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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7장 46 십자가 앞에 서라

LNCK 2022. 5. 2. 11:23

◈십자가 앞에 서라            마27:46, 요일1:7           십자가 설교모음    출처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참 귀한 별명을 가진 어느 자매가 있었어요. 
'나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늘 그렇게 고백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매'라는 별명을 가진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가 목사님을 만나고, 교인들을 만나면 항상 고백하는 게 
'나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라는 말이었어요. 

어느 날 자매가 '목사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자매에게 '너, 나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그 말하려고 그러는 거지?' 

그랬더니 그 자매는 '아니에요. 새롭게 깨달은 게 있어요' 
목사님은 '그게 뭔데?' 
그랬더니 그 자매가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도 나 없이는 살 수 없대요!' 

오늘 성금요일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이 은혜가 여러분의 은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도 '주님 없이는 살 수 없고, 주님도 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시는 
놀라운 사랑의 고백을 여러분이 드리시고 
그리고 주님과 정말 사랑에 깊이 빠지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1. 십자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 예수님을 이렇게 바라보십시오. 
오늘 아마 여러분들이 그러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주님을 바라보면, 무엇을 느끼시나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보면서 (묵상하면서) 
여러분들은 뭘 깨달으셨나요?

십자가는 사실 좀 정상적인 게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우리 믿음의 상징으로 십자가를 늘 사용하지만 
아무런 선입관이 없이 십자가를 보면, 정말 이상한 것입니다. 

사람이 매달려 죽는 사형틀을,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이건 정말 뭔가 설명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정말 어떤 전前 이해가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게 무슨 뜻이에요?' 
이렇게 질문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도대체 십자가가 무슨 뜻이지요?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뭘 도대체 보게 되는 거지요? 

십자가는 우리에게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도무지 깨우칠 수 없는 것, 
너무너무 중요한데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너무너무 중요한 우리들의 문제들이 있는데, 
십자가가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십자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저는 지옥을 봅니다. 

여러분,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요? 죽어 봐야 아는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지옥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우리 모두를 위해서 죽으셨대요. 
만약에 천국만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어요.  

그냥 우리가 죽고 나서 모두 다 천국에 가는 거라면,

굳이 예수님이 고통스럽게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던 거죠.  
  
여러분 생일이 되었을 때, 또는 무슨 좋은 일이 있을 때 
가까운 사람들이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잖아요. 

나는 전혀 몰랐어요. 오늘 나를 위한 무슨 파티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누구도 다 내색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나를 위해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면 너무 놀라죠. 

그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어휴, 깜짝 놀랐어요. 이런 파티를 해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미리 귀뜀이라도 좀 해주시지요' 
그런데 그게 뭐 섭섭하다는 마음은 없어요. 좋은 거죠.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천국에 갔을 때 
우리는 하나님에게 그렇게 말할 거예요. '귀뜀이라도 좀 해주시지요. 
이렇게 좋은 데라면 빨리 올 걸요!' 

세상 사는 동안에 몰랐었잖아요. 이렇게 좋은 천국이 있다는 걸! 
그걸 미리 하나님이 알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섭섭할 것도 없어요. 
죽고 난 다음에 천국이 있어요. 그러면 너무 좋지요. 
뭐 좀 놀라기는 할 거예요. 이렇게 좋은 천국이 있는 줄 몰랐다고.. 

그러나 천국만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야 될 이유는 없어요. 
죽고 난 다음에 천국만 있는데, 무슨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있습니까?

▲'죽고 난 다음에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어요. 그냥 죽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죽음은 끝나는 거라고요. 

만약에 그렇다면, 진짜 십자가는 있을 이유가 없어요. 
죽음으로 다 끝나는데.. 왜 예수님이 굳이 십자가를 지셔야 됩니까? 

아니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지옥이 있기 때문이에요. 

지옥이 있다면, 십자가 없이는 우리에게는 정말 큰 일인 것입니다.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이유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를 보면 지옥을 알게 되는 겁니다

'아~ 지옥이 있구나!' 
지옥이 없다면, 십자가가 설명이 안돼요. 

