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마12:33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나에게 뭐라고 물으실까

LNCK 2022. 4. 29. 15:53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나에게 뭐라고 물으실까    마12:33, 요21:15~19    2022.04.24.녹취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요즘 코로나로 우리 성도님들이 너무 참 살기가 버겁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서 
제가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님들이 참 꿋꿋이 잘 버텨주시는 걸 보고 또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성도님들에게 좀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설교를 했으면 좋겠다... 
근데 항상 주님의 생각은 제 생각과 다르더군요. 

'정말 오늘은 좀 이렇게 가볍고 쉬운 주제를 좀 나누고 싶었는데..' 
더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주셔서 저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의 말씀이니까, 우리가 아멘 으로 받으면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우리에게 양식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요21:15~19절까지 읽겠습니다. 
요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지난 주일날 저희 교회 1부 예배 때, 이상일 선교사님 내외분이 다녀가셨습니다. 
선교사님이 피지로 가기 전에 인사하러 오셨다가, 제게 두 권의 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참 좋은 책, 정말 귀한 책을 선물 받을 때 너무 기쁘고 너무 감사합니다.  

이분이 주신 책이, 제목부터가 참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기 비움의 길> 1부 와 2부 두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굉장히 훌륭하신 감리교 목사님이십니다. 
2부의 제목은 "죄인의 길" 이라는 제목인데 
책 자체가 목회자들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긴 합니다. 조금 어렵긴 하죠. 

제가 그 책을 읽기 시작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45~46쪽에 이런 글이 써 있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물러가듯이,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는 죄가 물러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넘쳐나는 세상에 죄가 그대로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불이 꺼져버린 등잔과 같다. 

불 꺼진 등잔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어둠이 물러가지 않는다. 빛이 없기 때문이다. 
등잔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등잔에 불이 켜져 있는가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이 땅에 교회가 넘쳐나고 있다. 
어디를 가 봐도 교회 없는 곳이 없고, 도심에는 교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세상에 죄는 날로 날로 더 심해지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가? 
불 꺼진 가짜들만 모여 있다는 얘기다. 

가짜 일수록 진짜와 흡사하게 보인다. 
불이 꺼진 가짜 일수록, 구원에 대한 확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절대시한다. 

중세기에 어둠이 깊었을 때, 면죄부 라는 것을 교회에서 발매하면서 
그것을 가진 사람들은 천국직행표를 가진 것과 같다고 했다. 

오늘도 교회는 면죄부를 팔아먹고 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는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고 
그 확신으로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간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면죄부를 팔아먹는 그것이다. 

이들은 변화된 삶을 언급하지 않고, 구원의 확신만을 강조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건강과 물질의 축복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종말이 임한다고 믿게 한다. 
자기 자신이 지금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용서받지 못할 불 꺼진 등잔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대상자들은 
모두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했던 사람들이다. 

구원의 증거는, '구원받았다'는 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구원의 삶에 있다.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게 마련이다

나무의 좋고 나쁨은 그 열매가 말해준다. 
좋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절대로 좋은 나무일 수가 없다." 

예수님은 마12:33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이 맺을 열매는 
내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고, 
사역이 커지고,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 .. 이게 열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하는 열매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것을 아주 강조해서, 갈4: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죠.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Until Christ is formed in you

우리는 모두 스스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될 올바른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이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가?' 이게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역을 얼마나 크게 하고 있는가? 
-교회를 얼마나 성장시켰는가? 
-선교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가? .. 이런 질문이 아니라 

-내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가? 
-내가 정말 주님을 닮고 싶은가?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있는가? .. 이걸 물어야 합니다.

제가 한번은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선교단체를 세우신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선교단체라 모르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입니다. 

제가 찾아가서 만난 게 아니라, 그 분이 만나자고 해서 만난 겁니다.  
그분을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제가 그런 생각을 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 분은 선교에 미친 분은 맞다. 그런데 이분은 예수님을 닮은 분은 아니네' 

저는 개인적으로 박OO 목사님과 이OO 목사님을 깊이 존경합니다. 
제가 이분들을 존경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이유는 
이분들을 가까이 교제할 때마다, 제게 도전되는 것은 
'어쩌면 이분들은 예수님을 닮았을까!' 

그분들에게서 풍기는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을 닮은 그분들의 삶의 모습 때문입니다. 

