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하게 하는 복음 삼상19:18, 시57:1~9, 욜2:28, 눅5:4 2021.04.01.출처
영남신학대학교 춘계신앙사경회 (5)
◑한국 교회의 다음 세대가 허물어 지고 있다는 경각심
여러분 반갑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육군사관학교에 제가 초청을 받아 가서 특강을 했는데, 육군사관학교에 군목이 계시지요.
그 군목 목사님이, 육사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크리스천 비율을 일러 주기를 25년 전에는 신입생도들 중에 23% 가량이 크리스천이었다고 합니다.
해마다 1% 정도씩 줄어들더니, 지난해 2020 년에는 3%로 낮아졌다고 합니다. 그거는 상당히 상징적인 숫자지요.
육사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 청소년들사이에서 25년 전에는 23%이던 것이, 지금은 3%로 교회에 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위기, 위기를 얘기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위기가 아니라 그런 통계가 교회의 위기의 직접적 증거라 하겠습니다.
나는 은퇴한 지 10년이 지나서 지금 80세입니다만 내가 은퇴하기 전에 속해 있던 노회가 평양노회 였습니다. 평양노회 교회가 150교회인데, 얼마 전에 듣고 놀라기를 150교회 중에 3 분의 1 정도는 유년주일학교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농촌에 있는 교회들이 많이 없어졌겠지요. 그런데 도시에 있는 교회들도, 작은 개척교회들은 유년주일학교가 없어졌다 해서 노회 소속 150교회 중에 3 분의 1 이 유년주일학교가 없어지면 교회의 미래가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지요.
우리 통합 측 교단 문제만이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지금은 신학도들이 분발해야 될 때입니다.
▲저는 모교회가 경북 청송 복동교회라는 아주 두메산골입니다. 우리 고향 식 표현으로는 '쑹악한' 산골짜기입니다. *아주, 흉악한 골짝 중에 골짜기에 있는 복동교회인데,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가 머슴 살다가 선교사한테 전도받고 예수 믿어서 내가 삼대째 교인입니다. 내 아들이 4대, 손주가 셋이니까 5대 째로 내려가지요.
저는 한국교회를 참 사랑합니다. 할아버지가 머슴 살다가 예수 믿어서, 집안이 확 펴진 집안인데 어려서부터 어머니 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녀서, 평생을 통합측 교회에서 나서 자랐고, 통합측 신학교 나오고 통합측 목회자로서 지금 51년째 섬기고 있지요.
나는 지금 80세 인데도 현재 목회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은퇴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한국교회, 우리 통합 측에 자꾸 교회가 기울어지는 현실이고, 세상 사람들이 괜히 교회라고 그러면 좀 빈정거리고, 특별히 시대의 흐름이 반미, 반재벌, 또 반교회 이런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에 반기독교 흐름이 생겨서, 우리 자녀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숨기는 지경까지 됐습니다.
우리 교회에 고등학생이 얘기하는데 학교에서 지금 '나는 교회에 다닌다' 그러면 학우들이 '너 아직도 교회 다니냐?' 그런다 그래요.
교회 다닌다는 것이 우리 때는 자랑스러웠는데 한 반에 우등생 그룹들은 거의가 다 교회 다니는 목사, 장로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교회에 대해서 아주 나쁘게 됐습니다. 이걸 반전시켜 나갈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지요.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는 시골 복동교회에 다니면서, 유년주일학교에서 참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탄절에 연극하고, 부활절 때 독창하고, 5월에 야외예배에 나가 가지고 또 찬송도 부르고 추수감사절 때에 또 발표회에 내가 나가서 인삿말도 하고...
내가 유년주일학교 시절을 잘 보냈기 때문에, 그때 쌓여진 그 정서적인.. 또 발표력, 인간관계.. 이런 것들이, 내가 복동교회 유년주일 학교에서부터 기초가 잡혔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꿈을 꾸면, 복동교회 유년주일 시절의 꿈을 꿉니다. 유년주일학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유년주일학교가 없어지고 시들어가면, 한국 교회의 미래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영남신학대학의 학생으로 들어와서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의 유년주일학교를 부흥시킬 것인가? 중고등학교를 되살릴 것인가?'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는, 대구 동신교회에 소속해서 동신교회 학생회 회장을 두 번, 그러니 2년 했습니다. 보통 한 번 하지 않습니까? 잘했길래 2년 연임시켰겠지요.
그때 동신교회는, 지금 위치가 아니고, 동인동에 있을 때인데 교회에서 공부방을 열어줬습니다.
수업 마치면 가방 들고 집으로 안가고, 동신교회 공부방으로 가서 그 일층에 공부방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때 공부한 학생들이 거의 다 잘 됐더라고요. 대학교수도 여러 명 나오고, 큰 병원의 병원장도 나오고, 또 목사도 나오고...
그때 그 동신교회 공부방 출신들이,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면 다 사회적으로 잘 되었어요. 얼마나 교회가 중요합니까!
◑내 20대에 '불 붙이는 사람'으로서의 비전을 가지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즈음에 집안 따라서 통합측 대구 종로교회로 옮겼습니다. (동신교회는 합동측) 종로교회는 한 2백 명 모이는 교회였는데, 대구시 종로에 있었지요.
하루는 어머니가 교회 다녀 오시더니 '얘들아, 교회에서 우리를 사찰로 들어오라 한다.' 그때 우리가 참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4남매를 삯바느질 해서 길렀으니까 가난하지요.
'나는 사찰(교회건물 관리인)로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그러시길래 내가 반대했습니다. '어머니, 교회는 그냥 신앙생활 하러 다녀야지, 교회에 사찰로 들어가면요. 어머니 자녀들은 기죽습니다. 교회가 별난 거 모르십니까? 어머니는 좋은 생각이지만, 사찰이 되면, 우리 자녀들은 상처받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너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냐? 우리가 밖에서 살면 어차피 방세 나가는 것이고, 교회 봉사는 어차피 하는 것이고 교회에 들어가서 봉사하면서 우리 방세도 안 내고, 또 시내에 나가면 너희가 학교 다니기도 좋고 다 좋을 것 같은데..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라'
'그럼 어머니가 좋아하시면 우리가 따라가지요' 그래서 이제 종로교회 사찰이 된 겁니다. 내가 사찰 아들 출신이지요.
이제 청소하고 뭐 이런 거는 어머니가 하시는데 대구가 겨울이 춥지 않습니까? 그때는 교회 난로에 뭘 피웠냐 하면, 마세크탄(조개탄)이라고 불렀는데, 석탄 가루를 만두처럼 만들어서, 난로에 연로로 사용했습니다.
