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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6:12~23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LNCK 2022. 8. 29. 13:16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로마서 6:12-23)│2022.08.28 - YouTube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롬6:12~23        2022.08.28.녹취

오탈자 교정 예정

 

◑1. 죄가 네게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라

▲롬6:12 '그러므로 여러분의 죽을 몸에서 <죄가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해 몸의 정욕에 순종하지 말고'

'죄가 왕노릇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에 밑줄을 그어 보세요.

롬6장 전반부(:1~11)를 통해서 주셨던 말씀은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산 자다.. 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런 신분의 변화는, 삶의 변화를 반드시 수반하게 돼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 즉 죽은 사람은 반응을 할 수가 없죠.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 말씀에 보면 
'그 죽을 몸에서 죄가 왕 노릇을 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하지 못하게 만들라' ...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우리 몸 안에서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나 그 죄는 더 이상 '왕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왕인 척을 하는 것이고, 불법 점거를 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죄나, 그 죄의 배후에 있는 사탄의 세력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생에서 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렇게 죄나 사탄이 왕이 될 수 없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가? ...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칭의) 구원"을 받는 것은, 자력으로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건져주신 것이지만 

"성화 (구원)"의 문제는 자원함과, 우리가 스스로 인격적 결단과 헌신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가짜 왕일 뿐이고, 
또 죄는 가짜 만족이라는 것을.. 우리가 진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도 
'이 죄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아야 된다'
'삶 가운데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므로 인해서,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실제적인 삶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 ...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에 순종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에 육신의 정욕의 메여서 살고, 거기에 빠져서 살면 
마치 죄가 나의 왕인 것처럼, 인정해 주는 꼴이 된다는 거예요. 
굉장히 억울한 것이죠.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았지만 
블레셋 이라는 민족이 해안가에 불법 정거를 하고 
얼마나 그들을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발에 올무가 되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자유인이 되었고 
또 영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만약에 그런 이스라엘과 같은 상태가 된다면, 너무나 서러운 거예요. 


십자가 앞에서 내가 정말 철저히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한 사람은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12절에서 읽은 것처럼, 
여전히 '내가 죽을 몸이지만, 아직 죽지를 않았잖아요.' 

내 몸이 살아있고, 내가 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내 안에서 정욕이 꿈틀거린다고요. 

그것은 거룩한 사람이나 세속적인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왕 노릇할 수 없는 것은 

마치 이것은.. 코로나가 치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잔여 증상이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그렇지만 코로나가 완치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폐쇄 병동에 갇혀서, 거기서 억울하게 절망가운데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광복이 선포되었는데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만약에 공산당에게 억울하게 종살이, 옥살이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구속의 능력으로 
영적인 자유와 해방을 얻은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죄와 사망의 권세는 
철장 안에서 으르렁거리는 사자나 곰과 같은 것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그 앞에서 우리가 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깨어서  영적 전쟁을 해야 되겠지만 
우리가 위축돼서, 거기에 주눅들어서 살 필요는 없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적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목의 멍에는 꺾였고, 발의 차꼬도 풀린 것입니다. 

모든 우리의 종살이, 또 노예살이의 그런 족쇄들이 다 풀리게 된 것이에요. 
예수께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어떤 영적 신분을 얻었다면 
이제는 삶에서 구체적으로 그것을 이루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롬6, 7, 8장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실제로 어떻게 살 것이냐?'라는 
"성화의 원리"를 다루고 있는 장입니다. 

물론 그 성화를 삶 가운데 이렇게 "(성화의) 실천"해야 된다는 것은 롬12장부터 나오는 것이고요. 
롬6~8장은 "(성화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죠.


▲롬6:13 '또한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자처럼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13절에 '불의의 무기', '의의 무기'에 동그라미 쳐 보세요. 두 가지가 반대개념이죠. 

