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살후2장 성령이 마귀의 역사를 막는다

LNCK 2022. 6. 1. 20:39

◈살후2장 성령이 마귀의 역사를 막는다      살후2:1~17        여러 설교 정리 

 

◑적용 "성령이 마귀의 역사를 막는다" 

 

종말론은 성경에 마24장, 요한계시록, 그리고 살전4장과 본문 살후2장이 근간을 형성하죠.

그래서 종말론의 고수는 마24장과, 계시록과, 살전후를 총합해서, 타임테이블을 만들기도 하죠.

 

(사도바울은, 단 3주간을 머물면서 데살 교인들에게 '종말론'까지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30년 머물면서, 아직 '종말론'을 모호하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도전하면, 주님이 '종말론' 이해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본문 살후2장을 대하면, 여러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본문이 "종말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기 쉽게 '본문의 뼈대만 추려서' 4문장으로 압축해 보면 이렇습니다.

 

재림이 있기전에는

-먼저 배교가 있고, 불법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3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4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습니다.  :7

-불법한 자가 나타나지만, 주님의 재림으로 그를 죽이십니다 :8

 

(사도바울은, 아직 이런 일이 당시에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재림이 아직 이르지 않았으니, 데살 교인들이 너무 요동하지 말라는 뜻으로, 본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2)

 

▲그럼 상당히 모호하게 들리는 위 3~8절 내용을, 주석을 참고해서, 파악해 보았습니다. 

 

3절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바울은 재림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가지 현상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배교와,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1) 배교

마24장이나 계시록에서는, 종말 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미혹, 전쟁, 기근, 전염병, 그 외 지진, 천체이변 등을 들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배교불법의 사람이 나타남을 들고 있습니다.

 

그럼 살후2:3절을, 마24장과 맞춘다면.. '미혹'이 되겠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24:4  

계시록에서는 '흰 말'을, 광명한 흰 천사로 가장한 미혹으로 봅니다. 계6:2

 

그 중에서 먼저 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진술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마24:11, 23, 24).

 

본문에서 '배교'는, 오늘날로 말하면, 기독교의 기복주의와 번영신학을 들 수 있습니다. 

일례로 아프리카에서는 기독교 인구가 국민의 70% 이상인 나라가 여럿 있지만,

그 나라는, 기독교를 믿기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습니다.

 

오늘 TV에 보니까, 남미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집 거실 벽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죽이고, 마약으로 타락시키면서도, 그는 가톨릭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배교가, 초대교회 때부터 없었던 시절이 없었고, 매 시대마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배교를 종말의 징조로 언급한 것은,

그것이 일부 소수가 아니라, 광범위하게 대규모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런 배교현상이 사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도 점점 큰 흐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남 

바울은 주의 재림이 가까우면,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을 말했습니다.

 

보통 신학자들은, 이 인물을 

마지막 날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라고 봅니다. 

 

여기서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안드로포스'는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사단 자신이 아닌 사단의 일을 수행하는 인간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불법의 사람'을  '멸망의 아들'과 동의어로 언급했는데,

이는 '멸망되기로 예정한 자'라는 뜻이죠.  

 

'불법의 사람'이 아무리 흉악한 계획과 성도를 괴롭히는 일을 행할지라도

종말에는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합니다. 

본문 8절에도 그 내용이 나와 있죠.

 

그런데 '재림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요일2:18절에는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우리 시대에도 적그리스도가 있다'고 가정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종말론은 원래 '임박성'과 '지연성'의 양면을 같이 고려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데살 교인들이 너무 '임박성'에 치우쳐 있으니까, 바울은 지금 '지연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양면을 둘 다 고려하는 것이 건강한 종말론이 돼죠.

 

그래서 '불법의 사람'이 종말에 적그리스도로 나타날 것이지만,

오늘 내가 사는 이 시대에도 있다... 이게 건강한 종말론이지,

 

반대로, '아직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지금이 종말은 아니다' .. 이래서는 안 됩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연성'과 '임박성'의 건강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참고로, '불법의 사람'을 원어적으로 보면, '안쓰로포스 하마르티아'

즉 'man of sin, 죄의 사람'입니다. 죄가 많은 사람이란 뜻이 되겠지요.

 

그런데 8절의 '불법한 자'는 '아노모스 no-law'

즉 '법 없는 자'를 가리킵니다.

