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택하실 그곳에서만 예배를 드려라 신12장 여러 설교 정리
(서론) 신명기의 율례와 법도와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그들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과거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받은 것도 은혜요,
광야에서 40년 동안 멸망당하지 않고, 지금의 이 자리에 까지 오게 된 것도 은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살게 되는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앞서 신7, 8, 9장에서 살펴보았지요)
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한량없는 은혜를 받았으니,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12장부터는, 제사 제도에 관한 율례와 법도가 나옵니다. *참조한 영어 자료
이것은 모두 신명기 5장에 나오는 ‘십계명’의 해석 및 해설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는데,
다시 말해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다른 우상을 만들지도 말며, 섬기지도 말라’는
십계명 중에서 특히 1~2 계명에 대한 자세한 해석 및 해설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덜 중요하게, 좀 지루하게’ 여겨질지 모르나
3600년 전 당시에는, 사방이 우상 천지였고,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는 태도가 각별했습니다.
그런 당시 문화를 감안하면, 우상 문화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우 중대한 이슈 였습니다.
오늘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 문화에서는, ‘우상’은 어쩌면 ‘전쟁’과 더불어
당시 사람들의 최고 화젯거리요, 관심이 초점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에겐 조각해 만든 우상은 없지만, 인터넷과 휴대폰, 스포츠 등 다른 우상들이 있지요)
▲신12장의 <개요>
모세가 여기서 ‘제사 제도의 법’을 언급하는 이유는,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우리 관점에서 읽습니다.
그래서 실생활에 필요한, 어떤 ‘적용’할 점을 눈여겨 보면서 성경을 읽습니다만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관점으로’ 성경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제사, 곧 예배’에 관해 다음과 같은 규례와 법도를 가르칩니다.
① 1~3절,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산당과 우상을 다 훼파하라
이렇게 함은 아래 4~14절에 나오는 ‘온전한 예배’를 위함이었습니다.
② 4~14절, 예배를 드릴 적에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제사를 지내라 5절,
-번제와 십일조와 낙헌제 등 예물을 바쳐라 11절
-노비와 레위인과 함께 제사를 드리라 12절
-택하신 그곳으로 가서 예배를 드려라는 말씀이 5절, 11절, 14절 등에 걸쳐 6번이나 나옵니다.
③15~28절, 제사에 관련된 고기를 포함해서 음식 먹는 규례에 관하여
④29~32절, 가나안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
◑적용
▲택하실 그곳으로 가서 예배를 드려라는 말씀이 5, 11, 14, 18, 21, 26절 등 6번이나 나옵니다.
①‘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5
즉 이는 이스라엘 사회의 '유일 중앙 성소'에 관한 규정입니다.
결국 이것은 훗날 유다 지파의 땅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립됨으로써 역사적 성취를 보았는데
이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의가 담겨 있습니다.
1)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 풍습으로부터 구별되어 순수한 여호와 신앙의 보전을 위해
2) 12지파로 분할된 이스라엘 사회 전체를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결속시키기 위해
②‘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너희의 번제와...’ :11
이처럼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특별히 한 곳을 선택하시는 목적은
즉 눈에 좋은 곳에 임의대로 제단을 쌓고 자의적 방법으로 우상을 섬기던 이방 풍습과는
엄격히 구별된 상황에서, 그리고 구별된 선민 이스라엘에게서,
구별된 거룩한 이름이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③‘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14
‘오직...한 지파 중에... 택하실 그 곳’ - 이스라엘 여러 지파 중에서 한 지파를 택하신 후,
그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도 다시 한 곳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유일한 중앙 성소로 삼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르키는 '한 지파'는 곧 장차 그 기업 중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질 유다 지파요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이방 종교는 ‘다신교’ 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지역 신’ 개념이 강했습니다.
‘여러 장소’라는 것은 곧 ‘여러 신’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실 한 장소’를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유일신’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다신교의 여러 잡신들과 엄격히 다른 ‘유일신’이란 뜻입니다.
나머지 18, 21, 26절은 위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렇게 3~6번이나 강조한 이유는,
구약의 모든 성소, 성전은 사실상 오실 그리스도를 모형하는 그림자였죠.
구약의 성전은 가변적 입니까, 영구적입니까?
전부 가변적 또는 임시적 이었어요.
성막 때는 장소도 이리 저리 옮겨다녔고,
솔로몬 성전이 지어진 후에도, 훼파당하고, 또 무너지고...