자 이제 나의 생명의 주인, 나의 주군이 누구인지를 안다면 
당신의 몸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 내주는 것이 아니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기본이 되는 원칙이 몇 가지 있는데 
1) 당신의 영적인 소속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에요. 

내 소속이 분명해야만, 내가 누구에게 반응할 것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내가 하나님 나라 소속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만약에 사탄에게, 어둠의 권세에게 용병으로 쓰임을 받는다면 
이거는 여러분이 첩자 노릇을 하는 격이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지난 5 년 동안 산업기밀을 유출하려는 시도가 
무려 22조원대 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산업스파이인 거잖아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개인의 인생인데,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내 자유지...'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이 누리는 자유가,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개인주의적인 자유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생명까지 내어주시면서 내게 허락해주신 영적 자유인지.. 

우리가 '나는 자유하다, 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할 때 
-과연 그것이 신앙적 개념인지..? 
-아니면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자유의 개념인지를 구분하실 필요가 있어요. 

만약에 '내가 내 인생이니까, 내 마음대로 살겠다' 
근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나 하나 죄 짓는 것으로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나 자신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주신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망가뜨리는 길로 가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러면 그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어둠의 일에 우리가 부역자 노릇을 하는 꼴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맨정신으로.. 사탄에게 '우리 가정 좀 망쳐달라, 내가 도와주겠다'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내가 맨정신으로 사탄에게 '교회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일에 내가 조력할 테니까, 좀 도와달라' 
그렇게 요청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요. (없습니다)

근데 우리가 '이건 내 자유이지, 내 선택 이지..' 
그러면서 내 마음대로 죄를 짓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것이 습관의 늪에 빠져버리면 

사탄이 하는 일에, 우리가 그 일에 동조하고 
그 일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죄를 즐기고, 죄에 얽매이고, 죄에 사로잡혀서 살지 마십시오, 그런 길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유로운 인생이 아니라, 사탄의 부역자 역할을 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실천>을 이야기한 롬12:1일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실천 사항 제1번, 근본 원칙은 
우리의 삶을, 우리의 몸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래요. 

'아니 뭐 그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결단하지 않으면 
죄의 종노릇하게 돼 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일본 강점기 때, 일제 치하에서 
정말 내가 항일독립운동을 하거나, 또 그런 분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그들(일제)의 정책에 그냥 따라가고, 순응할 수밖에 없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친일을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시대 조류요, 세상의 흐름이라는 거죠. 

마찬가지로 영적 세계에는 회색 지대가 없어요. 
빛 가운데 살든지/ 어두움 가운데 살던지 둘 중에 하나이지 
'내가 애매한 지대에 서 있겠다' ... 이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다' 라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롬6:14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할 것인데 여러분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에 밑줄 그으시고 
'지배'에 동그라미 쳐보세요. 

12절의 '왕노릇'과 
14절의 '지배'는 같은 개념이죠. 통치의 개념입니다. 

2) 영적 전쟁에서 기본이 되는 두 번째는 원칙은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 입니다. 

실제로 왕이 아닌데, 왕 노릇을 하도록 만들어주면 안 된다.. 라는 거예요. 

성경에 창4장에 보면, 가인이,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동생을 증오하잖아요. 

그때 하나님께서 그가 죄를 실행하기 전에 경고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아주 중요한데요.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게 되어 있다'

무슨 의미냐면, 적극적으로 빛 가운데 살려고 하지 않으면 
어둠이 너를 삼키게 될 것이다' (문밖에서 도사리고 있다) 

'선을 추구하지 않으면, 악이 너의 문 앞에 웅크리게 된다'

죄가 너를 다스리려고 하지만, 오히려 너가 죄를 다스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스려야 된다'는 말씀을 NIV 성경에서는 master 라는 단어를 썼어요. 

'네가 죄인을 다스리는, 컨트롤 하는 주인역할을 해야 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죄 문제를 내가 컨트롤한다.. 내가 충분히 모든 유혹과 죄의 문제들을 컨트롤 한다.. 이거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죠. 

