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로마서 강해를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보겠네요.
◑1.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을 주십니다
▲롬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약속)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여기서 '언약(약속)'에 동그라미 치시고, '오직 믿음의 의로 인해 된 것이다'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중요한 키워드들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율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약속은 믿는 것이다' 라는 거예요. 약속은 아직 실체가 오기 전에 주어지는 거 있잖아요. 그런데 실체가 오기 전에,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라는 거예요.
약속은.. 내가 노력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은 내게 값 없이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종교적인 행위, 윤리적인 행위를 잘~ 해서 하나님께 약속을 타내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저에게 이렇게 약속해 주세요' 이렇게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약속을 타내는 게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약속을 주시는 그 하나님', 그 은혜의 하나님을 내가 신뢰함으로 선물(약속)을 받는 것이에요.
△우리가 읽는 성경책, 하나님은 왜 성경을 약속으로 가득채우셨을까요? 구약도 약속이고, 신약도 약속이죠. 그래서 성경은 약속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입니다.
이런 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구원할 것이다' 그런 약속을 성경을 통해서 주시는 거죠.
▲사랑하면 약속하게 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약속을 하고 싶어져요.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면 '내가 평생에 당신을 지켜주겠다' 이런 약속을 하게 되죠.
또한 약속을 하는 분의 입장에서는 약속을 하는 순간 책임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함부로 쉽게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주1)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약속이 이렇게 수 천 장이나 담겨있는 약속의 책(성경)을 주신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들을 지금까지 하나도 어김없이 지켜오고 계십니다.
그럼 어느 정도까지 지키셨는가요? 당신의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지키신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믿음을 주십니다.
'아니, 약속을 이렇게 많이 남발하셨으면, 이거 다 어떻게 지키려고 하나?' 걱정을 주시는 게 아니고요.
'와~ 이 많은 약속을 하나님이 다 일일이 지키시는구나!' 그걸 보면서 우리 안에 믿음을 주시는(생기는) 거죠.
정말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 즉 미쁘신 하나님 이십니다.
△자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과연 약속을 잘 지키나요? 여러분은 약속을 잘 지키십니까?
'내가 밥 한 번 살게!' 말하고, 그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얼마나 성실하게 지키려고 애를 쓰고 계신가요? 아내/아내/자녀와의 약속을 쉽게 어기십니까?
여러분은 결혼식 때, 10년 전 20년 전에 결혼식 때 했던 서약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세요? '내가 그걸 잘 지켜야지!' 하고 마음의 다짐을 하고 계십니까?
사실 사람은, 약속을 하는 그 순간에 진정성이 없는 경우도 상당히 많고 약속을 하고도, 그것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약속을 지킬 힘이 없다' 라는 게, 어떤 힘이 없는 것일까요? 책임감 부족 일까요? 일부분은 그렇겠지만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사랑의 힘이 떨어진 거예요!"
약속은 책임감으로 지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약속은 사랑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힘이 있어야만 그 약속을 지켜낼 수 있는 거예요.
△자 본문 13절에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이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창15:4절에 보면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나님이 약속하셨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3가지 약속을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땅을 주시겠다/ 자손을 주시겠다/ 복을 주시겠다... 이렇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실제로 가나안 땅에서 살 때 그는 자신이 받은 약속이 현실이 되는 걸 보았나요?
아뇨, 평생을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아들 하나 낳은 거 외에는, 현실이 되는 걸 못 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인생의 많은 환란과 고난을 뚫고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이 재산이나 물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 '우리 가문에, 너의 인생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이것이다' ... 라는 것을 물려주고 계신가요?
우리가 믿는 부모로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이런 아브라함과 같은 유산을 받도록요!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 자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부모가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이) 해주세요.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물질적인 유업을 남겨 줘야 되는 그런 책임감을 넘어서서 영적인 유업을 남겨 줘야 될 책임감을 가져야 돼요.
그런데 오늘 날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찬 부모들도 '내 자녀가 그래도 이렇게 걱정 없이 살아가려면, 내가 자녀에게 이것은 (부동산 등) 해줘야 될 텐데...' 하는 재정적인 부담감과 책임감들은 어마어마하게 느끼면서도
왜 '자녀에게 내가 영적인 유업을 남겨 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은 없냐는 거죠. 여러분, 기도 하셔야 됩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자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 (아브라함과 같은) 약속의 유업을 남겨주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을 남겨주시는 부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평생에 자녀 곁에 있을 수가 없잖아요.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지만 여러분이 전해준 그 약속의 유업은, 평생에 내 자녀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쉽게 얘기하자면, 약속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율법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약속'과 '율법'의 차이를, 그 개념을 정리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약속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선물이에요. 그러나 율법은, 옳고 그름의 규정을 내가 실천함으로 인하여 나에게 주어지는 상벌의 개념입니다.