그걸로 교회 난롯불 피우던 때인데, 어머니가 마세크탄 불 피우는 걸 잘 못하시니까 내가 담당이 됐습니다. 내가 그때 계명대학교 1학년인가 그랬습니다.
그 탄에 불이 잘 안 붙는 거예요. (요즘도 바베큐 할 때 불붙이기 힘들지요. 당시에는 토치 같은 것을 쓰지도 않았지요) 그리고 그 탄을 사오면, 대체로 젖어 있었어요. 불피우려면 쉽지 않습니다.
불이 잘 피면, 확 피어오르면 예배시간에 훈훈하니까 예배마친 뒤에 교인들이 나를 칭찬해요. '아이고 총각, 불 잘 피웠네 불 피우는데 선수구먼' 그렇게 칭찬을 듣는데
불을 잘 못 피우면, 예배시간에 난로에서 연기가 꾸역 꾸역 피어오르면 교인들이 은혜 받아 우는 게 아니라, 연기 때문에 우는 거예요. 그럼 내가 안절부절이 됩니다.
불 피우는 당번이 나인줄 아니까, 교인들이 예배보다가 연기 때문에 눈물을 닦으면서 교인들이 자꾸 날 쳐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야 이거 불좀 제대로 피워봐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석유도 준비해 놓고, 나무도 준비해 놓고, 종이도 준비해 놓고 불 피우는 걸 내가 아주 연습을 했지요. 그리고 한 해 겨울이 지나고, 다음 해 겨울에는 불피우는 선수가 됐어요. 내가 불 피우면, 마세크탄에 불이 확~ 잘 피는겁니다.
그래서 대구 종로교회, 한 2백 명 모이는 교회에 난로 불을 피우면서 내가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내가 지금은 조그마한 종로교회에 난로불 피우는 사람이지만 앞으로 한국 교회에 성령의 불 피우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하는 기도제목이 대학시절에 생긴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호를 내가 지었습니다. 호는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데 나한테 누가 호를 지어줍니까? 제가 스스로 호를 짓기를 화부火夫, '불 지피는 남자'
그래서 뭐 책을 한 권 사도, "화부 김진홍" 이렇게 책에 내가 쓰는 거예요.
(당시 책에 소유주 이름을 썼습니다) '한국 교회의 장래에 성령의 불피우는 사람이다' 자칭 화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을 피우고 했는데, 그게 인제 대학시절에 제 기도 제목이 된 거지요.
▲그러다가 계명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조교로 있다가, 장로회 신학대학원에 갔습니다. 그때는 한 해 40명이 입학할 때 였습니다.
근데 첫 해 중간고사 시험칠 때 내가 쇼크를 받았습니다. 동기생 40명 중에 컨닝을 하는 거에요. 사십 명 중에 한 4 분의 1 정도가 컨닝을 해요. 그러니까 내가 아주 충격 받았습니다. 나는 대학에서 철학과에 조교로 있었기 때문에 조교가 교수 돕는 일을 하지요. 시험 채점도 하고, 시험 감독도 하고.. 이런 게 조교가 하는 일인데
철학과 학생들은 컨닝을 안 합니다. 철학도의 긍지가 있어요. '뭐 행정과, 경영과 학생들이나 컨닝하지,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무슨 가자미 눈을 해가지고 커녕 하겠냐..' 이런 철학도의 긍지가 있었어요. 그때분에 컨닝을 안 해요.
그런데 신학생들이 컨닝을 하는 겁니다. 장차 한국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될 신학도들이, 컨닝한다는 것이, 제게 쇼크로 받아들여진 거지요.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40명 중에 4분의 1정도이니... 내가 충격을 받았어요.
'아 이거 나라 망할 일이다. 앞으로 영적 지도자가 될 신학도들이 컨닝하면 이거는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거는 나라가 망할 짓이다..'
그래서 내가 쉬는 시간에 앞에 나가 가지고 '여러분, 죄송하지만 내가 시험치는 시간에 보니까 컨닝하는 전도사님 들이 있습니다. (장로교는 신학생을 '전도사님'으로 부름) 난 대학에서 조교로 시험 감독 하다 왔는데, 철학도들은 컨닝 안 합니다. 근데 철학 위의 철학인 신학을 하는 우리가, 컨닝을 해서 되겠습니까? 하지 맙시다!'
그랬더니 컨닝파 중에 한 사람이 일어서서, '김진홍 전도사가 뭐인데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우리 기숙사 식비를 내줍니까, 등록금을 내줍니까?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 반이 두 패로 갈라졌어요. 컨닝파, 반대파 두패로 갈라졌습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나는 합동측 신학교, 성결교 신학교, 침례교 신학교 등 여러 학교에 가서 집회를 인도했었는데, 평균적으로 신학도들 중에 30% 정도가 컨닝을 한다고 해요. 그 말은 여기 영남신학대학의 신대원 학생들도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는 겁니다.
신학도들이 컨닝한다는 것은, 이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신부들 양성하는 가톨릭 신학교에서는, 아예 시험감독도 없습니다. 신부 후보생들은 컨닝을 하지 않습니다. 육군사관학교학생들도 컨닝 하지 않습니다. 컨닝하면 그날로 퇴교입니다. 철학도들도 컨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 철학이 가장 위대한 철학인데, 신학도들이 컨닝해서 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한테 정말 선배로서 부탁합니다. 컨닝하지 마세요. 커녕 하면 안 돼요. 천국을 컨닝해서 들어갈 겁니까?
내가 장신대원 다닐 때에 내가 충격을 받아서, 일년 공부하고 '아 이거 생각하고 다르구나, 종교가 제도화되면 이런 위선자들이 생기는구나' 그래서 신학교에 환멸을 느껴서 1년 만에 자퇴했습니다.
'내가 안수받는 목사되지 말고, 평신도로서 전도자가 되자' 이렇게 생각하고 짐 싸들고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이제 대구에 내려와서 노동자들속에서 전도하는 평신도 전도자가 되겠다는 작정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교계에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내촌감상) 선생이, 저서를 통해서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또한 우리나라 역사에도 김교신 선생 같은 분도, 두 분 다 평신도 크리스천 지도자 였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대구에 내려와서 취업을 했는데 칠성동에 신신공업사 철공소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볼트 너트 이런 거 만드는 철공소인데, 직공이 700~ 800명 되었습니다.
거기 사장님이 합동측 교회 장로님이고, 전국 장로회 연합회 회장이에요. 해마다 개척교회를 하나씩 회사에서 설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가 전도하기 좋겠다 생각해서, 신신공업사에 입사한 것입니다. 이력서 내라 하길래, 대학 졸업, 신학교 중퇴.. 이러면 받아주겠습니까? 국졸 이렇게 써서 이력서 냈지요. 그리고 제 얼굴이 본래 빈티가 나지 않습니까. 아주 빈티가 얼굴에 배였거든요. 제 얼굴을 이래 보더니 사원으로 받아줬습니다. 신신공업사 철공소에.
