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신앙을 어떤 종교적인 덕목으로만 생각하신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음으로, 인간이 다급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직접 경험하고, 지금 하나님의 손길을 강력하게 경험하여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신앙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타종교와 상당히 구별되는 것이요, 어떤 종교적인 행위, 덕목,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그런 면과는 전혀 다른..
내가 지금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풍랑을 잔잔케 하고, 생명을 보존하고 지금 일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냥 어떤 종교적인 스승이요, 정신적인 랍비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예수께서는 많은 것을 말씀하시고, 많은 것을 가르치셨지만
예수님의 그 모든 것을, 그 폭넓은 것을 우리가 다 이해하고, 다 섭렵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우리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예수님을 부분적으로 알 수 없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인상을 남기신 것은 하나님이 그 이전까지는 은밀히 계시고, 숨어계시고, 개념적으로만 하늘에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께서는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고, 일하시고, 우리를 선한 방향으로 이끄시는 것을 보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같은 분이 없습니다. 후기 기독교 사회가 된 이유는, 예수님의 이러한 면을 상실했기 때문이에요.
그럼 그 대신에 무엇을 보전 했느냐? 어떤 스승으로서, 어떤 랍비로서, 그저 정신적인 선생으로서의 예수님 만을 보전했는데 그건 마취 콜라병을 열어서, 그 탄산 가스는 다 날아가고 그 김빠진 콜라처럼, 그 능력과 그 살아있는 면은 다 날아가버리고
어떤 철학과, 논리와, 학술과, (비현실적인) 신앙만 교회에 계속 남아 있다면 당연히 교회가 쇠퇴하고 사람의 믿음이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기 기독교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건 뭐 불 보듯 뻔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서구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조심해야 되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그 핵심이 무엇인지를 늘 알고 보전해야 됩니다.
▲아마 목회자들이 그것을 꺼릴 수 있어요. 왜냐하면 모든 목회자들에게는 선비처럼 되고 싶고 양반 선비처럼 되려고 하는 그런 본능이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존경만 받고, 또 사회적인 지도자로 인정을 받고 사회적으로 누구에게 말하든, TV에 나가든, 무슨 인터뷰를 하든, 뭐 신문에 글을 쓰든...
어떤 사람이든 (종교와 상관이 없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저 존경만 받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그런 은밀한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방식으로.. 예수님이 증거 하신 방식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려고 하는 목사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왜냐면 다수의 불신자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반발하고, 불신하고, 온갖 방법으로 가짜라느니... 무슨 (안티 기독교 식으로) 공격을 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예수님처럼 래디컬하게) 증거 하려고 하는 사람은 오늘날에도 반드시 욕을 먹고,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Respectability 에 대한 시험 *존경, 인정 받고 싶음
미국의 부흥사 중에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두 분의 부흥사는 빌리 그래함 과 오랄 로버츠 목사님입니다.
이 두 분은 다 유명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지만 그들은 신학이 다르고, 출신 교단이 다르고,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메시지의 주제가 달랐어요.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남침례교회 출신이고 무엇보다도 복음을 가르치는 일과,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어요.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전도, 결신)만 목적으로 삼았어요.
병자를 위해 기도해 주지도 않았고,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기도하지 않았고, 성령의 은사를 말하지 않았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대충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선호하는 대중에게 커다란 어필이 있었어요. 대중들이 그 설교를 듣기에 부담이 없었어요.
그래서 TV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 할 수 있었고, 대통령들과 골프를 칠 수 있었고, 뭐 사회 지도층과 유대 관계를 가질 수 있었고, 넓은 명망을 누릴 수 있었어요.
반대로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오순절 교단 출신이고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을 위해 기도하는 메시지를 전파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 분의 일생에 '가짜요. 사이비요..' 뭐 이런 논란이 끊이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는 것은 어쩌면 쉽고 무난해요.