 

3절의 '불법의 사람'과 8절의 '불법한 자'를 동일인으로 볼 때,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특징은 '무법주의, 율법폐기론자'의 성격을 띈다는 거죠.

오늘날 기독교가 배교의 길을 가고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법주의 = 율법폐기론'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글 : 무법한 자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대적하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호 안티케이메노스'로

'대적자', '배반자'라는 의미를 지니며, 종종 사단에게 적용되었습니다(딤전5:14).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적그리스도는 교만이 극에 달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언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미혹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성전'이 '(미래에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하는지

'오늘날의 교회'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둘 다 보는 것이 타당하겠죠.

 

일차적으로,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로마 황제의 신격화를 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로마 황제들은, 자신을 신격화했고, 그 중에 특히 가이우스 갈리굴라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숭배하게 하기 위한 동상을 건립하려고 필사적인 시도를 감행한 적이 있었죠.

 

그렇다면, 오늘날은 누가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신격화하고,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것일까요?

그가 바로 오늘날의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재림이 가까울수록, 이런 자들이 더욱 판을 친다는 거죠.

하나님이 주인되신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시도 역시, 넓게 보면 이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의 때’ - '저 자신의 때에'란 의미이며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불법의 사람을 정하신 때에 나타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주 예수의 나타나실 때를 정하신 것처럼(1:7),

불법의 사람이 일어날 때를 정해 주셨습니다.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6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막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6절의 '막는 것'은

7절에서는 '막는 자'(호 카테콘)로 언급되었는데,

'막다'의 뜻은, '억제한다', '방해한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성령'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불법한 자(적그리스도)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며,

그래서 그는 '자기 때'에만 나타날 것입니다.

 

혹자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시기까지는 '불법한 자'가

성령에 의해 '막혀져' 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다가 땅끝까지 복음이 거의 다 전파될 무렵에  *마24:14

그 즈음에 '대환란'이 되면, '불법한 자'가 풀려나서, 왕성하게 활동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그럴 수 있겠죠. 재림의 지연성으로 볼 때!

 

그런데 여기서,  재림의 임박성으로 볼 때,

불법의 비밀은, 이미 우리 중에 활동하고 있으며  :7

그렇지만 성령은, 그 마귀의 활동을 억제하시는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7

 

7절 끝의 '옮겨질 때'는, 재림 때 마귀가 패하여 물러가는 것을 뜻합니다.

계시록과 연관해서 보면,

 

계20:2~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예수님이 지상에 오셔서,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마귀의 권세를 결박하셨습니다.

천년은 '충분히 긴 세월'로서, 초림~재림 사이의 시기를 뜻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무저갱에 던져져서 활동에 제약을 받고, 미혹을 제대로 못하는데, *무천년설 이해

이것을 본문에는 '막는 것(성령)'이, 마귀의 활동을 막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재림의 때를 가리킵니다.

 

▲적용하면, "성령이 마귀의 역사를 막는다" 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속에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

성령의 소욕이 강하면, 육신의 소욕이 비로소 제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3

이 말씀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갈등, 부부사이에서의 다툼도 그것이 매일 계속된다면,

성령이 지배하는 가정이 아니라, 육신이 지배하는 가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정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들은, 대개 부부가 늘 다툽니다.

매일 다투되, 아침 일어나서부터 저녁 잠들 때까지, 둘이 붙어있으면 항상 다툽니다.

그게 지긋지긋해서 이혼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갈등과 대립이 없을 수 없지만,

그게 언제 사라지고 봉합되느냐? 신자들이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설교를 통해서든지, 찬양이나 기도회를 통해서든지..

회중들가운데 성령이 임재하시고, 은혜의 역사가 있으면,

서로 언제 싸웠느냐..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온화해 집니다.

 

사회의 계층간 갈등, 이념적 갈등도, 이런 식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안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성령이 그들 속에 역사하실 수 없어서... 어쩌면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6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살다 보면, 사춘기 자녀가 집안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한 때'라도, 남편이나 아내가 믿음이 실족해서, 가정의 평화를 해칠 때도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우리 가정을 지키는 길은,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악령의 역사를 제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24시간 찬송을 틀어놓습니다.

교회 곳곳의 스피커에서 24시간 연속해서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그 목적 중 하나가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다소 열광주의적 색채가 있지만, 그 자세는 본받을만 합니다.

