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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5장 14~40 달란트 비유

LNCK 2022. 5. 17. 17:35

◈달란트 비유       마25:14~40       2013.03.21. 출처 

 

마24:14~15 '또한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고 여행을 떠나려는 것과 같다.
그는 종들의 능력에 따라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고는 여행을 떠났다.'  (우리말 성경)

하나님은 하늘나라를 사람들에게 맡기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디자인하시지만, 사람들이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뜻하신 나라이지만, 사람들이 일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시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도 
그리고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 싸인인 것이죠. 

고린도전서3:9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사실 우리를 불러주신 것만 해도 감격인데, 더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기름 부어주신다 라는 것입니다.   

사명과 더불어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에게, 그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 또 직장생활을 할 때, 교회사역을 할 때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청지기 의식보다 조금 더 광범위한 의식이, 더 근본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사명을 주신 그분이, 감당할 능력까지 함께 주신다는 거예요.

'이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이다' 라는 생각뿐만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와, 은사를 함께 주신다.. 라는 것이죠. 


◑1.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능력과 재능을 맡겨 주셨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종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무엇을 맡기냐면 '재산을 맡겼다'라고 되어 있어요. 

용돈 수준의 푼돈을 준 게 아니었습니다. 
살림살이에 필요한 최저 생활비를 맡겨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끔 군대에서나, 아니면 대학생 때 기숙사 생활하면서 서로 이런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는데요. 
선임이나 선배가 후배에게 2천원 쥐어주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콜라 2병, 컵라면 3개, 과자봉지 4개, 아이스크림 4개, 그리고 5백원 남겨 와!' 

방금 제가 농담을 이야기했지만 

하나님이 어떤 일을 내게 맡기실 때,   
마치 하나님이 능력은 주시지 않고, (위 농담처럼) 일만 잔뜩 맡기시는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금(능력)조차 제공하지 않으시는 경우는 없다.. 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와 은사의 마중물을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심과 기름부으심,
즉 콜링 엔 어노인팅은 하나의 패키지로 가게 돼 있어요. calling & anointing
사명과 능력은 패키지로 같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 쪽만 주시지 않아요

사명을 주셨을 때는, 감당할 능력도 함께 주시고 
어떤 일에 능력과 은사가 드러날 때는, 그것이 곧 사명인 것이에요. 

▲근데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명은 주셨는데 특별히 내가 하나님께 받은 능력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들의 말도 일면 맞는 것 같아요. 왜냐면 콜링 이전이나 이후나 사람이 크게 변한 것이 없잖아요.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언제 능력을 주셨는가, 언제 기름 부으심을 주셨는가? 
이미 주셨어요. 이 설교 메시지의 핵심은 "이미 주셨어요!"

내가 태어날 때, 내 심장 한 가운데, 내 DNA 가운데 
하나님이 담아두신 놀라운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주신 천부적인 기질, 천부적인 재능,
천부적인 성품, 천부적인 은사... 그것이 호도껍질처럼 단단히 감싸져 있는데

이제 그 겉껍질을 터트리고, 그 성품과 은사가 터져 나와야 하는 것이죠. 

'타고난 선천적인' 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제가 '천부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강조이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종들의 능력에 따라 (5, 2, 1달란트) 차등을 두었다' 
이게 마음이 어렵게 (부담이 생기게) 해석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너무나 은혜를 받았어요. 

무슨 얘기냐면, 인생은 '달란트를 내가 얼마나 받았느냐?' 라는 것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달란트를 얼마를 주시느냐'를 무엇으로 판단했냐면 
이미 그에게 주셨던, 선천적으로 천부적으로 하나님이 주셨던 그 재능, 그 능력,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으실 때 담아두셨던 능력의 베이스.. 그것에 맞춰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5, 2, 1달란트는 천부적으로 받았어요)

제가 이 원어를 찾아보니까, 놀랍게도 '종들의 능력에 따라'  :15 (우리말)

여기서 '능력'이 두나미스 입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power을 받고' 할 때의 능력power과 같은 말이었어요.
 
