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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5:1~12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소서

LNCK 2022. 8. 3. 10:44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소서 - - YouTube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소서           마25:1~12          2022.07.31.녹취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천국 잔치 집 문을) 열어 주소서'  마25:11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

천국문 앞에서 그렇게 말할 거에요.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소서!' 

그 날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다 이렇게 말할 거에요. 
'주여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소서!'  마25:11

그들은 간절하게 다 말할 거에요. 천국에 들어가야 되니까요.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소서!'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고 천국에 다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날에 우리가 뵙는 주님은, 우리가 늘 알던 '사랑의 주님' 만은 아니에요. 

그 날에 알게 되는 것은, 오늘날 설탕처럼 온 땅에 선포되고 있는 '사랑의 하나님' 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랑과 동시에 '의로우신 하나님' 입니다. 
우리가 어떤 주님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날 주님은, 우리와 주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갈 것이라고

미리 이렇게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알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은혜이에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장차 되어질 일을 미리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냐면 '주여, 문을 열어주소서' 
이게 다 믿는 사람들이 하게 될 말입니다. 왜냐면 미련한 다섯 처녀가 했던 말인데요, 

'처녀, 신부'라는 말이, 그들도 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요, 또 등불도 준비했어요,  

그리고 혼인 잔치에도 초대 되었어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고요. 불신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에,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실 거래요.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 마25:12

여러분 구원은, 우리가 주님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구원은 구원자에게 달려있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을 안다고.. 
'주여, 문을 열어주소서. 우리가 주를 압니다. 우리가 늘 주님 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 '사랑의 주님'을 만나지 못할 수 있어요. 
공의로우신 주님은 이렇게 말할거래요. 
'너희가 나를 안다고 하는데, 문제는 내가 너희를 모른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25:12                             *현재 능동 직설

그날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공의로운 주님'만을 보게 될 거예요. 
우리가 그날에, 평소에 주님을 알았다고, 정들었다고 봐주지 않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은혜'라는 게 봐주는 건 줄 알아요. 
교통티켓을 땠을 때 봐주면 은혜받은 줄 알아요. 

은혜는 봐주는 게 아니에요. 
구원받는 은혜는, 우리 힘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안에서 해주시는 게 '은혜'에요. 

절대 우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은혜가 아니에요. 
그 은혜는, 우리에게 은혜가 임할 때,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 그분을 높이고 찬송만 할 뿐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은혜를 받게 되길 바래요. 
    오늘 이곳에 은혜가 가득 찬다면, 자격이 없는 우리가 이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는 이 예배가운데 물처럼 더 낮아질 거에요. 

    물의 생명은 움직이지 않아도 스스로 낮아져요. 
    그래서 주님은, 은혜를 생수의 강이라고 말씀해요. 

    여러분은 이 말씀으로 인하여 점점 더 더 낮아지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낮아질 때에 샘이 열려요. 샘은 높은 산에서 열리지 않아요. 
    샘은 눈물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에서 열려요. 

오늘 본문 <열 처녀의 비유>는 교회를 다닌 사람들은 누구나 알거에요. 
놀랍게 이 열 처녀 비유는, 특히 여름성경학교, 주일학교 설교에 자주 등장해요. 

예수님은 이 <열 처녀 비유>를, 주일 학교 학생들도 익숙하게 될 만큼 
누구든지 알도록 마련해 놓으셨어요.   

그러나 아무리 본문을 읽어도, 
우리가 몇 십 년 동안 예수를 믿어도
내가 오늘 만약 천국 문 앞에 서게 된다면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말씀하실지... 
'내가 너를 아노라' 라고 말씀하실지...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정말 이 시간에 주님만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르겠어요. 주님이 정말 제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저 자신부터가 너무 궁금해요

만약 오늘 내가 죽는다면, 나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할지 너무너무 궁금해요. 
그래서 저에게 소망이 있다면, 오늘 평소에, 그분을 더 친밀히 알고 싶다는 거예요. 
왜냐면 천국 문 앞에서 '내가 너를 아노라' 하셔야지, '내가 너를 모른다' 하시면 안 되니까요!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일 년 전에 우리 교회가

홍수로 예배당이 물에 가득차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 교회는 드물 것 같아요. 

