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신20:1~20 전쟁에 관한 규례

LNCK 2022. 7. 17. 14:36

◈전쟁에 관한 규례        신20:1~20         2021.10.03.출처              전쟁 관련글 

신20장은 전쟁에 관한 규례입니다.
신명기에는 의외로 '전쟁'에 관해서 많은 규례들이 있습니다. 

신7:18, 21절에는 '거룩한 전쟁에서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신23:9~14절에는 '전쟁할 때는 먼저 이스라엘의 진을 깨끗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또 신24:5절에도, '새로 장가든 사람은 일년 동안은 징병하지 말고 아내를 기쁘게 하라' 이런 말씀도 있고 
신25:17~19절은, '아말렉은 천하에서 도말하라' 

본문 신20장은, 전쟁에 대한 완전한 형태의 신학을 모두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율법에서, 전쟁에 관해서 가장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미리 준비된 무기와 전략을 가지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에 관한 규례도, 제6계명과 관련된 규례와 법도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19:1~21:9까지는 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에 연관된 규례와 법도)

 

우리는 '현대에는 전쟁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세상에는 전쟁이 있으되, 끝까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인간 세상에 물리적인 전쟁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실제 전쟁뿐만 아니라, 교회의 영적인 전쟁에도 적용되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원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0:1~4절, 전쟁에서 두려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죠.
20:5~8절은, 군복무를 면제시켜야 될 경우를 다루고 있습니다. 
20:9절은, 군대를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 하는 문제
20:10~20절은, 대적들의 성읍이나 요새를 공격할 때, 실제 전쟁 수행의 원칙


◑1. 전쟁에서 '두려움의 문제'   20:1~4

어떤 전쟁이든, 두려워하는 사람은 패배합니다. 
패배의 제1 원인은 두려움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무기로 무장한 군대라 할지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군대는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두려움을 극복하는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1절은, 모세가 직접 격려하는 말씀이고 
2~4절은, 모세가 제사장들에게 가르친 말씀입니다. 
'전쟁 시에 백성들에게 이런 말을 해라' 하고, 해야 할 말을 모세가 가르친 것입니다.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1절에서, 모세는, 전쟁 때에 대적의 말과 병거와 군대의 수효가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신7:17~18절에서 이미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군사적인 면에서, 대적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우세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죠. 
가나안 7족은 고대전쟁해서 신무기에 비견될 수 있는 말과 병거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속도와 강함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두려움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인구도 많고, 군사의 숫자도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래도 모세의 명령은, 그들을 두려워 말라는 것이에요.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말라 왜냐하면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4

   
애굽의 막당한 군대도 다 멸절시키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는데 
뭐 가나안 7족의 우월한 무기를 보거나, 군사력을 보아도 
조금도 심장이 쫄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11:4~9절에, 가나안 정복전쟁하는 과정에서 
가나안 북부 부족들이 연합해서, 여호수아가 인도하는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갈릴리 바다 북쪽에 위치)에 진을 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11:6

군대가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가 심히 많았어도 
그들은 이스라엘에 쫓겨서, 미스바 골짜기까지 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전멸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공허한 말씀이 아니고 
그대로 실현되는 능력이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2~4절은, 모세가 제사장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는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백성들 앞에서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는 말로 시작되는 강력한 명령으로 격려를 하라는 것입니다. :3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이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2
즉 적들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격려의 말씀을 하라는 것입니다.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3

이렇게 4번이라고 반복되죠. 겁내지말며/ 두려워말며/ 떨지 말며/ 놀라지 말라! 

두려움은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두려움에 들어오면, 감정에 영향을 주게 되고, 또 몸도 떨게 되고 의지도 약화되고... 
그러니까 의지도 약해지지 말고, 감정도 동요되지 말고, 몸도 떨지 말라는 거예요. 

온 인간이 가진 감각 기관으로,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마음과 감정과 몸과 의지 전체에 영향을 주어서 
전쟁을 패하게하는 두려움에 대한 처방책을 주라는 것입니다. 

4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대적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분이시다... 이런 말씀이죠. 

