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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장 1~7 임마누엘, 하나님의 강한 의지

LNCK 2022. 7. 8. 07:41

https://www.youtube.com/watch?v=3QPz5xZHeIk 

 

◈임마누엘, 하나님의 강한 의지           눅2:1~7            2021.12.15.출처

 

오늘 주시는 말씀은 눅2:1~7절입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나?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셔야만 했나?

우리 생명은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거든요.

 

요한복음 15장에 포도나무 비유처럼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고

떨어지면 죽는 거 아닙니까.

 

근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어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어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어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사망이, 멸망이 임하게 된 거거든요.

 

우리가 돌아가야 되는데 돌아오지 않으니까

예수님이 찾으러 나오신 거예요.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 그러잖아요.

예수는 (그 이름 뜻이) 구원이고요.

 

▲그런데 구약 이사야서에

예수님 탄생에 대한 예언이 있어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데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이미 있었어요. 구약 이사야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거든요.

 

그런데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그랬어요.

예수님이 태어났는데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러면서

이제 우리 다른 복음서에도 보면

이것은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을 했어요.

 

이게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려면

예수라고 하는 이름이 아니라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줬어야 되잖아요.

 

근데 정작 태어났을 때 이름은 예수였어요.

그런데 임마누엘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복음서 기자들은 그냥 얘기했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예수는 곧 임마누엘이기 때문이에요.

 

예수, 구원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거예요.

그게 구원이에요.

 

우리와 하나님이 함께 있는 것

붙어있는 것, 그게 구원이거든요.

 

▲근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니까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까

불러도 오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임마누엘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붙으셨어요.

그게 구원이거든요.

 

그래서 예수(구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고,

임마누엘 God with us 은, 예수 Salvation 이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하는 것 이상의 복음은 세상에 없어요.

 

사람이 되신 예수님처럼 감동적인 사건은 없어요.

 

저는 그 사실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하여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시지 않으시는구나

사람이 되시질 않나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를 않나

 

난 너 죽는 꼴 못 본다. 못 본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살릴거야..!’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고 어려워서

정말 죽게 되었을 때

 

목회하다 진이 다 빠져서 포기하고 싶었을 때

제가 바람벽에 붙어있는 나무 십자가 보고 살았다. 그랬잖아요.

 

여러 번 간증했는데

그때 그 십자가가 저한테 이렇게 얘기했거든요.

 

‘난 너 죽는 꼴 못 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살릴 거야!’

 

제가 그날 정말 마음으로 그 음성을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살아났거든요.

 

그때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라는 사실을

저는 삶으로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의 강인한 구원의 의지를,

사람이 되신 예수님,

사람이 되어 아기 예수로 탄생하신 이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시려고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볼 수 있어요.

 

▲이제 성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때에 맞춰서 우리가 지금 누가복음 시작을 했는데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저는 문득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예수님이 뱃세다 광야에서

제자들을 가버나움으로 건너가라 그랬잖아요.

 

근데 가는데 풍랑이 일어서

다 빠져 죽게 되었잖아요.

 

그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시잖아요.

걸어오시면서

제자들 중에는 ‘유령이다!’ 그런 사람도 있고

다들 벌벌 떨 때

그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내니 두려워 말라!’

‘내니 두려워 말라!’

 

저는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성탄의 사건을 보면서

그 말씀이 문득 생각났어요.

 

우리는 풍랑이는 바다에 빠져 죽게 된 존재들이에요.

근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왔으니까 염려하지 말아!

내가 왔으니 두려워하지 말아!’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

우리는 깊은 바다에 빠진 절망적인 사람과 같아요.

 

저는 암이라고 하는 바다에 빠졌잖아요.

암이 세 개니까

 

또 뭐 다른 이런저런 경제적인 어려움,

여러 가지 일의 꼬인 어려움,

인간관계의 어려움,

풍랑에 빠져서 살지 못하고 죽게 된 우리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에요.

 

왜냐면 우리가 죄지어서 죽게 된 세상이 되었거든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죽게 된 세상을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거라고 자꾸 착각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세상 주신 적 없어요.

그건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초한 것이에요.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것을

예수님은 살리시려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죄, 사망, 여기서

너를 건져내겠다고 하시는 강력한 의지를

예수님의 성탄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손을 붙잡으니까

풍랑을 걸을 수 있었잖아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태어나시면

그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영접하면

 

우리의 삶 속에 예수가 있으면

풍랑이는 바다를 걸을 수 있어요.

 

저는 이 암이라고 하는 무서운 바다를

예수님 손 붙잡고 걸으려고 해요.

 

조금씩이지만 걷고 있잖아요.

여러분도 인정해 주시지 않으실까요?

 

제가 암의 바다를 걷고 있어요.

때론 밑을 보면 무섭지만

 

예수님 바라보고

예수님이 나 살리시려고 오셨으니까

예수님 붙잡고 가겠다고 하는 그것이에요.

 

사랑하는 날기새 가족 여러분들 중에도

암이든지 어떤 어려움이든지

풍랑이는 바다의 삶에 빠지신 분들이 많잖아요.

 

그때 예수님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하셔요.

‘내가 왔다.

너 죽는 꼴 내가 볼 수가 없어서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지!

네가 죽고 내가 어떻게 사냐?’

 

그리고 찾아오신 예수님,

기독교의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겠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모든 죽음은 끝났습니다.

모든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고 붙잡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고

승리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어요.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에요.

 

다른 복음서에는 이렇게 돼있더라고요.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가장 작지 아니하다.’

 

거기서 예수님이 태어나실 거라고 하면서

베들레헴은 가장 작은 땅이 아니다..

이렇게 하신 말씀이 있잖아요.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런데 사실은 베들레헴은 촌구석이었거든요.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말이

‘떡집’이라는 말이거든요.

 

왜 떡집인가?

옛날엔 말과 노새 이렇게 여행을 하다가

가서 쉬어 가는 곳...

 

옛날에 우리도 말죽거리라는 게 있었잖아요.

말이 쉬어서

말도 여물도 먹이고 사람도 쉬어가고 하는 말죽거리,

주막도 있고 그랬겠지요. 여관도 있고...

 

그런 시골에 정류장 같은 그런 작은 마을인데

보잘것없는 마을인데

거기서 여러분 예수님이 태어나시니까

작은 마을이 아니잖아요.

 

제가 제일 처음 쓴 책이 마태복음 설교집이었는데요.

그 제목을 제가 이렇게 잡았어요.

 

오늘 이 본문, 이 베들레헴

이 얘기를 가지고

<예수 있는 작은 사람, 예수 없는 큰 사람>

 

여러분 예수 없어도 부자 될 수 있거든요.

예수 없어도 성공할 수 있거든요. 세상적으로

예수 없이도 유명한 사람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사람 많아요.

 

사람들은 잘 산다, 성공했다.. 그러지만

그에게 예수가 없으면 ‘작은 사람’이에요.

 

세상적으로 알지 못하고 유명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예수가 있다면

 

우리가 베들레헴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작은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에요.

 

여러분 세상 사람 부러워할 거 하나도 없어요.

우리 속에 예수가 있다면

저들이 우리를 부러워해야 돼요.

 

여러분 우리가 베들레헴이든 로마든 그건 상관없어요.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아무 상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느냐 않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남으로

 

가장 작지 아니한

세상에서 역사상 가장 크고 위대한 고을인

베들레헴이 되는 그런 증인들이

꼭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