아무튼 그 공사가 최근에 법적으로 다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궁금했던 것은, 
이 건물이 새롭게 단장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 신앙이 새로워지는 교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런 동안에 저는 늘 마음에 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목사인 저의 불찰로 하나님의 진노(침수)를 직접 보게 되어서 
이것이 우리 교인들에게 정말 깨어나고 경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도 은혜의 하나님, 그것만 알았지 

의로우신 하나님, 율법의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 잘 몰랐어요. 
그런데 그것을 알게 하셔서도 감사해요. 

다윗이 범죄했을 때,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그 회개를 즉시 받아 주셔서 '너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다윗은 듣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큰 죄를 범한 다윗에게, 주님은 즉시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정말 복음은 놀라운 소식이에요.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 다윗이 얼마나 그의 평생, 그의 마음에 양심의 가책 가운데 살 수도 있었는데,  
그런데 주님이 선지자 나단을 통해 말합니다. '너의 죄는 사해 졌느니라'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게 다 끝난 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회개할 때, 흰 눈처럼 깨끗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

그것은 정말 복음입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았지만, 다윗도 죄의 결과 consequence of sin 는 당해야 했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통하여 나라에서 쫓겨나서.. 그런 어려움 속에 한때 지내야 했습니다. 

저는 구약에 나타난 동일한 율법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일 년 동안, 수많은 교인들이 떠나가는 고통 
그 양들을 지키지 못하는 목자로서의 죄책감(책임감) 

그런데 그런 속에서도 주님은 진노가운데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임을 찬양합니다. 
정말 그것이 consequence of sin 멈추는 것이, 이제 일 년 만에 그런 게 오는 것 같아요. 

죄의 용서, 죄값에 대해서 
주님이 긍휼을 나타내 보이기 시작하시는 것 같아요. 

여러분 이 시간에, 불뱀에 물렸을지라도 
놋뱀되시는 주님만 바라보는, 그러면 살게 하시는
이 복음의 복음만 바라보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본문 열처녀의 비유로 돌아가서

이 열 처녀 비유는 이렇게 여름성경학교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말씀이죠.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삼일 전에 하신 말씀이에요. 
그만큼 중대하다는 뜻입니다.

 

유월절 기간 중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셨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성전에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성전에서 설교를 하시고 나오셔서 감람산에 (주무시러) 가셨어요. 

지금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마지막으로 죽기 이틀 전에 
감람산 위에서 설교하신 거예요. 이 열 처녀 비유가. (마24~25장이)

여러분, 예수님이, 자기가 삼일 만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데 
삼일 전에 하신 설교에요. 

여러분, 죽기 삼일 전에 하신 이 설교가, 우리 속에 새겨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름성경학교 때부터 들어서 익숙한, 어린이들도 다 아는 이 설교가!  

 

그런데 이 설교를 들었던 12제자들은, 삼일 전에 이 설교를 듣고도 
삼일 뒤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봤고, 그들은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열두 제자가 다 도망한 거에요. 우리가 똑같이 그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속에 있는 생명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 
그리고 풍랑 치는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한 베드로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어요. 

여러분 이 순간에, 저도 하나님의 음성을 여러 번 들었고 기적을 많이 경험했어요. 
간증집회에 나갈 만큼 큰 기적을 경험 했고, 기독교방송에서 설교를 할 만큼 많은 기적을 경험했어요. 

그러나 여러분, 기적을 경험해도 베드로처럼 이런 강력한 기적을 경험해도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알면서도, 베드로도 도망갔어요.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어요.

