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네 진영을 거룩하게 하라 :14 신23장 여러 설교 정리, 출처
<신23장의 개요>
01~08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
09~14절, 진 중에서의 정결 규례,
15~16절, 도망 온 종에 대한 규례,
17~18절, 창기와 남창의 규례,
.....................(7계명과 8계명의 구분선).......................
19~20절, 이자 금지 규례,
21~23절, 서원 이행 규례,
24~25절, 가난한 이웃을 위한 규례
그런데 본문을, 신명기 문맥상으로 읽어보면 주1)
19:1~21:9절은..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에 관한 말씀입니다.
21:10~23:18절은.. ‘7계명, 간음하지 말라’ 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신23:1~18절은, 전후 문맥 상 '7계명에 포함된다 '는 것이죠.
그 뒤로 23:19절부터는 ‘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런 큰 그림 가운데서, 본문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해석 및 적용
큰 그림인 제7계명과 관련해서 본 단락을 해석하면,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
‘여호와의 총회’는 거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진 가운데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14절이 핵심 주제 구절입니다.
:14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암몬, 모압 사람을 여호와의 군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총회는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라는 거죠. 시1:5
▲진 중에서의 정결 규례, 9~14절
이 단락도, 위의 단락과 마찬가지입니다.
-설정한 자는 진 밖에 나가서 목욕하고 들어와라
-대변을 보려면 진 바깥에 나가서 보고, 그 후에는 흙으로 덮으라
이 모든 것이 ‘정결’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 는 것이죠. :14
신약적으로 말하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나, 또는 공동체) 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6~17
그런데 ‘여호와의 총회’는 전쟁을 위해서 총 규합하는 모임입니다.
왜냐하면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23:9) ,
여호와의 총회에 모인 사람들이, 전쟁을 치러 함께 모였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성적인 거룩(포괄적인 7계명) = 전쟁에서의 승리 ... 라는 공식입니다.
고자, 사생자, 암몬, 모압인을 제외시키고
진을 위생적으로 깨끗이 해서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23:14)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나라가 강해진다.. 는 것이죠.
출애굽 때, 모세와 여호수아 때까지는... 이 규례가 잘 지켜졌고,
그래서 그들은 거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대적들을 다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신20장
♣관련 예화/ 거룩과 경건으로 질병과 싸워 승리한 용사 에드워드 제너! (강추)
오늘날 우리가 당한 큰 전쟁 중 하나는 '질병, 전염병과의 전쟁'입니다!
이 영역에서, 크리스천 전문인들의 활약이 크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살린 의사는
종두법을 발명한 에드워드 제너 Jenner 라고 합니다. 1749~1823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은 코비드19로 전세계에서 수백만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19세기에 천연두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제너가 살던 시대와 비슷힙니다.
그는 경건과 기도와 사명감으로, 기가 막히게 기발한 천연두 치료법을 계발했는데,
바로 우두 환자에게서 백신을 추출해서,
건강한 사람들에게 천연두 예방 백신으로 접종케 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인해, 그는 백신 개념이 없던 시대에, 처음에 너무 많은 욕을 먹었지만,
결국은 적대국인 프랑스의 나폴레옹까지 그를 존경했고, 프랑스 군대도
모두 천연두 예방접종을 시켰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제너는 1749년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버클리에서
지역 교구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성공회 교구 목사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주2)
그의 가족은, 대대로 성공회의 한 교구를 맡아서 사람들을 잘 목양했지만,
제너는 갑작스런 부친의 죽음으로, 경제적 문제로, 의학의 길로 가게 됩니다.
에드워드 제너는 헌신적인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목사는 아니었지만, 자기 삶을 통해서 믿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친절하고 조용하며 마음이 따뜻한 기독교인으로서
성경 구절을 항상 암송하고 있었으며, 적절한 때 인용하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대중의 찬양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을 만들고 사용하신 하나님께로, 대중의 찬양이 향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염려했습니다.
나(칼럼니스트)는 Edward Jenner의 삶에서 많은 도전을 발견합니다.
첫째, 나는 Jenner가 성취한 것에 대해 도전을 받습니다.
기독교계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부르심이
전임 목사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Jenner는 가정 형편상 목회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은, 어느 목회자보다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계에서 사람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한 의사로 손꼽힙니다.
둘째, 나는 Jenner가 어떻게 그의 기독교 신앙으로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그의 일을 개척해 나갔는지에 대해 도전을 받습니다.
그의 믿음과 기도는, 그가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한 모든 일을 뒷받침했습니다.
그의 과학은 2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상적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백신의 원조격이 바로 ‘에드워드 제너’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의 굳센 의지에 도전을 받습니다.
Jenner의 첫 번째 종두법 백신 연구 결과 발표는 거부되고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구를 포기하는 대신,
연구실로 돌아가서 더 많은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 백신 접종은 논란이 많았고, 사람들은 백신이란 개념조차 모를 때였습니다.
