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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가질 수 있는가? 창15:1~6 2022.08.21.녹취
오늘 말씀 제목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내가 무엇을 원해서 취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
하는 주제입니다.
한 번 생각을 해 봅시다.
학생이 평소에 공부를 잘 해서, 지원하는 대학교마다 붙는다면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기 힘으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만약에 여성이 생산력이 좋아서 애를 쉽게 임신하고 쉽게 낳는다면
-하나님의 자녀를 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기 힘으로 얻는 것입니까? (그래서 사라는 힘들게 100세에 낳았지요)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얻을 때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 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저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반대로,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 한다면
-성적이 부족해서 못 붙은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붙여 주지 않아서, 못 붙은 것입니까? (이건 둘 다 있겠지요)
부부가 애를 써도 아기를 얻지 못한다면
-생산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지 않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주셨다' .. 라는 말은 겸손하게 말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 .. 라는 말은 심각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내게 (자녀를) 안 주셨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15:3 '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이것은 상당히 진지한 말이요, 중요한 말이요,
우리 신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생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구해도,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 같을 때
어떤 생각이 내 마음에 지나가냐면
'차라리 내가 능력이 되어서, 내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내가 능력이 돼서, 하나님이 주시든/ 안 주시든지 상관 없이
내가 능력이 돼서 원하는 것을 나 스스로 얻을 수 있다면
차라리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고, '신앙무용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신앙무용론이란, 굳이 믿을 필요 없다.. 굳이 나의 소원과 바램을 신앙과 연계시킬 필요 없다,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며 살면 되지 않느냐? .. 이건 위험한 생각이에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경험은 어떻습니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 드리면
제가 과거에 두 개의 비슷한 성과를 얻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고
-하나는 제가 스스로 제 힘으로 얻은 것이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아주 비슷한 것을 얻었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는 제가 원해서 제 힘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두 경험에 명백한 차이가 있었고,
이것을 도표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소원의 출처가 무엇이었느냐,
그 소원이 어디서 비롯되었느냐 하면
1) -하나님이 주신 것은, 제가 애초에는 생각도 않은 것인데
그 소원을 하나님이 먼저 주셨어요.
-반대로 제가 얻은 것은, 제가 먼저 그걸 소원했어요.
내가 그걸 원했어요.
2) -하나님이 주신 것은 소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내가 네게 주리라' 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그 약속을 들었기 때문에, 제게는 믿음이 생겼어요.
-반대로 제가 얻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 과는 무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약속도 없었고, 믿음도 없었어요.
3) 그리고 제 능력이 얼마만큼의 역할을 했느냐?
-하나님이 주신 것은, 제 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가능했는데
-제가 원해서 제 힘으로 얻은 것은, 제 능력의 범위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4) 그리고 그것을 얻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달랐느냐?
-하나님이 주신 것은
'아~ 하나님이 드디어 응답하셨구나, 하나님이 정말 신실하시구나.
정말 믿음대로 되는구나!' 하면서 엄청난 감격이 됐는데
-제가 원에서 얻은 것은, 그것을 얻는 순간에는 만족해요. 기분이 좋아요.
그러나 딱히 감동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굳이 하나님께 그렇게 감사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이제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결과입니다.
그것을 얻은 후에, 그것을 얻음으로 어떤 장기적인 결과가 있었느냐?
-하나님이 주신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계획의 일부 였기 때문에
이후에 주님이 하실 일에 준비가 되고 도움이 되는데 반해서 (장기적으로 이어짐)
-제가 얻은 것은, 결국은 제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로 결별했습니다. (단기적으로 얻은 후에 곧 없어짐)
결국 이게 내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고
'이게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 적합하지 않다' 라는 생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아주 적합한 애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이삭과 이스마엘의 차이입니다.
둘 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원해서, 자기 힘으로 얻은 아들이에요.
반대로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하셔서, 그 약속의 성취로 얻은 아들입니다.
둘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에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목적은, 종족을 보존하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자식을 갖지 못하는 아버지의 아픔이 아니고,
그의 삶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 차이를 봐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약속으로 얻은 아들이고
이스마엘은 자기가 원해서, 자기 힘으로 얻어 아들이에요.
이후에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삭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셨죠.
반대로 이스마엘은, 그 집에 머물 수 없었고, 결국은 멀리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는 것과,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얻는 것의 차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저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얻을 능력이 된다면, 굳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고 물을 필요 없이
우리 힘으로도 얻어도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도 있어요.
기다린다든가.. 의지한다든가.. 그럴 필요 없이
내 힘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요. 거기에도 잠깐이지만 만족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과 결부시켜 생각하면
내가 원해서 내 힘으로 얻은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별로 상관이 없고, 내가 얻었기 때문에 내가 책임을 져야 되고,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계속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내 것으로 계속 내가 간직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스마엘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원했고, 아브라함이 몸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에요.
그래서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는데는 성공했어요.
