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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6:1~14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LNCK 2022. 7. 21. 15:53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삼하16:1~14        2020.07.03.축약

오늘 본문에 네 사람이 등장하지요. 시바, 시므이 아비새, 다윗 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나름대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 각자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어떻게 결정하며,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본문에서 네 사람을 통해 보게 되는데죠. 

본문에서, 각 사람을 통해서 '혹시 나는 이런 사람을 닮지 않았나?' 그런 것들을 살펴보고 
내 믿음의 모습으로 한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삼하16:1~2절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내어주고 
급히 피난을 떠나는 길에, 몇몇 사람들은 돌려보냅니다. 

사독과 아비아달 같은 제사장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려보냈죠. 
그리고 후새라는 절친한 친구도, 미션을 주어서 돌려보내서 예루살렘에서 할 일을 맡겼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죽은 사울 왕가에서 시종으로 일했던 시바 입니다. 
사울 왕이 죽고 나서 그 집 재산을 전부 관리하다가, 내 것처럼 살았던 사람이죠. 

그러다가 다윗 왕이, 요나단의 아들, 사울 왕가의 남은 혈족이 없는가 찾다가 
두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을 발견하게 됩니다. 찾아서 왕궁으로 데려왔어요. 
따라서 이제 사울 집의 재산은, 전부 이 므비보셋에게 귀속되게 된 것이죠. 

따라서 시바는 주인처럼 행세하다가, 그냥 한순간에 다시 시종의 삶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당연히 마음속에 어려움이 많았겠죠. 

서운하거나.. 그 재산을 어떻게 하면 내가 다시 차지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많았겠죠. 

그는 어쩌면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사울을 위해서 평생 일하다가 이게 제게 주어진 보상인데 
제가 요나단의 다리 저는 아들 때문에, 이 재산을 제가 다 빼앗기게 되었어요. 
하나님, 그래도 적어도 내게도 몫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되찾게 해 주십시오' 
이게 어쩌면 그의 기도제목이었을 거에요. 

마침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갑니다. 
시바는 '때는 이 때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어쩌면 다윗이 예루살렘 왕궁에서 쫓겨나가는 이 사건이 
본인에게는 '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라고 생각 했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는 계획을 짭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므비보셋으로부터 이 모든 걸 되찾아 올 건가?' 
사람의 심리가 그래요. 남의 것을 오래 갖고 있으면, 마치 내 것 같습니다. 
주인이 돌려달라 그러면, 마치 내것을 주는 것처럼 아까워요. 
그래서 빚을 빌려주고 돌려받기 힘든 겁니다... 

어쨌든 오늘 보니까 시바가 굉장히 많은 음식을 가져와요. 
다윗도 처음에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묻기를 '네가 무슨 뜻으로 이 많은 음식을 가져왔냐?' 
그때 시바는 '내가 선의로 가져왔다'고 대답을 합니다. 

시바는 '두 나귀에 안장을 얹고' 온 것도 수상해요. :1
왜냐하면 물건을 싣고 오려면, 나귀에 안장은 지우지 않습니다. 
사람이 타려고 안장을 지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귀 두 마리에 안장을 지워서, 그 위에 음식을 실어서 온 것도 수상쩍은 일이죠. 
나중에 밝혀집니다. 나중에 삼하 19장을 보면 

나중에 다윗이 예루살렘에 환궁해서 물어볼 때, 므비보셋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19:26~27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시바)이 나를 속이고
(당신의)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그러니까 므비보셋은, 자기 종 시바와 함께 
다윗을 따라 피난을 가려고, 나귀에 안장을 얹었는데 ...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시바는, 다리 저는 므비보셋을 빠트리고,
자기 혼자서 그 음식을 다 챙겨가지고 다윗에게 온 것입니다. 
그 증거가, '안장 얹은 두 마리의 나귀'입니다. :1

피난을 떠나는 다윗에게, '힘드신 피난길에 잘 드시라고' 
그렇게 음식과 포도주를 다 가지고 온 것이죠. 

