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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이다

LNCK 2022. 8. 2. 11:12

◈나는 유령이다         말4:1~6         스크랩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지, 진짜 '내가 유령'은 당연히 아닙니다.
여호와의 기념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다 유령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경각심을 가지자는 주제입니다.

말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나는 유령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나는 누굽니까?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번 대답을 해보세요. 
우선 가정에서 나는 ㅇㅇ의 아내입니까? ㅇㅇ의 남편입니까? 

유령이에요, 유령 남편이고 유령 아냅니다, 실재가 없어요. 
나는 아빠입니까? 유령아빠예요. 
이름뿐이에요. 왜 그럴까요? 

▲말라기서 4장 말씀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이고 마지막 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도래하실 이야기를 4장에 마지막으로 또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교만한 자와 악한 자가 한쪽 부류에, 
또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한쪽 부류로 이렇게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말4:1~2

그런데 그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이 지푸라기 같다고 하는데, 
그 지푸라기가 용광로 앞의 지푸라기라는 거예요, 다 불살라 없어진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용광로로 오신다고 해요, 누구에게? 
지푸라기 같은 자들에게. 
말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가 ’지푸라기‘ 같은 자인데, 
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가 바로 유령이라는 얘깁니다, 유령. 
그러니까 알맹이가 없다는 얘깁니다. 

지금 현재는 실재하고 있지만, 곧 불에 타버릴 지푸라기 이기 때문에
’유령‘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죠. 경각심을 갖자는 겁니다.

▲지푸라기라고 하는 히브리어의 원래 뜻이 ’겨‘입니다, 
곡식 알맹이를 뺀 나머지 껍질을 겨라고 하지요.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푸라기입니다.  말4:1 

알맹이 없는 ‘나’, 실제 ‘나’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아빠라고 그러잖아요? 그게 없다니까요, 
진실로 주님을 믿지 않는 경우에는, 그렇죠. 

그러면 실제 ‘있다, 없다’라고 하는 이 말을 무엇을 근거로 해서 하는 말일까요? 
나는 지금 있지 않느냐? 
이게 지금 말라기 3장 16절에서 시작하고 있는 말라기서의 여섯 번째 설교입니다. 

3장 16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고 돼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 
오늘 본문에도 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기념 책에 기록하시겠다고 얘기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념 책에 기록되지 않은 나의 얼굴, 나의 정체, 나의 모습은 
유령이고,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념 책, 기념 책이라는 게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거고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다는 얘기인데, 
그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지 않은 ‘나’는 다 유령입니다.  ←설교 주제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내가 재벌총수다, 삼성그룹의 회장이다, LG의 회장이다, SK의 회장이다, 
그 분들이 하나님을 진실로 안 믿고 돌아가신 경우에는,
그 이름은 <하나님의 기념책>에는 없습니다. 

오직 지푸라기일 뿐이에요, 다 재로 변할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유령이에요, 유령. 

유령으로서만 어느 회사의 사장이고, 누구의 아빠이고, 
누구의 아내고 남편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유령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한, 
잘났다 못났다 할 것 없이 다 유령입니다. 
하나님의 기념 책에는 없는 당신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념책>에 기록된 나는 누구일까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모습만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겁니다. 

자, 내가 똑똑하다, 학교라는 곳에서 만들어진 ‘나’예요. 
내가 부자다, 돈 앞에서 만들어진 ‘나’입니다. 

그 모든 ‘나’를 다 뒤로 해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름뿐만 아니라 실제 내 앞에 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나’,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진짜 ‘나’로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오실 때 어떻게 드러나느냐 하면, 다 유령으로 변하는 거예요. 
자식 앞에서의 ‘나’, 아내 앞에서 남편 앞에서의 ‘나’, 다 유령이 되는 겁니다. 

돈 앞에서의 ‘나’, 학력 앞에서의 ‘나’, 
이 모든 게 다 알맹이가 없는 지푸라기 유령으로 변합니다. 
이름뿐인 ‘나’로 변해버리고 말고 다 잿더미로 변할 것이라는 겁니다. 

삼성회장, LG회장, SK회장,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모습을 찾지 않는 한 모두 다 유령이에요. 
다 재로 변할 겁니다. 
하나님의 기념 책에는 아무개 회장 누구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아요. 

메시아인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앞에 서있을 때의 
나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계시해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사실 때 그렇게 사셨어요. 
빌라도가 자기는 총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권력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유령취급 해버리십니다. 
‘너의 존재는 나와 상관이 없다’ 총독이라는 게 이름뿐 알맹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역할을 허락해주신 것이지, 
너는 알맹이가 없다고 유령취급을 해버리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 다 ‘내가 ㅇㅇ다’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유령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회사의 부장이기 이전에, 아빠이기 이전에, 교수이기 전에, 
의사이기 전에, 사업가이기 이전에 
나는 하나님 앞에 서있고 그 하나님 앞에 서있는 모습을 
주님께서 어떻게 가르쳐 주셨는가 하면,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알아? 
네 아내는 너를 멋진 남자라고 보고 있지? 

