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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새로운 언약식을 가지다 신29장 여러 설교 정리
◑본문 해석 및 적용
본문 신29장에서, 1절에 그들과 “다시” 언약을 세웠다고 했는데,
과거에 세운 언약은 40년 전에, 시내산에서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어른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당시 20세 이하의 어린 자녀들만, 지금 살아남아서 가나안에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소위 그 ‘출애굽 2세대’들과 다시 언약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 신29장입니다.
‘언약’이란, 가장 강력한 의미의 계약으로서 문서화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로 ‘서약’입니다.
다시 한 번 서약케 하면서, 결단케 하는 것이지요!
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주석) ‘호렙에서...세우신 언약 외에' - 여기서 '외에'로 번역된 '밀르바드'는
'...에 덧붙여'(in addition to)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를 정확히 번역하면
'호렙에서 맺은 언약에 덧붙여'가 됩니다.
따라서 이는 과거 이스라엘의 구세대가 시내 반도 호렙 산 기슭에서 맺었던 언약(출 19:1-24)
의 갱신을 뜻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갱신'이란 언약의 대상이 이스라엘의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바뀐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1. 그래서 ‘언약식’을 거행하는데, (*출19장에도 첫 번째 언약식이 나오지요)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출석, 전원 참석’입니다. 아이들과 여자들도 전원 해당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서 있는 것은 경외감의 표시이죠.
10~11절 ‘너희의 수령과 너희의 지파와 너희의 장로들과 너희의 지도자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너희의 유아들과 너희의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 있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지만, 예수 신앙을 가지는 것은 '십자가 언약, 성경의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다른 말로 '언약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신자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언약에는 축복도 약속되어 있지만, 저주와 벌도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므로, 모든 죄가 용서되어지는 것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혜택과 축복의 언약을 믿는다면, 저주와 형벌(징계)의 언약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지금 본문 신29장은, 27~30장에 이르는 '종주권 조약의 상벌 규정' 에 속하는 장입니다.
이미 27장과 28장에 많은 '처벌 규정'이 나와 있었고, 본문 29장에도 많이 나옵니다. 18~29절
사실 '상'에 대한 규정은 작게 나오고, '저주와 처벌'에 관한 규정은 4배 이상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앞서 살펴보았습니다. 27:15~26, 28:15~68, 29:18~29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런 '처벌 규정'을 유의해서 읽어야 하나,
아예 이런 게 없는 것처럼, 아니면 있어도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거나,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무슨 계약서에 싸인을 하기 전에,
그 계약서 뒤에 나와 있는 아주 작은 글씨의 계약 규정을 꼼꼼이 읽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계약을 위반할 경우 자기가 받게 되는 불이익이
자세하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그런 자세로 읽거나 배울 필요가 있는 거죠.
더욱이 자기 영생이 걸린 문제이니까, 부동산 계약서보다 몇 백 배로 더 중요한 계약입니다.
(신약과 구약을 Old Testament, New Testament 라고 하는데, 옛 언약, 새 언약 이란 뜻입니다)
신약에 나와 있는 처벌 규정은, 한 마디로 '지옥 행'입니다. 구약보다 약한 게 아니라 더 무섭죠.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요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예수를 믿는 것은, '십자가 언약'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 계약서에 싸인 하는 것입니다.
그 계약이란 사실을 믿지 않으면, 구원도 못 받는 것입니다. 계약, 언약에 따라 구원받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 계약에는 상벌규정이 둘 다 들어있고, 문서(성경)화 되어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2. 그들은 언약하고, 맹세했습니다.
12절 ‘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여’
퍼뜩 해석이 안 되어, 주석의 도움을 받아봅니다.
‘언약에 참여하며' - '참여하다'에 해당하는 '아바르'는 *enter into covenant with the LORD
원래 '분할하다, 통과하다, 들어가다, 넘어가다'는 뜻인데,
이 말은 원래 고대 사회에서 언약 체결시, 언약의 당사자들이
언약의 담보로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갠 후 그 사이로 통과하면서
만일 어느 한쪽이 언약을 어길 시에는 그 짐승이 당한 것처럼 처참하게 보복당할 것을
다짐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따라서 본절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결단코 파기할 수 없는 언약을 체결한 상태임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이지요)
‘맹세에 참여하여' - 성경에서 '맹세'라는 말은 '언약'이란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입니다(창 26:28).