회사에서 나를 어디로 배치했냐면, 철공소니까 지하실에 용광로가 있어요. 제가 자원한 게 아닌데, 회사에서 용광로에 나를 화부로 배치했어요. (사찰시절 한국교회의 화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이제 철공소의 화부가 된 겁니다.
하루 2교대를 하는데, 밤에 용광로 불을 지켜보는 거예요. 용광로 불이 꺼지지 않게, 기름과 바람을 조절하면서 밤을 새우는 겁니다.
밤 2시, 3시가 되면, 막 졸음이 쏟아지지요. 내가 막 혼자 부흥회를 하는 거예요. '성령이여 강림하사' 찬송도 부르고,
'내가 대학시절에 화부가 되리다 그랬는데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성령님께서 화부 된다는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려고 여기에 화부로 보내신 줄 믿습니다.' 기도하고 감사하고 혼자서 '성령이여 강림하사' 막 손뼉치면서 부르고, 혼자 부흥회 하며 그렇게 지냈는데...
얼마 지나고 보니까 이상한 걸 느낀 겁니다. 다른 철공소에 비해서 임금이 한 10~20%가 낮아요.
사장님이 장로님이고, 개척 교회도 해마다 하나씩 세우고 하는데 동종업종에 비해서 임금이 낮은 데다가, 매일 30분씩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시간이 노동시간에 들어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30분 일찍 출근해야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 한테 새벽 잠 30분은 소중한 거거든요. 30분 일찍 와서 예배드리고, 자기 부서로 가는데 내가 참다가 사무실에 찾아가서 건의한 거지요. '예배를 안 드리던지, 아니면 임금을 정산해 주시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시간을 노동시간에 합산해 주셔야 됩니다'
내가 그렇게 주장했더니 사무실에 직원들이 다 장로, 집사입니다. 다 대구시내 교회들의 장로, 집사들이지요. '야 우리 회사에 빨갱이 하나 들어왔구나, 당신이 우리 회사에 간첩질 하러 들어온 거지?'
'그게 아니고 나는 삼대째 기독교 모태신앙인데 그럴 택이 있습니까? 나는 현실적으로 말합니다. 내가 우리 부서에 전도하려고 복음을 전해보니까 모두 이를 갈아요.
'내가 예수 믿으면 개자식이다. 그리고 누가 장로, 집사 그러면 내가 알레르기 일으킨다' 뭐 이러고 반발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몇 번 건의했더니, 뭐 아주 욕만 먹었지요. '안 되겠다. 내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가지고, 노조로서 내가 이걸 대처해야 되겠다.'
그래서 신신공업사 노조만드는 운동을 했는데 얼른 그게 또 회사에 보고가 들어갔지요. 한 번은 불려가서 직싸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빨갱이라고.
실컷 두들겨 맞고 집에 가서 끙끙 며칠 앓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야~ 이거 안 되겠다. 뜻은 좋았는데 혼자서는 안 되는구나'
그래서 1년 만에 장로회 신학대학에 복학을 했어요. '역시 그래도 교회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서 해야지, 혼자서 뭐 노동운동한다고 하다가 제 명에 못 죽겠다'
그래서 장로회 신대원에 복학했더니, 동기생들은 벌써 2학년이 됐지요.
동기생들이 날 보고 '그렇게 말려도 호기 있게 나가더니 결국 되돌아왔구나!' 동기생들 한테 놀림감이 되었어요. 그래도 뭐 신학교를 계속 다녔습니다.
신대원에 다니다가 2학년 때, '이왕 신학교에 다닐 바에는 제대로 해보자..' 그래서 청계천 빈민촌에 활빈교회를 빈민선교를 지향하며 개척한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그렇게 시작된 세월이 벌써 50년이 지났지요. 나는 신학도 여러분들을 보면, 그렇게 마음에 정이 가고, 마음이 짠합니다.
우리 때는,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 만큼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때보다 훨씬 나쁜 조건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은 목사, 전도사의 인기가 바닥에 떨어졌어요. 이미지가 대단히 나빠졌습니다.
한 2년 전에 중앙일보에서 우리나라 각 기관의 이미지 평가를 했습니다. 정부, 국회, 대학, 군대, 가톨릭, 개신교 등 각 기관의 이미지 조사를 중앙일보에서 했는데 전국 전체의 1등을 어디서 한지 아십니까? 국민 여론조사 1등이 가톨릭 교회가 했습니다. 개신교는 20등 밑으로 떨어졌어요.
그런데 내가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닐 때는, 개신교 이미지가 2~3등 했습니다. 그 세월에 그만큼 이미지를 우리가 까먹은 겁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도 첫째 원인이고 사회적으로 좌익 극단적 좌파들이 득세하면서, 의도적으로 교회 이미지를 아까 먹은 거지요. 이런 시대에 목회자로서 지원한다는 것은, 참 내가 선배로서 마음이 짠한 것입니다.
◑내 설교의 5가지 인벤토리
여러분, 나는 설교자로서 신대원 2학년 때 설교 시작해서 이제껏 50년 설교했지 않습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목회자는 설교가 중요하거든요.
나는 50년 목회하면서 설교에 대한 내 나름대로 기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설교학 시간에 공부하겠습니다만 설교학에서 설교준비하는 과정에서, 설교가 마치는 전체 프로세스를 인벤토리 그럽니다.
나는 장로회 신대원 설교학 시간에 들은 것도 아니고, 책 본 것도 아니고 50년 목회 현장에서 설교 경험을 통해서, 설교에 대해서 내 나름으로 노하우가 생긴 겁니다. 나는 설교 인벤토리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5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걸 좀 소개하고 싶습니다.
자 처음에는 "설교의 5가지 원칙" 이랬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보니까, 이것이 설교의 인벤토리에 해당되는 5가지만이 아니더라고요. 크리스천 신앙생활 전체에 뒷받침될 수 있는 5가지 삶의 콘텐츠다.. 그런 인식을 하게 된 겁니다.
▲1. 설교의 첫째는 '쉽게 한다.' 내가 전에 교회에서 부목사 중에 한 사람이, 전북대학 농과대학 출신인데 한 번 설교를 시켰더니 첫 마디에 '칸트가 말하기를..' 그래서 제가 속으로 '저 사람이 왜 저러나?'
농과대학 나와 가지고 '칸트가 말하기를 인생은 예술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를 나무랐습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설교가 쉬워야 돼요!'