그래서 Jenner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우두 병균을 사람에게 주입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지식과 학문과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의 비평가들에 맞서 굳건히 버텼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Jenner의 명성에 대한 휘둘리지 않음 (명성 예방 백신 접종)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는 19세기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셀럽이 되었지만, 그는 사람이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Jenner는 과거처럼 여전히 부드럽고 겸손하며 은혜로운 사람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금처럼 백신 접종이라는 단어가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기에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사람이 참 크리스천 에드워드 제너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는 믿음의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Canon J.John 목사, 위 글의 출처 주2) -혹은 여기 click -
......................
의학은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지만 질병과의 전쟁에서 인간은 여전히 열세입니다.
그러나 천연두는 인간이 완전히 정복했다고
1980년 세계보건기구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18세기 유럽 사람들의 주요 사망 원인은 천연두였답니다.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20~40퍼센트가 사망하였고
고열, 두통, 요통, 구토 등에 시달리다 치료 된다고 해도
얼굴에 흉터(곰보)가 남아 평생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 무서운 천연두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사람은 제너입니다.
그는 5세 때 성직자였던 아버지를 잃고
역시 성직자였던 큰형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13세에 가까운 곳의 외과의사 밑에서 견습했다고 합니다.
그 후 8년 동안 제너는 의학과 외과술에 관한 지식을 철저히 배웠는데
그가 견습생시절 때, (가축이 옮기며 비교적 위험성이 적은 질환인)
우두에 걸렸던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들이 천연두에 우연히 또는 고의로 접해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 했습니다.
이 현상을 깊이 생각한 결과, 그는 우두가 천연두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우두를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계획적으로 천연두를 막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았고 비웃음만 샀다고 합니다.
아마도 병균(우두)에서 천연두의 예방약을 뽑는다는 것이,
상식과 맞지 않았나 봅니다.
1796년 5월 제너는 손가락에 우두를 금방 앓은 상처가 있는 세어러 네머스를
발견했고, 그녀의 상처에서 뽑은 물질을
제임스 핍스라는 8세 소년에게 접종했다고 합니다.
이 소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열이 나고 약간의 병변이 나타났고
시간이 지난 후 천연두 물질을 이 소년에게 다시 접종했는데
아무런 병도 생기지 않았으며 완전히 병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고 합니다.
1797년 그는 왕립학회에 그의 실험결과를 설명한 짧은 논문을 제출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그 후 1798년 그는 사례를 더 첨부하여 소책자인
〈우두 백신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연구〉를 개인적으로 출판했지만
세상의 반응은 호의적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는 공격과 중상, 비방 등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종두법의 가치는 빠르게 증명되어
유럽 대륙과 미국, 그리고 세계 전역으로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결국 제너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큰 존경을 받았지만
자신의 발견을 이용해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길을 열어 놓으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무수한 고난과 시련 가운데,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펼쳐 놓았습니다.
천연두보다 백배로 더 무서운 죄와 사망으로 부터 우리를 영원히 면역시켜주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나라에는, 제너와 같이, 예수님과 같이,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의로운 선구자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에 따르는 저항과 반대를 능히 이기는 신념의 사람입니다.
▲도망 온 종에 대한 규례, 15~16절
‘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
그가 네 성읍 중에서 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23:15~16
여기에서 종이 도망하였다는 것은, 그저 무단 이탈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학대로 인한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모두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 종이거나, 이방 나라의 종으로 봅니다. (유대인은 동족을 종 삼지 않음, 빚으로 판 경우 제외)
도망을 나온 종이 다시 주인에게 붙잡힐 경우에는 사형에 처해지거나
두 발이 잘리는 중벌에 처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혹독한 형벌을 받게 하는 것이므로 자비를 잃은 처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도망쳐 온 종은 본래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않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 안에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고 도망을 나온 종들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도망 온 종의 규례’가 문맥상 7계명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거죠. *21:10~23:18
무슨 연관이 있기에, 7계명 속에 배치된 것일까요?
여기에서 종이 도망하였다는 것은, 그저 무단 이탈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학대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또한 이방 나라 출신으로 봅니다.
그렇지 않고는, 목숨을 걸고 도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도망했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걸 만큼 그보다 더 심한 학대를 받았다는 뜻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성적 학대를 당했다든지, 무슨 매음굴에서 도피해 왔다든지
모세가 ‘도와주라’고 한 것을 보면, 긍휼을 베풀어야만 하는 어떤 상황이 있었다는 겁니다.
본문 23:15~16절이 문맥상 ‘7계명 (21:10~23:18)’에 속했다고 보고..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종이 도망쳐 나왔다면
정말 ‘도망 친 종이 받는 규례’대로 엄정하게 처리해서
아마 당시 사회적 합의 대로, 다리를 자르든지, 중형에 처하든지 했을 것입니다.
이런 공의의 법도 성경은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도망쳐 나온 종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한 것은,
긍휼을 받을 만한 사유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사유가 없으면... 중벌로 엄정하게 처리되었을 것입니다.