 

'(적군과) 싸우신다' 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라함' 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로 fight 로 번역되지만, 원래 의미는 '다 먹어버린다 devour'입니다.

민14:9절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7족을 가리켜 '그들은 우리 밥이라'고 했죠.
'밥'이란 히브리어가, 우리가 잘 아는 '레헴 bread'이죠.   *베들'레헴'

그래서 '친다'는 것은 '밥'과 똑같은 단어에요. 하나는 동사이고 하나는 명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 먹어버리신다' 

하나님이 대적들을 한 끼 밥드시듯이 그냥 다 먹어버리실 것이니
두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두려움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담대한 마음을 가지면 이길 수 있다는 거예요. 
전쟁에서 물리적인 면만 보는 안목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을 보는 믿음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마음을 가졌기에 승리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달랐어요.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승리했던 것입니다. 

물리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도, 무기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도, 적의 무기와 숫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측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가진 교회의 편이신 것입니다. 

△저는 거의 70세 인생을 살아오면서 항상 듣던 말이 있었어요. 
'뭐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 뭐 북쪽의 불가마가 기울어서 남쪽으로 쏟아진다'
그런 예언한 사람들도 많았고, 그런 협박과 공갈 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을 주고자 하는, 악한 사단의 언어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있는 이 한국 땅, 
우리는 아무리 대적의 무기가 우리보다 우월하고 탁월하고, 숫자가 많고 군사가 강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떨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는 당당히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마음에 두려움부터 없애야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2. 군복무을 면제시켜야 네 가지 경우    20:5~8절

먼저 4가지 경우 중에 3가지는, 모두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새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 

이 세 종류의 사람은, 군대도 보내지 말고, 지금 군대에 속해 있더라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가정에 건축이나. 가정에 농업이나, 가정에 혼인과 같은 가정사를 
군복무보다 더 우선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처럼 가정을 먼저 보호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망해도 군대부터 가라' 이런 게 아니라는 얘기죠. 

군대보나 가정이 먼저라는거예요. 
한 국가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강한 군대가 아니라 
건강한 가정, 견실한 가정의 토대라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건강한 가정의 사업과 혼인은 국가의 중심 축이고 
이것이 잘 돼야 전쟁에도 승리하고, 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 그런 원리인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도, 건강한 가정은 영적 전쟁의 승리에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가 제대로 설 수가 없어요. 
가정이 무너졌는데, 교회가 뭐 어떻게 서겠어요?

또 가정이 무너지면, 국가도 제대로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가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그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소명받아도 어려운 걸, 소명도 못 받은 사람이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므로 건축업을 하는 젊은이는 건축업을 잘 해야 돼요. 
농업을 하는 젊은이도 농업을 잘 해야 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연구해서 발전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또 뭐 세일즈를 하는 사람은 세일즈를 열심히 잘 해야 되는 것이에요. 
가정을 귀중히 여기고,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잘 양육하고, 
가정에 사업을 일으켜야 됩니다. 

그것이 영적인 전쟁 승리에 근간이 되고 
물리적인 전쟁승리에 토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은 이처럼, 군대 이전에 가정이 더 중요하다. 
가정사를 먼저 제대로 하고 군복무를 해라... 이런 말씀이죠. 

▲네 번째 경우가 '마음에 겁내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그랬어요. 
'쓸모 없는 군인이다' 이런 말씀이죠. 

마음에 겁내는 사람이 있어봐야, 전쟁에 이길 수도 없고 
공연히 사상자만 늘어나고 
또 다른 군인들의 마음도 낙담시키는 악역향을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뭐 농산물 중에 한 개가 썩으면,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싱싱한 농산물에도 
그 부패가 옮겨가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집에 돌려보내라' 하는 얘기죠. :8

이렇게 네가지 종류의 군복무를 면제해야 될 경우를 제시하고 있고 
여기서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이, 그만큼 가정에 혼인과 사업을 
중하게 여기신다는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3. 이스라엘 군대의 조직에 관한 규례  20:9

20:9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친 후에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군대에 장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 그랬어요.
한 절 짧은 말씀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조직을 갖춘 군대가 되어야 된다.. 그런 말씀이죠. 
군대가 뭐 아무 조직도 없고, 군대가 성명하복도 안되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오합지졸의 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도자가 있고, 지휘관이 있고, 질서가 있고, 훈련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신1:15절에 '내가 너희 지파의 두령으로 지혜가 있는 유명한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어른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패장을 삼고'

민31:14 '모세가 군대의 장관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하니라' 그랬어요.