왜냐면 언약은, 항상 그 같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맹세를 대동하기 때문이죠. *enter into his oath
그러니 고대에서 언약식을 하고 나면, 즉 언약을 맺고 나면
짐승을 잡아서 둘로 쪼개고, 그 사이로 언약의 당사자가 지나가게 하면서
만약 언약을 어길 경우, 그 쪼개진 짐승과 같은 처벌을 받아도 좋다는 의미가
언약(베리트)이란 말 속에 들어 있으며,
12절에 '언약에 참여한다'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아바르 베리트, enter into covenant
즉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것을 언약하고, 맹세하는 것이고,
그만큼 내 목숨을 걸고, 그 언약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맹세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 것은, 목숨 걸고 믿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엄청난 선물을 얻는데 있어서, 어찌 위험 부담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4영리 등을 통해, 인스턴트 복음을 믿는 사람은,
이런 신앙생활에 리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좋은 일만 많이 생길 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구약으로 신약을 해석하라고 하는데, 신약의 믿음은 '언약 신앙'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3. 그럼, 출애굽 2세대가, 본문에서 ‘언약’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1절에서,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그러니 본문 신29장의 언약식은
일단 호렙산에서 세운 언약식을 기초합니다. 그것은 십계명이죠.
또는 십계명을 해석한 신명기 전체의 말씀입니다. *신5~26장, 모세의 두 번째 설교 내용
-그렇지만 그 외에 추가된(보태진) 것이 있는데 29:18~29절까지입니다.
그 내용은, 만약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면.. 신명기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다 받고,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좋다는 것이죠. :20
사실 모세가 본문 신29장에서 출애굽 2세대들과 세운 언약은
내용상 출애굽 1세대와 세운 언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추가되었다고 1절에 말했지만, 내용적으로는 같습니다. ‘우상숭배 하면 망한다’는 거죠.
참고로, 여호수아도, 세상을 떠나기 막바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식’을 갖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24: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사실상 이것은 오늘날의 ‘신앙부흥회’ 성격과 유사합니다.
과거에 부흥회가, 어떤 모금 행사로 변질되어 버리는 과정에서
오늘날에는 ‘신앙부흥회’가 아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1년 내내 어떤 ‘신앙 결단’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모세도 40년 만에 ‘언약식’을 새로 했고,
여호수아는 85세 경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110세에 죽으면서
죽기 전에 ‘언약식’을 했으니까, 모세 이후 25년 만에 ‘언약식’을 한 셈이네요.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 번 신앙을 결단하는
그런 언약식이 우리 신앙생활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볼 때 그렇죠!
첨언하면, 결혼식을 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군대에서도 먼저 입소식을 하고서, 군대 생활을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입학식을 하는 거죠.
이런 모든 ‘의식’에는 다짐, 결심, 결단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에 점점 그런 ‘의식’이 파괴되는 문화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졸업식 등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들은, 졸업식을 대단히 성대하게 치릅니다.
대학졸업식에는, 멀리서 부모나 가족들이 비행기를 타고 와서 참석합니다.
체면치레 하는 불필요한 의식이 아니라면,
입학식, 졸업식, 입소식, 결혼식 등을 통해서
한 번 다시 결단하고, 결심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서원하는..
그런 의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겼으면 합니다.
결혼식을 생략하거나 (그런 분은 교인들 가운데는 없다고 보고요)
결혼식부터 엉망진창이고, (너무 준비가 안 되어서)
특별히 결혼식이, 하나님 앞에서의 엄숙한 언약식 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이 서로 좋아서 하는 식 정도로 생각하는 부부가... 나중에 견고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기반이 너무나 약한 것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되고 말 것입니다.
▲4. 언약식을 거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충분히 교육하고, 위험 사항을 주지시키고 위함입니다.
어떤 분의 어릴 때 기억입니다.
공원에 잔디밭에 들어갔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호되게 혼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얄미웠던 것은
사전에 잔디밭에 못 들어가게 막든지,
아니면 잔디밭에 들어가는 것을 본 즉시 나오라고 호각을 불든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구경만 하다가
아이들이 다 놀고 집으로 가려고 할 때,
경비 아저씨에게 붙잡혀 대단히 혼이 난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혼내니까 아무 소리도 못하고...
또 자기들이 잔디밭에 들어간 잘못도 있고 하니까...
그런데 한 가지 불합리하다고 느낀 것은,
사전에 잔디밭에 못 들어가게 막든지,
아니면 빨리 나오라고 호각을 불든지... 사전 예방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나중에 ‘공원 관리 법규’를 어겼다고, 아이들을 혼을 내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공원 경비원 얘기가 아니고, 설교자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임무는, 신자들이 선을 넘기 전에.. 부지런히 경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선을 넘게 되면, 이런 저런 처벌 규정에 해당됩니다'하고 경고 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우리는 이런 처별 규정을 가르쳐 주기도 꺼려하고, 듣기도 싫어합니다.
