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작이 어렵지요. 그러나 좋게 끝내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잘 사는 거 어렵죠. 그러나 잘 죽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지요. '뭐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오는데, 죽음만큼 인간에게 동일한 것이 어디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만큼 다양한 죽음이 없다는 것이죠. 왜냐면, 죽음은 우리 삶 전체를 짧게 마치 한마디로 요약하듯이 그 죽음이,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삶 전체를 설명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죽으면, 특별히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오늘 삼하18장에서 압살롬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의 삶과 죽음은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나? 또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마땅한가? 그런 것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삼하18:1~3 '이에 다윗이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찾아가서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들 위에 세우고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에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
백성들이 이르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하니라'
다윗 측과 압살롬 측의 내전이 시작됐어요. 전승에 따르면 지금 다윗의 휘하에 있는 군사의 숫자는 당시 약 4천 명 정도 추측합니다. 물론 압살롬의 군대는 그 열 배 이상으로 봐야 되겠죠. 왜냐면 사망자만 나중에 2만명이라고 나오니까요.
그러니까 군대의 숫적으로 보면, 압살롬 측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고 다윗의 군대는 크게 열세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윗은 자기 군대를 세 대로 나눕니다. 어떻게 보면, 적은 숫자로 많은 적을 상대하기 위한 고육지책 이지요.
그래서 세 사람의 군지휘관을 세우는데 요압, 요압의 동생 아비새, 그리고 가드 사람 잇대를 세웁니다.
아마 요압이 기분 나빴을 거예요. 본인이 군대의 총사령관 인데 아비새나 잇대를 자기 휘하에 두지 않고, 3개 부대로 나누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겠죠.
어쨌든 다윗은, 이번 전쟁만은 꼭 직접 나가서 싸우고 싶어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지금 모든 상황이 전개된 게, 그전에 전쟁에 나가야 할 때 안 나가고 왕궁에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밧세바를 보게 되고, 그리고 간음을 하게 되고, 살인을 하게 되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게, 기억나는 거죠.
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될 자리에 있지 않고, 있지 말아야 될 자리에 있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크게 깨달았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꼭 전쟁에 나갈 것이다' 라고 결심을 했는데
백성들이나 다른 지휘관들의 생각은 달랐어요. 왜냐면 이번 전쟁은, 적과 싸우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내전이란 말이에요.
이번 전쟁은 다윗과 압살롬 중에, 누가 먼저 죽느냐의 따라서 전쟁의 판세가 끝나버리는 전쟁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백성들은 당연히 '다윗 당신은 이번 전투에 나가면 안 된다' 아들하고 싸우는 아버지가, 전력을 다해 싸우겠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오히려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고 그러니 '차라리 다윗 당신은 후방에 남아 있는 게 우리를 돕는 길이다..' 그래서 다윗이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18:4~5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왕이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지금 출정하는 군사들을 향해서 다윗이 부탁합니다. '아직 젊은 우리 아들 압살롬을 잘 좀 대우해 주게나'
여기서 '젊은'이라고 쓴 히브리어는 이제 막 유아기를 지난 아이부터, 결혼 전까지의 젊은이들을 부르는 호칭이에요.
여기서 속마음을 우리가 조금 새겨서 번역을 하면 '철없는 우리 아들 압살롬을 좀 잘 봐줘라' 이게 지금 전쟁하러 나가는 군지휘관들에게 할 말입니까? 근데 이게 다윗의 진심이란 말이에요.
다윗은 정말 이게 하고 싶지 않은 전쟁 아니겠어요? 그 말을 듣고, 아마 요압은 속으로 비웃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싸우라는 겁니까 / 싸우지 말라는 겁니까?'
지금 목숨 걸고 나가서 적장(압살롬)을 죽여야 전쟁이 끝나는데 '그를 잘 봐 달라' 그러면 어떡하라는 얘기일까요?
그게 다윗의 어려운 마음이라는 거예요. 안 싸울 수는 없어요. 전쟁은 이미 시작됐어요.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에요. 사실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면 어떻습니까? 아버지가 대신 죽고 싶겠지요.