▲창기와 남창의 규례, 17~18절
17절,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는 우상의 신전에서 매음하는 여자를 말하고 미동은 남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은 이스라엘 내에서는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주로 가나안 우상들 중 다산의 신이며, 성의 신인 아스다롯 여신을 숭배하는 예식에 관련된 사제들입니다.
18절,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창기가 자신이 받은 화대로 여호와께 바친다는 것은 곧 신성 모독입니다.
또 그런 헌물이라도 허용한다면 그것은, 그런 악한 직업을 허용하는 것이요,
그런 생활 방식도 허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물로 회개하면서 바친다면.. 그건 또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런 규정은 오늘날 헌금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참회하며 죄에서 돌이키지 않은 자의 부당한 헌금과
남의 것을 착취하고 남의 이익을 가로채서 얻은 재물로 드리는 헌금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7계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거룩과 성결을 강조하는 것은
본문 14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안 그러면 전쟁에서 진다는 거죠.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23:14
............................. 여기서부터 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 시작 .......................
▲동족 이자 금지 규례, 19~20절
본 절부터, 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와 관련된, 광범위한 적용이 시작됩니다.
19~20절,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동족 형제에게 이자를 받는 것은, 확대 적용하면
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를 어기는 죄가 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당한 금융 행위 전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동족끼리, 그것도 가난한 자가 생활이 궁핍하여 생존을 위하여 물질을 꾸고자 할 때에 한해서
이자를 받는 것을 금한 것입니다. 이는 사랑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며(눅 6:34,35),
이자 때문에 가나난 자가 더욱 가난하게 되는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형제(동족) 사이의 이자는 금지되지만, 이방인에게는 허용됩니다.
타국인에게 이자를 받는 것은, 정당한 경제활동이 됩니다.
다만, 고리로 이자를 받는 것은, 일반적인 성경 원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서원 이행 규례, 21~23절
21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서원은 인간 쪽에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일이나 어떤 일을 하겠다는 자발적인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한 번 서원한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레27:2, 민30:2).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22~23절,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그러나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서원을 하지 않은 것이 신앙적으로 죄가 될 수 없으며,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서원제에 드려지는 예물은 모두 제사장의 소유가 되기 때문에
혹 제사장이 서원을 강요하여 백성을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규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서원을 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한 번 서원한 것은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이를 어기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전체 문맥인 ‘8계명 – 도적질하지 말라’ 의 흐름 속에서 해석하면
제물이나 물질을 드리기로 서원해 놓고, 만약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함에 관련된 8계명을 어기는 셈이 됩니다.
♣적용 / 과시용 헌물은 안 되지만, 하나님이 감동주시는 헌물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평안북도 정주군에 한 시골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갑자기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배당을 증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의 면면을 보면 다 가난하였습니다. 제대로 사는 교인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농민들이라 교회를 증축하기를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가운데 백사겸 집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너무 가난해서 건축헌금 낼 형편이 되지는 못해서 늘 기도로 돕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없는 돈 내려 하지말고 있는 돈을 내면 될게 아니냐"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었다. 다시 그래서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다가 드디어 그 음성의 뜻을 깨닫고는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인 논 3마지기를 팔아 건축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의 마음과 충성 헌신을 칭찬하기는커녕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제도 모르고 헌금을 그렇게 많이 하다니"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남이 잘하는 것이 배아픈 것입니다. 동네사람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쟁이가 되더니 논까지 팔아 바치는군. 내년부터는 머슴살이를 해야 되겠구먼.."
소문이 교회 안에 동네에 자자하게 되자 이윽고 선교사님이 그 집사님을 불렀습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논을 팔아 헌금했는데 후회되지 않습네까"
백사겸 집사님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굶어 죽게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선교사님은 이 집사님의 믿음과 충성과 헌신에 감탄하게 되어 그를 교회 사찰집사로 일하게 하고,
그의 아들은 신성학교에 보내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성학교 교장인 매킨 선교사님이 그를 끔찍이 사랑해 자식처럼 돌보아 주고
그를 중국에 유학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중국 유학에 이어 미국에 가서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또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1927년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교장으로 있다가, 해방이후 문교부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1957년도에는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이 된, 백낙준 박사입니다.
하나님을 마음 중심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면 하나님은 이처럼 반드시 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펀 글)
▲가난한 이웃을 위한 규례, 24~25절
24~25절,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잘 아는 내용이라서, 특별한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절별 해석 ...........................................................
1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공동번역은 이를 '불알이 터진 사람이나 자지가 잘린 사람'으로 번역하였다.
성기(性器)는 남녀를 구별하는 중요한 상징(symbol)이니, 그것이 거세되었거나 있더라도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남자는 더이상 남자라고할 수 없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실제로는 남자의 구실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죄와 타락으로 인하여 본래의 영화로운 모습을
상실한 인류에 비유될 수 있다(창1:27, 3:19, 시8:4,5).
따라서 성기가 거세된 남자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곧, 범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교훈해 준다(히10:22).
