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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3:7 신본주의 사회의 이상과 현실 3

LNCK 2022. 7. 12. 16:59

7월 8일 아침기도회 - 신본주의 사회의 이상과 현실 (3) - YouTube

 

◈신본주의 사회의 이상과 현실 3            고전13:7, 마11:28~30         출처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구약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라고 말했습니다. 파격적인 발언을 한 것인데 

볼트만이 왜 '구약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 고 말을 했냐면 
아마도 "신본주의 (신정정치) 사회를 이루려던 이스라엘 민족의 실험이 실패했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왕조가 영구히 지속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고,

다 끝난 것처럼 보였으니  
원래 하나님이 바라셨던 '여호와 신앙 중심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실패했다' 라고 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갔으면 
불트만이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아마 이스라엘이 영토를 넓혔다면, 
-또 다윗의 후손들이 유능한 임금들 이었더라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았다면.. 

만약 '조선시대가 어떻게 흘러갔으면, 일본에 합병되지 않았을까?' 를 묻는 것과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신자들가운데, 불트만 같은 사람은, 
'지난 2천년 기독교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실패로 끝났다' 라고 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처럼, 서구의 기독교도 전성기를 지났고 
지금 쇠퇴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에 "신본주의 사회의 이상과 현실 1, 2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이 설교는 3회)

출애굽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신앙이 중심이 되는 국가'로 만드실 때,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하나님이 모르시고 그 일을 하신 것이 아니다"
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민족인가?' 하는 것은,

나중에 그 정체가 드러난 것이 아니고 
애초부터 그 성향이 나타나 있었어요. 

애초부터 그들은 쉽게 반발하고, 쉽게 원망하고, 쉽게 낙심하고, 
쉽게 불평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애초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님이 모르고 
이 일(구속사)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고 
모세가, 출애굽 백성들이 어떤 민족인가를 모르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이미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어디에서 엿볼 수 있느냐? 
십계명을 주신 사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이라면 다 당연히 지켜야 되는 도덕적인 규례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살인 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당연한 요구 아닙니까? 

선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애당초 이런 요구를 하셨다는 말은 
그들도 이런 죄를 짓는 성향이 있는 백성임을.. 하나님은 미리 다 아셨다는 뜻입니다. 

선민이라고 해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게 아니고, 도둑질을 안 하는 게 아니고, 
거짓말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게 아니고, 
우상을 만들지 않는게 아니었어요. 

도덕적인 면으로, 히브리 민족은 이방인과 다르지 않았어요. 
히브리 민족이 애굽 민족보다 더 낳았던 게 아니고 
블레셋 보다 더 낳았던 게 아니에요.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나았기 때문에 선민이 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선민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죠.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더 나은 게 아니에요. 

우리가 더 낫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선민이요, 구원 받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에게 
가장 기본적인 요구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 간음,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 이렇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들도 타민족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유혹을 받고, 
똑같은 범죄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님이 모르고, 
이 거대한 일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후에 별의별 문제가 다 발생하고,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이 무너졌을 때 ... 하나님이 큰 충격을 받으신 게 아니에요. 

'이걸 어쩌지? .. 어찌 이런 일이~' 하며, 하나님이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지셨겠습니까? No!

하나님은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미리 다 알고 계셨어요. 
그럼에도 이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놀라운 것이죠. 그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2천년 교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교회를 시작하실 때, 
장차 기독교인들이 완벽한 사람이 되리라고 기대하고 시작하셨을 것 같지 않습니다. 

사람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렇게 완전히 바뀌지 않아요. 
구약에는 돌판에 계명을 새기셨고, 신약에는 마음판에 개명을 새겨 주셨지만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베드로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신 것처럼

'육신이 약하다'는 사실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다 마찬가지예요. 

사람은 사람이예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게 아니에요.

물론 과거의 죄성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고, 이제는 의를 좇는 사람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죄악된 원죄적 본성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꿈틀거리고 일어납니다.

왜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동료 기독교인, 동료 성도가.. 천사 같은 존재가 될 것을 기대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남편과 결혼할 때, 남편이 천사처럼 될 줄 기대했습니까? 
자식을 낳았을 때, 자식이 천사처럼 살아주기를 기대했습니까? 

이 세상에 천사가 누가 있어요? 
나도 천사가 아닌데, 나도 예수님을 믿어 천사처럼 변한 것이 아닌데.. 

왜 사람들은, 
남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천사나 성자와 같은 사람이 될 줄로 기대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망을 하는지요... 이것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여쭤봐야 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교회에 대해서 실망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의 자녀들에 대해서 실망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None!  

주님이 나무라하신 적은 있죠.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내가 실망했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실망하셨다면 
그럴 줄 모르고 시작하셨다는 뜻인데 
그건 하나님이 전지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딘다는 말은 
'실망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무튼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을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 부분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람에 대해..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그래도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 누구라도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것이죠. 고전13:7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성품을 말씀하셨는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주님이 자신을 스스로 '나는 겸손하다' 하셨는데, 
이건 듣기에 따라서.. 약간 이상한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는 '겸손하다'는 말을 쓸 수 있고 
종도 자기가 '겸손하다' 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님이, 또는 2천 년 전에 왕이나 수많은 종을 거느린 주인이
스스로 '나는 겸손하다' 라는 말을 쓰면 
삐딱하게 들으면.. 이건 오히려 무례한 말처럼 들릴 수가 있죠. 

