이렇게 위에서 억누르죠. 우리를 짓누르는 것처럼 사람을 낮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사람이 낮춰지면 겸손해질까요? 정반대로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폭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요.
사람이 환경이 어려워지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겸손해질 것 같은데 그런데 나를 짓누르는 이 상황 때문에 '내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 하면서, 분노하고 폭발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과 싸우는 그런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코로나19 와중에도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난 괜찮다!' 지금 뭐 십여만명이 전 세계적으로 죽고, 수백만명이 감염이 확산이 되고 있고 아직도 시작점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다'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고요.
여러분 고난이 닥치면 당연히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의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겸손히 엎드려 있어야 되는 거예요.
두 번째는 고난의 순간에는 당연히 그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생사결정권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어느 건물 안에 있는데 화제가 났어요. 그 안에 고립이 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면 구조대원이 오면, 그 구조대원의 말에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계단으로 내려가라, 아니면 밧줄을 잡아라,
아니면 지금 상황은 저 아래에 있는 에어매트리스에 뛰어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순종해야 돼요. 그렇게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비케 하시고 그 겸비한 가운데 살 길을 얻기 위해서 순종하는가? 이 두 가지를 보신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한 가지 예시를 드셨습니다. 그 첫번째 예시가 만나입니다. 마치 유월절이나, 홍해를 건너는 것이나, 만나나,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는 것이나 모든 게 다 적용되지만, 딱 한 가지 얘기하셨어요. 그게 삼절 말씀입니다.
▲8:3 '그분이 너희를 낮추시고 배고프게 하셔서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만나로 먹이신 것은 너희로 겸손하게 해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만나를 먹이신 이유도 두 가지 라는 거예요. 첫번째는 겸손이고, 두 번째는 말씀 순종입니다.
'말씀을 먹는다' 라고 표현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먹고 사는 것이구나...
내가 빵이 있어야 사는 게 아니라, 순종해야 사는 것이구나.. 이거를 가르쳐 주시려고 했다는 거예요.
하루라도 만나를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루라도 그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을 안 주시면.. 또 한밤중에는 광야가 맹추위잖아요. 어떻게 사람이 생존하겠어요? 반석에서 물을 터쳐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정말 인생의 고난의 광야 한가운데에서는 사람들 말 들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기억하기 쉽게 명제적으로 표현하자면 "순종이 생존입니다." "순종이 생존입니다!"
순종해야 적어도 생존할 수 있는 거예요. 말씀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목숨처럼.. 내지는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된다는 것이죠.
▲8:4 그 40년 동안 너희 옷은 해어지지 않았고 너희 발은 부르트지도 않았다. 8:5 그러니 너희 마음에 사람이 자기 아들을 훈련하듯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훈련하시는 것을 알라.
자 그런데 광야 40년 여정을 돌이켜 보니까 이 신명기는 광야여정이 끝나고 나서 회고하는 장면이잖아요.
오늘 본문에 4~5절을 보니까 그렇게 절박한 가운데 우리가 40년을 지났지만, 참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옷이 헤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훈련하시는 것처럼 하셨기 때문이다.. 아들을 괴롭히려고, 망치려고 훈련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잘 되라고, 훌륭하게 되라고 훈련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여정가운데서도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으시고 인도하셨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다시 한번 6절에 반복합니다. 자 본문은 1~10절까지 인데 히브리 텍스트는 중요한 부분을 반복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1절에 '모든 명령을 지켜라'는 말씀이 다시 6절에 반복됩니다.
▲8:6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길로 걷고 그분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 하나님의 길을 간다, 경외한다, 그분의 계명에 순종한다' 이 세 가지는 똑같은 표현을 세 가지 다른 뉘앙스로 설명했을 뿐입니다.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광야에서든, 약속의 땅에서든, 환경이 변하고 상황이 달라진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너희는 생존할 수 있다' 즉 '순종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이거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너희의 생명을 건지는 길이다...
그래서 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8:7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좋은 땅, 시냇물과 샘물이 있고 골짜기와 언덕에 냇물이 흐르는 땅에 들여보내실 것이다.
