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구해도 다 알아서 주신다 창15:1~5 2011.06.25.설교일부녹취
※자기 소원을 기도로 아뢰는 것은, 자기 잘못된 야망을 기도로 구하기 쉽지만,
내가 안 구해도 하나님이 알아서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인도이기에, 일이 쉽게 풀립니다...라는 주제.
모든 남자의 로망(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녀를 여럿 거느리는, 아버지가 되기 원한다.
아브라함은 그 이름이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딜레마는 이름은 ‘아버지’인데, 현실에 자식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주목할 것은
성경에, 아브라함은 한 번도
하나님께 자기에게 자식을 달라고 기도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소원은, 자녀를 얻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아브라함이 그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에 처음, 이 주제(자녀, 후손)가 등장하는데,
그것도 아브라함이 먼저 언급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언급하셔서 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의 가장 큰 개인적 소원을 아브라함이 먼저 꺼내지 않고,
하나님이 언급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이루셨다.
▲왜 그랬을까? 왜 아브라함은, 자녀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을까?
우리가 자세히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아브라함은 일찍 마음을 접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는 추측한다.
강력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은 차라리 그 소원을 접는 것이, 자기 마음에 평강을 얻는 길이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차라리 그 소원을 접는 것이, 자기 마음에 평강을 얻을 수 있다.
처음 접을 때는 힘들겠지만,
한 번 접고 나면, 일단 마음에 평강을 얻을 수 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여기(자녀)에 대해서, 하나님께 일절 아뢰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다.
▲또한 아브라함은 공과 사가 분명했던 것 같다.
하나님을 따르는 일은, 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공적인 사명이었다.
역사적인 사명이었다.
거시적인 직분이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개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것과 대조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자기 개인적인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신앙을
사적인 소원을 이루는 방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받은 사명은,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거룩하고 성스러운 자기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가깝다는 사실을,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 안 구해도,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알아서 주신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소원을 모르셨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도로 아뢰지 않는다고 해서, 내 마음속에 접었다고 해서
하나님도 접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해서
우리의 소원을 모르는 게 아니다.
무시하시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신앙인의 참 신앙의 증거가 있다면,
내가 내 소원을 아뢰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나의 소원을 언급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아브라함이 자기의 무자한 문제를 먼저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거기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저는 원래 고등학생이었을 때, 벌써 그때 목사가 되기로 서원하고,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른 일에 대해서, 욕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길을 열어주셔서
북미에서, 명문대도 가게 되고, 마치고 로스쿨도 가게 되었다.
그게 제가 애초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다.
저는 그런 대학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가 주의 종이 되기로 결단하고 났더니,
전혀 기대하지 않던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셨다.
아마 여러분은, 제가 야심만만하고, 교육열이 높아서,
그런 길(명문대-로스쿨)을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는데,
제 삶을 주님께 드리고 났더니,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서, 아주 쉽고 평탄하게 그 길을 갈 수 있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지는 저도 잘 모른다.
아마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러분,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진리이지만,
우리가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다보면,
우리 스스로는 꿈꿀 수 없고,
또 기대할 수 없었던 길을, 주님이 열어주신다는 사실이다.
그게 진짜 축복이다.
우리가 무엇을 얻을 때, 내 욕심을 강청해서 얻어내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소원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내가 욕심을 갖고, 애써서 얻는 것과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얻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2.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비교적 평탄하게 이루어진다. 쉽게 이루어진다.
대체로 이런 면이 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이루어 주신다.
아브라함이 이 나이에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셨다.
제가 북미에서 신학생이었을 때, 장차 한국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개척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인도하셔t다.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이루어진 일이다.
▲3. 또한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복은,
단기적인 기쁨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것이다.
아브라함 가정에 자녀가 태어난 것은
단기적으로.. 그 가정에 기쁨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 열국이 그 가정에서 이어지는.. 놀라운 축복이 되었다.
보통 우리가 하나님께 강청해서,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복을 받는 것은,
단기적으로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해害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이 좋다.
내가 이것 저것 달라고 조를 때..
그것은 정말 좋은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가 아무 것도 조르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를 때, 하나님이 알아서 복을 주신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에 주신 자녀의 복이었다.
이런 복과 은혜가 여러분 가정에도 있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