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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0장 27 귀가 열리게 하소서

LNCK 2022. 6. 27. 11:17

◈귀가 열리게 하소서             요10:27        *<내적음성>관련글        2019.04.19경, 출처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일상의 기적을 체험하자"는 주제로 말씀을 계속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정말 체험 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 눈이 뜨이지 않아서 아해가 안 됐던 거지요.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상의 기적 중 하나가 
'우리의 귀가 열려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우리가 매일 일상 속에서 수도 없이 경험하는,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영이 살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 영혼이 살게되고, 내 영혼이 살았다는 증거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것이고, 

예수님이 내안에 거하시는 것은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제게 
'예수님이 마음에 거하시는 것을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아시냐?'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제가 '제가 주님의 음성을 늘 듣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드렸는데 
그 목사님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어요. 

'진짜 주님의 음성을 그렇게 늘 들으시냐고?'
그렇게 반문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귀가 막혀 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그런 분들이 있다면, 오늘 이 밤에 여러분의 귀가 열려서 
주님이 정말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확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실제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금하는 목사님들과 교회도 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다든지, 이런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왜냐면 실제로 교회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이, 가장 골치 아픈 사람입니다. 

누구도 못 말리는 사람, 누구 말도 안 들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왜요?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누가 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어요? 

이런 어려운 문제들을 교회 안에서 일으키고, 또 경험하다 보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든지.. 이런 말을 하지 아예 마라,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 잘 듣고, 성경책 보면 되지, 
무슨 주님의 음성을 또 들을 필요가 있느냐? 
이렇게 가르치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게 잘못 되어서 그런 게 아니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 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자기는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미혹을 받은 것이죠.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정말 성경적인가?> 하는 겁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말고, 성경 보면 된다고 말하지만 

성경안에 '음성을 들으라'고 
'예수를 믿으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 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으니 
성경대로 믿는 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본문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요10:27절에,
'내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30:21절에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내 뒤에서 말소리가 내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이사야는 분명히 예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눈으로는 보지 못 하지만 
음성으로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주님의 음성을 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2세기에 폴리캅 주교는, 자신이 순교하게 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순교할 상황이 왔을 때, 폴리캅은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4세기에 어거스틴은 '성경을 펼쳐서 읽으라' 하는 음성을 듣고 성경을 펼쳐 읽었더니 
로마서 13:13, 14절 말씀이었고, 그것이 자신을 위한 말씀이었고 
그래서 주님의 인도하심인줄 확신하게 되었고, 회개하고 회심하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13세기에 애빙던의 에드먼드는 수학을 공부하는 수학자 였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신학을 하라 하는 말씀을 하셔서 
그가 신학자로 완전히 자기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19세기에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하나님의 자기를 중국 선교사로 보낼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홀만 헌트 라는 사람은 그림 그리는 화가 였는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인도 하셨다고 간증했습니다.

찰스 스펄전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복음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과 
전해야할 복음의 본문까지도 너무나 정확하게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늘 그런 식으로 고백을 했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고아원을 운영하라고 지시하셔서 
그가 고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 프란시스 쉐퍼는,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대학에 가서 목사가 되는 훈련을 받으라고..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가 목사의 길을 가게 됩니다. 

루이스 채퍼는, 하나님이 댈러스 신학교를 세우라고 자기에게 말씀하셔서 
그 일을 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들에게도 수도 없는 사례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이 밤에 여기 오신 것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여기 기도회에 나오라고 말씀하셔서 온 사람들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또 기독교 역사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고 생각하는 분들이 너무너무 많은 것은 
왜 그렇지요? 

'주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그러면 
'나는 못 들었는데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하면서 장로님들과 함께 회의를 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어요. 
예배 드릴 때는 은혜로운데, 회의할 때는 은혜가 다 없어요. 

그래서 제가 도무지 목회를 못 하겠다고 그랬더니 
대표 장로님이 오셔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말씀 해 달라고 그래서 
제가 '꼭 하나님한테 응답 받은 것만 회의 때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무 얘기나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마시고 
꼭 응답 받은 것만 말해 주시오...' 

그래서 회의 안건은 미리 드렸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했는데 
당회가 너무 빨리 끝났습니다. 당회에서 아무도 말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얼마든지 목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게 제 마음이 기뻤는데 
대표 장로님이 저를 찾아오셔서, 장로님들 사이에 아주 말이 많다는 겁니다. 
젊은 목사가 고도의 독재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니 제가 무슨 독재를 한다는 말씀이에요?'
그랬더니 '장로들이 말을 못 하게 한다'는 거예요.

