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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을 주시다 신5장 여러 설교 정리
▲신명기의 개요
1~4장, 첫 번째 설교는, 광야 40년 동안의 죄악을 회고하는 것입니다.
5~26장, 두 번째 설교는, 십계명을 해설합니다.
27~30장, 세 번째 설교로서, 상벌 규정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을 두셨는데, 축복의 길, 생명의 길을 택하여 가라는 거죠.
31~34장, 모세의 마지막 축복과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신5장부터는, 모세의 두 번째 설교에 해당하는데, 십계명의 해설입니다.
그러므로 5장에서는, 먼저 <십계명>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적용
십계명은 헌법과 같은 것입니다.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이죠.
그래서 혹시 법과 법이 충돌되면, 최종 판결 기준은 언제나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시내산에서만 주셨습니다.
그 외 다른 곳에는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같은 신약성경이라도, 예수님의 말씀인 사복음서를
바울의 서신서나 베드로의 서신보다 더 우위에 둡니다.
구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모세오경(‘토라’라고 부르죠)에만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중에서 토라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 오경 말고,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들은 뭐냐?
모세오경(토라)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혹시 다윗이 영감을 받아서 시편을 기록했더라도, 모세오경에 근거한 시편이지,
모세오경(토라, 율법)과 벗어난 시편이면... 그런 것은 아예 없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시23편도, 모세오경의 짜깁기라는 해석이 상당히 일리 있습니다.
엘리야, 엘리사의 예언도.. 모세오경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가 혹시 직접 계시를 받았다 할지라도, 모세오경과 맥락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서도 “모세오경(율법서)의 재해석”이자 “주석(설명서)”인 것입니다.
지금 논지는 “그만큼 율법서가 중요하다”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은 “율법은 폐기되어야 할 것” 정도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믿으면 구원받는데.. 거기서 ‘믿음’은 무엇을 뜻할까요?
‘믿음’은 하나님을 ‘신앙함’인데, *지적 동의가 아니라는 뜻
구약의 율법이 외적 행위로 하나님을 신앙(경외)했다면
신약의 믿음은 내면적 동기에서부터 하나님을 신앙(경외)하는 것입니다.
율법과 믿음이 근본적으로 ‘같은 본질(하나님을 신앙하고 경외함)’ 이라는 거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데,
구약에는 이걸 주셨다가, 신약에는 ‘아차, 내가 옛날에는 잘못 줬었지’ 하고
이제 완전히 본질이 다른 새것을 주신 게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실수하시겠습니까?
율법과 믿음은 본질상 같은 것입니다. 근본 기초가 같다는 것입니다.
다만 나타나는 모양새가 하나는 외형적 행위이고, 하나는 내면적 마음동기입니다.
▲1. 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
학교에도 교칙이 있고, 군대에도 규율과 군법이 있고, 회사에도 사규가 있습니다.
모든 법은 ‘지키라’고 만든 것입니다.
법을 만들면서 ‘너희들은 못 지킬거야, 너희가 못 지킬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만드는 법이야!’
세상에 그런 법은 아예 없습니다. 만약 못 지킬 법을 만들면, 그걸 독재자의 ‘악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신자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법을 ‘우리가 못 지킬 것을 뻔히 아시고,
절대 못 지킴을 너희가 깨달으라고 주신 법’이라고 이해하는데.. 그건 잘못입니다.
법을 만드는 가장 근본적 목적 첫 번째는 ‘지키라, 지키면 너희가 행복해진다’
그 목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삼척동자 초등학생도 이것은 알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자녀에게 무슨 규칙을 만들어주면
‘아들아, 이것은 내가 못 지킬 것을 깨달아라고 만들어주는 규칙이야!’
그렇게 할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건 넌센스입니다.
(그럼 바울은 왜 그런 식으로 말했을까요? 아이가 규칙을 지키려고 애를 쓰다가도, 도저히 안 될 때,
그때는 구제방법이 있다, 은혜의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말의 의미는 '율법을 최선을 다해 지킨 사람, 그래도 못 지키는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본문에도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4:1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법을 지키라고 내가 만들었다’ 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이 법을 못 지킬 것을 알고, 너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려고 만들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하나님이 신명기나 모세오경에 그렇게 명시해 놓으시면 될 것을,
그렇게 명시된 구절은, 모세오경에 한 구절도 안 나옵니다.