▲6~8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 곳에서 전사자가 많아 이만 명에 이르렀고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다윗의 군사가 전황을 숲속으로 끌고 들어갔어요. 숫자가 작은 군대가 많은 군대를 대항해 싸우려면 지형지물이 복잡하고, 방어나 엄호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 싸우는게 유리하겠죠. 다윗의 군대가 거기로 아마 유인을 했을 거예요. 결과적으로 압살롬 측은 엄청난 전사자를 낸 거죠.
그리고 본문에 '싸우다가 죽은 군인보다 수풀에서 죽은 자가 더 많다'고 했는데, 웅덩이라든지, 무슨 절벽 이라든지, 무슨 여러가지 그 장애물들 때문에 정작 칼을 휘두르다가 죽은 사람들보다도 뭐 이렇게 저렇게 몰려 가다가, 높은 데서 떨어져 죽고, 수풀의 함정에 빠져서 죽은 자가 더 많았다는 거예요.
근데 이번 전쟁은, 무슨 블레셋, 아람, 암몬 등의 외적들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잖아요. 이 전쟁은 하나님이 누구 편에 계시느냐가 아주 대단히 중요한 전쟁이에요.
'칼에 죽은자 보다도 수풀에서 죽은 자가 많았다'는 말은 이 전쟁이 군사 대 군사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이다.. 이런 뉘앙스나 표현이 담긴 말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정복할 때, 아이성 전투에서 이런 표현이 나와요. 수10:11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그러니까 전쟁을 하는데, 단순한 전투의 과정에 의해서보다 다른 요인으로 죽은 자가 더 많았다는 것은 이 전쟁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전쟁이다... 이런 뜻이에요.
오늘날 우리는 어떨까요? 지금 우리가 전쟁으로 죽는 사람이 많습니까, 아니면 다른 역병이나 무슨 교통사고나, 무슨 정신적인 질환 등의 요인으로 죽는 사람이 많습니까?
전쟁보다 그렇게 다른 요인으로 죽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그러니까 인간이 일으킨 전쟁보다도, 우리는 다른 이유로 훨씬 많이 죽고 있는데 이렇게 많이 죽어가는 이유를, 세상 사람들은 잘 규명하지 못 해요.
근데 오늘 이 말씀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사람이 전쟁이 아닌 이유로, 많이 죽어 간다면 거기에 뭔가 하나님의 개입이나, 하나님의 의도나, 간섭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캐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9~10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입니까? 압살롬이 수풀 속에서 헤매다가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happen to meet 우연히 만나게 된 거예요.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게 과연 우연일까요?
아니 지금 압살롬 곁에는 왜 군사가 없는 겁니까? 군대를 몇 만명이나 끌고 나왔는데, 그들이 다 어디에 간 거예요? 전쟁을 하다보면, 이런 상황이 생긴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사람이 많습니까? 친구가 많습니까? 전화 한 번 하면, 나의 억울한 일, 힘든 일들을 다 도와줄 사람이 줄을 섰습니까?
안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작 어려운 일을 겪어 보십시오. 나를 도와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리면, 내 주위에 아무도 없어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거 지금 그냥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 근데 여러분 '우연'이 어디 있습니까?
이스라엘에 가장 악한 왕 중에 하나가 아합 왕이에요. 그가 나중에 어떻게 죽는지 아시죠?
왕상22:34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누가 목적을 가지고, 아합을 정확히 겨누어 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 데나 쏘았는데, 그 화살이 갑옷과 갑옷 사이를 잇는 솔기, 즉 갑옷의 가장 약한 부분에 맞아서 죽었단 말이에요.
아합이 화살을 맞고서, 피를 흘리면서 도망쳤지만 죽고 말았어요. 압살롬이나 아합이나.. 우연히 죽은 것은 아니라는 거죠.
골리앗은 어떻습니까? 그는 뭐 투구를 안 쓰고, 갑옷을 안 입고, 방패를 안 들었습니까? 근데 다윗이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달려와 가지고 던진 물맷돌 하나가,
자기 이마 정중앙에 맞아서 죽지 않습니까.
