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이 곧고 의롭지 못한데도.. 승리했다 신9장 여러 설교 정리
지금 이스라엘이 있는 곳은, 가나안 땅에 내려 다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신1;1
성인 남자가 빠른 속도로 걸어서 가면, 가나안 땅까지 불과 하루도 안걸리는 그런 가까운 곳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꿈에도 그린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하나님은 잠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길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신명기 말씀을 전달하게 하십니다.
신명기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스스로를 잘 점검하고,
말씀으로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출애굽 2세대들이, 지난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는 동일한 실수와 범죄를 반복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신명기 말씀을 기록하게 하고 전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말씀에서는 유난히 광야 40년 길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했던 모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넘어지고 실패한 모습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불순종했던 사건들을
회상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 사건들을 회상하지만, 크게는 두 사건입니다.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만든 사건 9:7~21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 9:23~24
‘지난 역사의 실패와 실수를 통해서 다시는 하나님께 범죄 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백성이 되라’는 것이 신명기의 핵심 주제입니다.
◑적용 “나는 목이 곧고 의롭지 못한데도..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했다”
말이 뭔가 이상합니다. 목이 곧고 의롭지 못하면.. 전쟁에서 패배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근데 승리했다니요?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뭣 때문에요?
▲1. 상속 잘 받아 호강한 사람
우리나라에 왔던 제임스 레이니라는 미국 대사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 에모리 대학교 신학부 교수였습니다.
그는 집에서 학교까지 운동할 겸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출근 때마다 부촌을 지났는데, 한 집 앞에 초라한 노인 한분이 늘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고 가며 말벗이 되어주고 잔디도 깎아 주었습니다.
그것이 2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노인이 안보였습니다.
알아보니 세상을 떠나서 장례중이라고 했습니다.
급히 장례식장으로 가보니 그 초라하던 노인은 코카콜라 회사의 대주주였습니다.
그동안 그런 말을 한번도 안했던 터라 그는 놀라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유언장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레이니에게 유산이 상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난 2년 동안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준 친구였소.
나의 친구 레이니, 고맙소. 내가 당신에게 코카콜라 주식의 5%를 유산으로 드립니다.”
5%면 우리 돈으로 500억원입니다. 레이니가 그 돈을 받아들고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고민하다가 며칠 후 에모리 대학교에 전부 기부를 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에모리 대학에서는 레이니 교수를 총장으로 세웠고 16년간 총장으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총장을 마치자 우리나라에 미국 대사로 부임한 것입니다.
‘상속 잘 받아서 덕 본 사람’의 예화를 찾아서 든 것입니다.
지금 본문이 바로 그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출애굽 2세대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자격이 안 됩니다.
그런데 조상의 상속을 잘 받아서,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모세의 논지입니다.
-먼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먼저 그 땅을 하나님께 약속 받았고,
결국 그 성취는, 지금 출애굽 2세대가 받게 된 것이지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9:5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9:27
너희가 지금 가나안에 이제 곧 들어가게 되는데,
너희는 너희 죄로 인하여, 도중에 몇 번이나 멸망될 뻔 했으나
그 위기를 넘기고, 너희가 가나안에 결국 들어가게 된 것은
가장 먼저는 ‘너희 조상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다... 라고 모세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9:5
이 언약은, 오늘날로 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 언약, 시내산 언약 등은.. 모두 신약의 ‘복음의 언약’을 예표하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기 죄로 인하여, 도중에 몇 번이나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멸망 받지 않고, 현제적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살게 되었고,
장차 완성된 미래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맺으신 언약을 스스로 깰 수 없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멸망 받아도 마땅한 죄인들이지만.. 결국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들어가는 게 아니라, 부족하지만 그래도 부족한대로 순종의 발걸음을 계속 할 때!
▲2. 의롭지 못하지만 승리한 이스라엘
(만든 예화) 우리나라 군인 대표가, 다른 나라 군인 대표들과 운동경기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로, 솔직히 준비가 덜 되고 실력이 엉망인 군인들을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오합지졸 같았고, 고집도 세고, 통제에도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여러나라 선수들을 물리치고
그 경기에서 승리하고 당당히 우승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상대방 군인들이 더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상대방이 덩치는 더 컸지만, 더 오합지졸이고, 통제 불능의 선수들이었던 것입니다.