이것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거예요.
성전 되신 예수님은 가변적이 아니라, 영구적 및 불변적이시죠.
그런데 본문에 가변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정하신(택하신) 곳에서 제사를 지내라’고 말씀한 이유는, :5 등 6번
이렇게 장소를 지정하신 이유는,
즉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8절에 재미있는 표현이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8
‘우상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상은 결국, 인간의 자기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가짜 신인데,
누가 애써, 공을 들여서 우상을 만들 때.. 누구를 위해 만들겠어요? 자기 자신들인 인간을 위해 만듭니다.
지역 신은, 그 지역을 위해 만들고,
뭔가 자기가 소원하는 것을 들어줄 것 같은.. 그런 신을 만드는 거죠.
만약 자기 소원과 반대되는 신(우상)이라면, 사람들은 그런 신을 만들지 않을 것이며,
설령 그렇게 만들어진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믿거나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이익과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요...
모세가 8절에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가나안에서는 그렇게 말지니..’
이 말씀의 뜻은 ‘너희가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 라는 뜻이 됩니다.
무병이 좋아보이면 ‘건강’의 신을 만들고
장수가 좋아보니면 ‘장수’의 신을 만들고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루어 줄 법한 신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토정비결이나 점보러 다니는 것이, 다 그런 심리이지요.
모세는 그렇게 자기 소견에 좋을 대로 (자기 원하는 대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8
▲우리가 주님을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목숨을 걸었던 것(우상)들이
결국은 우리를 배신해서 우리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리디머 (구세주)'라는 무언극이 있는데, 그 내용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런 지시를 받고난 다음에
호기심이 생겨서 가서 어떤 물체를 건드려 보았는데,
그것은 술과 마약을 제공하는 마귀(현대판 선악과)였습니다.
그 마귀가 사람에게 술과 마약을 제공하자,
이 사람이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따라갈까 말까 하다가
술과 마약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거기에 깊이 빠져버리게 됩니다.
술과 마약을 경험하고 그것에 빠져버리고 난 다음에
마귀가 이 사람을 처참하게 버리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연극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마귀가 돈을 보여주는데,
처음에는 사람이 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그게 뭔지도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미적미적 하다가, 차츰 돈의 냄새를 맡게 되고, 결국 돈에 환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마귀가 이 사람을 배신하고, 처참하게 버리는 (배신하는) 것을... 무언극이 보여줍니다.
세 번째로 마귀가 사람에게 여자를 보여줍니다.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자가 남자 앞에서 춤을 춥니다.
남자는 여자와 같이 춤을 추면서, 여자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여자가 남자를 눕혀놓고 뺨을 세게 몇 차례 때린 후에... 떠나가 버립니다.
남자가 결국은 버림받은, 배신 당한 것이지요.
내가 지금 그 우상들을 버리지 않으면,
내가 그 우상에 흠뻑 빠진 후에
결국은 그 우상이 나를 배신해 버린다는.. 그런 메시지를 전해주는 무언극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우상을 버리지 않으면, 결국 그 우상이 나를 배신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우상을 사랑해서 푹 빠지게 될 때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속한 것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깊이 빠져도,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 존재는 단 하나 뿐입니다. - 하나님!
그 외 어떤 것도, 우리가 깊이 빠지면, 절대 내가 배신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든지요, 그게 내게 ‘우상’이 되면, 결과는 ‘배신 당함’으로 결판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만 잘 섬기라고
그런 우상에게 배신을 당하게 허락하셔서, 그 우상들을 다 끊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방해되는 한 가지-나의 집착, 우상-는 무엇인가요?
물질, 교만, 사람.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인가요?
나는 과연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요?
성경은 통털어 그것을 강조하는데 말입니다.
인간에게 적당한 명예, 재산, 가정... 이런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집착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들추어내시고
결국에는 그것을 내게서 빼앗아가실 것입니다. 안 그러면 내가 파멸하니까요.
오늘 밤이나 새벽 조용한 시간에, 내 정신이 맑을 때,
내 마음이 평안하고 감사한다면...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난다면, 내게 아무 집착이 없다는 증거요,
내 마음이 뭔가 불만족스럽다면... 내가 새벽에 눈을 떴는데, 제일 먼저 어떤 우상이 생각난다면,
그건 내게 우상 숭배가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새벽에 눈 뜨면 제일 먼제 생각 나는 게 '우상'이라고 하죠)
그래서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3
-이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아무 곳’에는 우상의 주상과 우상 숭배가 있었고, (여호와는 '택한 곳'에 계셨죠. 본문에 6번 나옴)
특히 대규모로 하는 곳에는, 공통적으로 꼭 매춘 같이 것이 제사의식 속에 끼어 있었습니다.