그러다가 덜커덕, 그 처벌(징계)을 받게 되는 거죠.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이 어길 가능성이 높은 법규들을
미리미리 일러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지금 신29장은, 신27~29장의 '상벌 규정'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27, 28장과 마찬가지로 본문 29장에서도 '상'보다는 '벌'이 훨씬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이,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이렇게 경고하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날 젊은이들이 결혼하기 싫다고 합니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한 가지는 '처벌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인 거죠.
안 믿는 불신자라도,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법을 따라서
살인하면 안 되고, 도적질 하면 안 되는 것을 본성으로 알듯이
결혼을 하고 나면, 자기 배우자에게만 충실해야 하며, 외도를 하면 그게 죄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특히 자기 배우자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며, 이혼의 사유가 된다는 것도 압니다.
두 사람이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고 가정할 때
A는 처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결혼했기 때문이고,
B는 (하나님께 벌을 받겠지만) 사람에게는 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미혼이거든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결혼 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여러 이유들 중에.
여러 사람을 자유롭게 (처벌 받지 않고) 만나고 싶은 욕구도 있는 거죠.
지금 외도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우리가 예수 믿는 언약에 들어간 것이 그와 같다는 거죠.
신랑 되신 우리 주님께서, 신부된 우리 성도들이,
우상을 섬기며 외도에 빠지면, 성경 언약에 따라서... 심하게 처벌(징계) 하시는 거죠.
신28장의 저주가 임하는 거죠. 레26장도 있습니다. 안 읽어보신 분들은 꼭 읽어보십시오.
그러나 자기 아내가 아닌 여자가, 뭐 우상을 섬기든 별 짓을 다 하든
그게 신랑에게 크게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언약 관계에 들어간 것이, 한 편으로는 영생의 혜택과 신랑의 사랑이라는 은총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도(우상숭배)했다가는, 또는 그 외 다른 언약을 어겼다가는
한 마디로 말하면 작살 나고, 초토화 된다는 것을.. 지금 신명기 상벌 규정에서
세 번에 걸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7:15~26, 28:15~68, 29:18~29
27:15~26에서 백성들은 12번이나 '아멘' 했습니다.
언약을 어길 경우, 그런 처벌을 받아도 좋다는 것이지요.
본문 29장에서도, 언약식을 가진다는 자체는
'언약을 어길 경우, 언약에 따른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는 다짐이 포함된 것입니다.
맹세 했다고 하잖아요. :12
그럼 나는 그런 계약서에 싸인 하지 않겠다, 나는 언약을 아예 하지 않겠다,
그래서 나는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 그러면 결국은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 마음대로 살다가, 내가 믿으니까 나중에 죽을 때 영생 얻고, 천국에 갈 줄로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구약도 배우는 것입니다. 신약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요.
◑절별 해석 ............................................................................
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호렙에서...세우신 언약 외에' - 여기서 '외에'로 번역된 '밀르바드'는
'...에 덧붙여'(in addition to)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를 정확히 번역하면
'호렙에서 맺은 언약에 덧붙여'가 된다.
따라서 이는 과거 이스라엘의 구세대가 시내 반도 호렙 산 기슭에서 맺었던 언약(출 19:1-24)
의 갱신(更新)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갱신'이란 언약의 대상이 이스라엘의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바뀐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압 땅에서 또...세우신 언약' -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지 40년 되던 해,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 호렙 산 언약을 재 확인하고 새롭게 갱신한 언약을 의미한다(1:3, 5:1이하).
과거 하나님과 호렙 산 언약을 맺었던 이스라엘 구세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지난 40년 동안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다(민 13:25-14:38).
그리고 이제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 이르러 현재 모압 평지에 진치고 있는 자들은
호렙산 언약을 맺을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이스라엘의 새 세대였다(민 14:29-31).
따라서 모세는 이 새 세대에게 호렙 산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여 강론해 줄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와 같이 한 것이다.
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온 이스라엘' - 여기 이들은 과거 출애굽 당시 20세 미만이었거나 혹은 출애굽 이후에 태어난
자들로서(민 14:29-31), 이제는 20세 이상의 성인이 된 자들을 가리킨다.