대신에 ‘지키라’는 말씀만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신4:5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율법을 주시고, 모세를 통해서 그걸 가르치신 목적이 뭡니까?
‘행하게 하려 함인즉’ 위 구절의 밑줄에 나와 있죠.
4:40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본문 신5장, ‘십계명 장’인데, 서두 1절에 ‘행하라’고 선포되었습니다.
신5:1 ‘...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그것을 듣고 배우며 행하라’ .. 율법은 행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물론 율법이 몽학선생이고, 죄를 깨달음이라 .. 이런 기능도 있습니다. 로마서에 나오죠.
그렇지만 그것은 율법의 부차적 기능이고요,
율법의 주 기능, 주된 목적은 ‘배우고 행하라’입니다.
△그럼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해야 될까요?
그럼 '율법을 하나만 어겨도, 모든 율법을 어긴 범법자가 된다'는 바울의 말에 대해서는요..?
그래서 우리는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게 아닙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완벽주의'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말씀, 계명에, 행하고 순종할 때.. <예배>가 은혜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진정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는,
반드시 내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반드시 부모의 당부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순종이 그 어떤 예배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성전에서 예배를 위해 봉사하는 종교인들은
아픈 사람을 지나쳐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그렇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성전 예배에는 가지 않았지만
죽어가는 이웃을 치료해 주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린 사람입니다.
오늘날 예배에 은혜를 못 받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일주일동안 제 마음대로 살다가, 시간이 되어서 그냥 예배에 참석하니까 그렇습니다.
평소에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사랑을 나누는 순종의 삶을 살던 성도가
예배에 참석할 때는,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그는 은혜와 감격이 충만한 예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2. 율법 대로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기 때문에, 행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율법을 듣고, 배워서, 행하라고 하십니까? 5:1
법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벌을 받지 말라는 것이죠.
신명기가 고대근동의 ‘종주권 조약’ 형식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하는 신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다 동의합니다.
우리가 구약, 신약.. 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서 ‘약 Testament’은 .. 계약, 언약, 조약이란 뜻입니다.
종주권 조약의 핵심은 뭡니까? 주1)
지배국과 봉신국이 조약을 맺고
그 조약을 지키면.. 보호와 혜택을 받고,
그 조약을 어기면.. 징벌과 손해를 본다..입니다. 이게 둘 다 명시됩니다.
신명기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계명들을 지키면, 조약에 의거, 복을 받겠지만
이 계명들을 어기면, 조약에 의거,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게 둘 다 명시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간 것도,
그 전에 적국에 포위를 당했을 때, 아사하기 직전에 성중에서 자기 아이를 잡아먹은 것도
다 신명기 조약에 나와 있는 대로, 조약(계약, 율법)대로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왜 십계명을 위시해서, 하나님의 법을 강조해야 하냐면,
그것을 지키면.. 종주권 조약에 의해.. 하나님의 복을 받고
그것을 어기면.. (같은 말로) 율법에 의해.. 하나님의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율법을, 그 계약 내용을 등한시 합니다.
잘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잘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 하면
‘나는 벌을 받아도 끄떡없습니다!, 나는 벌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는 자세와 같습니다.
반대로 십계명을 위시한 주의 규례와 법도들을 잘 지키면, 그와 그 자손까지
영원히 복을 받게 약속, 언약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귀찮게 억압하거나 옭아매는 법이 아닌 것입니다.
5: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6: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신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라'
▲3.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도 하셨고, 또 돌판에도 새겨 주셨습니다.
두 경로를 통해서 주신 것이었죠.
아래 22절에, 그 사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신5: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
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가 보았나이다
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그런데 그 하나님의 친 음성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은
‘심히 떨린다. 우리가 죽을 것 같다. 매우 두려웠다’ 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당신이 듣고서 우리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27
그러면 좀 덜 무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심히 두려워했다’는 점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5:5
지금 하나님은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셔서, 불가운데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불은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상징하는 영광과 거룩의 불이었습니다(출 19:18).