시합 전날까지도 술 마시고, 서로 싸우고.. 방탕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얻은 것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을 얻을만한 실력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목이 곧고, 우상숭배를 좋아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백성이었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백성들이 더 상태가 안 좋았던 것입니다.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4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네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5절)
오히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이죠. *6절, 13절
‘네 의로움 때문이 아니다’는 말도 세 번 나옵니다. *4, 5, 6절
그들의 악함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겸손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네 목이 곧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내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움 때문인 거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직장, 사업터, 주변국 등)은 우리보다 훨씬 크고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롭지 못하지만,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걸 믿어야 합니다.
9:1~3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그 백성은 네가 아는바 장대한 아낙 자손이라 그에게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3. 본문에 그리스도는 ‘중보자 모세’로 나옵니다.
그들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나
모세가 언약의 돌판을 깨뜨린 후에 (언약이 깨어졌음을 상징)
다시 40일간 시내산에 올라가서 금식기도 하며, 새로 언약의 돌판을 가지고 내려옵니다. :8~21
(언약이 다시 체결되었음을 의미)
본문8~21절에 그 역사를 길게 다시 모세는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말을 들으셨고’ :19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 받았고,
그 결과, 오늘날에 이르러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정리하면,
모세가, 내일모레 (가까운 미래에.. 라는 뜻)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백성들에게
본문 신9장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1) 네가 상속을 잘 받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조상이 맺은 언약, 또는 시내산 언약
2) 너는 의롭지 못하고, 너희는 자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나안 7족속이 악하기 때문
3) 너희는 중보자가 있었고, 그래서 너희는 겨우 진노를 면했다는 거죠 *7족속은 중보자가 없었죠
그래서 신명기 9장의 내용을, 반복해서 나오는 키워드 중심으로 다시 살펴보면
1)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말라! - 6절, 13절
2)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 언약을 주의해서 지키라! - 9절, 11절, 15절
3) ‘너희 의로움 때문이 아니다’ - 4절, 5절, 6절,
4) 너희는 ‘진노’를 당해 망할 뻔 했다! - 8절, 20절 *그런데 모세의 중보로 살아났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절대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잘 해서, 결코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너희는 목이 곧고, 의롭지 못하며,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구원 받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신앙 자세입니다.
▲사람의 공적을 자꾸 내세우지 마세요!
*이 내용은 특정인을 지칭하고 있으나, 그 분의 거울을 통해, 사실은 우리 모두를 가리킵니다
“(어느 설교에서 인용) 과거에 한국교회에 크게 쓰임 받은 분들이 여럿 계시지요.
그분은 그냥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시대에 쓰임 받은 것 뿐이에요.
잊어버리지 마세요!
우리가 그런 선배들의 좋은 모델은 당연히 본받고 따라가야 돼요.
그런데 공로주의는 아니에요. (사람의 공로를 너무 숭상하는 것은 안 돼요)
'이 분 때문에 우리 교회가 어떻게 됐고...'
이런 얘기는 가끔은 할 수 있으나, 자주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 하더라도, 본의 아니게 그리스도의 공로를 깎아내리게 되고
인간의 공로를 높이는 과오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하는 순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한 내용이 있어요.
'하나님은 두 가지를 싫어하십니다.
첫째는, 교회에서 사람의 영광받는 걸 그렇게 싫어하십니다.
둘째는, 세력과 숫자와 크기로 일하려는 모든 시도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이걸 여러분은, 꿈에서도 기억해야 돼요.
그 분이 사실 의도하지도 않았을 것인데, 너무 사람(그 분)이 박수를 받고 영광을 받아요.
(그건 사실 그 분을 통한 마케팅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어요.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요)
그런 분위기 조성은 목회자만의 몫일까요? 아뇨, 교인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어요.