▲성경에 보면, 십자가 사건은 복음서에 
가장 중요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를 지셨던 그 마지막 주간의 이야기가
복음서마다 삼분의 일 분량을 (많이) 차지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생애가 33년인데, 그 생애 중에 마지막 3년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마지막 한 주간이 
복음서의 3분의 1 분량을 차지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복음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되는 모든 과정과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에요. 
그리고 부활하신 기록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셨던 이 고난이 바로 '지옥의 고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지옥의 고통! 

오늘 우리가 읽은 마27:46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셨어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게 지옥의 고통이에요.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별의 별 삶을 다 삽니다. 
사람마다 다 달라요. 백 사람이면 백 개의 인생이고, 만 명이면 만 개의 인생이에요. 
똑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어요.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이렇게 한 2천 명 가량 모였지만 
세상 사람들의 삶의 스토리는 다 달라요. 그러나 운명은 사실 똑같아요. 
예수 안 믿으면, 이렇게 가다가 결국 지옥이에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던지 상관없어요. 끝은 지옥이라니까요. 
우리가 교회 엘리베이터에서 늘 보는 영상에, 
기차에 사람들이 타고 있어요. 그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은 다 달라요. 
그런데 그 기차의 운명은, 이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 똑같아요. 우리는 모르지요. 지옥이 있다는 걸 정말 모르죠. 
우리가 진짜 중요한데도, 모르고 있는 게 많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해서 알게 되는 거예요. 
'아니 도대체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하셨지? 
아니 하나님이 왜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거야? 
아니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셨지?'  정말 이상하잖아요. 

그러고 십자가를 주목해 보니까 
죽고 난 다음에 심판이 있고, 지옥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 심판과 지옥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길은 
우리를 대신해서 그 지옥의 저주를 대신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라는 거죠. 
이것이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정말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난 다음에, 
모든 게 다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요19:30절에, 운명하시기 전에 그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른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소리 지르셨다'고 나옵니다. 큰 소리를 치셨다고요. 막15:37

어느 목사님이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셨다'는 게 궁금하셨어요.  *헬, 아피에미 메가 포네스
'무슨 소리를 치신 걸까?                             *'큰 목소리로 떠나 보내셨다'는 뜻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신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예수님이 마지막에 숨 거두실 때 비명을 지르셨다.. 이건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목사님이 원어를 쭉 찾아보니까      *컨코던스 보기
마지막에 '(소리를) 지르셨다 cried'고 하는 말이, 똑같은 표현이 
다른 본문에는 '떠나보내다, 빚을 갚다, 버려두다'는 말과 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숨 거두시기 전에 '마귀를 떠나보내셨구나, 죄의 빚을 청산하신거구나! 
그때 소리치신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자기가 이겼다고 좋아하는 마귀에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신 것이구나!' 

귀신을 쫓아내실 때,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고 기도할 때
그때 주님이 '(큰 소리를) 지르셨다' 그 단어를 쓰셨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던 제자가 있었는데 
사도요한 이에요. 마태와 마가는 바로 옆에서 직접 들은 증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요한은 직접 들었어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그때 요한이 말하기를, 예수님이 마지막에 외치신 소리가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뭔가를 이루셨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게 아니고, 우리 주님은 뭔가를 이루셨어요. 
십자가에서! 그 이루신 게 뭐냐면, 우리 죗값을 다 지불하시고
저와 여러분이 지옥에 가지 않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정말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옥의 분명히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주님이 그 저주를 다 십자가에서 담당하심으로 인해서 
저와 여러분이 지옥에 가는 그런 정말 비참한 저주에서 벗어나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불평과 원망이 대부분 다 없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이 엄청난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도 
만족이 안 되는 이유는... 

속죄함은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실생활에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지금 내 가정생활에, 내 직장생활에 별로 큰 힘이 안 돼요. 

지옥이 진짜 있다는 사실과 
그 지옥에서 내가 건짐을 받았다는 사실을 정말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별로 복은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고 믿어요. 

'예수 믿어도 난 별로 복 받은 건 없어!'  
진짜 엄청난 축복을 받았는데도, 그걸 깨닫지 못하니까 그런 거죠. 