그러니 우리도 얼마든지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니까요.

여러분 우리는, 예배가운데 좀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제게 늘 그런 소원이 있어요. 좀 예배가운데 암이 떠나가고 
교통사고 환자가 즉시로 몸이 회복되고.. 그런 걸 바래요. 

여러분, 그런 것을 경험해도요. 
우리는 예수를 버리고, 베드로처럼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어요.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될 수 있다는 얘기죠.

여러분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아무리 들어도
우리는 예수를 버리는 사람인지/ 아닌지 
이 시간에 정직하게 
우리의 생명이 어떤 생명인지를 살피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놀랍게 이 열처녀 비유 설교를 하기 직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시자마자 이렇게 말씀했어요. 

'나는 이번 여정에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제 삼 일에는 살아나리라' 
이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며칠 전에 말씀하셨어요. 

이걸 다 듣고 알았는데도, 제자들은 다 도망했어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내 모든 죄는 예수의 피로 씻어진 것을 믿습니다.' 라고 말해요. 
여러분 사람들은 내가 이것을 믿는다고 하기 때문에 
자기는 천국에 갈줄로 알아요. 자기 삶으로서는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하면서도 말입니다.

 

이게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부족한 복음이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삼 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저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있었고
내 허리를 붙들고 뒤에서 주님이 무저갱을 보여주면서 
수많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셨어요. (개인적 체험이니 참고로만 하세요. 성경은 아닙니다)

여러분 지옥은 땅 속에 있어요. 그래서 지옥은 땅 속의 감옥이에요. 
천국은 하늘에 있어요. 

우리가 다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데요. 주여 주여 하는데요. 
우리가 가진 생명이 주님이 주신 것이면, 그 때에 천국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지옥, 땅속에 가게 됩니다. 
우리가 천국 문 바깥에서 '주여 문을 열어주소서' 그렇게 말을 해도 
주님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어요. '나는 너를 모른다!'

여러분 구원은, 우리가 주님을 아는 것에 달려있지 않아요. 
주님이 우리를 아셔야 돼요. 

그런데 그 무저갱에 사람들이 떨어지는데요. 주님이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나를 믿니?' 

그때 저의 반응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주를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뇌출혈속에서도 내 머릿속에 교리가 있는 거에요. 
누구나 아는, 새신자반만 다니면 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제 머릿속에 이 교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주님을 믿습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하여 교리를 말했어요. 
주님은 음성으로 '나를 믿니?' 라고 하는데 
나는 교리로 답을 했어요. '믿습니다!'
갑자기 주님이 침묵가운데 계셨습니다.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시는 거예요. 

'주님, 믿습니다!' 이렇게 내가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주님은 아무 말씀을 안 하시는 거예요. 

그 주님의 침묵 앞에, 저의 거짓말... 그 거짓말은 뭐냐면요.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잠깐만요' 

(왜냐면) 주님이 손을 놓으실지 (그래서 아래로 떨어질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저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내가 주를 진실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알았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꼭 말을 안 해도, 모든 진실이 드러니니까요)

여러분 이 설교를 듣는 시간이, 제 예화가 아니라 
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 
해와 달이 없어져도 영원히 남아있는 말씀, 이 말씀만이 우리에게 빛입니다. 

▲그때(25:1)는 주님이 오실 때 예요. 
이 '그때'가 주님이 강림할 때에요. 
그래서 그 때에 이렇게 돼요. 
마24:30절부터 입니다. 

이 열 처녀 비유의 '그때'가 
24:30절과 같은 때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24:30~31

여러분 주님이 오실 때 누구를 모아요? '택하신 자' 
열 처녀 비유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가 있잖아요. 