그 다이너마이트같은 놀라운 폭발적인 힘 (두나미스), 그 힘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는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개역에 '각각 그 재능대로' 라고 했는데, 여기서 '재능'이 헬라어로 '두나미스 power' 입니다.
 그런데 헬라어 '두나미스'는, 능력 power 외에도 재능 ability 이란 뜻도 있어요.) 

그러므로 청년 여러분,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재능, 능력(두나미스)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재능, 능력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에요.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포텐이 터졌다' 뭐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포텐션의 줄임말입니다. '(숨겨 있던) 잠재력이 터졌다'는 말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이미 담아두신 재능이 드러나야 돼요. 포텐이 터져야 돼요!
재능이 나타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재능과 더불어서, 나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드러나게 돼 있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당신을(나를) 하나님께서 축복의 통로로, 세상 가운데 드러나게 하시는 거에요.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어떻게 권면을 했냐면 
'네 은사가 불일 듯 일어나게 하라' 딤후1:6

그 탤런트(재능) 자체도 되지만, 그보다 그것 위에 하나님이 부어주신 기름부으심이
불일듯 일어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은사가 불일듯 일어나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돼요. 
여러분, 각자의 은사를 가볍게 여기는 게 뭘까요? 

여러분 자기의 성품은, 
'다른 사람들의 성격은 참 좋은 것 같은데, 내 성격은 마음에 안 들어!' 

과거에 제가 늘 그랬거든요. 

'트리플(세 배로) 우울한 인생, 소심한 A형, 왜 이렇게 나는 생각이 많을까?' 
늘 생각하고 생각만 하다보니, 늘 제자리 걸음이었던 거죠.

저는 제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제 성품, 제 성격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피곤한 성격이에요.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만드셨는가?' 저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괴로웠어요. 

근데 너무나 감사한 것은, 제가 굉장히 이렇게 좀 겉으로는 소프트 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주시면,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그렇게 일을 시키시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성품을, 
다른 사람에게 없는 기질을 주셨던 거죠.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대중적이지는 않다는 거죠.)

'왜 나만 이상할까?'가 아니라 
나를 독특하게 창조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모양으로, 그 기질로, 그 성품으로 
그 재능, 그 은사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기업의 2세입니다. 
여러분 그런거 있잖아요.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세상을 봐도 그렇고 
대기업 2세를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 그 기업의 2세들인줄로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창업주이시고, 예수님이 CEO이시고 
우리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놀라운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온 세상 가운데 펼쳐나갈 하나님의 자녀들인 줄로 믿습니다. 

창의적으로 사업하시고요, 진취적으로 하세요. 
단 한 순간이라도 대충 하지 마시고요, 끈질기게 하세요. 최선을 다하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단순한 심부름꾼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로 나누고 싶은 것은 "칭찬하고 상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25:16~19절 내용을 정리하면, 
5달란트받은 종은 곧장 가서 그 돈으로 사업을 해서 2백프로 수익을 남겼어요. 
2달란트받은 사람도 동일하게 해서 2백퍼센트의 수익을 남겼어요. 
그런데 1달란트받은 사람은 땅에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주인이 찾아와 결산을 하자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은 결산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 입니다. 
학생이 공부한 것에 대해서 결산하는 날이 오게 돼 있어요. 시험 날이죠. 
기업인이 사업한 것에 대해서 재무 결산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돼 있어요. 

인간관계에도 결산할 때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어요.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지요!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것에도, 결산의 날이 오게 되어 있어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반드시 결산할 때가 옵니다. 본문처럼요!

그런데 사람들이 달란트 비유를 보면서 마음이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면 
'결산하는 날이 있다'는 것 자체도 마음이 어려운데 

'사실 하나님이 뭐 대단한 걸 주시고나서, 우리에게 결산을 하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런 마음들이 다 사람들에게 있다는 거에요. 
즉 자기가 받은 것이 없는데, 무슨 결산을 해야 되느냐? .. 하고 생각하는 거죠.

혹은 '내게 한 달란트 주시고, 나에게 뭘 결산하라고 하는 것이냐?' 라는 심정으로 
이 본문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결산의 날에 서게 될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나는 다섯 달란트를 받은 것도 아니고, 적어도 두 달란트를 나에게 주신 것도 아니지 않느냐? 
나는 딱 한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다...'  