자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규정을 다 지킬 수가 있는가요? 다 지킬 능력이 없죠.
그러니까 결국에는 '저는 제가 실천한 만큼만 받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상당히 양심적이고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해서도 본문 15절에 '결과는 진노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판결이 죄인으로.. 판결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 인생으로 적용해 보면,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상벌의 개념을 적용할 때가 있고, 은혜의 약속을 적용 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네가 이번 기말시험에 90점을 받으면 핸드폰을 새로 사 주겠다' 그러면 이게 은혜의 약속을 적용한 게 아니라, 상벌 개념을 적용한 것입니다.
직장에서 부하직원에게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 승진시켜 주겠다' 라고 얘기하면, 이것도 역시 상벌 개념인 거예요.
그러나 자녀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그냥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줄 때가 있잖아요.
제가 어릴 적에 정말 머리가 좀 모자랐거든요. 제가 머리가 늦게 틔었습니다.
그래서 음악과목의 악보에 나오는 그 기호들을 설명하는 그런 시험이었는데 제가 꽤 열심히 준비했어도, 이해를 잘 못 했던 거 같아요. 시험을 봤는데 음악과목을 60점을 맞은 거예요.
그 날따라 비가 엄청나게 내렸습니다. 제가 60점 짜리 시험지를 들고 '이제 난 혼 나겠구나' 그러고서는 저녁에 엄마 아빠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시험지를 내놨어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바라 보시더니, 제게 "잘했다!"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아니 잘한 게 아닌데, 왜 잘했다 그러십니까?'
부모님은 "네가 어제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잘 한 것이다" 굉장히 은혜로운 얘기를 해 주신 거 였어요.
은혜의 약속을 유업으로 남겨주시는 부모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건 자녀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실 저희 집이 삼형제고, 제가 막내입니다. 제 큰 형과 둘째 형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 했어요. 거의 천재적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런 형님들의 성적에 비하면, 혼이 나야 정상인건데, 늘 은혜로 용납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정말 늦게 뒤늦게, 하나님의 은혜로 제 공부 실력이 회복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직원이 자기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상사가 오히려 그를 격려해 주고 은혜를 베풀어 줄 수도 있는 거라고요.
저희 집에는 TV 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드라마를 제대로 본 적이 20년 전에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최근에 <우영우 드라마>를 보면서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거기 보면, 우영우 라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변호사가 나오는데, 시청자들은 '그게 비현실적이다.. 자폐 장애우가 어떻게 변호사를 하냐?' 뭐 이렇게들 얘기 하지만
그 우영우 변호사보다 더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변호사 사무실의 팀장입니다. 그 팀장 변호사는, 자기 팀원인 우영우를 늘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고, 자기가 잘못하면 자기의 잘못을 또 그냥 그 자리에서 시인하고... '야 이런 팀장이 세상에 어디 있냐?' 뭐 그런 얘기들을 해요. 비현실적이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물론 상벌이 필요하고, 규정대로 하는 것이 필요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은혜를 베풀었을 때, 더 깊은 감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생을 움직이는 거예요.
모든 것을 상벌 대로 하고, 규정대로 하면 매우 공정한 부모, 매우 공평한 상사일 거 같지만 율법적이고 조건적인 관계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리더의 포지션에 계신다면 평상시에는 상벌이 명확한 리더가 되십시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은혜를 베풀줄 아는 지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벌은 관계 가운데, 공동체 가운데 질서를 만들어 낼 수는 있어요. 그러나 구원의 사건을 일으킬 수는 없어요.
완전히 무너져 있는 사람을 살려내는 구원의 사건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6절의 첫 번째 문장 '약속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받은 것처럼 이제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입니다.
△물론 후에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시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의의 길을 깨닫고, 신실하게 반응하라는 뜻이지 우리가 행위 완전해서, 그것을 다 지킬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세가 태어나기 적어도 430년 전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으로 얻는 이 은혜의 약속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신 거잖아요. 이게 참 감사한 거에요.