▲미국의 대통령 중에 프랭클린 피어스 라는 분이 있습니다. *Franklin Pierce, 1804~1186
미국 대통령이 선서를 할 때 보통은 다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합니다. 
그게 미국 대통령 선서의 전통인데요. 

이 피어스 대통령은 성경 말고, 법전 위에다 손을 얹고 선서를 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근데 왜 그랬을까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다음에 가족 기차 여행을 하다가, 그만 탈선 사고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죽었어요. 그 내외가 그걸 보았어요. 

대통령 취임하기 얼마 전 입니다. 대통령 당선되고 난 다음에 있었던 일이에요. 
그리고 취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피어스 대통령의 아내는, 그 대통령 관저 2층에 있는 방에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임기 거의 대부분을 그렇게 지냈어요. 

피어스 대통령은 차마 성경위에 손을 얹고 선서할 수 없었던 거예요. 
왜? 하나님이 너무 섭섭하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는 법전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다고.. 그렇게 많은 분들이 추측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하나님에게 섭섭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왜 내게는 (복을) 안 주시지? 
하나님이 왜 내게는 다른 사람들이 가는 그런 편안한 삶을 허락지 않으실까? 
왜 성공을 주시지 않으실까? 
왜 나에겐 세상적인 풍요가 없을까,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예수를 믿어도 난 별로 복은 받은 게 없어!'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지옥이 있고, 
그 지옥에서 내가 검짐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였는데 
예수님때문에 내가 건짐을 받았다.. 지옥에 가지 않게 되었고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진짜 깨닫고 나면 
아무 것도 하나님이 내게 안 주셔도 돼요. 

'하나님, 이제 진짜 나에게 아무것도 안 주셔도 돼요!'
내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였는데, 건짐을 받아서 천국에 갈 수 있게 됐다고 하는 것,
이거 하나 외에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는 그냥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것을 기뻐하며 

심지어는 예수님이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고 나를 좇으라 
하늘에서 네 보화가 클 것이라'고 말씀하셔도, 조금도 마음에 갈등이 안 됩니다. 
그냥 아멘 이죠. 

'죄 짓지 말고 살아라!' 
'예수님, 어떻게 죄 안 짓고 살아요?' 이런 말이 안 나옵니다. 
대신에 아멘!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어떻게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으면, 이런 고민 안 생깁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진짜 눈이 떠져야 돼요. 
그 눈이 뜨이면, 정말 십자가는 우리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지옥이 있구나!' 죽고 난 다음에는 다 압니다. 
그런데 죽고 난 다음에 알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미리 가르치신 거예요. 
십자가를 통해서 내 인생 가운데,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신 겁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나 깨닫기는 해야 돼요. 
'지옥이 있구나! 그리고 내가 거기서 구원을 받았구나!'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임현수 목사님, 캐나다 교포이시지요. *2016년 설교
북한을 돕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일을 했던 분이라고 평가되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지금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사모님이, 임현수 목사님의 석방을 위해서 기도하는 많은 교인들과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중보기도자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 인터넷에 공개가 됐습니다. 

그 마지막 내용이 이렇습니다. 
'우리 한번 사는 인생, 주님 나라 위에 목숨 걸고 기도 하고 
목숨 걸고 전도하고, 목숨 걸고 사랑할 뿐입니다.' 

이 구절이 가슴을 쳐요. 우리가 한 번 사는 인생 인데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해도, 전도를 해도, 사랑을 해도 '목숨을 거는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런 눈이 뜨였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 눈이 어떻게 뜨이는 거지요? 

내가 지옥갈 수밖에 없는 자였는데,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러면 사람이 이렇게 바뀌어버리는 거에요.

이제는 정말 목숨 걸 일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 감사하죠.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져버렸어요. 


◑2. 십자가로,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지옥이 있고 
내가 그 지옥에서 건지를 받았다는 것 말고 
또 더 놀라운 충격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십자가 아니면,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들이에요.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내게 활짝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지도 안 믿는 사람에게는 
이건 뭐 정말 이해도 안 되는 일이죠. 

