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의 임함 (파루시아) 살전4:13~18 여러 설교 정리, 작성중
살전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파루시아)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파루시아' 라는 말의 뜻
'재림'이란 한국어 말이 있는데, 굳이 헬라어 '파루시아'를 쓰는 이유는,
이 단어가 여러 다른 단어로 영어나 한글(강림, 임하심)로 번역되기 때문에,
그냥 '파루시아'라는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이, 이해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강림'이란 말은, 내릴 강, 임할 임이란 뜻입니다. 降臨
그런데 이 '재림'이라고 하는 단어를 오늘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셔야 되는데
그 단어는 원래 로마 황제나 왕이, 어디에 불쑥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헬라어로 '파루시아'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파레이미'의 현재분사형으로 *있음, 나타남
coming (오심, 임하심)이란 뜻이지만,
이 말이 주님의 재림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거죠.
원래 뜻은 '(어디에) 출현, 나타남, 임재, 공식적 방문'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성경에는 이 '파루시아'가 '재림'이 아니라,
그냥 '(누가) 왔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도 있습니다. 주1)
당시 로마사회에서 라틴어로는 '아드벤투스'라는 말을 썼어요.
그래서 '황제가 임한다'는 말은 '아드벤투스 아우구스티' 라고 했죠.
그럼 그 도시에 황제가 오면, 기념주화를 발행했어요. 그 주화에도 'adventus Augusti'라고 새겼죠
아구스도 황제가 '방문'함을 기념하는 주화였죠. '그가 왔다'는 뜻이죠.
당시에 통용되던 이 말을,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재림'을 설명할 때,
제자들이나 사도바울이 '가져와서 사용한' 것이죠.
그런데 전쟁을 하다가 군대가 위기에 빠졌는데 '원군이 온다' 할 때도 이 단어를 썼지요.
그러니까 늘 어떤 위기나 어려운 상황에서, (왕이나 군대가) 나타나는 것, 임재하는 것, 현존하는 것
이런 뜻으로 쓰이던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4복음서에도 이 단어 파루시아가 쓰였습니다.
마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당신의 임하심(파루시아)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의 이 질문에 대해서 *마24:3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마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
비슷한 예로 '일어나다 risen'도 원래는 '누었다 일어서다'는 뜻이지만,
주님의 부활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된 것과 같죠. *헬, 에게이로
이 말(파루시아)은 야고보 사도, 베드로 사도도 썼던 말입니다.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벧후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참고로 '파루시아'와 비슷한 말은
1) 요한복음에는 ‘다시 와서(παλιν ἔρχομαι)’라는 사용했습니다.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2) 베드로 전서에서는 “파루시아(παρουσία)”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άποκαλυφις, appear'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1:13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3) 에피파네이아(ἐπιφάνεια) “나타남”이란 말도 비슷한 말입니다.
살후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아포칼립토)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appear, 에피파네이아)으로 폐하시리라'
◑살전4:13~18절 해설
교회가 세워진지 얼마 안 된 이 데살 교회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자기들 당대에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죽은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못 보고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우려와 걱정이, 바울에게 전달되었고, 바울이 그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4:13참조
데살 신자들은 이렇게 죽은 자들로 인해 많이 슬퍼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4:13 '형제들아 자는(죽은)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3주간 거기 머물 때, 이미 가르쳐서 알고는 있겠지만,
좀 더 확실하게 정리를 하여 위로하고 흔들림이 없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핵심이 되는 '종말론'의 청사진을, 본 서신을 통해 그려주고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먼저 죽은 자들을,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들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이 주님의 강림 때에 불이익을 겪을 이유가 없다는 요지입니다. 4:16~17
사람이 죽으면, 성도들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습니다.
고전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그런데 아직 부활체는 아닙니다. 아직 육체를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 부활체를 다시 입습니다.
그래서 보통 신학자들은 '성도가 죽어서 천국에서 부활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을 '중간상태'라고 부릅니다.
