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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4:1~10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 vs 은혜를 따라 사는 사람

LNCK 2022. 8. 26. 17:47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 vs 은혜를 따라 사는 사람     약4:1~10     여러 설교 정리

 

야고보서를 크게 단락을 구분하는 기준은 ‘형제들아~’입니다.

이런 표현이 나오면 “대개의 경우”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이 됩니다.

1:2~, 1:16~, 2:1~, 2:14~, 3:1~, 3:12~, 4:11~  5:7~, 5:12~   *4:13~은 '형제들아' 대신에 '들으라'

 

 

▲본문 약4:1~10절을 읽으면 ‘난감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주제가 뭔지, 흐르는 맥락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그럼 저자가 아무 주제도 없이, 그냥 이 말 저 말 짬뽕처럼 섞어서 마구 적어놓은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설교자들이 보통 하는 말로 ‘대지를 잡으면 설교 준비 절반 이상 끝났다’라고 말하죠.

사실 대지 잡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간혹 간호사들이 혈관 주사를 놓을 때, 핏줄이 안 잡혀서 애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 본문은 ‘대지, 흐름, 개요’가 쉽게 잡히지 않아서.. 난감합니다.

 

이렇게 대지나 개요를 잡으려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성경 본문을 끌어서 (뒷받침해서) 말하지 않고,

-성경 본문이 말씀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가급적 근접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약4:1~10 본문의 개요

본문은 1~5절과 6~10절 ..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5절,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

6~10절, 은혜로 사는 사람

 

1~5절은 정욕으로 사는 사람, 쉽게 말해서 자기 욕심, 자기 소원에 이끌려서..

즉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사실 거듭나지 못하고, 새생명이 그 속에 없는 사람들, 소위 '자연인'의 특징은

‘내가 내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6~10절은, 은혜에 이끌려서 사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에 이끌려, 믿음에 이끌려, 말씀에 이끌려서 사는 사람입니다.

 

 

◑정욕에 이끌려 사는 사람 약4:1~5절

 

1절,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초대교회들 안에 싸움과 다툼이 있었다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직전 단락 3:13~18에 의하면, 그것은 누가 성경지식을 자랑하며, 가르치려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아직 미성숙한 크리스천들인지라, 인격적 미숙함으로 인해 다툼이 있었겠지요.

 

'정욕'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도네'은 '쾌락 pleasure'을 의미하는데,

‘뭔가 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싸움에 대입하면 '싸우면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자연인의 모든 행동은, 대부분 자기 욕구에서 시작하죠.

먹고 싶어서 먹고, 여행하고 싶어서 가고, 쇼핑하고 싶어서 쇼핑을 하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결국은 자기 육신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죠.

 

'싸움'은 헬라어로 본래 국가간의 큰 전쟁을 의미하며

'다툼'은 헬라어로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분쟁을 뜻한다고 합니다.

 

결국 야고보는, 지금 “교회 안에 크고 작은 다툼”을 얘기하고 있는데,

근원은 “자기 정욕” 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육신, 자기 죄성’이죠.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만약 다툼이 발생하면,

뭔가 구조적, 제도적, 환경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야고보는 직설적으로 ‘아냐, 너희 속에 문제의 원인이 있어!’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렇게 1~5절은 자기 본성, 정욕, 욕심에 지배받는 삶을 말씀하고 있고,

이것은 6~10절의 은혜/성령/말씀의 인도를 받는 삶(6~10절)과 대조됩니다.

 

강한 물질욕에 지배 받고 있는 현대인들

 

 

2절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2절의 <욕심>은, 1절의 <정욕>과 헬라어는 달라도 의미가 비슷합니다. 영어로 lust

 

‘살인’은, 이 서신이 교인들에게 회람시킨 내용으로 볼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살인, 즉 형제를 미워함을 뜻합니다.

 

1~2절을 종합하면, 지금 교회 안에 다툼과 분열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정욕이요, 욕심인데.. 신자들이 자기 본성, 자기 욕심에 이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본성, 자기 욕심대로 해 봐도.. 제 소원대로 되지도 않는다는 거죠.

그걸 2절에서 ‘얻지 못하고... 능히 취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내 정욕과 내 소원대로 뭐가 안 되는 것이.. 오히려 은총입니다.

만약 내 정욕과 내 소원대로 알라딘의 램프처럼 뭐가 착착 진행된다면..

그건 반드시 파멸과 지옥으로 미끄러지는 결과를 낳게 되죠. *약1:15

 

 

3절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2~3절은 우리가 잘 암송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즉 앞서 1~2a절의 내용, 일부 신자들이

자기 본성의 정욕에 따라 살아서 교회에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데,

기도할 때도 보니까, 자기의 본성과 자기 욕심에 따라서 기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기도 응답이 되지 않는 것이 축복이라는 거죠.