이것이 현재적인 우리의 교회입니다. 모든 교회들은 기회가 있습니다. 
그 기회는 뭐냐면, 

'청함(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많되, 택하심을 입은 사람은 적으니라' 마22:14

 

(*여기서 택함이란, 만세 전에 택함.. 이런 뜻도 물론 되지만, 슬기로운 5처녀와 같이

신실하게 주님을 믿는 자들을 뜻합니다. 우리는 누가 만세 전에 택함을 받았는지/안 받았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가 오늘 주님을 신실하게 믿는 것을 보면.. 아는 거죠. 슬기로운 5처녀가 택함을 받는 것을 아는 거죠)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이 말만 해요. 
오늘날의 교회는 마치 설탕처럼 '부르심(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다'는 거예요. 

오늘날의 교회는요 '천국은 혼인잔치' 라는 말만 해요. 
그래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오게 한다는 거에요. 
이 복음만 말하는 거에요. 오늘날의 복음은 설탕이에요.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복음은, 소금 이어야 돼요. 
우리를 썩지 않게 하는 소금!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금의 복음이에요. 소금의 언약이에요. 

오늘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것을 말하는 동기는,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알게 하려고 전하는 게 아니에요. 
그 동기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설교를 먼저 한거에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4영리

여러분 복음의 시작은 사랑이 아니에요. 
복음의 시작은 이거에요.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말했는데요. 

그때 인간은 죄가 없잖아요. 
죄가 없고 에덴동산은 이 땅에 있는 천국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받은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잖아요.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잖아요.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사랑을 누리는 동안에 범죄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구원의 문제는, 완전한 사랑을 받는 게 구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은 완전한 사랑을 받아도, 주를 버립니다. 
이게 인간의 절망이에요. 

그래서 복음의 시작은 '회개'이지, '믿는' 게 아니에요. 

막1:15절에 주님이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 

오늘날의 교회는 이렇게 말해요. 
'예수 믿으세요!'

복음의 시작은 '예수 믿으세요'가 아니에요. 
복음의 시작은 '회개하라' 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한, 주님이 말합니다. '나는 너를 모른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뿐입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외쳤어요. 
'회개하라,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여러분, 세례요한에게 맡겼던 하나님 말씀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뭐에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다'는 거에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여러분 지금의 복음은, 세례요한이 전한 복음과 달라요. 
세례요한은 아무 기적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성령의 나타남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오직 하나, 회개의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목회성공을 위하여 기적이 일어나고 병고침이 일어나기를 바라죠. 
그런데 그것은 시험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의 말씀앞에 서는 것 뿐이에요. 
세례요한이 전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좋잖아요. 좋죠. 정말 감사하죠. 
그러나 성령의 역사, 성령의 나타남이 있어도 우리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적과, 어떤 성령의 나타남을 경험해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즉시 변화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뿐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회개의 은총을 내려주셔서 회개케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3일 전입니다. 중대한 얘기라는 뜻이죠.
그 때에 천국은 열 처녀와 같다는 거에요. 

근데 지혜로운 여자는, 등불을 켜고 기름을 <준비>하였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땅에서 준비된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준비 없는 사람은 절대 못 들어가요. 
여러분 이 예배가, 천국에 들어가는 준비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오는 거에요. 
8절에 보면 그들이 말합니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로운 자에게 말할 거라는 거에요. 
'우리의 등불이 꺼져가니'  마25:8                   *현재 수동 직설

이 말씀은 '등불이 거의 꺼졌다'는 말이에요. 
소망이 전혀 없는 거예요. 

'그 날에 등불이 꺼졌으니' 
이 상황 속에 우리가 서게 될 수도 있게 돼요. 

그날 알게 되는 것은 '등불이 꺼졌나이다.' 
미련한 처녀들은 그날 알게 돼요. '등불이 꺼졌나이다.' 어둠 밖에 없는 거에요. 

여러분 이 시간에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프로페셔널(전문가)이에요. 
교회 생활에 너무 익숙한 거에요. 

근데요, 그렇다고 우리가 주님을 아는 건 아니에요. 