아니면 ‘아이를 죽인다든지(밀곰)’ .. 어떤 사람의 이목을 끌만한 센세이셔널 한 것이 꼭 있었습니다.
▲30절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우상숭배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얼마 전에 소개했지만, 의미 있는 예화라서 다시 소개해 드립니다.)
(예화 펀글)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우리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입니다.
제가 와이프랑 한국 마트에 장 보러 쇼핑을 갔다가,
제가 쇼핑하는 걸 무척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마침 그 맞은 편에 호수가 하나 있어서, 제가 아들을 데리고 호수에 가서
아내의 장보기가 끝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호수에 가서 보니까, 어떤 미국의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되어 보이더라고요.
그 아이가 낚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호수에서 낚시를 하는데, 얘가 메기를 한 마리 잡았어요.
그래가지고 이 친구가 그 메기를 가지고 놀면서, 우리가 다가가니까 보여주는 거예요.
자기가 어떻게 하는지.
그런데 낚싯대 릴을 막 감으니까, 메기가 꼼짝없이 끌려 오더라고요.
호숫가에까지 오니까, 줄을 더 당기니까 물 위로 첨벙거리고 올라와요.
메기가 입을 쩍 벌리고, 그 턱에 갈고리가 딱 걸려가지고,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몸부림을 치는 거예요.
제가 쳐다보면서 '야 너무 안 됐다'
그런데요. 이 미국 소년이 그 메기를 다시 풀어주는 거예요.
낚시바늘을 빼지 않고, 그냥 낚싯줄만 풀어주는 거예요. 릴의 잠금 장치를 푼 거죠.
줄만 풀어주고 딱 놔두니까, 메기가 죽어라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막 도망가요.
한참을 도망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거에요.
그런데 이 아이가 그러더니 다시 낚싯줄을 감기 시작하니까
메기가 꼼짝없이 또 다시 끌려오는 거예요.
아이는 (잔인하게도) 낚싯줄을 감았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며, 그 메기를 갖고 놀아요.
그 조그만한 미국 소년이 말이죠.
그때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 거죠.
'이게 너희들의 모습이다. 죄의 결박에 묶여서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가 시키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의 모습이다!'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요.
'정말 그렇구나.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된게 이런 거구나.
죄가 당기면 끌려가야 되고, 죄가 좀 풀어주는 것 같으면 괜찮은 것 같고..'
이 죄는 정말 무서운 주인이더군요.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죄의 권세를 깨뜨리신 거에요.
그 죄의 사슬을 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죄에서 해방되게 하신 거죠.
그분이 십자가에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귀의 낚시 바늘에 꿰이지 않도록, 매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 사랑하고, 버리지 못하는 우상이 있다면,
벌써 마귀의 낚시 바늘에 꿰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하면서, 그 우상을 버리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십계명을 지키기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고, 우리의 일평생 싸움이 될 것입니다!
◑절별 해석 -출처- ..................................................
1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얻게 하신 땅’ - 이처럼 하나님이 이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은
1)언약적 측면,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시한 이스라엘의 열조들에게 언약을 통해
이미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약속하셨으므로, 그 소유권은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의미이다
(창17:1-8, 26:1-5, 28:10-15).
2) 히브리적 사고(思考)와 문체적 특징이다. 즉 이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명백한 기정
사실임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문법상의 '확신의 완료형'(perfects of confidence)이다.
2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높은 산...푸른 나무 아래’ - 가나안 족속들은 대개 높은 산에 우상을 섬기는 처소를 설치하였는데
(왕상 14:23, 렘 2:20, 3:6, 겔 6:13), 그 까닭은 조금이라도 더높은 곳에 올라설수록
그들의 경배 대상인 하늘의 우상신에게 더욱 가까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우상 섬기기를 즐겨하였는데(왕상 14:23, 왕하 16:4, 17:10, 대하 28:4),
그 까닭은 자연의 웅장함을 통해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들의 의식에 더욱더 엄숙함과 신비감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여야 할 사실은
거룩한 예배 처소를 마련하거나 예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경배드리는 자의 '마음가짐'이란 점이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는 여느 우상과는 달리 무엇보다도
예배하는 자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참 신이시기 때문이다(삼상 16:7).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라고 교훈하셨다(요 4:21-24).