즉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고, 나는 원래부터 머리가 좋지 않았고, 
나는 원래부터 재능이 없었고, 나는 원래부터 시골에서 자랐고 
나는 원래부터 허약체질이었고, 나는 원래부터 마음이 소심했고 
나는 원래부터 말주변이 없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 
나는 한 달란트 받았는데, 무슨 결산을 하자는 것이냐? ..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포인트에요. 
'누구는 많이 받았고, 누구는 적게 받았기 때문에.. 결과에 차이가 온 것이다..' 라고 보는 관점이 
가장 잘못된 관점이에요

받은 돈의 차이가, 인생에 차이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런 차이가 있어도, 더 결정적인 것은)
받은 사람의 (믿음의) 차이가.. 그 결과에 차이를 가져온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한 달란트받은 사람이 오히려 사업을 잘 했을 수도 있어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오히려 '나는 그냥 여유 있게 인조이 하고, 이 돈으로 그냥 놀고 쉬어도 좋겠다'..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제가 성경을 보니까, 우리의 인생은 달란트 비유와 정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놀랍게도요! 

▲요즘 우리가 창세기를 큐티하고 있는데, 에서와 야곱이 등장하잖아요. 
에서는 건장한 남자였어요. 당시의 수렵 채집 활동을 중심으로 하던 사회에서
에서같은 남자가 진정한 상남자에요. 
제대로 사람구실을 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모든 능력을 갖고 있었던 에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그 인생이 망가졌고요. 

덜떨어진 야곱은, 집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집순이 같았던 야곱,
부엌도우미 외에, 당시에 남자가 뭔가를 해야 되는 역할을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었던 야곱은 
온갖 잡일을 하고 밑바닥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 세움을 받았어요. 

돈 많고 화려한 소돔에 살았던 롯은 망했고, 
아무것도 없는 빈 들에서 일만 꾸역꾸역 하던 아브라함은 복을 받았어요. 

성경에 수많은 대표적인 케이스들은 보면, 이 달란트 비유와 정반대로 돌아갔어요. 
그러니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위의 야곱처럼, 얼마든지 사업해서 믿음의 유산을 남길 수 있었죠.
오히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인 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놀고 먹을 수 있었어요.
 
사울왕은 모든 것을 가진 완성한 리더십이었지만, 그 인생이 망했고 (5달란트 받고도 망함)
완전히 밑바닥 인생, 가족에게도 버림받았던 다윗은
그 인생이 높이 들림을 받았어요. (1달란트 받고도, 얼마든지 많이 남길 수 있었어요)

▲이 비유의 세 번째 사람은, 즉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받았을지라도 그는 땅에 묻어 두었을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기 때문에 묻어둔 게 아니에요. 
그의 인생에 태도가, 그의 믿음이, 그 돈을 땅에 묻게 만든 것이에요. 

이 비유의 첫번째 사람은, 즉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혹시 한 달란트를 받았을지라도, 그는 나가서 사업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의 태도이자, 그의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공평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공평하게 사람들에게 배분을 해줘야 되지 않습니까?'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정직하게 생각해 볼 때 
획일적인 배분이 공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독특성에 맞게, 각자의 능력에 맞게, 각자가 소화할 수 있는 자기용량이 있는 거예요. 
그것에 맞게 배분해주는 것이 공평한 것이죠. 

▲제가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저희 아들들이 생각이 났어요. 
특별히 저희 첫째는 그래도 룰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둘째는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저희 둘째가 자기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면 '공평하게 달라'는 거예요. 
아빠가 나보다 몸무게가 3배 나가지만, 자기는 똑같이 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 
형과도 똑같이 먹을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이 있어요. 
그러면 공평하게 분배해 달라는 거에요. 자기는 아직 어린아이 라는 거에요. 
이렇게 힘든 음식을 자기는 다 먹을 수 없다는 거예요. 

제가 '그래도 먹어야 된다'라고 말하면, 둘째는 갑자기 배가 아프대요. 
굉장히 심리적인 것이죠. 
그래서 그때는 자기를 똑같은 한 사람으로 대우해 달라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과연 정직합니까? 