한편 이러한 규례는 마치 몸에 흠결(欠缺) 있는 자가 제사장이 될 수 없었던 것과 같이(레21:16~24),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지니는 제사장적 성격(출19:6)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 '여호와의 총회'(the Assembly of Jehovah)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제사 의식이나 큰 행사로서의 공식적인 예배 의식을 가리킨다(9:10).
그러나 본절에서 가리키는 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서 이견이 많은데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1)'여호와의 총회'를 이스라엘 공동체로 이해하고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섞여 살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비록 생식기에 이상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임엔 틀림 없으니(사56:3,4),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2)이스라엘 백성과 결혼할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는 8절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타당치 못하다.
3)이스라엘 백성으로 귀화(歸化)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역시 첫번째 경우와 같은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
4)비교적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주장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나 회합에서
어떠한 직책(職責)도 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역시 8절에 의거하면, 이방 족속도 3~4대가 지나면
직책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 되므로 부자연스럽다.
5)앞서의 일반 개념에 의거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거국적인 공식 집회나
예배에 참여할 수 없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Calvin, Wycliffe).
즉 생식기에 이상이 있는 자나, 사생자, 암몬과 모압 족속 등은
개인적으로는 여호와 신앙에 귀의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만의 거국적인 공식 예배나
제사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일정 기간, 또는 영원토록 금지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8절의 내용과도 아무런 하자가 없기 때문에 가장 무난한 것 같다.
이처럼 신정(神政) 국가 이스라엘의 여호와 총회는 스스로 비제사장적인 성격의
자격 미달자들을 제외시킴으로써 그 제사장적 거룩성을 보존해야 했다.
한편 자격 미달자의 성격으로는 신체적 조건(1절), 윤리적 조건(2절) 및
역사적 조건(3~8절) 등이 고려되었다.
2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 대에 이르기까지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하리라
‘사생자(맘제르)' ~ 원래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슥9:6에는 이 말이 '잡족'(雜族)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유대학자들은 이를 '근친 상간에 의해 태어난 자식'으로 보고 있다(Mishna).
그리고 70인역(LXX)과 벌게이트(Vulgate)역은 '음행의 자식'으로 번역하였다.
반면 혹자는 '간음으로 인해 태어난 모든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Calvin).
따라서 여기서 '사생자'란 비합법적인 결혼이나 불법적인 성관계로 인하여 태어나는
모든 자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십 대까지라도' ~ 이는 문자 그대로 '10대 후손까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원히', '언제까지라도'라는 뜻이다.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 ~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두 딸 간의 근친 상간으로 인해
태어난 족속(창19:36~38)으로서 원래는 이스라엘과 화친(和親)할 대상이었다(2:9,19).
그러나 이 두 족속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방랑할 때 호의를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화친 제의에도 불구하고 이방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었다(민22:1~24:25).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행군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방해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 죄를 범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참여하는 것이 영원토록 금지되었던 것이다.
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 갈그미스에서 남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위치한 성읍이다.
오늘날 이곳은 '텔 아마르'(Tell Ahm~ar)로 불리우고 있는데 이라크(Iraq) 영토에 속한다.
‘브올의 아들 발람' ~ '발람'의 이름 뜻은 '백성을 멸망시키는 자', '탐닉자'이다.
그는 여러 차례 하나님의 제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의 탐욕에 못이겨
모압 왕 발락의 요청을 받고 결국 이스라엘을 음행의 꾀로 멸망시킨 자이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의 이름 뜻과 잘 합치한다.
한편 '발람'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22:5 주석을 참조하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그 저주를...복이 되게 하셨나니' ~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에 근거한 행위이다(창12:2).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들에게 닥치는 어떠한 위해(危害)도 마침내 유익된 것으로 바꾸어 주신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게 된다(롬 8:28).
6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구하지 말지니라' ~ 이는 단순한 악감정(惡感情)에 의거한 보복 행위
를 뜻하지 않는다. 이 역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는 여호와의 변치 않는 약속(창12:3)에 의거한 행위이다.
7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에돔 사람' ~ 이삭의 아들인 에서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예들로서 야곱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스라엘과는 형제국이다(창36:9). 그러나 이들은 암몬이나 모압 족속과 같이 여행 중의
이스라엘을 박대하였다(민20:14~21). 그 결과 두 민족간에는 반목과 질시가 싹트게 되었다.
‘미워하지 말라' ~ '미워하다'에 해당하는 '타아브'는 도덕적 또는 종교적인 이질감(異質感)을
이유로 상대방을 지독히 혐오하며 가증스럽게 여기는 행위를 가리킨다(7:26).
‘그는 너의 형제니라' ~ 이처럼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과 밀접한 혈연 관계였던 만큼
이스라엘에게 행한 잘못의 책임은 다른 족속에 비해 더 엄중하게 다루어져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족속(3~6절)과 달리 그들에게 관용을 베푸셨다.