우리가 정말 이런 것을 보면서 '정말로 우연한 일은 없다'는 거죠.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죽음을 맞을 때 그 죽음의 질이 결정됩니다. 사람은 우연히 죽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잘 사시기를 원합니다. 잘 사십시오, 그래야 잘 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란 우연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어떤 일을 겪든지, 우리한테 어떤 일이 닥치든지 우연히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게... 믿음이라는 거지요.
우리가 요셉의 믿음을, 왜 좋은 믿음이라고 말합니까? 창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이 애굽에 온 것은, 형들이 자기를 대상에게 팔아서 그렇게 된 것인데 지금 요셉은 '하나님이 나를 먼저 애굽으로 보냈다'고 믿는단 말이에요.
믿음이란 뭐라고요?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인간의 손 끝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인간의 손 끝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 이걸 믿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므로 여러분들 주위에 크고 작은 일들이 매일 일어나지만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과/ 믿음 없이 산다는 게 무슨 차이예요?
믿음은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요, 이 크고 작은 일들, 내 눈에 보기에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일들이 결국은 다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사적 섭리를 이루어가는 일이다... 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 아닙니까!
그래서 고민이 줄어들고, 갈등이 줄어들고, 의심이 줄어들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는' (롬1:17) 삶이 시작이 된단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그런 믿음이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얼마 전에 장마가 있었는데, 장마 통에 그 웅덩이에서 물이 튀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다 버리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는 '하나님께서 내게 옷을 빨라고 하시는 모양이다' 라고 해석하는 거죠. 거기서 벌써 지나가버린 자동차 운전수 보고 화를 내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유대인 속담에 그런 말이 있어요. '다리 하나가 부러지면.. 감사합니다. 두다리가 부러지지 않아서요. 두 다리가 부러지면.. 아 감사합니다. 목이 부러지지 않아서요. 목이 부러지면.. 아 감사합니다. 더 이상 이제 걱정할 일이 없어서요!'
여러분들에게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감사 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마귀는 못 이긴다는 거예요.
악한 영이 제일 싫어하는 게,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예요. 악한 영이 밥으로 삼은 사람은, 입에 불평불만을 달고 사는 사람입니다.
어쨌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자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 나무에 걸리고 말았는데, 아니 뭐가 걸렸다고요? 머리는 압살롬의 자랑 중에 자랑 아닙니까!
압살롬의 가장 큰 자랑이 자기 머릿결이었어요. 삼하14:25~26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압살롬은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머리털이 반질반질 윤이 나고 새까만 흑발에 길게 길러가지고 머리를 출렁출렁 흔들며 다니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 그냥 홀려 가지고 이스라엘의 우두머리가 된 사람이에요. 머리카락 흔들면서 머리가 된 거죠.
그는 자기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머리였는데 그 머리가 상수리 나무 가지에 걸려서 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의 머리 사건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인생은 자기의 가장 큰 자랑거리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거죠.
여러분이 지금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뭡니까? 본문의 압살롬의 얘기는, 인간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때문에 가장 큰 고난을 겪을 수도 있고,
자기의 가장 큰 자랑거리 때문에,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자랑하지 말라는 겁니다.
게다가 그는 지금 머리가 나무에 걸려 있어요. 신21:23절에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하셨죠.
압살롬은 지금 머리가 지금 나무에 걸린 상태가 되고 말았어요. 어쩌면 그는 이런 죽음을 맞도록,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전쟁이 시작할 때, 다윗은 모든 게 내리막길 같아 보였어요. 반대로 압살롬은 모든 게 승승장구 잘 되는 것 같고, 형통한 것처럼 보였어요. 근데 결정적인 사건이 생깁니다.
아히도벨 이라는 당대의 지략가가 뭐라고 계책을 얘기를 했어요.
또 다윗이 심은 후새가 다른 계책을 얘기했어요.
이때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버리고, 후새의 모략을 택했어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삼하17:14
그러자 아히도벨은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서 정리하고 자살합니다. 저는 아히도벨이 자살했다는 얘기를 듣고, 압살롬이 어떻게 반응 했나? 이게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궁금합니다.
압살롬은 아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쟁에 조급한 나머지 달려갔겠지만
만약에 그 상황이 다윗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아히도벨을 위해 애도 기간을 선포했을 거예요. 아히도벨을 위하여 조가를 지어서 불렀을 거예요.
