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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노래를 부르라 시편 21:1~13 2017.06.25.출처
시편 21편은 전쟁의 승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시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왕과 백성이 함께 불렀던 찬송으로 다윗의 시입니다.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은,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하나님 백성됨의 정체성을 지키는 전쟁입니다.
고대사회에서의 전쟁은 일종의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누구의 신이 진짜냐의 전쟁이었습니다.
이방 나라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진멸, 악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곧 열방을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단순히 국가의 안정과 번영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거룩한 전쟁을 치렀고
그 전쟁의 한가운데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전쟁 속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도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전쟁은 시작됩니다.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쉽게 살 수 있지만
우리는 신자가 되는 순간부터, 세상 속에서 편안하게 살 수 없게 됩니다.
불신자들 속에서 불신자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타협해 버린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려고 하면, 전쟁은 해야 합니다.
신자는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될 수 없습니다.
혹 성공을 한다 할지라도 성공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드러내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때때로 신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성공의 기회를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신자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로 가득한 문화들 안에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크게 보면 신자는 단순한 생존전쟁이 아닌, 영적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신자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단의 공격들과 싸워야 됩니다.
오늘날의 가장 큰 전쟁은 가치관의 전쟁입니다. 유물론적 가치관과 싸워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는 돈입니다. 오늘날의 돈은 돈 이상입니다.
돈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살려면
돈으로 만연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실제 삶으로 들어가면 유혹들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떡이냐 말씀이냐?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신 후, 사탄이 시험을 겁니다.
“이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돈이 아니라 말씀을 선택한다는 것은 전쟁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와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본문은 승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1~8절까지 전부 승리에 대한 노래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승리하게 합니까? 어떻게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까?
1절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에서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밀려오는 유혹 속에서 무슨 능력으로 이길 까요?
다윗은 그 힘의 근원,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고 고백합니다.
왕이라면 자신의 군사력, 아니면 세상적인 능력을 자랑할만한 합니다.
사업가라면 자신의 기업의 규모나 자본금을 자랑할 것입니다.
세상적인 힘을 가지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자랑할만한 것이 없다면
자랑할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 친구와의 관계까지 연결시키면서 자랑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힘이 없으면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힘이 없으면 떠밀려 다니게 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힘겨운 싸움을 치러야 합니다.
현실 안으로 들어가면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힘으로 살 것인가? 무엇을 의지하며 살 것인가?
전쟁 같은 현장에서 신자는 무엇으로 이 세상 속에서 승리를 할 것인가?
본문 1절의 말씀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이 우리에게 답을 줍니다.
왕이 누구입니까?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권력의 상징적인 인물,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힘을 가지면 힘을 의지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라는 자신의 힘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다윗은 자신이 가진 힘의 유한성을 알고 있습니다.
권력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어떤 권력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권세라도 금방 지나갑니다.
사울 왕은 경쟁자 다윗을 죽이고 자신의 왕위를 유지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되어 보겠다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합니다. 자기 힘으로 왕위를 지킬 수 없었고
자신의 힘으로 왕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힘의 유혹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우선 보기에는 대단해 보이고 든든해 보이지만
그렇게 믿을만한 것이 못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절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세상의 모든 힘의 특징은 흔들린다는 겁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제는 의지할만하고 견고하고 안정되어 보였지만, 세월이 흐르면 흔들립니다.
오늘날 세상의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뭘까요? 흔들림 때문입니다.
세상을 의지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요?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면 흔들 자가 없다는 겁니다. 왕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
하나님이 쥐고 있다는 겁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누가 겸손할 수가 있습니까? 힘의 출처를 분명히 알 때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산다고 여기는 순간 교만해 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힘으로 산다고 고백한다면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초가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십시오. 육체적 자랑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돈인가 하나님인가? 성공인가 하나님인가?
“하나님만이 나의 힘입니다”라는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는 고백은 대단한 고백입니다.
전쟁은 죽음이 눈앞에 오락가락하는 상황입니다.
자칫하면 적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인데
그런 위험한 순간에 주의 힘의 위력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위협하는 어떤 힘보다 더 강한 힘이
자신의 인생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닙니다. 단순한 지식도 아닙니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실제여야 합니다.
바울은 많은 위기와 시련을 넘나들면서도 흔들림 없는 삶을 삽니다.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수없는 핍박, 시련, 환란, 죽음의 위협, 굶주림, 투옥이 있었는데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게 만들었던 힘이 무엇입니까?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능력 주시는 자, 그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어려운 환경을
넉넉하게 이겨내고도 남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울의 넋두리가 아닙니다.
멋있는 말을 한 번 써 본 것도 아닙니다.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
내게 능력주시는 그 능력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이겨낼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겁니다.
힘의 근원을 아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 힘을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살지 못한다면 신앙은 말잔치에 불과합니다.
▲2절, 그 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비결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신실하게 들어주십니다.
2절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소원을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넉넉히 들어 주시는 풍성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절과 6절을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면류관이 아니고 순금관으로 승리의 관을 씌워 주셨다는 겁니다.
4절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단순히 전쟁에서 겨우 건져내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해주신 그 기도에 영원한 장수를 주셨다는 겁니다.
5절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6절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그냥 승리 정도가 아닌, 영광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겨우 위기를 넘기는 정도의 싸움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싸움을 약속하셨습니다.
순금 면류관으로 머리에 씌운다는 것은, 승리의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이 땅의 삶에 승리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선조들 가운데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들의 명단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일종의 믿음의 명예의 전당들입니다.
