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는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연속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완성하고 레위기에서 제사 제도를 완비한 후 이제 <민수기>에서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공식적인 준비를 합니다. 민수기 1장을 통해, 백성들이 아직 시내 광야에 머물러 있으며 이집트에서 나온 지 2년째 2월 1일 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히브리 성경 제목은 "광야에서" 이며 *‘베 미드바르’ ‘In the wilderness’ 이 제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38년 광야 생활의 대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글성경은 '백성들의 수를 센다'는 뜻으로 <민수기> 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아마 중국어 성경의 民数记를 그대로 번역했나 봅니다) 이는 두 차례에 걸친 인구 조사와, 그외 많은 숫자 목록에 중점을 둔 것이며 헬라어 Arithmoi 와 라틴어 성경 Numeri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민수기' 라는 제목에 걸맞게, 민수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장과 26장에 두 번에 걸친 인구조사에 따라서
1~25장에서는 출애굽 1세대의 실패를 기록합니다. 26~36장은, 출애굽 제2세대에게 거는 기대를 보여주며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기록합니다. 새 세대를 거느릴 새 지도자의 교체도 이 때 일어납니다. 새 지도자는 바로 여호수아 입니다. ▲민수기를 기록한 목적은 4가지입니다. 1) 순종할 때의 축복을 알려줍니다. 민1~10장은, 인구조사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조직과 진을 배치하고 전쟁 대열로 정렬하는데,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정말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순종할 때, 모든 것은 순조로웠습니다. 2)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기록하며 그들이 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끊임없는 불순종, 불평불만, 불신, 반역, 원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만나에 불평했고 아론의 제사장 직에 불만을 가졌고 모세의 리더십에 반기를 들었으며
계속적으로 물 부족 문제를 부르짖었고 먹을 것이 없다고, 노정이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만족과 감사, 여호와에 대한 신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언약에 대한 불순종과 우상숭배와 불신은 축복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 1세대는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특권을 빼앗기고 맙니다.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의 믿음 없는 보고를 믿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결국은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나중에는 모세와 아론도, 순간적인 불신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 당합니다. 그들의 죄의 결과는, 믿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고전10:11 우리도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예비하신 축복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제2세대인 새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심으로 오래전 아브라함과 맺은 땅에 대한 언약을 지키십니다. 여호와는 말하는 나귀까지 동원하여 술사 발람에게 경고를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발람의 세 번의 저주를 3번 다 축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격이 없지만 여호와는 여전히 그들의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남으십니다. 지리적으로만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머물러 있다가 바란 광야로 이동해 가며 마지막 40년째는 요단강 건너편, 여리고 맞은편에 위치한 모압 평지에 이르게 됩니다. 민수기 21장에는 범죄하여 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세가 장대 위에 만들어 단 놋뱀을 믿음으로 쳐다본 저들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시며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자기도 십자가에 달려야 하며 누구든지 인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3:14 이렇듯 민수기는 우리에게 영적 교훈과 도전을 주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날마다 '인생의 광야'에서 믿음 없는 자들처럼 불신, 불만, 불평, 원망하다가 광야에 쓰러지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모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민수기 개요 민수기 개요 Numbers - YouTube 민수기는 성경의 네번째 책으로서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시내 산으로 데려와, 거기서 언약의 관계를 맺으셨죠.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살 수 있도록 성막을 주셨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시내산 앞에서의 일련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향해, 광야로 행진해 들어가면서 시작됩니다. 책의 줄거리는 이 여정의 각 단계별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처음은 시내산에서 시작되고 그 후 바란 광야를 향한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거기를 떠난 후엔, 약속의 땅 동편 맞은 편에 있는 모압 평지를 지나게 되죠. ▲1~10장은, 인구조사로 시작되는데요. 민족의 수를 센다는 의미로 '민수기' 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죠.