왜냐면 오늘 날 우리도 내가 어떤 행위 완전함으로,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타 내고, 선물을 타 내고, 약속을 타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말 수많은 축복의 약속들을 '믿기만 하면' 내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감사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간 그 어떠한 말씀도 그것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라고 말씀 하셨어요. 사55:11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우리가 묵상해 보면 한 가지 또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도 하나님이 약속을 하시도록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발적인 거예요.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분이 먼저 약속하신 거예요.
그런데 인간은, 약속을 수 없이 많이 하지만, 그 약속을 온전히 지킬 능력이 없다고요. 그래도 하나님과의 관계 있어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약속을 해 주실 때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실 거라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을 수는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불타는 건물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 자력 구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이 사람들을 향하여서 '당신들을 제가 반드시 구조해 내겠습니다' 그렇게 약속하고 다가오는 구조대원이 있다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구조대원의 약속을 믿고 반응하는 건 가능하잖아요. 그리고 믿음으로 내 몸을 그에게 맡기면, 정말 구조되는, 구원을 받는 기적적인 체험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믿음은 내가 하나님께 반응으로 드려야 되는 것이에요.
△구원의 전 과정..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예지 예정, 부르심, 칭의, 성화, 영화.. 이런 구원의 전 과정에 있어서 사람이 기여할 바는 사실 없어요.
그래서 참 감사하게도 우리가 단 한 가지를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 한 사람을, 망가진 죄인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영원한 그분의 나라에 인도하시기 까지 '이 수많은 약속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지키시고 완성하실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는 믿음의 반응을 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믿기만하면 그분의 약속이 다 이루어 진다는 것이죠. 얼마나 감사합니까! 4
△그런데 아브라함의 인생에서도, 믿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 그런 약속을 주셨을 때, 그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그 믿음을 오랜 세월 동안 지켜가는 게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내적인 영적 전쟁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은 소망을 주십니다.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우리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생애를 놓고 보면, 낙심할 때도 있었고, 절망한 때도 있었습니다.
창15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그냥 다메섹 엘리에셀로 족합니다. 저는 이 후사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낙심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 주십니다.
'아니다, 너에게 내가 자손을 주어서 너의 자손이 하늘의 뭇별 같이 되도록 만들어주겠다.'
이렇게 약속을 상기시켜 주심으로써, 그의 마음에 소망을 주셨어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자녀를 안 주시니까, 이번에는 아내 사라가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낳게 합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고 나서 창17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해요. '하나님, 이스마엘이나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낙심해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아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서 후손을 낳게 해서 그 자녀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부를 것이고, 그를 통해 많은 자손이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약속을 상기시켜 주심으로, 그의 마음에 또 소망을 불어넣어주셨어요.
△자 그러니까 아브라함 이라는 인물 자체가, 믿음이 좋은 인물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러나 그의 믿음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계속 그 믿음을 지켜 내기가 힘들었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그 약속을 상기시켜 주셔서 그의 마음에 소망을 주셨던 거예요.
아브라함은 그럴 때마다 '그래 상황은 그렇지 않지만, 또 나 자신도 내가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상황까지 왔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 줄 거야!'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제가 <두려움 너머의 삶>이라는 제 책에서 많이 강조한 부분인데요. 여러분의 최근 삶의 상황이, 또 우리 시대 상황이 코로나로 어려워서 마음 가운데 근심과 낙심과 두려움이 가득하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좀 정리해보자면 이런 거예요. 믿음은.. 비현실에 근거하는 것으로.. 믿음은 아직 실체가 없으니까 뜬구름 잡는 얘기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두려움은.. 내가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인식에 근거에서 두려움이 나왔기 때문에 두려움이 현실에 근거하고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실제로 정반대라는 걸 아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근거한 것이고 두려움은 사탄의 거짓말에 근거 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근데 이 두 가지가 결정적인 차이점이 무엇이냐면 이 설교의 도입 부분에서 말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사랑하셔서 그 약속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가진 능력 가운데 가장 큰 능력인, 사랑의 능력으로 그 약속을 완성하실 거예요.