2022년 금년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중간상태'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고서,
즉 영혼의 상태로, 부활의 날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 인간의 3차원의 시간과 다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라고 합니다.
왜냐면 영원을 사시기 때문이고, 창세기 창조 때, 이미 종말을 내다보시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재림과, 최후 심판과 부활은, 우리 인간의 과거-현재-미래의 3차원의 시제로 보면 안 되고,
'하나님의 시간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분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 육체의 부활과, 최후심판은.. 앞으로 까마득히 먼 미래로 보일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시간개념'으로 봤을 때의 일이고,
'하나님의 시간개념'으로 보면, 그것은 '하루만에' 일어날 수 있는 '현재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와 같으니까요!
30년 전에 소천하신 우리 아버님이 천국가서,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고, 재림을 기다리다가,
재림하신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부활체를 입고서, 최후심판을 받고서,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이 모든 일이 (먼 미래가 아니라) '하룻만에' 다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죠.
어쨌거나 그런 영원의 일은, 인간의 시간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부활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세상과 매우 다른 확고한 소망과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분은 믿는 모든 사람의 삶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강력한 능력은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과 동일한 강력한 능력입니다.
이는 그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때
그 안에서 잠자는 모든 신자를 데려가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살아나셨고, 앞서 죽은 신자들도 먼저 일어나고(이미 일어나져 있고)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진리로 서로 위로합시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18
참고로, 바울이 같은 내용을, 고린도전서에서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적용/ "주의 강림은 성도의 '소망' 입니다"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성도의 삶의 본질이 무엇이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 때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밖에 구름만 이상하게 떠도
'혹시나?' 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대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삶이 너무 편해져서 인지, 다들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재림이 속히 닥칠까봐 걱정하는 눈치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본연의 자세를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살전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파루시아)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살전3: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모든 경우들은 '소망'과 관련 있습니다.
파루시아를 바라는 자들은, 소망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재림을 바라지 않는 자들은, 소망이 없는 신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고,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주님의 부활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는 이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게 우리 신앙의 기둥이다!'
이 복음 얘기를 어디를 가든지, 하고 다닌 거예요.
근데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럼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신다는 겁니까?'
거기에 대해서 이제 설왕설래 말이 많아지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고전15:3~8절은 도대체 바울이 왜 그렇게 목숨 걸고 쫓아다녔느냐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단 말이에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는 자기 모든 것이 뒤집어진 거예요.
'예수가 주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게 확실해졌고
그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면, 부활에 동참하기 때문에.. 그는 날마다 죽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오늘 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과연 '소망'이 있습니까?
'소망'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천국에 가게 될까요?
'신 존재론적 증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정말 안 계시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조차 못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천국에 갈 사람들'은, 오늘날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살지 않는 사람들'은, 혹시 '천국 시민권'을 가지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 오늘날 자살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 공부가 힘들다고, 사는게 힘들다고 자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재림의 소망'의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 될 이유 중 한 가지는,
적어도 자살을 막아보자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소망'가운데 사는 사람은, 결코 자살하지 않을 것입니다!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디도서에서는 '복스러운 소망, 행복한 소망 blessed hope'이라 말했습니다.
오늘 내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소망이 없기 때문이죠. 아니면 엉뚱한 소망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고요.
성경에서 '소망'이라고 말할 때는, 언제나 '재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이고, 주님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서는 '소망'인 것입니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시험치는 날이 기다려지는 법입니다.
시험공부를 게을리 한 학생은, 시험치는 날이 자꾸 연기되거나 아예 없기를 바라죠.
오늘 나는 '행복한 소망'을 갖고 살고 있나요? *딛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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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파루시아'가 그저 '왔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
고전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고후7: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고후10: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presence'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그 외 빌1:6, 2:12등
그런데 참고할 것은, 말세 때 악한 자가 '나타나는'것도 파루시아 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냥 나타나다, 온다..는 의미이죠
살후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revealed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나타남(파루시아)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