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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1:17-19 꿈꾸는 노인

LNCK 2022. 8. 10. 06:57

꿈꾸는 노인 | 시 71:17-19 | 22.7.10 - YouTube

 

◈꿈꾸는 노인                         시71:17-19              2022.07.10.출처

 

 

신앙은 연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단절되면 안 되고 연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속성, 이것은 하나님의 관심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다윗의 시를 통해 다윗의 인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를 보았습니다.

특별히 다윗의 말년이 굴곡졌습니다.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 왕권이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진정으로 염려한 것은 아들의 반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더 관심을 가진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시편 71편 9절에 보면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왜 다윗은 버림을 받을까 염려했을까요?

 

10-11절 말씀에 답이 나옵니다.

“10 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11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

 

원수들은 하나님이 다윗을 버렸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이 다윗에게는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 이것은 다윗의 생애에 무언가를 건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앞선 왕 사울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임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밧세바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났던 참회 시에는 그의 심경이 드러납니다.

시51:11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이것보다 무서운 게 없습니다.

 

▲다윗은 지금 매우 연약해져 있습니다. 상황이 어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노년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잘 흔들린다는 것은 내가 약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늙는다는 것은 일면 아쉬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갈 때 위기감이 찾아옵니다.

몸만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약해집니다. 나를 받아줄 곳이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섭섭해집니다. 노년에 마주하는 일상입니다.

 

전도서에는 노화를 희화한 대목이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3-6절,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이 말씀은 손을 떤다, 허리가 구부러진다, 이가 빠진다, 시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머리가 희어진다 등 노화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들입니다.

 

전도서 말씀은 어떻게 보면 허무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젊은 날에는 그토록 붙잡으려고 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땀을 흘렸습니까?

그러나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순간에 다윗의 기도는 색다릅니다.

이 기도 속에는 그의 소원이 담겨있습니다. 본문 18절에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18

 

여기에는 다윗의 꿈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윗의 속마음이 비추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비록 나이가 들었고 상황은 험악하지만 여전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젊은 시절에 꿈이 필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노인들에게도 꿈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2: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은 꿈을 꾸게 하십니다. 노년기의 꿈은 어떤 꿈입니까? 헛된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젊은 날의 꿈은 개꿈이 많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몽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몽상을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꿈을 가질 수 있는 때가 노년기입니다.

 

꿈이 사라지면 인생은 끝입니다. 멋진 노인은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늙은이가 가지고 있는 꿈은 어떤 꿈일까요? 다윗의 꿈은 후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18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 합니다.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내일도 역사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힘과 능력을 침묵하지 않고 다음세대에게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음 세대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야기꾼들이었습니다.

손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났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나의 영성의 상당한 부분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줬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시편 71:20절에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수많은 위기 속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격려가 되는 메시지입니다.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일이 전쟁터입니다.

 

이때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시련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말해주면 큰 격려를 받습니다.

청년들은 어떤 일에 실패하면 크게 낙심합니다. 인생이 끝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노인이 보기에는 그냥 하나의 실패일 뿐입니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닙니다.

 

이번 주 뉴스 중 하나는 프린스턴대학의 허준이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수학을 포기했던 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말을 합니다. “어떤 것이든 시작하기에 늦은 것은 없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었습니다.

 

먼저 믿음의 길을 걸어온 선배가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한 마디가 인생을 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이가 든 사람을 사용하시길 원합니다.

 

▲나이가 들면 생각의 균형감각이 좋아집니다.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사고의 폭이 남다른 것입니다.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은 무섭습니다. 이전에는 빠른 것이 다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때가 차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때가 차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가 차매”라는 말은 젊은 날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모릅니다.

하나님은 작품을 시간을 빚어 만들어가십니다.

 

멋진 성도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경험한 것입니다.

 

모세는 80세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40년의 광야가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갈렙은 85세에도 여전히 가슴이 뛰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영원한 청년입니다.

신약의 요한은 90세 정도까지 사역했습니다. 핍박 가운데 있으면서도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모세나 갈렙 혹은 요한이 나이가 들어서까지 무엇을 이루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세월을 통해 영글어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급하면 안 됩니다. 아직 때가 안된 열매를 설익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무르익어 가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서 나이가 든 분은 다릅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해오며 살아오신 분은 다릅니다. 가치를 보는 눈이 열려있습니다.

본질과 비본질을 보는 눈이 열려있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열을 내지 않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귓속말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일평생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주의 힘을 후대에” “주의 능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라며 주의 힘과 주의 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8

 

다윗의 생애 속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간 너머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후대까지

역사하실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어 합니다.

 

본문 19절에는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간증거리가 수두룩합니다. 말해주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심방을 가보았는데 고가의 그림 액자들이 걸려있었습니다. 양주병을 진열해놓은 집도 있었고

온 거실이 화초로 뒤덮인 집도 있었습니다. 또 훈장이나 트로피를 전시한 집도 있습니다.

무엇을 진열해놓는가를 보면 그 집이 추구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최고의 진열은 무엇일까요? 최고의 액자는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함께 하신 간증거리입니다.

가족 모두가 추억할 수 있는 하나님과 관련된 이야기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가족 대대로 전수되어 온 하나님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섬겨온 부모의 신앙의 유산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무엇보다 내가 받은 은혜를 사장 시켜서는 안 됩니다.