늘 찬송을 따라부르면서, 성령충만한 분위기를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지 않으면, 뉴스를 듣든지, 핸드폰을 보든지.. 뭐라고 듣게 되어 있습니다...

 

청년 다윗이 수금을 타서, 악귀들린 사울을 잠잠케 만들었듯이,

사실 귀신들린 사람이 난동을 부릴 때도, 가장 급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처방은

그 옆에서 가만히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귀신들린 사람이 잠잠해 집니다.

 

성령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악령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악령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그는 성령의 존재도 어쩌면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부인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성령의 존재를 아주 무시하는 사람인 거죠.

 

화를 매일 같이 습관적으로 내는 사람은.. 그게 악령의 역사일 가능성이 큽니다.

매일 중독적으로 하는 일들도.. 악령에 (10%, 30%, 70%) 씌여서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령의 역사를 제어하고, 막을 방도로 '성령'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그에 대해 무지한 교회일수록,

악령이 역사해서 그 속에 분열, 다툼, 갈등.. 심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디 나 자신과 가정과 공동체가 성령의 역사가 충만해서

악령의 역사를 제어하고, 막는.. 그런 일들이 매일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

 

◑절별 해석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 - '강림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루시아'로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우리가 그 앞의 모임에 관하여 - 예수의 재림 때 성도들이 그를 영접하기 위해

그분 앞에 모이는 사건(살전4:17) 곧 '휴거'를 가리킨다.

 

'모임'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에피쉬나고게스'로 신약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1) 동사형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선택자들을 모으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어졌다(마24:31, 막13:27).

2) 명사형으로 신자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졌다(히10:25).

 

그런데 여기서는 종말 사건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으므로

이 단어는, 성도들이 변화되어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기쁨을 맛보며

동시에 영원히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바울에게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가르침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전달되었던 것 같다.

 

1) 그 경로 중의 첫번째는 예언이라는 영적 은사와 관련된 초자연적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

예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지지받고 있었고(살전5:19, 20)

주의 말씀으로 인정되기도 하였다.

 

2) 두 번째는 '말'이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을 통해 전달된 내용이나 교훈을 가리킨다.

그래서 영역 성경 중 NIV는 '전언'(report)으로 번역하고 있다.

즉 어떤 이들이 직접 바울의 입으로부터 나온 '재림'에 대한 말을 들었다는 소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3) 세 번째는 '편지'였다.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편지 내용을 잘못 이해했거나

거짓 교사들의 위조 편지를 받고 오해하기도 했을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이 앞서 열거한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 미혹당했는지

혹은 세 가지 모두에다 미혹당했는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이 세 가지 모두를 단호히 부정하고 있다.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주의 날이 벌써 왔다'(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공동번역)는 의미이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인들 가운데 예수의 재림이 이미 임했다고 믿는 자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잘못된 신앙은 어떤 면에서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딤후2:18) 사상과 일맥 상통한다.

이러한 사상을 가르치는 자들은 아마 오순절 설령 강림을 예수의 재림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의날에 대한 자세한 가르침(살전5:1)을

바울에게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주장에 심히 흔들리고 있었다.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거짓 풍문에 흔들리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흔들리거나'는, 문자적으로 배가 안전한 닻에서 떨어져 바람이나 파도에 밀려 요동하는 것처럼

갑작스런 열광이나 황홀 때문에 균형을 잃은 상태를 의미한다.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배교하는 일’ - 바울은 주의 날이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가지 현상을 인용하여 증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 먼저 바울은 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진술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마24:11, 23, 24).

 

1) 여기서 '배도'(아포스타시아)는 정치적, 군사적인 반란을 의미하는 말로서,

이것은 마지막 날이 이르렀을 때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이 출현할 것을 의미한다(딤전4:1-3, 딤후3:1-9, 4:3-4).

 

2)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 바울은 주의 날에 이르지 아니함을 증명하기 위한

또 다른 한 가지 현상으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지 아니하였음을 들고 있다.

 

역사속에서 사단의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에(요일2:18)

‘불법의 사람’이 누구인지 결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이 인물을 어떤 특정한 인물과 동일시하기 보다는

마지막 날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안드로포스'는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사단 자신이 아닌 사단의 일을 수행하는 인간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바울은 '멸망의 아들'을 '불법의 사람'과 동의어로 언급했는데,

이는 '멸망되기로 예정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호칭은 예수께서 가룟 유다를 지칭하실 때에도 사용하셨다(요17:12).