그런데 아내 앞에서 아내보다 더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은 
너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찢기고 피 흘리며 죽어야 마땅한 자로 보고 계신다’ 
이걸 가르쳐 주러 메시아가 오신 겁니다. 

실제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심으로 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나는 누구며 어떤 모습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말4:2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름뿐만이 아니라 실제 내 앞에 계셔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하는 그 ‘나’를 
진짜 유일한 ‘나’로 인정하는 자들은, 
이게 바로 ‘경외하는’이라는 말에 들어있는 뜻입니다. 

‘그들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한다’  4:2 
주님은 이제 공의로운 해가 된다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생각하고 있는 ‘나’만이 실제 ‘나’인데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내 앞에 계시기 때문에,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하나님은 내 앞에 계시기 때문에 
그 다급한 상황에 대해서 내가 누군가를 인식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다급한 상황보다도 
더 먼저 다급하게 내 앞에 와계신 분이니까, 
그 앞에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에게.. 
공의로운 해가 비친다는 겁니다. 

▲공의로운 햇살이 비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한다고 하는데, 이 치료하는 광선, 광선이 날개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춘다는 이 말을 히브리 원어로 직역을 하게 되면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그의 날개 안에서 치료하신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그 치료를 받은 다음에 ‘외양간에서 나오는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하십니다. 
어두컴컴하고 좁고 냄새나는 외양간에서부터 
넓고 푸른 초장으로 풀려나온 송아지처럼 마구 뛰어다니는 모습입니다.  4:2b 

이게 바로 메시아가 오셨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자, 이제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이 세상에 오십니다.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못 받아들인다 이겁니다. 

교만히 행한다는 게 뭡니까?  말4:1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나’는 이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되는 ‘나’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마음이 1cm 라도 세상으로 나가게 되면, 
출세(出世)하게 되면 다 악이 되고 교만이 돼요.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나’가 아닌, 세상이 평가해 주는바 ‘나’로서 살아가는 게 교만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누구의 아빠로 누구의 아내, 남편으로 어느 회사의 직원으로 살아가는 것, 
이게 다 교만입니다. 

그러면 회사에 나가서 어떻게 합니까?
회사에 나가서도 회사에도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나’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입니다. 
이런 죄인일 때에 이 세상을 내 마음이 떠나면서 
주님의 날개 안에서 치유함을 받고 이 세상으로 보내집니다, 사명자로 보내지는 거예요. 

이 치유함의 증거가 바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넓은 초장에서 펄쩍펄쩍 뛰는 것 같은 평강과 기쁨이에요. 

이거 간단하다는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돌아가신 저분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모습이다’라는 것만 인정하면 
유령으로 살아가는 교만과 악을 행함이 끝나버리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벌판에서 뛰듯이 뛰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메시아가 오시는 역사의 기록이 시작되기 전에 
말라기서 마지막이 우리에게 얘기해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누굽니까?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유령으로 살아가지 마세요! 

나는 가난합니까? 그건 당신의 모습이 아니에요. 
나는 부자입니까? 그것도 당신의 모습이 아니에요, 
지푸라기, 알맹이 없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가르쳐주신 것은 
빌라도도 로마황제도 모두 껍데기일 뿐인 실체가 없는 유령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겁니다. 
이름뿐이라는 거예요. 

▲자, 이제 정리합니다. 
내 아내가 나보고 아무리 멋진 남자라고 해도 
아내가 말하는 ‘나’는 유령일 뿐입니다. 

나는 아내가 말하는 ‘나’가 아니라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말씀해주신 그 ‘나’가 ‘나’예요. 

또,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보고 못돼 쳐 먹었다고, 악한 놈이라고, 죄인이라고, 
사기꾼이라고, 도둑이라고 욕합니다. 

그것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나’는 
아직도 진정한 ‘나’가 아닙니다. 

그들이 규정하고 비판하는 ‘나’에 속지 말고, 
그것이 나인 줄로 알고 괴로워하고 자살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으신 그 주님의 모습이 ‘나’인 걸 알고 
그들의 비판이 무효함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사람 그 누가 나를 비난하는 것을 
아무리 모아놓아도 해당되지 않을 만큼 죄인인 것으로 나를 보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에 대한 인상, 
‘나’에 대한 하나님의 확정된 모습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공의의 해가 떠서 비추고..,

공의의 해가 떠서 비춘다는 것이 뭡니까? 살려내시겠다는 겁니다, 
살려내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유령으로서의 삶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합시다! 
이름뿐이 아니라, 그 이름이 가리키는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심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나의 모습인 
십자가에 달려 죽은 모습을 내 모습이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언제 어디서든지 공의의 해가 내게 비치면서 
내 마음이 하늘로 끌려올라가게 되고, 그곳에서 평강으로 치유를 받게 되고
평강한 가운데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마치 외양간에서 풀려나온 송아지처럼 
펄쩍펄쩍 뛰며 살아가는 복된 삶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