선교를 어마어마하게 이룬, 그 선교단체의 그 목사님은
저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실패 이유 -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음

 

오늘 우리가 읽은 요21장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어서 
그냥 첫 마디만 읽으면, 그 다음 스토리를 다 아는 내용이죠. 

이 말씀은 제게 굉장히 특별한 말씀입니다. 
왜냐면 이 말씀으로 주님이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저를 부르시기 전에, 베드로를 부르셨던 말씀인데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셨을 때, 이때 당시에는 첫번째 부르심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베드로는 이미 오래 전에 만났고, 이미 예수님은 3년 전에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어요. 

다시 부르시면서 예수님께서 물었던 질문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그리고 베드로가 사랑한다고 대답할 때, 주님은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여라'

저도 이 말씀 때문에, 이 말씀에, 이 부르심에 순종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듯이,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부르셨을 때는
'내 양을 먹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다.'
즉 '너는 전도자가 될 것이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명을 베드로에게 주십니다.
'내 양을 먹여라!'

그런데 내 양을 먹이라는 이 사명을 주시기 전에
예수님이 세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것은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니?' 였죠.

'요한의 아들 시몬아'
예수님이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하고 싶을 때
부르시던 베드로의 호칭이죠.

저는 그런 질문을 혼자서 가끔 해봅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나에게 뭐라고 물으실까?'

'너 성경 얼마나 많이 배웠지/ 가르쳤지?'

'너 기도 얼마나 열심히 했지?'

'너 얼마나 교회봉사 많이 하고, 선교 많이 다니고 구제 많이 했니?' 이런거 물어보실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물어보실까'에 답변하기 전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대면하여 세 번이나 물어보신 이 질문,
'너는 나를 사랑하니?' 
이렇게 물으셨던 주님의 심정속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그것을 먼저 살펴보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 가까이에서,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이 행하시던 모든 기적을 보았습니다. 
어떤 것은 직접 체험까지 했습니다. 
그냥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시고 남긴 게 열두 광주리였습니다.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린아이와 여자를 제외한 남자만 사천 명을 먹이고 
남긴 게 일곱 광주리였어요. 이거 직접 제자들이 보았어요. 베드로가 눈을 똑바로 뜨고 봤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것 뿐입니까? 

하루는 예수님이 거센 풍랑과 파도와 바람을 잠잠하게 하십니다. 
마4: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되 잠잠하라!' 
그랬더니 바다가 조용해지고, 바람이 그치고.. 제자들이 너무나 깜짝 놀랐어요. 
아니 놀란 게 아니라 두려워 떨었어요. 그러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도대체 이 분이 누구야? 도대체 이 분이 누구이기에 바다가 순종해?' 

그 뿐입니까? 한밤 중에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물 위를 걸으셨다고요! 

그걸 보고 베드로는 절대 가만히 안 있죠. 
'주님, 나도 그렇게 걷게 해 주세요.' 
'오라!'

인류 역사에 유일하게 물 위를 걸어 본 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어마어마한 체험입니다. 

그뿐입니까? 예수님은 세 번이나 죽은 자를 살렸어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렸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렸어요. 

가장 충격적인 것은,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시신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어요. 
베드로는 자기 두 눈으로 똑바로 봤어요.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개인적으로 기가 막힌 계시를 경험합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 계시를 경험해서 예수님이 칭찬합니다. 뭐라고 칭찬합니까? 

'야 네가 이거를 아는 것은, 네 힘으로 절대 알 수 있는 게 아니야,
너는 계시로 안 거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에게 계시해주셔서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거야!' 

그 유명한 말씀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뿐입니까?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변화되셨어요.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같이 빛나면서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기뻐하는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때 베드로가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얼마나 황홀했으면, 세상에 내려가기 싫었겠습니까! 

그뿐입니까? 베드로는 제가 아는 수많은 한국 목사님들이 그토록 원하는 
능력과 권세, 권능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가서 열심히 전도하며, 많은 병자를 고쳤고, 많은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눅9:1~2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시려고 내 보내시며 

나가서 바로 한 일이 뭐에요?
눅9: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막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막6:12~13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베드로는 셀 수 없는 기적을 보았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였고, 놀라운 계시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인가 알게 되었고 
능력과 권세를 받아서 전도하며, 많은 병자를 고치고, 많은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자 이 정도 신앙경력이면, 대단한 믿음을 가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스펙 아닙니까? 

이 정도 스펙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이 정도 신앙경력 갖기가 쉽습니까? 

