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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2:28~29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LNCK 2022. 7. 11. 12:22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롬2:28~29           출처

요즘 한 두세 달에 걸쳐서 제가 가장 자주 듣는 단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가 바로 인플레이션, 물가 상승입니다. 

기름값이 너무 많이 올랐죠. 캘리포니아는 갤런당 8$이에요. 
어떻게 차를 타고 다니겠습니까?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갤런당 88센트 센트였습니다. 
그때 제가 주유소에서 주유하면서 '세상에, 이 나라는 왜 이렇게 기름이 쌀까!' 
30 여 년 전 이야기죠. 

그런데 요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장보러 가기가 겁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식료품 가격들이 올라서... 

지금 미국은.. 미국뿐만은 아니지만, 미국은 지금 굉장히 심각한 경제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 치솟는 물가 지수의 상승률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데 
과연 잡을 수 있을지... 전문가들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40여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2퍼센트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사이에 소비자 물가지수가 8퍼센트를 넘었습니다. 4배가 급상승한 거죠. 

41년 만에 최고치라고 합니다. 근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정말 먹고 살기가 엄청나게 힘들어졌다는 것이죠. 

에너지 가격도 작년보다 33%가 퍼센트가 증가했다고 하죠. 
요즘에 자동차 사기가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새 차는 13%,  중고차 가격은 22%가 상승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모든 물가가 다 올랐습니다. 
오르지 않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만큼 올라야 되는데, 너무 많이 오르니까 정말 서민들은 허리를 조여매도 
예전처럼 살기 쉽지가 않은 그런 시간이 됐습니다. 결국 돈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 거죠. 
화폐 가치가 아주 하락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정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이제 다시 나오기 시작합니다. 
제가 뉴스를 보니까 봉사단체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 음식이 순식간에 바닥이 난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무료급식을 받으려고 몰려오니까요. 

무료급식을 운영하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음식값이 올라서 어려운데, 기름값이 오르니까 이제 운송비가 많이 들고 
그래서 훨씬 이 사역을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다 잘 알듯이 팬데믹 기간 동안에 정부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풀었고 
그리고 때를 맞춰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터졌죠. 

세계 밀 소비량의 30%를 수출하는 나라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입니다. 
근데 이게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세계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예일대 경영대 석좌교수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지금 전 세계는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거죠.

 

(*참고로 계6장에 흰말-붉은 말-검은 말-청황색 말이 등장하는데,

흰말은 미혹, 붉은 말은 전쟁, 검은 말은 기근, 청황색 말은 전염병으로.. 보통 해석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어서 기근도 함께 일어난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동시에 다 함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죠. (*불안 조성이 아니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달 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고 
일 년 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아주 굉장히 불확실하고, 먹구름이 잔뜩 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고 힘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겁니다. 

겸손히 우리 자신을 낮추고 
그동안 하나님 아니었던 것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따랐던 것들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하나님 자리에, 우리 삶의 첫 자리에 모셔야 될 때가 
바로 이때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지난 주간에 영국의 풀가스펠 교회 청년들 10명 가량이,

우리 교회로 와서 *미국 NJ 소재 
우리 청년들과 함께 연합으로 3일간 집회를 했어요. 

오전에는 10~12시까지는, 두 시간 동안 기도회를 하고 
저녁 8시부터는, 정말 우리가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또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 얼굴을 구하는 
신앙부흥회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안 왔어요. 그래서 그것도 참 좋았어요. 

근데 '런던 교회의 젊은이들을 하고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이 함께 연합해서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무지하게 기뻐하시는구나!' 
그걸 제가 깨닫게 됐고, 참여한 사람들이 다 증인이죠. 
정말 우리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There must be more! 분명히 더 있습니다! (은혜가, 깊이가, 성령이요)
라는 주제로 가진 연합 집회였습니다.

 

제가 이 문구를 잊을 수 없는 게, 제가 신학을 할 때, 가장 좋아했던 문구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 There must be more!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 끝이 없으신 하나님, 제한이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지금보다 더 있습니다 (There must be more!)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 지금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There must be more!'  

제가 신학교 때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나는데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이번에 우리 연합수련회 주제가 There must be more! 였어요.

다니엘 전도사가 설교하는데 아시잖아요. 이 형제는 불입니다. 불! 
어떻게 그 젊은 친구가 그렇게 불처럼 설교하는지... 