지옥이 있고, 나는 그 지옥에 갈 자였는데,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거죠. 
또 하나,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을 향하여 문이 막혀져 있었는데 
그 문이 활짝 열렸다는 거예요.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전에는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기도의 복'이라고 했어요. 
성소에 나아갈 담대함!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못됩니다. 
죄인은 누구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기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항상 우리에게는 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대신 빌어주는 제사장! 

가톨릭에서는 지금도 하나님 앞에 속죄의 기도를 올려드릴 때는, 항상 신부를 통해서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아니에요.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문이 활짝 열렸다!'는 거예요. 

이건 기도만 말씀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이제는 기도의 축복을 받았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기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나 우리의 삶이 항상 기도만 있습니까? 
우리는 24 시간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복을 받았다는 거죠. 

여러분,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누군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 아버지가 뭐 대통령인지, 그 아버지가 사장인지, 

그 아버지가 아주 까다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교수님인지, 
그 아버지가 성격이 아주 괴팍한 어떤 이웃집 아저씨인지 상관없어요. 
그 자녀에게 있어서 만큼은, 아버지는 달려가서 품에 안길 수 있는 그런 분이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그렇게 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 일이 일어난 거예요. 

▲어느 전도사님의 딸 이야기입니다. 
며칠 동안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에게, 그 딸을 맡겨야 될 일이 있었습니다. 

딸이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집에 가는 것을 좋아해요. 
그 집에 강아지도 있으니까. 

그래서 도시에서 살던 아이가 시골에서, 
또 기르는 강아지와 함께 그렇게 재미있게 지내고, 

할머니는 또 손녀가 오니까 좋아서 며칠을 같이 지냈는데 
이게 며칠 동안 지나고 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애들이 얼마나 말을 안 듣습니까. 
할머니가 처음에는 좋아서 받았다가 이제 정말 속 터지죠. 
말을 하나도 안 들으니까. 

그래서 할머니가 몇 번 아주 모질게 야단을 쳤대요. 
그런데 할머니가 참 이해가 안 되는 게, 그렇게 모질게 야단을 쳤는데 
그때는 시무룩하게 있더니, 또 얼마 안 가면 또 헤헤 거리고 할머니한테 달려드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가 물어봤대요. 
'너는 내가 그렇게 야단을 쳤는데, 어떻게 그렇게 또 금방 웃으면서 이렇게 달려드냐?' 

그때 그 아이가 하는 말이 
'할머니, 저 강아지도 말이야, 내가 때리고 혼내고 발로 걷어차고 그래도
계속 나한테 달려오잖아! 내가 할머니한테 강아지잖아..' 
할머니가 완전히 녹아져 버렸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야단도 못 치겠고.. 

여러분, 이 손녀 아이가 할머니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바로 담대함 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십자가를 통해서 받은 유익과 축복이 뭐냐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때때로 징계도 하시죠. 
하나님이 결코 만만하신 분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분은 아니세요. 

때때로 어떤 때는 하나님이 좀 무섭게도 느껴질 정도로, 하나님은 엄할 때도 있으세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세요. 
이렇게 믿어지는 역사가 다 십자가의 은혜에서 온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하나님 보여주신 거예요. 
'하나님을 향하여 문이 활짝 열렸다' 
우리에게는 자녀가 가지는 담대함이 생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제 정말 이것이 누려져야 하는 거죠. 
우리가 십자가를 목상해 보면, 상상도 안 되는 이 두 가지 영적인 진리가 깨달아집니다. 

-지옥이 있구나, 그리고 나는 거기서 구원받았구나 
-휘장이 찢어졌구나,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문이 활짝 내게 열려 있구나! 

근데 실제로 그것을, 내 삶 속에서 이제 누리고 살아야 하는 거거든요. 
-지옥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렇게 문이 활짝 열린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거거든요. 