그러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이 차이를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했어요. 
'새가 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느냐!' 

여러분 죄의 유혹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을,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죄의) 손을 잡고, 내가 거기에 반응하고, 
실행까지 하는 것은 ... 나의 인격적인 결정에 달려있는 거죠. 

그러므로 화가 나는 상황이 올 때, 한국 사람들 빨리 뜨거워지는 편이잖아요. 
살다 보면, 화가 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상황이 와도, 욕을 하지는 마세요. 
집에서 문을 걷어차지 마세요. 

엡4: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사람이 분을 내는 것은.. 어쩌면 정상적인 거라는 거죠. 
그러나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앵거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걸 꼭 표현해야 되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거예요. 가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질의 유혹, 성적인 유혹이 일어날 수 있어요. 
누구나 몸 안에 있는 사람은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거기까지.. 거기서 그쳐야 돼죠. 
자신의 영적 소속을 분명하게 해야하죠.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네, 죄의 유혹 앞에서, 내가 명확하게 내가 누구인지.. 
내 영적 소속이 어디인지를 선언해야 합니다. 

군부대에 가면, 군인들은 언제든지 누가 부르면 
자기 소속부대와 관등성명을 말하게 되어 있거든요. 자기 영적 소속이 분명해야 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죄와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죠. 

3) 세 번째는, 죄가 당신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죄를 다스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거의 4백년 가까이 괴롭혔어요. 
그러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려면.. 
그들이 진짜 주인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스라엘이 강성해져서 블레셋을 다스려야 되는 거죠. 
이게 다윗 시대가 되어서야 그게 가능해졌어요. 

자 그러니까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지정학적인 위치때문에 
주변국들의 압박을 받을 때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러면 이런 침략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요? 
인도적인 교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명확한 군사적 우위가 있어야, 전쟁억지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외교에서 기본적인 개념이잖아요.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분명하게 결단하여서 
죄의 창궐함에 이용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쓰임 받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그러려면, 육이 살아나는 삶이 아니라, 영이 살아나는 삶을 선택하셔야 돼요. 

이 시대가 건강관리, 피부관리, 시간 관리, 인맥 관리 등
인생의 수많은 관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다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이런 소중한 나의 건강, 나의 인생의 시간, 재능, 물질의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 
내가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일에 헌신해서 그 자원들을 쓰겠다고 결단하면서 사셔야 돼요. 

내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생명과 선함과 빛의 사역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삶가운데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탄이 지나가면서, 우리를 만만한 상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탄의 왕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용사들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과 사망에서 나를 건져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모르던 시절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성화의 단계"에서 
(칭의)구원은 받았는데, 성화(구원)에 단계에서 
미리 타협을 하고, 아예 포기를 하고 주저앉아서 사는 사람들... 

그래서 죄와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해서, 두 집 살림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 그 상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원죄에 빠진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지만 
구원받은 인간은,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인간이 된 거예요. 22222

그럼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영적 신분과 권세를 받았는데 
왜 그거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충분히 사용하면서 살 수 있어요. 

△여러분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우리를 죄에서 빠져나오도록 건져주시는 능력일 뿐만 아니라 
그 죄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까지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이 은혜가 강력한 것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읽었어요.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해방을 결국에 이뤄내잖아요. 
그런데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가 뉴올리언스의 한 노예시장에서 
경매가운데 있는 한 흑인 소녀를, 그가 돈을 지불하고 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녀가 슬픈 표정으로 링컨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당신을 절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게는 선택권이 없으니 어쩌겠느냐?' 

근데 링컨이 그 소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매매 증서를 그 흑인소녀의 손에 쥐어주면서 
'얘야 너는 나를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아, 이제 너는 자유야. 
너가 원하는 대로 가라!' 