물론 우리가 위대한 신앙의 지난 세대 선배님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건 마땅한 거지요.
그런데 자꾸 쓸데없이 (너무 자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이거 좋은 거 아니에요.
이게 결국은 인간의 공로주의가 된다니까요...”
직장에서 성공,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절대 자기 공로를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자녀들도 부모의 공로를 치켜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게 다 사람의 죄성을 간과하고, 그리스도의 칭의을 무시하고,
복음을 멸시하며, 인간의 자기 공로를 드러내는 언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남 얘기 하지 말고, 내 얘기를 해 봅시다.
이 세상에 살 동안, 내가 어떤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고 할 때,
후대 사람들에게 칭송과 인정을 바라는 것이, 어쩌면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런데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자기 무덤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뭘 알아 달라는 거예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4:8
사도바울도, 주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 그 외에는
인간의 어떤 인정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문 신9장에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백성들에게
뭘 기억하라는 것입니까?
-너희 목의 곧음, 뻣뻣함
-너희의 의롭지 못함
-그래서 너희는 도중에 멸망받아야 마땅했으나
그럼에도 너희가 구원받고, 성공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은
-언약 때문이고, 신약으로 치면 복음 때문이고,
-중보자 (모세) 때문이다. 신약으로 치면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어떤 분야에서 성공했든지 간에,
우리의 마음 자세와, 신앙 자세를 다시 한 번 포맷해서,
제 자리를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내가 잘 나고 똑똑해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의로워서 이렇게 성공했다..' 하다가는
반드시 머지 않아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폭망하고 쫄딱 망해서 쪽박차게 될 것입니다.
◑절별 해석 ////////////////////////////////
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이스라엘아 들으라’-'듣다'에 해당하는 원어 '솨마'는 '주의 깊게 듣다', '경청하다'는 뜻이다.
이는 6:4에서와 마찬가지로 청중들로 하여급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말이다.
‘오늘’- 원어 '하 욤'은 '오늘 당장'이 아닌 '바로 지금' 또는 '이때에'란 뜻으로
곧 임박한 시점을 가리킨다. 즉 이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뜻하는데, 실제로 그들이 요단을 건넌 것은 이때로부터 불과 두어달 후의 일이었다(수 3:14-17).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이미 앞에서 언급된 가나안의 후기 7족속을 뜻한다<7:1, 수 9:1-2>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38년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가나안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를 의도적으로 인용한 것이다(1:28, 민 13:28).
즉 아직도 일부 백성들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에 대한 두려움을 감지한 모세는
일부러 이같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백성들의 불신앙을 깨우치고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2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아낙 자손’-'아낙'(Anak)이라는 말은 '목이 긴 사람'이란 뜻이다.
이들은 주로 가나안 남쪽 산지에 거주하였는데(삿 1:20) 기골이 장대하기로 유명했다<1:28>.
3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맹렬한 불’-정확히 번역하면 '태우는 불', '소멸하는 불'(4:24)이다. 성경에서 이러한 불은
본절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렘 4:4, 겔 22:21, 습 1:18)
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4:11, 창15:17, 출3:2).
이는 가나안 거민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맹렬한 불에 지푸라기 타듯
순식간에 사그러질 것을 시사하는데, 하나님의 권능을 여실히 강조해 주는 표현이다.
‘속히 멸할 것이라’-외견상으로는 7:22, 출23:29, 30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1년이라는 유예(猶豫) 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실 것인즉 급히 멸하지 말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 랑게(Lange)는 본절의 '속히'(마헤르)란 말을
'허락되는 한도내에서 가능한 한 빨리'로 해석하였으며,
또한 혹자는 7:22, 출23:29, 30절은 가나안 족속 전체에 관계된 말이나
본절은 아낙 자손에게만 관계되는 것으로 말이나 본절은 아낙 자손에게만 관계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 문맥상 위의 주장들은 타당성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아마 이는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 본절은 맹렬한 불로 비유된 하나님의 권능과 진노 앞에서
가나안 족속이 쉽게 사그러지는 초개(草芥)같이 마침내는 멸망당하고 말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2) 그리고 7:22, 출 23:29, 30에 언급된 점진적 멸망의 대상은 가나안 거민들이지만,
본절에 언급된 급진적 멸망의 대상은 그들의 사회나 국가 체제일 것이다.