이스라엘 군대의 장관들은, 즉흥적으로 임명된 것이 아니고 
각 지파별로 이미 선출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패장 이런 조직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상명하복의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군대로 치면, 뭐 장군이 있고, 또 영관급이 있고, 위반급이 있고... 이런 것과 똑같죠. 

이스라엘의 군대 조직에서 특이한 점은, 
어린이나 노인과 여자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은, 군대조직에 속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까지 군대에 보낸 건 아니라는 거예요. 
남자들이 군복무를 했는데, 특별한 직업군인 계급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죠. 
유아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은 다 군대라는 거예요. 오늘날 스위스의 군대제도가 이와 비슷합니다. 

18세 이상 34세 이하의 남자들은,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생활을 합니다. 
직업을 가지고 생활을 하지만, 모두가 훈련을 받고, 가정에 무기를 소지한 훈련된 군사들입니다. 

소위 이것이 민병대 제도입니다. militia system
군사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정규 직업군인은 4천명에 불가합니다. 
그러나 스위스의 민병대는 60만 명이 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가 국방비에 들어가는 그 예산이 그렇게 많지 않게 되죠. 
정규 직업 군인만 국가가 월급을 주면 되니까요. 
나머지는 자기 직업을 가지고 다 일을 하는 민병대이기 때문에 
군대 유지에 경비를 적게 들이고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 무기를 소지하고 있어도 총기 사고는 극히 드문 것입니다. 
왜냐하면 총기 소유가 자신의 방어가 목적이 아니라 
국가 위기 시에 국가를 방어는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음을, 강하게 훈련하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보통 때에는 실탄을 주지 않죠. 
국가 위기 시에 실탄을 지급하고, 즉시로 싸울 수 있는 군인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바로 스위스의 민병대입니다. 

미국도 직업군인제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은 직업군인에 대한 대우가 굉장히 좋죠. 
직업군인이면 여기 저기서도 다 인정과 존중을 받고 
또 군대 생활을 하고 제대한 사람들도, 여러 혜택이 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군인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직업군인 제도가 있어도, 미국 수정헌법 2조에 따라서 
규율있는 민병대를 조직할 권리가 침해 대해서는 안된다고 정하고 있어요. 
미국은 직업군인 제도가 있어도 민병대를 만들 수가 있는 그런 시스템인 것입니다. 

전투가 가능한 모든 젊은 남성이, 현역 혹은 예비역에 속해 있는 한국에서는 
민병대는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모두가 다 속해 있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이스라엘과 같은 그런 군대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직업군인제도가 없던 모세 당시 이스라엘은, 
이런 민병대와 같은 조직과 운영시스템이 가장 합리적인 제도였던 것입니다. 

현대 세계에서도 상비군이 어떤 이유로든 재기능을 하지 못하면 
민병대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한국에도 동학군이나, 혹은 의병이나, 혹은 독립군이나 
이들은 모두 다 민병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뭐 정규군대도 있었겠습니다마는 
정규군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민병대가 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도, 조직이 중요하고, 질서가 중요하고, 훈련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잘 조직된 영적 군대인 것입니다. 

고전14:33절에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무질서해서는 안됩니다. 
목사, 장로, 집사들은 영적 전쟁의 지휘관들인 것입니다. 

질서를 깨는 일은, 이적 행위인 것이죠. *이적 : 을 유하게 함
집사가 뭐 목사를 향해서 대적을 계속 한다든가... 이것도 옳은 일이 아니죠. 