‘마땅히 파멸하여’ - 원어 '아바드'는 '파괴하고 파괴하다'는 중첩어이다.
그러므로 KJV는 이를 '철저히 파괴하다'(utterly destroy)로,
RSV는 '반드시 파괴하다'(surely destroy)로, 그
NIV는 '완전히 파괴하다'(destroy completely)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3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주상...아세라 상’ - '아세라'(Ashera)는 가나안의 대표적인 여신 중 하나이며,
'주상'(柱像)은 우상 숭배와 관련된 기념 비석을 일 컫는 단어이다. 7:5 주석 참조. *기둥 주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 우상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없애 버리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름이란 그것에 의하여 대표되는 사물이나 사람의 '존재' 또는 '인격'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7:24>.
아무튼 이 명령은 여호와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 관습에 물들어
범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자 반드시 필요한 방법임을 보여 준다(살전 5:22).
4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그 처럼 행하지 말고’ - 정확한 번역은 '그들의 방식대로 하지 말고'이다.
즉 가나안 족속들이 자의(自意)에 따라 산이나 푸른나무 아래에 신전이나 신당을 지어 놓고,
각자 편리한 대로 우상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경배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미 백성들에게 자신을 섬기는
규례와 방법에 대하여 지시해 주셨는바(출 20:3, 11, 레 1-7장),
이제 자신을 섬길 장소를 계시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계시의 근본 정신은 진정 여호와를 참 되시며 완전하신 인격자이자 전능하신 신으로 알고,
바로 섬기라는 것이다(롬 1:21-23).
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 하나님의 이름은 곧 성품과 속성을 증거해 주며, 더 나아가
그 분의 존재 자체와 인격을 의미한다<3절.. 따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신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 존재를 그 곳에 계시하시고, 또한 당신의 모든권위와 영광을 그곳에 두시겠다는 의미이다.
‘택하신 곳’ - 이 말은 학자에 따라 에루살렘 혹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는가 하면,
또는 어떤 특정한 한 장소를 가리키기 보다는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예배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 정황에 의거할 때, 이 말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수 14:6-21:45)
가운데서 한 특정한 곳을 선택하여 지정하시겠다는 의미인 것으로 해석 되어야 한다.
즉 이는 이스라엘 사회의 '유일 중앙 성소'에 관한 규정이다.
결국 이것은 훗날 유다 지파의 땅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립됨으로써 역사적 성취를 보았는데(대하 6:5, 7:12),
이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의가 담겨 있다.
1) 종교적 의의상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 풍습으로부터 구별되어 순수한 여호와 신앙의 보전을 가능케 하였다.
2) 사회적 의의상 12지파로 분할된 이스라엘 사회 전체를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가나안 정복 후 그곳에 정착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일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경우,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여 지정한 그 '택하신 곳'(5절)에서만 드려야 했다.
‘번제’ - 짐승을 잡은 후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레 1:3-9)로
'온전한 헌신'을 상징한다<레 1:3-9 강해, 번제에 대하여>.
‘희생’ - 속죄(贖罪)를 위하여 하나님께 피를 흘려 바치는 모든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레 1:11, 3:2).
‘십일조’ - 한편으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활을 보장하고(민 18:21-32),
또 한편으로는 가나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신 26:12-15) 소득의 십분의 일(1/10)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종의 헌물이다<창 28:10-22 강해, 구약의 십일조>.
이러한 십일조(十一條, tithe)의 기원은 이미 모세 이전 곧 아브라함(창 17:17-20)과
야곱(창 28:22)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레 27:26-24 강해, 십일조의 역사>.
한편 오늘날에 있어서도 십일조는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로서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고후 9:10-12). 민 18:21-32 주석 참조.
‘거제’ - 화제(火祭), 요제(搖祭), 전제(奠祭)와 더불어 제사 드리는 4대 방법 중 하나이다.
이는 화목 제물의 뒷다리 부분을 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방법인데,
제사 후 그 제물은 제사장으로 돌려졌다(레 7:14, 32).
‘서원제’ - 낙헌제(樂獻祭), 감사제(感謝祭)와 더불어 화목제의 3대 종류 중 하나로,
하나님께 맹세하여 바치기로 서원한 것을 그분께 바치는 제사이다(레 22:21).