근데 우리가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보혈이 뿌려지는 일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내 마음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히10:21~22절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러분, 정말 정말 놀라운 은혜가 있는 십자가입니다. 
'지옥에서 내가 건짐 받고, 하나님의 향하여 문이 활짝 열리는 이런 은혜가 십자가 있군요. 
그런데 왜 나는 그걸 누리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피가 뿌려지는 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옥에서 우리가 구원받았고 
하나님을 향하여는 문이 활짝 열려져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 은혜를 실제로 누리고 사는 건 아닙니다. 

그 엄청난 은혜가 있는데도, 전혀 지옥 같은 삶을 살고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는 아무런 친밀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그런 그리스도인들도 있어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 마음에 피 뿌림이 없기 때문이에요. 히10:21~22 

▲목요일마다. 우리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 모임을 모이는데 처음에 
이 <믿사남> 모임을 시작했을 때, 남자 성도들이 '믿음으로 한번 살아봅시다. 
그리고 한 주일에 한번 모여서, 서로 믿음으로 살았던 일을 간증하고, 서로 격려하고 
그리고 은혜를 나누고 살아봅시다' 그리고 모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듣고 반응을 보니까, 목요일이 오는 게 무섭다는 거죠. 

처음에는 믿음으로 사는 간증을 서로 나누고 사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기대감을 가졌는데 
그 다음에는 목요일이 오는 게 무섭다... 왜요? 가서 간증할 게 없어요. 

목요일에 가서 '내가 믿음으로 이렇게 살았습니다'라고 할만한 삶을 살지 못한 거죠. 
대신에 실패의 이야기밖에 없어요. 
'또 그렇게 못살았어요. 또 또 죄 짓고 살았어요. 또 세상에 푹 빠져서 살았어요!' 
그 이야기를 해야 되니까, 나중에는 목요일에 가기가 싫다고들 해요. 

그래서 한 분, 두 분씩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 모임에 빠지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들의 실제적인 현실이에요.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충만한 목회를 다 하고 싶지요. 
그런데 실제로 목회를 해보면, 성령충만한 목회를 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마음이 무너지는 그런 비참함을 경험합니다. 

어느 목사님은 이제는 기도도 안 된대요. 
교인들 보고는 '기도회 나와서 기도하라'고 하지만, 당신은 전혀 기도가 안 된대요. 
기도를 시작하면 계속 시계만 봐 진대요. 
'교인들은 왜 집에 안 가나? 그래야 내가 집에 갈 텐데..' 이렇게 생각만 들고.. 

▲어느 여자성도님은 정말 가정을 천국같이 만들고 싶었대요. 
그런데 늘 화가 나는 게 문제예요. 남편에게 화가 나고, 아이들에게 화가 나고! 

화를 내고나면, 집안 분위기가 또 완전히 싸늘해지고..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해서 새벽기도 나와서, 성령집회에 나와서, 
주일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 제가 이제는 화 안 내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한 날은 더 화를 낸 거예요. 
그런 이제 '화 안 내게 해달라'는 기도도 못하는 거예요. 

그분이 하는 이야기가 '화 안 내게 해달라고 그러면, 그날 더 화를 내니 
이제는 그냥 앞에 강단에 있는 십자가만 바라보고, (기도 안 하고) 그러다가 집으로 간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베푸신 십자가의 은혜는 얼마나 엄청난 은혜인데..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고 
-하나님의 보좌 문이 활짝 열린 이 엄청난 은혜를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았는데 
아니 실제로 우리 삶은 왜 이러지요? 

그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마음에 뿌려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십자가가, 내 마음에 세워져야 합니다. 

여러분 절대로 이렇게 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마귀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자도 넘어뜨리려고 역사한다고 성경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막13: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그러니까 예수를 믿었는데, 내 육신의 어떤 죄성, 또는 욕심, 또는 이기심.. 
마귀가 충동해서 우리를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게 만든다는 겁니다.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세 번씩이나 시험 했잖아요. 
그런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 계속 되어질 겁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를 믿어도, 우리의 삶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아무 대책 없이 그렇게 내버려두셨을까요? 그렇지가 않아요. 