군대에서 사병이 무슨 지휘관들을 대적하고 
자꾸 인권, 인권 찾고 하면서 자꾸 지휘관들을 그렇게 옭아맨다면 
그런 군대가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그런 군대가 어떻게 전쟁에 승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질서가 깨져 있는 그런 군대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리적인 군대에서도 조직과 질서, 상명하복이 중요하고 
영적인 군대에서도 조직과 질서와 상명하복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의 가정이나 성도 개인의 삶에서도, 무질서가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질서와 규율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영적 전쟁에 실질적인 승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대적들의 성읍을 공격할 때 실제 전쟁의 수행원칙  20:10~20절

▲10~15절, 가나안 족속이 아닌 성읍들을 공격할 때의 원칙
이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지 않은 성읍들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왜 이런 족속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하는 성읍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못 지나가게 한다든가 하면, 
그러면 할 수 없이 전쟁을 해야 되죠. 

-또 다른 하나는, 가나안 7족이 아닌 민족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면 
방어 전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전쟁에는 삼단계 원칙이 있습니다. 
-제1원칙은,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희하고 싸우기를 원치 않으니까, 우리에게 평화스럽게 항복을 해라' 
그것을 선언하라는 거죠. 

-제2원칙은, 평화하기로 화답을 하면 
그 성읍을 이스라엘 민족에 편입시키지 말라는 거예요. 합병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저 조공을 받는 성읍이 되도록 해라는 얘기죠. 

조공은 화폐나 물질로 받을 수도 있고, 노동력으로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속국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개념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어요. 

속국은, 주권이 없는 나라인데 
이런 조공을 받는 나라들은, 자기 주권을 가지는 것이니, 속국은 아닌 것입니다.

-제3 원칙은, 평화하기를 거절하고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하면 
그 성읍을 포위하고, 칼날로 그 성읍의 남자를 다 쳐죽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남자도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라는 말은 아니죠.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은 전리폼으로 취하라 그랬어요. 
여자들과 유아들은 노예로 삼게 된다는 말씀이죠. 

이것은 복종을 거부한 대가로서 내리는 하나님의 처벌인 것입니다. 
포로된 여자 가운데는 이스라엘 사람의 아내가 되고자 하면 
아내가 될 수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21:10~14

이런 원칙은 현대 전쟁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인 항복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에는, 인명을 살상하지 말아야 됩니다. 
자발적으로 항복하는데 왜 죽이겠어요? 

또 전쟁을 하더라도 여자와 유아와 노인을 가릴것 없이 무차별 학살하는 
이 전면전 혹은 뭐 총력전, 영어로 total war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 금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폭탄을 터트려 무차별로 다 죽이는 이런 것은 
하나님의 법이 금지합니다. 죽여야 될 군인들만 죽이라는 거죠.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가나안 7족과의 전쟁에 관한 원칙  20:16~18절 

가나안 7족의 명단은 17절에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여섯 족속만 나와 있습니다.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수3:10절에 기르가스 족속이 추가되어서, 가나안 7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영적인 암으로 여기셨습니다. 
지난 4백년간 참으셨지만, 이제는 완전히 도려해야 할 존재로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가나안 7족은 하나도 살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게 할까 함이니라' 

그들의 영적인 영향력, 도덕적인 영향력이 너무나 악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18

우리 성도들은. 이런 우상숭배의 악, 하나님을 제외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악과는 
조금도 타협하지 말고, 완전히 철저히 단절하라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19~20절은, 과목을 작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9~20절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전쟁은, 반항적인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
나무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19

가나안에는 과목이 여럿 있었습니다. 무화과, 포도, 올리브, 대추야자, 살구 등
이들 과목들은, 중요한 식량을 제공했습니다. 얼마나 맛있는 과일들이 나오는지요.
지중해성 과실들이죠. 올리브를 계속 먹으면 위장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목이 아닌 수목은 작벌해서,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너희가 심지 아니한 나무의 실과를 먹을 것이라' 하는 약속이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과목인 실과는 작벌하지 말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해도, 쓸데없는 것은 다 파괴하지 말라는 얘기죠. 
쓸데없이 과목도 잘라내고, 문화재 파괴하고, 쓸데없이 건물을 다 파괴하고.. 그러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전쟁은, 반역하는 사람, 악한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하는 원리인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실제 전쟁에서 고려할 원리도 많고 
영적 전쟁에서 고려할 원리도 많습니다. 