즉 모세는 호렙 산에서 언약을 맺을 당시에는 언약의 대상으로 계수받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새 세대를 소집, 지금 모압 평지에서 과거의 언약을 재확약 하고 있는 것이다(1:3).
‘애굽땅에서...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 하나님께서 애굽에 각종 재앙을 내리셨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이다(출 7:14-12:30). 따라서 그 재앙을 목도했던 자들은
지금 최소한 40세 이상인 자들이고 모세의 이 말을 실감나게 이해할 수있는 자들은 50세 이상인 자들이다.
모세가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1) 여호와 하나님이 과거 막강한 애굽의 바로를 제압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점과
2) 이스라엘은 그 놀라운 출애굽 사건을 친히 경험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비록 새 세대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시 116:12).
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 -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과거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해 내시기 위하여 특별히 역사하셨던 큰 권능들을 가리킨다.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깨닫는 마음...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이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이스라엘의 책임을 추궁한
역설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사 6:9,10, 행 28:26, 27).
즉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전달받고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친히 목격하고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이스라엘의
강퍅하고도 굳은 마음(출 32:9, 34:9)을 역설적으로 경책(警責)한 표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 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 몸의 옷이...발의 신이' -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인도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지난 40년
동안의 거친 사막 여정 중에서도 별 불편함 없이 지내왔었음을 뜻하는 강조적 표현이다.
6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떡도...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 -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의 농경(農耕) 행위를 금하신 것을 뜻한다. 물론 이는 그들이 광야에서 밀과 포도 따위를
재배할 경황이 없어서였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뒤이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주는...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떡과 포도주 대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출 16:35)를 주어 먹게 하심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8:3 주석 참조.
7 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너희가 이곳에 올 때' - 에돔 광야에서의 불뱀 사건(민 21:1-9) 이후,
이스라엘이 더욱 심기 일전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계속 전진하던 중 사해 우편의
모압 땅에 이르른 때를 가리킨다(민 21:10-20).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싸우러 나왔으므로' - 모압 땅에 이르른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 할 때, 그곳 길목을 지키고 있던 헤스본 왕과 바산 왕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던 사건을 의미한다(2:26-3:17, 민 21:21-35). 이때 이스라엘은
이들 강력한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을 크게 격파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1)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2) 향후 치르게 될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시켜 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8 그 땅을 차지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그리하면...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 '형통하다'에 해당하는 '사칼'의 원뜻은 '깨닫다',
'지혜롭게 행하다', '신중하다'이다.
그러나 점차 그러한 행동의 결과 따르게 되는 '번창'과 '성공'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절은 '너희가 이 언약의 말씀을 주의하여 순종하면 너희가 모든 일에 신중해지고
지혜롭게 되어서 결국 번창하게될 것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10 오늘 너희 곧 너희의 수령과 너희의 지파와 너희의 장로들과 너희의 지도자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오늘날' - 하나님의 말씀 순종에 대한 이스라엘의 결단을 요구할 때 모세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이다(11:26, 30:15).
이 말은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거나 효력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효력을 지닌 것임을 강조하는데 쓰이기도 하였다(12, 13절, 5:2, 3).
11 너희의 유아들과 너희의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 있는 것은
‘유아들과...물 긷는 자' - 이들 모두는 백성의 한 사람으로 계수(計數)되지도 못한 자들이었다(민 26:1, 2).
그러나 모세는 본절에서 이들도 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언약의 대상자가 되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곧 여호와께서 세우신 언약은 남녀노소, 신분, 계급, 민족이나 혈통 등에 관계 없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거하는 모든자에게 그 효력이 미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장차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히 8:6)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할례당이나 무할례당, 야인(野人)이나
스구디아인 그리고 종이나 자유인이나 결코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골 3:11, 롬 4:23,24, 10:11-13)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다.
‘네 진 중에 있는 객' - 28:43에서는 '너의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으로도 표현되었다.
즉 이스라엘 사회에 섞여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여
‘언약에 참여하며' - '참예하다'에 해당하는 '아바르'는 원래 '분할하다','통과하다', '들어가다',
'넘어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고대 사회에서 언약 체결시, 언약의 당사자들이
언약의 담보로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갠 후 그 사이로 통과하면서 만일 어느 한쪽이 언약을
어길 시에는 그 짐승이 당한 것처럼 처참하게 보복당할것을 다짐한 데서 유래된 용어이다.
따라서 본절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결단코 파기할 수 없는 언약을 체결한 상태임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맹세에 참예하여' - 성경에서 '맹세'라는 말은 '언약'이란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창 26:28).