‘낙헌 예물’ - 즉 낙헌제(일명 자원제)를 가리키는데, 자발적이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제사이다.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드리고’ -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사건과 관련된 규례이다.
즉 당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이스라엘의 초태생(初胎生)은 후일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어린 양의 죽음으로 인해 대속되었는데, 그 결과 모든 초태생은 당연히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쳐야 할 그의 소유가 된 것이다(출 12:1-13:2).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성도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라 하겠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롬 3:25).
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여호와 앞에서 먹고’ - 이 말은 하나님께 바쳤던 희생 제물들을 나누어 먹고 즐거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들을 어디까지나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리워졌을 뿐이다(레6:24-30, 7:1-10, 민18:8-20).
이 말은 곧 한해의 추수가 끝나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중 얼마를 구별하여
감사 잔치를 베풀고 온 가족이 참여하여 기쁨으로 즐기는 것을 가리킨다(14:22-27).
‘너희 가족’ - '가족'에 해당하는 원어 '바이트'는 '미쉬파하'(가족, 족속, 종족-29:18,
창10:5, 레25:47)보다 더 구체적인 단어로 혈연적인 가족 뿐 아니라 그 집에 거하는 종,
심지어는 그 집에 잠시 유하는 나그네(5:14, 출 20:19)까지도 의미한다.
8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안식과 기업’ -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차지하게 될 땅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기업'(상속물)이며, 동시에 그 곳은 더 이상 광야 40년과 같은 유랑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안주하게 될 '안식'의 장소라는 말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영적 가나안, 곧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안주하게 되는 것을 예표해 준다(히 9:15). 실로 그 같은 궁극적 안식은 개인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할 때, 종말적으로는 예수 재림시에 이루어질 것이다(고후 5:1, 히 6:2).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여호와께서...택하실 그 곳’ - 이처럼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특별히 한 곳을
선택하시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즉 눈에 좋은 곳에 임의대로 제단을 쌓고 자의적 방법으로
우상을 섬기던 이방 풍습과는 엄격히 구별된 상황에서, 그리고 구별된 선민 이스라엘에게서,
구별된 거룩한 이름이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아름다운 서원물’ - '아름다운'에 해당하는 '미브하르'는 '선택된', '정선(精選)된', '가장 좋은'이란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특별히 선정해 놓은 최상품의 서원물을 가리키는데,
드리는 자의 지극한 정성과 감사하는 마음을 잘 반영해 준다. 6절 주석 참조.
12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 이미 앞서 언급한 감사 잔치<7절>에 수하(手下)의 종들 뿐 아니라
레위인들까지도 참석케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레위인들을 잔치에 반드시 초청하도록 규정한 것은
종교적인 이유 뿐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 따로 생계를 위한 분깃이 없는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레위인은...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 이스라엘의 여느 지파와는 달리 레위 지파에게는
가나안의 토지가 분배되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토지 분배에서 레위 지파를
제외시킨 까닭은 오직 그들 지파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해야 하므로,
토지를 경작하거나 가축을 칠 겨를이 없기 때문이었다<10:9>. 민 18:24 주석 참조.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오직...한 지파 중에... 택하실 그 곳’ - 이스라엘 여러 지파 중에서 한 지파를 택하신 후,
그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도 다시 한 곳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유일한 중앙 성소로 삼으실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르키는 '한 지파'는 곧 장차 그 기업 중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질 유다 지파
(창 49:8-12, 시 78:67-70)를 가리킨다<5절>.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제물용(祭物用)이 아니라 단순히 먹기 위해 잡는 일반 식용(食用) 고기에 관한 규례이다.
즉 모든 희생 제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소에서 잡아야 했지만,
식용 짐승은 자기 거주지에서 마음대로 잡아도 무방함을 보여 주고 있다(20-28절).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 본절은 레17:3-6과는 다른 내용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제물용이든 식용이든 간에, 모든 짐승은 반드시 회막 안으로 가져와
그곳에서 잡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같은 차이점은 레위기의 규례가 회막을
중심으로 운집하여 생활하던 광야 유랑 시절에 주어진 것인 반면,
본절의 신명기 규례는 이제 멀지 않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백성들이 각자의 기업대로
여러 곳에 흩어져 살게 된 시점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계시발전적(啓示發展的)측면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 하나님께 희생 제사로 드린 제물은
비록 제사장과 그 가족일지라도 반드시 의식상(儀式上) 정결한 자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레22:1-16).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먹기 위해 잡은 식용(食用) 짐승의 고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구분이 필요없음을 밝히고 있다.