1) 성도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마음속에 어떤 두려움도 물리쳐야 됩니다. 
두려움이 많으면 밤에 꿈자리도 뒤숭숭 하고, 
아침에 일어나도 기분이 개운하지 않고 
잠도 잘 안 오고 그렇죠. 

믿고 주무세요. 그냥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편안히 주무십시오. 
딤후1: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그랬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마시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으로 
편안함, 담대함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성도들은 자신의 가정을 자기가 지키는 일을, 최고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 다음으로 둬야 되죠. 

그러나 교회 일과 가정 일이 겹치면, 가정 일을 먼저 하세요. 가정이 더 중요해요. 
가정이 잘 세워져야, 그래야 교회가 잘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무시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가정이 파괴되면, 교회도 설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선 순위에 있어서 늘
-하나님 최 우선, 
-두 번째는 자기 가정 
-그 다음에는 교회 
-그 다음에 자기 개인직업.. 
이렇게 우선순위를 가지고서 살라는 거죠. 

3) 교회 안에서도 조직과 질서를 잘 유지하고 
자신의 신분을 넘어서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조직이 있었듯이
영적인 군대에도 합리적인 질서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서로 섬기고 존중하는 바탕에서요.

4) 모든 사람과 평화를 추구해야 됩니다. 
그러나 우상숭배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우상숭배로 유혹하는
이런 악한 세력과는 철저하고 완전하게 단절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우리 구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고 영원히 사랑해야될 하나님이십니다.

 

 

 

◑절별 해석 ................................................................................. 출처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제사장' - 순수하게 제사직만을 수행하는 일반 제사장과는 달리 비느하스(민31:6)처럼 
군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참여하는 제사장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군목(軍牧)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유대 랍비들은 이들을 가리켜 특별히 
'전쟁을 위하여 기름 부음 받은 자'(메쉬아흐 함밀하마)라고 불렀으며, 
대제사장 다음가는 높은 작위를 주었다고 한다. 

이들의 일은 전쟁터에 나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군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3, 4절) 
용기를 북돋워주는 일이었다.

5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책임자(쇼테르)' - '서기관', '감독관', '집행관'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니고있는 말이다(16:18). 
70인역(LXX)은 이를 '서기관적인 임무를 맡은 자'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혹자는 이를 지파의 기록을 보관하며 모든 숫자적인 회무를 담당하는 자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본문의 정황에 의거 할 때 각 지파의 두령(1:15) 정도로 봄이 타당하다.

‘집으로 돌아갈지니' 
병역이 면제된 4부류는, 한마디로 이들 모두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여호와의 전쟁을 위해 온전히 쏟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전쟁에서 제외되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수효의 다소(多小)에 관계 없이 
온전한 자원자들로만 구성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첫째, 여호와의 공의를 실현하는 여호와의 전쟁에는 
몸과 마음이 동참하는 '온전한 헌신'이 요청된다는 사실과 둘째,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7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 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본절과 같은 조처는 약혼 관계에 있는 자들을 강제적으로 참전케 하기 보다는 
자원하는 심정으로 참전하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규정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한편 24:5의 규례에 의하면, 결혼 후 1년이 채 못된 자들도 병역에서 면제시키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 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두려워서...겁내는 자' -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죄의 결과로서(창3:10),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상태이다. 따라서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聖戰)의 역군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첫째, 죄 문제를 해결하고 
둘째, 전능자 여호와를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삼는 것이다.(엡6:10-20). 
그리할 때 마음 속에 깃든 모든 두려움과 겁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참된 하나님의 군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형제들의 마음도...떨어질까 하노라' - 흔히 부정적인 세력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두려움에 떨면 다른 사람들도 그에 영향을 받고, 
더 나아가 군대 전체의 사기가 저하될 우려가 충분히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두려움과 겁에 질린 자들을 사전에 군대 편성에서 제외시켜야 했다.