그런데 어려운 것을 쉽게 하는 것이 설교자의 능력입니다. 내가 왜 설교를 쉽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느냐 하면,
빈민촌에서 전도해 가지고 교인이 20~30명 됐는데 내가 설교 시작하면 교인들이 조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참았지요. 한 6개월 지난 뒤에 친해진 뒤에 내가 교인들한테 한 소리 했습니다. '여러분, 예배당이 여관방입니까, 왜 예배당에만 오면 조는 겁니까? 헌금 조금 낸 걸 뭐 여관비 낸 걸로 생각하나요? 설교하면 조니까 나 이거 참 답답합니다!'
그랬더니 앞에 있는 할머니가 졸다가 그 설교를 들었어요. 나를 쳐다보더니 '아이고 젊은 사람이 딱 하시오' 그래서 '할머니, 내가 왜 딱해요?' 그랬더니
전도사님이 우리를 재우면서, 우리가 존다고 나무래는 것 같은데 자기가 재우면서 우리더러 존다고 하면 우짭니까?
내가 의아해서 '할머니, 내가 자장가를 불렀어요, 내가 수면제를 먹였어요. 왜 재운다 해요?' 그랬더니 '재우는 게 아니라고요? 도대체 설교를 뭔 소리인지 알아듣게 해야지요?'
당시에 내가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과에 조교로 있다가 신학을 갔으니 빈민촌에 그 사람들 앞에서 '하이데거가 말하기를..' 뭐 이런 게 스스럼없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꾸벅꾸벅 조는 게 당연하지요. 내가 그날 저녁에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야 그 할머니 말이 맞다.. 내가 이거 바꿔야겠다.'
그래서 내가 결단을 했어요. '주민들의 수준에 맞게 설교를 바꿔야겠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 엿장수가 지나가요. 리어카에 엿판을 싣고 가위를 쩔렁쩔렁하면서 골목을 지나갑니다.
그러면 빈 병, 헌고무신을 주면 엿으로 바꿔줘요. 그 사람이 지나가길래 불렀어요. 그리고 내 책꽂이에서 철학책을 전부 뽑았어요. 상당히 많지요. 내 전공이니까. '아저씨 이 책 다 드릴테니까 엿으로 바꿔 주세요.'
그랬더니 엿장수가 보더니 '책이 많은데요. 내가 아침에 엿 3판을 갖고 나오는데 책을 보니까 3판으로는 모자랄 것 같고, 책은 오늘 가져가고 내일 엿을 더 갖다 드릴게요.'
제가 '아저씨, 그러지 말고 오늘 가져오신 엿만 주고 끝내세요. 내가 이 책을 처리하려는 것이지, 뭐 엿이 탐나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철학책을 전부 주고, 엿 세 판을 받았으니까 엿이 많잖아요. 그래서 동네 아이들을 전부 불러서, 오전 내내 아이들이 엿을 먹은 겁니다.
그런데 엿에 밀가루가 묻어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엿을 먹으면, 입주위가 뿌옇게 됩니다. 그 동네 아이들 전체가 오전 내내 입에 허옇게 묻혀가지고 그렇게 지냈는데
그 뒤로 내가 앉아서 성경연구 안 하고, 교인들 현장으로 따라다녔어요. 교인이 손수레에 사과 싣고 사과 팔러 다니거든요. 그럼 제가 옆에서 바람 잡아주는 겁니다. '대구 능금 10개 천원, 천원을 다 받느냐? 깎아서 700원!'
또 어떤 분은 다꽝(단무지) 장사하는데, 언덕에서 수레를 밀어 주기도 하면서 같이 다꽝도 팔고 그렇게 장사하시는 성도들을 따라다니면서 심방한 것입니다.
그러고 설교를 바꿨어요. 그 사람들이 장사터에서 하는 말로 그대로 바꿨습니다. '아 베드로 그 사람 골때리는 사나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언어 워딩으로 확 바꾸니까 조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헌금도 더 나와요.
그래서 제가 깨달았어요. '아~ 설교는 쉽게 해야 된다.' 일단 교인들이 알아듣게 해야 되는 겁니다.
어려운 성경, 어려운 책을 읽고 어떻게 쉽게 전하느냐? .. 이게 관건입니다. 그 뒤로 내가 노력을 한 겁니다. 그래서 쉽게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내가 지식인들도, 도시 사람들도 섬겨보니까 다 쉬운 걸 좋아하더라고요.
첫째 그래서 설교는 쉽게 해야 된다. 이게 성경적으로 왜 중요한가 하면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simple and clear 입니다. 단순하고, 분명한 구원의 도를 쉽게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교회에 와서 설교 듣고, 안식을 누리고,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신앙생활이 즐거워야 되지 않습니까!
▲2. 두 번째는 설교를 즐겁게 한다. 설교 전하는 나도 즐겁고, 듣는 교인들도 즐거워야 됩니다.
여러분 이태리 말로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 말이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뜻입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공무원이 국가 세금을 낭비하는 죄 이거는 이승뿐 아니라 저승에 가서도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두 번째 뭘 꼽느냐 하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죄, 비즈니스 하고 장사하고서 이익을 남겨가지고 세금 내고, 헌금 내고, 고용을 증대하고 이렇게 해야 기업하는 사람인데 기업하는 사람이 적자 내면, 이게 용서받지 못할 죄다.. 라고 봅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한 가지 더 붙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목사한테 내가 적용합니다. '교인을 지루하게 하는 죄' 설교, 예배, 성경공부를 지루하게 하는 것은 '페카토 모르탈레',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서 목회자가 되어서 살아갈 텐데 페카토 모르탈레에 걸리지 않길 바랍니다. 정말 전하는 우리도 즐겁고, 듣는 사람들이 즐거워야 되지요.
그래서 여러분 빌4: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전한 편지인데 빌립보서의 주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Joy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 이지요. 여러분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입니다. 기쁨도 '카라'입니다. 넓게 보면 의미가 같은 말이죠. 은혜 받으면 기쁘고, 기쁜 게 은혜받은 겁니다.
여러분 앞으로 목회를 하든지 교사가 되든지 기억하십시오. 교인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이 즐거워야 돼요. 설교시간이 기뻐야 됩니다.
지루하게 자기도 모르는 어려운 말로 교인들 진 빼고 하면 안 돼요. 교인들이 예배는 지루하고, 설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하면 짜증나가지고 가져갔던 헌금도 안 내고 도로 집으로 가져가 버립니다. 내가 옛날에 청년 시절에 그렇게 해봐서 알아요.
목회는 현실입니다. 현장에 맞아야 돼요. 신학도들이 신학교 시절부터 그것을 훈련해야 됩니다.
▲3. 설교의 세 번째 원칙이 뭐냐면, 깊이 있게 설교해야 합니다. 즐겁기만 하고 깊이가 없으면, 설교가 만담이 되고 말지요.