여러분,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누가 도움을 베풀면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래서 어쩌면 다윗은 이 순간, 잠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걸 그냥 선의로 받아들인 거에요. 받아들인 것 까지는 괜찮습니다. 

근데 이 이후에, 다윗은, 시바의 얘기를 올바로 분별할 판단력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사람이 어려움에 빠지면 분별력이 흐려집니다. 
고난가운데 들어가면, 상황을 분별하는 게 더 힘들어져요. 

평소에 분별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위기를 만나거나 어려움을 만나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16:3~4절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므비보셋)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지금 시바가, 자기 입장에서, 자기 편의대로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자기가 모시는 주인 므비보셋이, 다윗을 반역하는 말을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요나단)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3

자기 주인 므비보셋은, 다윗이 피난 가는 것을 보고서
'사울 왕가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라고, 엄청난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나(시바)는 지금 이렇게 음식을 챙겨가지고, 
지금 다윗 왕께 온 겁니다... 다윗은 이 (거짓)말을 액면 그대로 들은 거예요

그리고는 다윗은, 해서는 안될 결정을 합니다. 
'그러면 므비보셋의 재산은, 다시 도로 네가 관리해라' 이렇게 말해 버린 것입니다. :4

이게 시바가 노렸던 것이고, 계획했던 것이고, 그동안 (엉뚱하게) 기도해 왔던 제목이고 
그리고 오늘 자기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이죠. 

이게 하나님의 음성입니까, 하나님의 응답입니까? No!

우리가 믿음 안에서 기도하는 것들이, 이런 시바와 같은 기도일 수 있고 
이런 엉뚱한 결과를,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왜냐면 내가 온전히 갈망하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께 드렸지만 
사탄의 그 기도를 가로채서, 사탄이 듣고, 사탄이 응답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굉장히 많은 기도를 하지만 
'이게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것인가? 
그리고 내가 구한 것들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이 과연 내게 이걸 축복하신 것인가?' 
이걸 잘 분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속게 됩니다.  *지금 시바가 스스로 속음


그러나 이게 분명히 하나님의 응답이 아닌 것은, 
첫째는 시바가 주인을 배반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윗 왕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자기 주인을 모함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짓과 모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거짓과 모함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따라서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이 과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것인가?> 

시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내가 간절히 원하던 욕망의 소리가 응답되는 걸 들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걸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의 문제가 뭡니까? 
어쩌면 지금 쫓기는 이 마당에서, 과중한 부담이 그를 덮치고 있는 것이죠. 

지금 상황은, 조그만 일에도 짜증스럽고 화가 날 수 있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이럴 때 뭘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뭐 선물을 가지고 온 거니까 받을 수 있죠. 
지금 이 피난길에 꼭 필요한 게 음식이니까 
'수고했다' 라고 말하는 정도면 괜찮지만 

그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에 
그가 반드시 지켜야 할 언약(므비보셋을 돌보기로 함)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지켜야 할 약속이 있는데 
특별히 하나님과의 언약, 
사람과 사람간의 약속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한 언약,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한 언약... 이런 것은 반드시 지켜야한단 말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결혼식을 하더라도 
   목사를 주례로 세워서, 하나님 앞에서 결혼하고 하나님께 서약했다면 
   그 언약을 안 깨는게 맞단 말이에요. 
   
   아무래도 깨질 것 같은 생각이 들면, 그냥 둘이서 결혼하세요. 
   괜히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고.. 나중에 약속을 깰 일이 뭐가 있어요?
   하나님 앞에서 결혼 서약은 그만큼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뭔 약속을 깼냐면 
첫째는 요나단과의 약속을 깹니다. 

삼상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그 자손까지 돌보기로, 여호와 앞에서 맹세한 그 언약을 깨버린 것입니다.