그러자 이 소녀가 너무 감격을 해서 '정말 인가요, 정말 인가요?
선생님이 제게 자유를 주신 것인가요? 
그렇다면 제 남은 인생을 다 바쳐서 선생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따라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여러분 이것이 율법의 힘이 아니라, 은혜의 능력인 것이죠. 
율법과 은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예요. 

율법은 사람을 잡아두는 것이지만 
은혜는 자유를 주는데, 그 자유로 헌신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은혜와 죄 사이에서 갈등하지 마세요. 
그 중간에서 애매한 지대에 서서 살아가지 마세요. 

왜냐하면 죄가 굉장히 강한 힘인 것 같지만 
죄의 힘과, 은혜의 힘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매우 부드럽고 때로는 스윗하게만 느껴지지만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구별시킬 수 있는,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누구의 종이 될 것인가?

6:12~14절은 '군사의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고 
이제 15~23절은 '주인과 종의 개념'으로 설명한 것인데 
똑같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두 가지 측면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6:15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짓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은혜 아래 있으니.. 이제는 편하게 죄를 지어도 되겠구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라는 거죠. 
왜냐면 율법에 통제가 아니라, 15b
우리는 은혜의 자유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자유 아래 있다는 것이 
방종을 허용한다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가정도 그렇고요, 기업, 교회 등 모든 게 마찬가지인데요. 
리더십이 되면 항상 갈등하는 것이, 가버넌스를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떻게 해야 이 공동체를 바르게 통치할 것이냐..의 문제죠. 

그래서 통제와 자율,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늘 갈등을 하게 되는데 
사실 통제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요. 

아이들 시험 문제로 예를 들면, 감독관을 두고 있는 시험에서는 
끊임없이 부정 행위를 하는 학생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감독관이 없는 자율시험을 시행하는 학교들이 있더라고요. 몇 십년째. 
제물포 고등학교 같은 경우엔 65년째입니다. 

근데 그런 학교들은 학생들의 양심에 대해서 신뢰를 해주고 격려를 해주기 때문에 
그들의 양심이 깨어나서, 스스로 그것을 지키도록 만드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거예요. 

과연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요? 
여러분 인생에서 통제는 한계가 있지만, 
은혜는 그 한계를 뛰어넘게 되어 있습니다. 

빠른 효과를 보려면 통제를 해야 되지만 
장기적으로 훌륭한 효과를 내려면, 은혜를 베풀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이런 글도 봤습니다. 구소련은 원래 집단농장 체제였잖아요. 
그런데 시험적으로 인구의 1%에 해당하는 정치범수용소의 정치범 집단에게 
가장 나쁜 땅 박토를 사유지로 주고, 그리고 자유농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줬답니다. 

그리고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봤대요.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온 거예요. 
소련 전체의 농업 생산량의 무려 27%가, 그 박토에서 1%의 노동력으로 나왔다는 거예요. 
놀라운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통제가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일 것 같지만 
그 은혜와 자유가 갖고 있는 힘은, 그 잠재력은.. 어마어마 하다는 것이죠. 

우리는 과연 교회 안에서, 또 가정에서 
율법의 통제 속에서 하향평준화된 종교인을 만들어 내고, 사회인을 만들어낼 것인가요? 

아니면 은혜의 자유 아래서, 정말 포텐셜이 최대치로 살아날 수 있는 
그런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6:16 여러분이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든지 순종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죄의 종이 돼 죽음에 이르거나 아니면 순종의 종이 돼 의에 이릅니다.

6:17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전해받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
6:18 죄에서 해방돼 의의 종이 됐습니다.

16~18절에 보면, 죄의 종이었다가, 순종의 종이 되어서 
이제는 '의의 종이 되었다'... 이 세 가지 표현에 표시를 해 보세요. 

자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하고, 누구에게 반응할 것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죠. 