 

저는 한편으로 부끄럽지만, 저도 그 나이 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 전도사가 강력한 하나님 말씀을 전했어요. 
정말 이 시대에 맞는 말씀을 전했는데, 

그 설교 내용이 뭐냐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게 돈이 아니다. 
부흥이다. 부흥이 필요하다!' 그렇게 외치며 목 터져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연합 수련회에 참석한 우리 두 교회 모든 청년들과 함께요! 

제가 그걸 지켜보면서, 얼마나 고맙고 기특하고 제 마음이 찡하는지요... 
우리 부모 세대가 못했던 기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기도를 
우리 자녀 세대들이 드리는 것을 보고...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2년 넘게 펜데믹을 통과하면서, 이 우울증으로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연령층이 
어른이 아니라 10대, 20대 입니다. 정말 충격적입니다. 

청소년들과 대학생들, 청년들이 우울증으로 굉장히 심한 타격을 받고 
집에 들어가 자기 방에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질 않는 청년들이 많아졌다고 해요. 

그런 이야기들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의 얼마든지 있는 얘기입니다. 
저는 매주 그런 얘기를 듣게 되기 때문에 압니다. 

부모들이 남부끄러워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 자식이 이러고 있다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지금 심각합니다. 
청소년, 청년들 중에 우울증 증세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펜데믹으로 아주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회에서 우리 청년, 청소년들이

이렇게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이런 것을 볼 때 
제 마음에 이런 소망이 생기더라고요. 

'맞아, 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살아나는 길은 이거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하며, 예배하며,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그 길밖에 없다!'

저는 청년, 청소년들이 그렇게 할 때, 그들은 즉시 치유되고 회복될 것으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도 그랬거든요.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역사 하셨거든요. 
과거에 그렇게 하셨다면, 그분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회복돼야 돼요. 그래서 젊은이들 예배가 중요해요. 
물론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의 예배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차피 늙어가지 않습니까. 지는 해들이죠.

이 젊은이들은 우리가 드렸던 예배보다 훨씬 더 뜨겁고 열정적으로 
더 강력하게 경배와 예배를 드려야 이 아이들은 깨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다른 게 지금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젊은이들을 깨우고, 젊은이들을 정말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세울 수 있는 
강력한 예배자가 필요하다, 강력한 중보자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청소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은, 이제는 연령 때와 상관이 없어요. 
다음 세대뿐만이 아니에요. 십대, 이십대만 그런 게 아니라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 육십 대, 칠십 대...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세대들이 헤매고 있잖아요. 동의하시나요? 

'어떻게 우리는 이렇게까지 돼버렸을까?'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죠. 
세상에 팬데믹이 지나고 교계 상황이 많이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삭 목사님께서 하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삭 목사님이 지난 5월에 한국에 어느 교회를 다녀오셨는데, 
펜데믹이 끝나고, 비율로 따지자면 10명 중에 4명만 교회에 나오는 결과라고 합니다.

이게 지금 한국의 교회 현실이라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전처럼 교회로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물론 그런 일(침체)들은 우리가 선택한 일들이기도 하지만 

또 한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을까요? 

저희 교회도 마찬가지죠. 예외는 아니죠. 
우리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태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가 뭘까?' 
저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물으신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느 순간에, 하나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게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숨겨진 우상이 우리 안에 있다. 
그 우상을 하나님은 드러내시고 계시구나!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우상을, 대면하게 하시는 구나!

하나님이 내 삶에 최우선이 아니었구나! 
입으로는 그렇게 고백했는데 
나도 내가 그런 줄 알았는데 
정작 이 어려움을 거치면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이 내 삶에 첫 자리에 계시지 않았구나!' 
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으셨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게 적나라하게 요즘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다시 그 하나님을 우리 삶에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그분을 다시 모셔드려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건, 
물론 이해할 수 사건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도저히 제가 볼 때, 도저히 이건 있을 수 없는 사건이다..라고 생각하는 사건이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나타나는 바로 그 산 기슭에서 

며칠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이 거기 시내산에 계심 에도 불구하고,

 

그 시내산 아래 산기슭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금송아지를 향해서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신 신이라!' 하며 경배한 그 사건, 
저는 이게 이해가 안 돼요.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해서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까? 
전무후무한 능력과 초자연적인 역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잖아요. 

그리고 백성들이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목청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외치고 그랬잖아요. *출15장

그리고 시내산까지 왔어요. 
물론 그전에도 하여튼 참 정말 여러 번 하나님 속을 썩였죠. 
어쨌거나 시내산에 왔어요. 