이는 그래도 그 족속이 열방 중 이스라엘과는 가장 가까운 친형제 족속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이것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명령이며, 동시에 최소한의 선을 베풀만한 이유가 있거든
최대한 호의를 베풀라는 명령이다.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 물론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애굽인들이 자신들에게 가했던
400년간의 혹독한 압제를 쉽게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출1:8~22, 2:23).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명하신 까닭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1)이스라엘은 억지로 끌려서 애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려간 것이다(출1:1~7).
따라서 애굽인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배권을 행사한 것은 어느 정도 정당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2)당시 가나안 전역에 몰아 닥쳤던 대기근에 비추어 볼때 애굽은 한때나마
이스라엘의 따뜻한 안식처였기 때문이다(Calvin). 여기서도 우리는 증오보다는 사랑을,
분쟁보다는 화평을 더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본 속성을 엿볼 수 있다.
8 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삼대 후 자손은...들어올 수 있느니라' ~ 단 이때 준수되어야 할 전제 조건은
먼저 할례를 받고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하는 것이었다(창17:9~14).
9 네가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 ~ 영역본 NIV는 '너희의 원수를 치기 위해 너희가 진(陳)에 야영하고
있을 때'로 번역하였다.
이때는 곧 평상시라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던 행위들이 곧잘 저질러지기 쉬운 때이다.
즉 평상시에는 법과 질서가 잘 준수되던 사회에서도
전시(戰時)가 되면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기 십상인 것이 보편적 현상인 것이다.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 직역하면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너희들 자신을 지키라'이다.
특별히 여기서 '악한 것'이란 10~13절에 나타난 바 의식적(儀式的) 불결을 가리킨다.
성도가 성결의 의무를 태만히 하는 것은 어떠한 구실이나 핑계로써도 결코 용서될 수 없다.
이는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이에 하나님은 본절과 같은 경고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약1:27).
10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영 밖으로 나가고 진영 안에 들어오지 아니 하다가
‘밤에 몽설함으로'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믹케레 라옐라'는 '밤중에 우연히 일어난 일 때문에'라는 뜻이다.
그런데 헬라어 역본 70인역(LXX)은이를 '밤동안 정액의 유출로 인하여’로 각기 번역하였다.
결국 본절은 남자들이 밤에 성적(性的)인 꿈을 꾼다거나 기타 다른 사유로 인해
무의식 가운데 발생하는 정액(精液)의 유출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일은 의학적으로 볼 때 인체에 아무런 해도 없으며 오히려 남성의 생리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은 어디까지나 구약 시대의 정결례법적(淨潔禮法的)인 차원에서이다(레15:16~18).
‘진 밖으로 나가고' ~ 한 사람의 의식적(儀式的) 부정이 진영 전체의 병사들에게 오염되는 것을 금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11 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해 질 때에 목욕하고...들어올 것이요' ~ 정액의 유출로 인하여 부정해진 자는
반드시 물로 온 몸을 씻어야 하며, 그러고도 저녁까지 부정하다는 모세 율법에 근거한 규례이다(레15:16).
그런데 이처럼 전쟁에 임하는 병사들이 몸을 성결케 하고 성적 관계를 멀리하는 것은
당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현상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군대는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군대였으므로 더욱 삼가 성결 규례를 지켜야 했다.
12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그리로 나가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 이스라엘 진 중(陳中)은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함께 거하시는 곳이므로,
항상 성결을 유지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생리적인 문제를 진 밖에서 해결해야 했다.
이처럼 야영생활에 있어서의 생리적인 배설 문제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쓰는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라는 자긍심을 더욱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로써 자신들의 의식적인 성결을 유지할 뿐 아니라, 진 중에 임재하여 계시는
하나님(14절, 민9:15~23)께 대하여 충분한 경의도 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본 규례는
여러 사람들이 합숙하는 진영(陳營)에서 공중위생을 유지키 위한 규례이기도 했다.
13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 여기서 '기구'에 해당하는 '아젠'은 '무기'나 혹은 삽, 곡괭이 같은
'장비'(裝備)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은 이를 '허리띠'로 번역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번역을 따른다면, 본절은 대변을 보러 밖으로 나갈 때
'허리띠에다가 작은 삽을 매달고' 나가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후 문맥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당시 상황이 전쟁을 앞두거나 전쟁 중인 상태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오히려 이는
1)대변을 보러 밖으로 나갈 때 자신의 '무기'외에도 작은 삽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거나(KJV, RSV)
2)군인으로서 갖추고 있는 '장비'중에서 삽으로 쓸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나가서 대변을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NIV, Living Bible).
‘몸을 돌이켜...덮을지니' ~ 이처럼 하는 이유는 부정한 배설물을 눈으로 봄으로 인하여, 의식적 혹은 정신적 부정(不淨)을 입지 않기 위함이다.
14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여호와께서...네 진 중에 행하심이라' ~ 이스라엘이 대적과 싸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셔서 친히 대적을 치고 구원해 주시리라는 언약(20:1~4)에 근거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성격의 명령이다. 그런데 이처럼 진중(陳中) 성결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기에 앞서 먼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시사해 준다.