근데 압살롬은 자기의 가장 최측근,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었어요. 아무런 슬픔의 표시가 없습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압살롬을 위해서 일하고 싶습니까, 다윗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까? 자기 최측근의 죽음에도, 아무 애도를 표시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을 위해서 내가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까?
그게 오늘 지금 압살롬이, 이 적진 한가운데서 아무도 자기 곁에 사람이 없는 이유란 말이에요.
우리는 우리 자신 곁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를 잘 몰라요. 우리는 왕따를 당하는 이유를 잘 몰라요.
'아이고 (압살롬 같은) 왕은 따로 노니까 그렇지..' 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왜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주위에 친구를 다 잃어버리는지요?
내 신앙이 좋아서 친구가 없는 건지요? 아니면 신앙의 이름으로 내가 더욱더 폐쇄적이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이어서 그런 건 아닌지요? 이걸 살펴볼 필요가 있는 거예요.
다윗과는 전혀 다른 압살롬을 보게 됩니다.
압살롬은 자기 머리를 다듬느라 얼마나 시간을 보내겠어요? 머리가 길면 한 번씩 감고, 머리의 윤기를 내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려요..?
제가 중동에 가서 보니까, 그곳 남자들이 머리 다듬고 수염 다듬는 일에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았어요.
압살롬이 자기 머리를 다듬는 시간의 반의 반이라도 자기 이웃을 향한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그걸 생각해야 되는 거지요.
저는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가, 자기 교회를 돌보느라고 세상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지금의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나? 이것도 생각해 볼 일이에요.
△우리는 '교회' 라는 우상을 만들어서, 우상숭배에 빠진 건 아닌가요?
우리는 코뮤니즘, 소셜리즘.. 이런 이념들이 있지만 교회마저도 만약 우상으로 만든다면, 처치이즘 churchism 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주의자가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교회가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소중하다는 게 지나쳐서 교회가 아닌 것은 다 적으로 돌리고 교회가 아닌 것은 다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교회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빠지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빠지지 않기 위해서 '뭇별 예배'도 드리고 그리고 우리가 흩어지자고 말하는 거예요.
모이면 모일수록 힘이 생기는 게 아니라 모이면 모일수록 자기 과시욕이 커지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참 안타깝게도 자랑하던 압살롬이 그 머리 때문에, 머리카락이 걸려 가지고...
그는 미치도록 왕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얼마나 왕이 되고 싶어 했는지 몰라요.
동생 다말 사건을 계기로, 왕위 계승 서열 1위 암논을 처치하고 마침내 아버지까지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이스라엘 머리가 되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그러나 그 머리 때문에,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죠.
이게 여러분, 인생의 비극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정말..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스로 자랑하는 것 때문에, 자랑거리 때문에 도리어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잘 생각해 보세요. '나는 뭘 자랑하고 사나?' 왜냐면 세상은 우리에게 '자랑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은 지금 '자랑 경연대회장'이 되고 말았어요. 자랑거리가 없으면 패배자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랑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아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제일 큰 자랑거리가 되겠죠. 돈 많은 게 큰 자랑거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마19: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우리는 부자가 되는 게 꿈이고, 자기가 쌓은 부를 자랑하는 게, 가장 큰 보람인데 예수님은 그게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재물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재물을 자랑 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거예요.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율법을 자랑하는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얘기합니다.
율법 때문에 못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지키지도 않는 율법을 자랑하다가, 못 들어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자랑이라는 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데 이 세상은 자랑을 아주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랑거리가 없으면 못 견뎌 합니다. 식당마다 밥은 안 먹고, 사진 찍느라고 난리를 칩니다. 혹시 SNS에 자랑하려는 거 아닙니까?
빌3:7~9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는 세상에 자랑거리를 위해 살아왔던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앎,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 앎과 믿음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자랑거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구원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 자랑거리는 전부 쓰레기요, 전부 다 헛된 것임을.. 비로소 영안이 뜨인 것입니다.