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심중에 이르기를-마음속에 독백(獨白)을 가리키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이다.
성경은 겉으로 드러난 죄 뿐 아니라 이처럼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죄까지도 동일하게
책망하며 금하고 있다(마 5:27, 28).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하지 말라’-크고 튼튼한 성곽을 구비한 채 외부의 침입에 대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강력한 가나안 거민에 비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노예생활과 40년 광야 방랑 생활을 거치는 동안 지칠대로 지친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이처럼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될 때
그들은 자칫 자만심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교만해질 우려가 있었다.
모세는 바로 이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적보다 더 무서운 스스로의 자만심과 교만을 주의하라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16:18)가 되기 때문이다.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약함을 인하여’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계시되어 온 가나안 족속들의 멸망 원인이다(창 15:16).
즉 소돔과 고모라가 스스로 쌓아올린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당한 것처럼(창 18:20, 21),
가나안 족속들도 아브라함 이후 근 700여 년 동안이나 계속 쌓아올린,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추악한 죄악들 때문에 그 심판의 날을 자초했던 것이다(7:4, 5, 25, 26).
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라
‘정직함’-이에 해당하는 '요쉐르'는 '곧다', '똑바로 보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그 동기에 있어서 올바르고 정직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체다카'와 엄격히 구별되어 사용되기 보다는
서로 교호(交互)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9:5, 왕상9:4, 욥37:23, 잠2:13, 사5:7),
여기서도 두 단어는 중언법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즉 5절에서 ‘공의로움’과 ‘정직함’은 같은 말을 중복 사용해서 강조한 것임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이는 가나안 정복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7:8>.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대신 해서 그 땅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족속들보다 더 의롭거나 정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선택하신 그들 열조들과 맺은 '사랑의 언약'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7:6-8).
따라서 이 사랑을 기억할 때 절대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본절의 핵심 내용이다.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이스라엘의 40년 광야사(史)는 불순종과 거역으로 점철된 패역한 역사였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24절)가 있다.
8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호렙 산에서 격노케 하였으므로’-출애굽 제 1년 3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호렙산(시내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사건때문이다(9~21절 , 출32:1-35).
‘여호와께서 멸하려 하셨느니라’-모세가 출애굽 제 2세대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까닭은,
지은 죄악으로 인해 마땅히 멸망시켰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내 멸망시키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는
이 사실이야말로 순전히 그분의 크고 자비로운 은총에 의한 것임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다.
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언약의 돌판들’-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는 두 돌판을 가리키는데, 일명 '증거판'이라고도 한다<출 25:16>.
‘사십 주야’
모세가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판을 받기 위하여 호렙(시내)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한 것은,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사역을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기도하신
예수님의 행위를 예표해 준다.
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너희 총회 날’-출애굽 제 1년 3월 초, 하나님의 십계명을 듣기 위해
모든 백성들이 시내 산 기슭에 모여든 날을 가리킨다(출 19:1, 9-18).
이때 백성들은 2일동안 몸을 성결케 하며 옷을 빤 후 제 3일에 성회(聖會)로 모였었다.
따라서 십계명은 두돌판에 기록되기 전 이미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총회'(카할)란 말은 헬라어 70인역(LXX)에는 '교회'란뜻의 '에클레시아'로 번역되었다.
11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모든 율법의 본질이자 핵심이요 기초인 십계명은 단순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다(출 19:5, 24:7).
즉 '십계명' Ten Commandments)은 그 표면으로 볼 때는 계명이요 율법이지만
그 내면으로 볼때는 하나님의 약속이 깃들어 있는 구원의 언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담은 궤를 '언약궤'(31:26, 삼상 4:5, 히 9:4, 계 11:19)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내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내 백성’
여기서 '내 백성'(my people)으로 번역된 개역 성경의 번역은 오역(誤譯)이다.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암메카'는 '네 백성'(your people)이란 뜻으로,
70인역(LXX)이나 영어 성경(KJV, RSV, NIV) 등은 모두 이를 올바르게
'네 백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개역 성경도 평행 구절인 출 32:7에서는 이를 '네 백성'으로 바로 번역하였다.