▲저는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한 달란트가 얼마나 놀라운 가치인지.. 
예전에도 놀랐지만, 이번에 연구하면서 또 놀랐어요. 

한 달란트는 '구약에서는' 금의 무게입니다. 34킬로그램이나 됩니다. 여러분 감이 없으시죠? 
신약에서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1데나리온이라고 하는데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 주석에 그렇게 써있는데 
요즘 나온 주석은 1달란트를 1만 데나리온으로 계산을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궁금해서 현 시세로 계산해 봤어요. 
작년 건설업 1일 임금이 13만2천원이었더라고요. 
그럼 1달란트는, 노동자 품삯으로 봐도 8~13억 정도 됩니다. 굉장한 가치죠.

금 34킬로를 현 시세로 계산하면, 1킬로 골드바가 무려 6천 만원입니다. 
그럼 한 달란트 34킬로는, 20억 4천 만원이에요. 
한 달란트만 받은 사람도, 상당한 액수라는 것이죠. 원래는 재능이지만, 돈에 비유하자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남의 것을 부러워할 때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이 터져 나와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 그런 놀라운 능력을 심어 두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을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대답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이제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

주인에게 칭찬을 받은 두 사람은 (5, 2달란트) 똑같은 칭찬을 받았어요. 
어떤 칭찬을 받았냐면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Well done, thou good and faithful servant!  마25:21

'너의 성품이 좋고, 너의 태도가 좋다!' 이렇게 칭찬을 했어요. 
'잘했다'는 .. 결과에 대한 칭찬이고, 
'착하다'는 .. 성품에 대한 칭찬이고, 
'신실하다'는 .. 인생의 태도에 대한 칭찬이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착하고 충성된 것인가요? 
하나님의 마음에 반응하는 것이 착한 것이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순종하는 것이 신실한 것이에요. 

그들이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주인이 그들을 신뢰해서 맡겨준 그 달란트를 아름답게 선용하여서 
주인의 기쁨이 되었다.. 라는 것이죠. 
이 부분은 우리가 잘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가 놀란 부분이 있어요. 그건 뭐냐면 
'작은 일에 네가 충성했으니 내가 너에게 상급을 주겠다' 
그러면 상급이 무엇이었나요? 

포상휴가? 제주도나 유럽여행권? 
아니었어요.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 였어요. 

좀 황당한 보상아닌가요?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이제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 

열심히 일해 본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압니다. 
일을 열심히 했어요. 좀 쉬게해 줄줄 알았더니, 더 큰 프로젝트를 맡겨요. 
그 프로젝트를 열심히 일했어요. 그랬더니 아주 더 큰 프로젝트를 맡기는 거예요.

일 시키는 사람만 계속 시킨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주인이 당신에게 그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무한한 신뢰의 표현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셨다는 거예요. 
'바쁜 사람에게 일 하나 더 준다'는 말과 똑같은 것이죠. 

▲그리고는 '와서 내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일을 많이 맡았는데 기쁘다는 거예요. 

이 기쁨은 노는 기쁨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나서 좀 쉬는 기쁨이 아니라 
돈(인센티브)을 좀 얻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나를 동역자로 인정해줬다는 기쁨이에요. 

'주님이 나를 신뢰하시는구나, 나를 신뢰하시는구나!' 

제가 요즘 묵상하는 것이 '일하는 기쁨'입니다. 
제가 일 중독이라면서 그런 것이 아니고요. 

제가 제 인생 사십여년을 이렇게 돌이켜 보면서, 늘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제가 '본 시리즈'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속도가 빠르고, 미션을 빨리 빨리 수행하는 영화를 상당히 좋아해요. 

제가 어떤 일을 맡겨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빨리 일을 해치우고 싶은 거예요. 
빨리 일을 해치우고나서, 쉬고 싶은 거예요. 

학생이면, 이 지긋지긋한 공부를 빨리 해치우고 쉬고 싶은 거예요. 
직장인이면, 이 수북이 쌓여 있는 일을 빨리 해치우고 놀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해 치고 나면, 일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그동안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과도한 경쟁, 과도한 압박사회 속에 살면서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이런 마음의 태도로 살고 있더라고요. '빨리 일을 해치우고 쉬자!'