그런데 사탄의 거짓말은.. 우리가 미워서 그냥 찔러 보고 흔들어 보는 (겁주는) 것 뿐이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는 힘이 없어요. 능력이 없어요. 그것은 완성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사탄의 거짓말에 빠지는 건가요? 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않는가요? 그래서 너무나 억울하게 속아서 당하는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운동을 하는 선수에게 코치가 '네가 지금은 실력이 안 되지만 나만 믿고 따라와라, 내가 너를 훌륭한 선수로 만들어 주겠다' 그러면 그 선수가 코치를 따라 가야 되는 거잖아요.
부모가 아이를 보면서, 아직 한 번도 일어서서 제대로 걸어 본 적이 없지만 '야~ 이제는 걸음마를 할 때가 됐다' 이렇게 보고 아이에게 '일어나 봐, 아빠에게 걸어 와 봐!' 라고 얘기하면
아이가 그 아빠를 신뢰하고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아이가, 걸음마를 떼 보는 거죠. 할렐루야!
저는 이것을 묵상하는데 너무 감동적이더라고요. 왜냐면 여러분, 지금까지 인생을 30년 50년 살면서 굉장히 현실 판단에 근거해서 여러분이 살아온 것 같아 보이죠?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날마다 기적을 만들면서 살아온 거에요.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했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걷기 시작한 것이고요. -학교라는 낯선 곳을 가 보지 않았던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것이고요. -돈을 벌어 보지 않았던 인생이, 갑자기 돈을 벌기 시작하는 것이고요. -결혼을 해 보지 않았던 사람이, 결혼을 하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인생을 평생 사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의 인생이,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이 내가 현실에 근거한 데이터들을 근거해서 판단내려서 사는... 그게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No! (이건 믿음이 아니죠)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우리는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끊임없이 하면서 오늘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상당히 현실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상황을 분별하고 산다!' 라고 생각하지만,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아~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나는 지금까지 내가 공부한 학력, 내가 지금까지 일한 경력으로는, 지금 여기를 벗어날 수 없어! 난 여기서 더 올라갈 수 없어! 난 여기서 더 꿈을 펼칠 수 없어!'
누가 여러분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나요? 현실적인 판단 근거가 그렇게 말을 했죠.
현실적인 판단 근거가 굉장히 명확한 거 같지만 왜 내 마음 가운데,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을 불어넣는 사탄의 거짓말에 여러분이 동조줘 하셔야 되는가요?
여러분을 무너뜨리고자 여러분을 미워서 공격하는 사탄의 거짓말을 명확하게 거부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에 대해서 아멘으로 화답하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약속을 주신 것이고 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소망이 충만해지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놀랍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다 포함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의 대상을 바라본다는 개념이 있잖아요.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내가 나이가 100세가 됐고, 내 아내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컨디션이고..
그런 상황 일지라도,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내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소망이 생기는 거예요.
사실 소망이라는 말 자체가 '바란다' 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바라본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죠.
내가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이 바람이 유지가 될 수 있느냐? 아니면 상실되느냐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가령 이런 것입니다.
동물원에 아빠랑 놀러 간 어린아이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사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자를 보면서 막 무서워 하는 거에요. 무서워하고 벌벌 떨고 울기 시작하는 거에요.
근데 아빠가 '괜찮아~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사자일 뿐이야, 무서워 하지 않아도 돼!' 근데 아이는 계속해서 그 사자를 바라보면서 운단 말이죠.
그러니까 아빠가 아이를 들어서 품에 안아 주면서 '걱정하지 마, 아빠가 너를 지켜 주잖아, 저 사자를 무서워 할 필요가 없어!'
근데 아이는 아빠 품에 안겨서도, 여전히 아빠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자를 바라보면서 운다는 거죠...
토미 테니가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책에서 이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그에게 딸이 셋 있거든요. 자기 딸들을 키웠던 경험인데
그러면 우리의 삶의 상황이 그와 똑같아요. 왜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두려운 상황만 쳐다보고 울고 있느냐는 거죠.
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서포트 해 주시고, 나의 인생에 최고의 것으로 채워주시기를 원하는 그가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고...
연약한 나 자신을 보고, 불가능한 상황을 보고,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바라보면서... 왜 절망하고 있는가요?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머리가 진짜 안 좋았을 때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구절을 발견했거든요. 약1:5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아멘
여기 이 말씀에,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주신다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제가 이 구절을 보고요. 와 정말 어마어마한 보석을 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제일 못하는 <수학 정석>의 커버 페이지 안 쪽에 야고보서 1장 5절 8절을 써 놨어요.