‘노루나 사슴을 먹음 같이 먹으려니와’ - 노루와 사슴은 이스라엘의 먹을 수 있는 짐승이긴 하였지만(14:5),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두짐승은 정(淨)한 자건 부정(不淨)한 자건 간에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잡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본문의 의미는 이와 마찬가지로
소나 양, 염소 등과 같이 제물용으로쓸 수 있는 짐승(레 17:3)도
단순히 먹기 위해 잡을 경우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어디에서나 잡아 먹을 수 있다는 듯이다.
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피는 먹지 말고’ - 생명에 대한 존중 처사이다. 왜냐하면 피는 생명 그 자체와
동일시 되었기 때문이다<23절>. 레 17:10-14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 제물용으로 잡은 짐승의 피는 제단에 바쳤지만(레 1:5, 민 18:17),
식용으로 잡은 짐승의 피는 이처럼 땅에 쏟아 부어야 했다.
그 까닭은 피로 상징되는 생명으로 하여금 원래 그 생명이 비롯되었던 흙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다(창 3:19, 전 3:20).
또한 이는 생명의 주권이 오직 흙에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이기도 했다(창 2:7).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앞 부분에서 상세히 다룬 내용(4-14절)을 다시 요약하고 있는 부분으로,
곧 매년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거두는 풍성한 수확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며,
잔치를 연 후 온 가족과 레위인들로 더불어 즐기라는 것이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 가나안 땅의 3대 소산물로, 히브리인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간주하였다(렘 31:12, 욜 2:19).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 레위인들은 그들이 맡은 독특한 종교적 직무로 인해
오직 그 일에만 전념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 여느 지파와는 달리
생계를 보장할 만한 기업이나 분깃이 주어지지 않았다(10:9, 민 18:21-24).
따라서 레위인들은 생계에 관한 한 오직 여호와만을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런 점에서 여호와께서는 십일조외에 절기나 잔치의 날에 레위인들을 초청하는 규례를 만들어
그들의 생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셨던 것이다.
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 본문 중 15절에서 주어진 규례가 실생활에 적용될 시점을 언급한 것이다.
즉 백성들이 지금 모압 평지에서 받고 있는(1:5) 본 규례는 멀잖아 이스라엘이 요단 강 서편
가나안 본토에 입성하여 각 지파별로 기업의 땅에 정착한 후시행될 규례인 것이다(8절).
21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너는 여호와께서 주신 소와 양을 잡아 네 각 성에서 네가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먹되
‘네게서 멀거든’ - 레 17:3-6의 율법이 본문 중에서 완화된 이유이다<15절>.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 지파별로 각기 땅을 분할해서 생활하게 되면,
남쪽 브엘세바에서 북쪽 단까지는 약 240km 정도가 되기 때문에,
식용(食用)으로 쓸 짐승을 잡을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일일이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에까지
가는 것<5절>은 거의 불가능 하였다.
뿐만 아니라 200만 명이나 되는 인구(출 12:37)가 고기를 잡을 때마다 성소로 모여 든다면
단 하나뿐인 중앙 성소로써는 그것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레 17:3-6의 규례가 발전적인 측면으로 변경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22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23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 '피'(담, , 하이마)는 그 자체에 생명과 죽음이라는
이중적(二重的) 개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구속사상 그것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는
속죄(贖罪)의 상징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히 9:22).
따라서 성경은 이러한 최고의 종교적 성물(聖物)인 피의 식용(食用)을 엄격히 금지하였는데
(창 9:4-6, 레 7:27, 17:10), 신약 시대의 예루살렘 총회에서도 동일한 입장이 견지되었다(행 15:20).
이처럼 피의 식용을 철저히 금지시킨 데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즉
1) 생명 존중 사상이다. 피는 곧 육체의 생명과 동일시되었으니,
그것을 마시는 것은 곧 생명을 삼키는 것과 다름 없는 잔인한 행위였던 것이다.
2) 생명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민 16:22).
따라서 누구든 생명의 상징인 피를 마시는 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는 행위가 된다.
3)무엇보다도 속죄의 유일 무이한 수단인 피는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할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는 점이다(히13:11, 12).