이 말은 '불법의 사람'이 아무리 흉악한 계획과 성도를 괴롭히는 일을 행할지라도

종말에는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나타나기’ - 바울은 앞서 주의 재림을 나타낸 동사(1:7)의 헬라어 '아포칼립토'(나타난다)를

여기서 다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동사에 사용된 부정 과거 시제는 미래적 의미를 나타내는 구절에 사용되어

불법의 사람이, 역사의 정해진 시간에 발생할 결정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나타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런 진술을 통해 바울은 주의 날이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확신시키고 있다.

왜냐면 주의 날의 초기 단계를 특징짓는 이 두 가지 뚜렷한 현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대적하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호 안티케이메노스'로

'대적자', '배반자'라는 의미를 지니며, 종종 사단에게 적용되었다(딤전5:14).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타 레고메논 데온'은 이방신들 뿐만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신을 가리킨다(Bruce).

 

'숭배함을 받는 자’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바스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교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확실히 알지 못하고 섬기는 대상들을 가리킨다(행17:23).

본문에 사용된 이러한 용어들은 단11:36-39에 나오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극에 달한 교만과 그의 신격화 행위를 연상케 한다.

 

'하나님 성전에 앉아...하나님이 하느니라‘ - 적그리스도는 교만이 극에 달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언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미혹될 것이다(마13:14).

 

한편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하는지

'기독교 교회'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미래에 다시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단9:26, 27, 마24:15, 막13:14).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일차적으로 로마 황제의 신격화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역사상 로마 황제 가이우스 갈리굴라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숭배하게 하기 위한 동상을 건립하려고 필사적인 시도를 감행한 적이 있었다.

 

요일2:18의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라는 사도 요한의 진술을 볼 때

당시에 적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언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성취되기 위해서는

적그리스도가 극명하게 나타날 미래의 시기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 때에 적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성전에 앉히는 이교적 행위를 통해

적그리스도임을 완전하게 드러낼 것이다.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바울의 참을 수 없어 하는 어조가 본구절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는 격노하기 보다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가르쳤던 진리들을 상기시킴으로

그들을 바로 잡으려 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일어난 문제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바울이 이미 데살로니가에 있었을 때 가르치고 경고하였던 것들이다.

 

6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그의 때’ - '저 자신의 때에'란 의미이며

'적당한 때에'(at the proper time, NIV)라고 의역할 수 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불법의 사람을 정하신 때에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주 예수의 나타나실 때를 정하신 것처럼(1:7),

불법의 사람이 일어날 때를 정하셨다.

그러나 그 날은 미래에 속하기 때문에(2:2, 3, 살전5:2)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막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였는지 추측할 따름이다.

 

'막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카테콘'은 본절에서는 중성 분사로 언급되었으나

7절에서는 남성 분사로 '막는 자'(호 카테콘)로 언급되었다.

 

'막다'의 뜻은, '억제한다', '방해한다'(몬13)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석가들의 '막는 것'에 대한 주장을 열거해 보면

1) 로마 제국과 황제

2) 로마정부에 나타났던 법과 통치

3) 복음

4) 하나님 또는 성령 등이다. ‘성령’이 가장 지지를 받고 있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막는 것'은 성령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잘 알려졌었다.

그들은 불법의 사람에 대항하기 위해서 성령을 의지했었다.(2:13, 살전1:6, 4:8, 5:19).

 

그리고 성령은 더욱 선하신 목적을 위해

바울로 하여금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막는 자로 역사하셨던 적이 있었다(행16:6)

 

둘째, 절대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단과 그의 세력까지도 제어하실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욥1, 2장)

필요에 따라 사단의 세력조차도 유효 적절하게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출10:1).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비밀 (무스테리온)’이 '불법'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되었으므로

불법의 사람이 숨어 있다가 은밀히 활동하기 시작한 것과 연관이 있다.

불법의 사람을 활동케한 주체는 사단이다.

 

이 사단의 세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지만(렘 23:25-27)

'막는 자' 때문에 현재로는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데살 교회 내에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도 바로 이러한 세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불법'의 비밀은 배도가 일어나고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때(3, 8절)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막는 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그 때에 - 이 '때'는 '막는 것'이 사라질 때를 가리킨다.