삼하9:7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므비보셋)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찌니라'

므비보셋 하고도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이에요. 

그런데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순간적으로 므비보셋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하고 ...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여러분 이게 악한 자들이 하는 일이란 말이에요. 

시바가 그런 계획을 세울 때, 제일 중요한 계획의 키가 뭡니까? 
다윗과 므비보셋의 관계를 깨뜨리는 거란 말이에요.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약속이나 관계를 깨뜨려야 한단 말이에요. 
이게 여러분, 사탄의 주업이란 말이에요. 

사탄이 다니면서 하는 일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 간의 약속을 깨는 것, 관계를 깨는 것, 
신뢰를 저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그가 하는.. 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하는 동일한 일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사탄이 돌아다니는 역사는 눈에 보입니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친했는데, 오늘 갑자기 그 사람의 입이 험해지고 
눈이 갑자기 뱀처럼 번들거리고, 이상하게 사람을 쏘아보고... 사탄의 역사가 시작된 거예요. 

   옛날에는 우리가 '연탄가스가 들어왔다' 그렇게 표현했어요. 
   옛날에는 연탄을 피우면, 연탄 가스에 중독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가족이 몰살하는 일도 있었어요. 

   밤에 그냥 연탄불을 피워놓고 잤는데 
   무색 무취의 가스가 들어와서 다 죽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연탄가스처럼, 이게 슬그머니 들어와서 
   여러분의 좋은 관계를 다 끊어놓는단 말이에요. 

이게 여러분 우리가 늘 분별해야 돼요. 
사람을 좋게 얘기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이건 사단의 특징이에요. 
사단은 늘 사람을 좋지 않게 얘기합니다. 

이걸 우리가 이기는 게 중요한데, 
잠18:17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그러니까 먼저 온 사람 말만 듣고, 결정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상담을 하다 보면, 먼저 와서 하는 사람의 얘기밖에 못 들어요. 
그 사람이 비난하는 사람은, 만나지도 못하거니와, 상담하러 오지도 않아요. 
근데 이 사람 말만 듣고 판단하면, 대부분 잘못 판단한단 말이에요. 

잠17:9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어떤 사람 얘기를 계속 나쁘게 하는 사람은, 결국 뭐 하는 거예요? 
이간하는 자란 말이에요. 

사랑을 구하는 자는 어떻게 한다고요?
허물을 덮어주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게 뭐냐? 
참 어렵지만,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가 되는 거란 말이에요. 
허물을 가려주는 cover 자가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 허물을 같이 아파하고, 그의 허물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 허물을 내 허물처럼 여기고.. 이렇게 살아가는 거란 말이에요. 쉽지 않죠. 

그러나 고후2:10~11절을 보면, 이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후2:10~11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 사이를 이간하는 사람, 
성도와 성도 사이를 이간하는 사람... 사탄의 역사입니다. 
성령에 감동된 성숙한 성도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결국 공동체를 화합시키는 사람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 욕을 사방에 하고 다니겠습니까?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 흉을 사방에 까발리고 다닐까요? 그렇지 않죠.

근데 이런 사람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회나 어디에나 있단 말이에요. 
시바와 같은 사람입니다. 

시바에 이어 두 번째 나타난 사람이, 시므이입니다.


◑16:5~6절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지금 다윗은, 그래도 명색이 아직 피난 중이지만 왕인데 
시므이가 왕을 향하여 저주를 하고 돌을 던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마 비탈길 위쪽에서 그가 다윗 일행을 따라오니까, 
쉽게 그를 잡으러 가지 못하는 거리겠죠. 그 언덕 위에서 돌을 던지는 거예요. 

여러분 왕에게 돌을 던지는 게, 백성이 할 일입니까? 
그 당시에는 돌을 던진다는 것은, 가장 극도의 죄인에게 하는 일이란 말이에요. 