따라서 죄성(罪性)에 젖어 살던 백성들은 그 초자연적인 영광과 거룩의 불 앞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빠졌던 것입니다. 4:11
그런데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이나, 돌비에 새겨진 것이나
사실상 말씀의 내용은 똑같습니다.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 또는 성경을 읽을 적에
전혀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루해하거나 졸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벌 떨던 그 느낌의 1/10이라도
오늘날 우리에게 있으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그런데 없습니다)
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온 이스라엘을 불러...이르되' - 이스라엘 새 세대 중 20세 이상되는 남자의 수만도 60만 1천 7백 30명
이었으니(민 26:51), 모세가 이들을 한 곳에 다 소집해 놓고 이야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모세가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에게 이야기한 것을,
다시금 장로들이 백성들에게 대언하는 방식을 취하였을 것이다.
‘규례와 법도' - 하나님의 '온 율법'을 강조하여 지칭한 증언법적 표현이다. 4:1 주석 참조.
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호렙 산에서...언약을 세우셨나니 - 약 39년 전 모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언약을 뜻한다(출 19:3).
그 언약의 주된 내용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여호와의 소유, 여호와의 백성,
여호와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었다(출 19:5, 6).
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 호렙 산 언약은 과거 그것을 체결했던 구세대에게만 해당되는 낡은 법조문이 아니라,
지금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새 세대와 또한 앞으로 오고오는 이스라엘 모든 세대에게
적용될 영원한 약속임을 뜻한다.
한편 이런 점에서 호렙 산 언약은 열조 곧 과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시한
여러 족장들과 맺은 언약(창 17:1-8 , 26:2-5, 28:10-15)과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이전의 언약들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과 맺은 언약이었으나,
호렙(시내) 산 언약은 후손을 포함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와 맺은 언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언약의 내용과 본절에 있어서는 항상 변함이 없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하나님의 신실성과 불변성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삼상 15:29).
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 이 말은 모세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았다는 뜻은 아니다<4:12>.
이는 단지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친밀하게 직접 율법을 전해 주셨다는 뜻이다.
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불을 두려워하여' - 이때의 불은 호렙산 떨기나무에 붙었던 것과 같은 초자연적 불로서(출 3:1-3),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상징하는 영광과 거룩의 불이었다(출 19:18).
따라서 죄성(罪性)에 젖어 살던 백성들은 그 초자연적인 영광과 거룩의 불 앞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빠졌던 것이다<4:11>.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 호렙 산(Mt. Horeb) 언약체결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모세가 중개자(仲介者) 역을 맡았던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지엄하신 강림 현상을 목도한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며 모세에게 중재 역활을 요청했기 때문이다(출 20:18-21).
6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는...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다' -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언약을 맺거나 율법을 선포하실 때
반드시 당신의 호칭을 먼저 언급하셨다(창 17:1, 2, 출 3:6, 20:1, 2).
이것은 당시 고대 근동의 종주권 맹약(宗主權盟約)의 전형적인 형태인데,
입법자의 권위를 먼저 내세움으로써
뒤에 이어지는 언약이나 율법에 확고한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十誡命)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이름 위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너를 애굽 땅에서...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 여기서 십계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은
당신을 심판주로서가 아니라, 구속주로 선포하고 있다. 이는 십계명이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의 언약'임을 시사해준다.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나 외에는...있게 말지니라' - 직역하면 '나와 대립하여...두지 말라' 또는 '나와 병립하여 두지 말라'란 뜻이다.