그리고 지파별 진 편성에 대한 법이 나옵니다. 성막을 진 중앙에 두고, 그 주변을 제사장과 레위 지파가 둘러싼 뒤 주위 사면에 12지파를 배치했습니다. 유다 지파를 선두로 하고요. 이렇게 정교한 배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이 민족의 존재 중심에 있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레위기 5~10장에 적힌 정결 의식에 대한 율법이 자세히 기술되는데요.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 가운데 모시고 싶다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진을 거룩히 하여 그 분의 거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죠. ▲10장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이 성막 위에 떠올라 이스라엘을 시내산에서 광야로 인도하는데.. 얼마 안 지나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11장에서 이스라엘은 배고프고 목마르다며 불평하더니 급기야 이집트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외치기 시작하고 12장에 가서는 모세의 형과 누나도 그에게 맞서 온 백성 앞에서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하죠. 여정의 시작이 썩 좋아보이지 않네요. ▲13~19장은 이스라엘이 바란 광야, 즉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의 중간 쯤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달하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각 지파에서 정탐꾼 12명을 뽑아 약속의 땅으로 보내라고 하시는데요.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자 중 10명은 가나안 사람들이 너무 강해서 이스라엘이 절대 이기지 못할 거라고 보고하지만
2명의 정탐꾼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10명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두려움을 조장하고, 반란을 계획하기 시작하죠. 그들은 새 지도자를 세워 이집트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분노하셨고, 모세는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하는데요. 그가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켜달라'고 부르짖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공의로 인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내리시죠. 하나님은 '이 세대가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40년간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선고하시며 오직 그들의 자녀들만 그 땅에 들어갈 거라고 하시죠. 결과가 이 정도면, 그들도 이제 정신을 차릴 법한데 오히려 더 심각해집니다.
16~17장에서 레위 지파 중 한 그룹이 단체로 반역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리더십에 도전하며 그들이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외치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 레위인들을 엄하게 벌하시고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20장에서 이제 이들은 바란 지역을 출발해서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상황은 또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마르다며 다시 불평을 시작하고 모세에게 왜 이집트에서 나오게 했냐고 따지죠.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 명령에서 물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대로 하지 않고 월권 행위를 하고 마는데요.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치면서 '이 반역자들아, 우리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겠느냐?' 라며 화를 내죠. 모세는 마치 자기가 물을 내는 것처럼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둠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맙니다. 그래서 모세 자신도 결국은 광야 세대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죠. 그 또한 광야에서 죽어,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21장에서,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또 다시 반역하고 하나님은 이들에게 매우 이상한 심판을 하시는데요. 독사들이 와서 그들을 물게 하십니다. 그리고 모세는 다시 백성들을 대신해 중보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하시고 '독사에 물린 자는 누구든 놋뱀을 바라보면 나을 것이라' 말씀 하시죠. 매우 이상한 상징같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언약에 신실하신 분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공의로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조차 그분의 치유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근원으로 탈바꿈 할 수 있죠. ▲22~25장에서,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모압 평지를 향해 떠납니다. 이 부분의 시작은 발람이라는 특이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데요.
모압 왕은 이 거대한 무리가 자기 영토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잔뜩 겁에 질려서 주술사 발람을 고용하여 이스라엘의 저주를 내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발람은 세 번이나 그들을 저주할 수 없다는 걸 발견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할 수 밖에 없게 되죠.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해 보세요.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언젠가 열방에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실 이스라엘의 왕이 오실 거라는 환상도 봤는데요. 이 환상은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유다에게 한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잠시 멈추고 지금까지 이 책의 전체 흐름을 살펴보죠. 광야의 반역사건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악화되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분적으로는 심판 하시지만 변함없이 자비를 베풀고, 음식과 물을 제공하셨읍니다. 그리고 발람의 이야기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밝히 보여 주죠. 이스라엘은 언덕 저 아래 진에서 불평하며 반역하고 있지만 언덕 위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보호하고 심지어 축복하고 계시는 겁니다. *발람 사건 광야에서 반역했던 이스라엘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대조적인 모습은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들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 광야 이야기들은 후에 성경의 선지서, 시가서, 심지어 신약의 서신서에도 계속 반복해서 인용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언제나 이렇게 견고하죠.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의 신실 하시지만, 그의 백성이 반역하여 그 분을 떠나면 자기 잘못의 결과를 직면하게 내버려 두시기도 합니다. ▲26~36장, 즉 책의 나머지 부분은 광야세대 자녀들에게 초점을 맞추는데요. 그들이 약속의 땅을 상속할 준비를 시작하며 새 세대의 인구 조사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변에 민족들과 싸워 여러 전투에서 승리 합니다. 그리고 몇 지파는 약속의 땅의 요단 동편에 정착하기 시작하죠. 이렇게 민수기는 새 세대가 약속의 땅에 정착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이제 모세는 마지막 설교(신명기)를 통해 지혜와 경고를 전해 주려는 참입니다. 여기까지가 민수기의 내용이었습니다.
민수기는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고대 문서임에도 정말 정교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민수기를 연구한 학자들은 민수기의 구조에서 두 가지 형식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지리적 기준이고 또 하나는 세대적 기준입니다. 이것은 둘 다 매우 의미 있고, 의도적인 형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리적 구분
먼저 지리적 기준에 의한 형식을 보면, 민수기 전체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처음은 시내산에서 출발준비를 하여 민1:1~10:10
2)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가는 여정입니다. 민10:11~12장
그 무대는 시내 광야(=바란 광야, 신 광야) 입니다.