그러나 그건 자기가 원해서, 자기 힘으로 얻은 아들이었어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주신 게 아니고, 이삭을 주셨어요.
이삭을 얻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인내해야 했고, 기다려야 했고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기도하고 기도해도.. 얻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여러분만 그렇지 않을 거예요.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하고 구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번민이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왜 내가 구하는데 안 주시느냐?
성경에 구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안 주시느냐?
나는 갖고 싶고.. 하나님은 안 주시고.. 그럼 어떻게 합니까?
'내 힘이 된다면 내 힘으로 쟁취해서 얻겠다..'
거기에서 신앙이 무용한 게 아니냐는 번민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안 주시는 이유는, 아주 중요한 것인데요.
하나님이 안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그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에 ... 안 주시는 겁니다. 꼭 절실한 게 아니예요.
우리를 향한 (구원) 계획에, 그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주시더라도,
내게 그렇게 큰 보탬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받기를 고집하면,
내 힘으로 얻으려고 할 수 있어요.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능력만 있다면, 하나님께 부탁하지 않아도 될텐데..'
그런 반발심을 느낄 수가 있지요.
사람들이 그런 반발심으로 무리수를 두다가, 사고를 치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도 사고를 치는 경우가 바로 그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안 주시는데, 나는 원하고...
그럴 때 '내 힘으로 얻어 봐야지!'
그렇게 하다가 사고를 치고 후회를 합니다.
여러분, 신앙인이 된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믿음을 키운다는 말은
내 힘으로 무엇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겠다.. 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는, 내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 하겠다.. 하겠지만
그러나 진짜 신앙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타난 것처럼
-내가 무엇을 얻어도 하나님의 뜻이고
-내가 무엇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얻든/ 얻지 못하든.. 내가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겠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이,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나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불평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를 향한 주님의 뜻에, 아직 씨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했다.. 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무엇을 얻든/ 무엇을 얻지 못하든
얻는 것도/ 얻지 못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고
만일 얻지 못 하더라도
여전히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 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겠다... 그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이것은 숭고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리라' 라고 결코 고백할 수 없습니다. *주기도문
내가 얻든지/ 못 얻든지..
아브라함이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아주 중요한 성경구절입니다.
창15:3절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이 말은 하나님을 탓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읽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제게 안 주셨잖아요'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지금 아브라함이 말하는 것은
'이제껏 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씨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나를 향한 계획에 씨가 포함이 되어있다면, 내게 주실 것입니다.'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너를 향한 내 계획에 씨가 있다. 내가 너에게 주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창15:4~5
놀라운 것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내가 무엇을 얻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못 얻더라도 그건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이다...
얻든지/ 못 얻든지 나는 신뢰하고 순종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아니주셨으니'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았고, 필요하다면 더 주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 믿음으로 사는 이유, 믿음을 성장 시키기 원하는 이유는...
여러분은 믿음을 키워서 뭘 하려고 하십니까?
더 큰 것을 받는 게 목적입니까?
'내가 믿음이 더 커지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 그게 아니에요.
이미 우리는 많은 걸 받았습니다.
무엇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무엇을 내게 주신다면,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뜻에 포함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 안에서
'나의 품은 뜻이 주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내 소원을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게 하옵소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 무엇이 있어도 감사하고, 없어도 감사할 수 있고
내가 무엇이 있어도 신뢰하고, 없어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도하여
15: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합니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밤 하늘을 쳐다보게 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왜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주님이 그렇게 하시도록 내가 기다려 드리지 않기 때문이고
주님이 그렇게 하시기 전에, 내가 재촉하고 성화를 부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일을 하시기를 기다리십니다.
아브라함이 재촉을 한 게 아니에요.
'뭘 주실 거예요? 빨리 보여주세요.' 라고 한 게 아니고
'주님이 아니 주셨습니다. 어찌하오리이까?' 그랬더니
'엘리에셀이 네 후사가 아니다. 네 후사는 네 몸에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다른 방법으로 설득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시청각 교육을 하신 것이죠.
아브라함이 그것을 통해 납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요!
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기 위해
밤하늘에 쳐다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쳐다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보면 부럽습니까?
무엇을 보면 '하나님이 저렇게 하실 것이다' 라는 것을
마음속에 기억하겠습니까?
5절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원리가 이미 창세기 15장에 나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처음 소개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하나님이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행위가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원리가 여기에 나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의인으로 여기게 합니까? 무엇으로 의를 얻습니까?
무엇을 보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 주시겠습니까?
다른 건 없더라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인으로 여겨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기도하십시다.
아마 오늘 말씀드린 내용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 생소함이 있기 때문에, 신앙에 대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면, 내 힘으로 얻을 거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혹시 얻어도 즐거움이 되지 않습니다. 축복이 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별개의 것으로, 거리를 멀리 떨어지지 말아야 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내 소원이 일치되어서
그것을 얻기를 사모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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