이 첫 계명은 하나님만이 인간의 유일한 신이며, 그분만을 섬기는 것이 인간에게 요구되는
가장 크고 첫째되는 의무(마 22:37, 38)임을 밝혀 주는 계명인 바, 곧 참 종교의 기초와 출발점이 된다.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지며' -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영(靈)이신 하나님을 형상화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그 같은 행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만족과 위안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부패한 종교적 심성에서 비롯된 이기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고
교훈하고 있다.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절하지 말며...섬기지 말라' - '절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솨하'는 '복종하다'란 뜻을 지니며,
'섬기다'에 해당하는 '아바드'는 '예속시키다', '노예가 되다'란 뜻을 지닌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외적(外的)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내적(內的) 정신상태까지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질투하는 하나님 - 언약 백성을 향향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죄에 대하여 불같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동시에 적절히 표현된 구절이다<4:24>.
‘삼, 사대까지 이르게' - 이 말의 의미는 부모의 죄악이 그 후손들에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후손들이 조상의 죄 때문에 멸망당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출 20:5 주석 참조.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하나님의 진노에 비하여 그 은혜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는 사실을
강조한 수사학적 표현이다. 출 20:6 주석 참조.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망령되이' - 기본 원어 '솨웨'는 '무익하게', '거짓되이', '헛되이'라는 뜻으로
곧 인간의 거짓 맹세나 저주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며 그분을 모독하는 행위이므로 마땅히 금지되어야 한다(레 18:21, 시 29:2, 마 6:9).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안식일 제도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님을 시사해 준다.
실제로 그것은 천지창조 사건 이후 그 사실을 근거로 에덴 동산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제도(창 2:1-3)로,
이미 호렙 산에서 입법화된 것이다(출 20:8).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 안식일을 지키는일에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동등되게 지음받은
대등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고전 11:11, 12).
아울러 이는 주인이 지키는 안식일이 단순한 육체적 유혹만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에 관계된
묵상과 예배를 위한 것이었듯이, 안식일 만큼은 종들에게도 영혼의 일에 힘쓸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보장해 주어야함을 의미한다.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인도하여 내었나니...안식일을 지켜라' - 평행 구절인 출 20:11과는 외견상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안식일 성수(聖守) 계명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에서 비록된
제 7일의 안식(安息) 사건(창 2:1-3)에 근거하여 주어진 반면,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서 해방된 역사적 구속 사건에 근거하여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안식일의 창조적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인 반면,
본절은 안식일의 구속사적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결코 안식일 개념의 대립이나 변질이 아니라 계시의 심화, 발전이다.
이는 구약 시대의 안식일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구원을 기념하는
주일로 승화된 것과 같은 원리이다.
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공경하라' - 원어 '카베드'의 기본 뜻은 '무겁다'로, 곧 상대방을 무게 있게 대우하라는 뜻이다. 출 20:12 주석 참조.
‘복을 누리리라' - 출 20:12에서 약속된 장수의 축복에다 유복한 삶의 축복까지 덧붙여 약속되고 있는 장면이다.
사실 인간이 장수할지라도 그 삶이 복된 것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장수 자체가 저주스런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자에게 주어진 이 약속은 매우 적절하고 중요한 약속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복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성도의 가장 본질적인 축복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도가 누릴 궁극적인 복은 장차 하늘 나라에서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7 살인하지 말지니라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행위를 통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증거해 주고 있는 계명이다. 신약 시대의 예수께서는 직접적 살인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증오나 내면적 분노 등과 같은 간접 살인도 금하셨는데(마 5:21, 22),
이로 보아 본 계명은 궁극적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수 있는 자세를 함양시키려는
그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장 7-21절 강해 '십계명의 5대 해석 원리와 3중 목적'을 참조하라.
18 간음하지 말지니라
구약 시대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은 다산(多産) 종교에 물들어 성적 방종이 널리 횡행하였으며,
심지어 제사 의식을 통해 이를 장려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간음하는 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명하고 있는데(22:22-24), 그 까닭은 간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성한 창조 질서인
일부 일처제를 깨뜨리는 행위로서, 곧 입법자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창 2:24, 25).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계명의 근본 정신을 더욱더 고양시켜 심지어 마음에 품는 음욕조차도 간음이라고
해석하였다(마 5:28). 출 20:14 주석 참조.