'제가 어떻게 말을 못 하게 했습니까?' 
'목사님이 응답 받은 것만 말아라 그러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랬지요!'
'어떻게 일일이 안건마다 하나님의 응답을 다 받느냐?'는 거예요.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거에 대해서 너무나 훈련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우리가 한번 훈련받으십시다.' 

그래서 시작을 한 게 "예수님의 제자 훈련" 
그 처음 원형이 그렇게 시작이 된 겁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훈련 받으면 정말 놀라웁게 귀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는 이유는, 그 음성을 육성으로 듣는 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음성을 그렇게 육성으로 들으려고 몸부림쳤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된 것이, 진짜 하나님이 불러서 그런 건지 
아버지가 하라고 해서 그런 건지... 
그게 제 마음에 정말 격렬한 갈등이 되더라고요. 

목회가 잘 안될 때, 제가 뭔가 무능하다고 느낄 때, 
'아~ 하나님이 나를 부르지 않아서.. 성령의 역사가 내게 없구나!' 그런 갈등도 생겼던 적이 있었죠. 

그래서 '한 번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되겠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자꾸 들으려고 하는 것은, 좋은 믿음의 태도가 아니다'
이런 말을 나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걸 떳떳하게 구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 응답해주세요. 내가 너를 불렀다. 유기성아, 
내가 너를 목사로 불렀다' 요거 한 번만 말씀해 주시면
내가 다시는 들려 달라고 요구 안 하겠습니다!' 

'하나님 한 번 확인만 해 주시면, 제가 죽도록 진짜 충성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고 확신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내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 기도원에 올라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예배당 안에서 기도하다가 '아~ 여기서는 응답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아' 

왜냐면 그때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하늘에서부터 굵직한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로 
'유~기~성~ 목~사~ 야~' 뭐 이렇게 들려주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예배당 안에 있으면, 지붕과 천장에 막혀서 소리가 잘 안 들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기도원 바위 위에 올라가서.. 거기서 직통이잖아요. 
하늘에서 바로 말씀하시면, 명확하게 들을 수 있잖아요. 

'하나님, 한 번만, 한 번만 말씀해 주세요. 유기성 목사야!' 요렇게만 해도 
주님이 목사라고 불렀으니, 나를 부르신 거 잖아요. 

아니면 '유목사야!' 라고만 해도 
그 기도원 중에 유목사는 나밖에 없었으니, 주님이 나를 부르셨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하나님이 그것마저도 안 하시겠나?
정말 나를 목사를 부르셨다면...' 그런 생각도 한 때 했었습니다. 

'바위 위에 올라가서 이렇게 편안하게 기도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나무 뿌리를 뽑으려고, 나무를 붙잡고 막 흔들고 기도도 했었어요. 
결국은 아무 음성도 못 들었어요.

그러자 제 마음 속에 너무 큰 좌절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를 부르신 게 아니구나... 어지간하면 한 번만이라도 들려 주실 텐데...' 
'그런데 이제 이렇게까지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을 보니 
아버지가 나를 목사 시킨 거지, 하나님이 시킨 건 아닌가 보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육성으로만 듣는 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얼마 뒤에, 요한복음을 쭈욱 읽어가는 중에 깜짝 놀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경말씀으로 제게 응답을 하신 거예요.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내 안에 오신 주님이십니까, "생각나게" 하시는 방법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그 뜻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귀가 확 열린 거예요. 

'아 내가 그 동안에 주님의 음성을 많이 듣고 있었구나. 
늘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주님이 나를 인도하셨구나...' 그걸 깨달았어요. 

여러분 양심의 가책을 받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또는 '은혜 받았다' 그런 느낌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혹시 회개할 마음이 마음에 갑자기 생겼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게 다 주님의 음성을 들은 거예요. 
여러분이 주님의 음성을 어떤 방식으로 든는지를 예를 든 거예요. 

갑자기 회개할 마음이 일어나고, 죄가 깨달아지는 거죠. 
갑자기 '오늘 정말 너무 은혜로워!' 이런 느낌이 온다든지...
여러분도 다 이런 경험이 있으시죠? 

바로 그것이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방식으로 
여러분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거하시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마음의 기능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주님의 뜻을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성령의 조명'이라 그럽니다. 
일루미네이션! 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 
'아~ 주님께서 나에게 "깨닫는" 은총을 주셨다는 거죠.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우리 안에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불신자에게는 영의 생각이 없어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인도하심이 없어요. 