즉 이스라엘은 눈앞에 보이는 적군과 싸우기에 앞서 먼저 그들 자신의 부정 및 죄와 싸워야 했던 것이다(막 7:20~23).
‘불합한 것' ~ '발가벗다' 또는 '발가벗기다'는 뜻의 '아라'에서 유래한 말로 곧 '수치스러운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공동번역에는 '더러운 것', KJV에는 '부정한 것'(unclean thing),
그리고 RSV와 NIV, Living Bible에는 '추잡한 것'(anything indecent)으로 각기 번역되어 있다.
한편 율법이 이처럼 정액, 대변, 월경 등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까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의식상(儀式上)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게 함으로써,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에 의해 성별(聖別)된 공동체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일상 생활 속에서 늘 하나님의 거룩성을 인식케 하여,
그들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거룩하고 정결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5 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
‘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도망하거든' ~ 여기서 의미하는 종은 모든 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혹독한 학대를 못 이기거나 기타 정당한 사유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회로 도망쳐 온
이방 족속 노예를 가리킨다.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 고대 사회에서는 일단 도망쳤다가 도로 주인에게 붙잡혀 온
노예는 대부분 사형에 처하거나 두 발이 잘리는 등 중벌에 처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주인의 부당한 압제를 견디다 못해 도망쳐온 노예를 다시 그 주인에게 인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를 죽음 속으로 몰아넣는 비인도적인 행위가 된다.
따라서 모세 율법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하여 이를 금지시키고 있다.
16 그가 네 성읍 중에서 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 도망쳐 온 이방 족속 노예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도피성(수20:1~6)
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여 그들에게 신변 안전과 안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당한 사유로 인해 도망쳐 나온 종들에게 해당되는 규례일 뿐(15절),
도둑질이나 간음, 살인 따위를 저지르고 도망쳐 나온 이방 노예들에게까지 해당되는 규례는 아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그러한 도망자들까지 보호해준다면 그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법과 공의를 파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마치 이스라엘의 도피성 제도가
무죄한 오살자(誤殺者)들에게만 그 혜택을 부여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민 35:16~25).
17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케데솨)' ~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직업적으로 몸을 파는 여자인 '조나'와는 달리<22:21>,
주로 우상의 신전(神殿)에 소속되어 우상 숭배의한 행위로써 종교적인 매춘 행위를 하는 창녀를 가리킨다(창38:21).
그러므로 공동번역은 이를 분명하게 '성소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의역(意譯)하고 있다.
‘미동(카데쉬)' ~ '케데솨' (창기)와 마찬가지로 '카다쉬'(바치다, 봉헌하다)에서 유래한 말로
성소에서 몸을 파는 남자, 즉 '남창'(男娼)을 가리킨다. 다른곳에서는
'남색(男色)하는 자'로 번역되어 있는데(왕상14:24, 15:12, 22:46), 성경 기록으로 보아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성(性)의 여신 '아스다롯'(Astarte)을 섬기는 예배의식에서
창기와 미동을 통한 매음 행위가 널리 성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18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개 같은 자의 소득' ~ 이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다른 해석이 있다.
1)문자적 의미에 충실하여 이를 '개를 판 돈과 같이 부정하고 추잡한 거래에서 생긴 소득’
(계22:15)으로 보는 견해이다.
2)'개'를 남창으로 이해하여 '남창의 소득'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런데 17절에 의거해 볼 때 일단은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 그러나 이는 포괄적으로
'음란하고 사악한 짓을 통해 얻어지는 모든 수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호와의 전에 가져 오지 말라' ~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결코 부도덕한 행위나 부정한
방법으로 벌어 들인 돈이어서는 안 됨을 뜻한다. 왜냐하면 그 같은 헌금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각종 부정이나 죄악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그릇되고 부정한 수단으로는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증한 것' ~ 이에 해당되는 원어 '토에바'는 '심히 꺼리다', '구역질나다', '강력히 거부하다’
란 의미를 지닌 '타아브'에서 파생된 말로, 곧 '지독히 싫어하는 것', '혐오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의 '거룩성'(코데쉬)과 정면 배치되는 것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되고 있는데(7:26, 13:14), 주로 우상 숭배 행위나 성적(性的) 문란 행위 등에 적용되었다.
19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형제에게...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 일종의 고리 대금업을 금지하고 있는 규정으로,
이미 출22:25과 레25:35~38에서 언급된 바 있다.
즉 동족 중 가난한 이웃이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이든 양식이든 차용(借用)했을 때
그에게 이자까지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생계를 더욱 압박하는 결과가 된다.
따라 약자 보호 및 이웃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모세 율법은
그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는 것이다.
20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타국인에게...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출23:25과 레25:35~38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규례이다.
이와같은 차이점은 본 신명기의 규례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정착생활을 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롯되었을 것이다.
즉 아무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 무역을
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럴 경우 상거래(商去來)상에 있어서 그들과의 금전 대여에 따른
이자 소득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1)먼저 '타국인'(노크리)들은 율법 밖에 있는 자들로서 율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2)또한 그들은 생계를 위한 가난한 동족들의 차용과는 달리,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고
상업상의 목적으로 돈을 꾼 자들이기 때문이다.