간음죄, 하나님의 신성모독 죄, 국가 반역 죄 등을 ... 범하면 돌을 쳐 죽였어요. 
그러니까 시므이가 돌을 던진 것은 '다윗 너는 지금 반역자다' 이런 뜻도 포함하고 있단 말이에요. 

어쩌다가 이렇게 왕에게 까지 대드는 사람이 됐을까요? 
좀 우스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시므이도 기도를 많이 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나름대로 들었기 때문에 그래요. 

이 사람은 명분주의자입니다. 그는 사울의 친족이기 때문에 
사울 왕이 패망하고 다윗이 왕이 된 것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가 없어요. 
그는 늘 의분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사울 왕가에 일어난 모든 일은, 다 다윗의 책임이라고 늘 혼자 생각하는 겁니다. 
사울 왕이 죽은 것, 왕자들이 다 죽은 것 
그 다음에 세워졌던 이스보셋이 죽은 것.. 군대장관 아브넬이 죽은 것..
이게 다 다윗 때문이거나, 다윗이 음모를 꾸며서 죽인 거라고.. 스스로 믿는 거예요.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었을 거예요. 
'하나님이 이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지금 그가 다윗에게 돌을 던진 것을, 그 이유를 유추해 본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는 오해를 낳고, 억측은 억측을 낳는 거예요. 
그가 아무리 오래 기도의 자리에서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는 기도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런 자기의 생각, 자기의 이념, 자기의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많습니다. 

늘 자기를 합리화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하나님 잘 믿는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기의 이념, 자기의 사상을 
하나님 신앙으로 포장하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왕이 지금 쫓겨나가는 상황에서도, 과감히 나와가지고 
이제 자기 목소리를 드높이고, 왕에게 돌을 던지기까지 하죠. 
이게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지금 다윗이 혼자 갑니까? 그 옆에 지금 장수들도 서 있는데 
완전히 자기 목숨 걸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누가 보면 '야 정말 사울 왕의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왕한테 저렇게 대놓고 대들 수가 있나?'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시므이의 신앙은, 도대체 어떤 신앙인지를 
여러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기도 안 하는 사람 같습니까? 
아뇨, 누구보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일 거에요.

왕에게 대놓고 돌을 던지고 저주하는 사람은.. 뭔가 대단한 종교적 확신이 있을 때나 가능한 거예요.  

여러분 이런 (시므이 같은) 사람들이, 특별히 배운 사람들 가운데 많고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한테 많고 
이념 운동한다는 사람들에게 많고,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한테 많단 말이에요.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고 주장하거나
이념적으로 무슨 확신이 들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어요. 끝까지 가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당당했던 시므이가 비겁하기 짝이 없게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까, 막 좇아 나와 가지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또 빌어요...) 

 
◑7~8절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가거라 가거라' 이 말은, 
이스라엘의 땅에서 이방 땅으로 꺼져버려라.. 하는 욕설이에요. 

지금 '이제는 네 아들한테 네가 나라를 뺏았겼지?'
지금 이 시므이가 보는 관점은 

자기 프레임에 갇혀서 기도해 왔고 
자기 프레임에 갇혀서 기도 응답을 받았고 
자기 프레임에 갇혀서 남을 비난하고 있는 거라 말이에요. 

신앙은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 
자기 프레임에 갇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근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프레임에 갇혀서 점점 독선적이 되어 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유형이 교회 안에 아주 많습니다. 
저나 여러분들이나 조심해야 할 사람들을,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이죠. 

무슨 일이라도 잘못되면 '그 봐라 교회 잘 안 나오더니 교통사고 나지...' 
'그렇게 헌금 안 하더니, 돈 다 떼이고 부도나지...' 
이런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것입니다.

'네가 잘못한 게 있으니,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네가 잘못한 게 없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겠나?' 