왜냐하면 언약은 항상 그 같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맹세를 대동(帶同)하기 때문이다.
13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이왕에 네게 말씀하신 대로' - 이스라엘을 당신의 택한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그들에게
확약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7:6, 14:2, 26:18, 27:9, 출 19:5, 6 등에서와 같이 무수히 나온다.
‘또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창12:7, 17:7, 26:2-5),
이삭(창 26:24), 야곱(창 28:13, 35:12) 등과 같은 이스라엘의 열조들에게도
그들 후손과 관계된 약속과 축복을 주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 이들은 선민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일찍이 삼위일체 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이다.
‘오늘날...되시려 함이니라' - 언약의 목적이 또 한번 업급되고 있다.
출 6:7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목적을 알리셨는데,
이후 모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말을 백성들에게 강조하였다(4:20, 출 29:45, 46, 레 22:33).
14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15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이니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니' - 여호와의 언약 대상이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무한히 확대됨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혹자는 본절을 좁은 의미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의 후손'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본절을 넓은 의미로
해석하여 단지 표면적 유대인 뿐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
즉 영적 이스라엘 백성된 모든 신자(롬 2:28, 29)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된 우리 성도들도 통시적(通時的)으로 이미 그 언약의 동참자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뭏든 본절은 여호와의 언약 신앙이 편협한 민족주의 신앙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적 신앙임을 잘 보여 준다.
16 (우리가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과 너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을 너희가 알며
‘여러 나라를 어떻게 통과하여 왔었는지' - 이스라엘은 지금껏 광야를 여행하면서 아말렉 족속과도 싸웠고(출 17:8-16),
아말렉과 가나안의 연합군(민 14:45), 아랏족(민21:1-3), 아모리 왕 시혼(민 21:21-25),
바산 왕 옥(민 21:33-35)과도 싸웠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미디안족과 싸우기도 하였다(민 31:1-12).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모든전투에서 훈련도 받지 않은 엉성한 군사력으로 연전 연승하였다.
본절에서 모세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백성들에게 회상시키면서 그들 이방 족속의 우상들은
모두 헛것이며, 단지 쇳덩이, 나무토막에 자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여호와 하나님만이 천상 천하에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다.
17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
‘목석과 은금의 우상' - '우상'에 해당하는 원어 '길룰'은 '굴리다'는 뜻의 '갈랄'에서 온 말로,
본래는 굴려서 운반하기에 편하도록 토막낸 '통나무'를 가리킨다.
그러나 점차 이것이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상'을 뜻하게 되었다.
즉 이는 우상이 헛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경멸어이다.
18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독초와 쑥의 뿌리' - 여기서 '독초'에 해당하는 '로쉬'는 본래 뱀의 독(욥 20:16)까지도 포함한
일반적인 '독'(poison)을 가리키는 말이다.
독초와 쑥은 모두 자생력(自生力)과 번식력이 왕성한 야생(野生)식물을 가리키는 바,
이것들은 독성이 강할 뿐 아니라 매우 쓴 맛을 낸다.
따라서 여기서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패역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를 주장하는 자들(호 10:4, 암 6:12, 히 12:15)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들은 군중의 마음 밭에 죄악의 독을 퍼뜨려 순식간에
그 공동체를 파멸로 몰아넣는 독초와 쑥의 뿌리 같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멸할지라도 평한하리라' - 여기서 '젖은 것'과 '마른 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혹자는 '젖은 것'이란 '우상 숭배나 정욕에 흠뻑 빠진 자'를 의미하며,
'마른 것'이란 '끊임없이 우상 숭배나 정욕을 갈망하는 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에 공동 번역은 이를 가각 '물이 콸콸 솟는 동산'과 '메마른 사막'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너무 여자적(如字的)인 해석에 치우쳐 있다.
전체적인 문맥에 의거할 때 '젖은 것'과 '마른 것'이란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히브리인들의 격언으로 이해함이 가장 무난하다.
그러므로 본절은 저주가임하여 모든 것이 멸망한다 할지라도
자기만은 평안하리라 확신하는 독초와 쑥의 뿌리같은 자들의 강퍅하고
화인(火印)맞은 마음(렘 6:14, 15)을 묘사한 말로 볼 수 있다.
20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버리시되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 - 여기서 '분노'란 죄를 혐오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질투'란 택한 백성들에게 쏟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6:15).
이스라엘은 이미 광야에서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불 심판을 경험하였으니(민 11:1-3 , 16:1-35),
본절의 경고는 그들에게 실제적인 두려움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시되' -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권 하에서 완전히 제외시킨다는 뜻이다(25:19, 출 17:14).