다시 말하면 '내가 오늘 성령집회 가야지, 금요일 밤에 교회에서 이런 특별한 집회를 하는데 내가 가야지...' 
이런 마음은, 자기 안에 주님이 거하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을 보고싶거나, 기도를 해야 되겠구나, 
내가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 이런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근데 여러분 안에, 이제 영의 생각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느끼게 된다면 
주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 거죠.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명확하게 들으려면, 기도하는 자리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생각을 너무나 뚜렷하게 경험합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이렇게 금요기도회에 오셨는데, 오늘 여러분이 다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왜 기도할 때, 주님의 음성을 명확하게 들을 수 있느냐면
기도할 때는 주님만 주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기도는 하지만, 이 생각 저 생각 등 잡념이 막 떠오를 때도 있을 거에요. 
그 때 여러분이 단호하게 '사탄아 내게 훼방하지 마, 나를 방해하지 마! 
주여 제 기도의 문을 열어 주소서!' 이렇게 여러분이 담대하게 구하면 

그러면 생각의 시달림이 사라지고,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평소와는 다른 생각들이 계속 떠오릅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기도 제목을 아뢰면서도 
동시에 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알게하시는 생각들이 여러분에게 떠올라요. 
이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자리가, 기도의 자리였어요.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전도하다가, 유럽으로 복음을 들고 건너가게 된 것도 
그가 기도하다가, 마게도냐 사람이 바다 건너편에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하는 환상을 보게 된 거죠.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서 찾으러 올 것이라는 것을 
환상 중에 보여주셨죠. 

우리도 똑같이,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과 아침 식사를 약속하고 만나야 되는데, 제가 기도했어요. 
'하나님 그 목사님을 만나서 오늘 어떤 시간을 제가 갖기를 원하십니까?'

그때 하나님은 제 마음에 너무나 분명하게 '그를 도우라. 그의 어려운 문제를 들어주라' 
그런 마음을 주셨어요.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목사님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근데 깨달았어요. '아~ 이 목사님에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있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만나러 갈 때부터 '내가 오늘 그 목사님의 어떤 어려운 문제를 듣고, 함께 기도해야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식사 하면서부터 
지금 목사님이 겪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없는지... 그렇게 질문을 드렸는데 
진짜 정말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 것을 알았어요. 

만약에 그걸 제가 주님과 아침에 미리 기도 중에 의논하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목사님의 그 문제를 서로 나누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뜻밖에 함께 동석하는 분들도 같이 기도하면서, 그 목사님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도 중에 주님은, 정말 여러분들은 놀랍게 이끌어 가세요. 
그러니까 기도 시간을 절대로 소홀히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항상 매일 기도 시간을 꾸준히 가지고, 그리고 지속해야 돼요. 
"매일 1시간 기도운동"을 우리가 하고 있는데 
여러분 정말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실제로 만나고 
그리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려면, 
기도하는 자리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오셔서 설교 하셨던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님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때 목사님이 설교를 듣고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때 목사님이 설교 중에 '중언부언 기도하지 마라. 우리가 구하기전에 하나님은 모든 걸 다 아시느니라'
그 말씀에 초등학교 3학년 인데, 은혜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기도를 안 하게 되었대요. 다 아시니까!
하나님은 다 아시는데 기도할게 뭐 있겠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전혀 기도를 안 해서 
너무나 편안하게 기도를 안 하고 살았다는 겁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주님, 아시지요?' 그러면서 기도가 끝났어요. 뭐 더 기도 할 것도 없어요. 

근데 어느 날, 그날도 '하나님 아시지요?' 이렇게 기도를 했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마음에 응답을 하셨어요. 
'다 안다. 내가 다 안다. 그런데 너는 아느냐?' 거기에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다 알아, 뭐가 필요한지, 어떤 형편인지... 
근데 너는 너의 문제, 너의 필요, 너의 해결책... 그걸 다 아느냐?'

자기가 생각해 보니까,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겠더랍니다. 
그 동안의 기도는, 하나님께 내 문제를 알려 드리는 걸로만 이해를 한 겁니다. 

기도 중에 우리가 '하나님, 이 일을 이루어 주세요' 이게 분명히 우리의 기도죠.
그렇지만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은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우리의 문제가 뭔지,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하나님이 기도 중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생활이 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너무 답답한 일입니다. 

여러분 주님과 동행 일기를 쓰시면, 아마 다 경험하시게 될 거예요. 
여러분 안에 주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요!

여러분이 생각으로 이렇게 떠오르는 생각과 
그것을 실제로 글로 이렇게 써 보는 것은... 또 다른 자원입니다. 