그런데 하나님이 '삐~ (경고 부저) 그게 문제다' 이렇게 지적을 하시는 거에요. 
제가 사역을 하면서, 죄송합니다만 솔직한 얘기지만 
때때로 설교가 너무 많으면 설교도 해치우고, 사역도 해치우고... 

정신없이 그러다 보니까 '빨리 끝내고 그냥 쉬고 싶고' 
일을 마치면, 그 일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고 ... 그러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저의 마음을 보고 
'너의 그 마음은 건강하지 않다'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 너의 삶은 중독에 빠지기 쉽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왜 현대인들이 중독에 쉽게 빠지는가요?
6일 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것도 모자라서 
5일로 일하는 날을 줄이고 이틀을 쉬야만 된다고 이야기하고 

그러나 이틀 쉬는 것조차도 수많은 잘못된 쾌락과 향락에 빠지는 
이 현대인들의 중독 현상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요?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에, 
문화가 굉장히 취향이 다양해졌기 때문인가요?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5일 동안의 일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제가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열심히 묵상해 보니까 
하나님은 천지창조 하실 때 귀찮아서 해치우지 않으셨더라고요. 

하나님은 천지창조 하실 때 하루하루 만드신 그것을 보시면서 '참 좋다' 감상하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더라고요. 

일이 끝나고 나서, '회사 사무실은 쳐다도 보기 싫다. 생각조차 하기 싫다.'
학생은 '이 지긋지긋한 공부, 이 교과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 가 아니라 

하나님은 그 일한 것을 바라보며, 감상하시며, 기뻐하셨어요. 
그 육일이 다 끝나고 나서 칠 일째에 
그 만드신 모든 것에 복을 더 하여 주시고, 함께 교제하셨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이 일하신 창조세계와 사람들을 향해서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지긋지긋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신 적이 없다는 거예요. 

문제는,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칠 일째의 쉼은, 누림이었고 기쁨이었어요. 

과격한 엔터테인먼트나, 자극적인 쾌락이나, 음식이나 
이런 것이 있어야만 몸과 마음의 허전함이 충족되는.. 그런 삶이 아니시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5~6일 동안에 우리의 일이 현장이 불행하기 때문이에요.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돈 벌기 위해서 일하고, 학점받기 위해서 공부하고 
체면 유지하기 위해서 사니까.. 

6일이 삶이, 우리가 일하는 현장이 행복하지 않으니까 
쉬는 시간도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죠. 

▲청년 여러분, 윤택한 삶이라는 것은 
돈이 많은 삶도 아니고, 쾌락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삶도 아닙니다. 

정말 윤택한 삶이란, 내가 일하는 것 그 일 자체가 행복한 삶이에요. 
내가 하는 일이 행복한 삶, 그게 윤택한 삶이더라고요.  

오늘 제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 평생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게 그럴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내가 파트타임이든 풀타임이든, 안식년을 가든 
아니면 내가 은퇴해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가르치고 
거짓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 한가운데 진리가 무엇인지를 선포하고 싶습니다.' 

이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에요. 
이거는 제가 무슨 포지션에 있던, 어떤 직책을 갖든지
일을 하든 안 하든, 제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이에요.

어서 빨리 노후준비 마치고, 언젠가는 쉬고 싶은 것이 아니라 
평생 '하고 싶은 일'(사명)을 하면서, 당신은 살고 있는가요?

▲이런 내용을 묵상하는데 하목사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모두가 주변에서 목사님 건강이 안 좋으시니까, 이제 쉬셔야 된다고... 
좀 쉬면서 가셔야 된다고... 
하 목사님은 마지막까지 생명을 불태워가면서 말씀을 증거하고 영혼들을 구원하셨어요.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5일 동안, 6일 동안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6일째, 7일째의 삶이 중독적인 쉼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인생이 악순환되고 있는 거죠.   

아니면 여러분 가운데 '정말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쉬는 때 그것을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써주시는 것이 너무나 은혜이고...' 
그러한 고백이 우리 삶가운데 있는가요?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찬송가 작가였던 존 모리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굉장히 열심히 사역을 했던 것 같아요. 
이웃의 다른 교회 목사님이 찾아와서 '당신은 너무 무리하고 있다.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좀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해야 되겠다.' 라고 권면을 했어요. 