믿음으로 싸워서 이겼던 사람들의 이름들이 열거되는 이유가 뭘까요?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우리들이 걸어가면
믿음의 선조들의 대열에 우리도 설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이런 승리는 기도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전쟁 가운데서도 그는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최대의 화력은 기도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를 때, 모세가 산 위에서 아론과 훌과 함께
손을 들고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쟁은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고
기도의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입니다.
전세를 결정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신기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기도해보십시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전혀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인간적 예상과 예측을 벗어난 일들이 일어나면서
역전을 일으키는 변수가 일어나는 희한한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변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기도가 하나님의 비상개입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신앙의 상태를 가장 잘 알려주는 기준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위급한 순간이 온다고 모두가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자가 기도합니다.
기도로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증명하고 있습니까?
▲2절, “하나님은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셨다”라는 말이 :2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의 요구를 결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그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모든 전쟁에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승리를 거두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전쟁을 할까요? 말까요?” “올라갈까요? 말까요?”라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면 전쟁에 나갔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허락한 전쟁은 백발백중 승리를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뭘까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 전쟁은 이겼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기도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기도를 통하여 전세가 기울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승리를 거머쥐게 하시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외견상 세상의 사람들에 비해서 보잘 것 없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득세를 하고 있는 마귀는 얼마나 교묘하고 강합니까?
우리 자신도 모르게 겁에 질려 믿음으로 살기 보다는 계속 위축이 되고
믿음의 투지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밀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에서 살 때, 우리만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싸우는 시늉만하는 것이지 실제로 모든 싸움은 하나님이 대신 하시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 주셔야 이깁니다.
하나님은 우리 대신 싸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기로 결단하면
이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대신 치르셔서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13절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이 말씀을 풀어서 쓰면 이렇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당신이 싸우셔서
당신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소서”
전쟁에서 다윗 자신은 빠져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당신의 능력으로 당신이 싸우시
고 당신의 이름을 높여 주십시오.”
세상 속에서 너무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떨지 마시기 바랍니다. 별 일이 다 일어 날 겁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겁먹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명예가 달려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는 때가 있어서 답답함이 있지만,
우리보다 더 신경이 쓰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지켜내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이끄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서로 살려고 죽이고 죽고 그런 일들이 얼마나 벌어집니까?
살벌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 얼마나 처절합니까?
매일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싸움”을 벌이는 지옥 같은 삶이 우리의 삶에서 연출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자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기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가 살려고 다른 사람 죽이면 안 됩니다.
이기게 하실 것이면 내가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이 그냥 이기게 하실 겁니다.
내 힘으로 전쟁에서 이기려고 하면 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후6:9~10절 “9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 사도가 한 이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경험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이끄실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실 것이고
우리가 싸우는 싸움이 나 홀로의 싸움이 아니라 거룩한 전쟁으로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싸움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1절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6절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이 시는 승리로 인한 노래입니다. 전체적으로 밝고 기뻐하며 크게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승리에 대한 반응입니다.
신자가 누리는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우리는 기쁨의 근원이 어떤 상황이나 주변의 환경이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삶은 패잔병과 같은 삶과 거리가 멉니다. 한두 번 실패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신자의 삶은 이미 승리를 거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승리를 노래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4장 8~10절에서 바울은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신자는 승리를 노래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두우면 안됩니다. 하는 일이 좀 안 되도 어두운 얼굴로 다니면 안 됩니다.
현대인의 질병 중 가장 많은 정신 질환이 우울증입니다. 세상은 전반적으로는 어둡습니다.
겉으로는 밝아 보이고 괜찮아 보이지만 어둡습니다. 왜 우울증이 만연합니까?
진정한 기쁨을 줄 만한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의지할만한 것을 의지하지 못하면 결국 좌절과 절망에 빠집니다.
세상의 한가운데에는 진정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 삶의 밑자리 깊은 곳에는 슬픔이 깔려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깊은 슬픔과 절망과 좌절이 차 있습니다.
겉은 포장되어 괜찮아 보이지만 밑자리에는 슬픔과 절망이 있습니다.
진정한 소망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반대입니다.
밑자리에 아주 깊고 굵게 소망과 기쁨과 구원이 깔려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걷어낼 수 없습니다. 위에는 환란과 풍파가 있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기쁨과 소망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원불변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로 인하여 일희일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황은 늘 오락가락 합니다.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돈이 좀 없어도 신자답게 살고 격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과 싸우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됨의 기품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혹 죽을 것 같은 일이나 망하는 일이 일어나도 멋지게 망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멋지게 망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는 영원히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만 살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21절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선한 모습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악한 세상에서 악으로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마음에 들 때도 있고 안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마귀도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영원한 승리로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치는 말
세상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저 나 하나 살기 위한 생존전쟁을 치르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거룩한 전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다움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빵보다 진리를 선택해 보십시오.
일시적인 성공보다 하나님의 자녀됨의 정체성을 붙들고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싸우면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당신의 이름을 높이실 것입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반드시 승리를 허락하시고
금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어이 승리의 길로 이끄실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평생에 승리를 주시는 왕 되신 하나님. 시편을 보면 다윗이 자신이 왕이 아니고
일평생 그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왕위는 끝이 날 것이지만 다윗의 대를 통하여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의 영원한 나라를 노래합니다. 그 왕국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서 아무리 망가지거나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승리하는 백성이 될 수밖에 없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진리를 따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올곧게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