여러분이 기도 중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주세요. 
그런데 그것을 영성일기나 수첩에 실제로 쓰지를 않으면, 그러면 그냥 다 없어져 버립니다. 

기도할 때 이 생각도 들고, 주님이 이렇게 깨닫기도 하시고 
이렇게 지시도 하시고... 기도 중에는 그것을 알았어요. 

근데 '아멘!' 하고 일어나는 순간에, 싹 다 없어집니다. 
누구랑 만나서 이야기 하고, 밥 먹고... 뭐 이러다 보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게 주셨던 생각이 하얗게 다 사라져요. 

그래서 기도할 때, 또는 기도 후에 즉시 꼭 메모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하나님께 아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주님으로부터 듣는 시간인 것을 명심하고 
기도하는데 주님께만 집중하는데 

주님이 어떤 사람을 생각나게 하시고, 어떤 일을 생각하게 하시고 
또 어떤 문제를 내게 깨닫게 하시고... 
그러면 그건 정말 영적으로 굉장히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이 기회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거 같구나' 
이렇게 믿고, 그 다음에 그것을 기록하면..
그래서 그 기록을 나중에 재차 검토하면..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됩니다.
아니면 다 잊어버리니까.. 순종도 제대로 할 수 없지요!

어느 목사님이 쓰신 '예수동행일기' 내용입니다. 
'저는 남을 쉽게 비판하고 판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쉽게 화를 내고 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동행일기 쓰면서부터 제 안에 변화가 생겼는데 
남을 판단하거나 감정이 격동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제 마음에 큰 소리가 들립니다. 
제 가슴이 조이듯이 '그만하라!'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른 분의 영성 일기입니다.
'저녁에 식당에서 식사하는데, 종업원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손님은 생각 안 하고, 자기 일만 하다 보니, 서비스가 형편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내가 화를 낸 것이, 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주님이 알게 하셨습니다. 
늘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우리가 일기를 쓰든지, 기도를 하든지..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토요일이나, 또는 월말에
자기가 쓴 '영성일기'를 한 번 쭉 다시 읽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아주 좋습니다.
주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에 감사드리면서, 
주님이 말씀하셨지만, 혹시 자기가 잊어버린 내용을 다시 한 번 재기억하면서
더욱 영적으로 성숙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주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지킵니다. 
여러분이 그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되어야 돼요. 

그 경험이 1년이 가고, 그 삶이 3년이 지나고, 그런 신앙생활로 5년이 지나보세요. 
여러분이 이제는 주님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믿어져요. 

환경과 여건이 어떤지... 그건 상관없어요. 
주님이 함께 가시면, 너무나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서, 두려운 일이나 염려가 없습니다. 

과거에 제가 부산에서 목회 할 때, 열심히 주일 예배 드리고, 식사 하고 나가서 
축호전도하고, 노방전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근데 한 번은 태풍이 와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데 
교인들이 주일 아침에 그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그렇게 얼굴이 환하게 교회당에 들어오더라고요. 

들어오면서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오늘은 비오니까 전도 안 나가지요?'
어휴, 정말 태풍 속에 비바람을 맞고 교회에 오시느라, 옷이 다 젖었어요.

그래도 기쁜 이유가, '오늘은 전도 안 나갈 거야!' 
세상에 그럴 정도로, 전도를 힘들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이런 내면의 음성이 제게 들리는 겁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라' 디모데후서 4:2절 말씀이 갑자기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오늘은 비가 심하게 와서 전도 나갈 수 없을 거다'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갑자기 들리는 내적 음성 때문에, 
'오늘 전도 나갑니다!' 라고 선포했어요. 

성도님들이 다들 입이 삐죽 나왔지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주님이 그걸 원하시는 줄로 알게 되니까, 순종을 해야 되는 거죠.

근데 그날 억지로 전도하고 돌아와서 
하하 정말 옷 다 젖고, 머리도 다 젖고 그렇게 고생은 했지만 
다들 기쁨이 충만하게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특별한 은혜가 있었던 전도였습니다.

그러니 전도 나가기 전에, 그때 들었던 '주님의 음성'이 올바른 것이었음이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날이 태풍이 오다 보니까, 사람들이 주일 날 나들이 갈 계획을 다 취소하고 
다 집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보통 때는 빈집이 많았는데, 그 날은 빈집이 없었어요.
또 사람들도, 비맞으면서 전도하는 우리들을 보고,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나 봅니다.
그래서 그 날은 특히나 전도가 잘 되었고,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에도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