그때 모리슨이 뭐라고 대답을 했냐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게으른 목회자를 먼저 데리고 가신답니다.' 

6개월이 지났어요. 이웃교회의 쓴소리를 했던 목사님이 병상에 누웠어요.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모리슨이 들었어요. 그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목사님은 병상에 누워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당신이 일전에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모리슨은 '그 말은 없었던 걸로 하죠.' 

근데 병상에 누워 있는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요. 제가 그 말을 오늘 꼭 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일을 해야 합니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해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과연 하나님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요?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 하나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정말 내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하고 싶은 일인가요? 


◑3. 세 번째, 실패를 두려워 말고, 심판을 두려워하세요  

34~25절에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1달란트 받은 종이 와서 말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굳은 분이라 (까다로운 분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도 곡식을 모으시는 것을 압니다.
25. 그래서 저는 두려운 나머지 나가서 주인님의 돈을 땅에 감춰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주인님의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고서, 주인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마치 사장이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고, 사원복지는 또 엉터리로 하면서 
결산만 요구하고, 생산성만 높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죠. 
그런 악덕 기업주로 이 주인을 몰아갔어요. 

'이 사람 좀 이상한 사람 아닌가?' 
여러분 한 달란트가 얼마나 놀라운 가치인지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상한 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이 뭘 해주었느냐? 
기도 응답도 잘 해주지 않고, 은혜도 잘 베풀어주지 않고 
상황을 개선시켜 주지 않고, 내 능력은 쥐꼬리만큼 주셔 놓고는
사명만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하라고 계속 다그치지 않느냐?'

이렇게 하나님은 엄한 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이 뜻하시면, 하나님의 뜻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예정론에 대한 비판을 하는 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하나님의 예정론이 맞다면, 선교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들은 다 구원받게 되어있지 않느냐?'
그러니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런 식으로 변명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다 예정이라고!

하나님은 성실하게 일하시는 분이세요. 
천지를 창조하신 이래로,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역사를 완성하실 하나님, 
그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시는 그날까지 
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줄로 믿습니다. 

주인이 뭐라고 평가를 하냐면 '악하고 게으른 종아!' :26
27절에는 '차라리 그 돈을 대부업자에게 맡겨서 이자라도 받을 걸..'

물론 지금 주님이, 대부업, 이자 사업을 권장하시는 거는 아니에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자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처럼 청년의 때를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요?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갖고 있는 문제점 세 가지를 극복해야 합니다. 

1) 첫번째는 상대적인 빈곤감을 극복하세요. 
상대적으로 저 사람하고 비교해 볼 때 
나는 성품이, 나는 기질이, 나는 재능이, 나는 은사가, 나는 외모가.. 
이렇게 늘 우리는 상대평가 하는 겁니다.

시작조차 해보지도 않고요.. 
당신에게 주신 한 달란트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상대적인 빈곤감을 극복하십시오! 
절대적인 사명감을 갖고 사십시오! 

어차피 이 레이스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게 아니고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콜링, 사명의 부르심의 레이스는 
누가 먼저 들어왔느냐, 늦게 들어왔느냐? ..
이것으로 하나님이 상주시고/ 안주시는 게 아니라 
완주한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상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대일 레이스를 하는 거예요. 

2) 두 번째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하나님, 내게 부여주신 그 능력이 불일듯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저를 기름 부어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해야죠. 

3) 세번째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서십시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심판이 두려운 것입니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결산의 그날이 두려운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결과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네가 노력해봤냐는 거예요. 

시도해봤냐는 거예요.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가 보았느냐 하는 거예요. 
사명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악하고 게으른 삶이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정말 악한가요? 주인의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요. 
주인의 돈을 무슨 지하경제에 악용한 것도 아니잖아요. 오남용한 것도 아니잖아요. 

원금을 그대로 돌려줬잖아요. 그런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거예요. 