△팬데믹 기간에 우울증에 빠지는 분들이 있고 
또 자살충동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회자들까지도 우울 증상을 호소할 정도니까, 정말 지난 3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골방에 박혀서 정말 자기만의 세계에서, 우울에 빠져서 지내시는 분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기간에, 그런 주변의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연락하고 
먼저 그분들에게 접촉하고 찾아나서서 도와주고, 격려하고, 
그분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은혜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삶은 매 순간의 선택이에요. 여러분이 어디에 반응을 할 것인가? 
우리가 어둠에 반응을 할 것인가? 아니면 빛에 반응을 할 것인가? 

저와 여러분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빛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빛에 반응하며 살기로 선택해야 된다는 것이죠. 

△제가 오늘 책 한권을 소개하려고 가지고 나왔는데요. <위라클 WERACLE> 이라는 책입니다. 
저자 박 위는, 제가 중등부 전도사때 저희 중동부에 있던 학생이었어요. 
신앙도 삶도 바른 모범적인 친구였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서,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어요.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의사는 '너는 걷지도 못할 거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거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에 반응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이 절망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소망에 반응하면서 
정말 반전인생을 살고 있어요.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또 여러 단체에서 홍보대사로 활동을 할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있거든요. 

이름이 박위 라서 We-Miracle, 또는 우리 모두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책이름을 <위라클 WERACLE>로 지었나 봅니다. 

이 책에서 그가 하는 이야기가 '저는 고난을 극복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8년 전에 사고를 당한 이후로, 오히려 고난속에서 기쁨을 찾고, 행복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 친구의 유튜브를 보면, 장애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너무 밝은 거예요. 
과도할 정도로 굉장히 밝은 내용들이에요. 컨텐츠가! 

여러분 우리가 우리 삶가운데, 왜 어둠에 반응하면서 살아야 되는가요? 
왜 우울감에 빠지고, 왜 자살충동에 빠지고, 우리 가정은 소망이 없다고.. 
우리 기업은 소망이 없다고.. 우리 교회는 소망이 없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되는가요? 그렇지 않다 라는 것이죠. 

본문 17에, '여러분이 처음에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 
'교훈의 본'은 복음이거든요.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복음에 반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느냐? 
의의 종이 되지 않았느냐?' 라는 거예요. 

나는 그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이 죄의 문제, 
이 죄의 중병을 가지고, 의사 대신 주님께 나아갔을 뿐인데 

그분이 나의 이 중병,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을 치유해 주시고 
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케 해주신 거죠.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러분, 만약에 암 환자가 암이 치료 됐으면, 그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다시는 암이 걸리지 않는, 건강한 삶의 패턴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당연한 거죠. 


▲그래서 이어지는 19절을 보겠습니다. 
6:19 '여러분의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대로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의 종으로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처럼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십시오.'

여러분 예전에는 불의와 불법이 내 삶에 만연해 있었지만 
분노와 거짓과 유혹과 패배함이 내 삶가운데 가득했지만 

이제는 내가 의의 종이 됐고, 하나님께 반응하는 영혼이 됐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삶의 패턴을 가져야 된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살아야 된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저희 교회에 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데요. 
신장 췌장이식 수술에 있어서, 한국의 최고 전문가들이 저희 교회에 계세요. 

근데 그분들 중에서 한 분에게서 제가 들었던 말씀인데,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신장, 췌장이 망가져서, 신장 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을 해야 되고 
인슐린 주사를 계속 맞아야 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거든요. 
너무나 고통스럽게 사는 그런 분들이 있는데,  

그런데 맞는 그런 장기가 있어서, 장기이식 수술에 성공하면 
정말 드라마틱하게 인생이 변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걸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제는 병원에 올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받은 것처럼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다. 할렐루야입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 있으니, 그렇게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이 
채 일년도 되지 않아서 다시 병원을 찾아 볼 때.. 
건강하지 않은 예전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치지 못한 거에요. 