아무리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우리는 지옥에서 건짐 받은 자요. 
-그리고 하나님 보좌의 문이 활짝 열려진 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성령님)이 반드시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약속하셨고, 조치를 다 취하셨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내 마음에 주님의 보혈이 뿌려지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주님의 보혈이 뿌려진다는 게 
바로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십자가가 
내 마음속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내 마음속에 세워진다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늘 예수님을 생각하는 거죠.  

예수님이 내 생각 속에 계세요. 
'내가 예수님을 생각한다'는 말과 똑같은 표현이죠. 
내 생각 속에 예수님이 계세요. 내 생각 속에 십자가가 있어요. 
내 마음속에 피가 뿌려진 거죠. 

그래서 24시간 주님을 바라보시라고 그렇게 권해 드리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내 마음속에 주님의 피가 뿌려지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예수님이 내 생명이시다. 
지금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신다.' 
여러분이 그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또 여러분이 그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생각하고 
여러분이 24시간 주님을 계속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의 피가 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7절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끝난 게 아닙니다. 
이제 그 예수님과 나와의 사귐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귐이 어디서 이루어지죠?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피가 뿌려지는' 거예요. 

내 마음, 거기서 예수님과의 사귐이 있어요. 
내가 예수님을 생각해요. 내가 십자가를 생각해요. 

내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음을 내가 분명히 고백해요. 
주님이 내 마음에 임하셨음을, 내가 분명히 믿어요. 
내 속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완전한 증거입니다. 
여러분 속에 주님의 피가 뿌려지고 
여러분의 마음의 십자가가 세워지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게 믿어져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화가 나 있는 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고백은 하지만 
실제로 자기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화가 나신 하나님, 진노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이것은 내가 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니까.. 이런 미혹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이건 완전히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세요. 십자가가 완전한 증거예요. 

여러분이 십자가를, 오늘 정말 십자가를 바라보았다면 
반드시 성령께서는,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지 느끼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게 믿어지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나는 지옥에서 건짐 받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문이 활짝 열렸고.. 그것만도 아니에요. 
-내 마음에 피뿌림을 받게 됩니다. 내 마음에 십자가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믿어지면, 그러면 지금 좀 어렵고 힘들고 답답한 일이 있어도 문제가 안 돼요. 

 

◑적용 / 십자가 사랑을 깨달으면, 삶이 달라집니다

 

어느 목사님이 아들이 있는데, 어느 날 이 아들이 
'아빠 엄마가 자기 아빠 엄마가 아닐 거라고' 하는 그런 의심에 사로잡혔어요.

그래서 계속 친엄마한테 데려다달라고.. 
그러니 목사님이 너무 난감한 거예요.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하지?' 

'넌 엄마 아빠가 직접 너를 낳았어!' 
그런데 이 아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제발 진짜 엄마를 좀 만나게 해달라는 거예요.

근데 그 사모님이 한 칼에 해결했어요. 
자기 아들에게 
'너 정말 우리가 너를 다른 데서 데려왔다면,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너 같은 놈을 데려왔겠냐?' 

그리고 그냥 해결됐어요. 그 아이가 완전히 이해가 됐어요. 
'맞구나, 나를 낳아주셨구나!' 

어느 목사님이 어릴 때, 엄마 아빠가 바깥에서 일을 하셔야 될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할머니한테 맡겨져서, 할머니에게서 자랐어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놀려요. 
'너 엄마 아빠가 진짜 엄마 아빠가 아니니까, 너를 이렇게 맡겨놓은거다'

처음에는 아이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점점 그게 믿어지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나를 진짜 낳은 게 아니니까, 이렇게 할머니한테 맡겨놓고 나가 계시는구나!' 

어느 날 돌복숭아를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따다가 먹는데 배탈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학교도 못 가고 며칠을 완전히 앓아누웠어요. 

근데 자기가 이렇게 배탈이 나서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가 달려왔는데 
대문에서 문을 그냥 벌컥 열고, 엄마가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아무개야!' 하고 들어오는데
눈물 범벅이 돼가지고 들어오는데 
거의 그냥 며칠 동안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 누워서 있는데 
그 들어오는 엄마를 누워서 쳐다봤어요. 