설교자들 중에 설교를 만담처럼 하는 분들이 있지요. 억지로 웃기려고 하고.. 막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내가 유튜브로 가끔 그걸 듣는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설교를 저렇게 쑈처럼 해서 괜찮을까?'
당분간은 괜찮을지 몰라도, 영혼의 양식을 심어주는데 좀 더 깊이 있고, 진지하고, 본질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눅5장을 참 좋아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시몬 베드로를 처음 만나서 베드로의 배를 빌려가지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눅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갈릴리 호숫가에서, 해변에 청중들이 쫘악 앉아 있고 베드로의 배에 앉으사 해변에 있는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는데
눅5:4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깊은데'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고기잡이 상식으로는 고기가 얕은데 있는데 왜냐면 상류에서 내려오는 프랑크톤이 얕은데 있으니까, 깊은데 고기가 있는 게 아닌데 위대한 선생님이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 하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그렇게 했더니 그물 가득히 고기를 잡은 겁니다.
예수님이 시몬에게 하신 말씀은, 고기잡이 그물을 '깊은 데로 던지라' 한 것이지만 나는 이 말씀을 신학교 학생 때부터 넓게 받아들였습니다.
인생의 그물을 깊은데로 던져라! 인생의 그물을 깊은데 던져서, 거기에서 고기를 낚는 법이지요.
교인들 속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다보면 깊이가 없어져요. 여러분 뭐니뭐니 해도 신앙의 세계는 깊이의 세계 아닙니까! 그렇지요.
영혼의 깊은 곳으로 다가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우리 목회자들이 깊이가 약해요.
여러분 시험 삼아 노회나 총회에 한번 가보십시오. 회의 분위기가 깊이가 없어요. 이건 무슨 세상 날라리 판처럼 노회나 총회가 실망스럽습니다. 뭔가 깊이가 없어요.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깊은 데로 던지라 하셨지요.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 신학도들은 삶의 그물, 복음의 그물을, 영혼의 깊은데 던져야 돼요. 삶의 차원을 깊이 있게 우리가 추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설교가 깊이가 있어야 돼요. 설교가 깊이가 있을려면, 뭘 해야 됩니까?
신학교 후배가 나한테 찾아와서 '목사님, 설교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해서 제가 세 가지가 일러 줬습니다.
-첫째 텍스트 본문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된다. 헬라어, 히브리어를 연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말씀 묵상이 깊어야 된다.
-둘째 말씀만 깊으면 안 돼요. 인문학적 깊이가 있어야 돼요.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당시에 제대로 못했지만, 돌파리 철학하다가 마쳤지만 그래도 그게 참 도움이 돼요.
철학사, 문학사, 문화사 여러가지 인문학적 기초가 있으니까 성경을 이해하는데 아무래도 깊이가 있게 되고, 그게 깊이가 있으니까 교인들이 가슴에 탑재가 되지요.
-세 번째 내가 뭘 지적했냐면 영적인 체험이 있어야 된다. 영적 체험이 있으려면 자기와의 노력, 금식하고, 고민하고..
저는 빈민선교 시작한 뒤에 너무 현실이 절박해서 해마다 금식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삼일 금식하고, 그다음엔 5일 금식하고, 그 다음에는 7일 금식하고, 지금은 10일하죠.
해마다 1월달이 되면 10일 금식을 하면서 '목회를 어떻게 다시 보완할까, 어떻게 제대로 할까?' 이렇게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여러분 소크라테스 라는 그리스 철학자가 아주 명언을 남겼습니다.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
설교자는, 영적 지도자는 자기성찰이 있어야 돼요. '내가 목사 다운 목사인가? 내가 예수를 믿는 척하는 거지, 진짜 믿고 있나?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 앞에서 위선적인 게 없냐?' 자기 성찰이 있어야 돼요.
그냥 목회자가 바쁘게 돌잔치, 뭐 결혼식 뛰어다니고 장례식하다가 목사, 부목사가 노무자 비슷해집니다. 자기 성찰이 없고, 인문학적 깊이를 더하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삼류 목사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새겨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데' 그물을 던져라.. 하신 거지요. 베드로가 깊은 데로 그물을 던졌을 때, 그는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과거 한국에 똑똑한 분들이 다 모여서 정치한다고 했는데 정치가 난장판이 되고, 수고는 수고대로 했는데도 밤새 아무 것도 잡지못한 베드로의 빈 그물처럼 되고 말았어요.
우리는 그런 원인을 영적인 데서 찾아야 합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 얕은데 그물을 내려서 그래요.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 전체의 고백이 되어야 해요. 그랬더니 물고기를 잡았지요. 지금도 그런 역사가 목회 현장에서, 사회에서 일어나야 돼요. 좀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돼요. 인간의 깊은 것을 터치하는 목회, 사회, 정치!
▲4. 네 번째가 뭐냐면, 교인들이 설교를 듣고 삶에 적용 application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럴 듯한 말, 추상적인 얘기를 듣고 뜬구름 잡는 설교를 들으면, 집에 가서 아무 적용도 못하게 되지요.
어떤 설교가 명설교냐 하면, 교인들이 설교를 듣고 '오늘 설교는 꼭 나한테 하시는 말씀이네' 하는 것이 성공한 설교요, 자기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로 들어야 되고, 삶에 적용이 되어야 돼요.
너무 설교들이 뜬구름 잡기가 되면 안 됩니다. 요즘은 핸드폰을 열면, 하루종일 설교가 나옵니다. 대한민국의 좋은 설교는 다 나와요. 이제 설교도 무한경쟁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 속에 내가 헷갈리는 소리 해서 되겠습니까?
삶의 체험과, 인문학적 기초와, 본문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속에서 나오는 자기 소리를 해가지고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설교가 맞아야 돼요. 현장 감각이 중요한 겁니다. 현장에 뿌리를 내려가지고, 저 재래시장에서 콩나물 장사 하는 할머니도 그 설교를 들으면 가슴에 와 닿아야 돼요.
목회자는요, 현장의 교인들과 숨결을 같이 하고, 삶의 호흡을 같이해야 돼요. 나는 지금도 시간이 나면 들에 나가서 노동합니다.
나는 삼일 동안 지금 대구에 와 가지고 집회 하느라 삼일간 농장에서 일을 못하는 것이 상당히 아쉬워요.
