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다 (로마서 6:1-11)│2022.08.21 - YouTube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다 롬6:1~11 2022.08.21.
◑1. 은혜를 안다면
롬6:1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앞서 5:20절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합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사죄의 은총이 큰 것입니다.
빚을 많이 진 사람일수록, 탕감받은 은혜가 감격적인 것입니다.
인생을 정말 밑바닥에 떨어져서 살았던 사람일수록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죄도, 그분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을 때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와 사망에 얽매여 사탄의 종노럿 하던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받는 친자녀, 친백성 삼아주신 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제 이런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죄악의 자리, 사망의 자리, 저주의 자리를 떠나게 되어 있다는 거죠.
이전처럼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본문 1절에 반문한 것처럼
'내가 은혜를 계속 받기 위해서, 죄를 계속 짓겠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이것은 영적인 궤변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길이기 때문이죠.
가령 이렇게 생각을 해 보세요.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가출을 내서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왔는데도
아버지가 나를 아들로 받아 줬다는 것이죠.
근데 그 은혜의 감격이 너무나 좋아서
내가 이 은혜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
또 가출을 해서 또 가산을 탕진 하겠다...
만약에 이런 논리를 편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종교적 윤리적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의 삶과 행위가 변화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거에요.
그러므로 '행위와 구원의 관계가, 절대적 상관관계다'.. 라고 주장하면 율법주의, 행위구원에 빠지게 되고
또 정반대로 '구원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라고 주장하게 되면 도덕적 방임주의(율법 폐기론)가 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가 다 문제가 되고
사실 복음의 길을 걸어 간다는 것은 이 양극단과는 다른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