야고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약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야고보는, 자랑은 악한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면 현재 이렇게 자랑이 많은 세상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렇게 세상에 자랑이 많아지다가..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왜 세상이 악해진다고요? 자랑하느라고... 자랑이 많아져서... 자랑거리 만드느라... 점점 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이 많은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구나' 라고 알면 됩니다.
아~ 저도 요즘 좀 자랑을 하려고 해요. 우리 교회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그러나 자랑은 악한 데서 나온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약4:16
뭐 그렇다고 SNS를 다 끊어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SNS 를 내 자랑의 도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앎과 믿음의 도구로 쓰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1~13 '요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
여기 기가 막힌 지혜로운 한 군사가 나옵니다. 이름이 안 나옵니다. 지금 비록 급박한 전쟁터 이지만, 그는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을 했는데, 요압은 지금 다른 명령을 해요. 보통 전투현장에서는 바로 직속상관의 얘기를 들어야 돼요.
요압은 '머리가 나무에 걸려가지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압살롬을 단칼에 죽이지 않고 왜 그냥 보고만 왔느냐? 네가 그를 죽이고 왔다면, 내가 네게 은10개와 훈장을 줬을 텐데... 네가 놓쳤구나!'
그는, 돈을 얼마나 많이 받아도 그런 (왕의 아들의 살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 라는 말의 뜻은
'내가 죽이고 나서 그 책임을 나한테 덮어씌우는 게 당신 체질이란 걸 알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는 요압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거죠.
여러분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우리가 어떤 계산을 하고 사는지, 어떻게 머리를 굴리고 사는지 그 사람들도 다 알고, 그들도 다 머리 굴릴 줄 압니다.
다윗은 진심으로 얘기하는 사람이지만 요압은 그의 말에 진심이 없다는 걸 안단 말이에요.
그래서 행9: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 말에 우선을 둘 것인가/ 하나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그거 결정하고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순간 순간, 이곳과 저곳에서 언제나 우리는 이런 갈등에 부딪히게 됩니다.
직장에서 사람의 말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주신 율법의 기준을 따를 것인가?
예를 들면, 공장에서 윗사람이 '야 장마철인데 뭐 어때? 폐수를 좀 흘려 보내' 그러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게 성경의 말씀이라면
공장의 이익을 위해서, 밤에 몰래 폐수를 방출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게.. 그리스도인의 도리입니다.
'그러면 짤리는데요?' 그것 때문에 잘리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직장으로 반드시 옮겨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걸 타협하다가, 그 직장에 묶이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을 지키려고 한 두번 잘려 보십시오. 그것도 큰 기쁨이 됩니다.
만약 잘리면.. 잠시 쉴 수도 있고, 생각도 깊이 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 때문에 잘리는 일이 안 생겨서 문제이지...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자꾸 직장에서 잘리는 일이 생겨야 마땅하다는 말이에요. 그게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사는 올바른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14~15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요압의 잔인함이 잘 나타나 보입니다. 지금 압살롬이 살아 있잖아요. 생포해도 됩니다. 다윗이 살려두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창 셋으로 그의 심장을 찔러죽이고 자기 부하들에게 완전히 확인 사살을 시켰습니다.
지금 이 사람이 다윗의 오른팔 같은 사람인데도, 다윗의 말을 어기는 것을 보십시오.
그래서인지 다윗은 요압과의 갈등 관계를 영구히 품고 갑니다. 내치지도 않아요. 곁에 계속 두어요. 결국 자기가 죽을 때, 아들 솔로몬의 손에 압살롬을 맡기죠.
▲16~17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이게 지금 압살롬의 죽음이에요. 그가 죽었어요. 구덩이에 던져 넣습니다. 그리고 돌무더기를 쌓았어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패륜아, 아버지에게 달려든 반역한 사람은 돌에 맞아 죽어야 돼요. 이게 신명기 율법 이에요. 그러니 돌무더기를 쌓은 것입니다 .
두 번째, 돌무더기를 쌓는다는 것은 후대에 기억 거리가 되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아이성 전투때 보면, 여호수아가 아이성 전투 때 실패하고는 범인을 색출한 결과 아간이 잡혔어요. 아간을 돌로 쳐 죽입니다. 그리고 돌무더기를 쌓아요.