그리고 시내산에서, 정말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는데 
근데 거기에서 또 딴짓하더라고요. 

거기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딴 짓을 하더라는 겁니다. 
어떻게 거기서 감히 금송아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금송아지를 향해서 감히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 바로 당신이라'고 
그렇게 경배할 수가 있을까요?

저는 쉽사리 이해가 안 돼요. 
제가 하나님이라면, 그냥 이것들을 그냥 그 자리에서 다 없애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대체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앞에서! 

이게 인간입니다. 이게 우리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이게 우리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짐승의 우상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로 대체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것은 근본적으로 죄성에 찌든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로마서 1장 본문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롬1:22~23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리는 다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착각하고 살아요.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2~23

이들이 누구예요? 하나님을 알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들이에요.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새와 짐승과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대체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돈과, 전자기기와, 명품과, 세상 명예의 우상으로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한 대가를 받게 되었어요. 
그 대가 중에 한 가지가 바로 1:24~25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1:24~25

그 결과로, 성경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1:26~27절에 차례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성애 같은 성적 왜곡이었습니다. 

동성애에 대해서 성경에 뭐라고 말합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했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대체한 결과 중 하나가 동성애다'

맞습니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하고 
거짓을 진리로 대체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당연한 듯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진리가 쫓겨나고, 그 자리에 거짓이 버젓이 차지하고 진리 행세를 합니다. 
하나님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사람이 만든 우상이 차지하고 
그리고 하나님 행세를 합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될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합니다. 정말 아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주 화요일 오전에, 다음 세대를 위해서 매주 쉬지 않고 기도해주시는 
우리 학부모님들 너무나 감사드려요. 깊은 감사를 드려요. 

▲이틀 전 금요일 저녁에, 캐나다. '토론토 십자가 교회'를 섬기는 
박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카톡을 받았어요.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저는 내일 낮에 있을 토론토 시내의 동성애 퍼레이드에 
피켓을 들고 반대 시위를 나가려고 합니다. 

이미 현장은 인파가 엄청나고 온통 마귀의 축제 분위기입니다. 
이 친구들도 3년 만에 동성애 축제와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라, 많이 벼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사실은, 동성애자들의 거리 이름이 Church Street 입니다. 
길 이름을 아무렇게나 짓는 게 아니듯이 
Church Street 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과거에는 교회들이 많은 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거리에는, 교회 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게이 클럽, 게이 바, 게이 식당 등등 
심지어 그 길에 있는 초등학교와 은행까지도 온통 레인보우로 덮여 있고 
옷을 거의 벗고 다녀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거기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미혹에 속아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모른 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Church Street를 무너뜨린 마귀를 생각하면 화도 나고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과거에 부모님들 세대가 '우리는 괜찮으니까...' 
교회들도 '우리 교회는 피해가 없으니까...' 
모두 다 '내게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니까...' 하며 모두가 뒷전으로 물러나 넋 놓고 있다가 
정부에서 차별금지법, 동성혼 다 통과시키고... 결국 이 지경에까지 온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성전환 치료금지법'을 통과시켜서 
동성애자가 만약 이성애자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목사나 선생님이 그걸 도와주면, 범법을 저지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동성애자를 앉혀놓고 성경적 가르침을 나누어도, 범법자가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이건 사실입니다. 미국도 그럴 뻔 했죠. 
미국도 거의 그렇게 되는 게 확실했는데, 하나님이 공화당을 대통령(트럼프)으로 세우는 바람에 
그게 잠깐 스탑 되었죠. 그런데 앞으로 미국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저도 사실 그때 각오 했어요. 감옥에 갈 각오를! 
그런데 하나님 미국은 연장시켜 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캐나다는 여지가 없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온 메시지 계속)

"결국 교회도, 부모들도 '내 일이 아니다' 하고 있다가, 이런 결과를 맞이한 것 같아 
우리의 죄때문이라고... 같이 회개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동성애 퍼레이드 할 때 회개하자는 피켓 들고 서 있다고 뭐가 바뀌냐고? 
이미 다 끝나버린 것 아니냐고, 
거기 나가봐야 괜히 그 사람들 기분만 나쁘게 하고, 
마음만 상하게 해서, 오히려 전도의 문을 막는 것 아니냐고?'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 사람들의 기분 나쁘고, 마음 아픈 것은 보이면서 
하나님의 마음 아프신 것은 보이지 않냐고?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대적하고 
골리앗처럼 하나님을 조롱하는데 아무렇지도 않냐고?' 