이런 인과응보적 사상의 프레임을 가지고, 
욥을 비난하듯,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된단 말이에요.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을 나름대로 잘 믿는 사람들입니다. 
잘 믿는다고 평소에 주위에서 칭찬받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시므이가 다윗에게 한 말 중에 '피를 흘린 자여!'  :7
여기에 일말의 진실이 있어요.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으니까요.

어쩌면 이 말이 다윗의 마음을 찔렀을 거예요. 
그래서 다윗이 이렇게 반응합니다. 


◑9~10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자 여기서 아비새가 등장해요. 다윗의 조카입니다. 요압의 동생이죠. 

아비새(시바, 시므이에 이어 세번째 등장 인물)는,

다윗 옆에서, 다윗이 자기 신앙이에요. 자기 종교였어요. 
이렇게 다윗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그는 기꺼이 충성을 표시하는 것이죠.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그런 하나님이 자기 신앙이 아니라 
내가 모시는 사람이 자기 신앙이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조심해야 됩니다. 
겉보기에는 너무나 충성스러운 사람이에요. 

그러나 아비새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도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도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모시는 내 상관의 뜻이 중요할 뿐이란 말이에요. 

이 사람은 '이게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가?' 이런 걸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면, 그걸 알았다면, 
유대인들을 어떻게 육백만씩이나 학살하겠어요? 

히틀러의 뜻이 중요하기 때문에, 히틀러 치하에 있었던 모든 관리들은 
마치 성실하게 자기가 맡은 임무를 수행하듯, 그 사람들을 그렇게 죽인 거란 말이에요. 

이게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기관에 속해서 충성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조직 안에서야 출세하겠죠. 성공하겠죠. 
자기 상관을 하나님 모시듯 모실 겁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해야 할 삶의 형태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에 맞나?
인간의 뜻보다도 더 상위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맞나/ 맞지 않나? 

이걸 분별하지 않으면, 인간에게 충성하는 한낱 관료일 뿐이고 
우리 말로 '주구'라고 하죠. '달리는 개'
주인이 사냥할 때, 그 앞에서 달려가는 충성스런 개들...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 인데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난 인생의 행로를 걸어간단 말이에요. 

윗사람들한테는 인정받겠죠. 
그러나 과연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인정받을까요? 그건 모르죠. 

아비새는, 그냥 뭐 입에 나오는 언어가 벌써 
'이 죽은 개가' .. 시므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내가 가서 저 놈의 머리를 베겠습니다'

근데 지금 다윗이 뭐라 그럽니까?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냐?'  
너희가 내 입장과 같은 입장이냐? 너하고 나하고 무슨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네가 나서는 것이냐? .. 라는 뜻입니다.

'시므이가 지금 나를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저러는 거다.' 

우리 한번 냉정하게 생각을 해 봅시다.
물론 다윗의 말대로 하나님이 진짜 시므이의 입에 저주의 말을 넣어주신 것은 아닙니다.
시므이가 영향을 받았다면, 악한 영의 영향을 받아서, 지금 다윗을 저주하는 것이죠.

그럼 만약 우리가, 다윗과 같이, 남의 저주를 듣는 입장이 되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즉 악한 인간의 의도속에서, 선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 악한 의도에 주목하지 않고 
그 악한 의도의 더 큰 배후, 

그 뒤에 있는 악한 공중 권세자 잡은 자 
또 그보다 더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의도까지 간파하는 것이 
신앙의 최고봉이다 ... 라는 말이에요. 이게 십자가 신앙입니다!

그가 나를 저주하고 내게 욕을 퍼붓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는 방법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 
이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이란 말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이란 말이에요.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만 놓고 기도하다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있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지만 

전혀 내 의도와는 상관없는 비난과 저주를 받을지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선한 의도를 읽어낼 줄 아는 
보다 큰 그림의 신앙, 이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본질이란 말이에요. 

그래야만 이 땅 가운데, 절망적인 이 현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은 너무 악이 가득해서 
도저히 살 희망이 없는 곳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많은 악이 만연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구원의 섭리를 이루어 가신다... 