오늘 같으면, 이 정도 스펙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추종할 겁니다. 
제가 보기에 사도 바울을 제외하고 
베드로만큼 대단한 사역을 한 예수님의 제자는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사모하고 꿈꾸는 모든 것을
베드로는 다 경험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 베드로가, 바로 그 베드로가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졌는지 우리 다 봤잖아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신 겁니다.)
  
'도대체 주님은 여기서 뭘 말씀하시고 싶은 것일까?' 
한번 잘 들어보십시오. 

베드로가 3년 동안 보고 듣고 체험했던 그 모든 것, 
그게 얼마나 쉽게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겠다고 
그렇게 충성을 다짐했던 맹세가, 한낮 말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말뿐이었습니다.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다. 베드로가 그런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마음이 없는 말을 예수님께 한 게 절대 아닙니다. 베드로는 진심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진심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그의 진심은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마음이 무너진 것은, 확신이 부족한 게 아니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확신에 찼으면 
'다른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려도, 나는 안 버리겠다'고 했겠습니까? 
확신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말합니까? 못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베드로같은 진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같은 확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진심도, 우리의 확신도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는 얼마든지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난 아니야!' 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성경을 부인하는 거예요. 

▲3년 전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와라 그러면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죠.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니?' 라고 묻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너무나 잘 알아요. 
예수님이 그걸 모르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걸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거 아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실 수가 없었어요. 
'그냥 너를 전도자 만들어 줄게,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전도할 수 있어!'

예수님이 배신한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을 때 
예수님은 묻고 또 물으시며 세 번이나 확인하길 원하셨던 것은 
'너는 정말 나 사랑하니?' 였어요. 

'네가 정말 날 사랑하면..' 
이제는,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정말 된 거예요. 
그때 '내 양을 치라,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거죠.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예수님의 말씀 속에 감춰져 있는 예수님의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권세받고, 얼마든지 귀신 내어쫓고 
얼마든지 병고치고, 얼마든지 예언하고, 얼마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저는 봤거든요. 
그런데요. 이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베드로, 너 이제 깨달았니?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그거 다 했어! 
이제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은 딱 한 가지야! 
너는 나를 사랑하니?

어떤 분은 저에게 그렇게 묻는 분이 있어요.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전도할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동기로, 오히려 나쁜 동기로 
열심히 전도할 수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전도를 하는데, 사랑으로 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은 나의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전도도 하고,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언도 하고요. 능력 사역도 하고요. 
귀신도 쫓아내고, 치유도 하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주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을 도용해서 
자신의 이기적인 꿈과 야망을 이루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제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죠.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저는 이 말씀이 충격인 거예요. 그 날에 몇 명이 아니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뭐라 그래요? '내가 주의 이름으로 이렇게 하고, 주의 이름으로 이것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내가 어떻게 했지 않습니까? 내가 주의 이름으로 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밝히 말하되 '나는 너를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물러 가라!' 
그러셨다는 거예요. 

저에게 질문은 이거에요. 
'저 많은 사람이 누구일까, 저 많은 사람이 누굴까?' 

이 많은 사람 속에는, 분명 지금 이 시대에 
주의 이름을 빙자해서 열심히 사역하는 그런 분들이 틀림없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지금 수많은 교인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추종하고 있는 
많은 목사들, 교사들, 선교사들, 선지자들이라고 자청하는 그 가짜들, 
그들 중에 이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근데 여러분 제가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저도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한때 주의 이름으로 예언했습니다. 
저도 한때 주의 이름으로 많은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한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병을 고쳤습니다. 

제가 보는 눈 앞에서 너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서, 정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성령님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역사하실까?' 
아마 제가 계속 그렇게 했더라면, 지금쯤 저도 이단의 괴수가 됐을 겁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신 이유

 

오늘 주님은 제게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벤자민, 왜 너는 네가 알고 있는 성경지식으로 사람들을 이끌려고 하니? 
너는 왜 너를 통해 나타나는 능력으로 사람들을 네게로 이끌려고 하니? 

네가 할 일은 이거야! 
네가 하는 모든 사역을 통해, 사람들을 나에게로 이끌어야 한다.
네게로가 아니라, 나에게로!' 

제가 얼마나 통곡했는지요. 
'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성경지식을 부지중에 자랑하고 있었구나!' 
'나를 통해 나타나는 능력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구나!' 
'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게 하고 있었구나!' 