그런데 주님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이 말씀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아시면서도 
당신의 일(죄인 구원)을 추진하신 주님의 의도와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라 만약에 우리라면, 우리의 냉소적인 성향이 
사람의 어떤 존재인지를 알면서, 이런 일(구원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놈이 그놈이지..'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도 새지 않겠어?'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어, 내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어? 실망뿐이야!' 

그런 냉소주의... 이것이 보통 우리 인간이 가지는 자세입니다. 

'그놈이 그놈이지... 그 교회가 그 교회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뭐가 다르겠어?' 
이게 냉소주의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우리에 대해서 냉소적이있었다면 
히브리 백성을 결코 애굽에서 건지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나라를 세우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못 지킬 게 뻔한데... 

'그걸 누가 지키겠어?'
이렇게 주님이 냉소적이셨다면, 구원 사역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일어났다 하더라도, 곧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십계명과 율법, 규례와 법도를 주셨어요. 
그리고 지키라고 명하셨어요. 

사람이 지킬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 와는 상관이 없어요. 
거기에서 하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고전13:7절에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같은 맥락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만, 이렇게 성도들을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13:7절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 언약적 사랑, 결코 파기하지 않으시는 그 언약적 사랑의 속성을 알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그들에게 신앙의 국가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죠. *구약

교회와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면서도,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약

그렇지만 이걸 믿지 않으면 
'아니, 이거 다 실패로 끝날 것 아니냐? 인간이 다 그렇지 않느냐?'
라고 불트만 처럼 회의론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신약성경을 읽어 보면 
교회 미래에 대해서, 장미빛 예언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너희가 번창하고 번창하고 부흥해서 
온 땅을 복음화 하고 뭐 이렇게 될거야...'  

이렇게 장밋빛 청사진을 신약성경에서는 찾아봐도 별로 없고 
(진짜 없다는 설교가 아닙니다. 밝은 면을 강조하기 위해, 지금 잠시 어두움을 강조하는 것임)

대신에 미래를 암울하게 말하는 말씀들이 많죠. 
'말세는 이런 일이 따르리니..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믿음이 없이지고.. 세상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미래에 대해서, 미래에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고.. 
너희는 산으로 도망해야 될 것이고, 

사람들이 너희를 법정으로 끌고 갈 것이고.. 
법정 안에 갔을 때, 그때는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거의 다 이런 예언들이 일색이지 않습니까? 
성경 어디에 주님이 장밋빛 기대를 갖고 교회를 시작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까? 
어디서 그런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까? 
사람이 사람인데... (이게 결론이 아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니라!' (이런 게 결론입니다)

그 한마디를 우리가 붙잡으면, 
'아~ 사람이란 그런 거지..' 하며 비관적이 되어선 안 되고

'주님이 친히 당신이 교회를 세우시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겠구나!' 아멘! 그것으로 족한 거예요. 

▲우리가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복음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이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주님이 당신이 교회를 반석위에 세우시기 때문에... 
그 이외 것은 (세상 사업, 나라, 권세) 다 모래 위에 세운 것과 같아요.

그 인간의 연약한 본성을 주님이 모르고 시작하신 게 아니에요.

불트만 같은 사람들이, 그런 믿음이 없이 
교회사를 연구하고, 구약을 연구하면... 모든 것이 실망스럽죠. 

인간을 보는 눈은 다 실망스럽죠.
당연하죠. 그럴 줄 몰랐다는 얘기에요?
사람이 천사처럼 변신할 줄 알았어요? 

유럽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 낙원을 건설할 줄 기대했다는 얘기입니까?
영국이든, 프랑스든, 이탈리아든.. 낙원과 같은 국가로 변신할 것을 기대했다는 얘기에요?

사람들의 모임이 어떻게 낙원을 이룰 수 있겠어요? 
설령 교회가 중심이 된다 하더라도.. 
시험에 들고 타락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연약하다는 사실이 놀라운 게 아니고 
그런 연약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를 
참으며, 믿으며, 바라고, 견디셨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고전13:7

그래서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나라를 빼앗긴 후에도 
여전히 주님은 그들을 부르시고, 
연단을 통과한 신앙의 공동체가 더 순전한 마음으로 모이지 않았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은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고, 견디시기 때문에 
여전히 주님은 이 초청을 하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주님이 그 초청을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꾸준히,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실 것이고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면 쉼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변함이 없는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많은 것을 깨달아야 되는데, 깨닫는 것이 더딜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사람에 대해서 많이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Jesus을,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될까!' 

아버지여, 미련한 인간입니다. 
교회사를 돌아볼 때, 과거 역사를 돌아볼 때 
인간의 실패와 실수에 대하여 낙심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하는 미련함이 없게 하시고 

주님이 이것을 모르고, 이 모든 일을 착수하신 것이 아니에요. 
아시되, 그럼에도 모든 것을 바라고, 믿고,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가 영원하며 
반석 위에 우뚝 서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을 믿습니다.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우니, 어찌 아니 아뢸까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여러분이 부질없는 일을 멈추고, 
만약에 '하루 종일' 주님을 예배를 한번 해보십시오. 
뭔가 바뀌어도 엄청 바뀔 것입니다.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넘게 되고, 여러분을 괴롭혔던 많은 시험들이 떠나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먼저 여섯 시간만 해보세요. 
6시간 쉬지 않고 여러분이 혼자 예배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괴롭혔던 많은 마귀가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고 
극복할 수 없었던 많은 문제를 극복하고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들리지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시간에 쓸데 없이 염려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우리에게 열려있는 길을 무시하고 
막힌 길을 굳이 찾으려고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