따라서 누구든 피를 경홀(輕忽)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와 그 방편을 업신 여겼다는
죄책을 면할 수 없다.
4) 이 외에도 피를 마시는 행위는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즐겨 행한 사악한 제사 의식 중
한 부분이었으니,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할 선민 이스라엘은 마땅히 크게 삼가했어야 했다.
24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25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물같이 땅에 쏟으라’ - 16절 주석 참조. 피를 먹지 말라...복을 누리리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 7:27)는 저주와는 대조되는 축복이다.
그러나 이 두 구절은 모두 백성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피의 식용 금령(禁令)을 준행하게
하기 위한 교훈이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26 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성물’ - 원어 '코데쉬'는 '성별된 것' 즉 짐승(민 18:17)이나 토지(레27:21), 가옥(레 27:14)
따위를 막론하고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특별히 구별해 놓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
‘서원물’ -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기위해 자발적으로 바치기로 서약한 예물을 가리킨다.
비록 이러한 서원(誓願)을 하고 안하고는 개인의 자유에 달렸지만 일단 맹세한 서원에 대하여선
종교적 구속력이 작용하였다. 즉 성경은 서원한 것에 대한 이행(履行)을 크게 강조하였으며,
또한 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경건성과 신실성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표로 이해하였다(민 30:2, 전 5:4-6).
‘택하신 곳’ - 5절 주석 참조. 한편 '유일 중앙 성소'를 의미하는 이 말은
본장에서 모두 5번(5,11,14,18,26절) 씩이나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당시 가나안땅의 우상 제사 제도가 얼마나 각양 각색이었는지를 간접 시사한다.
27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드릴 것이요 네 제물의 피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
‘다른 제 희생’ - 하나님께서 희생 제사를 드린 자가 그 제물을 먹을 수 잇는 제사는
구약의 5대 제사 즉 번제, 소화,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중 오직 화목제뿐이다(레 7:15-17).
28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이 모든 말’ -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것과는 구별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을 설명한
제사 규례(4-27절)를 가리킨다. 그 중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은 택하신 곳(유일 중앙 성소)에서의
희생 제사 규례와 피의 식용 금지 규례이다.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게 하실 때에
30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그들의 신을 탐구...하지 말라’ - '탐구하다'에 해당하는 '다라쉬'는 '밟다', '따르다'는 뜻과 함께
'예배하다', '찾다'는 뜻도 지닌다. 한편 고대인들은 각지역마다 그 지역을 다스리고 지키는
고유한 자체의 수호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역 수호신(地域守護神) 사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만일 그 신들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면 큰 재난을 당하게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면, 그들도 마찬가지로 가나안의 신들을
두려워하여 그 신들을 하고 경배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미리 경고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과 전우주적인 주권성(主權性)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이다<10:17>.
31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꺼리시며’ - 원어 '사네'는 단순히 싫어하여 피하는 것을 넘어서 철저히'증오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증히 여기시는’ - 원어 '토에바'는 구역질을 할 만큼 도덕적으로'지극히 혐오스러운 것'을 가리킨다.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 인신 제사를 통해 몰렉을 섬기던 풍습을 가리킨다(왕하 23:10).
'몰렉'은 본래 암몬 족속의 민족신으로 '밀곰'(Milcom, 왕상 11:5)
또는 '몰록'(Moloch, 왕하 23:10)으로도 불리웠는데,
이 우상 숭배의 특징은 인간 희생 제사였다.
한편 이 사악한 몰렉 예배 의식은 점차가나안 여러 족속들에게 퍼져 그들도 곧 이를 숭상하였으며,
심지어 훗날 이스라엘까지도 이에 물들었었다. 그러나 이방 우상 종교의 특징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神)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물론, 몰렉 숭배에서도 보여지듯
심지어 자기의 자녀들까지도 산채로 불에 태우는 인신(人身) 제사 형태를 취하기도 하며,
나아가제사 의식의 일부로서 사제(司祭)들이 서슴없이 성(性) 행위를 하는 등 대체적으로 광신적이고 부도덕했다.
따라서 거룩히 구별된 여호와의 선민 이스라엘은 결코 그모양이라도 본받지 말아야 했다.
한편 몰렉 제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레 18:21 주석을 참조하라.
3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본절은 본장(12장)의 결론 부분이자, 다음 장(13장)의 서언(序言) 역할을 한다(Keil).
-
- 현재글신12장, 택하실 그곳에서만 예배를 드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