여러분 이 시간에 단 하나, 내가 이렇게 예배가운데 주님을 알아가는데 
주님은 그날 이렇게 말해요. '나는 너를 모른다' 마25:12
여러분 회개한 자만, 주님이 우리를 아세요.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말해요.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여러분, 반쪽만 맞습니다. (회개해야 천국에 갑니다)

죄로 고민하던 마르틴 루터때에요. 
벌써 마르틴 루터 때에 이런 반율법주의자들이 횡행했어요. 

반율법주의자는 뭐냐면, 율법을 반대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시대도 마르틴 루터 때와 똑같아요. 

왜냐하면 교회가 은혜만 전하면 된다. 율법을 전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다. 율법을 설교할 필요가 없다. 
그건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구약이다... 근데 아니에요. 마틴 루터는 알게 됐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마르틴 루터 때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사십시오. 다만 믿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구원받습니다.' 

여러분 이게 16세기 때에 루터가 '이건 아니야' 라고 깨닫게 된 것인데요. 
오늘날 현대 교회가 똑같이 하고 있어요. 

오늘날의 교회는 이렇게 말해요. 
'예수만 믿으면 됩니다. 마음대로 사세요.' 

여러분 이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능히 구원할 복음은요, 마음대로 살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아들의 혼인잔치를 준비했는데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거에요. 왜요?

비즈니스가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거에요. 결혼식을 곧 한다는 거에요. 
그들이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모른다'

여러분 주님이 나의 '왕'일 때만 구원받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데요. 자기가 주인(왕)인 거에요. 
여러분 예수를 믿으며 예배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에요. 

돈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감사하세요. 빛이 비추었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 감사하세요. 빛이 비춰졌기 때문에,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태어난 자들이니라' 
여러분 복음은,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다시 태어나져야 돼요. 왜요?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이미 죽었습니다. 

구원의 문제는, 죽은 우리가 다시 살아나져야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된 자만, 예수의 부활생명으로 다시 살게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절망의 소식입니다. 
어느 누가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은 
예수와 함께, 예수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주여, 주여!' 아무리 말해도 소용 없습니다. 
'주여, 주여!' 그들은 이렇게 더 말할 거예요.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 쫓고,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였나이다' 마7:22
라고 말할 거라는 거예요. 다 믿는 사람들입니다. 

근데요 예수님은 미리 말씀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무슨 뜻입니까?

회개하지 않고 예수 믿기만 하는 것이, 반칙이고 불법이에요. 
주님이 말씀하실 거예요.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나니'

 

개역에는 현재형처럼 되어 있는데, 원래 시제가 과거형이에요. I never knew you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를 몰랐다!' 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주님은 단 한 종류만 알아요. 
우리가 입으로 '주여, 문을 열어주소서'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몰라요. 

여러분 이 어리석은 처녀들은, 예수님을 자기 신랑이라고 믿고 있는 자들이에요.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자기 신랑이라고 믿는데요. 
그러나 택하신 자만 구원받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삼일 전에 감람산 위에 앉아서 
'그 날에 택하신 자들을 모으리라' 라고 말했던 그분이 그날 말했어요. 

마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영생이 창세 전에 이미 택하여졌다, 결정되었다는 뜻이기 보다는, 

누가 슬기로운 다섯 처녀인지, 미련한 다섯 처녀인지 모르지만,

등불에 기름을 예비하며 주님 오시기를 준비하는 것을 볼 때.. 그가 택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 공로가 아니라는 뜻이죠. 그래서 예정론, 선택 교리를 기계적으로 이해하면 낭패입니다.) 

 

'그때에' 마25:1
그때는 주님이 오시는 때에요. 
그 때에 천국은 열 처녀의 비유와 같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시간에, 이 부족한 설교 앞에 
그저 주님만 바라보셔서 
주의 성령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우리가 이 말씀앞에 (벌거벗고) 정직하게 서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