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성문을 열거든' - 싸울 의사가 전혀 없으며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분명한 표시이다. 
이 경우 진정한 평화가 성립되기 위하여서는 이방 성읍 거민들이 할례까지는 강요받지 않았지만, 
그들이 행하던 우상 숭배를 포기하고 종주권적(宗主權的)계약 하에 이스라엘에게 
공물(貢物)을 바쳐야 했다.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여호와께서...붙이시거든' - 이스라엘이 장차 진정 수행하여야 할 전투는 
영토욕이나 지배욕 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앞에 패역한 족속들을 
징계하시며 치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 수행하는 것 뿐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대적에 대한 독자적인 행동을 개시할 수 없었다. 
오직 이스라엘 군대의 진정한 대장 되시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때 
대적의 성읍은 이미 이스라엘 군대의 수중에 붙잡힌 바 다름없을 것이었다.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탈취한 모든 것' - 이에는 육축(2:35, 삼상14:32, 대하15:11)과 은금 패물(수7:21, 
삿8:24,25), 그리고 옷(수7:21, 삿5:30, 대하20:25) 따위 뿐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도 포함된다. 
그 까닭은 전쟁에서 포로로 취한 여자와 아이들은 당시 국가적, 개인적 노예로 삼을 수 있었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아내로 취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21:11-14).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 이스라엘이 획득한 전리품(戰利品)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정당한 재산으로 인정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당신이 주신 일종의 선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들에게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25:29)는 말씀을 생각케 해준다. 즉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와 순종하는 자간의 결국은 
이와 같이 극명한 희비극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 가나안 땅에 있지 않은 성읍들, 곧 이스라엘이 장차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 때 교전(交戰)하게 될 사방의 이방 성읍들을 가리킨다.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기업' - '물려받다'는 말의 '나할'에서 파생된 말로 '유산', '상속물','점유물' 등을 뜻한다. 
즉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오랜 약속(창12:7)을 쫓아 이스라엘에게 무상 증여한 양도물이자 상속물인 것이다.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 이처럼 오직 가나안 족속에 대하여선 
다른 이방 족속들에게 적용하던 전쟁의 법칙(10-14절)을 적용하지 말도록 금하고 있는 까닭은 
다음 몇 가지 이유에서이다. 

1)가나안 족속은 갖가지 극심한 죄악으로 인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멸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작정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9:4,5, 창15:16).

2)가나안 족속은 특히 가증한 우상 숭배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을 가나안 땅에 남겨 둘 경우,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3)가나안 땅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신정국가(神政國家)를 세우기로 작정한 
성별(聖別)된 곳으로서, 그곳에는 그 어떠한 죄악의 요소도 '절대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겨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화친을 제의함 없이 
가나안족속들을 모조리 멸절시키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하라 

‘진멸하되-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이들 족속들을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며, 결국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요인이 되었다.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그 신들' - 다신(多神) 사상에 깊이 빠졌던 가나안인들이 섬기던 모든 거짓 신과 우상들을 가리킨다. 
그 대표적인 것들로는 '바알'(왕상16:31), '아스다롯'(삿2:13, 삼상12:10), '하늘 황후'(렘7:18), '엘'(El) 등이 있다.

‘가증한 일' - 7:26,  레 18:22 주석 참조.

‘본받게 하여...범죄케 할까' -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B.C.1405-1390) 이후부터 
바벨론 포수와 회복기(B.C.586-400)까지의 구약 전역사를 통하여 
우상 숭배를 하고 안 하고에 따라, 하나님께로부터 징벌을 받기도 하고 축복을 받기도 하였다. 

즉 여호와를 섬기느냐 아니면 우상을 섬기느냐 하는 것은 곧 이스라엘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11:26-25, 왕상14:9,10). 따라서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서든 미혹되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엄히 경계하여야 했는데, 그 근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택함받은 백성들의 첫째 가는 의무였기 때문이다(출20:3, 말2:2).

19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밭의 수목' - '밭'에 해당하는 '사데'는 '들', '거친 땅', '흙' 등과 같은 의미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본절을 '들에 서 있는 나무'로 번역하였다. 
아마 이는 들판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나무를 가리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