한편 하나님이 그때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 하지 않고 '네 백성'(모세의 백성)이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죄로 인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뱉은 언약이 파기되어
더 이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을 시사하는 무서운 말씀이었다. 출 32:7 주석 참조.
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내가 보았노라’-'보다'에 해당하는 원어 '라아'는 충분히 경험하여 확실히 알게 된 것,
또는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지켜 본 것을 가리킨다.
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고’-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공의에 입각하여 단호히 조처하겠다는 뜻이다.
이때 모세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는 한이 있어라도 백성들의 죄만은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곡히 탄원하였다(출 32:31, 32).
후일 복음을 배척하는 동족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 역시 이와 동일한 것이었다(롬 9:3).
이러한 중보 기도는 죄인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간구(요 17:9, 12, 20)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 바, 성도는 바로 이 때문에 끝내 멸망치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너로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 주석 참조.
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
‘산에는 불이 붙었고;-하나님의 임재의 위엄과 거룩 및 영광을 상징하는 초자연적인 불이다<4:11>.
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금송아지 숭배 사건은 특별히
'우상을 숭배치 말라'는 2계명(출 20:4-6)을 어긴 것이다.
따라서 금송아지 사건(출 32:1-35)은 참으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장엄한 광경(출 19:16 –19)
가운데서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지 미처 40여 일도 지나지 않은 때에 발생된 '급속한' 타락의 사건이었다.
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두 돌판을 깨뜨렸었노라-계약 당사자 중의 한쪽의 이스라엘이 계약 내용(출 19:5, 6)을
어기고 범죄하엿으므로, 자연히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그 효력을 상실하고 파기되었음을 나타낸
상징적 행위이다<출 32:19>.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전과 같이 사십 주야를’-모세는 시내산에서 두 번이나 사십 주야를 금식 기도 하였었다.
그중 첫번째는 십계명 두 돌판을 받기 위함이었으나,
이번 두번째의 주 목적은 성민(聖民)의 자격을 상실한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 기도 드리고
동시에 파기된 언약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다.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두려워 하였었노라’-원어 '야고르'는 '무서움으로 떨다'는 뜻 외에 '경고를 받다'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즉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이 크게 진노 하시는 것을 보고서
재삼 범죄의 결과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은 것이다.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한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는
마침내 하나님께 상납되었다. 그결과 모세는 두번째로 하나님께 상납되었다. 그 결과 모세는
두번째로 하나님께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아 시내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출34:28, 29).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출애굽기의 병행 본문(출 32:1-34:35)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이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까닭은,
최근까지 대제사장이란 거룩한 직분을 수행했던 아론 조차도 '하나님의 긍휼이 없었다면'
벌써 금송아지 사건 때 멸망당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교훈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가나안 입성이 결코 그들 스스로의 의로움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생생히 주지 시키고자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21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너희의 만든 송아지’-시내 산 기슭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송아지는 황소 형상을 한
애굽인들의 우상 '아피스'(Apis)를 본떠 만든 것이다. 아마 백성들은 먼저 나무로
그 형태를 조각한 후 그 위에 금으로 만든판을 덧입혀 만든 것 같다(Keil).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우상의 헛됨과 무력함을 똑똑히 입증시키고,
아울러 백성들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 행위를 완전히 근절시키기 위한 조처였다.
‘그 가루를 시내에 뿌렸었느니라’-출 32:20에 의하면,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백성들로 하여금 그 물을 마시도록 하였음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우상 숭배와 언약 파기(破棄)에 대한 죄값을 백성들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교훈하기 위함이었다(겔 18:20). 출 32:20 주석 참조.