자극적인 음식을 포기를 못하고, 잘못된 건강하지 않는 삶의 스타일을 포기를 못하고 
수면 주기가 뭐 엉망이고, 식습관도 엉망이고... 
그렇게 살아서 일 년도 안 돼서 다시 병들어 가지고 병원에 오면 
정말 의사로서 너무나 안타깝다는 거죠. 

여러분 어떻게 얻은 생명인데, 어떻게 얻은 건강인데... 

△우리 자신에게로 적용해 본다면, 여러분 어떻게 얻은 구원입니까.. 
어떻게 얻은 영적인 해방과 자유 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왜 다시 돌아가겠는가요? 
예전의 삶으로, 죄와 타협하는 삶으로 어떻게 되돌아갈 수 있는가? 라는 것이죠. 

▲자 오늘 이 성화의 첫 장인 6장에서 
아주 하이라이트 부분이 20~23절입니다. 오늘 본문에 결론 부분을 보겠는데요. 

6:20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는 의에 대해 자유스러웠습니다.

6:21 그러나 여러분은 그때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그런 일들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는 그것들의 마지막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6:22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돼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그래서 20~22절은, 전체를 다 줄을 치셔도 좋겠어요. 
표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서 보여드리면, 완벽하게 대조를 시켜서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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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죄의 종'이 돼서 죄와 친하게 살면 
'하나님의 의'의 기준으로부터는 자유라는 거예요. 그렇죠. 그걸 신경 쓰지를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인생을 살면, 부끄러운 열매를 맺게 돼 있고 
그 마지막은 사망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하나님과 친하게 살면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리고 나면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게 되고 
그 마지막은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죄와 사망 권세에 매여서 사는 거야' 이렇게 얘기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들도 나름의 자유와 낭만을 누리며 살고 있는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의 기준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기준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삶의 매순간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것 만큼 
엄청난 자유가 없는 겁니다. 

힘들 때는 술잔도 기울일 수 있고, 괴로울 때는 담배연기를 허공에 날리기도 하고 
또 울컥할 때나, 화가 나거나, 그냥 뭐가 치밀어 오를 때는 일탈을 하기도 하고.. 
'나그네 인생을 자유롭게 살다가 그냥 떠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발길 닿는 대로, 구름 흘러가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나름의 자유와 낭만이 있는 거에요. 

그러나 여러분,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뭐냐면 
죄는 꼭 흔적을 남기게 돼 있어요. 

근데 그 흔적이 무엇이냐면 '부끄러운 흔적'입니다. 
부끄러운 흔적을 남길 뿐만 아니라, '사망의 결과'를 불러오게 되어 있다고요.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대로 선택하며, 즐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즐긴 술과 담배 때문에 중병에 걸리면... 그때는 후회하게 되죠. 

내가 쏟아낸 미움과 분노때문에 소중한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면.. 그때는 돌이키지 못할 때가 오게 됩니다. 
내가 성적으로 마음대로 일탈을 저지르고 나서 가정이 무너지고, 
그 자녀들이 평생을 나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질하는 인생이 되고 나면 
여러분, 돌이킬 수가 없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 인생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유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그 선택, 그 인생의 궤적으로부터 부메랑이 돌아온다는 거예요. 
'사망의 (고통의) 결과'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반대로 생각하죠. 
교회, 집, 직장.. 맨날 거기만 왔다 갔다 하는 모범생처럼 살아가는 삶, 
'너무 지루하고 단조롭지 않냐?' 이렇게 보는 거죠. 

그 삶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기준을 생각하면서 늘 살아야 되니까.. 
하나님은 절대자시잖아요. 모든 상황에 하나님의 기준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되니까 
이것만 한 족쇄가 없는 것이거든요. (그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세상 친구들이 성도를 보면서 '넌 도대체 인생을 무슨 낙으로 사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성도는 세상적으로 다채롭고 즐거운 인생보다 
참 영적인 자유를 누리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영어 시에 '길은 두갈래 길 일지라도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 있죠. 
인생의 두 갈래 길, 선택의 길 앞에서 
결국에 내가 어떤 길을 택할 것이냐... 