또 우리가 회개하자는 피켓 드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외쳐야지... 

우리가 싸우고 있다고... 
우리 자녀 세대에게, 우리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게 싸웠다고...

전혀 죄인 줄도 모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다고 누군가는 외쳐야 한다고... 
아무도 외치지 않아서 이 지경까지 왔지 않냐고 얘기하고 싶어요. 

스데반이 유대인들 눈치를 보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냐고 제가 묻고 싶어요. 
동성애자들은 소수인권을 존중해 달라고 하지만, 이미 우리 기독교인들이 소수가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그러나 무너질 수 없는 철옹성 같았던 여리고 성도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돌며 기도 했을 때, 주님이 무너뜨리신 것처럼 
저희도 비교도 안될 만큼 압도적인 수 차이를 보이겠지만 
이번 주에  Church Street 현장을 돌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소동과 고모로 같은 이 땅에 죄악의 역사가 무너지게 해 주시고 
마지막 부흥이 임하는 믿음의 땅이 되게 해주세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주세요.'

제가 의롭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더 큰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의 메시지,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가자,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사랑 하신다'는 이 메시지가 
이 땅에 다시 한 번 마지막 회개의 부흥을 경험하는 씨앗이 되게 해주세요. 

캐나다는, 조국 대한민국에 수많은 선교사를 보내어, 순교의 피를 흘린 나라인데 
어찌 이 지경까지 왔는지... 
복음의 빚을 진 나라, 캐나다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저희는 토요일 12:30분에 교회에서 모여 기도하고 
두 시에 있을 토론토 게이 퍼레이드 현장으로 '회개하자'는 피켓을 들고 나가려고 합니다. 
꼭 기도해주세요!" 

제가 이 카톡 메시지를 금요일 저녁에 받았어요. 
이 카톡을 받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아니 기도가 그냥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러다가 하루 지나서, 어제 토요일 저녁에 제가 한참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토론토 박목사로부터 다시 이런 카톡 메시지가 왔습니다. 

"목사님, 기도해주신 덕분에, 큰 충돌 없이 잘 끝났습니다. 
이번에 신기하게 경찰들이 저희를 보호해 줬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주님이 바꿔주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성경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목사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십니까?' 

그래도 제가 솔직하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습니다.' 
제 말이 틀렸나요? 

세상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한 것이지만,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자기는 크리스천이라고 이라고 말하면서,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열심히 봉사도 하고, 아니 나름대로 정말 믿음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도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지, 성경대로 믿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믿는다면 이러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내가 뭘 믿고 있는지 어떻게 아냐면 
내가 믿으면, 무엇을 믿든지 간에, 그 결과를 보면 안다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믿고 살고 있는지...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거짓을 믿으면,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주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죠. 

하나님 말씀인 진리를 믿으면, 진리의 말씀이 씨앗이 돼요. 
그 씨앗은 우리의 마음 밭에 떨어집니다. 이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잖아요. 

그리고 그 마음 밭의 종류에 따라, 네 종류의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1) 길가 
눅8: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다' 
'길가'와 같은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천국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고 
악한 자, 즉 마귀 또는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 가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와요?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한다... 
즉 구원 못 얻는다, 이 말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을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구원을 못 얻는다고 말씀 하잖아요. 

왜요? 마귀가 못 얻게 하니까요. 
말씀의 씨앗이 없는데 어떻게 열매를 맺겠어요?

2) '돌밭'
눅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이들은,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아요, 아멘 으로 받아요. 
그러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는 배반하는 자요.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안 받는 게 아니라 말씀을 받아요. 
그런데 그 속에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잠시 잠깐 견디다가... 
또는 잠시 잠깐 믿다가...

믿기는 믿어요. 그런데 그 말씀으로 인하여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는 
넘어지는 자요. 시련을 당할 때는 배반하는 사람이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이렇게 넘어지고 배반하는 사람, 돌밭 신자는 구원을 얻어요, 못 얻어요?
못 얻어요!

3) '가시밭'
눅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말씀을 막아'
여러분 놀랍지 않아요? 
그 능력의 말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막아 버린데요. 
뭐가요? 세상의 염려가, 재물의 유혹이, 기타 욕심이! 
그래서 결실하지 못합니다. 