그러나 병자를 위해 기도 하기 시작하고 (만약 안 나으면 어떻해요? 그리고 가짜 fake 신유 라는 논란) 성령의 은사를 말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을 말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복을 받도록, 복을 빌기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이제 이것은 전통적인 기독교를 믿었던 사람들이 무난하게 널리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목사를 정말 믿을 것이냐 / 믿지 않을 것이냐'가
신자들 사이에 명백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같은 시대에 미국 부흥사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이 두 분이 한 명은 명성을 누리고, 여러 대통령들과 골프를 같이 칠 정도의 그런 존경을 받는 어른이었고
또 한 분은 완전히 사람들이 욕하고, 오해하고, 뭐 돈을 모으기 위해 저런다... 뭐 이런 식으로 평생 오해가 그를 따라다녔지요. 물론 그 분을 따르는 신자들도 많았지만요..
그러나 그것은, 그분이 그렇게 불신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고 그런 신앙을, 전통적인 신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만을 강조하고 어떤 교훈, 철학, 윤리, 종교적인 관습 ... 이런 단계에만 머무르셨다면 (빌리 그레함의 방식처럼) 아마 예수님은 크게 히트 하고, 사람들이 널리 그 분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안식일 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그리고 도덕적인 면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당신이 십자가에 직접 돌아가셨죠.
이것은 그냥 점잖게, 무난하게 종교생활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넘기 어려운 장벽들이었어요.
여러분, 우리는 이 시대에 이러한 위험과 시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왜 교회들이 처음에는 뜨겁게 시작했다가 성장을 한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무난한 교회가 되려는 시험에 빠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이런 패턴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도 욕먹기를 원치 않고 사람들이 '그 교회 좀 이상하지 않나, 그 교회 좀 광신적이지 않나?'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것도 피하고, 저것도 피하고.. 이래 저래 욕먹지 않게 하다보니.. 후기 기독교, 즉 김빠진 기독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염려해야 되는.. 오늘날 성공한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시험 중에 하나가 <Respectability 에 대한 시험>입니다.
Respectability 라는 말은 '명성 또는 존경을 받음' 이란 뜻입니다.
목회자들이, 그리고 교회들이 Respectability 를 얻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왕이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명망이 있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존경해 주면... 좋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분명히 경계 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너희에게 화가 있도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했다. 눅6:26 너희가 나를 따르고, 내 이름을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에게 욕을 하고 거짓으로 모함을 하고, 핍박을 하게 될 것인데.. 염려하지 말라 마5:11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그렇게 했다' ...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Respectability 에 너무 신경을 쓰게 되어서,
사회의 반대자들의 비난과 충돌을, 너무 피해 가려고만 하다보면 기독교 신앙에 김이 빠지게 되고... 후기 기독교 Post-Christendom 으로 나가버린다는 거죠. *주제
▲우리나라에도 장로교회 입장에서는 그런 게 없었지만 S 교회가 1970~80년대에 엄청난 성장을 하면서 교세로 비교했을 때, 장로교회 보다도 더 큰 교회, 더 뜨거운 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가 늘 목말라 했던 것이 Respectability (존경과 인정 받음) 이었습니다. 교회가 교세는 크고 성도들은 많고 뜨거운데 그러나 영락교회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Respectability 가 없었다는 겁니다.
영락교회에는 당시 부자들이 모이고, 교수와 의사 등 사회 지도층 들이 모이고, 엘리트들이 모이는데 비해 당시 초창기에 S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면에서
주님이 그런 사람들을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런 사람들이 은혜를 사모한다는 사실을 인정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Respectability 가 부족함을 느끼며, 갈급해 했다는 것입니다.
'잘 살고 사회에서 지도층인 사람들은 대거 당시에 영락교회나 다른 장로교회를 가고 우리 교회는 그냥 가난한 사람들만이 몰려온다...' 여기에서 '우리도 어떡하면 (그런 사회에서 인정받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까 그 당시에, 모든 성공한 교회가 빠질 수 있는 유혹, '어떻게하면 Respectability 를 얻을 수 있느냐?' 를 도모하게 됐다는 거죠.