마음에 '진짜 우리 엄마구나!' 그냥 한 칼에 해결됐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회복되어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또 동일하게 마을 사람들, 짓궂은 삼촌들이 놀려요. 
'네 엄마는 진짜 엄마 아니야!' 

그 다음부터는 전혀 마음에 요동함이 없어요. 
'우리 엄마 진짜 엄마야! 내가 봤어! 
문 열고 들어올 때 진짜 엄마 아니면 그럴 수 없어!' 

여러분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요. 
'하나님 나 사랑하시는 거 맞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 안 하시면 그럴 수가 없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게 맞다면, 
그러면 지금 있는 내 형편, 처지.. 아무렴 어때? 
하나님께 무슨 뜻이 있겠지.. 무슨 계획이 있을 거야!'

▲링고라고 하는 어느 원주민 마을 청년이 
사리타 라는 원주민 자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리타는 못 생긴 자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잘생긴 자매도 아닌 평범한 자매인데 
하여튼 링코 형제가 너무 좋아서 청혼을 했습니다. 

그 마을에 내려오는 풍습에 의하면, 결혼을 하려면 여자 집에 혼수를 보내야 되요. 
소를 보내는데 보통은 2~3 마리를 보냅니다. 
조금 부잣집은 한 4마리 정도 보내죠.
그 혼수를 보면, 이 자매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자매인지를 말해주는 거죠. 

자 이제 혼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다 궁금해 해요. 
링고가 사리타에게 소 몇 마리를 보낼 것인가?

그런데 아니 소 8마리가 온 거예요. 소 여덟마리가! 
그 마을에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어요. 

그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날부터 사리타 자매가 얼굴이 놀라웁 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우아해지고, 말이 세련되어지고 
그래서 누가 그 다음부터 이 마을에 찾아오면 
외부 사람들이 볼 때 '저 여인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여인이 되었어요.

아주 평범했던 이 자매가, 어떻게 그렇게 바뀌었을까요?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어!' 이게 믿어지니까,
'특별한 존재야!' 이게 믿어지는 순간부터 
이 생각이 실제로 그 사람이 풍기는 모든 분위기를 달라지게 만드는 거죠. 

여러분 이게 우리 이야기잖아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이것이 십자가에서 나타난 거죠. 

우리가 이 사실을 진짜 안 믿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믿어지는 것은, 지식으로만 되는 게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휘장 가운데로 열어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활짝 열린 그 문을 진짜 믿고 
그리고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아요. 사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영성일기 칼럼을 쓰는데, 이따금 댓글에서 큰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 
거기에 이런 표현이 나와요. 

'목사님, 제가 목사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24시간 주님을 바라보고 영성일기를 써봤더니 
이제는 돼요! 
목사님이 이제는 제가 믿어져요!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그게, 이제 실제로 내게 경험이 돼요..' 

설교 들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설교들어서 해결되는 거 아니에요. 

머리로는 알겠지요. 문제는 내가 사랑에 빠져야 되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게, 내 정서에 이렇게 느껴져야 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이 진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이게 진짜 믿어 져야 되는데.. 
어떤 처지에 있어도, 아무리 내가 가난해도, 아무리 내가 힘들어도, 
아무리 내가 억울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이게 믿어지면, '아니 그까짓 거!' 이렇게 된다고요. 

하나님의 나를 사랑하시는 게 진짜 믿어지지 않으니까 
세상 사람이 뭐라 그러면 내가 확 뒤집어지고 
나보다도 좀 잘사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속상하고.. 그런 거죠. 

내 마음에 주님의 보혈이 뿌려지는 일, 
항상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내게 계속 기억되는 거죠. 

그 예수님을 내가 바라보는 것, 이것이 우리의 매순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금요일 밤) 성찬은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피가 뿌려지는 가장 놀라운 은혜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할 때, 떡과 포도즙을 먹어요. 그건 우리의 육신으로 느끼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시는 (성찬식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변화를 도무지 스스로 이렇게 체득하지 못하니까 
떡으로, 포도주로.. 주님이 우리에게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네 마음속에 있어!' 그 사실을 우리가 확인해 주는 거예요...

 

(유기성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