즉 '막는 자'가 떠날 바로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날 것이다.

 

막는 자 때문에 지연되었던 그의 때는,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다.

그리고 불법의 사람은 미래의 한 기간에 악한 일을 하도록 보장받을 것이며

정해진 그 때에 더 이상 은밀히 활동할 필요 없이 공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종말에 나타날 불법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의 최후가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본절은 주님의 입김만으로도 적그리스도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힘찬 표현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입김은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욥15:30).

 

'강림하여 나타나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서 각기 별도로 사용된 단어

'에피파네이아'('나타남')와 '파루시아'('강림')가 이곳에서는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생생한 표현으로 재림 사건이 역사 가운데서

실제로 발생하여 결국 불법의 사람의 파멸을 몰고 온다는 것을 암시한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

불법한 자의 활동은 사단의 능력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것은 모두 거짓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불법한 자가 나타나 초자연적 행위를 세가지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능력'이 언급되었다.

이는 불법한 자의 배후에있는 이적을 행하는 힘을 가리킨다.

 

이 말은 내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헬라어 '엑소시아 authority'와는 달리

외적으로 나타난 능력(두나미스)을 가리킨다.

 

두번째로 '표적'(세메이온)은 불법한 자의 행동들이 의미있게 보이는 표시와 증거를 말한다.

 

세번째로 '기적'(테라신)은 사람들이 불법한 자의 행동을 통해서 갖게 되는 경이감을 말한다.

 

이러한 용어들은 불법한 자가 사단의 능력을 따라서 사용하는 초자연적 능력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도 성도의 구원과 자신의 복음을 확증케하시기 위해서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불법한 자에 의해서 미혹과 파멸의 목적으로도 사용되어질 것이다.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불법의 사람이 사단의 역사를 따라 능력과 표적과 기사를 행사하지만

그의 힘이 결코 불가항력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 미혹당하는 사람만이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멸망하는 원인은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치 않고

그가 선물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기 거부한 결과에 기인한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른다.

 

'진리의 사랑’

복음을 강조한 표현으로 적그리스도들이 주장하는 거짓이나 속임과 반대되는 것이다.

 

바울은 본절에서 악인들 스스로가

자기들이 아무 까닭없이 멸망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들의 잘못보다는 하나님의 잔혹성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불평을 못하도륵

그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바울은 본문에서 진리를 거부한 자들의 운명을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즉 진리를 거부한 자들이 거짓을 믿게 되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기를 거부(拒否)했기 때문에(10절) 선을 버리게 되고 악을 따를 수밖에 없다.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어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6).

그러나 인간은 진리를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보다는

불의를 사랑하고 거짓을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필연적으로 임한 불의의 결과를 맛보도록 내버려 두셨다(롬1:18-25).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처음부터'(아파르켄)는 '영원 전부터', '창세 전부터'(엡 1:4)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 '거룩'은 성령의 활동에 의한 결과이다(살전4:7, 5:23).

이것은 신자에게 있어서 성령의 현재적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완성되어지는 것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행위중 일부이기도 하다.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복음'은 '우리가 전파한 복음'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얻게 된 영광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미래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창세 전에 작정하셨으며(엡1:4) 그 완성은 예수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이다(1:10, 12).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굳게 서서’ - 악의 세력이 크다고 두려워하거나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동요하거나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며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오히려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부여잡고 담대하게 대처하라는 뜻이다.

 

'전통을 지키라‘ - 여기서 '전통'(파라도세이스)은 '어떤 사람에게 넘겨진 것'이라는 뜻으로

바울의 전체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수 있다.

 

또한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모세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율법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고 사도에게 계승된 복음의 진리를 가리킨다(3:6, 7, 마 28:20, 고전11:23, 15:3).

 

좀더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승천의 사실을 기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복음의 전승을 강조한 표현으로서

비록 사람에 의해서 복음이 전달되었지만

그 복음은 신적 근원을 가진 것으로 그러한 복음에 순종하라는 의미이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본절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두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주의 날에 관한 잘못된 지식으로 혼돈과 고민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는 것이며

또 한가지는 모든 선한 일과 말에 있어서 그들을 강하고 견고하게 해주시는 것이었다.

 

여기서 바울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7)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롬 1:11)을 향하여 그의 소원을 간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