 

성도들이 보통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되는’ 것이 학습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도 해봤자 응답도 안 되더라’ .. 그걸 서너 번 경험하고 나면, 기도를 포기하게 되죠.

자기 본성과 육신과 욕심이 원하는 대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샤머니즘 적인 기도라고 하죠!

 

 

4절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간음한 여인’은.. 구약에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지칭한 표현, 그러니 남녀를 다 포함하죠.

(호2:2~5, 렘31:22, 겔23:45, 말3:5)

본절에 ‘세상과 벗된 것’이란 표현이 반복해서 2번 나옵니다. 강조란 뜻이죠.

 

1절에 ‘싸우는 정욕을 가진 자’나

2절에 ‘욕심내며 살인(미움)하며 시기하는 자’나

3절에 ‘정욕으로 구하는 자’나

4절에 ‘간음(세속 사랑)한 교인들’ .. 다 같은 맥락이죠.

 

벌써 초대교회 때부터 이런 어린 신자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회개하고 거듭나지 않았거나,

-거듭났지만 신앙 성장이 정체되고, 영적 침체에 빠진 신자들입니다.

(야고보는 전자보다는, 후자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면 5절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것이죠. :1

 

 

5절,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이들에 대한 야고보에 처방입니다.

교회 안에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거듭났지만 넘어지고, 신앙 성장이 침체에 빠져서 실족해서 그런데

5절에, 성령님이 시기하시고.. 성령님이 한 마디로 징계하신다는 거죠.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했는데,

5절은 영적 남편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시기 질투하셔서..

자기 신부가 더 이상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액션을 취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에 대해서 질투하신다

하나님은 교회를 질투하신다

 

 

◑은혜(성령, 말씀)에 이끌려 사는 사람     약4:6~10절

 

앞서 1~5절의 본성, 정욕, 욕심에 이끌려 사는 사람과 반대되는 성도죠.

 

베드로 사도도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sinful desires)을 제어하라”고 하셨죠. 벧전2:11

 

내 육신의 욕심을 좇아가면... 갈등과 괴로움만 더해집니다. 약4:1~2

내 육신의 욕심을 좇아서 살면, 이웃과도 다투게 됩니다. :1

또 세상과 벗되어 살게 되는데, 그럴 때 성령이 시기나게 사모하십니다. 즉 징계하십니다. :4~5절

 

 

6절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5절에서 성령이 시기(질투)하셔서 징계도 하시지만

또한 은혜를 주시되,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는데 2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질투로, 징계를 통해서 받기도 하고 :5

-평소에 주님과 교제가 깊어서, 평안가운데 받을 수도 있습니다. :6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본성, 정욕, 욕심이 이끌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1~5절

은혜/성령/말씀이 이끌어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 원래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6~10절

 

본절에 교만, 겸손이 대조되어 나오는데요

자기 본성, 정욕, 욕심이 이끌어가는 인생은.. 교만한 사람이고,

은혜/성령/말씀이 이끌어가는 인생은.. 겸손한 사람인 거죠.

이때 교회 안에 싸움과 다툼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1

 

 

7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본성, 정욕, 욕심이 이끌어가는 인생은.. 마귀에게 휘둘리는 사람이고,

은혜/성령/말씀이 이끌어가는 인생은.. 하나님께 복종합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합니다.

자기 본성, 정욕, 욕심대로 살고, 세상과 벗하여 살라고 유혹하는 마귀입니다.

 

☞관련글 4:7  딘 셔먼의 영적 전쟁

 

 

8절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때,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기도는

전문가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꼽습니다. 그런데 어디 선교사만 그게 필요하겠습니까?

모든 성도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입니다.

 

자기 본성, 정욕, 욕심이 이끌어가는 신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멀어져 있고

은혜/성령/말씀이 이끌어가는 인생은..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관계를 유지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A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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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손을 깨끗이 하라'는 말은 외적인 행위를 정결케 하라는 표현이며,

'마음을 성결케하라'는 말은 내적인 생각과 동기의 순수성을 유지하라는 표현입니다.

 

 

9절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본문의 권면은 모두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는 표현들입니다.

회개도 그렇습니다. 회개를 해야 되는 사람(:1~5)은 잘 안 하고,

회개를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은 (:6~10) 더 하는 경향이 있죠. 물론 두 그룹 다 회개가 필요하지만요.

 

울음 치유법

 

 

10절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역시 9절과 마찬가지로 ‘회개해서 낮춰진 모습’을 뜻합니다.

 

1~5절은 자기 본성, 정욕, 욕심에 지배받는 인생은.. 평소에 회개가 결여되어 살죠.

6~10절의 은혜/성령/말씀의 인도를 받는 삶은.. 더 회개하고, 더 자신을 낮춥니다.

그런 성숙한 성도들이 많아질수록, 교회에 싸움과 다툼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1

 

죄인들만 모여사니.. 화목하다 (예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