3) 세번째 무대는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해서, (*신32:8에 정탐꾼을 보낸 장소가 가데스 바네아로 나옴) 거기서 모압 평지로 가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무서운 방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민13장~22:1
3) 마지막은 모압 평지에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민22:2~36:13 지리적 구분으로 보자면 민수기는 세 개의 무대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 무대는 모두 광야입니다.
▲세대적 구분
-출애굽 1세대는 출애굽할 당시 20세 이상의 성인이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자녀들이 2세대 들이 있습니다. 부모를 따라 출애굽한 세대입니다.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가 민1~25장에 기록되어있고 -2세대의 이야기는 민26장 이후입니다.
그런데 이 두 세대의 이야기에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1세대는 가데스에서의 반역으로 대표되는 불순종과 불신, 반역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세대입니다.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40년의 광야생활에서 죽었습니다.
2세대는 자기 부모들의 세대가 다 죽는 것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봐야 했습니다. 그것은 민수기 13~14장에 기록된 가데스의 반역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민26장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두 번째 인구조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세대와는 아주 대조적인 광야 2세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들은 이전 부모들의 세대를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께 신뢰와 순종으로 반응하는 세대였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믿음(27:1~11, 36:1~12)
그런데 여기 이세대의 이야기는 아주 기막힌 문학적 구성을 보여줍니다. 언뜻 보면 아주 어설프고 이상하게 끝나는 것이 2세대의 이야기입니다.
2세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바로 슬로브핫의 딸들입니다. 이들은 지파로는 요셉의 아들 므낫세 지파에 속하는데 그녀들의 아버지 슬로브핫은 아들 하나 없이 딸들만 남겨두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녀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땅 분배 원칙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여인들(딸들)에게는 분배와 상속권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분명히 자기들의 아버지 슬로브핫도 땅을 분배 받아야 하는데 딸들인 자신들이 분배에서 제외됨으로 대가 끊기고 기업이 끊기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모세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2세대의 역사가 시작되는 27장이 그렇게 시작합니다. 모세는 이 사연을 하나님께 아뢰고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도 기업을 분배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렇게 일단락된 듯한데 민수기의 마지막 장인 36장에 가면 슬로브핫의 딸들이 속한 므낫세 지파의 지도자들이 다시 모세에게 찾아옵니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만일 다른 지파의 남자들에게 시집을 가게 되면 그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분배 받은 기업이 조상의 기업에서 떨어져 다른 지파에게로 가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게 되는데,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결혼할 수 있으나 이 문제를 고려하여 같은 지파의 남자들과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민수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아주 이상한 결말입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가 광야 교회 이세대의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는 그녀들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정말 이상한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민수기를 기록하신 성령님의 놀라운 지혜를 드러내는 문학적 구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는 2세대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아직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제 2세대의 인구조사가 막 끝났을 뿐입니다(26장).
이때 슬로브핫의 딸들이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제비 뽑아 지파와 가족 별로 얻게 될 기업(땅)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 것입니다. 아직 밟아보지도 않은 땅입니다. 왜 그녀들은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누구에게나 있는 땅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을까요? 그저 권리 주장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성경에 이런 방식으로 두 번이나 그녀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이유도 없고 또 하나님께서 그녀들의 요구를 긍정으로 응답하셔야 할 이유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들이 그런 요구를 한 것은 어떤 이유이고,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그녀들은 그 땅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고,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모세에게 자기들도 딸들이지만 몫을 받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그녀들은 믿음의 놀라운 특성인 장래의 은혜에 대한 소망, 기대를 표명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이 말하는 믿음의 정의가 그녀들에게 너무나 잘 맞지 않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또 자신들이 다른 지파의 남자들과 결혼하게 될 경우, 자기들이 지파와 아버지의 이름으로 분배 받은 기업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이 또한 그녀들이 자기들의 세대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 자손 대대로 이어질 것을 바라보는 소망 가운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지 슬로브핫의 딸들이 말 많은 시끄러운 여자들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또는 땅분배가 아들 없이 딸만 있는 경우에 어떤 원칙으로 시행된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들의 행동이 2세대의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대표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들과 그녀들의 이야기가 이세대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세대는 이 여인들처럼 믿음의 세대였습니다.
자기들의 부모세대는 가나안 땅을 탐지한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불신앙과 패역함으로 반응하여 광야에서 죽거나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말하고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가겠다고 하나님께 반역을 행했던 세대였습니다. 이 반역으로 말미암아 일세대는 다 자신들이 말했던 대로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2세대는 그런 부모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광야에서 자랐고 부모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봤고 불신과 불순종, 그리고 반역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는 이런 이세대의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기에 아주 적합한 믿음의 이야기인 것입니다.