여기 영남신학대 총장님이 저한테 전화해서 집회해 달라기에 제가 고민했습니다. 지금 한창 감자 심고 하는 철인데, 내가 거기 가서 집회 해야 될까? *2021년 3~4월
그런데 내가 여기에 왜 왔냐? 여러분이 신학도들이기 때문에, 신학교 후배들이기 때문에 '내가 가서 집회 인도 해야되겠다' 그래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나는 지금 시즌에 집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골짜기에서 버섯 키우고, 감자 심고, 퇴비 만들고.. 그거 하면서 내가 보람을 느끼는 겁니다. 왜냐? 그게 농민, 노동자, 북한동포들의 삶의 현장이에요.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해야 된다는 거지요.
▲5. 설교 듣는 교인들, 사람들에게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꼭 큰 변화로 사람이 확 뒤집어지지 않더라도, 작은 것 하나라도, 설교를 삶에 적용해서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일본의 평신도 성경학자 우찌무라 간조 선생은 <로마서 강해> 라는 중요한 책을 썼는데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로마서 강해> 내촌감상 저. 상하권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공부에 좋은 책입니다.
우찌무라 간조 선생은 로마서를 일컬어 '역사를 변화시키는 책, history changing book, 역사를 만드는 책, history making book .. 이렇게 평했습니다. 옳은 말이지요.
인류 2천 년 교회사에서, 로마서는 세계사를 몇 바퀴 바꾸었습니다. 로마사가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훨씬 더 어두운 세계에 살고 있을 겁니다.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산 제물 living sacrifice 로 너희 몸을 드려라! 구약시대에는 양이나 염소 등 죽은 제물을 바쳤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내 삶이 제물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목사가 되든,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든 우리 삶 자체가 리빙 새크러파이스, 살아있는 제물로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왜 신학교에 왔습니까? 우리가 새끼 못 먹고 두 끼 먹어도, 밥 못 먹고 라면 먹어도 하나님 앞에, 조국 앞에, 역사 앞에, 살아있는 산 제물이 되어보십시다. 아멘 하시지요?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conform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우리 장로회 신학대학의 교수 중에 한 분이, 내가 이름을 깜빡했는데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분이 있다고 그래요. 안 될 소리지요.
교회는 반듯하게 가르쳐야 됩니다. 국민들이 뭘 믿고, 뭘 따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기준을 교회가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헷갈리면, 세상 자체가 헷갈립니다.
여러분 '너희는 세상 풍속에 conform 되지 말고, 거기에 따르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서 '변화를 받아'가 영어 성경에는 트랜스폼 transform 즉 세상 풍조에 컨폼되지 말고, 말씀 안에서 트랜스폼 되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이걸 줄이면 간단합니다. 롬12:2절을 줄이면 '변화되어 변화시키자' 내가 복음의 능력으로, 복음의 두나미스 power 로 내가 변화가 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자.. 이게 우리 성직자, 신학도들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나는 성경의 많은 인물들중에서 사무엘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분을 identify 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목사님중에 '이상근 목사님을 담고 싶다' 그러면 이상근 목사님을 identify 한다고 표현하지요.
나는 성경의 인물들 중에, '사무엘 같은 성직자가 됐으면 좋겠다' 난 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어떤 점에서냐? 세 가지입니다.
물론 내가 인격이나 경륜이 부족해서, 사무엘 근처에도 못 가는 게 내 한계지요. 그러나 지금도 내가 그 꿈을 꾸는 겁니다. 세 가지 점에서 사무엘같은 성직자가 됐으면 좋겠다.. 하고요.
▲1. 첫째 이유는, 사무엘은 평생을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그 역사적인 과도기에, 즉 사사시대에서 왕정기로 넘어가는 역사적 전환기 터닝포인트에서 위대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이 사무엘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중간 역할을 한 사람이 사무엘선지자 입니다.
사무엘이 어떻게 살았느냐? 삼상12: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사무엘이 백발이 성성한 뒤 은퇴 설교입니다. 사무엘의 고별 설교입니다.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이제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평생을 성직자로서 백성들을 이끌고, 백발이 성성한 노년에 은퇴하면서 '내가 평생을 어떻게 살았느냐?'
: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미스터 클린입니다. 그는 평생을 깨끗하게, 평생을 영적 지도자로 살면서 뇌물을 받거나, 경우 없이 일하거나, 사욕을 채우거나, 재산을 챙기거나 그런 거 없이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4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 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얼마나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까?
나는 지금 팔십 입니다. 제가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1941~ 나이 들어갈수록 명예스러운 것은, 깨끗하게 살았는 것.. 그게 남습니다.
재물을 있는 것, 명예 있는 것.. 그런 것이 아닙니다. 깨끗하게 살았다는 그것이, 나이 들어갈수록 자기 속에 만족하게 남습니다.
여러분, 깨끗한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사무엘이 우리의 사표입니다.
성직자와 교회는 가난해야 됩니다. 교인들은 부자가 되어야 됩니다.. 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교인들이 축복받아서 부자가 돼서, 선교비 많이 내서, 교회는 그것을 자꾸 써야됩니다. 자꾸 선교비로, 구제비로 막 써야 됩니다. 교회가 돈을 저축해 놓아서 말거리가 생기게 하면 안 좋습니다.
나는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헌금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헌금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선교비로 쓰면 그게 모자라는데 교회가 돈을 모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목사와 교회는, 생활, 건강 유지, 그리고 자녀교육, 노후 보장 정도로 깨끗하게 살고 교인들은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아야 되지요. 선교비도 내고, 선교사도 돕고... 교회가 부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2. 사무엘이 얼마나 당대에 영향력이 있었던지 백성들이 '당신이 왕이 되어주세요' 몇 번 그랬습니다.
사무엘은 '아니다. 나는 성직자의 자리를 지킨다' 그는 언제든지 정치 권력을 잡을 수 있었는데, 성직자로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자기 분수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요즘 정치가 막 시끄럽지요? 그러나 우리 목회자들이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당을 만들거나... 나는 절대 반대입니다.
어떤 분이 나한테 와서 '기독 무슨 당' 만드는데, 나를 부총재를 해 달라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습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2등을 안해봤는데, 왜 '부'자가 들어가냐? 내가 왜 정당에 들어가야 되냐? 난 예배당 당회장이요, 당대표이다'
예수님의 예배당이,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무슨 당이라도, 그 위에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모든 세상 당 위에서, 백성들의 정신세계, 미래의 비전 있는 역사를 제시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기독교가 무슨 당 만드는 것에 반대합니다. 기독교는 청년들, 교인들을 성경적으로 잘 길러서 여당도 야당도 고루고루 들어가서 지방의회, 청와대, 국회에 교회가 기른 교인들이 각 당에서 자기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정치참여다.. 라고 주장합니다.
교회가 나서서 무슨 당 만들면, 기독교 당 만들면, 불교는 불교당 만들고, 가톨릭은 가톨릭 당 만들면, 그게 좋겠습니까?