가시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듣기는 들으나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그리고 물질에 대한 욕망...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질식 choke 시켜서 죽여버린다... 그래서 결실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자 여기 가시밭도 구원을 못 얻어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럼 누가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갈까요?

4) 좋은 땅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지키는 자라고 했습니다.
인내로 결실한다고 했습니다. 
인내가 없으면 말씀의 결실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죠. 
그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그 말씀을 지킴으로 인내하니까...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죠. 

이 사람들만 구원을 얻어요. 한 번 생각을 해봐요. 
이게 통계적으로 '네 명 중에 한 명만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지키고 결실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행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목이 곧고...' 출애굽 당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자주 하신 표현이죠. 교만입니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 ... 내면이 전혀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받고, 지키고, 인내하여 결실할 수 있습니까?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아야 됩니다. 
내면이 변화되어서 좋은 밭이 되어야 됩니다. 아멘! 

그래서 롬2장에서 사도바울은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이다.'
마음에 두텁고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롬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우리가 대체해 버린 것들, 대체 해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진리를 거짓으로 대체해 버리고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해 버린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죠. 우리는 정말 그러지 말아야 되죠. 

근데요. 우리도 그러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결코 대체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게 점점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뭘로 귀결되냐면요. 
하나님을 대체하는 것으로 귀결되게 되어 있어요. 

1) 예배가 순종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맞나요? 
아멘입니다.

분명히 성경을 말씀하잖아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삼상15:22
예배가 순종을 대체할 수 없어요. (예배는 드리는데, 평소 삶에서 순종하지 않는 잘못된 신앙)

근데 우리는 '예배드리면..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 

온라인 예배가, 하나님이 계시는 이 예배당에 나와서 드리는 현장 예배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은, 우리가 그냥 헌금 얼마 드리고 이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제물이 뭐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근데 온라인 예배 드리면서, 자기는 예배 드렸다고 착각한단 말이에요. 
온라인 예배는 우리가 도저히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없을 때 
비상 수단인 것이지, 그게 현장 예배를 대체할 수 없는데, 이미 대체해 버렸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한국의 (일부) 교회들은 50~60%가 대체해 버렸어요. 

2) 교회 규모, 사이즈, 예배 형식.. 이것들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마음"을 대체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우리 마음을 드리는 거죠. 
우리의 마음을 적당히 드리는 게 아니라, 전부 드리는 거에요. 

근데 예배드리는 형식이나 예식이 겉보기에 예배드리는 것 같으면 
그러면 우리는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원하세요. 
'우리는 지금 예배를 다 드렸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형식적인 예배로, 
'마음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를 대체하며, 현대인들은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3) "사역"의 성공, 그것이 우리의 "인격"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교회가 커지고, 사역이 커지고, 선교 많이 하고, 구제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거예요. 

저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봐 왔는데 
특히 능력자, 은사자, 대단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정말 신기하게 뭐냐면요, 
능력이나 은사를 가진 사람, 또 영적으로 이 사람들이 보통은 교만하기 쉽죠. 

또 나름대로 그 사역에 큰 업적과 성취를 이룬 사람들, 
그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자기 자신의 능력, 은사, 업적 성취로.. 자기 자신의 약점과 결함을 커버하려고 하더라고요. 

정말 기분이 별로였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우리 삶의 최고의 목표가 돼야 됩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겸손한 사람, 
그렇지 않고 다른 거를 많이 이루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요? 
무슨 소용이 있겠나요, 예수님이 너를 모른다고 하시는데! 

요즘 세상에 정말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기 기만에 스스로 속는 사람들! 

4) 또 정말 자기 착각에 빠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선교를 열심히 다니면,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하고 
자기의 믿음이 좋다고 착각하고, 자기는 괜찮다고 착각하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선교의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이에요. 
우리가 사역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고 하는 것 그것 때문에 
정말 예수님을 닮는 것을 대체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걸로 대체해 버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요. 
궁극적으로 마귀는, 우리를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하나님 자리를, 우리 자신으로 대체하게 합니다. 

나를 섬기는 기독교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는 거죠.

우리가 절대로 대체해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중심에 계시는 하나님 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버젓이 그 자리에 앉아있어요. 
우리 자식들이 앉아있어요. 
우리의 꿈과 비전과 야망이 앉아 있어요. 
삶이 편안함이 앉아 있어요. 

이래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는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죄를 지어서는 안 돼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