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서원하거든(나다르)' ~ 원뜻은 '약속하다'이다. 그러나 성경상에서 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약속을 뜻하는 경우가 전혀 없고, 단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드리거나
어떠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만을 가리킨다.
22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23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맹세로 약속하는 것, 곧 서원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에서 비롯된 자발적 행위이지 결코 억지로 강요당하며 행하는 약속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 서원한 것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하는 행위가 되어 죄가 된다.
따라서 지키지 못할 서원 같으면 애초부터 서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행동이고,
일단 서원했으면 비록 자신에게 해로울지라도 '여호와 경외(敬畏) 사상'에 의거하여
충실히 지키는 것이 신실한 자의 태도이다. 본 규례가 교훈하고자 하는 내용도 바로 이에 다름 아니다.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 ~ 이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언급하기를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서원한 것에 대해서는 자기자신에게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고 하였다(시15:4). 민 30:1~8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참조.
24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것을 잊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는 규례
중 하나이다(15:1~5,7~10, 16:11,14, 24:6,10~22, 26:12~15).
즉 본문은 굶주린 이웃이나 길가던 빈한한 나그네가 비록 남의 포도원이나
곡식 밭에 들어가서 주린 배를 채운다 할지라도 '관용과 긍휼의 정신으로'
그것을 용납하라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후일 시장한 예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사실에서도 나타난다(마12:1, 눅6:1).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아랍권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낫을 대지 말지니라' ~ 만일 다른 사람의 과일이나 곡식을 따
그릇에 담거나 혹은 여타 기구를 사용하여 거두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주린 배를 채우는 단계를 넘어서 남의 소유를 제멋대로 반출(搬出)해 내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그러한 행위는 분명 공의의 정신에 위배되니, 이에 율법은 이를 엄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과 공의가 좌로든 우로든 전혀 치우침이 없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겠다. 아울러 그것은 곧 행위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속성이 그대로 반증된 좋은 예이다(사30:18, 요일4:7).
...................................
주1) 신명기 중간 개요
신명기의 두 번째 설교 (5~26장) 를 분해하면
5장~11장 까지는, 도덕법을 다루고 있는데 -십계명 그 자체-
도덕법의 내용이 무엇이고, 또 도덕법을 어떤 정신으로 지켜야 되느냐.. 를 다룹니다.
12장~26장 까지는, 이 도덕법(십계명)을 일상생활의 특별한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하느야?
어플리케이션, 혹은 판례 (
즉 '어떤 경우, 경우에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 12~26장을 분해하면 .......................
<4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 *절기 포함
12장 - 택하신 그곳에서 공예배를 드려라
13장 - 영적 반역자들을 주의하라 종교지도자/가족 등
14장 - 장례규정
15장 - 면제년
16장-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 *'부모'에 사회의 어르신도 포함
17장 - 범죄 소추, 왕의 규례, 판결하기 어려우면 중앙법원에 이첩
18장 - 레위인, 제사장, 선지자
<6계명, 19:1~21:9 >
19장 - 도피성과 살인, 지계석 옮기지마
20장 - 전쟁에 관한 규례
21:2~9장 – 살인 미제 사건
<21:10~23: 7계명>
21:10~23 포로된 여인을 아내로 맞기
22장 – 신부의 순결, 성도덕 등
23장 -- 진camp을 거룩하게 하라
주2) 제너의 신앙
Edward Jenner was a committed Christian. He was typical of many believers in every age who demonstrate their faith through the way they live their lives. An amiable, quiet, warm-hearted Christian, ever ready with the appropriate Bible verse, Jenner was anxious that his discovery would be used as widely as possible. He was particularly concerned that praise should be directed not to him, but to the God who had made and used him.
I find many challenges in the life of Edward Jenner.
First, I’m challenged by what Jenner achieved. In Christian circles, it is still sometimes held that the highest calling that anyone can have is that of being a full-time minister of the gospel. Circumstances demanded that Jenner never made it as a preacher but it’s hard to imagine a life of greater value than his.
Second, I’m challenged by how Jenner let his Christianity guide his work as a doctor and a scientist. His faith supported and regulated all that he did as a doctor and scientist. His science – apparently still impressive two centuries on – overflowed with virtues: enquiring, accurate and honest.
Third, I’m challenged by his determination. Jenner’s first efforts at publishing his results were rejected. Instead of giving up, he simply went back and got more data until his work was accepted. Vaccination then, as now, was controversial and Jenner had more than his fair share of criticism. Nevertheless, trusting in his knowledge, his studies and his God, he stood firm against his critics.
Finally, I’m challenged by Jenner’s immunity to fame. Here is a man who became quite literally a household name across the world, yet his celebrity status left him unchanged. Jenner remained to the end of his life a man who was gentle, humble and gracious.
So at a time when the word vaccination is widely heard, spare a thought for Edward Jenner, the man who started it all. A true hero of the faith.