여러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가 나한테 와 가지고, 북한을 자꾸 칭찬해요. 거기는 의무교육이고, 무슨 평등사회고, 의료도 무료고...
내가 하도 딱해서 '신부님, 나는 북한을 여러 번 다녀온 사람이니까 나한테 그 말하는 것은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하는 거예요. 신부님, 역시 남자는 장가 가가지고 마누라한테 시달려 봐야 철이 들지 장가 안 가고 총각으로 지내니까 철이 안 드네요. 내가 차비 대줄 테니까 북한에 한 번 가보세요..' 하면서 내가 북한 갔던 얘기를 해줬습니다.
내가 나진 선봉에 가서, 단고기를 잘못 대접받았습니다.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 그럽니다.
거기 시 인민위원장(시장)이 나한테 점심을 대접했는데, 단고기를 대접했습니다. 냉장고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전기가 왔다가 갔다가 하니까, 전기가 들어올 때 냉장고가 얼었는데, 전기가 나가버리니까 녹은 거예요. 또 전기가 들어오니까 얼고, 그걸 몇 번 반목하는 동안에 개고기가 변질되었어요.
이걸 가지고 '단고기탕'을 만들어줬는데 내가 그걸 먹고, 식중독이 심해가지고 죽을 뻔했어요. 막 죽겠더라고요.
'아~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내가 여기 와서 단고기 먹고 죽으면 순교도 아니고 이게 뭐냐?' 하도 급하니까 거기서 지방의원에 나를 데려갔어요.
세상에 옆방에 맹장염 수술하는데, 마취제가 없어가지고 생 배를 째는 거예요. 아야 소리 지르고... 이빨을 뽑는데, 마취제가 없으니까 그냥 이빨을 뽑으니까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지요. 그게 북한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내가 신부님한테 '내가 차비 대줄테니, 가서 배 한 번 째보고, 이빨 한 번 뽑아보세요. 나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 개신교에 절대 그런 (정의구현..) 흐름이 들어오면 안 되지요.
우리가 성직자는 성직자로서의 제단을 지켜야지요. 그래서 사무엘이 우리한테 사표가 됩니다. 영적 지도자로 분수를 지키면서, 정치가를 길러냈지요.
사무엘에 맨 처음에 세운 왕이 누굽니까? 사울 왕이지요. 킹메이커이지요. 사울왕이 제대로 안 하고 삐딱하게 나가니까 대신에 다윗 왕을 세웠지요.
우리 교회는 킹 메이커가 되어야지, 우리가 킹이 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 성직자의 분수를 분명히 지켜야 돼요.
교인들한테 정치 교육을 시키되, 교회가 정권을 탐하는 건 아니지요.
대단히 중요합니다.
▲세 번째, 왜 사무엘을 내가 닮고 싶으냐면, 노후에 자기 고향 라마로 내려갔습니다. 은퇴해서 라마로 내려가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낚시나 하고 여유있게 지낼 나이에 뭘 했습니까?
나는 세 가지 가운데서 세 번째, 이것을 최고로 높이 평가합니다. 사무엘이 평생을 역사의 전환기에 영적 지도자로 자기 책임을 다한 후에 그 다음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노후를 어떻게 보냈느냐?
삼상19: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노후에 고향에 가서 공동체 나욧을 세웠습니다. '나요트'라는 말은, 기숙사도 되고 공동체도 됩니다.
노후에 고향 가서 편하게 살지 않았고, 젊은이들을 모아 가지고 영성을 기르는 나욧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거기에 다윗이 찾아왔습니다.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여러분, 젊은이들을 모아서 낮에는 같이 노동하고 밤에는 민족의 진로를 기도 하고, 토론하고, 꿈을 길러주고, 비전을 심어주는 '라마 나욧' (라마의 공동체)을 세웠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사기를 올려주고, 민족의 장래를 논했습니다. 거기에 다윗이 도망다니다가 도망다니다가 갈 데 없으니까 사무엘을 찾아왔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을 라마 나욧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서 사무엘이 죽을 때까지 영적 지도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다윗 왕국이 건설되는 영적 기초가 닦인 겁니다. 위대한 장소입니다.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다는 소문을 사울이 듣고 특공대를 보냈으나, 사무엘의 권위 때문에 들어가서 잡지는 못하고 주변을 뺑돌아서 지켰습니다.
'사무엘은 노년이라서 곧 죽게 되니, 죽자마자 다윗을 잡아내서 처형해라' 하고 특공대를 배치시켰습니다.
사무엘이 죽자마자,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이 옆에 있는 다윗 아닙니까. 우여곡절을 거쳐서 어디로 갔습니까?
라마 나욧에서 사무엘이 죽자마자 다윗이 도피해서 어디로 갔습니까? 삼상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동굴로 도망하매'
자 사무엘의 지도 과정을 거쳐서 어디로 도망갔다고요? 아둘람 동굴입니다. :1b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란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여러분, 아둘람 굴에 숨어 있다는 소문을 입에서 입으로 듣고 전국에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역사를 바라는 사람들이 거기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니 라마 냐욧에서 사무엘에게 배운 것을, 다윗이 재현한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부도난 자, 회사에서 쫓겨난 자, 뜻이 있어도 펼 길이 없는 젊은이들이 다윗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모인 사람이 4백명, 그 아둘람 굴의 4백 명이 나중에 위대한 다윗 왕국을 건설한 겁니다.
여러분, 영남신학대학이 딴 거 하지 말고, 이 시대의 아둘람 굴이 되어서 사백 명의 학생이면 되요. 사백명!
사백 명의 학생들이 교수님들과 더불어 동지가 되어가지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 새로운 교회를 창조하는 일에 우리가 헌신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 400명이 누구였습니까 기존 체제의 불만을 품고 사회변혁을 꿈꾸는 빚진 자, 원통한 일 당한 자, 뜻을 펼 수 없는 자, 기존 체제에 발붙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둘람 굴로 모여들어서 400명이 모였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의적 등이 되지 않고, 위대한 다윗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역사를 만들었습니까? 시57편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내가 여기 영남신학대학에 와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대학이군요. 교수님들도 훌륭하고, 학생들도 반듯반듯하고, 나는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마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가면, 서울에 있는 신학대학보다 더 희망이 있는 학교가 아닐까? 라고 나는 느낍니다.
여러분, 지금은 순서, 순서대로 나가는 게 아닙니다. 1등 2등 엘리트 찾는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은 상상력과, 창조력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에 앞장서는.. 그런 시대입니다.
지금 시대가 바뀌고 있고, 이미 바뀌었습니다. 시대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여러분 시대가 변화됩니다. 이 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일꾼이 되느냐? 공부 잘하는 사람, 성적 좋은 사람, 여러분 박사 석사 라고 되는 게 아닙니다.