여러분 인생은 선택 이거든요.
내가 사탄이 주는 모이와 그 먹이가 맛있어서, 새장 안에 계속 머물러 살 것인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들이기 때문에 
그 새장의 문을 열어 놔 주신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이제 하나님의 은혜의 창공을 비상하는 인생으로 살 것인지..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이에요. 

여전히 나는 새장 안에 머물러 있겠다... 
그러면 여전히 철장 안에 갇혀서 사는.. 죄의 종노릇하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은혜의 창공을 비상하는 인생을 선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다시는, 그 자유를 맛본 사람은, 다시는 새장으로 돌아가지 않게 돼 있어요. 

이것이 신앙의 반전이고, 신앙의 정수입니다. 
정말 내가 바라던 삶이 무엇인가요? 
정말 내가 꿈꿔왔던 삶이 무엇인가요? 

남부럽지 않게 물질과 쾌락으로 채우고 
업적과 명예를 채우기 위해서 
내 영혼을 타협하고 팔아넘기는 삶인가? 

아니면 내 영혼에 진정성이 살아있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가? 
이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을 해야 되는 것이죠. 

△제가 이 본문을 볼 때마다 늘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요. My Way 입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노래의 제일 마지막 소절에 
'I did it my may' 라는 가사가 나오죠.

'나는 내 인생을, 나름 내 소신껏, 내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 고백이죠. 
그런데 이 노래가 너무 감동적이서 찬송가보다 더 은혜를 받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는 안 돼죠)

그런데 이 곡을, 프랭크 시나트라가 그의 활동기 마지막에 내놓았는데 
너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은퇴까지 고려하던 시기에 그가 다시 전국 투어를 하게 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죠. 

물론 그가 많은 예술적인 업적을 남긴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저는 이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여러가지 내용들을 보면서 
'과연 그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인생이었는가?' 

그런 평생에 여성편력이 굉장히 심각했고요. 
또 마피아와의 블랙 커넥션으로 인해서 얼룩진 인생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사람 뿐만 아니라 
'나는 부끄럽지 않게 인생을 살았다' 
그런 인생을 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죄가 없는 인생은 없어요. 오점이 없는 인생은 없어요. 
우리는 세상의 기준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가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될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가려주시는 거예요. 
그 은혜가 내 심령에 넘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에도, 우리 일터에도, 교회공동체에도 흘러가면 
여러분을 통해서 공동체가 치유되고, 가정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I did it my way 가 아니라 I did it His way
'내가 내 뜻대로 살아왔다'가 아니라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왔습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6:23 죄의 대가는 죽음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대가 라는 단어와 은사 라는 단어에 동그라미 쳐보세요.

죄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처음에는 죄가 공짜인 것처럼 보입니다.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 그냥 뭐 공짜로 즐기는 것 같잖아요. 

그러나 여러분이 거기에 덜컥 걸려서 그 늪에 빠지게 되면 
죄는 결국에는 대가를 요구하는데, 내 생명을 대가로 요구한다.는 거예요. 
당신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아갈 것이라는 거죠. 

마약 딜러들이 한 봉지, 두 봉지는 공짜로 준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거기에 빠져들면 자기 인생을 다 바치는 거죠. 자기 인생을 다 날리는 거예요. 
가정도 날리는 거예요. 일터도 날리는 거예요. 

여러분,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사, 즉 선물을 주시는 분인데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면 
평생의 매여서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최고의 선물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 생명의 은총이, 은사와, 은혜가.. 우리의 삶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가 어둠에 반응하는 삶이 아니라 
빛되신 주님께 반응하는 삶이 되게하여 주시고 

우리가 죄에 반응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의 기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이 되어서 

나를 통해 나타난 거룩의 능력이 
우리 가정을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