나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억력이 좋을 때 계속 전해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을 다른 사람, 후대에게 알리기를 원했습니다. :18

이 말은 신앙의 대물림을 말합니다. 그는 영적 계승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에 대해 침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표현해야 합니다. 다윗의 꿈, 그것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의 초점은 다음세대이고 믿음의 전승이었습니다.

나만 하나님을 잘 믿고 끝나면 됩니까? 영적인 대가 끊기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계승될 수 있습니까?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의 바톤터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 영적 대물림의 계승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것을 물어보아야 합니다.

 

▲오래전의 일입니다. 새벽기도에 나가려고 하다가 아들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방문을 열었더니 열심히 공부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새벽기도를 다니는 아빠와 열심히 게임을 하는 아들이 마주쳤습니다.

어색한 조우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새벽에 기도하러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새벽, 아들은 게임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있었습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아들을 직접 만나주신 것입니다.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대면한 아들은 그날 이후로 급속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게임은 끝이 났습니다. 우리 가정은 이것을 ‘새벽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기도하러 다니는 부모님과 게임하는 아들의 치열한 싸움 끝에

하나님이 기도하는 부모의 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러 다니는 부모의 모습을 그 아들이 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여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말하는 것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강력합니다.

 

▲다윗은 본문 17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영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경험한 영적 비밀이 많았습니다.

그는 목동으로 살았을 동안에도 어린 소년이었지만,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맹수로부터 지켜주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린 사건도 단순히 그의 실력이나 기술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그의 삶은 간증으로 가득 찹니다.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하나님을 내 후대가 알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10년 20년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 신앙생활의 경험은 다음 세대에 일종의 빚과 같습니다.

다음 세대에 전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햇수는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신앙생활의 경력이 햇수나 직분으로 대변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의 손을 잡고 교회에 잘 따라 나옵니다.

그러나 조금씩 자라면서 그 아이에게 질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왜 내가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어릴 때는 질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자아 의지가 발달하면서 스스로 질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민의 시기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것은 필요한 시간입니다.

부모의 신앙이 아닌 자기의 신앙으로 전환되는 전환점에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왜 교회에 다니는가?’ ‘무엇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가?’

이 고민과 갈등을 거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신앙의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이 고민과 질문의 일차적인 답은 부모를 통해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생활을 바라보면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됩니다.

 

부모가 그냥 말로만 하는 신앙인지 아니면 진짜 예수를 믿는 것인지 너무도 잘 압니다.

부모 역시 고민이 있었고 숱한 갈등을 거치며 살아왔습니다.

 

믿음의 생활을 해 온 사람이라면 자녀의 물음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렁설렁 다닌 분이라면 답을 해줄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신앙적 감동을 받을 수 없다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사사기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한 세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음은 겉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2장 7-10절에 “7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함께 했던 장로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설교를 보면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백성들의 마음이 서서히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명설교를 합니다. 여호수아 24:15절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오직 여호와만 섬기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앞선 세대가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기 시작하자

모든 이스라엘의 신앙의 체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앞선 세대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앞선 세대의 신앙의 상태가 매우 중요합니다.

앞선 세대의 느슨한 신앙 사이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계승하는 데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에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을 부모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한 대로 살아가지 않는 부모의 모습에 실망을 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모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부모의 불순종입니다. 부모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습니다. 종교화된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은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일날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는 자녀들의 신앙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기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성경책이 집안 곳곳에 널려있는 것만으로는 기독교인으로 볼 수 없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입에서 “우리 부모님은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는 분이야”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지, 돈만을 섬기는지, 하나님만을 섬기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신앙교육이 힘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자녀들이 다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한마디는 아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가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왜 교회를 다녔는가에 대한 설명이 분명해야 합니다. 영적인 비밀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비밀이 있습니까?

 

▲다윗은 오늘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반복합니다. 71:9, 18

그것은 단순히 장수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다음세대를 위한 꿈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나은 세대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모리아의 제단에 올려놓는 명장면이 창세기 22장에 나옵니다.

그때 주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얼마나 대단한가가 부각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올려진 이삭도 아버지 이상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있습니다. 믿음의 계승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사명을 이룰 때까지 나를 지켜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믿음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세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한 세대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모든 세대가 함께 일어납니다.

어떤 교회는 젊은이들만 있고 어떤 교회는 노인분들만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세대가 함께 있는 교회, 노년의 세대가 가지고 있는 영적 유산을 자녀들이 볼 수 있고

함께하는 에너지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선조 세대에 복을 주신 하나님은 후대에게도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좋은 것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철야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기도 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것도 있지만

철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중고등부 학생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청소년기가 되면 부모들이 모이는 곳에 잘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른 세대들이 모여 있는 이 철야에 청소년 아이들이 기꺼이 와서 뜨겁게 기도합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울려있는 철야는 독특한 우리의 문화입니다.

 

누가 의도적으로 꾸민 게 아니라 어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기도를 배운 것입니다.

신앙이 자연스럽게 전수되고 있는 과정입니다.

 

철야가 희귀해진 시대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기도하는 신앙의 계승이 일어나는 금요철야는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영적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언젠가 기성세대가 될 때, 또 다른 세대를 책임지는 세대로 우뚝 세워지게 될 줄 믿습니다.

 

다윗의 노년의 꿈은 신앙 계승의 꿈이었습니다. 다윗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신앙이 끊기지 아니하고 더 놀랍게 발전되고 계승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