진짜 박사는 누굽니까? 베드로 아닙니까! 밖에서 죽었으니 박사지요.
진짜 석사가 누굽니까? 스데반 석사입니다. 돌에 맞아 죽었으니 석사 아닙니까!
여러분 학문이 중요하지요. 아카데믹한 신학적 기초가 필수이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위에는 비전이 있고, 꿈이 있고,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영의 세계, 미래를 볼 수 있는 상상력과 창조성이 있어야 되요.
그런 것을 꿈꾸고 아둘람 굴에 모여있는 사백명과 같은 학생들이 이 캠퍼스에서 자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57편에 뭐라 그랬습니까? 위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감동스럽습니다.
시57편의 표제에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여기서 인도자는 성가대 지휘자입니다. 성가대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서, 알다스헷의 곡에 맞추었다는 겁니다. 아리랑 곡에 맞출 것, '내 주를 가까이' 곡에 맞출 것, '알다스헷에 맞출 것'.. 그 말이지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사백 명의 동지들과 함께 꿈꿨던 내용입니다.
시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여러분, 다윗과 그의 무리들은 사울을 피해서 굴에 숨어 있다고 생각을 안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고 있다.. 이 말씀이 똑같이 여러분들의 신앙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서울의 대학에 못 가서 영남신학대학원에 온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꿈을 기르고, 비전을 기르고, 교회와 겨레의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 이 캠퍼스에 왔다..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런 야심, 선한 앰비션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비전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시57: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아둘람 굴에서 마실 물도 부족하고, 먹을 양식도 없고 발각돼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환경에서 그들은 감사와 찬송이 있었습니다.
오른쪽에 감사, 왼쪽에 찬양! 여러분 이 캠퍼스에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교회와 겨레의 미래를 찬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꾼, 오늘의 아둘람 굴의 용사들이 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어디서 그런 비전이 생겼습니까? 이번 집회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시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사명감을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에 컨빅션, 즉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가 그 뜻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무슨 확신입니까? 8절입니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위대한 고백입니다. 아둘람 굴에 숨어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도 그들은 역사의 새벽을 깨우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 어두운 역사, 사울 치하에서 암흑 시대에 헤매는 백성들에게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러분 밤이 왜 깊어집니까? 새벽이 가까와서 깊어지는 겁니다. 겨울이 왜 있습니까? 봄이 오려고 겨울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고난 끝에 부활의 새벽의 영광이 있는 겁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 겨레도 '통일 한국시대'라는 새벽의 역사를 꿈꾸는. '위대한 선교한국'을 꿈꾸는, 새벽의 꿈과 비전을 가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사울 시대의 어두운 역사의 한 밤 중에서 희망 있는 역사, 새벽을 깨우는 역사를 우리가 받은 사명자들이다.. 얼마나 위대합니까!
여러분 영남신학대학에서 새벽을 깨우는 비전, 그런 환상을 가질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끝으로 한 절 더 찾습니다. 오순절 성령충만의 역사가 사도행전 2:1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충만해서 예루살렘 시가지로 노방전도 하러 나갔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뭐라 했습니까? 요엘서 2:28절 말씀을 인용해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2:16~17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러분 아멘 하십니까? 오순절 성령받아서 우리의 자녀들이 예언자가 된다.. 그랬습니다. 예언자가 뭡니까? 백성들이 나갈 길을 보여주는 게 예언자입니다.
'이 백성, 이 시대, 이 교회는 이 길로 가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이다. 우리가 통일한국 시대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자녀들이 예언자가 될 것이고, 젊은이들이 환상, 비전을 봐야 되는데, 우리 교회 젊은이들이, 영남신학대학교 신학도들이 비전을 봐야 됩니다.
비전이 뭡니까? 온 국민, 온 교회가 함께 바라보고 나갈 미래의 목표, 이게 비전입니다. 한국 정치가들은 비전이 없습니다. 자기 패거리 정치 합니다. 그걸 독일어로 게젤샤프트, 즉 이익공동체 라 그럽니다.
독일어로 게마인 샤프트, 이념공동체 신념공동체.. 우리 교회는 이 시대에 게마인 샤프트, 민족의 희망을 주고 꿈을 심어주는 정말 신념(믿음)의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돼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갈 통일한국 시대의 깃발이다.. 이런 비전을 보여주는 교회가 돼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학문에, 그런 비전을 가진 젊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러분 한국의 65세 노인이 지금 8백만입니다. 몇 년 안으로 1천만이 됩니다. 천만 인구가 젊은이들에게 짐이 돼가지고, 병원이나 다니고, 장기판이나 두면서 젊은 사람들한테 부담이 되어서 되겠습니까? 나는 그런 노년을 거부합니다.
'늙은이가 꿈을 꾸리라' 나는 칠십세에 정년퇴직한 뒤에, 퇴직금을 몽땅 털어서 저 동두천 돌산을 8만평을 사가지고 거기에 인생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늙은이가 꿈을 가져야 된다!
그래서 '늙어서 일하자, 행복하게 살자, 베풀며 살자!' 나는 꿈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통일한국 시대에, 나는 개마고원에 가서, 두레마을을 세우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저 개마고원은 멋있는 휴양지입니다. 개마고원을 잘 개발하면, 스위스 융프라우 저리가라 입니다. 거기에 두레 마을 간판 걸고, 거기에 두레 농장의 꿈을 실천하는 것이 내 꿈입니다.
성령받으면 늙은이가 꿈을 꾸리라! 여러분이 꿈꾸는 신학도, 비전을 보는 젊은이들이 되기 바랍니다.
길 없는 시대에 길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이, 이 캠퍼스에서 자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백성들이 우왕좌왕 목표를 잃고 헤매는 이 시대에 저 영남신학대학교 신학도들이, 미래 백성들이 바라보고 나갈 목표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영적지도자가 돼야 됩니다.
여러분 몰트만도 중요하고, 니버도 중요하고, 위대한 신학자들을 공부해야 되지요. 거기에 더하기 알파, 뭡니까? 비전을 가지는 교회, 성령안에서 예언자가 길러지고, 비전을 보는 젊은이들이 여기서 깨어나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는 교회, 꿈을 꾸는 신학교, 꿈을 꾸는 한국교회를 이루어가는 일에 여러분이 깃발 들고 앞서 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걸 위해서 영남신학대학교가 부름을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습니까? 믿음 대로 된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믿느냐? 믿는 대로 될지어다!'
여러분, 큰 믿음은 큰 꿈을 이룹니다. 작은 믿음은 작은 집을 짓습니다.
여러분의 꿈과 비전과 여러분의 예언자의 길이 이 겨레와 한국교회에, 미래 희망을 줄 수 있는 희망메이커들이 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