그래서 그 일환으로 대학교를 세우고, 언론사를 세우고 또 뭐 오케스트라를 불러다가 공연을 하고, 최고의 지휘자를 초빙해서 세우고, 최고의 성악가들을 불러서 콘서트를 하고...
그 모든 것이 무엇을 얻기 위함입니까? 사회적 Respectability 를 얻기 위함입니다.
(지금 특정 교회를 말하지 않고, 대부분 교회가 커지게 되면 이런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빌리 그레함 식입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대다수 목회자들은, 논란이 될만하고, 공격을 받기 쉬운 주제에 대해서는 강단에서 설교하지 못합니다. 괜히 시끄러운 잡음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그러면서 점점 교회가 무뎌지고, 후기 기독교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Respectability 를 얻기 원하면, 애초부터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적인 능력도 갖고, 또한 사람들의 명성 Respectability 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건 참으로 사람들이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을 내는 그런 차원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인데 오늘날 서구의 후기 기독교 사회는 그나마 Respectability 를 가진 교회도 없습니다. 김이 빠진 기독교가 되다보니... 그동안 애써 추구해 왔던 Respectability 마저도
점점 잃어버리게 된 셈이지요.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이 있는데, 참고 울며 겨자라도 먹으려 하는데도, 이제는 먹을 겨자도 남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기 기독교 사회'가 가련한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을 하는 나라가 되어야 이런 논란도 있고 '우리 교회는 영력은 있는데 뭐 실력이 없다 라든지, 우리 교회는 뜨겁기는 한데, 무슨 뭐 명성이 없다던가' ... 그런 고민이라도 하지요.
후기 기독교 사회가 되어서 교회가 다 문을 닫고 텅텅 빈 가운데서는 울며 먹을 겨자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게 가련한 것이죠.
▲아마도 주님께서는, 이같은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시냐면 바울처럼 애초부터 Respectability 가 있었던 사람을 주의 종으로 불러 사용하시는 겁니다.
(모든 경우에 이렇다는 뜻은 아니며, 일부 이런 케이스도 있다는 거죠)
애초부터 그것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서 능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될 때, 논란과 불신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지요. 그게 아니고 뜨거운 신앙에서 시작을 한 다음에, 그 기독교 지도자가 (오랄 로버츠처럼) 무슨 언론사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무슨 뭐를 하고, 무슨 협회 회장이 되고 이런 식으로 해서 명성을 얻으려 한다면... 처음에는 논란이 많고, 사회에서 인정 받는 과정까지가
험난하고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사도바울처럼 학식이 있고, 또 이런저런 존경을 받는 사람이 주님을 만나서 주의 일을 하게 된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암묵적으로 더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논란을 많이 잠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분은 배울 만큼 배웠고, 알 만큼 아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주의 일을 하는 것을 보니까 이건 어떤 비이성적 것이 아니고 충분히 균형을 잡고,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 라고 그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의 자손과 후손들 중에 제일 공부도 잘하고, 뭐 재능도 있고... 장래가 촉망한 자녀들을 주님이 불러서, 성령을 부어주어서,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시는 면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오해와, 편견과, 치우침과, 광신과 그 교회들이 뜨거울수록 쉽게 빠질 수 있는 그런 시험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일례로, 영국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는 통상적으로 옥스포드 대학 출신을 임명하는 그런 전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계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적어도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그런 학문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이 해야 된다는... 그런 확신 때문인데
캔터베리 대주교가 항상 영적으로 유능하고, 영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회에서는, 교회가 사회적인 지도층을 형성해 있기 때문에
사회 지도층이 되려면, 그만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세워야 될 것이 아니냐... 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Respectability는 얻었을지 모르나, 김이 빠져 버리기 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