19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가나브'는 '속이다'란 뜻도 있다. 따라서 본 계명은 이웃의 재물을 빼앗거나
몰래 훔치는 것 뿐 아니라 이웃의 권익을 사기 혹은 협박 따위로 침해하는 것까지 금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0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거짓 증거하지도 말지니라 - 법정에서 위증(僞證)하는 것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경우의 거짓말은 일절 용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제 8계명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데, 거짓은 사람을 속이는 것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출 20:16 주석 참조.
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 '탐내다'에 해당하는 원어 '아와'는 '사모하다', '바라다'(desire)는 뜻이다.
이는 남의 아내에 대하여 욕정에 사로잡히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러므로 이는 간음죄와 동일시될 수 있다.
‘그의 밭이나' - 이 말은 평행 구절인 출 20:17에는 없던 내용으로서 여기서 새롭게 추가된 조항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처음으로 십계명을 받은 때인 출애굽 제 1년 3월(출 19:1)과는 달리, 현재는 (출애굽 제40년 11월)
아모리 족속의 두 왕들로부터 요단 동편 땅을 탈취하여 밭이 생긴 때이므로 생겼을 것이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 여기서 '탐내다'에 해당하는 원어 '하마드'는 '몹시 열망하다',
'심히 사랑하다'는 뜻이다. 이는 타인의 소유에 대하여 미련을 못버리고 계속적으로 욕심을 품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결국 그러한 상태는 마침내 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범죄 행위를 낳기 마련이다(약 1:15).
이러한 탐심(貪心)은 이웃 사랑에 반대되는 사악한 욕망이니, 성도들은 이를 마땅히 제어할 뿐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즐거워 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사랑'(롬 12:15)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출 20:17 주석 참조.
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불...구름...흑암 가운데서' - 하나님의 호렙 산 현현시 수반된 세 가지 가시적 현상이다<4:11>.
‘총회 - 민 16:2 주석 참조.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 모든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十誡命)만을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음성으로 전달하셨고,
그 외 다른 율법들은 당시 하나님과 백성간의 중보자였던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신 것을 의미한다.
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
‘수령과 장로들 - '수령'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 각 1명씩 있던 지파의 우두머리이다.
그러나 '장로'는 나이가 많고 덕이 높아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던 유력 인사들을 가리키는데
그 수가 꽤 많았다(출 24:9, 민 11:16). 따라서 이들은 백성들의 실질적인 대표자들로서,
곧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의미한다.
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위엄' - 원어 '고델'은 3:24에서는 주의 '크심'으로 번역되었는데 곧 '광대함', '위대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어 성경은 이를 'greatness'(KJV, RSV)로 번역하고 있다.
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 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이 주어질 때 나타난 하나님의 극히 크고 놀라운
위엄과 영광 및 그 음성에 대해 느낀 엄청난 경외감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는 반드시 중재자가 필요했다.
모세는 바로 그러한 역활을 하나님과 백성들로부터 위임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중재자로서의 모세는 장차 영원한 중재자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 것이었다.
26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육신을 가진 자' - 아담 타락 이후 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심령과 인성(人性)을 지니게 된 전인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패한 '육신'(바사르)을 가진 자에게 있어서
절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곧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을 의미하기에 충분했다(출 19:16).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이 같은 두려움과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또한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곧 성도들의 영원한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라는 것이다(요 14:6, 엡 3:12, 히 10:19).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인간의 죄를 완전히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더 이상 무서워 떨지 말고 자신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오라고 하신다.
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당신은...우리에게 전하소서' - 모세의 중보(仲保) 사역이 백성들의 합의(合意)와 요청에 의거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은 근본적으로 이일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앞서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중보자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딤전 2:5)의 모형인데,
예수의 중보 사역은 어디까지나 영원 전 삼위 하나님의 뜻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이다(엡 1:3-5, 살후 2:13).
28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그 말이 다 옳도다' -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요청을 수락하셨음을 뜻한다.
그 결과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신적 권위가 부여되었고,
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중보자가 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이후 모세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모든 말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임을 인정하고
그에 전적으로 순종하여야 했다.