광야에서 물 찾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그 땅은, 시냇물과 샘물과 냇물이 있는 땅이 될 것이다...
▲8절에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 약속의 땅에서 일곱가지 대표 소출을 얻게 될 것이다. 8:8 그 땅에는 밀과 보리가 있으며 올리브 나무들과 무화과나무들과 석류나무가 있으며 올리브 기름과 꿀이 나는 땅이다.
8:9 그 땅에서 너희는 부족함 없이 빵을 먹을 것이며
너희가 그 안에서 아무것도 모자라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 땅의 바위들은 철이고 너희는 산에서 청동을 캘 것이다.
양식도 부족함이 없고, 광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때 그 땅으로 인해서 너희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는 것은 하나님 인정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똑같은 영적 패턴이 반복되는 거예요.
사실 오늘 9절 말씀을 제가 강조하는 이유는 가나안 땅이 막 차고 넘치는 풍족한 땅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9절뿐만 아니라 성경전체에서, 그 땅이 굉장히 풍족한 땅인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여러분, 이 가나안 땅은 일년 강수량이 5백 미리밖에 안 되는 땅입니다. 수돗물로 치자면 쫄쫄 흐르는 정도라고요.
그런 수준의 땅을, 왜 풍족한 땅, 부족함이 없는 땅이라고 말씀하셨는가요? 그것은 시23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내가 그 목자에게 순종하는 양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완벽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완벽한 땅이라는 게 존재하나요? 세계에서 우리가 보면 정말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화려하게 잘 나가던 도시들이 (코로나로) 굉장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요.
여러분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땅은 없습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불완전하고, 이 세상은 존재 자체가 상대적이고, 한계가 있고 부족한 거예요.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 불완전함을 채우시는 분이 누구신가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인간을 존재론적으로 봐도, 세상에 완벽하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하나님 제가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합니다. 순종할 마음이 있습니다..' 하며 이렇게 몸부림치는 자녀, 그 자녀를 온전하게 이끌어주시는 분이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적용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가 마비된 이런 위기의 시즌을 살면서 우리가 두 가지 마음의 태도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허세를 부리거나, 화를 내거나,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눌리고 눌리고 눌릴 때 모든 비본질이 다 내게서 짜져서 나가고 겸손만 남아야 합니다.
창조주,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나님 겸비하겠습니다. 겸비하겠습니다. 엎드리라고 하시면 계속 엎드려 있겠습니다.'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붙잡으셔야 돼요.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이 태풍이 다 지나가기까지, 말씀을 먹고 이 긴 겨울을, 역사의 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분노하고 화를 내고 때로는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가기도 하고 온 지구촌의 많은 어려움과 환란 뿐만 아니라 그 환란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때문에 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겸비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비하고 내가 풍족할 때나 궁핍할 때나 일체 만족의 비밀을 깨달았사오니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 또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하겠습니다.
과거에 풍족하게 채워주신 때도 감사하고 지금 모든 것이 결핍한 이 순간에도 감사하겠습니다. 겸비하며 엎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주께서 긍휼히 여기실 줄로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 이 위기의 시간에는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길 외에는 생존할 길이 없음을 깨닫게하여 주셨사오니 *주제 말씀 붙잡고 이 어려운 시기를 건너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겨울철에 아무런 양식이 없어도 굴에 들어가서 전혀 활동할 수 없이 맹추위가운데 겨울잠을 몇 개월을 잘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양식을 풍족하게 먹고 긴 겨울을 이겨내서 다시 봄이 오면 깨어나는 수많은 이 자연의 법칙처럼 그 생물들의 법칙처럼
하나님, 고난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생명의 양식을 주신줄로 믿습니다. 이 시기에 떠도는 소문과 우리를 압도하는 뉴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암송하고 약속으로 선포하며 붙잡고 살아갈 때 우리 영원에 다시금 불이 일어나고, 성령의 감동하심이 일어나고, 새롭게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하나님, 이 광야의 시간을 지나며 '겸비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고백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그 소중한 가정과 자녀들과 일터 위에, 또한 한국 교회 위에 이 코로나19로 인해서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지구촌의 하나님의 형상들 위에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 그리고 선교사님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