그래서 수학 문제를 풀다가 문제가 안 풀리면, 해설을 보잖아요. 근데 해설을 봐도 이해가 안 될 때, 그때 절망하게 되는 거죠.
예전에는 책을 덮고 나갔는데, 이제는 책의 커버 페이지를 열어서 야고보서 1장 5~8절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킨 게 아니라, 하나님께 상기시켜 드렸어요.
'하나님, 제가 이 약속을 먼저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제게 이 약속을 주셨으니, 이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다시 <수학의 정석>책을 펼쳐서 공부하는데, 해설을 읽어보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학공부를, 하나님이 개인교사가 되어주셔서 가르쳐 주시니까 너무 너무 재밌게 했어요. 그래서 제가 대입 입시(수능)를 봤을 때, 제가 수학과목을 제일 잘 봤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해 주시고 목동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해 주시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그리고 정말 가장 놀라운 기적은 무엇일까요?
구제불능의 이 죄인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고... 이게 참 놀라운 것이죠.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거 같지만 가장 현실적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꾸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다 보니까 그게 (현실이) 가장 정확한 판단력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감각을 다시 살려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두 가지에요. -첫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실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분이 내게 능력을 베풀어 주시면,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왜 내게 주신 약속이 내 삶에서 현실이 될 수 있느냐? 그 약속을 주신 분이, 그것을 이루실 능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에요. 감사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이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아닙니다.
토미 테니 목사님이 또 이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합니다.
그 분이 어느 날 마트에 들어갔는데, 처음 보는 꼬마 아이가 과자를 들고 와서 '아저씨, 제가 이거 먹고 싶은데, 이거 좀 사 주세요!'
미국 문화에서는, 일단 사 주지 않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죠. '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부모가 그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내가 맘대로 사 줄 수가 없는 거죠. '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그 에피소드를 자기가 얘기하면서, 그 책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자기의 부모에게 능력이.. 재정적 능력이 있든, 건강의 능력이 있든, 지적인 능력이 있든, 아니면 뭐 사회적인 지위의 능력이 있든... 부모가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능력을 아무에게나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내 자녀는, 부모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의 능력을 사용하는 거죠.
자녀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아빠 이거 사 줘, 엄마 나는 이거 필요해!' 그 얘기를 한다는 거죠.
집에서도 그렇게 까칠하게 지내다가도, 자녀가 용돈이 필요하면 갑자기 얼굴을 돌변하고 나와서 돈 달라고 얘기하는 거.. 너무 편하게 말하잖아요.
그게 왜 가능한가요? 나를 사랑하는 내 부모이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나에게 사용할 줄을.. 자녀가 알고 있거든요.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실 뿐만 아니라 그 분이 능력을 왜 베푸시는가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에요! 할렐루야!
▲4: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자 이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믿는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그 선물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도 그 선물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의 현재 상태.. '아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 난 이제 나이도 들었는데.. 난 이제 체력도 안 되는데.. 나는 이미 너무 인생의 트랙에서 벗어나서 한참을 쉬고 있는데...'
뭐 이런 많은 생각들을 하시죠. 그러나 그런 현실 판단에 근거해서, 문제 상황에 근거에서 두려움을 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소망을 품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치는 말 우리의 인생에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5년 뒤, 10년 뒤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세상 사람들은,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리소스(자원)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 그런 데이터에 근거에서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요.
여러분의 기업의 미래, 여러분의 자녀의 미래를 무엇을 근거로 해서 바라 볼 것인가요?
그런데 일반인과 크리스천이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야 됩니다. 크리스천의 미래는, 경험과 논리에 근거해서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여러분의 전문 영역에서는 그게 필요할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현실적인 판단에 근거해서 나오는 데이터로 여러분의 미래가, 결과 out-put 가 나오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는 사람들이예요.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의 삶에는 놀라운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것을 체험하고, 세상에 선포하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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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근데 오늘 날 현세대를 보면서 좀 안타까운 것은 정반대로 이거는 책임을 져야 되는 관계, 책임을 져야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딱 책임소재가 없는 정도까지만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딱 내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정도까지만 관계를 맺고 (특히 남녀 관계에) 딱 내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정도까지만 개입을 하는...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뭐 싱글남녀 간에도 썸을 타도 사랑에 빠지려고 하지 않아요. 왜냐면 사랑하면 약속하게 되고, 약속하면 책임을 져야 되거든요.
그래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아예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이 현세의 젊은이들을 보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모르고 산다는 게..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