Rev. Canon J.John -이 글 출처 - ♣(도서 발췌) 천연두는 20세기에만 무려 3억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던 어마무시한 전염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천연두가 유행한다는 얘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데요. 이토록 무서운 천연두는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 놓았으며,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천연두에 걸릴 경우 환자는 얼굴이나 몸에 특유의 수포가 형성되고 고열이나 두통, 뼈마디가 쑤시는 것 같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수포가 얼마나 많이 났는지 얼굴에 발진이 2백개 이상 생기는건 약과이고, 심하면 5백개 이상의 수포가 얼굴을 뒤덮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병을 이겨내고 살아 남아도 그 수포가 있던 자리에 생긴 흉터는 환자의 얼굴에 평생 동안 남아 있었죠. 이 곰보 자국이 남은 이들은 천연두 환자 라는 꼬리표를 일평생 달고 살았으며 운이 좋으면 종교의 귀의, 조용한 수도원에라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가난하고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천연두에 흔적은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이라 얼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집트에서 한참 떨어진 고대 중국에서도 기원 전 1120년경에 천연두 small-pox 에 의한 사망자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를 통해 인간이 천연두에게 시달린 역사가 최소 3천 년 이상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천연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발생했고 유럽에는 발생사례가 없었으나 훈족의 침공으로 인해, 유럽에 천연두가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천연두는 유럽인들의 삶 깊숙히 파고 들었고 이는 일반 민중들 뿐만 아니라 상류층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유럽의 유명인사들은 천연두의 마마자국을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 했는데 초상화를 남길 때도 보기 흉한 흉터들은 그리지 말아달라고 화가들에게 특별히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천연두 흉터 자국을 많이 가지고 있던 이들 중에는 괴테, 모차르트 같이 우리가 잘알고 있는 인물들도 많았죠. 천연두는 서기 1500년 무렵, 유럽의 탐험과 정복자들을 매개체로 신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여태까지 본 적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전염병에 노출된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정말 속수무책으로 천연두에게 희생됩니다. 천연두는 원주민들의 전투력을 무력화시켜 놓았고 유럽에서 온 정복자들이 손쉽게 새로운 영토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당시 멕시코에는 2천5백만 명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 1천8백만 명이 천연두로 사망했습니다. 이 덕분에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는 고작 병사 6백명 만으로 아즈텍의 수도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아즈텍 제국 뿐만 아니라 잉카 제공 역시 천연두 때문에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1526년을 기점으로 잉카 제국에 들어온 천연두는 겨우 10년만의 제국의 전 인구 50~90%를 죽게 했고, 1532년에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제국이 점령 당합니다. 피사로의 군대도 보병 167명과 기병 67명 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였죠. 이렇게 신대륙의 원주민 제국들이 박살나는 한편 유럽은 18세기에 이르러 천연두 유행의 절정을 맞이합니다. 이 시기에 유럽은 이전에 비해 천연두 감염 확률이 3배나 증가해서 25년 동안 1천5백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시기에 빛이 들어오는 법! 드디어 천연두를 치료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립니다. 영국의 시인 겸 소감문 작가 메리 워틀리 몬테규는, 중동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천연두 예방 방법을 발견하는데요. 투르크 제국의 치료사 들은 천연두에 걸린 환자들 중 증상이 가벼운 이들의 수포에서 액체를 뽑아 아직 천연두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의 피부에 주입해서 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웠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예방접종 이란 개념을 진작부터 이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몬테규 부인은 투르크 제국으로부터 종두법을 배워 영국으로 돌아왔고 영국 사회에서 종두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개량해 아주 혁신적이고 안전한 예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제너는, 당시 소젖을 짜는 여성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고 그 이유를 의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젖소를 돌보던 여성들은 젖소 들이 가지고 있던 병, 우두 바이러스에 전염되는 일이 직업병처럼 흔했으며 제너는, 신기하게도 우두에 걸렸다가 나은 여성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우두 바이러스가 천연두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역할을 했던 겁니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우두에 걸려 손에 수포가 생긴 젖짜는 소녀 쎄라 넴스에게서 수포액을 채취해 그걸 건강한 8살 소년 제임스 핍스 에게 주입했습니다. 이후 제너는 제임스 핍스가 우두에 걸렸다가 회복한 뒤 드디어 그에게 천연두 바이러스를 주입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이의 몸에 천연두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죠. 제너는 몇 달 뒤 또 천연두 바이러스를 핍스에게 주입해 보았지만 여전히 소년의 몸엔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최초의 천연두 예방접종법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제너의 우두법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사람들을 천연두로부터 보호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2백년이 지난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 됐음을 발표했고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행성 질환의 박멸 완료를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희망을 되찾은 영광의 날이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렇게 정복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창세기강해,
인명진 목사,
냉수 한 그릇,
마가복음 강해,
예레미야 강해,
사무엘하 장별 설교,
냉수한그릇,
창세기 강해,
사도행전 강해,
« 2025/04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