그리고 아이 성 왕도 죽여서 돌무더기를 쌓아요. 이렇게 후대에 기억되게 하기 위해서 돌무더기를 쌓는다는 것입니다.
▲18절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여기 '자식이 없다'고 나오는데, 앞에 14장에 보면, 아들이 셋 있었고, 딸은 다말이라고 나와요. 이 모순을 다들 궁금해 하는데, 그의 아들들이 일찍 죽었을 것으로 추측할뿐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압살롬은 이런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이미, 여기 골짜기라고 하는 건, 기드론 골짜기로 추측하는데, 거기에다가 자기 비석을 세웠다는 거예요. 그러니 대단한 친구죠.
자기 비석을 젊은 나이에 세운다는 것은, 보통 야망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기억 되고 싶다는 거고, 사람들의 머리가 되고 싶다는... 그런 큰 야망이 있고, 그 야망을 나름대로 일찍부터 준비했다는 걸 알 수 있죠.
결국 그는 그 머리가 자랑거리였듯이 자랑거리에 목마른 사람이었고, 평생 자기 자랑하다가 그 자랑거리에 목이 매달려 죽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자기 자랑하는 걸 가장 어리석게 얘기합니다. 잠27: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여러분들이 스스로 낮추기만 하면, 하나님이 높이시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입으로 자랑할 것도 없고, 내가 나를 높이려고 할 것도 없고 내가 나를 자랑 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 방식과 정 반대죠. 세상은 내가 나를 높여야 인정을 받고 내 가치를 내가 스스로 입증해야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내 몸값을 점점 올려야 세상에서 성공하는 거라고 말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럼 이 갈등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삶의 과정만이 아니라, 어떤 죽음을 맞게 되느냐? 이것입니다.
오늘 압살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가 일평생 어떻게 살았는지가, 자기 죽음을 결정하고,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자기 전체 삶을 결산해서 보여줍니다.
너무 자랑거리에 묶여 사는 이 세상을 따르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압살롬을 보고 반면교사를 삼으라는 거죠.
그렇다면 허무하게 죽은 압살롬은, 도대체 무슨 인생을 살은 겁니까? 아버지 다윗에게 경종을 울리는 인생, 그냥 아버지의 인생채찍 노릇을 하다가 끝난 사람이 되고만 것입니다. 허무하죠!
그래서 우리 인생 중에서, 우리를 몹시 괴롭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일깨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도구란 말이에요.
우리를 많이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는 나를 위한 막대기요, 채찍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보면, 북이스라엘도 망하고, 남유다도 망했어요.
그러면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와 바벨론은 어떻게 됩니까? 그 이스라엘 남북 왕국을 멸망시킨 죄에 대한 대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망하게 됩니다.
사10:24~25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
바벨론은 어떻게 됩니까? 사14:4~5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
그래서 놀랍게도 시편 37편에 이런 말씀이 나오죠. 시37:1~2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혹시 여러분은,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벼락을 맞아 죽더라도, 악인처럼 돈 벼락 맞아 죽고 싶다는 생각 안 하십니까? 안 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압살롬이 승승장구 하는 것 같았어요. 그가 가장 자랑하던 그 머리를 쳐들어서, 머리를 흔들며, 이스라엘의 머리가 되었지만 그 머리가 나뭇가지에 달려서, 자기 머리카락 하나 주체하지 못하고 그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는 걸.. 우리가 성경을 읽었다면, 기억한다면,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의 세상 자랑거리를 만들려고 애쓸 일도 아니고, 그리고 남들이 우리의 자랑거리를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랑거리에 우리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자랑거리에 걸려 넘어지는 정도면, 일어설 수 있지만 그 자랑거리 때문에, 죽음을 맞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세상이, 우리를 온통 자랑거리 가운데로 내몰지만 '너는 네 인생의 자랑거리가 뭐가 있냐?'고 날마다 우리를 채근하지만
'나는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자랑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말이 '솔리 데오 글로리아' 아닙니까. 내 영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 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얼굴을 높이 들게 하실 것이고 반드시 수치를 겪지 않게 하실 것이고, 영원히 기억되는 이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