22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
23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 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이 부분은 시간적 순서에 구애 받지 아니하고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으로 인해 야기된
당시의 심각한 상황을 전달하고자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신세대들에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결코 그들의 의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깨우쳐 주고 있다.
‘다베라’-바란 광야에 위치한 한 장소로 '불사름'이란 뜻. 출애굽 제 2년 2월에
백성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원망하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민 11:1-3).
‘맛사’-르비딤 근처의 한 장소로 '시험'이란 뜻. 출애굽 제 1년 2월 말,
이곳에서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한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출 17:1-7).
‘기브롯 핫다아와’-시내산 북동쪽 30Km지점에 위치한 장소로 '탐욕의 무덤'이란 뜻.
다베라 사건 직후, 만나에 싫증이 난 백성들이 모세에게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였는데,
이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1개월간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지만 주동자들은 모두 죽여
그곳에 장사(葬事)지내게 한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민 11:4-35).
‘가데스 바네아’-신 광야에 위치한 장소로 '방랑의 광야인 가데스'란 뜻.
출애굽 2년 5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가나안 정탐꾼들이 모세에게 불신앙적
보고를 함으로써 가나안 정복을 앞둔 백성들의 사기를 저하, 하나님의 뜻을 거역케 하였는데,
그 결과 백성들이 38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 방황하게 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민13:1-14:38).
‘여호와의 명령’-직역하면 '여호아의 입'이다. 그런데 이는 그분의 입을 통해 나온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말씀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것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임을 시사해 준다.
24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정확한 의미는 '내가 너희를 알게 된 그날부터’
(KJV, from the day that I knew you)이다. 그런데 공동 번역은 이를
'야훼께서 너희를 아시게 된 날부터'로 번역하였는데, 그것은 오역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가리키는 '내'란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백성들에게 본문을 설교하고 있는 모세 자신이기 때문이다.
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여전히 사십 주야를’-혹자는 본절을 오해하여 마치 모세가 세 번이나 40일 금식 기도를
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본절에 언급된 40일 금식 기도는
18절에 언급된 40일 금식 기도와 동일한 사건이다.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전히'란 단어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26 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인도하여 주신 주의 백성’-이 기도는 모세의 의도적인 표현이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한 이스라엘을 가리켜 '네가 인도하여 낸 네 백성'<12절>이라고한데 대하여,
모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택하사 언약을 맺으셨던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자손이기 때문이다(창 17:6, 26:4, 28:14, 35:11).
‘강한 손’-성경에서 '손'은 흔히 '힘'이나 '능력', 또는 '수단'을 상징하는 환유법(metonymy)적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창 32:11, 출 3:19, 15:17, 사 59:1). 반면 '손가락'은 공교한
재주를 나타내는 관용적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시 8:3, 사 2:8, 17:8).
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로서, 일찍이 선민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 이스라엘은 이들 족장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호소했고, 하나님은 이들과 맺은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을 돌보셨다<5절>.
따라서 금송아지 숭배 사건 당시 모세도 일찍이 이스라엘의 열조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언약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길 뿐이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창19:29)
룻과 그의 가족을 멸망 중에서 구출하여 내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이 더욱 모세로 하여금 범죄한 백성들을 위해 중보 기도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 주었을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의 응답하심이 없다면 구원에 이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롬 2:4, 3:25). 출 32:13 주석 참조.
28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 만한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하기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능력도 없고’-사죄(赦罪)의 명분으로 모세는 일찍이 족장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 중보 기도를 드린데 이어(27절)
두번째로 모세는 이방인들로부터 절대 비방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과 거룩하신 이름에 근거,
이스라엘의 사유(赦宥))를 간구하고 있는 장면이다.
2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노라
‘주의 기업’-'기업'에 해당하는 원어 '나할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차지하게 된 '소유'나
혹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물'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온갖 정성과 사랑을 기울여 왔으며 사망의 길에서
친히 인도해 내셨으니, 이스라엘은 실로 귀한 하나님의 소유(보배)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성도들은 예수께서 당신의 값비싼 피를 흘려 사신
그의 소유(기업)이다(행 20:28, 계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