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 즉 십계명을 받을 때 처럼 하나님 앞에서 늘 두렵고 떨리는 자세를 견지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겠다고 약속한 그 마음(27절, 출 20:19)을 계속 유지하라는 뜻이다.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까닭은 결코 그들을
각종 자구적(字句的) 규례로 옭아매려 함이 아니라, 더 큰 축복을 베풀어 주시기 위함임을 증거해 준다.
30 가서 그들에게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르고
‘각기 장막으로' - 십계명을 수여받기 위해 시내 산 기슭에 운집했던 백성들은
차마 그 놀라운 하나님의 현현(顯現) 광경을 더이상 계속 목도할 수 없어
자신들의 중재자로 모세를 세운 후 하나님의 명을 받아 각기 자기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따라서 그들은 모세의 중재자적 사역을 의심할 나위 없이 받아들인 세대였으나,
불행히도 이 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모세는 지금 새롭게 구성된
이스라엘 새 세대들에게, 마치 바울이 복음 사역을 위해 자신의 사도직(使徒職)을 강력히 변호했듯,
모세 역시 자신의 중보자의 직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말이 단순히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도자 모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중보자의 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즉 하나님과 백성들로부터 공식 인정된 이스라엘의 유일한 중보자로서,
자신이 전하고 있는 교훈이 곧 하나님의 뜻이요 율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이 가르친 율법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여
길이 축복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1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라 하셨나니
‘명령' - 원어 '미츠와'는 '계명'(10절, 출 20:6, 대상 28:8), '금령'(레 4:2, 5:17) 등으로도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직접적 명령에 의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 규례와 법도 - 4:1 주석 참조.
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삼가 행하여' - 기본 원어 '솨마르'의 본래 의미는 '둘레에 가시 울타리를 치다'이다.
여기서부터 '신중하게 행동하다', '조심스럽게 처신하다'는 뜻으로 발전되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인간 삶의 유일한 정도(正道)임을 시사해 주는 구절로,
오직 그분께서 명하신 율법을 좇아 생각하며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분부이다(잠 4:27).
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행하라 그리하면...복을 얻어서...장구하리라'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도 그것을 믿고
그 공로를 힘입는 자에게만이 구원의 원리가 되듯(요 6:54),
하나님의 계명도 그것을 듣고 지키는 자에게만이 인간 삶을 윤택케 해주는 축복의 원리가 됨을 증거해 준다.
그런고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사실은 결코 율법이 인간의 삶을 의문(儀文)의 규정으로 얽어매는
구속의 사슬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택한 백성이 모든 죄의 늪으로부터 벗어나
길이 복받고 장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밧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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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신명기 5장에 나타난 "종주권 조약"
십계명의 서론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신명기는
전체적으로 고대 왕과 신하 사이에 맺는 ‘종주권 언약 문서’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5장도 마찬가지로 전체 구조가 왕과 신하 사이에 종주권 언약문서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주권 언약문서에는 6가지의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1) 첫째, 전문입니다(Preamble). 전문이란, 언약을 누구와 맺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신5:6절 후반부에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을 맺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후반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영어성경은 전반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역사적인 서언입니다(Historical Prologue).
왕이 백성들에게 무슨 일을 해주셨는지를 밝히는 부분입니다.
신5:6절 전반부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라고 했습니다.
왕이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준 일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왕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셋째, 의무사항이 있습니다(Stipulation or Duties).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러한 의무사항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런 것을 요구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무사항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신5:7~21절까지는 의무사항인 십계명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언약문서를 공적으로 읽고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신5:22절이 그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큰 음성으로 이스라엘 총회에서 선포하시고
두 돌비에 기록하셔서 모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적인 선언이고 공적인 기록인 것입니다.
5) 다섯째, 언약체결의 증인들이 누구인가를 밝혀 두는 것입니다.
신5:23~27절까지가 그 내용입니다.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뿐만 아니라 온 회중이 다 증인이 되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6) 여섯째, 상벌규정입니다(Blessings and curses).
언약을 지키는 경우에 왕이 베푸는 상은 무엇이며
또한 언약을 어기는 경우에 받는 벌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신5:28~33절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