세상은 종말을 향해 달려갈지라도 
하나님은 이 가운데서도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궁극적인 섭리를 이루어 가시며, 구원의 역사는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이게 우리 신앙의 핵심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다윗처럼, 우리 신앙도 그냥 엎치락 뒤치락하는 거예요. 
시바가 거짓을 얘기할 때는, 금방 분별력 없이 판단을 잘못 했지만 

또 이렇게 시므이가 욕하고 저주할 때는 
또 그 욕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은 정말 뭘까?' 하는 분별력을 가지는 거예요.
죄송한 표현이면 우리는 늘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성경구절은 하나도 못 외우면서, 
자기 비난하는 말은 평생 외우고,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침마다 성경 말씀 묵상은 뜸하게 하면서도, 
자기 비난하는 말을 묵상하는 것은, 매일 아침에 자동적으로 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안 됩니다. 


◑11~13절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이렇게 버려두면, 
내가 원수를 갚지 않으면, 내가 보복하거나 복수하지 않으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다시 선한 일로 바꾸어 주실 줄 누가 알겠느냐? 

우리가 억울한 일을 겪고, 분한 일을 겪고 
정말 복수를 해주고 싶은 일을 당해도 참는 이유가 뭐라고요?

기억하십시오. 
내가 저지른 범죄(의 총량)보다도, 나를 더 욕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악한 인간이라는 걸, 자신은 잘 알죠.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죄인이라는 건 다른 사람은 잘 몰라요. 
남들은, 그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욕한단 말이에요. 

이게 무슨 욕을 듣더라도 
내가 마땅히 얻어먹어야 될 합당한 양을 욕하는 사람은 없어요. 아시겠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악해요. 
근데 뭐 교회 좀 오래 다니면 너무 착한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자기가 천사인 줄 알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잘해야 된단 말이에요. 
내가 악한 말을 듣고, 비난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시켰건/ 안 시켰건 
큰 뜻에서 하나님의 의도하심(섭리)이 있다는 걸 믿어야 된단 말이에요. 

그리고 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늘에서 먼저 결정된 일이에요. 
욥이 당한 모든 고난도, 저와 여러분의 고난보다는 당연히 크겠죠?
그게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고, 위에서 다 결정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므로..
시므이 같은 (개같은) 인간에게, 내가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것이죠. 다윗처럼! 


◑14절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저는 이 구절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 다윗은 압살롬 일당에게 쫓기는 입장입니다. 한 시가 급해요. 
어떻게든지 압살롬과 거리가 멀어져야 합니다. 

백성들보다 왕이 마음이 더 급할 거예요. 
그럼 이때, 백성들을 막 몰고 갑니다. 힘들어도 끌고 갑니다.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가려고 해야 돼요. 

그런데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믿음의 회복되면서 
그는 백성들의 사정을 살펴 보게 됩니다. 
자기를 따라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까 힘들어요. 피곤해 해요. 쉬고 싶어 해요. 

여러분 이걸 아는 사람이 지도자란 말이에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에요. 
보스는 될 수 있지만 지도자는 안 된단 말이에요. 

자기 구성원들을 보면서 '힘들어 하는구나, 그러면 내가 조금 덜 가더라도 쉬어 가야 겠구나'
하면서 쉬어갈 줄 아는 사람, 

서둘러 가면 좀 더 갈 수 있지만 
더 열심히 하면 더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여기서 잠깐 멈춰야 되겠구나' 

그러나 여러분,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 시스템은 이걸 허락하지 않아요. 
권력은 이런 걸 잘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을 쉬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쉬어야 생명이 회복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오늘 (주일) 같은 날, 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휴가철이 시작이 되었어요. 휴가 간다고 너무 고생하지 마십시오. 
주님 안에서 휴가할 줄 아는 사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