오래 전에 저는 어느 부흥사 목사님으로부터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이 직접 그분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요. 
'한국 교회에, 수많은 그 유명한 부흥사들, 목사들도 (죄송합니다) 지옥에 갔다' 그러시더라고요.

그 부흥사 목사님은 너무 충격을 받으셨어요. 
'그들이 왜 지옥에 갑니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래요.
'그들은 내 영광을 다 가로챘다!'

그 부흥사 목사님은, 부흥사로 성공한 그것이 
오히려 자신이 더 큰 범죄에 빠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큰 경고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거예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는 사역이 얼마나 위험한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는 사역이 잘 되는 것이 얼마나 더 큰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어떤 선교사님의 간증을 듣고 한동안 충격에 빠졌습니다. 
정말 열심히 선교한 분이에요. 선교지에서 대단한 역사를 이룬 분이에요. 

이 선교사님이 어느 날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어요.

주님 앞에 가서 섰어요.

주님 앞에 이 선교사님은 주님께 칭찬받을 줄 알았대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선교했는데..' 그래서 칭찬받을 줄 알았대요.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겁니다.

'너는 이 모든 사역을 나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너를 위해서 했어!

너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너의 만족을 위해서, 너의 꿈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했어!

그게 어떻게 나를 위한 거냐?'

 

선교사님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답니다.

선교사님은 '한 번만 주님, 제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서 다시 살아 돌아와서, 이 분이 열심히 다니면서

문전박대 당하면서도, 미움을 당하면서도 이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행한 모든 것은

다 가짜입니다. 헛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베드로를 부르시죠.

 

19절에 볼까요.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런데 '나를 따르라' 라고 베드로를 다시 부르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18절입니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도대체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무슨 뜻이냐고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19절에 답이 기록되어 있죠.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르키신 것이다.' :19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신했던 베드로잖아요.

죽음이 두려워서, 그냥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아닙니까!

 

그런데 그 베드로가,

'그냥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죽음을 죽게 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그게 바로 예수님이 확인해 주셨어요. '너 사랑하지?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는 정말 나를 사랑하니? 너는 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거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시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베드로야, 그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가 중요해! 너는 나를 정말 사랑하니?'

 

베드로는 세 번이나 자기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말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은 이미 다 베드로의 마음을, 물어보기도 전에 아십니다.

그런데도 세 번이나 확인하신 것은, 베드로를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세 번 예수님이 확인하시고, 베드로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죄송하지만 '전도해라'가 아니에요.

'내 양을 먹이라, Feed my sheep!'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양을 먹이다 보면

평범한 목자 같지만

언젠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 때

너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늘 설교 시작할 때 제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물어보실까?'

 

'벤자민, 너 선교 얼마나 많이 했니? 구제 얼마나 많이 했니? 봉사 얼마나 많이 했니?'

'말씀 얼마나 많이 연구해서 가르쳤니? 교회를 얼마나 많이 섬겼니? 교회를 얼마나 많이 성장시켰니?'

 

이런 것을 물어보실까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제게 딱 한 마디 물어보실 것 같아요. '너는 나를 사랑해서 한 거냐?'

 

▲이번에 제 케냐 선교 일정은

이 정도의 일정은 처음입니다.

 

대단한 일정입니다. 가장 오지, 가장 힘들고 열악한 곳에서

일주일씩 현지 목회자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이게 일주일만 해도, 그냥 기진맥진할 일인데, 3주를 연속해서 계속 할 수 있겠는가?

거기 선교사님들이 저를 걱정하십니다.

 

저는 제가 버틸 수 있을까/ 없을까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것은, 작년에 투르카나를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 '투르카나의 엄마'로 불렸던, 60세에 주님 품에 안기셨던

그 선교사님의 말씀이 그렇게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사역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사역은 전략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 같이 강한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사역도..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 짜서, 전략으로 하는 것도 아니요,

그랬으면, 그게 해답 같으면, 전 세계는 이미 복음화 되었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죠.

그 사랑 외에는, 영혼을 얻을 길이 없으니까요!

 

'아~ 나도, 이 선교사님처럼, 죽음 같이 강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현지인 목회자들을 섬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요즘에, 제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성도님들을 보면서

교회들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집니다.

'아! 이건 아닌데.. 이건 절대로 아닌데.. 도대체 우리 교회와 교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여러분, 다 못해도 괜찮아요

예수님 사랑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하고,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하고

 

제가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봤거든요.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해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발 벗고 나서서 해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