제가 묵상하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건 무엇이냐면 
청년으로 이 시대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재능을 주셨고, 사명에 대한 부르심이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리부터 두려워서 손을 놓고 있는 삶.. 
그 삶 자체가 악하고 게으른 삶이라는 거죠. 

'하나님,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지금 (사명 감당 못하고) 두려움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성품상 여유가 있거나, 아니면 시간이 나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렵기 때문에.. 두렵기 때문에 게을러진 사람들이 많죠. 

사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 고백을 합니다. 
'내가 두려운 나머지, 두렵기 때문에 돈을 땅에 묻었습니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25 

▲우리 청년들의 삶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너무나 비슷해요. 
겉으로는 쿨한 척 하고, 여유 있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미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을 것 같거든요. 너무 너무 두렵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면 창피당하고, 실패하면 수치스럽기 때문에 
'아예 안 하고 말지.. ' 지레짐작으로 포기하고 사는 거예요. 

아니요. 여러분 나가서 땀을 흘리세요. 
무엇이 되었던, 무엇이 되었던 나가서 땀을 흘리세요. 

데스크잡을 하고, 페이퍼웍을 해야만 여러분의 인생이 잘 나가는 거 아니에요. 
공장에서 일하던, 편의점에서 일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나가서 땀을 흘리세요.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인생의 소중함, 그것을 깨닫고 나면 
한 걸음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입니다. 

▲19세기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D L 무디는 초등학교 중퇴였어요. 
그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나중에 자기 클라스만.. 
처음에는 한 클라스 에서 시작했는데 나중에 1천명이 됐어요. 

그런데 그 중간에 한 집사님이 벌떡 일어나서, 사람들이 다 있는데 
'무디, 자네는 배운 게 없어서 문법이 다 틀리는구만. 
자네는 조용히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 최고의 예배가 될 것 같네요.' 독설이죠. 

근데 무디가 이야기 합니다. '네,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자주 실수하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것(재능)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신의 탁월한 문법 실력, 당신의 탁월한 언변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과연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무엇이 두려운가요?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요? 
불순종이 두려운 것이지,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죄를 두려워 해야지, 하나님 앞에 내가 순종하며 살아갈 때 
겪게 되는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4세기 초대교의 최고의 설교가로 칭해졌던 크리소스톰 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로마 제국의 왕비 유독키아가 '당신 더 이상 복음사역을 하면, 이 제국에서 추방시키겠다.' 
사람을 보내서 협박을 했어요. 

그때 크리소스톰이 그 보내진 사신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가서 그녀에게 전해라. 나는 죄 이외에는 두려운 것이 없다고!' 

청년 여러분, 호흡을 길게 갖고 사십시오. 
오늘날 세상이 너무나 거짓된 말들을 하고 있어요. 

10대, 20대 때 미친듯이 공부하고 
30대 때 죽어라 일하고 
40대 때 돈 많이 벌어서 
나머지 반평생을 놀고 먹고 사는 것... 이것이 인생의 비전이라고 세상이 얘기하고 있어요. 

그거는 아니라는 거에요. 성경에서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어요. 
세상이 이야기한 이 성공의 패러다임에 내가 맞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 나는 10~20대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했는데 
지금 30~40대에 그렇게 돈을 많이 못 모았는데 
그러면 내 인생은 이미 게임에서 졌구나! 루저구나!' 
이렇게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TV에서, 미디어에서 잘 나가는 거 보면서
부러워하는 인생만을 살고 있어요. 

당신의 인생을 사십시오! 
청년들이여, 당신의 인생을 사십시오! 
땅에 묻어두었던 달란트를, 재능을 꺼내세요! 

제가 제 어렸을 때 딱지치기 이야기를 했지만 제가 농담이 아니고요. 

여러분의 작은 기질, 성품, 은사..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독특한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은 들어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그것을 주신 데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당신을 이 땅에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왜 일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왜 공부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그냥 돈 벌고, 좀 인정받고, 그럼 다시는 그 일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고 
5~6일 동안에 참 자체가 불행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도피처가 되었고, 일자리는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되었고..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 삶의 본질이 회복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회복될지어다. 다시 살아날 지어다. 부르심을 따라 살지어다!' 
주여! 한번 외치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