21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언약의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
‘율법책에 기록된 언약의 모든 저주' - 27:15-26과 28:15-68 및 레 26:14-39에
그 대표적인 모든 저주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22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아드마' - '붉은 흙'이란 뜻으로 소돔 근처에 있던 성읍 중의 하나이다(창 10:19).
본절 및 호 11:8을 참조해 볼 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시, 스보임과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어 진다.
‘스보임' - '영양'(羚羊)이란 뜻으로 소돔, 고모라, 아드마, 소알과 더불어 사해 싯딤 계곡의
다섯 성읍 중 하나이다(창 14:2).
24 여러 나라 사람들도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 하면
‘열방 사람들도 말하기를...무슨 뜻이뇨'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언약을 어길 때 하나님께 당하게 될 재앙이 너무나도 무시무시하여 이방인들에게까지
놀라운 화제거리가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재앙과 파멸 가운데
처하게 된 일이 세상 사람들의 조롱감이 된다는 것은 실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재앙의 원인이 죄악 때문이란 점이 이방인들에 의해 지적된다는 것(25-28절)은
씻을 수 없는 치욕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성도란 세상에 대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세상 사람들의 죄악을 오히려 지적해 주어야 마땅한 자들이기 때문이다(마 5:13-16).
25 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26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언약을 버리고...다른 신들을 섬겨...절한 까닭이라' - 이는 24절의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즉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적부터 섬겨 온 언약의 하나님 곧 그들의 구원자이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며 자기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베풀지 않은 생소한 신을 찾아 섬긴 것은 너무도 큰 반역죄임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이는 곧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고전 15:10)을 망각한 처사이자,
적극적으로 우상을 숭배한 죄악이니(출 20:3-5)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11:28).
한편 '언약'의 개념에 대해서는<16-29절 강해,언약의 어원적 고찰>을 참조하라.
27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이러므로...재앙을 내리시고' - 훗날 바벨론의 1차 침공시(B.C. 606)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당시 이스라엘이 당하는 저주와 포로 생활 등이 분명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이었음을 분명히 증거하였다(단 9:11).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 - 구체적으로는 28:15-68, 레 26:14-39에 기록된 저주 내용을 가리킨다.
28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
‘진노와 분한과 크게 통한하심' - 그 어떠한 죄악도 결코 용납하시지 못하는
하나님의 공의(公義)의 속성을 강조하고 있는 중언법적 표현이다.
‘그들을...던져 보내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쉘리켐'이다.
그런데 어떤 히브리어 사본들에는 이 말을 이루는 문자 중 '라멧'을 보통문자보다
크게 표기하였고, 또한 '라멧' 뒤의 '요도'를 생략하였다.
그 이유는'라멧'은 '영원히' 또한 '영원한'이란 의미를 지닌 '레올람'의 첫글자이며(창 6:3, 신 5:29),
'요드'는 히브리어의 숫자적 의미상 '10'을 가리키는 문자인 바, 곧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10지파는 영원히 뽑혀나갈 것'임을 이러한 문자적 표기를 통해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뽑아내사' - 기본 동사 '나타솨'는 '철저히 파다', '뿌리째 뽑다'란 의미이다.
따라서 이 말은 "심히 기름진 산에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사 5:1, 2)란 말과는 대조가 되는 저주의 말이다.
29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오묘한 일...나타난 일' - 여기서 '오묘한 일'이란 인간에게 계시(啓示)되지 않은 일로서,
오로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신적(神的) 계획이나 섭리 등을 가리킨다.
반면 '나타난 일'이란 말씀이나 예언, 기적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방편을 통하여 이미 인간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즉 본절은 하나님의 주권과 계시(啓示)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 준 구절로서,
'나타난 일'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또한 후손들에게 가르칠 것이 요구되지만,
'오묘한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하에 속해 있음을 가르쳐 준다(벧후 1:20, 21, 3:16).
한편 이 점은 사도 바울 역시 유대인들의 배신과 회복을 논한 그의 강화 끝부분에서 고백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롬 11:33-36). 따라서 성도는 '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놓아 두셨을까?'하는 문제에서부터
'왜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구속을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를 반드시 죽게끔 하셨던가?'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성경의 제난제에 대하여서는 피조(被造)된 자의 한계를
분명히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롬 9:19-21, 사 29:16)을 겸손히 인정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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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글신29장 40년 만에 새로운 언약식을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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